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한밤중에 성하가 옆에서 코를 파다가 손이 허공에 있는 채로 다시 잔다.ㅋㅋㅋ 완전 귀여워서 한참을 입고리를 올리고서 쳐다보는 중이다. 이 아이가 정녕 내 아들이란 말인가... 참 귀엽다. 노동절 아침에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갔다가 내 부주의로 문틈에 성하 손이 끼었다.
한참을 울고는 이후로 계속 칭얼대기 시작, 몇 차례 주의를 주다가 저녁 즈음에는 나도 도저히 참지 못해 화도 내고 1분동안 벌도 세웠다. 저녁에 씻기려는데 아침에 문에 낀 손이 퉁퉁 부어있었다. 얼핏보고 피부가 조금 까졌구나 생각했는데 엄살이 아니었구나... 내일 병원에 가봐야하나...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손가락은 잘 움직이는데, 잘 움직이는데 그때부터 자학이 시작되었다.
미안함이 쏟아지는 밤. 둘이 누워서 책을 읽어주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나: 오늘 손가락이 많이 아파서 기분이 안 좋았었구나 성하는...
성하: (고개 끄덕)
나: 기분 많이 안 좋았어?
성하: 아니, 기분 좋아.
나: ...
성하: 아빠도 좋아.
눈물이 핑 돈다. 아빠도 좋아. 오늘 내가 성하에게 칭얼대지 말라고 했던 경고와 벌을 세운 기억도 고스란히 돌아온다. 넌 그래도 내가 좋구나. 흠...
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많았다. 지금도 그 정서에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서서히 아버지에 대한 내 감정에서 자유로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30년 넘게 헤어나오지 못한 아버지탓. 성하에게 그런 아빠가 되고 싶지 않다. 정말로. 하지만 이제 갓 5살이 된 아들에게 나는 원치 않게 잘못을 한다. 뒤늦게 알게되면 오늘처럼 밤잠을 설친다. 퉁퉁부은 손가락을 얼음주머니를 갖다대고, 잠자는 아이의 손가락을 몇차례 확인한다.
나는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그건 양육이나 자녀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아이를 다치게 하거나 상하게 만들까봐 두렵다. 물론 이건 엄살이다. 매순간 나는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노라 자만한다. 하지만 그만큼 이 아이와 살을 부비고 살아가는 일상의 잘못들이 쌓이는 게 무섭기도 하다. '아빠 좋아'가 아니라 '아빠 미워'라고만 했어도 지금쯤 나는 숙면을 취했을텐데...
초등학교 때 아버지의 운전실수로 교통사고가 났고 나는 눈썹이 찢어지고 어깨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다. 물론 그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아버지는 괜찮니? 미안하다...라는 살가운 말을 해주지 않았다. 평생 아버지는 자녀에게 빈말이라도 자기 잘못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다. 내가 아비가 되고 보니 매번 사과는 하겠는데, 그것보다 내 아들이 되어서 내 실수로 인해 아이가 고통받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생긴다.
코를 파다가 허공에 떠 있는 성하의 손을 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오늘 문에 낀 손가락이 빨리 낫게 해달라고. 우습지만 진지하게. 어제 많이 자서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잠이 안 와서 다시 일어났다. 미뤄둔 일을 하는 중간중간에도 기도 중이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나같은 트리플A 성격은 애 하나 키우기도 버겁다...
'13. 5. 2.
얼마전 오마이뉴스에 쓴 <아내가 지금껏 이런 일을 해왔단 말인가> 기사 반응을 보면서 느낀 점 몇 가지.
일단 반응이 뜨거웠다. 페북 좋아요 500회를 넘겼고 기사 점수도 <닥치고 정치> 서평 다음으로 높았다. 무엇보다 시민 5명에게 원고료도 받았다. (몇달 전에 기고한 기독매체 원고료는 아직도 무소식인데)
반면, 우는 소릴 자주 했듯 댓글들은 마치 조선일보나 일베에서 볼 법한 내용이 많았다. 정리하자면 여성들은 뭔가 시원함을 느낀 것 같고 반면 남성들은 공감하는 분들도 있었겠지만 뭔가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어보인다.
그 불편함은 이런 게 아닐까. 남성도 '지금도 충분히 고생을 하고있고 힘든데 가부장제의 원흉처럼 취급받는다'는 일종의 역차별 내지는 피해의식 같은 거다. 과거에 가부장제가 어떤 고압적 규율에 의존했다면 지금의 가부장제는 이런 류의 조금 변형된 형태로 유지되는 것도 같다.
각설하고. 나는 남성이지만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스스로 여성성을 확장시키고, 공공연하게 유사페미니스트 내지는 '언니'라고 칭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여성주의 운동가들과 달리 나는 성해방운동의 주체로서 남성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성이 행위의 주체이자 동반자가 되어야 현실적으로 풀리는 문제가 많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남성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와 상황으로 어떤 '설득'을 하고 싶은 거다. 여성동지들 안에서 어떤 포퓰리즘을 일으키고 싶은 게 아니다.-_-;;;; (뭐 그것도 나쁘진 않다만...) 헌데 이 기사를 쓰면서 나는 내가 남성과 점점 불통의 단계로 다가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진.심.으.로.
가끔 나는 두란노아버지학교(기독교에서 하는 자상한 남편 교육 프로그램인데 다분히 가부장적이다)에 대항마로 여성주의관점의 아버지학교와 세미나를 만드는 상상을 한다. (주위에서 부채질도 하고) 근데 요즘은 아내의 협박에 못이겨서 똥씹은 표정을 하고 들어오는 남편들이 떠오를 때가 많다. 이,,,, 이건 아니다 싶다.
결국 오늘 미생 123회 이야기처럼 부모가 모두(성차별없이) 행복해야 자녀가 행복하고 자녀가 행복해야 그들이 다음 세대에 빛을 발할텐데 그 조건으로 볼 때 여성이 불행할 만한 요소가 한국사회에는 너무 많고 그것을 조정하고자 하는 노력은 남성도 행위 주체자로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 글은 남성에게 공감을 주는 부분에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본다.
사실 그런 생각이 있다. 남성-여성, 구도를 보수-진보, 비전라도-전라도, 백인-흑인에 대치시켜도 공감대가 될 만큼 여성문제는 치명적이지만 너~무 시시콜콜, 째째, 미시적, 가정사적이라 글꽤나 쓰는 논객들이 쳐다보지 않는 영역이다. 그도 누군가의 남편일테니 그럴 수도 있고.
그런 대결 혹은 이항 구도를 탈피해야만 가능한 남성-여성 주체적 행위로서의 여성운동을 꿈꾸면서 이 벽을 더 높게 쌓는 건 아무래도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암튼 며칠동안 많이 배웠다. ...벌써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