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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를 위한 최고의 입문서

/김용주


만화 기독교 강요
존 칼빈 원작, 김종두 글 그림 / 생명의말씀사 / 2005년 12월

저 유명한 존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평생에 한 번은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독교 고전들 가운데 단연 으뜸이라 할 만 하다. 그 방대함에 주눅이 들긴 하겠지만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 교리의 초석이 되는 이 책은 현대의 많은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에게도 큰 도전과 은혜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용의 어려움과 분량인데 번역된 서적도 600페이지에 달하는 정도이니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읽은 평신도라면 이 책을 막 시작하려는 직전의 부담감을 어느 정도는 느낄 법도 하다.

<만화로 보는 세계선교 발달사>의 저자인 김종두 선생의 신간이 나왔다. 이 분이 그려낸 책은 다름아닌 바로 이 <기독교 강요>다. 만화로 그려진 기독교강요라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면 이 책이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사실 나도 어릴 적 신약성경을 각색하여 녹음한 테입과 그림으로 된 책을 읽으면서 자랐고,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그 책은 약간의 어색함과 촌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내 신앙의 배경이 되는 데에 일조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야곱이나 모세의 이야기이면 몰라도 추상적이고 신학적인 내용들로 가득 채워진 기독교강요를 어린이에게 읽힌다는 건 어떤 면에선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니까.

이 얘기는 잠간 접어두고 책 이야기를 다시 해 보자. 이 책의 시작은 곧장 기독교강요의 내용으로 이끌지 않는다. 어쩌면 저자의 의도가 그런 것일 수 있었겠지만, 만화의 시작은 칼빈의 <기독교강요>가 어떤 책인지, 칼빈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2권 중 첫 권 223페이지 가운데 100페이지를 할애하였으니 거의 1/4의 분량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은 저자가 감동을 받은 칼빈의 책에 대한 초대이자 그 내용을 재미있게 혹은 쉽고 명료하게 설명하려 한 시도인 셈이다. 만화라는 필터를 통해 저자가 보여주려는 기독교강요의 매력은 실로 대단하며 이러한 매력적인 책에 대해 저자는 특유의 상상력과 예화들을 동원하여 우리에게 보다 직관적으로 칼빈과 그 값진 책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들고 있다.

본 만화는 2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4권의 기독교강요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교리를 공부하는 데에 있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성에 대한 철학적, 혹은 사색적 접근을 독자의 머리 속에 인식시키는 것이리라. 신학 서적을 접할 때 겪는 이러한 어려움은 적어도 나에게는 매번 존재하는 부분인데 그럴 때마다 나는 자주 이러한 내용을 시각적으로, 혹은 명료하게 표현하거나 전달할 수 있는 도구가 없을까 하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의 탁월함은 만화라는 매개물을 사용한 것 자체에 큰 가치를 둘 수 있겠다. 만화라고는 하지만 교리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 추상적인 이미지의 가시화는 그림이라는 매개물이 효과적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누구가 가질 법한 생각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책은 내가 볼 때에는 내 유년기 때에 추억으로 남아있는 촌스러운 신약성경 이야기처럼 어린이를 대상으로 쓰여진 것은 아닌 듯 하다. 오히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성인경 목사님의 <프란시스 쉐퍼 읽기>란 책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대학 시절 프란시스 쉐퍼는 기독교세계관에 관심이 많던 나에게는 하나의 넘어야 할 산과 같은 존재였으나 그의 전집은 그 분량이나 내용면에서 그 시기의 나를 압도했다. 철학자들부터 시작해서 성경 해석, 문화, 역사... 무엇보다 그 어려운 내용의 전집 분량이 만만치 않았고 나는 한 두 권의 책을 읽고는 쉐퍼의 핵심 메시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 때 가뭄의 단비처럼 만난 책이 성인경 목사님의 쉐퍼 사상 입문서이자 개론서인 <프란시스 쉐퍼 읽기>였다. 그 책은 쉐퍼에 대한, 그의 전집에 대한, 그리고 그의 사상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적당한 분량의 책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쉐퍼 전집이 그렇게 힘든 책이었나 싶지만 그 때에 그런 책이 없었다면 나는 이십대 초반에 기독교세계관의 매력을 파헤치는 데에 주춤하며 멈춰섰을 것이다. 이제와서 그것들을 잃는다고 생각하니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김종두 선생의 만화는 그런 책이다. 기독교강요를 위한 입문서이자 개론서로서 그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만화를 택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정말 유효적절했고 기독교강요를 정말 가장 잘 설명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그러면 이 책은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 아닌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책의 의미를 되새기려면 많은 시간이 걸려서야 가슴판에 새겨질 그런 책이라는 거다. 어쩌면 어린이에게도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시각적인 기억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말이다. 기독교강요를 읽자. 힘들다면 이 책의 도움을 받으라. 그리고 원서의 기억이 희미해질 때 가볍게 다시 꺼내보라. (끝)


작성: 2006. 1. 18.

2006/01/18 18:17 2006/01/18 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