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1.
나는 몇몇 페친들의 글들은 주요 업데이트만 받아보도록 설정해두었다. 내 성격상 친구를 끊는다는 게 참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일이라 친구아닌 상태가 되기 보다는 페친분들의 잦은 포스팅에 잠시 눈을 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2.
이런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이런거다. 어릴 때 사촌형이 웅변학원엘 다녔다. 정신없이 히히덕거리면서 웃다가도 친척 어른들이 "OO야 웅변 한번 해봐"라고 말하면 그 형은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여 이미 외워둔 2분 정도 분량의 글을 힘주어 말했다. 그의 힘있는 목소리는 항상 똑같이 끝났다.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 어른들은 다들 대견한 듯 박수를 보냈다.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라고 들릴 만큼 확신에 찬 강한 어조의 글인데 나 스스로가 도저히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에 나는 그 글들을 보면서 한동안 괴로웠다. 처음엔 댓글을 달아보기도 했지만 워낙 그 주제에 대해 힘차게 외치는 분위기라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페북이라는 플랫폼은 like-centric이지 토론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갠적으로도 스트레스를 풀려고 들어와서 도리어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더.라...
3.
사실 오늘 내가 하고픈 이야기의 핵심은 두번째 이유인데, 무엇보다 타인의 사사로운 행위들을 너무 상습적으로 '까는' 글들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자 불편해졌다. 물론. 매체에서도 개똥녀니 OO녀, OO남 등 기괴한 행동을 하는 이들의 사진을 찍어서 공유하고 종국에는 신상을 털기까지 하는 분위기를 내 주변에서도 느끼는 스릴감이 있긴 한데...
솔직히 나도 뒷담화 많이 깐다. 하지만 페북에서 소소하게 마주하는 불특정 다수의 기이한 행위에 대해서는, 글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입장 바꿔 보자면 이는 내 헛짓거리에 대한 스스로의 변명, 혹은 배려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내가 매순간을 긴장하며 실수 없이 살 수는 없으므로. 누군가에게는 상처주는 말도 하고 길거리에서 타인과 큰 소리로 떠들기도 했을 것이고 타팀의 누군가는 내 전화 한통, 회의 때 말투 하나에도 불편함을 느꼈을 수 있다.
누군가는 그 날(진상짓을 한 날)이 우울증에 허덕여서 걷기조차 힘들었던 날이었을 수 있다. 나를 세게 밀치고 지나간 아저씨는 부모가 급하게 수술실로 들어갔다고 전화를 받고 달려가던 중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극단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때로 우리는 나 답지 않게 짜증에 뚜껑이 열리거나 심하게 피곤하여 어떤 부탁도 거절하는 날이 있다.
4.
한국은 서비스업종의 천국이다. 아니 인구밀도에 있어서 천국이지만 그 때문에 그 업종 종사자에겐 사실상 지옥이다. 요즘 진보언론에서 자주 회자되는 정신노동자, 백화점이나 식당, 텔레마케팅 업무를 보는 많은 이들. 그들이 한달에 대면해야 할 사람들의 수는 몇 명일까.
'나'는 내 딴에는 참 소중하게 다뤄주면 좋을 존재이지만 그런 수많은 '고갱님'을 상대하는 이들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인 이들의 진상 행동을 우리는 굳이 지적질하고 SNS에서 사례집처럼 전파해야만 할까. 고객을 호구로 보는 많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개별 사례들을 모아보면 그들의 노동강도와 급여, 사회적 지위를 돌아볼 수 있다.
택배, 음식 배달, 전화응대, 인터넷 장애 수리 등등 하루에 할당량과 건수로 쪼임을 당하는 이들의 일상에서 그 숫자를 '개별 인격'으로 대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참지 못한다. '그래, 그래도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착하게 살아야지, 기본은 지켜야지, 괴물은 되지 말아야지... 내 상식에 맞춰서 그를 판단한다.
5.
서로가 서로에게 기본은 하라고 요구하지만 그 기본이 서로가 정해놓은 최소한의 자존심을 건드릴 경우 우리는 SNS에서 상대를 까고, 인터넷을 신고를 하고 신상을 털고, 당사자를 '괴물'로 만든다. 때로 나도 누군가에 의해 괴물이 되고 당신도 누군가에 의해 '개새끼'가 된다.
살면서 내가 깨달은 건, 내가 정한 정말 관대한 최소한의 룰을 깨는 다수의 사람들에 대해 매사에 지적질을 하고 그것을 이슈로 삼는 것이 참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한 대로 나도 일년에 수십번 넘게 내가 정한 기준대로 못 살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떤 사람의 - 최소 한 몇 년 간의 발자취가 - 어떤 '악한 방향'으로 계속 달려가는 이들에 대해 우리가 더 자주 이야기하고 문제삼아야 하는 게 아닐지. 쉽게 말해 '검증된 놈'을 까야지 길거리나 가게에서 만난 잘 모르는 사회적 약자들의 사소한 진상짓에다가 감정 해소를 해대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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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언니들은 마음에 준비도 되지 않은 나에게 엄청난 속도와 논리로 보험상품을 설명한다. 어쨌든 그게 그들의 생업이다. 그 사람들의 무례함을 이끄는 힘, 그 냉혹한 사회 구조가 있다... "저기요... 죄송한데요..." 오늘도 나는 웃으며 전화를 끊고자 용쓴다... 페친들은 이런 나를 도와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