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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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두 교황>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다가 교황 베네딕토16세가 교황직을 내려놓겠다는 내심을 알게되자 프란체스코가 이런 저런 이유로 불가함을 항변하던 도중 베네딕토 교황이 소리친다. "사일런스!" 넷플릭스 자막에는 "조용히 하시오!"라고 번역되었지만 정확히 표현하자면 "신이 내게 침묵하고 있소!"가 될 것이다. 더이상 신이 기독교의 수장, 교황인 자신에게 아무런 뜻도 보이지 않는 상태임을 라이벌인 동료에게 고백한 것이다.

엔도 슈사쿠의 책 <침묵>은 한층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한다. 17세기 일본에 선교사로 파송된 포르투갈 예수회 신부들은 그곳에서 많은 고초를 겪는다. 일본의 권력자들은 예수의 성화를 밟게 만들고는 밟지 않으면 고문을 가했다. 성도들이 고통받는 것을 지켜보던 페라이라 신부는 결국 배교자가 되었고, 그를 찾아온 로드리게즈 신부도 내적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함께 배교의 길을 걷는다. 성도들이 고통을 받는 중에도 기독교의 신은 침묵했다. 이 소설에서 엔도 슈사쿠는 신의 침묵과 인간의 신앙을 '내재화'라는 관점에서 상징성을 부여했고 신의 침묵이 침묵이 아니듯, 인간의 배교가 배교가 아님을 은연 중에 드러냈다.

2.
유대인들은 성전이 허물어지고 난 후에도 몇 차례의 재건을 꿈꿨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나님의 처소는 회복되지 못했고, 20세기 홀로코스트를 통해 자신들의 신이 침묵하고 있음을 더 정확하게 이해했다. 가톨릭 또한 로마 황제에 의해 종교 자체가 제국의 국교가 된 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번창했지만 십자군 전쟁을 비롯한 많은 오명도 함께 얻었다. 당시에도 하나님은 십자군의 편에 서지도 십자군을 벌한 존재로 서지도 않는, '침묵하는 존재'였다.

구약의 하나님은 그 백성들과 함께 했고, 즉각적으로 분노를 표하고 심판을 일삼고 자신의 의중을 항상 그 언약을 맺은 백성에게 전달하는 구체적인 신이었다. 그를 따르는 백성들에게 언제나 응답하였고, 원한다면 자신의 뒷모습마저 보여주셨다. 예루살렘 성전이 허물어지고 그 백성은 흩어졌지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었고 그가 떠나면서 보혜사 성령님을 약속하였고 그 언약은 성취되었다. 그로 인해 우리도 회심과 함께 그의 영을 받고 신의 뜻을 알고 신의 뜻대로 행할 능력을 얻었다.

3.
하지만, 성령의 시대가 열린 이후로 기독교는 정확한 신의 뜻을 알 수 없는 역사적 흐름 속에 놓여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주후(After Christ) 시대'를 생각하게 되었다. 기독교가 로마권력의 종교가 되는 것도 가능했고, 신의 뜻을 분별하기 위한 종교개혁이 일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과 개신교는 병존이 가능했다. 루터와 칼벵이 종교개혁을 일으켰지만 정작 칼벵의 제네바에서는 괴상한 신권 정치가 행해졌고, 그것이 제압되거나 정죄되지는 않았다. 이후로도 유럽은 신구교간에 수백년에 걸친 기나긴 전쟁에서 수많은 신도들이 같은 신의 이름으로 다투고 죽어갔지만, 정작 하나님은 침묵했다.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지 못해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다는 교회의 입장이 강하게 드러났지만, 정작 밀레니엄을 넘기자 선교가 기독교의 중차대한 임무라던 입장은, 복음전도와 사회참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거나 명상, 일상사역, 카르페디엠 같은 방향으로 전환되었고 마치 처음부터 기독교는 (내세지향적이라기 보단) 그런 세속적 입장이었다는 듯 아무런 이슈나 논쟁거리가 없다는 듯 성경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고 있다.

3-1.
한때 은사주의 운동이 교회를 휩쓸기도 했다. '능력대결'이라는 용어도 성행했다. 이는 종종 원시 선교지에서 일어나는 이상 현상에 대한 설명이기도 했지만, 문명화된 대도시의 교회에서도 가능한 형태라고 굳게 믿었고 그런 뉴스들이 종종 교계 안팎에 떠돌곤 했다. 로이드존스 목사는 성령세례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내주하는 성령님의 형태와 별개로 '기름부음'의 경험을 구분하여 사용했고 청교도의 후예를 자처하는 계열의 목회자들은 종종 그런 상태를 은유적으로 때론 물리적으로도 표현하기도 했지만, 정작 교회를 한 방향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분석하는 교회의 입장에서도 역설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메타담론으로서의 구속사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교회 자신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평하면서 기독교의 그런 처지를 드러낸 셈이다. 구약처럼 명약관화한 방식으로 신이 그 백성을 이끌고 있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미시사적 의미 속에서 성도들은 각개격파 내지는 몇몇 종파와 조직으로 각자의 경험적 신앙으로 신을 형상화하고 있지만, 그것을 저지하거나 혹은 지지, 비평할 거대담론으로서의 메인스트림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밀레니엄을 20년 넘긴 현재는, 마치 기독교가 진보사회와 결을 같이 하는 것이 세련되고도 '정치적으로 옳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기독교는 예전의 야만성에서 많이 벗어났다. 이제 ‘성전’이나 ‘마녀사냥’은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고 근본주의 기독교는 쇠퇴하고 있으며 '원숭이 재판'이나 '틈새의 신' 논란은 구태의연한 사건이 되었다. 오히려 가톨릭은 프란체스코 신부 체제가 되면서 개신교보다 더 인기있는 종교로 변화하고 있는데 여성의 권리, 낙태, 동성애 등에 대한 입장의 재천명은 어찌보면 신의 침묵 속에서 부단히 옳은 길을 모색하는 교회(인간)의 노력이기도 하다.

4.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후 하나님은 침묵하고 있다. 이제는 인간이, 성도들이 제각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떠들어대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행한대로 자신의 뜻을 명시적으로 밝히거나 특별한 간섭으로 정죄하지 않는다.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이 메타담론, 거대담론처럼 하나의 통일된 교회체를 일사분란하게 이끌지도 않는다. 내가 아는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해 비교적 명백하고도 명확한 교회사, 구속사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가르쳤지만. 오랜 역사를 돌아본 지금, 나는 그들이 자신의 신앙을 과신했다고 믿고 있다.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베네딕토 교황에게만, 일본 선교사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 이후를 사는 교회를 향해 자신의 얼굴을 가리셨다. 왜 그런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지금은 거울을 보듯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가 되면 얼굴을 맞대고 볼 것이다. 하지만 '지금'(not yet)은 그렇지 않다. 교회는 하나님의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지 않으며, 그분의 침묵의 시대를 보내고 있다. 속된 말로, 하나님이 지금은 대놓고 참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부활절에, 코로나19라는 전지구적 재난이 임한 이 땅에서, 조용히 내 낡은 신앙을 주장하지 않고 그분의 침묵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2020/04/20 22:16 2020/04/20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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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하긴 하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음악, 영화평을 주고 받다보면 항상 다투게 되는 친구가 있었다. 대체로 내가 좋아하던 국내 뮤지션이야기를 꺼내면(그는 국내 뮤지션 대부분을 실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음반은 쓰레기라며 한 두 마디로 내 기호를 제압하곤 했다. 마이클 잭슨 스타일을 모방한다, 킹 크림슨 음악 흉내를 냈다, 창법이 과장됐다는 등등... 촌철이라면 촌철이지만, 섬세하게 들아가본다면 내가 언급한 음악인 중에는 그런 인상 비평이 적절하지 않게 음악 영역이 넓은 이들도 있었고, 더 나아가 문화 컨텐츠에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불호를 혐오스럽게 표현하는 것 자체가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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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80년대 운동권 글쟁이들이 정권을 비판하면 잡혀가던 그 시절에 상당수는 록, 헤비메탈이나 비헐리우드 영화 같은 문화컨텐츠에 고급 비평을 해대기 시작했고, 그런 비평 양식의 퀄리티가 높아지면서 내가 좋아한 영화인데 정작 나는 그 영화의 비평을 독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런 분위기가 대중이 소비하던 하위문화인 '바보상자'(TV) 시간떼우기류로 치부하던 '비디오보기', '음악테입 모으기'를 고상한 중년층의 취미로 격상시킨 느낌마저도 있으니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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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이후부터는 진보 비평이 꽃피던 시절이라 상당히 많은 이들이 진중권식 논쟁의 흐름을 즐겼다. 당연히 나도 그런 논쟁이나 글쓰기에 매료되었고, 한동안은 그 스타일을 체화시키고 싶어했다. 하지만 당시에조차 나는 문화컨텐츠에 그런 냉소적이고 과격한 스타일을 접목시켰을 때 그 자극적인 문체들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매번 내 비평글을 자족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이번 것은 좀 아쉬웠다' 이상의 표현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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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을 넘어 근 10년간 페미니즘이 담론의 여러 영역을 바꿔놓았다. 그 흐름 속에서 이제 조금씩 확신이 드는 건, '칼보다 강한 펜'의 날카로움이라는 비평 스타일도 가부장제 안에서 남성성이 만들어낸 무자비함의 한 단면이 아니겠냐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창조물을 부수고 때리고, 짓밟고 난도질하는 과격함이 물리적이지 않으므로 허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된 남성성의 역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조금씩 과격한 혐오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도 컨텐츠를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매우 풍성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이래저래 배우는 게 많다.
2020/04/20 22:14 2020/04/2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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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이후로 코로나19가 퍼지고 나서, 정말 회사 사람들 외에 거의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내고 있다. 일상은 거의 단조로운 루틴을 따르고 일주일의 5일과 주말 2일의 루틴마저 너무도 닮아간다. 올해 하려고 마음먹은 활동(?)은 1사분기가 끝나가는 지금까지조차 아무 것도 시작한 것이 없지만, 의외로 나는 무료하지 않게 보내고 있다.
어제는 바바와 걷는 동네 산책길을 나섰다가 봄햇살을 맞은 바바와 산책길 색감을 유심히 보았다. 내게 강아지 산책은 의무이자 하루 30분동안을 허비해야 하는 매일의 루틴이다.
장을 보고 식사를 하고 그릇을 치우고, 잠자고 책읽고,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회사를 가는, 새롭지 않은 일련의 '인생허비 활동'에서 나는 차분한 상태로 고정되고 있다. 사실, 나를 고정하고 있고 꽤나 즐기고 있기도 하다.
2020/04/20 22:13 2020/04/20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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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에 속했다. 무언가를 보면 사진을 찍은 듯한 시각적 기억력까진 아니지만 누군가가 했던 이야기의 거의 대부분을 재현할 수 있었다. 서사적 기억이라고 해야 하나. 대화나 스토리는 세세한 내용이라도 특별한 노력 없이 기억해냈다. 나는 그 기억력에 의존한 내기하는 걸 종종 즐기게됐고 거의 매번, 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20대부터 30대 초반 정도가 지나자 마치 신내림이 왔다가 사리지듯 어느 시점에 내 기억력도 사라졌다. 그런데도 한동안 나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그 이후로 한동안은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능력이 한순간 사라지는 게 아니기도 하고 옛 기억은 마치 하드디스크 저장소에 잘 보관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지금 당장 호출할 필요가 없을 뿐이지 그 이야기를 꺼낸다면 나는 정확히 그 서사와 대화들을 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기억력이 희미해진 후로도, 그 한동안 나는 가까운 이들에게 내 기억이 맞다고 지나치게 우기고 때론 화를 내기도 했다. 내 오른손을 건다고 호언장담했다가 오른손이 열번은 잘려나갈 위기에 처했고.. 그렇게 몇번을 더 내기에 진 뒤, 내 기억이 흐려질 수 있고 더 정확하게는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마치 사진 같은 이미지와 토시하나 틀리지 않은 말이라고 믿었던 것들조차 내 뒷통수를 쳤다. 그리고 솔직히 이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라 한동안 패닉상태였던 적이 있을 정도로, 내겐 놀라웠다.

이젠 옛날에 본 대부분의 영화 중간 장면이나 결말조차 기억나지 않는 일이 잦아서 놀랍지는 않게 됐고, 30대 중반부터 기억에 의존했던 업무처리 방식에 너무 많은 구멍이 생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노트에 내 모든 뇌활동을 의존하게 됐다.

오늘 극장에서 재개봉한 <메멘토>를 봤다. (당시에 ‘기억’에 관한 꽤나 철학적인 화두를 던져준 이 영화에 매료되었고 놀란 감독은 이후에도 기억과 언어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본격적으로 만들게 된다.) 메멘토에 열광했지만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한 관계로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 드디어 관람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영화의 일부는 기억나질 않았다.
더 놀라운 몇가지 사실은, 물론 이제는 패닉상태까지는 아니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첫장면의 일부가 나오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고, 영화 속 몇몇 장면들은 사진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가진 그 사진들과는 다른 장면들이 상당히 많았다. 놀란 감독이 나몰래 다시 찍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제는 그 정도로 싸이코는 아닌 연유로, 아직 직장도 다니고 부모노릇도 하는 것 같다.

조금 지나면 이 감정 상태도 기억에서 휘발될 가능성이 높아서 급히 장황하게 끄적여봤다.. 그리고 참고로, 내기에 오른손을 건건 내가 왼손잡이이기 때문이다. 난 꽤 영리한 사람이다.
2020/03/16 21:36 2020/03/16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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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것들을 돌아보고 있다.
1.
컨테이젼, 나아가 인터스텔라에서나 보던 디스토피아의 정서에 물들고 있다. 사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이따금씩 이런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들이 지나가는 게 아니라, 지속되어서 이런 환경에 적응해야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 이게 그냥 일상이라면 나는 삶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게 될까, 가져야 할까.. 이런 생각.

2.
뜬금 없겠지만, 코로나19 사태로 '호텔엔조이'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생각이나 했겠나.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도 당장 월세를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많은 교회들도 교인들의 헌금을 담보로 건물에 월세를 감당하고 있을 것이므로, 한 두번은 주일 예배를 포기할 수 있겠지만 장기화되면 교인돈을 땡겨 은행돈을 막아야 하므로 최대한 온라인 예배 시점을 늦추고 싶을 것이다.

3.
디스토피아와 교회 월세 생각까지 이르다 보니. 기독교 신앙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기독교인이면서 그간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흐름과 이질적인 요즘의 분위기를 경험한다. 사실 밀레니엄 이전의 기독교의 한축은 '선교'였다. 노스트라다무스를 신봉하거나 이단이 아니더라도, 2000년이 오기 전에 예수가 재림하길 갈망하는 교회의 분위기가 분명 존재했다.

3-1.
이런 교회 분위기의 전제는 새하늘과 새땅, 천국, 즉 내세 신앙이 근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교회는, 목사는 주저함없이 이 땅에 미련을 두거나, 재산을 쌓거나, 현세에 즐거움을 취하는 태도를 정죄했고 천국을 기다리고, 재림 예수를 기다리는 신앙을 독려했다. 내 생각에 이른바 '카르페디엠' 철학을 교회가 흡수한 것은 2000년 이후에 '사회참여' 이슈와 헨리나우엔 영성을 거쳐 독특하게 기독교에 들어온 세속적인 성향의 흐름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런 흐름이, 세속적이라는 것 자체가 부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3-2.
사실, 전XX 목사의 망발 중에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떠드는 대목은, 아이러니하게도 다분히 2000년 이전에 빈번했던 기독교적인 언사다. 지금도 몇몇 또라이 목사들만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심판이니, 하나님의 뜻이 있다느니 떠들어대고 있고 그런 이들과 거리를 둔 멀쩡(하게 보이려고 그들을 비판하고 구별된 입장을 견지)한 목사들은 개인 위생, 정치적인 이슈의 경계 등등과 같은 다분히 비종교적 영역, 상식적인 영역, '세속적 영역'의 설교와 언사만을 일삼는다.

4.
아마도 내가 아는 기독교, 2000년 이전의 그 종교성의 틀이라면 코로나19에 대한 신앙적인 언사들이 빈번했을 것이다. 가장 드라마틱한 언사를 가정하자면 신천지를 심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보다 온건하게는 인간의 죄가 땅을 병들게 하고, 동물들을 병들게 하여 이제 심판날이 가까이 왔으니 더 간절히 회개하고 기도하라는 설교가 빈번했을 것이다. 하지만, 별종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기독교 신앙인들은 서로에게도 그런 류의 언사를 자제하는 것 같다.

5.
내가 가장 흥미로워하는 대목은 밀레니엄 이전과 이후의 (한국) 기독교는 분명 불연속적 신앙관이 있는 것 같은데, 그 불연속점에 대한 적절한 설명, 신학, 변론 같은 게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거나 '복음전도 사회참여, 양날개' 등등의 양쪽을 어정쩡하게 긍정하는 움직임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세속적 가치를 부여잡고 '재림예수'라는 단어조차 혐오하면서 문재인 정부와 마스크 얘기만 나누는 기독교는, 정작 그 안에 차별적 종교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신천지나 극우기독교 단체와의 구별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종교성 자체를 제거한 건 아닌가. 혹은 이전과는 다른 길을 발견한걸까. 종종 그런 의문이 든다.

사족.
이건 거의 신앙에 대한 내 독백에 가깝다. 고로, 꽤 끄적이긴 했지만 소셜하게 나눌 거리는 아니라는 말.
2020/03/16 21:32 2020/03/1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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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어른의 칭찬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많다. 누굴 위해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이가 들어도 그 대답에 제대로 답하기가, 우리 모두 쉽지 않다. 마치 칭찬과 인정이 존재이유인 것처럼 살다가 죽을 운명이었던 것처럼.
2018/05/09 21:35 2018/05/0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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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책을 출판하자는 요청을 네 번 정도 받았다.
한 번을 제외하고는 일언지하에 거절한 적은 없었지만
나머지 세번 모두 이러저러한 이유로 흐지부지되곤 했다.
.
책을 쓰고 싶다는 염원(?)이 간절하던 삼십대에는
글로 제대로 '가오'를 잡고 싶었는데 어느덧 이제는 
'가오'로 글을 쓰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
그러고 나니,
글을 쓰고는 싶으나 또 딱히 쓸 필요는 없는
잘 쓸 수도 있을 것 같으나 정작 잘 써지지는 않는 
뭔가 될듯 안 될듯 어정쩡한 상태가 지속되는 느낌이다.
.
쓸모있는 책을 읽고 싶고, 쓸모있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의 바람은 여전히 있는데, 
모래 한 줌을 손 안에 움켜쥐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그런 처지의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다.
2018/05/09 21:35 2018/05/0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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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글쓰는 일보다 몸으로 하는 일을 즐기는 편이다. 짬이 나면 음식을 만들거나 냉장고나 집안 정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혹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간단한 사주를 봐주기도 한다.ㅋㅋ 
전에는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소소한 일거리를 만든다. 그마저도 주객전도가 되어 가벼운 수다나 맛집탐방으로 전락하는데, 나쁘지 않다. 
요즘 가장 큰 문제는 오지랖인 것 같다. 꿈해석이나 사주명리, 직장생활 등 뭔가 '촉'이 와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혼자 너무 나가서 자주 상대에게 불필요한 말까지 하게 된다. 되도록, 나쁘지 않은 수준으로 하루를 보내는 걸 목표로 삼아야되지 싶다. 
너무 글을 안 쓰니 글자 쓰는 법을 까먹을까봐 끄적여본다.
2018/05/07 21:34 2018/05/0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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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성과 여성성'으로 부르면 젠더 논쟁이 될 소지가 있겠지만 '아니마와 아니무스'로 부르건, '음과 양'으로 부르건 간에 일단은 이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에서의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시작해야겠다. 심리학을 공부하다보면 프로이트에서 융으로 넘어갔다가 라깡으로 옮겨가서는 머리에 쥐가 내리도록 지성적으로 파고들게 되는 지점이 있다. 물론 융에게 갔다가 라깡에게 갔다가,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정작 깊이는 없이 방황하는 시간도 길었지만.ㅠ 아무튼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물론 융심리학 배경의 이야기다.

지금도 나는 사회적인 영역에서 페미니즘에 공감하고 필요하면 그런 방향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풀어내고 싶어하지만, 언젠가부터 페북을 포함하여 사적 영역에서 남녀 대립각을 세우는 논쟁 등에는 조금 거리를 두게 되었다. 지금은 시간과 내공 모두 부족하여 섬세하게 풀어낼 자신이 없지만, 우리 각자의 사적인 영역에서 페미니즘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와는 별개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니만큼..)

융은 '온전성', 혹은 '개성화 과정'을 인간 성숙의 척도(궁극적 자기실현)로 보았는데 그 시기는 최소 중년 이후로 보았다. 중년이 되면 어쩔 수 없이 그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념이나 삶의 태도를 고집하면서 돌파할 수 없는 시점이 오는 것 같다. 남성성이 강한 남성, 여성성이 강한 여성들의 경우가 더욱 그러한데, 일례로 퀸카나 여신 같은 여성이 중년 이후에도 여신 같은 모습과 행동을 유지할 수 없게 되거나, 반대로 남성은 힘 빼면 시체인 싸나이 중의 싸나이 혹은 직장에서 추진력 하나로 밀어붙여 성공한 남자가 중년 이후에도 자신의 힘을 내세우거나 부하직원의 감정을 묵살하듯 관계를 지속하려 해도 잘 안 되는 경우가 그렇다. 더욱이 어느 지점에서인가 자신도 지치고 이렇게 계속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자신없음, 우울함, 그에 따른 긴장감마저 생긴다.

융은 오랜 임상 끝에, 남성에게도 무의식적 여성성이 존재하고 여성에게도 무의식적 남성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른바 아니무스와 아니마가 그것이다. 직장에서 화통하고 넉넉한 상사였던 남자가 집에서는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거나 사소한 일로 아내를 닥달하거나, 평소에 싹싹하고 온화한 여성이 부부싸움이 커지거나 논쟁 끝에 주변사람들이 불편해질 정도로 단호하고 냉정하게 말하기도 한다. 자신의 무의식적 속에 있던 남성성, 여성성이 튀어 나오는 것이다.

대체로 우리는 차이에 의해서 자신을 타자와 구분짓는다. 이런 차이가 구별, 차별화를 낳게 되고 그 구별은 대립을 만든다. 남자와 여자의 젠더와 섹스가 적절히 섞인 채로 각자의 스탠스에서 타자를 바라보고,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걸맞는 문화적인 옷을 입는다. 사실 이십대에는 이러한 대립구도와 구별짓기가 자연스럽고 오히려 권장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 하는 영역, 타자가 칭찬하고 잘해내길 원하는 영역에서 최대치를 끌어내고자 노력하는 과정, 훈련의 과정, 습득과 재능 발현의 과정이 분명히 필요하다. 설령 그것이 남성성, 혹은 여성성을 대변하는 경우에도 그렇다. 

하지만 중년 이후부터는 대립으로 치닫는 것으로 충분치 못하다. 내 안의 그림자와도 균형을 이루어야 하겠지만 내 안의 다른 성, 무의식적 남성성, 여성성을 이해하고 친해지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가장 단적으로 연애를 하는 커플이나 부부가 처음에는 상대방에 대한 (이)성적 매력에 의해 관계가 유지되지만, 시간이 흐르면 남녀는 서로의 내면에 존재하는 무의식적 이성, 즉 남자의 여성성과 여자의 남성성을 깊게 대면하는 시점이 온다. 이 시점에서 4명(남성, 남성의 여성성, 여성, 여성의 남성성)은 서로 간의 투사, 그에 따르는 대립과 반사를 멈추고 의식과 무의식적인 조화를 이루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융은 말한다)

중년 이후부터 이성은 서로 '경쟁'하거나 '대립'하거나, 혹은 서로를 '유혹'하는 타자로 보는 것에 한계에 직면하는 것 같다. 또는 강하게 '의존'적인 관계이거나 '주도'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서로 대립을 하는 것과 서로 유혹하는 것은 에너지의 준위상으로는 동일한 상태이다. 반대로 의존과 주도는 성적 불평등의 고착이다.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기 시작해야 한다. 대립각을 세우던 무의식적 이성과 의식적인 조화, 화해를 이루어야 한다. 쉬운 예로 이효리가 더이상 히로인이 아닌 '페밀리가 떴다'의 국민여동생 혹은 민박집 주인의 조화를 추구하는 면이나, 노주현, 이순재 같은 근엄하고 강인한 남성적인 배우들이 시트콤에 나와서 망가지는 모습으로 변신을 하는 것은 무의식의 완충, 혹은 조화로운 방향 추구 노력이기도 하다.

가부장제 속에서 페미니즘의 필요를 체감하고 그 이론의 메타담론적 특성을 경험하긴 했지만, 때때로 이 이론은 나의 중년의 온전성, 음양의 조화로움에 있어서 사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종종 대립적 요소로 작용하는 느낌을 받았다. 내 안의 여성성을 이해하고 화해해야 하는데 젠더적 여성성에 대한 구조적 모순에 천착하게 된다거나 여성 안에 존재하는 남성성을 화해와 조화의 대상이 아닌 주적이나 가부장제의 현현으로 바라보는 상황들이 그러하다. 

아무튼, 체화가 덜 되서 말이 투박하여 담백하게도 못 쓰고 있지만.. 요즘 그런 생각을 하고 산다. 시간이 지나면 좀더 다듬어서 제대로 말해보련다. (흙)
2017/10/07 23:04 2017/10/07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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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원가정을 향한 향수가 있다. 원가정이 좋았냐 나빴냐 깨졌냐 유지되었냐에 상관없이, 원가정의 이상적인 모습에 대한 동경 같은 게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해가 저무는 저녁 보글보글 끓는 찌개소리, 밥그릇과 수저 놓는 소리, 얘들아 밥먹어라 엄마 혹은 아빠의 무심한 톤의 목소리를 들으며 식탁에 오손도손 앉아서 먹는 밥. 대단한 일은 없었지만 건조하게 풀어놓는 하루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어 라고 말하고 일어나는 저녁 식사 자리.

돌이켜보면 내 원가정의 저녁식사 시간이 그렇게 행복했던 건 아니다. 아버지는 자주 없었거나 만취 상태로 들어오면 우릴 깨우지 않고 곱게 잠들길 바랬다. 지친 어머니의 모습, 원망섞인 말들, 사춘기를 지나 점점 모이지 않게된 식사 시간, 결혼 후에는 딸이라고 말하면서도 딸처럼 대하지 않는 며느리, 내 딸 고생시킨다며 속으로 원망하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는 매형. 결혼, 취직을 못 했으면 인생과업을 달성하지 못한 듯한 시선, 시선을 넘어선 무례한 말들. 사실상 원가정의 식사 자리가 즐겁고 행복하다는 건 신기루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가정에 대한 향수를 떨쳐내지 못한다. 차라리 혼자가 좋다고 대충대충 선을 지켜가며 스스로의 심적 공간에 숨어서는 외로움을 넘어선 어떤 결핍의 슬픔에 잠긴다. 선을 넘어 내미는 손들, 영화나 노래 가사에서 그 비슷한 정서를 느낄 때 잠시 그 따뜻함을 머리에, 가슴에, 눈가에, 그리고 내 소중한 세포들에 꼭꼭 심어놓는다.

일상. 지루한 노동, 자식에게 퍼주는 사랑. 삼십대 후반에 느꼈던 지루함과 분노, 무료한 삶의 반복들은 마치 내 인생이 꺾여서 내리막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난 여전히 재밌고 가치있고 찌릿찌릿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무료한 일상, 그것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는 가치가 있겠지만 난 거기에 매몰되어 노잼의 삶으로 인생을 마감하진 않겠다.. 생각했다.

요즘 나는 밥을 한다. 사실 계속 했었다.ㅋㅋ 뽀대 안 나면 재미없어서 칼도 사고 후라이팬도 샀다. 요리를 마치면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요즘 나는 그냥 밥을 한다. 원가정의 향수를 떠올리며 밥을 한다. 보글보글 국 끓는 소리를 듣는다. 그릇과 수저를 놓는 소리를 내며 곧 밥먹으러 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무심하게 밥먹어..라고 말도 해본다. 늦게 오면 핀잔도 주고 의미없는 대화들을 던져보기도 하고. 요즘은 아이의 아재 개그를 듣는다. 원가정의 항수에 빠져있었는데 어느덧 내가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처지가 됐다. 그리고 나는 이 시기가 길지 않음을 알고 있다. 곧 이런 소소한 식사시간은 붕괴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상처입은 듯 향수를 느끼며 다음 단계의 삶을 항할 것이다.

지금은 부산에 간다. 가족이 모여도 우린 각자 이미 독립했고 원가족은 해체되었다. 하지만 우린 오늘 모여서 한두끼의 식사를 할 것이다. 의미없는 말들도 주고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향수를 도발하던 부족한 자리마저 향수가 될 것이다.

그 향수에 미리 머물러 가고 있다, 나는.

2017.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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