'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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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속 어딘가로 치워둔 일들은 해결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나를 괴롭힌다. 괴롭힌다는 말이 적절하지 않은 건 내가 의식적으로 그 일들을 꺼내지 않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롭힌다는 표현을 쓰는 건 무의식 중에, 길을 가다가 불쑥, 혹은 몇년 만에 관련된 일을 알게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늪에 빠진 듯 허우적대는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 이틀동안 좀 그랬다. 나는 자주 무의식과 대면하길 기대하는데 이번엔 몇년간 묵혀둔 감정들을 처리하느라 하루가 좀 침울했다. 어떤 면에서 늪에 빠진 듯이 가라앉는 이 감정은 타인의 죽음과 연관된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런 정서 속에 방황하는 내 입장에서 언제나 글쓰기는 내게 치유다. 예전엔 내 글쓰기가 누군가를 계몽한다고 믿었다. 고로 모든 사람이 공감할만한 좋은 글을 쓰려는 것이 내 삶의 한 축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계몽된다기 보다는 자기 생각의 강화를 위해 멘토를 찾고 기사와 책을 읽는다. 이미 어떤 seed 같은 게 그 사람에게 이미 뿌려진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를 설득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다. 다만 지금의 글쓰기는 내 정서와 내 이성과의 교감이며 매순간 나도 모르게 나를 흔드는이 이상한 정서들을 말과 글로 정리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 크다. 그런 의미에서 머리속 어딘가로 치워둔 많은 것들은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면의 정직한 글쓰기가 요구된다.

이틀동안 속앓이를 하다가 속된 말로 멘붕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 나는 참 유쾌한 사람인데, 개그감을 회복하기는 쉽지가 않다. 물론 개그감이 원래 없었다고 말하는 이들과는 끝장토론을 할 준비까지는 되었다.
2013/01/29 22:09 2013/01/29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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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많은 연애드라마를 보고 적지도 많지도 않은 연애를 해보았지만.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상대가 열심히 말을 하는데

갑자기 슬로우모션처럼 느껴진다거나 뽀샵처리가 된 영상이

소리없이 흘러가는 느낌 같은 걸 경험한 적은 없었다.

 

오늘. 성하를 재우느라 누워있는데 그가 쉴새없이 내게 이야기를 했다.

찰진 두 볼살과 긴 속눈썹이 오르락 내리락하며 정겨운 톤으로

쫑알쫑알 조그만 입에서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순간 입모양만 보이고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갑자기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라

나는 막 하하하 웃으며 눈물을 훔쳤다.(젠장, 또 우는거냐)

 

"아빠 내 말 듣고 있어?"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웃었다.

난, 이 아이 참 사랑하는 거 같아.ㅠㅠ

 

2013/01/29 00:05 2013/01/2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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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말한 대로 완전한 깨달음을 가진 사람은 없다. 내가 존경하고 미국의 역사가 자랑하는 조나단 에드워즈도 내가 보기에는 목회자로서는 한쪽이 비어 있었다고 본다. 현실에서 생존의 싸움을 하고 있는 성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성경의 잣대를 가지고 나무라고 정죄하는 데 열을 올리는 목회자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아빠의 소신이다. 나는 로버트 슐러의 목회 철학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세미나에 참석해서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목회 균형을 잡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릭 워렌이나 빌 하이벨스를 나는 존경한다. 내가 꿈도 꾸지 못하던 사역을 할 뿐 아니라, 오늘의 문화에 젖어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데 획기적인 프론티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목사가 청바지를 입고 설교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그들의 용기를 높이 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책을 보아 그 배경에 로버트 슐러가 숨어있다고 나는 한번도 느끼지 못했다. 놀라울 정도로 로버트의 좋은 점들을 목회의 밑거름이 되게 만드는 재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립 얀시도 마찬가지다. 내가 부탁하는 것은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52쪽)

 

아버지는 가톨릭에 대해 일반적인 개신교 목회자와는 달리 매우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테레사 수녀처럼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큰 교회에 '어느 정도' 화목한 가정까지 남들 보기에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사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죄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90쪽)

 

2007년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평양 부흥 100주년'을 기념하는 집회가 있었습니다. 설교를 맡은 아버지는 그날 수술후 당신의 몸 속에 남아 있는 한 개의 폐마저 터져나갈 듯이 '주여 살려 주시옵소소!'라는 메시지를 간절하게 외쳤습니다. 그 설교는 가장 큰 죄인인 나부터 용서해달라는 외침이었습니다. 교인들을 잘못 가르친 목사, 나부터 살려 달라는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오로지 비주류의 목사만이 할 수 있는 메시지였습니다.

 

 

이 옥한흠 목사가 죄를 지었나이다.
주여! 죄를 회개하오니 살려주시옵소서!
한국 교회가 타락한 것이 이 목사에게 있습니다.
아버지시여!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옥한흠 목사가 죄를 지었나이다.

주여! 죄를 회개하오니 살려 주시옵소서!
한국교회가 타락한 것이 이 목사에게 있습니다.
아버지시여!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한국교회가 세계 제일의 교회가 되고 새벽예배가 많은 것은
목숨을 아까지 않고 충성하는 목자와 평신도가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회가 교회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입으로만 가지고 구원을 받았다면서
주여주여 설교하는 목회자들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모두 행함이 없는 거짓 믿음입니다.
거짓 목회자들입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주여 살려주시옵소서!

 

- 2007년도 한국 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회 설교 중에서

 

 

그 날 집회 후 아버지의 설교를 향해 일부 사람들의 노골적인 불평이 이곳 저곳에서 들려왔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죄인인 나를 용서해 달라는 아버지의 메시지는 기독교 주류의 메시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비주류의 쓴 소리는 언제 어디서나 주류를 불쾌하게 만드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115쪽)

 

그로부터 무려 이십 년이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던 아버지의 그 당혹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라지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의 목회 전반에 대한 깊은 고민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 고민의 이유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바로 아버지가 지향하고 붙잡은 자신의 교회론과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오는 교회의 현실이 서로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목사로서 교회는 커졌고 사람들은 많아졌을지 몰라도 자신이 믿고 붙잡고 가던 ‘교회론’에 걸맞은 결과를 교회 속에서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 말입니다. (137-8쪽)

 

“은퇴 후 저는 제 목회가 자체적으로 자기모순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너무 키워버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 교회론에 부합한 교회는 너무 비대해져 버리면 그 정신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 목회가 교회론과 제자훈련이 엇박자를 이룬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것은, 양이 많아져 버리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제가 은퇴할 때 사랑의 교회가 주일 출석 장년 교인수 이만 삼천 명, 전체 등록 교인수 오만 명, 벌써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어찌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제자훈련의 선두주자로서 교회론으로 볼 때, 그 정신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또, 교회론의 본질에서도 위선자적인 입장에 빠질 수 있어 고민이 됩니다.” (143쪽)

 

아버지가 목회를 하시며 내내 교회가 커지는 고민 속에서 하나의 돌파구로 붙잡은 길은 목숨을 건 설교 준비였습니다. 아버지에게 나날이 늘어나는 성도가 주는 내적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길, 그나마 많은 성도들을 제대로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설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145쪽)

 

“흔히들 나를 보고 매주마다 수만 명의 성도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느냐고 하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설교가 나에게 보람은 안겨주었을지 모르지만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설교의 부담감 때문이었다. 설교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숨은 군중들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강대상에 서고 싶지 않을 때가 없지 않았다." (146쪽)

 

아버지는 어쩌면 단 한번도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제대로 전달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은퇴할 당시 어느 방송에서 고백했듯이 자신의 부족한 은혜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의 설교를 통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데 대하여 성도들에게 미안해하고 하나님 앞에 송구해 했습니다. (148쪽)

 

아버지는 목사로서도 또 인간으로서도 고독했습니다. 무엇보다 설교자라는 점을 숙명적으로 지고 사는 사람으로서 은혜에 대한 갈급함은 그를 필연적으로 고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고독은 아버지 스스로가 초래한 결과였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알지 못해 그 큰 은혜를 사람에게서 제대로 선포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사람들과 어울려 놀 여유를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무겁고 크며 거룩한 존재일수록 설교는 그에게 엄중하며 생명을 다루는 문제였습니다. 항상 자신은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말하던 아버지는 하나님과 단 둘이 대면하는 인간적 고독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채찍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지키기 위해 찾은 답이 어떤 의미로 아버지에게는 ‘고독’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종종 이런 목회자의 고독을 ‘날마다 죽는 목회자’라고 표현하곤 했습니다. (150쪽)

 

인공호흡기를 낀 아버지는 어제 간신히 손에 들린 펜으로 이렇게 쓰셨습니다. “성도들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아마도 아버지의 진심은 이것이었을 듯 합니다. “성도들에게 미안하다.”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성도들에게 미안해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 깊이 더 넓게 보여주지 못하는 설교자로서 미안함 뿐 아니라, 자신의 교회론과는 달리 너무도 커버린 교회 때문에 또한 성도들에게 미안해했습니다. 아버지의 이 미안함은 지금도 여전히 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랑의교회 건축 과정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교회론에 걸맞게 좀더 제대로 목회했다면 결코 더 큰 겨교회 건물을 지어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더 큰 교회 건물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가 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했습니다. (159쪽)

2013/01/23 23:30 2013/01/2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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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자 감히 투표장을 기웃거린다는 이유로 흑인들이 죽을 때까지 맞는 사건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린치는 빈번하게 일어났다. 1882년부터 1968년 사이 3,446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린치(맞아죽음)를 당했다. 그 가운데 159명은 여성이었다.

단지 죽이는 게 끝이 아니었다. 분노한 백인들은 린치를 당해 죽은 시신을 화형하거나 나무에 매다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흑인들은 신고조차도 두려운 일이었다. 범행에 가담한 이들을 법정으로 부르는 일도 없었다.

루이스 알렌은 두 명의 흑인 린치 사건을 다룬 시 'Strange Fruit'을 1936년 잡지 <뉴욕 티처>를 통해 처음 공개했다. 어느 정도 반응을 얻자 참상을 알리기 위해 시를 띄울 만한 노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빌리 홀리데이는 'Strange Fruit'을 부르며 애써 슬픔을 밖으로 터뜨리지 않았다. 남의 일인 것처럼 읊조리듯 담담하게 소화했다.

'Strange Fruit'은 빌리 홀리데이의 싱글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이다. 그토록 열띤 호응을  얻었지만 정작 노래가 끝날 때마다 빌리 홀리데이는 언제나 침울해했다고 동료들은 회고한다. 그녀는 클럽의 인기스타가 되었지만 도약은 어려웠다.

도시 사람들은 틀을 깨는 그녀의 신선한 노래에 감동했지만 그래봐야 그녀를 노래하는 노예 정도로만 취급할 뿐이었다. 청중의 주문은 이런 식이었다. "그 흑인 열매인지 뭔지 대롱대롱 매달렸다는 그 노래 한 번 불러봐." 고급 호텔 공연이 잡혀 있을 때, 흑인인 그녀는 정문으로 출입할 수 없었다. 그게 호출을 받아 미국 전역을 오가며 노래하던 인기 가수의 삶이었다."

- 이민희, <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되었을까> 중에서
2013/01/22 23:29 2013/01/22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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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쉽지도 빠르지도 않다. 그러니 웃으며 기다려라."
- 밥 말리.


"트렌치타운은 자메이카의 불안정한 정치가 고스란히 드러나던 현장이었다. 자메이카는 오랜 영국의 식민지로 살아왔다. 마침내 독립을 얻지만 사회주의 노선의 인민공화당과 친미 성향의 자메이카 노동당이 첨예하게 대립해 피바람이 불었다. 그가 사는 트렌치타운에서도 연일 시위가 있었다. 시위에 참여했다가 죽거나 사라지는 사람도 있었다.

밥 말리의 노래는 수많은 자메이카인을 위로했다. 그의 노래는 어지러운 정계를 비판하고 소박한 민중의 삶을 대변했다. 그러면서 곧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간다. 1973년 밥 말리가 "I Shot The Sheriff."를 발표한 후 미국의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이 원곡을 해석해 빌보드 1위를 기록하면서부터다. 원래 제목은 "나는 경찰을 쏘았다"였지만 정부의 간섭으로 제목을 바꾸게 됐다.

그는 노래를 통해 권력을 비난했고 대다수의 약자들이 그의 노래를 지지했다. 밥 말리는 평화를 노래했지만 그가 노래하는 현장은 평화롭지 못했다. 그는 떠나야 했다. 1976년 그의 매니저와 아내가 총상을 입으면서다. 눈 앞에서 삶의 위협을 느끼고 망명을 택한 밥 말리는 영국으로 간다.

정부는 내쫓다시피 했던 밥 말리를 다시 부른다. 자메이카 양측 정당의 무력단체 대표들이 마침내 휴전을 약속하는 평화협상을 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선언하기 위해 밥 말리를 상징 인사롤 초빙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고국의 부름을 받고 돌아온다. 밥 말리의 복귀와 함께 자메이카가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공연이 기획된다. 돌아온 밥 말리는 '사랑과 평화의 콘서트' 현장으로 달려갔다.

밥 말리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생일 2월 6일은 자메이카의 국경일로 지정됐다."

- 이민희, <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되었을까> 중에서
2013/01/22 23:28 2013/01/2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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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성하와 놀다보면 "아빠, 그냥 내 마음대로 하게 해줘"라고 말할 때가 있다. 과자를 많이 먹거나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나는 즉시 물러선다. "어.. 그래" 사실 나는 상하의 놀이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몹쓸 모범생 기질 때문에 정해진 룰을 성하에게 강요할 때가 종종 있다.

 

원치않게 정형적인 방식을 부드럽게 강요하다보면 눈치가 9단인 다섯살의 아이는 그 제약을 감지하고 아빠에게 항의한다. 아빠는 이게 바른 방법이라고, 혹은 더 재밌는 방법이라고, 혹은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아이를 교정하며 그렇게 아이는 위축되고 재량은 줄어든다. 외부세계에 주어진 룰부터 찾으려고 하며 눈치를 보며 불안해한다.

 

결국 아이는 놀이에 주도권을 잃게 되고 아빠가 노는 걸 지켜보다가 정작 본인은 흥미를 잃고 만다. 아빠주도형 놀이의 탄생이랄까. 이 모든 것을 나는 드러나지 않게 체화시키길 기대하며 은근히 아이에게 강요하는 편이다. 난 그렇게 커왔기 때문에 아들에게도 그렇게 내 DNA를 전수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주장을 분명히 해주는 성하가 신기하고 고맙다. 그는 조용히 마치 혼자말을 하듯 내게 말을 한다. "내가 하고싶은대로 하게 해줘" 주의깊게 듣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을 정도의 소리로. 오늘도 나는 한걸음 물러서서 대답한다. "아, 미안. 네가 해바바"

2013/01/21 00:05 2013/01/2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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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내가 준비한 모임이 잘 끝난 모임이다.
내심 내 일처럼 기쁘기도 했지만... (전환)
어제도 산더미같은 일거리를 초인적인 힘으로
처리하고 성하 픽업해와서 밥 해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니 아내가 자정이 넘어서 집에 왔다.
모임 참석자들 몇 그룹을 집까지 태워주고 왔단다.

 

오늘은 어제의 피로와 긴장이 풀린 아내 떡.실.신.
성하는 사슴과 같은 눈망울로 놀이터에서 눈사람
을 만들자고 조르고. 나는 나대로 휘곤휘곤.

 

하지만 한번 똘마니는 영원한 똘마니가 아니던가.
따라 나가서 열심히 눈사람 만드는 거 방관+도움.
(그래도 오늘은 루돌프 사슴은 안 했다. 날이 풀려서
눈이 많이 녹았더라. 씨바... 날씨 겁나 고마우이.)

 

아내는 저녁에 잠시 일어나서 간단히 요기하고
다시 떡실신.ㅠㅠㅠㅠ
성하도 장호삼촌네서 너무 열심히 놀았던지 잠시
짜증작렬하다가 어느 순간엔가 코골고 자는 중.
...

 

아... 이제서야 우리집은 평화가 찾아왔건만.
나도 미친듯이 피곤하고 졸립다... 안돼...ㅠㅠ
일단 일어나서 책상에 앉았는데 거 되게 졸립네. 쩝.

 

엄마들이 집에서 자기개발 못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빨래나 마저 널고 자야겠다.

2013/01/21 00:04 2013/01/2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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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가 2월부터 10만원대 전자책(e북) 전용 단말기 출시와 함께 회원제 e북 서비스 ‘샘(sam)’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단 칼라 e-ink 단말기 실패 이후 변화를 위한 발빠른 행보가 고무적이다. 특히 이제까지 교보가 내놓은 전자책 시장 상품들 중 단연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전자책 소비자들의 상당수가 소설, 에세이류에 집중되고 있고 그런 책들은 소장용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의 매력이 있는 회원제가 전자책 시장의 파이를 키울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을까. 어느 정도 괜찮은 서비스라고 생각하나, 여기에도 몇가지의 우려감이 있다.

첫째는 10만원대의 단말기가 흑백일 거란 추측. 당연히 태블릿을 쓰는 이들이 칼라 서적을 일단 보고나면 태블릿을 '더' 선호하게 될 것 같다. 결국 '샘'이란 서비스는 태블릿에서 앱으로도 제공되어야만 그 기대대로 시장에 먹힐 것이다.

 

둘째는 소장 욕구다. 사람들이 도서관만 이용하지 않고 책을 구입하는 이유는 특정한 책은 읽고 나서도 보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은 책에 대한 애정일 수도 있고 논문이나 칼럼을 쓸 때 참조를 위해서 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필요할 때마다 책을 대여해야 하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회원제로 운영할 때 한번 구입한 전자책은 종신토록 보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이 두가지가 잘 해결된다면 회원제 전자책 서비스는 (아마존 같은 공룡 온라인 업체가 존재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전자책 시장의 표준 서비스가 될 수도 있으리라 조심스럽게 예견해본다.

2013/01/18 23:27 2013/01/1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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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보지 않을 때 아이는 말썽을 일으킨다. 야단이라도 맞아가며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처지, 특히 제일 사랑받고 싶은 엄마의 마음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느낌은 아이에게는 아주 견디기 힘든 일이다. 자기가 죽어도 엄마는 슬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아이의 속내를 언제까지 외면하고 있을 것인가. 아이는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33쪽)

아이만 치료하는 일이 얼마나 소용없는 일인지 치료자들은 잘 알고 있다. 아이보다 엄머가 마음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엄마들은 자신은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클리닉에 데려오는 일만 할 뿐이다. (40쪽)

부부가 맞벌이를 하지만 집안일을 전혀 분담하지 않고 남편이 총각 시절과 다름없이 생활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를 만났다. 그 부인은 "남편이 취미로 하는 골프 연습이나 자기 계발을 위한 영어 학원 수강을 말리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남편을 배려하는 좋은 아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에게 아빠 역할을 즐길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남편의 의사를 묻지 않고 그렇게 미리 알아서 다 해주는 것이 좋은 아내의 자세라 여긴 것이다. 회식이나 업무상 미팅으로 늦게까지 술마시는 것도 남편의 일 중 하나니, 주말에는 쉴 수 있게 배려한다. 그러고는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자녀 교육 문제까지 혼자 도맡아 처리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71쪽)

우리는 그들보다 더욱 복잡하다. 여성은 학교교육을 받는 동안에는 남성과 대등하게 경쟁하며 성취하는 개인으로 지낸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 가족을 포함하고 살 것을 기대하고 요구한다. 결혼 후 제일 힘든 점이 개인으로 자유롭게 살다가 갑자기 남편과 시집 식구를 포함하여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당하다고 몸부림치고 부부 싸움도 많이 한다. 하지만 차츰 모르는 사이에 자기 행동 단위를 넓혀 머릿속에 자녀와 남편, 그리고 시집 식구들의 자리를 마련한다. 그리고 정작 자신은 뒷전으로 밀어놓는다. 그러면 부부싸움은 줄어들지 몰라도 마음속에 갈등이 자라게 될 것이다. (74쪽)

그 부인은 아이를 겨우 재우고 노곤하게 잠든 사람을 깨워 ㅈ사랑 나누기를 청하는 남편이 귀찮다고 했다. '내가 피곤한 걸 몰라서 저러나'하는 원망까지 든단다. 직장에서 돌아와 얼마 안 되는 시간에 집안일은 물론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공부시킨 후 재우고, 겨우 쉬는 그 귀한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부인이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하는 동안 남편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골프연습장에 다녀오고 TV를 보고 인터넷을 한단다. 집에 일을 들고 들어오는 때도 있다고 한다. 그 부인은 남편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다 하게 놔둔다. 아이에게 남편은 아빠가 아니라는 듯 책임을 면제해준다. 잠깐 놀아주는 것으로 아이에게 아빠는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엄마는 혼자 부모 노릇 다 하느라 피곤하다. 그렇게 모든 할 일을 다 하면서 일에 지쳐 잔소리하고 짜증내는 엄마가 된다. (83쪽)

엄마들은 "아이가 원해서 학원에 보내요"라고 한다. 언제부터 아이들이 원했을까. 동맹이라도 한 듯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니 친구 사귀려면 학원에 갈 수밖에 없다. 엄마 마음대로 원하지 않은 짧은 머리를 만들어놓고, 화내는 아이를 달래며 장난감을 사주는 엄마는 "네가 원하는 삶(머리 길이)을 살지 않고 엄마 말대로 살면(짦은 머리) 유산(장난감)을 물려줄게"라고 하는 셈이다. 아이들은 그 장난감(유산)의 유혹으로 자기 의지를 꺾는다. (88쪽)

아이가 성도착 문제로 치유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은 엄마가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며 치료를 주저했다. 신경정신과 치료 기록이 남는 것도 꺼림칙하고, 번듯한 집안이라는 평판을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덮어두면 아이는 어른이 되어 건강한 성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본인뿐만 아니라 배우자가 될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들 수 있고 심하면 성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일이라 문제가 심각한데도 외면한다. 가정 안에서 아버지나 오빠, 삼촌에게 성추행을 당한 아이가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도 적합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엄마가 많다. 누가 알까 두려워 덮어두려고만 한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의 처지를 충분히 느끼고, 분노하고, 슬퍼하지 못하게 된다. 미해결 사건이 평생을 좀먹고 과거가 자신을 좀먹게 두니 비참한 어둠 속에서 살게 된다. (135쪽)

어린 시절에 받은 피해를 오해려 자신의 수치로 여기며 살게 되면 어린이 되어서도 억울한 처사에 순발력있게 대응할 수 없다. 고통을 당해도 무감각하든지 혼란스러워한다. 그래도 체면이 그렇게 중요한지 묻고 싶다. 아이의 인생보다 체면이 중요한가? 아이의 삶보다 귀한 체면이란 없다. (136쪽)

자녀의 반에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가 있으면 엄마는 "그 애와 놀지말라"는 말만 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바로 그 문제 아이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139쪽)

엄마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자녀는 잘 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엄마의 마음을 얼마나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지 깜짝 놀라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부모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눈치 보고 귀를 쫑긋 세우고 살았으니 당연하다. 자녀가 엄마의 마음을 간파해서 "결국 돈 얘기하는 거 아니야"라 한다. "친구들과 좋게 지내라"는 말을 듣고도 "걔와 경쟁해야 하잖아"라고 말한다. 선생님을 존경하라"는 엄마의 당부에 "알았어. 선생님한테 잘 보일게" 대답한다. 아이들의 눈이 너무 정확해서 부끄럽고 마음이 아플 지경이다. (153쪽)

엄마들이 많이 하는 말 가운데 '이 정도는 기본'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 기본이라는 말이 무섭다. 공부나 생활 태도 등 각 엄마마다 나름의 기준을 정해놓기 마련인데, 이 기준에 이르지 못했을 때 아이는 가차없이 정죄 받고, 기본도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히게 된다. 그리고 당장 생사회복에 지장을 경험하게 된다. 엄마의 실망하는 표정을 보는 것이 아이에게 매질이나 언어폭력보다 덜 두려울 것 같은가. 아니다. 경직된 엄마의 기준에 어긋났을 때 엄마가 보이는 작은 반응도 아이에게는 굉장한 위력으로 다가온다. (161쪽)

이제 자신의 느낌을 찾기 위해 기억 저편의 어린 시절 접어두었던 역사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잘못했을 때는 "넌 원치 않는 딸이었다"는 뼈아픈 말도 들어봤을 것이다. 반면 잘하면 잘하는 대로 "네가 아들이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기막힌 말도 들었다. 이렇게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없게 만들었으니,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무시하고 내 삶이 귀한 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못하고 뒷전에 밀려나 있어도 불만이라 느낄 줄 모른다. 자신의 느낌도 무시해서 내세우질 않는다. 이런 것을 우리사회에서는 겸양의 미덕으로 쳐주기 때문에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었다. (183쪽)

막상 아이들은 엄마 앞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 우리가 생각하는 어머니 상이 진실인지 허구인지 물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이들이 받은 상처는 언제나, 자신을 더 없이 사랑하고 자신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엄마와 연결되어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어머니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란 걸 우리는 안다. 현실이 각박하고 먹고 살기에 너무 바쁘고 어머니 자신이 참고 살아내야 할 삶이 힘들었기 때문이란 것 역시 안다. 하지만 머리로 알고 있다고 해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191쪽)

가족은 서로 속일 수가 없다. 특히 자녀는 부모를 속속들이 보아왔기 때문에 속일 수 없다. 나는 아들이 작문 시간에 쓴 한 구절의 글에서 그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엄마는 나를 어른이 되어 알기 시작했지만, 나는 엄마를 태어나서부터 평생 알고 있다!" 자녀는 이렇게 엄마를 알고 있는데 정작 엄마는 아이를 모르고 있다. 간혹 엄마들이 "우리 애를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라고 푸념하는 모습을 본다. 특히 하나 이상 자녀를 키우는 집 엄마들은 둘째를 향해 "언니는 안 그랬는데", "형은 다른데"라는 말을 곧잘 한다. 하지만 아이가 처한 상황을 알았다면, 왜 그 렇게 다른지 알 수 있을 텐데 알려 들지 않는다. (204쪽)

사람들은 "다 지나간 옛일을 지금 끄집어내면 뭐하느냐?"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덮어두고 묻어두고 있으면 영영 아무 느낌 없이 살게 된다. 내가 무엇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 왜 슬픈지, 어떤 이유로 괴로운지 모른 채 불만스럽고 슬프고 괴롭게 사는 것이다. (222쪽)

그니처럼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니에게서 문제가 비롯되었다는 걸 알게 되면 처음에는 어머니를 원망한다. 어머니에게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경우 "이제와서 어쩌라는 거냐" 하는 분도 있고 "몰라서 그런 것이니 미안하다" 하는 분도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머리로 알기만 한다고 해서 상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느꼈던 그 시절의 마음을 알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자기 아픔을 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우선이다. 물론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기억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모든 아이들은 어머니의 보호와 사랑 없이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우호적으로 기억하려 한다. 어머니 역시 모든 것이 아이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사랑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다. (237쪽)
2013/01/18 23:26 2013/01/18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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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요즘 나는 사람들을 '욕망-억압 모델'로 이해하려는 편이다.
아내의 영향을 받은 측면도 크고, 최근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관심이 가는 방향이기도 하다.

진보-보수, 자본가-노동자, 기독인-비기독인 등 다양한 차연이
가능하겠지만 한 사람의 인생사 속에서 축적된 욕망과 좌절,
억압과 분출의 서사... 그 또한 참 중요한 부분이란 생각이 든다.
사회학적으로도.
가끔 페북을 보면서도 사람들의 욕망-억압의 다양한 표현들을
접한다. 무엇보다 나는 내 모습을 본다.

나는 한번 포스팅한 글이나 댓글은 어지간하면 잘 지우지 않는다.
...귀찮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를 욕망-억압 모델로 관찰하다보면,
내가 실수로, 혹은 무의식 중에 썼다가 지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글들이 있다. 라깡은 말실수나 반복에 의미부여를 하던데.
참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요즘 나는 지우고 싶은 글이나 말이 생기면 그냥 지우기보다는
그 글을 없던 걸로 하고 싶어하는 내 내면을 들여다보는 편이다.
의외로. 그 짧은 시간의 짧은 돌아봄 속에서 얻는 게 쏠쏠하다.

어차피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 없듯,
한번 포스팅은 영원한 포스팅이 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그리고 가끔 글들로 내 욕망과 억압을 반추한다. 요즘, 좀 그렇다...

사족.
현대기술이 내 흔적을 반복적으로 copy하는 이유도 있다.
내가 인터넷 어딘가에 끄적이는 낙서들이 메타 사이트에서
한두번의 검색만 거치면 지웠던 글도 먹지를 대고 배껴내듯
...나타난다.

 

2013/01/18 22:05 2013/01/18 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