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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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나는 내 주변 페친들과 정치성향이 일치한다. 하지만 분명 다른 지점이 있었지만 선거가 끝나기 전까지는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다. 긴 호흡으로 풀어내야 하는 논지일텐데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는 다분히 오해와 감정의 낭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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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흥미롭게 읽은 책은 김욱 교수의 <아주 낯선 상식>과 강준만 교수의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이다. 국민의당에 대한 다수의 생각이 부정적이므로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이야기를 풀어내기 쉽지 않으리라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책을 인용하기 위해 장문의 내용을 타이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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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국민의당에 대해 비판을 하려면 최소한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의 분열을 꽤하면서도 개혁적인 스탠스를 유지했던 유시민 전장관의 레토릭에 대해서도 동일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에 대한 내 개인적인 호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호남'에 대해, '호남의 세속화'에 대해 비판할 수 없는, 나아가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음을 털어놓을 수 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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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야기해도 누군가에겐 어차피 공감받지 못할 내용이라 판단하기에 서민 교수의 서평으로 내 생각을 대신한다. 아울러 김욱 교수의 책의 몇몇 부분을 길게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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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낯선 상식>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챙겨간 건 경향신문에서 이 책에 대한 고종석 선생의 글을 봤기 때문이었다. 거의 ‘올해의 책’이라며 추천을 하셨던데, 정말 그럴 만했다. 유익한 책에 대한 내 기준 중 하나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바꿔주는 책인데, 이 책은 호남정치에 대한 내 알량한 생각을 바꿔 놓았다! 
“(친노로 대변되는) 영남의 개혁세력이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적극적 청산의지도 없이 자신들이 앞장서야만 대권을 잡을 수 있”(187쪽)다며 호남에게 계속 표를 달라고 우기는 것이 현 상황이고, 그게 노무현 대통령의 분당 이후 벌써 십수년째 계속되고 있다면, 호남이 더 이상 ‘개혁성’을 기치로 한 투표를 하는 대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소위 ‘세속적 투표’를 하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이 주장이 이해가 안된다면 그건 내가 설명을 잘 못한 탓이다).
호남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난 호남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었고,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그들의 몰표에 대해서도 탐탁지 않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호남을 빼고는 한국정치를 논할 수 없다는 저자 김욱의 논리에 난 완전히 설득당했다. 이 책 덕분에 난 호남에서 문재인의 지지율이 왜 떨어졌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으며, 지난 재보선 때 새누리 이정현을 뽑은 그들의 선택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 고종석 선생이 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는지도 수긍이 갔고 말이다. 
- 서민 교수(마태우스 서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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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문제는 호남 정치인을 호남과 분리시키는 ‘분리 이데올로기’가 노무현 이데올로기로 변주되어 새정치민주연합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이데올로기란, ‘허구적 지역주의’ 현실 속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대통령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남에서 득표력이 있는 영남후보를 내세워 호남몰표로 뒷받침해야 하고, 그렇게 당선된 영남 대통령은 ‘민주성지 ’ 호남의 정신적 양해 속에서 세속적인 영남을 물질적으로 유혹해 지역주의를 구조적으로 타파해야 한다는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에 입각한 위선적 정치공학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에 지배받는 사람이 바로 친노다. 예컨대 이런 노무현 이데올로기를 지고지선으로 알고 있는 이화여대 교수 조기숙은 “DJ시대로 돌아가자는 건 호남이 영원히 소수가 되는 지역주의 정당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라고 공공연히 호남을 겁박한다. 이런식의 겁박에 주녹든 호남은 기약없이 파괴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동일화’를 전략으로 삼는 새누리당의 영남패권주의 이데올로기와 ‘지역타파’를 내세운 노무현 이데올로기는 쌍생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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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역시 일당독재 상황이지만 박근혜는 대구 달성에서만 4선을 한 뒤 비례대표를 지내고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김영삼은 거제에서 첫 당선된 뒤 부산에서만 7선, 비례대표 1선을 하고 대통령 에 당선됐다. 현재 다음 대선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김무성 또한 부산에서만 무려 5 선을 했다. 반면 김대중의 경우눈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 에서 첫 당선되고 목포에서 2선된 이후에는 비례대표만으로 3선을 하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정동영의 경우는 전주에서 2선을 했는데 대통령 낙선 후 다시 고향출마를 한다는 이유로 이데올로기적 총공세를 당하기도 했다. 다선의원 고향 제거는 새누리당에서도 종종 있는일 이지만 호남의 그것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새누리당의 그것은 수뇌부의 영남패권주의를 위한 지역관리의 차원이지만 호남에서의 그것은 오히려 ‘분리 제거'라는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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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는 대한민국의 욕망이었다. 물론 광주의 욕망도 그 안에 있었다. 하지만 광주학살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전두환과 그 일당에 무감각해진 채. 그들이 만든 정당을 지지하며 이제 대 한민국이 민주화됐다고 믿는 사람들과 광주는 화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원 없이 실현해가고 있을 때, 광주는 한마음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거두고 그들과 수십 년간을 정치적으로 척지며 살 수밖에 없었다. 광주는 그것이 아직 오지 않은 진짜 민주주의를 실현히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광주는 고립되었고, 욕망은 거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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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에게 몰표를 던져 대통령까지 만들었을 때도 자신들은 단순한 지역적 욕망이 아닌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한다는 명분을 찾았다. 그래서 그 유명한 노무현의 발언 "호남 사람들이 니를 위해서 찍었나요. 이회창이 보기 싫어 이회창 안 찍으려고 니를 찍은 거지"라는 말은 그만큼 큰 상처가 됐다. 호남은 가장 현실적이어야 할 투표행위에서까지 거리낌 없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대신 어떤 의무감 속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히는 것이다... "‘전략적 선택’이라는 용어를 해체시키지 않고서는 광주는 순정한 ‘몰빵’을 하고도 두려움과 슬픔에 온몸이 우는 서러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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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흔들리고 있다. 욕망을 거세당한 채 ‘신성 광주’를 믿고 살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잃어버린 욕망을 찾아 ‘세속 광주’를 회복해야 하는는가? 예수나 부처가 아닌 인간들이 살아가는 도시인 광주는, 호남은 유사 이래 존재했던 다른 모든 세속 도시들처럼 욕망을 표출하며 살아갈 권리가 없는 것인가? 그렇게 똑같이 살면 다른 지역민들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니지만 호남만은 죄를 짓는 것인가?
기억 속의 ‘신성 광주’에 대한 그런 찬양이야말로 ‘세속 광주’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의 호남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란 점도 자명하다. 물론 그 압박감을 이용하려는 정치세력에겐 ‘신성 광주’야말로 더 없이 훌륭한 세속적 욕망의 온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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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건 타의건 5 '18은 굉주가 욕망을 거세당한 근원이다. 나는 욕망을 거세당한 광주가 그 욕망을 다시 찾기를 바란다 “허기를 느끼며 음직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에 더 이상 치욕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광주가 욕망만으로 살기를 원하는 건 아니지만 욕망 없이 살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호남은 할만큼 했다. 죽은 사람들만큼은 아니라도 산사람들로서는 할 만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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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과정 속에서 발현된 것만을 따져도 그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김대중과 김영삼의 연대-분열은 가장 유명하다. 3당합당 이후에도 계속된 김대중과 (3당합당을 거부한 1990년, 새정치국민회의를 거부한 1995년) 꼬마민주당의 연대 ·분열, 노무현의 집권 이후 벌어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연대 분열, 그리고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노와 친노의 연대·분열, 이 현상은 결코 우연한 내분이 아니다. 이는 수십 년간의 뿌리 깊은 족보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사의 숙명적 연대·분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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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남 친노세력은 영남권 지지를 토대로 극우 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새누리당을 거부한 정치인들이다. 반면 호남세력은 극우까지는 아니어도 성향상 상당히 보수적인 정치인들부터 개혁적인 정치인들까지를 모두 망라한다. 따라서 그 이미지가 영남 친노세력보다는 다소 보수적인 느낌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단지 이런 느낌을 가지고 친노/비노의 분열을 무슨 진보/보수의 분열처럼 포장하는건 의도를 가진 대중적 이미지 조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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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하면 진다’는 겁박이 통하려면 최소한 ‘분열히지 않으면 이긴다’는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승리를 통해 분열하지 않은 세속적 대가를 얻을 수 있아야만 한다. 위선 떨지 않고 밀한다면 호남이라는 지역단위로 투표했으므로 호남도(영남이 수십 년을 악착같이 그랬던 것처럼) 지역(출신) 단위의 대가를 얻을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분열하면 진다’는 주장은 문자 그대로 한낱 부질없고 비겁하고 위선적인 겁박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면, 즉 ’분열하면 진다’는 주장이 ‘호남은 세속적 이익과 무관하게 지역단위 전체가 새누리당이라는 절대악에 맞서야 할 의무로만 새정치민주연합에 투표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그 주장은 호남의 욕망을 거세하는 부도덕한 정치적 선전구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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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기간 때, 영남사람 노무현이 보기에 “호남-충청-강원지역 이 연대해서 영남지역을 포위하면 이길 수 있다는 지역 분열구도"(충청의 이인제 후보에 대한 호남의 권노갑 지원)는 “민주당의 자기정체성을 부정하는” 악이었다. 그리고 2007년엔 호남 정치인이 출마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기지 못”한다고 강변한다. 그의 정동영에 대한 태도를 보면 심지어는 호남정치인이 출마해 동서대결 자체가 되는 것조차 싫어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대한민국 정치는 딩연히 (친)영남후보가 나설 수밖에 없는 한나라당과 역시 영남후보가 나서야만 하는 열린우리당의 양대산맥이 되어야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노무현식 선진적 지역주의 해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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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은 김대중에게 어느 한때 잠시 몰표를 던진 것이 아니다. 호남은 그가 출마한 1987년 대선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는 1997년 대선까지 3번의 대선과 3번의 총선에서 상상을 초월히는 몰표를 던졌다. 이 몰표에 대한민국은 기가 질렸다. 1980년 광주학살 이후 1997년 대선 승리 때까지 영남패권주의 대한민국에서 호남을 대변하는 김대중이 받은 정계은퇴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호남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히는가. 영남의 비새누리당세력, 개혁·진보세력, 여타 잡다한 모든 정치세력들이 호남을 대변하려는 정치적 욕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통합추진회의 노무현이 ‘양비론(3김청산론)'을 앞세워 김대중을 제거하는 전략을 포기하고 ‘김대중당’에 참여하는 굴복을 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한마디로 김대중을 제거하려는 세력에 대해 호님은 ‘우리는 김대중이 죽을 때까지 김대중을 몰표로 지지할 테니까 당신들이 우리와 함께 하든지 말든지 선택하라’고 요구한 셈이었다. 유사 이래 최초의 반영남 패권주의 정권교체는 그렇게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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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때마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행사지만, 정동영의 사례는 자못 상징적이다. 정동영은 1996년(15대)과 2000년(16대)에 전주 덕진구에서 재선된다. 그는 2004년(17대) 총선 때는 전주 지역구에 출마하지 못하고 비례대표 후보가 되지만 이른바 ‘노인펌훼’ 발언으로 사퇴한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은 민주당 출범 뒤인 2008년에 전주가 아닌 서울 동작을에 출마할 수밖에 없었고, 낙선한다. 2009년 4월 재보궐선거 때는 전주에 출마하려 하지만 불출마 압박을 받는다. 그는 탈당해 전주 덕진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지만 2010년 2월에서야 겨우 복당을 허락받는다. 그는 2012년(19대)에 역시 호남지역구에서 축출돼 강남을에 출마했지만 낙선한다. 한마디로 그는 세계 정치사에 유래를 찾기 힘든 ‘호남출신 중진의원은 호남지역에 출마하면 안 된다’는 반민주적 이데올로기의 흔하디 흔한 희생양 중 한명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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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민주당과의 법통을 끊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함으로써 영남에 분명한 매시지를 보냈다. 열린우리당은 호남당이 아니니 지지해달라는 것이었다. 신기남은 "호남 소외론이 더 확산되고, 구주류가 신주류를 더 공격해야 한다. 호남쪽이 흔들흔들해야 영남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다'"고까지 노골적으로 발언했다. 그는 나중에 이 벌언에 대해 호남표 줄어들까봐 전전긍긍히는 분들도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런 분들에게 한 말이었다"고 명확히 설명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선대본부장을 맡은 그는 심지어 “민주당이 호남에서 지분을 가지길 개인적으로 바란다”면서 “그것이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에 맞다”고 주장하는 등 선거역사상 남의 당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는 초유의 선거본부장 역할까지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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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열린우리당 이데올로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열린우리당을 통한 지역문제 해결은 난관에 부딫힌 셈이었다. 열린우리당의 실패가 감지되자 열린우리당 정치인들은 현실적 대안을 내놓기 시작한다. 민주당과의 합당이었다. 부질없는 시도를 끝내고 합당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분열 을 막고 득표력을 키울 것이라는 극히 이해타산적 인 생각이었다. 그런데 2006년 5월 지방선거 당시 문재인은 민주당과의 합당을 절대 반대하는 노무현의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한 바 있다... 노무현의 그 의지는 완전히 방향을 잃고 표류하다 흔적도 없이 좌초했다. 한데 아이러니한 것은 현재 문재인 등 친노세력은 어쨌든 그런 노무현의 신념을 이어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이어받기는커녕 호남에서 정당간 경쟁을 시도하려는 말만 나와도 그들은 기를 쓰고 분열이라고 외치거나 호남당을 만들 생각이냐며 매도한다... 난 이제 호남이 반드시 복수정당제를 쟁취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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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단언컨대 김대중(지지자)과 노무현(지지자)의 이념은 근원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즉 명 백히 ‘김대중 정신'과 '노무현 정신’은 같지 않다고 본다. 우선 김대중은 ‘ 영남패권주의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반영남패권주의 지역연대인 DJP 연대를 통해 집권했다. 반면 노무현은 ‘영남패권주의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실제론 실망스러웠지만) 영남의 표를 확장시켜 당선되기를 원했다. 당선 후 김대중은 자신의 약한 지역적 지지기반을 보완하기 위해 민주당을 기반으로 영남에 많은 정치적 지분을 할애했다. 반면 노무현은 자신을 공천해 준 민주당의 법통을 끊고 열린우리당을 창딩해 영남의 지지를 받으려 했다. 김대중은 야당인 한나라당과 타협적이었을 망정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주는 차원의 대연정 같은 제안을 하지 않았다. 반면 노무현은 한나라당의 역사적 정당성을 공인하고 정권을 내주는 차원의 대연정을 제안하며 한나라당과의 ‘양대산맥’을 지향했다. ‘햇볕정책’ 때문에 김대중은 노무현에 반대하는 집회를 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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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욱 <아주 낯선 상식> 중에서
2016/04/16 14:43 2016/04/1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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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권을 꼽아 보았습니다.
예전엔 평을 길게 썼는데, 
다... 의미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걍 땡기면 읽으시길.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며. (제이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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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 - 비비안 마이어
: 그녀의 사진, 그 무게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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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무의식의 방 - 김서영
: 15년에 김서영 교수를 알게된 건 큰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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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중섭 편지 - 이중섭
: 이중섭의 편지 사이사이에 그의 부성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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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진격의 대학교 - 오찬호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이후 진격의 저자, 오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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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 다니엘 튜더
: 익숙하지만 미세하게 낯선 이방인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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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프로이트 패러다임- 맹정현
: 프로이트의 내러티브적 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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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전복과 반전의 순간 - 강헌
: 무려 강헌 선생이 책을 쓰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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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기적 섹스 - 은하선 
: '그놈'의 섹스만 이야기하는 세상에서 주옥같은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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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담론- 신영복
: '신영복 선생의 마지막 책'이 아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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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메시지 완역본 - 유진 피터슨
: 올해 손꼽는 신앙서적. 올해 성경 '대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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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어쩌다 한국은 - 박성호
: 물뚝심송님의, 간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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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페이스북 심리학 - 수재나 플로레스
: 이건 페친을 위한 보너스. 중독증세가 있으면 가볍게 일독을.
2015/12/31 22:52 2015/12/3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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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읽기의 특이점은.
생각보다 엄청난 양의 책을 샀으나
끝까지 읽은 책은 생각보다 아주 적더라는 점.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책을 많이 안 읽었으리라는 예상은 했지만
한번 잡은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은 건 내 평소의 
독서 습관에 비추어 보면 꽤 낯선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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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책에 대한 기대, 맹신, 집착 그런 게 없어졌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
단적으로 책에는 좋은 말들이 가득하고, 저자들은
정말 기똥찬 아이디어가 넘치고 지식의 깊이가 헤아릴 수 없으나
... 정작 레알 월드에서는 그닥 '쓸모'가 없더라는 편견이
해를 더해갈수록 나를 누르고 있다.
물론 그 '쓸모'라는 표현이 책읽기가 어떤 효용성이나 실용성을 
함의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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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뭐야, 결국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변죽을 울리고 500페이지나 넘게 주절거린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서문에 혹하여 책을 읽다가 초반을 축지(독)법으로
넘기고 중반에 잠시 홀렸다가는 후반으로 가면서 흐지부지 책을
덮게 되는 경우가, 올해는 꽤나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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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게을러진건지도 모르겠지만.
언제부터 독서의 매력이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게 된건지.
정직하게 말하자면 책읽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드는 
낯선 경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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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올해의 책 10권 정도를 고르려고 구매한 책과 읽은 책을 
정리하다보니 추천할 10권을 고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2-30권 내외의 책들을 놓고 혼자 선별하느라 
애를 먹으며, 그또한 즐거워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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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예전에 비해 글쓰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이랄까
환상, 아우라 같은 게 사라진 것 같다.
TED, 팟캐스트, 세바시, SNS, 허핑턴 찌라시 등, 수많은 독립 매체들을 통해
수많은 컨텐츠가 쏟아지면서 글쟁이 고유의 정보력, 분석력, '덕후'력이
더 이상 '수퍼히어로'들만 가진 능력으로 보이지 않게 됐다.
(솔직히 집에서 쓱싹쓱싹, 갑자기 뙇! 가구를 만들어내는 아내가 더 경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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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요즘은 그런 글이 더 눈에 들어온다.
대단치 않더라도 개인이 직접 경험한 독특한 이야기, 가감없는 실패담,
글보다는 사람 자체에 더 호감이 가는 글,
그것도 아니면 희귀한 자료들을 오랜시간 추적하여 잘 정리한 글들이 좋다.
무엇보다 글뒤로 숨지 않고 정직하게 가감없이 자기를 드러낸 저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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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내년에는 책에 대한 애정이 더 떨어질 것 같다.
하지만 책은 여전히 가까이 두고, 많이 사고 적절하게 읽을 것이다.
여전히 난 자신의 짧은 삶의 궤적과 경험이 전부인 양,
간접 경험과 삶의 다양성을 견지할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해버리는 부류를
다분히 경계한다.
하지만 그녀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첫사랑의 기억이
점점 무의미해지는 것처럼 책에 대한 나의 맹신, 추종도 
그렇게 옅어지고 흐려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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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을 고르다가 문득 이런저런 잡생각을 끄적여본다..
2015/12/30 22:06 2015/12/30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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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도 한 마디를 해야 할 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
제목과 목차, 그리고 간단한 소개글로 접한 이 책에 대해서 나는 충분히 공감했다. 그저, 책을 읽자 그 감흥이 사라졌을 뿐이다. 이 책은 좋은 책이었나, 아니다. 그럼 이 책은 나쁜 책이었다, 그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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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에 공감한 주된 논조는 다수의 직장인들이 자기 직장을 '필요악'으로 대한다는 사실이다. 직장에 대한 애정, 직종, 자기 업무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이 보다 더 윤리적이고, 더 의식있고 더 나은 인간인 것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 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찌든 존재가 아니야', '지금은 잠시 이 하찮은 일에 매몰되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이 일과는 매칭되지 않는 순결한 인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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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가 몇 가지의 지적을 한다. 입사 첫날부터 진급(사장)을 목표로 질주했어야 했다, 회사의 색깔에 물들었어야 했다, 사내 인간관게에 관심을 가졌어야 했다, 싫어하는 상사에게도 다정했어야 했다, 창의적이기보다는 성실했어야 했다...고. 나또한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특히 예전처럼 졸업 후에 2개의 기업 중 하나를 골라가던 시절을 지나 1개의 기업에 2명의 구직자가 몰리는 구도에서 그 안일하고도 편안한 자세는 '조만간 나를 잘라라'라는 메시지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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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류의 글이나 논조를 읽고는 "그럼 나를 없애고, 회사의 개가 되란 말이냐"라는 심경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나도 그런 류에 가까울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몇몇 지적이 곧바로 '회사의 개'라는 인식으로 급전환되는 불편한 우리의 속내를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왜 직장생활에 대한 적절한 지적을 여지도 없이 묵살하려 드는건지, 내가 직장에서 정말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찬찬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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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후회에 동의되지 않는 지점도 있다. 저자는 자신의 직장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를 가진 채 너무 오랫동안 머물렀다. 직장이라는 게 지금은 어정쩡하게 주저앉은 것처럼 보여도 내 시간의 대부분을, 내 청춘의 대부분을 내어주는 공간이다. 일상 시간과 노력의 대부분을 투자하는 직장에서 진급도, 애정도, 미래도 발견할 마음이 없다면,
어서 저자의 조언대로 '생각'을 바꾸거나, 어서 자신의 마음과 행동이 (더) 일치하는 직장으로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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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와닿았던 지점은 '18년'이란 단어 자체였다. 여차 하면 그대로 갈 것 같은 시간. 7년이 지나면 곧올 직장생활 18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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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저자의 필력도 아쉬운 부분. 읽다보면 왠지 아버지나 회사 선배의 꾸중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하지만 그건 좋은 신호다. 가식이나 포장없이 순수한 사람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니까.


2015/10/02 22:26 2015/10/02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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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리스트.(2007~2009년)

분교음악회, 숲이 된 122개의 추억/ 예민 지음 / 샘터사
: 가수 예민의 책. 따뜻함이란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일 것.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지음/ 부키
: 경제학에 있어 내게 새로운 관점을 부여한 장하준 교수의 책. 이후 그의 책을 대부분 공굼하며 읽었다. 그에게 빚진 부분이 많다.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하워드 진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하워드 진과 노암 촘스키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 했으므로 생략하고. 그의 미국사 저서들이 부담스럽다면 이 책이 개론서가 될 것.

에드워드 호퍼/ 롤프 귄터 레너 지음/ 마로니에북스
: 내가 좋아하는 거의 유일한 현대미술가.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스탠리 하우어워스 지음/ 복있는사람
: 현대 기독교 복음주의권의 이슈에 있어 그에게 많은 통찰을 얻었다. 얇지만 깊이 묵상할 책. 

회심/ 짐 월리스 지음 / IVP
: 미국 복음주의에 희망이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짐 월리스'라고 대답할 것.

과학의 지형도/ 고인석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 과학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계기는 고인석 교수의 강의를 통해서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가 나의 과학철학 스승인 셈.

다윈의 식탁/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진화론'사'에 대해 알고 싶다면 단연 장대익 교수의 이 책을 권한다.  

아이의 사생활/ EBS 아이의 사생활 제작팀 지음 / 지식채널
: 언젠가 말한 것처럼. 어줍잖게 철학책 수십권을 읽는 것보다 이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이 인간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 말이 불편하다면 '어줍잖게'에 방점을 찍기를.

뉴욕의사의 백신 영어/ 고수민 지음 / 은행나무
: 사실상 내 영어공부는 이 책과 함께 마무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어를 여전히 공부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길.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는다. 한 개인에게 부여된 무거운 짐에 대해 어느정도의 고마움과 감사, 경의를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관계중심 시간경영/ 황병구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시간관리의 3대 서적으로 나는 7habit과 GTD, 그리고 황병구의 '관계중심 시간경영'을 꼽고 싶다. 

20세기 우리 역사/ 강만길 지음 / 창비
: 한국 현대사를 다시 정리하게 만든 분은 단연 강만길 선생이다. 그의 책은 마치 <매트릭스>에서 빨간약을 먹은 것 같은 충격을 가져다줬다. 그 분의 책 중 입문서로는 이 책이 적절하다.

미국사 산책/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왠 미국사? 게다가 17권이 웬말이냐 라고 말한다면 한국은 미국의 짝퉁이기 때문이다 라고 답해야 할 것 같다. 특히 당신이 개신교인이라면 더더욱. 
2015/02/21 18:54 2015/02/2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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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책 열권을 추천하는 릴레이도 간간이 봤는데 지명이 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책 추천에는 더이상 관심이 없던 터라 흘려 읽었는데, 오늘 누군가의 담벼락에 올라온 제목이 '내 삶에 영향을 준 책 10권'이었고 그 맥락에서 갑자기 혼자 2-30대를 회상하다가 삘 받아서 셀프 릴레이를 해본다. (여기엔 약간의 알코홀과 루시드폴 옵바의 조분조분한 방송의 자극 때문인 듯도 하다.)
솔직히 나는 뽀대나는 책들을 추천하고 싶지만, 20대, 30대의 한 시점에 나를 지배했던 혹은 방향을 흔들었던 책은 따로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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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리스트(1): 2002~2006년

사람의 아들 - 이문열
:스무살 같은 시기에 읽은 책. 비교종교학이나 고등비평에 대한 지적인 의심을 갖게 만든 책.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 고든 맥도날드(IVP)
: 스무살에 읽은 책. 한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세례요한의 정체성, 즉 메시야를 지명하고는 군중의 환호를 뒤로 한 채 사라져가야 했던 한 인간의 내면을 통해 내 신앙을 돌아본 계기가 된 책.

현대의 과학철학 - 앨런 차머스(서광사)
: 2000년 이후 내 이성의 한 축이 되어준 과학철학의 개론서. 흐름을 이해하는데 손색이 없는 책.

단행본 인물과사상 - 강준만(개마고원)
: 내 지적 여정의 시작점에는 강준만 선생이 있었다. 여전히 강준만주의자라 불려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그에게 받은 영향은 여전히 크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1~3 - 강준만(인물과사상)
: 강만길 선생으로부터 시작된 현대사에 대한 고민을 정점으로 이끈 책. 특히 80년대사는 고통스러운 독서의 과정이었다. 

나무야 나무야 - 신영복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더불어 이십대 내 삶의 지향점을 바꾼 책. 

소유의 종말 - 제레미 리프킨(민음사)
: IT기술들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직관적인 감각을 키운 책. 지금 생각해봐도 탁월한 관점을 제시한 책.

평신도 신학1~3 - 송인규(홍성사)
: 내 신앙의 기본기는 송인규 목사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내 신앙의 색깔을 규정짓고 확장을 가능케한 책.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 K.T.판(서광사)
: 과학철학의 제네시스는 비트겐슈타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얇지만 어느 입문서보다 알차다.

세계 사진사 32장면(1826-1955) - 최봉림(디자인하우스)
: 현대미술에서 사진의 역사로 넘어가는 시기에 회자되던 사진학 입문서로 최적. 특히 이론보다는 32장면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최봉림 선생의 내공을 가늠할 수 있는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미치 엘봄(세종서적)
: 너무나 널리 알려져서 한때 냉소의 대상이 되기도 한 책.(심슨가족에서도 에피소드로 다뤄지기도 했다) 신영복 교수의 삶의 전환기에 어떤 교과서였다면 미치 엘봄의 책은 내러티브 속에서 다시한번 경각심을 얻게 되었다고.

춤추는 죽음1,2 - 진중권(세종서적)
: 텍스트 해체와 독설로 유명했던 진중권 교수를 입체적으로 보게만든 책. 더불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과 더불어 '죽음'을 돌아보게된 책.

사진에 관하여 - 수잔 손택(이후)
: 사진예술에 대한 관점을 얻기 위해 잡았다가 수잔 손택이라는 여성작가에 깊게 빠져들게 만든 책. 가장 좋아하는 구절도 이 책에 실려있다. "고통을 받는다는 것과 고통의 이미지가 찍힌 사진을 보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고통의 이미지가 찍힌 사진을 본다고 해서 양심이나 인정을 베풀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더 망가져 버릴 수도 있다." 지금도 애장서 중 하나.

모험으로 사는 인생 - 폴 투르니에(IVP)
: 내 삶의 방향성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저자. 그의 책 모두는 내겐 바이블이기도 했다.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 - 실벵 다르니(마고북스)
유쾌한 이노베이션 - 톰 켈리 외(세종서적)
: 직장생활 초기에 끝없는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도록 도와준 책. 

재즈처럼 하나님은 - 도널드 밀러(복있는사람)
: 필립 얀시와 더불어 내겐 이름만 보고 책을 사는 저자 중 하나. 제목과 더불어 이 책과 조우한 당시의 행복감이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 스티븐 코비
: 갓 서른 나이에 내 손에 들려진 프랭클린 플래너. 이후 나는 프랭클린 플래너를 사랑한 만큼 스티븐 코비의 책을 즐겼던 것 같다. 당시에 익숙치 않은 회사생활, 일정관리, 업무에 따라 우왕좌왕했던 어설픔을 어서 빨리 해소하고 싶었던 만큼 어떤 원리, 방식에 갈급했다. 자기계발서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요즘이지만 난 지금도 스티븐 코비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하나더. 내가 다이어리 덕후가 된 계기의 책.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드니 로베르, 노암 촘스키(시대의창)
: 노암 촘스키와 하워드 진의 책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점의 전복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 책이 내겐 그 입문서였다. 

아직도 가야할 길 - M. 스콧펙(열음사)
: 스콧펙 박사의 책은 이미 교과서가 되어버려서 설명이 필요없을 듯.

순전한 기독교 - C. S. 루이스(홍성사)
: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출간한 <내가 믿는 기독교>라는 책으로 처음 접한 이 책은 모태신앙에 가까운 내게 있어 기독교에 관한 편견들을 모두 허무는 역할을 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 필립 얀시(IVP)
: 한때 너무 유명해서 더 좋아하지 않았던 책. 복음주의권 최고의 글쟁이라고 생각하는 필립 얀시의 책.

예수 - 톰 라이트(살림)
: 한때 '핫'했던 톰 라이트의 '내공 맛보기'로 적격인 책. BBC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된 본서는 비교적 가볍게 사복음서의 예수의 흔적을 따라갈 수 있다.

스티브잡스의 프리젠테이션 - 김경태(멘토르)
: 아이폰이 나오기도 전, 그의 프리젠테이션에 먼저 매혹되었다. 키노트의 정석.

평화의 얼굴 - 김두식(교양인)
: 김두식 교수님이 비교적 덜 유명하던 시기에 스펀지가 잉크를 빨아들이듯 읽은 책. 서평으로도 인연이 있는 책.

스노우캣 다이어리 - 권윤주
: 내 30대의 귀차니즘은... 스노우캣으로부터 기인했다고 본다.

남자 vs. 남자 - 정혜신(개마고원)
: 김어준, 강준만, 유시민, 정동영, 이외수 등 당시 진보진영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읽었다가 본격적으로 정혜신빠가 되었다. 이를테면 내겐 <정혜신빠 비긴즈> 도서.


2015. 2. 19. 업데이트.
2015/02/19 20:25 2015/02/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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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 댓글만 받고 공유를 못했네요.
<나만의 올해의 책 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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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모린 머독, 여성 영웅의 탄생
한강, 소년이 온다
도날드 밀러, 아버지의 빈자리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고종석, 문장
새사연, 분노의 숫자
양희송,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김애란 외, 눈먼 자들의 국가
남무성, Paint it rock 3
고혜경, 나의 꿈 사용법
윤태영, 기록
아라카와 히로무, 만화 은수저
빈스 플린, 스릴러 소설 제거명령
마이클 코넬리, 스릴러 소설 혼돈의 도시
크리스틴 폴, 공동체로 산다는 것
와타나베 이타루,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용윤선, 울기 좋은 방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피터 드러커, 비영리 단체의 경영
장회익, 공부도둑
정지훈,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14. 12. 24.
2015/01/02 11:28 2015/01/0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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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관점에 매혹되면서도 몇가지의 풀리지 않는 논리적인 지점들이 있었다. 먼저는 구성주의적 관점, 즉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가부장제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전제가 생물학적 여성성, 특히 뇌과학의 발전에 따라 최근 많이 제기되고 있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와 양립될 수 없다는 입장이 그것이다. 두번째로는 여성 자체가 페미니즘에 무관심하거나 운동 자체에 적대적이기도 하더라는 점.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말이 이를 잘 대변한다. 마지막으로 젠더적 관점이 아니라 섹슈얼리티에 있어서의 여성에 대한 불편한 지점, 이를테면 본인의 욕망 때문이 아니라 타자(남성 혹은 가부장적 권위자)와의 관계의 유지를 위한 성적 '허락'이 대표적인 사례다.

무늬만 혹은 사이비 페미니스트로 행세하면서도 몇몇 퍼즐들은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있었는데 최근 생각들이 조금은 정리가 되었다. 지난 주말부터 읽기 시작한 모린 머독의 <여성 영웅의 탄생>의 도움이 컸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많은 딸들에게도 권하고 싶을 정도로 내면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딸과 아버지, 딸과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안의 남성성에 대한 갈등과 왜곡을 잘 드러냈다는 측면에서 개인적으로는 한동안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고서도 풀리지 않던 몇몇 매듭들이 풀리는 느낌마저 받았다. 소화가 다 되면 언젠가는 썰을...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아래는 몇몇 인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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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딸이 한 개인으로 독립하고 성공하는 것을 지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많은 딸들이 어머니와 거리를 둔다... 불행하게도 이 현상은 보편적인 주제이다. "자라면서 자아 발달과 성장에 방해를 받은 어머니는 딸의 능력을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할 수 있다. 아니면 반대로 아이의 성공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려고 자신의 딸에게 '특별한' 아이나 '천재적인' 아이가 되라고 부추길 수 있다." 많은 아이들이 "나처럼 살지마라. 그렇지만 나처럼 살아라." 혹은 "성공해라. 하지만 너무 성공해서는 안 된다." 같은 모순되고 양가적인 메시지를 딸들에게 보낸다. 여성이 남성성을 선호하고 여성성을 거부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남성성이 자신의 독립과 성공을 가치있게 평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난 항상 어머니가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슬픔의 원인을 아버지라고 진단하는 마거릿의 말에 깜짝 놀랐다. 동화 속 여주인공들에게 하나같이 반복되는 오랜 주제처럼 나는 어머니를 악당이라 생각했고 아버지가 나를 구해주기를 바랐다. 나는 아버지를 우상화했고 구원자로 보았다. 나는 왕자님이 와주기를 기다리는 예쁘고 똑똑한 딸의 역할을 잘 해냈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코 나를 구해내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중요한 일을 하려고 나와 어머니를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아버지의 인정과 관심을 받으려면 어떤 게임을 해야 하는지를 일찍부터 배운다. 그들은 똑똑한 척, 귀여운 척, 수줍은 척, 유혹하는 척한다. 침실 안에서건 밖에서건 아빠에게 중요한 건 힘과 권위다. 여자아이가 함께 시시덕거리는 첫번째 남자는 아빠이다. 아빠가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딸의 성적인 발달에 결정적이다. 아버지의 따뜻함, 장난스러움, 사랑은 여자아이의 건강한 성에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에게 일차적으로 중요한 사랑의 대상은 계속 최초의 애착대상인 어머니일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지배욕, 소유욕, 비판은 여자아이의 이성애적 발달을 훼손하고 파괴한다.

어린 딸의 성을 보호하는 보호자로서 자연스러운 역할을 무시하거나 남성적 지배욕 때문에 근친상간으로 딸의 정상적인 성적발달을 침해하는 아버지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딸은 여성으로서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성을 회복하는 일에 나머지 인생을 쏟게 될 것이다. 어떤 여자아이들은 아빠 주변에서 너무 똑똑하게 굴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배운다. 여자아이들은 조롱과 비판을 받거나, 인정받지 못하거나, 신체적 학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의 야망을 잊고 자신들의 보스를 멋져보이게 만드는 여성이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일어난 일에 대해 그저 수동적이고 냉소적으로 씁쓸해할 뿐이다.

우리사회는 남자아이들이 자율성을 갖도록 지지하는 것만큼 여자아이들을 지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자아이들에게는 부모와 가족과 의존적인 관계를 계속 이어가도록 강요하며 결혼 후에는 남편과 아이들에게로 의존적 관계가 옮겨 가도록 조장한다" 여성들은 다른 사람의 의존 욕구를 배려하도록 요구받고 미리 알아차리도록 어릴 때부터 훈련받는다... 어떤 여성들은 배우자의 자아를 강화하거나 배우자를 보호하느라 의존적으로 행동한다. 남편이 강해지려면 아내가 약해야만 한다는 암묵적인 관계의 법칙이 있다. 이 신화는 한쪽이 자신을 약화시키면 배우자가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2014/06/20 20:47 2014/06/20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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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체로 내 신앙의 색깔이나 정치 성향, 개인적 기호 등을 미리 이야기하는 것이, 상대방과의 소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해서, 미리 고백하건대 나는 도널드 밀러 '빠'다. 복음주의권에서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글쟁이들이 많겠지만 그중 개인적으로는 필립 얀시의 글을 가장 좋아하고 그 다음으로는 도널드 밀러를 꼽는다. 제목부터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책, <재즈처럼 하나님은>으로 시작해서 쏟아지기 시작한 그의 책들은, 국내에 번역서가 나올 때마다 마치 유명 맛집을 찾아내서는 요리들을 '흡입'하듯 서점에서 사자마자 단숨에 읽어치우곤 했다.

본서도 예외없이 출간하자마자 집어들었다. 사실 이 책은 5년 전에 나온 <하나님의 빈자리: To Own a Dragon>의 개정판이라 상당 부분이 어디선가 읽은 듯한 내용이었지만, 5년만에 다시 읽은 이 책은 마치 '5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듯 그 느낌도 과거와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5년 전의 나는 아직 충분히 아빠의 위치에 있지 않았고 지금은 어느 정도의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6살난 아이의 아빠가 되었기 때문이었달까, 아니면 그 긴 시간 동안 시나브로 내가 세상을, 공동체를, 인간관계 자체를 바라보는 어떤 틀이 바뀌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이 책을 읽는 느낌은 많이 달랐다. 조금 무거웠다고 해야 할까.

대체로 나는 그의 책 특유의 색깔을 좋아한다. 수식어를 장황하게 나열하자면, 그의 '위트에 곁들여진' '톡쏘는 듯한' '신선한 관점들'이 좋다. 현대적인 감성에서도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보수적인 틀이 다분히 안전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아마도 복음주의권에서 널리 읽히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게다가 훈계하거나 어떤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유의 대화 자체를 싫어하며 독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항상 이야기를 풀어 가는 그의 여유로운 스타일도 개인적으로는 참 매력 포인트다. 무엇보다 그의 글은 밝아서 좋다.

하지만 본서는 달랐다. 시종일관 빵빵 터지는 위트를 유지하기엔 조금은 아픈 자신의 이야기를, 그 내면의 이야기를 드러내야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책장을 넘기면서 간간이 보이는 그의 농담이 오히려 안쓰러운 기분마저 들곤 했다. 본서에서 그가 관심을 가진 주제는 바로 '아버지의 부재'였다. 실제로 밀러의 아버지는 어릴 때 그와 어머니를 떠났고 그는 사춘기 시절 내내 남성성의 현현(삼촌, 친구의 아버지, 남자 선생님 등)을 찾아 헤맸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라면서 한동안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다가 삼십대가 되어서야 '아버지의 부재'가 크게 다가왔고, 그로 인해 어느 시점에서는 자신에게 남긴 상처들을 직면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이 주체할 수 없는 거친 감정에 휩싸였던 강렬한 기억을 떠올렸는데 그 기억이 나에게도 아프게 다가왔다.

"제작자는 부모 없는 코끼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촬영했다.(중략) 발정기에 있는 두 코끼리가 만날 때면 나무뿌리가 뽑힐 정도로 큰 소동이 벌어졌다. 피범벅이 되어 가족도 동족도 없이 홀로 각자의 길을 가는 두 마리 코끼리에게서 문득 내 모습을 보았다. 코뿔소를 죽인다거나 그 비슷한 일도 한 적이 없지만, 나도 도무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몰랐던 때가 있었다. 때로는 분노, 때로는 우울, 때로는 들끓는 성욕 같은 것을 느끼면서도 그 감정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던 때가 있었다. 무작정 누군가를 죽이고 싶고, 어떤 여자와 자고 싶고, 술집에서 만난 남자를 때려눕히고 싶었다. 그리고 어떤 감정들을 주체하지 못해 정말이지 힘들었다. 인생은 사건들과 마찰하는 혼란스러운 감정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여자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 경력은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어떻게 남자가 되는지 몰랐다."

우리는 자주 과거 기억, 특히 부모와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우리의 현재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이 이런 행위에 반감을 갖기도 한다. 흔히 심리학이나 정신분석으로 대변되는 이런 접근에 사람들이 반감을 갖는 이유는, 마치 지금 나의 문제들이 부모와의 관계에 엮여 있고 과거의 (주로 나쁜) 기억, 사건 때문에 지금의 내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듯 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고 내가 지금 어떻게 행동하는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내 미래는 달라질텐데 과거의 상처를 추적하는 작업들은 나를 나약한 존재로, 절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할 존재로 가둬 두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분석, 심리학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접하는 혈액형, 기질론, 성격 분류법에도 발끈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도널드 밀러는 자신의 과거를 정직하게 돌아보면서 아마도 아버지의 부재가 지금의 자신에게 준 영향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고 그 문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씨름을 해 온 듯하다. 그리고 그의 글쓰는 재능을 이용해서 그 노력의 궤적들을 하나의 형태(책)으로 만들어 냈다. 그래서인지 서문에도 썼듯 이 책은 밀러가 어떤 책보다도 쓰는데 오래 걸렸고 쓰면서도 힘들어했다고 한다. 나는 그의 책이 증명하듯 과거를 들춰내는 것과 과거를 묻어 두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주의 깊게 관찰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사적 역사를 돌아보고 그 아픈 기억들을 짚어 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아픈 기억들은 서른이 넘어서까지 우리의 삶을, 일상을, 무의식을 괴롭히곤 한다.

우리는 자주 타인이 아무렇지 않게 그냥 웃어 넘기는 주변 사람의 특정한 행동에 흥분하여 지나치게 화를 내거나 공격적인 반응을 취하기도 한다. 직장 상사에게 지나치게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하고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 그를 맹비난한다. 아내나 여자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소한 거절에도 마치 내 전존재가 거부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백화점이나 식당에서 점원에게 홀대당하거나 서비스를 충분히 받지 못했을 때 나도 모르게 '뚜껑이 열리고' 선후배의 날카로운 비판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몇 주동안 마음 앓이를 할 때도 있다. 이 모든 감정의 문제를 부모 이슈로 환원시킨다는 건 무리가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부모의 부재'라는 이슈가 내 안에서 매순간 절실하게 싸워야 할 정서적 그 무엇이기도 하다.

조금 엉뚱한 얘기지만, 나는 살면서 거의 유일하게 애정을 넘어선 질투심마저 느낀 존재가 있었는데 그는 다름아닌 정혜신 선생이었다. 글로 처음 알게된 이후로 블로그, SNS나 강의를 통해 접한 그녀는 정말 완벽해 보였다. 지성과 감성의 조화, 따뜻하면서도 합리적인 어머니상 등등, 뭐든 좋은 미사여구가 있으면 다 갖다 붙이고 싶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우연히 그녀의 인터뷰 기사를 읽던 중, 그녀가 7살에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고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의 부재'를 경험했고 자신은 아들 출산을 기다리다가 나온 환영받지 못한 딸이었으며 새 엄마와는 마음을 나눈 적이 없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넘치는 사랑과 마음의 여유는 부모로부터의 충분한 사랑에 기인했으리라는 막연한 짐작과 달리 그녀는 정신과 전공의 시절 월급의 절반을 정신분석에 썼을 만큼 내면의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그녀는 쌍용차 해고자 치유 센터인 '와락'을 설립하고 '마인드프리즘'을 통해 직장인들을 위한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사회적으로 결핍, 부재를 채우는 엄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최근에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힘들어하는 희생자 가족들의 심리 치료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도널드 밀러도 이 책을 쓰고난 직후 '멘토링 프로젝트'를 설립하고 아버지 없는 소년들에게 사회적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thementoringproject.org) 이 둘은 모두 자신의 결핍을 통해 청소년, 청년들에게 부모의 부재가 채워지면 그들의 인생이 완전히 다르게 바뀔 수 있음을 깨달은 것 같다. 도널드 밀러는 자신의 삶에서 몇몇 어른들이 곁에 없었다면 음주나 마약에 빠지거나 도둑질을 해서 감옥에 갈 수도 있었으리라고 고백하곤 했다. 솔직히 나는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말을 심정적으로 불편해하는 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해 줘야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정혜신 선생과 더불어 본서의 저자 도널드 밀러를 꼽고 싶다. 이 책이 부디 그런 이들이 많아지는 역할을 해내길 바라 본다.


*뉴스앤조이 기고글: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6829

2014/06/03 21:33 2014/06/0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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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좀 있다. 나는 기독교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많은 비평 자체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와 문화 사이의 관계 설정에 있어-스스로도 최대 수혜자라고 여기는-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적 관점, 리차드 니버의 '변혁모델'로서의 문화 비평에 회의적이다. 기독교인들은 스스로가 진리를 아는 자, 진리를 가진 자임을 자처하면서도 자주 현실 세계에서 아마추어리즘에 만족하며 지내는 모습을 보여 왔다. 오히려 세속화를 배척하거나 격리되는 방식을 사용하는 종교 근본주의적 성향의 신자들과 달리 세속 사회 언저리를 배회하며 어정쩡하게 삿대질이나 해대는 존재, 뭐 그런 느낌을 자주 받았다.

   
▲ <아이갓 iGods> / 크레이그 뎃와일러 지음 / 황영현, 황규준 옮김 / 아바서원 펴냄 / 408면 / 1만 9500원

 

일례로 몇몇 뛰어난 연주자들을 제외하고 나는 CCM이라는 장르의 '아마추어리즘'이 싫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다수의 CCM 가수들은 기똥차게 노래를 잘하지도, 나름의 철학이나 내러티브를 가진 완성도 높은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닌, 세속 음악계에 진입하기에는 모자란 역량을 '신심'으로 커버하려는 어떤 욕망이 느껴질 정도로 실력 면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 줄 때가 많았다. 결국 CCM이란 게, 음악 자체의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에, 한때 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던 착한 교회 청(소)년들의 일시적인 소비 대상, 혹은 해소책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급격히 그 시장이 축소된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메타 비평의 형식을 빌어서 풀어내는, 이른바 '기독교적 관점으로 본 OO'이라는 비평들도 CCM과 마찬가지로 태생 자체가 B급이라는 편견을 가져다 줄 때가 많았다. 심리학, 과학(특히 진화론), 인문학, 사회학, 비교종교학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문화의 변혁자를 자처하는 기독교인들은 한 꺼풀만 벗겨 보면 근본주의자들의 텍스트와 맞닿는 듯한 착각 아닌 착각을 하게 만들었고, 어느 시점을 지나면서 나는 기독교적 관점으로 세속 사회를 바라보겠다는 '돈키호테' 식의 메타 텍스트들에게서 점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서론이 길었다. 본서 <아이갓 iGods>은 부제 'IT 기술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말해 주듯 전형적인 기독교 메타 비평서다. 솔직히 앞서 말한 이유에서 본서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허나 단적으로 말해 이 책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유익하게 읽었다. 특히, 우리가 최근에 열광하는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의 개별 기업이나 사이트를 언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 사회 전반적인 부분까지 나아간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상당히 진지하고 깊이가 있었다. 게다가 개별 기업들의 분석의 깊이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IT 역사를 이해하는 개론서로 이 책과 더불어 <거의 모든 IT의 역사>를 권하고 싶다.)

본서는 IT 기술 자체에 대해 비판적이다. 제목이 말해 주듯 'IT 신들'(iGods)은 진정하고도 유일한 신인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으로 대변되는 스마트폰이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 자체를 바꾸었고 제프 베조스의 아마존은 온라인상으로도 양서를, 나아가 세상의 모든 좋은 상품을 구별할 수 있는 심미안을 가져다 주었으며, 페이스북은 또 하나의 사이버 커뮤니티를, 트위터와 유튜브는 인터넷 민주화의 도구로 활용되는 등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관점은 기술이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우선 나는 대부분의 각론에 있어 저자의 우려감에 크게 공감한다. 일상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있는 현대 IT 기술에 관한 해박하고도 방대한 분석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특히 한때 트위터가 정치-사회적 민주화의 도구가 될 것으로 여겨졌으나 반대로 국가기관에 의해 적극 활용될 소지가 있음을 주의 환기시켜 주는 대목이라거나, 페이스북을 바라보는 관점과 분석으로부터 기인한 깊은 영적 성찰은 북미가 아닌 대한민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혜안이었다. 특히 페이스북 특유의 문법, 이른바 '나는 자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선언은 우리가 쉽게 포스팅하는 페이스북의 글들이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꽂히는지를 오랜 시간 동안 조용히 묵상해야 할 화두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는 저자가 기술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에는 상당 부분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나는 기술을 비판하는 기독인들의 이중성 자체에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들이 자주 신봉하고 인용하는, 자끄 엘룰의 <기술 사회>에서 말하는-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스스로가 생명력을 가진 채로 팽창하려는 습성을 가진-테크놀로지에 대한 우려감이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듯한데, 나는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의 주머니와 가방 속에 스마트폰, 태블릿, 킨들 같은 것들이 들어있음을 알고 있다. 고로 그 이중적 태도의 근저에는, 스스로는 통제를 잘 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일반 대중, 평신도들에게 IT 기술은 위험한 존재라고 믿는 어떤 선민의식이 깔려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상당수의 엘룰주의자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또한 나는 'iGods'와 하나님 사이에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접근에 회의적이기도 하다. '두 주인'론은 흔히 말하는 돈, 섹스, 권력과 같은 현대사회의 우상이 될 만한 어떤 대상과도 대립 구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도 한때 초콜릿, 왈츠, 록 음악, 진화론, 정신분석 등과 같은 피조물과 하나님은 양립할 수 없었다. 지금도 게임, 입시, 스포츠 등 모든 피조물과 유일신은 세속 사회에서 경합을 벌이고 '능력 대결'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입장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고 한동안 바뀔 성 싶지 않다. 사실 어딜 가나 무얼 하나 인간 그 자체가 문제라는 거다. 고로 나는 여전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IT 기술은 도울 뿐, 정작 악한 것은 인간이다'라고.

2014/04/09 21:36 2014/04/09 2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