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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8): 운동성을 가진 사회인이 되기까지 (2003. 12.)  

/김용주


도덕적 인간, 비도덕적 사회

세 번에 걸친 ‘직장 생활 보고서’에서 나는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여러 가지의 문제들에 얽혀있고 그러한 문제들로 인해 결국 자신의 삶 속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지만 정작 운동성을 가진 사회인으로서의 역량은 사라지고 있음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다시 부연하지 않더라도 짧게 말한다면 많은 기독인들이 라인홀트 니버의 책 제목처럼 ‘도덕적 인간’이 되고자 애쓰지만 ‘비도덕적 사회’에 대한 불편함, 부조리함에 대한 변화의 갈망과 같은 거시적 관점은 상대적으로 많이 잃어가고 있다.

많은 대중들이 흥미롭게 대하는 기사는 스포츠 신문에서나 접하게 되는 선정적이거나 충격적인 내용이며, 정치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와 비판들이 쏟아지지만 정작 관심사는 정치의 발전과 시민의 참여라기보다는 암실 정치의 ‘폭로’ 그 자체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직장에 묶여있는 시간과 노력이 늘어나면서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여가에 대해서 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점점 자신의 주변과 관계없는 일에는 귀와 입을 막고, 일하는 시간 외에는 되도록이면 머리가 복잡해지는 일을 하거나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는 일은 피하게 되는 것 같다. 주변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채로 출근길에 마주치는 이웃을 장애물 피해가듯 지나치게 되고, 주변에 어려운 환경에 있는 이들에 대한 관심도 줄어간다.

무엇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다양하게 이해하고 접근해야 하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더더욱 냉담해지기 마련이다. ‘넥타이 부대’ 운운했던 시기는 이제 과거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는 듯 하며, 과거 군사 독재시절과는 달리 권력관계와 구조적인 악의 문제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바라보아야 할 관점도 많고 운동성 있는 사회인으로 살아가기에는 그만큼 알아야 할 것도 많아졌다. 특히 교인의 경우, 대다수의 기독인들에게는 교회 개혁에 대한 문제도 매주마다 피부로 느낄 만큼 민감한 문제이지만 직장인의 입장에서는 주일을 빼먹지 않고 교회 가는 것만으로도 할 도리는 다한 것이라고 자위하는 모습도 흔히 보게 된다. 이러한 다수의 기독 직장인들을 이해하는 것과 그들을 운동성 있는 사회인으로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문제다.


무늬만 진보, ‘껍데기는 가라’

이렇듯 문제의식이 없는 이들이 대다수인 반면 또 다른 부류도 있다. 진보임을 자처하지만 실제로 아무런 행동도 희생도 없는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이상과 현실을 극단적으로 구분하여 스스로의 언행불일치에 대한 심적 자위책을 찾는다. 캠퍼스에 있을 때는 기독교 세계관 운운하던 학생들이 그러했다. 어떤 공동체이든지 구성원 중 다수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중 일부는 특정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다시 그 중 다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평하는 일에 멈춰서게 되며 그 중의 하나 내지는 둘 정도가 그 문제의식을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더 나은 방향을 향한 행동을 시작하게 된다.

기독교 세계관을 배우던 우리 세대를 예로 들어보자. 쉐퍼나 송인규로부터 시작하여 제임스 사이어나 브라이언 월쉬의 책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당시 우리는 기독교 세계관에 매료되었고 그 하부구조를 이루고 있는 리차드 니이버나 도예빌트와 같은 이들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어느덧 이제는 무언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시기에 다시 기독교 세계관이 모더니즘적인 토대 위에 서 있음을 조금씩 깨닫게 되면서 포스트 모더니즘 담론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하여 생각의 균형을 잡아갔다. 그 와중에 대다수의 학생들은 어떤 해결책을 모색하기 보다는 기존의 담론에 대한 비판에 많은 시간을 썼던 듯 하다. 물론, 여전히 내 또래의 기독인들 사이에는 기독교 세계관이 행동으로 드러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실제 삶 속에서 아는 선 만큼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의 일부는, 자신의 신앙고백에 합당한 몸부림이 없었기 때문이며 이에 대한 정직한 자성이 필요하다. 나는 여전히 모든 문제에 있어 현실에 뿌리박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특별히 세계관의 문제, 그리고 신앙과 결부된 문제들은 현실을 반추하는 것 이상의 어떠한 움직임을 동반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한 움직임이 결여되어 있을 때 그 상부구조는, 적어도 그것을 붙잡고 있는 개인에게는 허구일 따름이다. 그러한 안일함은 마치 자신이 살아본 적이 없는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만큼이나 기만적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기지촌 지식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무늬만 진보 흉내를 내면서 속으로는 보수적인 흐름에 편승하는 이들이 꽤나 많은 모양이다. 하긴, 사회주의 혁명가에 대한 이야기를 극우 신문에 개재하는 일이나 진보잡지를 표방하면서 극우 잡지에 홍보를 일삼는 일, 진보를 자처하는 교수가 극우적인 단체의 후원을 받으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도 이제까지 한국사회에서 일상적인 일로 받아들여져 왔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진보의 상품화’라고까지 이야기해왔다. 손가락질 할만한 일이란 생각이 들다가도 정작 그 손가락을 나 자신에게 가져다 놓아보면 사뭇 그 느낌은 달라질 것 같다. 그만큼 우리의 사고는 타자화 되어 있으며, 동일하게 행동의 결여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나 또한 그 손가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운동가의 편견-‘건곤일척’의 문제

여기에 반해 극소수의 운동가들이 있다. 이들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길로 들어섰다. 운동가들은 시작부터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고, 언제 어디서나 그렇듯이 운동 자체가 춥고 배고픈 일이다. 그리고 애써 노력한 데에 반해 변화의 폭도 그리 확연히 드러나지 않아서 그만큼 운동의 길은 길고 지루하다. 또한 항상 타협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어디까지가 타협의 올바른 한계선인지에 대한 구분이 불명확하며 그로 인해 생기는 유혹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깨끗함을 목숨처럼 여겨야 하는 운동가들의 입장에서는 한 번의 실수로 이제까지 지켜온 명예가 더럽혀지는 일도 있다.

무엇보다 운동가들의 목적은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현실 사회의 문제를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야 하는 과정이 선행되기 때문에 운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때로는 극단적인 행동을 일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은 이미 삶의 많은 부분에서 희생을 치루었고, 공의를 위해 사욕을 버렸기 때문에 스스로가 드러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도덕적 우월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나는 추호도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자존감은 세워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내가 가까이에서 접한 운동가들이 겪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아는 이상, 그분들을 범접할 수 없는 나의 처지를 질책할 수는 있어도 그분들의 헌신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수 없으리라. 따라서 전에도 언급했듯이 내가 짚고 싶은 부분은 원론적인 부분에서의 운동가들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분들의 방법론적인 문제이다. 결국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대다수의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 현실의 모순들을 드러내주고 그들이 그러한 불합리한 상황을 인식하여 정작 운동성있는 개인으로 거듭나게 만들기 위함이라면, 현재 운동가들의 운동 스타일에는 어느 정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이른바 ‘건곤일척’의 정신에서 오는 문제다.

운동가들은, 흔히 하는 말로 99% 헌신된 일백 사람보다 100% 헌신된 한 사람을 원한다. 전적으로 어떤 일에 집요하고 끈기있게 매달릴 때에야 어떤 일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집요함이나 끈기가 운동가들에게는 권장되는 자질 중 하나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판단으로 볼 때, 매사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매달리는 운동가의 자질은, 운동을 이끄는 그룹 내부에서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자 권장되어야 하는 태도이겠지만 하루하루를 일에 찌들어 사는 대다수의 직장인들에게 그러한 자질의 ‘강요’가 적지않은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운동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무엇보다 그러한 접근방법은 대다수의 직장인들에게 처음부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해버리고 싶어지게 만드는 게 문제인 셈이다. ‘사회가 바뀌기 위해서는 당신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죽음까지 각오해야 한다’고 결연하게 말하는 운동가에게 대다수는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아마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발을 빼기에 급급한 겁쟁이가 되어 수면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나는 운동가들이 다수의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부분의 관심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실제적인 문제 – 돈, 연합, 그리고 헌신의 대가에 대한

사실 이러한 운동가들의 문제를 그분들이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설득을 효과적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돈 문제와 인맥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소리를 내려고 할 수록 때로는 그 수위가 날카로울 수밖에 없으며 쉽게 주변의 강요에 쉽게 타협하거나 무너져서는 안 되는 문제가 존재한다. 후원을 받을 때에도 특정한 단체에서 그 단체의 이익을 대변할 정도로 큰 금액을 받으면, 이후에 그 단체가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에도 바른 소리를 내야 할 비판의 ‘칼날’이 무뎌지는 문제가 생긴다. 하여간 ‘돈’이 문제다! 그 흔한 행사 한 번 할 때에도 사용되는 금전적인 지출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인건비는 어떠한가. 마음 같아서야 부서마다 사람들을 원하는 만큼 두고 싶고, 그러한 인력을 바탕으로 깔끔하고 풍성한 움직임으로 세련된 운동 스타일을 구사하고 싶은 욕심이 많은 것을 안다.

하 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는 곳에는 사람도 버텨낼 재간이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 특히 기독인들은 그것을 너무 쉽게 치부해버리는 듯 하다. 흔히 돈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기독인들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타부(taboo)시 한다. 은혜롭지 못하다고, 혹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들어온 이방인의 불필요한 걱정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일정부분은 공감한다. 하지만 금전적인 문제에 있어서 ‘규모없음’이 ‘신실함’의 표증이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오히려 금전적인 규모를 잘 관리하지 못함으로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동일하게 청지기적 사명이 강조되어야 마땅한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최소한 사회인으로서 그러한 운동단체에 지속적인 후원이 꼭 필요하며 다소 입장의 차이가 있더라도 그것이 치명적인 부분이 아닐 경우에는 일단 후원을 하면서 운동단체에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옳다.

두 번째는 연합에서 오는 불협화음의 문제이다. 내가 대학시절부터 줄곧 고민해 오던 두 가지의 키워드는 “운동성”과 “연합”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단어들은 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으며 지금도 아직 그 현현(顯現)을 접할 기회가 적은 편이다. 어떤 행사를 하게 될 경우 대중들은 깔끔한 구성과 잘 짜여진 프로그램의 행사들을 선호한다. 장소도 깔끔하고 자리도 편안하며 음향시설도 어느 정도 받쳐주는 그런 곳에서 정서를 자극하는 음악과 부드럽게 넘어가는 진행이 대중들에게 큰 호소력을 갖는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연합 행사는 위와 같은 대중의 기호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경우가 많다. 일단 금전적인 어려움 때문에도 그렇지만, 워낙 다양한 단체들이 함께 모이기 때문에 회합 회수부터 시작해서 준비과정, 그에 따른 의견 조율까지 하나같이 어려움을 겪는다.

끝내 단체들간의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중도에 참여를 그만두는 단체들이 생기는 경우에는 더더욱 분위기가 냉랭해지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진행된 연합 행사는 적은 자본과 미흡한 준비, 그리고 연륜의 부족으로 인해 다소 부자연스럽고 껄끄럽게 진행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연합행사의 진행은 한 단체에서 완전히 전담하여 진행하는 것보다도 더 질이 떨어지는 행사가 될 확률이 높으며 그런 연유로 많은 사람들은 연합 행사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이내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연합 ‘그 자체’의 가치에 대해 주의환기를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결 국 단체간의 연합은 불완전하며 과정도 험난하고 결과도 그다지 좋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연합은 그 자체로 완벽함을 얻는다. 이 말이 다소 모순되게 들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가족이 가족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 어떤 효율적인 성취에 있지 않는 이유에서 그렇다. 또한 모난 자식이 있어도 모두가 함께 모여 식사하는 자리가 잘난 자식 몇몇과 앉아 식사하는 자리보다 더 행복한 이유에서 그렇다. 특별히 기독인은 스스로를 몸된 교회의 한 지체라고 일컫지 않는가. 지체들이 다 같이 모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 우리가 기뻐해야 할 본질적인 이유이고 그렇기 때문에 연합은 우리의 ‘목적 자체’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되도록이면 격려하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연합운동에는 동참하는 것이 옳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잃을 것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흔히 기독인은 스스로를 헐리우드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생각한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으며, 약간의 고통을 겪고 나면 이내 행복한 결말이 보장되어 있는 그런 삶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리라. 하지만, 많은 신앙인들은 그 기한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지속적으로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기독인들이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자에게 왜 고통을 허락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놓고 주기적으로 고민한다. 왕이 된 다윗이나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에 대해서는 ‘아멘’으로 ‘화답’하지만 많은 은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순교한 ‘스데반’은 왠지 들을 때마다 껄끄럽기만 하다. 이 세상에서의 지속적인 고난은 여전히 기독인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성경이 가감 없이 말하듯 현실 사회에서 실제로 운동을 하는 이들은 많은 위협을 받는다. 타협을 거절하였을 때 오는 인맥 상의 따돌림이라거나 신변의 위협을 당할 때도 있다. 게다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 큰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집으로 걸려오는 협박전화를 운동가들의 가족이 받고 고통 받는 일도 다반사이다. 그런 극단적인 형태의 위협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비판하거나 문제를 지적하다가 쫓겨나는 일도 있으며, 그 이후에도 그 공동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인맥의 방해로 결국 그 바닥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는 일도 잦다. 결국 바른 소리를 내며 행동하는 사회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일정부분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는 자주 그러한 헌신의 대가를 뼈 속 깊숙이까지 새겨보아야만 한다.


연재를 마치면서

‘회색지대’라는 말은 그리 좋은 의미는 아니다. 어느 한 쪽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어느 쪽에서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특히 문제제기를 하는 입장이 그렇다. 게다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면서는 원고를 쓸 때마다 몇 번이고 망설이기도 했다. 이런 잡글이 복상의 소중한 지면을 차지해야 하는가 하는 그런 류의 고민 때문이다. 항상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그것은 나의 몫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시행착오를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족함들을 가감없이 써 내려가는 일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이전에 글을 쓰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내가 몸을 사리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글의 수위, 행동의 한계선. 이런 것들을 계산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불편하고 부끄러웠다. 연재의 시작은 캠퍼스 학생들을 위함이라 얘기했지만 정작 이 글들은 오히려 무뎌져 가는 나에 대한 질책이 되었던 것 같다. 늦은 원고에도 항상 느긋했던 서부장님과 재홍이 형에게 감사한다. **
2003/12/01 23:28 2003/12/0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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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7): 개인생활 보고서 (2003. 11.)

/김용주


하루

알 람을 3개나 맞추어도 요즘은 쉽사리 일어나 지질 않는다. 새벽에서야 잠이 드는 생활이 익숙한 지라 역시 아침은 그리 달갑지 않다. 얼마 전에는 시계를 snooze 기능이 있는 것으로 바꾸었다. 5분 간격으로 다시 벨이 울리기 때문에 최소한 이 친구가 있으면 늦게라도 일어나지는 장점이 있다! 대학교 때는 손수 아침식사를 만들어 먹고 나가는 일도 많았건만, 대학원 생활이 시작된 이후로는 직장인들의 아침 생활과 비슷해져 버렸다. 전에는 눈에도 띄지 않던 길거리 포장마차의 김밥과 토스트가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침을 거르지 않아야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항시 하기 때문인 듯 하다.

학교 가는 길은 1시간 정도 걸리는데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서 30분 정도가 더 걸리는 편이다. 보통 전반 30분은 영어회화 테이프를 들으면서 가고, 후반 30분은 근처에서 산 <한겨레> 신문을 읽으면서 간다. 물론 전날 연구실 일이 늦어져서 막차를 타고 들어가서 새벽까지 잠을 못 잔 경우에는 음악을 들으며 버스를 타고 지하철에서는 앞사람에게 인사하듯 졸기도 한다.

도착해서는 200원이 채 되지 않는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자리에 앉아 간단하게 성경을 읽는다. 귀납적 성경공부에 한창 정신을 잃던 시절에는 아침 Q.T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우기면서 주변을 충동질하던 적도 있었고 Q.T 교제가 없으면 책 없이 등교한 학생처럼 어딘가 불안한 마음에 집중이 안되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냥 관주성경을 가지고 짧은 본문을 반복해서 읽는 것도 묘미가 있는 것 같다. 항상 많은 것들을 종합해서 어떤 결론을 내려야 직성이 풀리던 나에게 작다면 작은 변화인 셈이다. 연구실에서는 대체로 오전에는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수업과 연구실 일들을 하다 보면, 점심 식사와 저녁 식사를 하게 되고 저녁을 먹은 후에야 깊이 있는 주제의 연구가 가능하다. 물론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이르는 경우에는 그 조차도 쉽지 않다. 그런 연유로 식사 후의 시간에는 대다수의 동료들이 사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웹 사이트에서 스포츠 신문이나 물건을 구매하는 일이 많다. 나는 주로 그 시간에 <뉴스앤조이>나 <복음과상황>의 게시판, 혹은 다른 기독 매체의 토론방이나 진보 잡지의 게시판들을 둘러보고 관심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때로 글들을 남기는 일도 있다. 인터넷 상거래는 주로 책을 구입할 때 많이 쓰는데, 읽고 싶은 책들의 명단을 틈틈이 만들다가 마일리지가 쌓였거나 행사기간에 구매를 하는 편이다.

대체로 10시와 11시 사이에 연구실을 나오게 되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정기 구독하는 잡지나 읽고 싶던 책을 읽는다. 전에는 구독하는 잡지가 많았으나 지금은 금전적, 시간적 여력이 없어서 <복음과상황>, <인물과 사상>, <객석> 정도를 읽고 있다. 그나마 <객석>의 경우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만만찮은 가격 때문에 격월 간격으로 사서 본다고 하는 게 맞다.

예전엔 신앙서적을 많이 보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고종석, 진중권 같은 논객들의 글이나, 제레미 리프킨, 노암 촘스키 같은 운동가적 기질의 학자들이 쓴 책들, 그밖에는 사상서적, 심리학 책들에 더 관심이 가는 편이다.

집 에 오면 음악을 들으면서 방 정리를 한다. 밤 시간에는 과제나 프로젝트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주로 논문을 읽거나 노트 정리를 요하는 책들을 읽는다. 대충 하루가 끝나가는 시간에는 묵상집을 읽으면서 영육간의 쉼을 갖는다. 자기 전에는 하루를 정리하면서 기도 시간을 갖는데 기도 시간이 뜨겁거나 열정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하루를 돌아보며 내 생각으로 가득했던 머리를 비우는 작업들이 내가 계획하지 않은 좋은 것들로 채워질 수 있게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름대 로 충실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나의 하루에는 몇 가지의 좋은 기반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미혼(?)이기 때문에 아직은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아직 완전하게 경제적으로 자립한 상태는 아니지만 공대 대학원생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서 일정한 수입이 있다는 점이다.


한 달

시간 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내게 처음 일깨워준 분은 고든 맥도날드 목사다. 스무 살의 나이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대학 초년생의 티를 벗지 못하고 여기저기 배회하던 내 손에 잡힌 첫 신앙서적은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었고, 그 책의 저자로부터 지금껏 큰 빚을 진 사람처럼 그 분에게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다. 나는 매달 하루 정도는 안식과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 집이 비는 날이면 집에서 쉬는 편이지만,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근교의 조용한 공간이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간다. 그런 날은 책을 주로 가지고 다녔었는데 요즘은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편이다. 어떤 일에 몰입하거나 시간에 쫓겨 바쁘게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무엇이 중요한 일이고 무엇이 주변적인 일인지, 내가 무엇을 하는지, 결국 그 목적과 가치가 어떠한지에 대한 생각을 잊게 되거나 혹은 그런 생각들이 희미해져 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나와 나의 주변을 관조적(觀照的)인 태도로 혹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둘러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특히 요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지내려고 해도 시시각각으로 시간 절약(time-saving)과 기술(technology)에 대한 무조건적인 가치부여에 휘둘리게 되는 게 사실이다. 직장에서도 특정한 기한 내에 일을 처리하는 것이 기업의 진정한 가치이자 목적이며, 연구실에서도 연구분야는 프로그램이나 알고리듬의 실행(run time) 시간이 절약되거나 여러 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시스템(multi-tasking system)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런 분위기에서 시간 죽이기를 시도하는 이들은 손가락질을 받게 되고 무능하다는 딱지를 달고 다니는 게 지배적인 분위기인지라 나도 모르게 그런 분위기 안에서는 호흡이 빨라지고 그런 가치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모습도 심심찮게 직면하게 된다.

그런 연유로 매 주기마다 한 번 정도, 일주일 중의 반나절, 한 달 중의 하루, 일년 중의 한 주간, 그런 식으로 잠깐씩 달리던 길에서 멈춰 서서 이제껏 걸어온 궤적을 돌아보고 그 흐름을 객관적으로 차근차근 짚어보면서 수정할 부분은 수정하고 바른 방향은 키워주는 일이 필요하다.

단순히 내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는 것과는 별개로 사회 봉사와 사회 참여라는 대목에서도 이 한 달의 주기는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 물론 일 주일의 주기가 더 적당하겠지만. 나는 "복음주의 바이러스"라는 작은 모임을 하고 있다. 귀납적 성경공부를 하기도 하고 스터디 모임도 갖지만 주로 우리가 하는 일은 수다를 떠는 거다! 내가 홍세화님의 책에서 접한 프랑스 문화 중 가장 부러워했던 대목은 식사 시간이 충분히 길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충분히'는, 대화가 어느 정도 깊어질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시간을 감안한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 식사 중에 "그 영화 어땠니?"라는 질문에 "난 별로였어."라거나 "정말 죽여주던걸?"이라는 대답 몇이 오고 가다가 자리에서 일어서야 하는 인스턴트 문화에 젖어있는 내 주변 분위기에서 "나는 그 영화가 좋았어. 왜냐하면, 그 감독이 찍은 이전의 작품을 보면.."이라며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충분히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시간이 우리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치, 신학, 문화, 영화, 심지어 연애에 대한 이야기까지 좀더 자세히 조목조목 이야기할 수 있는 모임이 기독 청년들에게는 절실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들이 정립되는 것이 그 사람의 행동의 일관성에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연유로 바쁜 와중에도, 그리고 그리 많이 모이지 않는 독자 모임도 지속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 지적 유희 아니냐,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가끔씩 듣는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문제의식을 갖게 만드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행동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 죽은 것이지만 믿음 또한 들음에서 난다고 하지 않던가. 결국 문제의식을 나누던 이들이 인적 인프라로 어떤 참여적인 형태의 일들을 해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개혁실천연대에서 하고 있는 많은 행보들에는 되도록이면 참여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대해서는 언젠가 더 깊게 이야기할 때가 오리라고 생각한다.)

사회 봉사의 문제는 최근 내게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학부 시절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도서 워드 입력이나, 음성 녹음과 같은 일들을 곧잘 했었다. 학교 주변에 그런 연결점들도 상당히 많이 있었고, 바쁘다는 핑계를 자주 대긴 했지만 실제로 대학 생활에서 시간을 내는 것이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는 게 훨씬 정직한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굳이 감추지 않는 것이다. 유일한 변명거리라고 한다면 그런 것이다. 곧 나의 대학원 생활이 마무리될 것이고 또 어딘가에 정착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봉사할 단체를 찾아서 주기적으로 찾아가겠다고. 하지만 지금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구두 속에 들어간 작은 돌맹이처럼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되고 있다. 사실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 불편함이 어느 정도 익숙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또한 느끼고 있다. 내 대학원 이후의 생활에서 아무런 봉사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내 주변에서 누군가는 나의 안일함을 질책해주기를 바란다. 이 글을 들이대면서 말이다(웃음).


일 년, 그리고..

일년을 주기로 고려해야 하는 일은 주로 경조사이다. 가족의 생일이나 결혼식, 스승의 날에 스승을 찾아 뵙는다거나 하는 일이 여기에 속한다. 특히 가까운 사람의 생일은 미리 메모를 해 두었다가 의미 있게 챙기는 것이 좋은 듯 하다. 나는 이런 일을 잘 못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결혼식에 잘 가지 못하는 일도 많고, 생일은 가벼운 선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 무의식 깊은 곳에는 인맥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는 이유도 큰 듯 하다. 자주 겪는 일이지만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인맥의 병폐들에 큰 환멸감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인맥의 관리 차원에서 일어나는 주변 분위기를 잘 참아내지 못하는 것이 내 성격의 모난 점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들 중에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공적인 일들에 그런 주변 사람들의 일들이 파묻히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진중권씨가 자기 동문 선배에게 표를 주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개새끼'라는 욕을 먹었다는 글을 읽고 한참을 웃은 적이 있었는데, 나도 그런 전철을 밟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요즘은 자주 든다.

다음 얘기를 하기 전에 잠깐 얼마 전에 들은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한국 학생들과 미국 학생들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개의 예문이 있다. 먼저 미국 학생들의 대화다.

A: 나 어제 시험을 망쳤어. 정말 기분 꽝이다.
B: 과목이 뭐니? 수학이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고 다른 과목은 잘하는 조교를 소개시켜줄 수도 있거든.


다음은 한국 학생들의 대화다.

A: 나 어제 시험을 망쳤어. 정말 기분 꽝이다.
B: 그럴 수도 있지 뭐. 인생이 다 새옹지마 아니겠어? 술이나 마시러 가자.

시험을 망친 후에 생각하는 학생들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다. 한쪽은 이미 지난 문제에 대해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다른 한쪽은 지난 문제를 잊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사 실 일년을 주기로 이야기하면 빠지지 않는 것이 망년회다. 앞에서 언급한 이야기의 연장선 상에서 나는 망년회라는 말 자체부터 싫어하는 사람이다. 이름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좋지는 않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한다면 그 내용을 충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망년회는 정말 짜증나는 이름이다.

나는 역사에 관한 책들을 재미있게 보는 편이다. 사상에 관한 책도 흐름과 시대상이 반영된 시각을 주는 저자의 책이 좋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때론 너무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항상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버팀목이나 발판이 된다는 점에서 좋은 행위임에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 해를 잊어버리겠다는 느낌이 강한 망년회라는 말보다는 한 해를 깊이있게 돌아보겠다는 회년(懷年)회가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한 해를 한 달 정도 남긴 시간에 한 해를 돌아보고 나머지 한 달 동안 새해에 대한 계획들을 세워보는 것이 일년의 마지막에서는 참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이 나올 때 즈음이면 어느 정도 시의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에 11월 말에 내가 속한 모임에서 만들었던 회년회 모임 자료의 토론 문항들을 소개해 본다.


<회년모임 나눔 자료> 2002. 11. 30.

1. 올 해의 가장 즐거웠던 일은?
2. 올 해의 가장 힘들었던 일은?
3. 올 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는 어디어디인가?
4. 공동체로부터 공급 받은 것들은 무엇이며, 공급한 것들은 무엇인가?
5. 올해 자신의 목표는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어떤 노력들과 어떤 어려움들이 있었나?
6. 올해 자신이 중점적으로 노력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예. 제자 양육, 학업, 직장 사역, 사회봉사, 안식 등)
7. 올해 자신이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부분, 혹은 균형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이었는가?
8. 내년의 계획을 간단하게 세워보자.
9. 내년의 계획들을 통해서 자신이 5년, 혹은 10년간 이루어갈 일들을 생각해보자.

개 인의 삶이 드러나는 일은 나에게도 참 불편한 무엇이다. 놓치는 일도 많고 연륜이 없어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달려드는 일도 아직은 상당수임을 감안하면 이런 류의 글들이 과연 좋은 글인가 하는 자성도 해본다. 하지만, 간혹 만나는 선배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 끝에 다급한 마음으로 "형은 어떻게 살고 있어요? 직장인으로서 기독인으로서 사회를 살아가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하거든요."라는 물음에 "뭐, 사는 게 다 그렇지."라거나 "내 삶을 나누면 은혜가 안 되서."라고 한 발 물러서는 이들도 많다. 혹은 괜히 튀려고 하지말고 큐티나 열심히 하라는 권면도 듣는다. 아직은 자신이 바르게 살고 있지 못하니 자신을 추스리고 신앙의 연륜이 좀 쌓이면 그 때 이야기를 하거나 글을 쓰겠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간단하게 대답하자면 그런 류의 반응은 몸부림치면서 하루하루를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고민하는 기독청년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과정 중에 일어나는 다이나믹한 고민들, 그 복잡다단한 선택과 일상의 문제들이 드러나지 않는 한, 청년들의 고민은 한 번 펼쳐지지도 못한 채로 머리 속에서만 꿈틀대다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으로 개인 생활 보고서를 써 내려가 보았다. 자신의 로맨스가 타인의 불륜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는 직장인의 농 섞인 얘기가 있다. 내 삶도 나의 연약함으로 인해 실제 삶보다는 조금 포장이 되었을 수 있다. 감안하고 읽으면서 자신의 생활 보고서도 한 번 스케치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003/11/01 23:27 2003/11/0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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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6): 연애문화 보고서 (2003. 10.)

/ 김용주


소개팅 이야기

첫 주가 지나고 어느 날, 소개팅을 다녀온 동기의 얘기를 들었다. 처음에 이 친구녀석은 소개팅에 나온 여학생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내 이어진 그녀의 네 가지 질문에 그만 기가 질려 버렸다고 했다. 난 혼자 생각에 ‘고만고만한’ 호구조사 정도거니 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아버지는 무슨 일하세요?
2. 졸업하고 뭐 할 거에요?
3. 무슨 차 몰고 다니세요?

처 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소개팅 자리에서는 주로 좋아하는 음악이 뭐냐, 영화 많이 보냐, 전공이 뭐냐, 재미는 있냐 같은 것들을 물어보던 과거를 떠올리며 약간 놀라긴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들기 전에 미리 안정된 남자임을 확인하려는 그 여학생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부분이긴 했다. 헌데, 정작 뒤끝이 씁쓸했던 건 마지막 질문이었다.

“교회 다니세요?”

물 론 기독 학생들 간에도 남학생은 여학생의 외모를, 여학생은 남학생의 능력을 암암리에 따진다는 것이 보편적이긴 하지만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렇게 화끈하게(?) 물어보는 변화에 꽤 당혹스러웠다. 차라리 그 여학생이 마지막 질문을 처음에 물어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자의 눈: 여자의 눈

이성교제에도 약간의 변화가 느껴진다. 사실 내가 처음 학교를 들어온 시기는 캠퍼스에서 ‘페미니즘 번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항상 여성은 남성과의 평등에 대한 시각으로 다가왔고, 이상적인 여성상은 프리랜서 내지는 직장에서 남성과 나란히 경쟁하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하지만 IMF 이후에 변화된 것인지, 아니면 페미니즘을 화두로 했던 캠퍼스 문화가 시들해진 것인지 모르겠으나, 집안 좋고 능력 있는 남성에게 어느 정도 의존적인 여학생들이 늘고 있다.

아니, 과거를 돌아보면 그건 90년대 중반의 일시적인 흐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여학생은 연애를 3번 하는데, 저학년 때는 동기와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가 고학년이 되면 학업에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같은 과의 실력있는 복학생 선배가 되고, 졸업을 하면 취업한 회사에서 능력 있는 직장 선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물론, 저학년 동기는 곧 군대를 가게되고, 졸업을 하면 주변 환경이 바뀌는 부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들은 농 섞인 이야기다. 예전에는 자수성가한 사업가형 남성들이 상당히 호감을 샀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자수성가한 사람은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해서 노년에 단명하거나 지병을 앓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최근의 캠퍼스에서 선호하는 남성상은 아버지가 사업가라 집안도 여유가 있고 똑똑하며, 성격이 어둡지 않고 생각이 비뚤거나 모나지 않은 재미있는 사람이다.

남학생의 경우에는 여전히 외모에 의존적인 이들이 많다. 처음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에는 술자리에서나 그런 이야기들을 하던 학생들을 보곤 했는데, 복학한 후에는 연애 이야기가 나오면 대놓고 여학생들의 몸매와 얼굴에 대한 점수를 매기는 이들도 심심찮게 만난다. 그런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우가 아니라도 보통 남성들의 경우, 이상적인 여성상이 실리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실제로 자기 혼자서만 벌어서는 가정 생활 유지가 안 된다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의식이다. 그래서 집에서 살림을 하는 여성보다는 같이 가사를 돌보더라도 직장을 가지는 여성을 선호하고 있다. 직업은 보수가 적더라도 안정적이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공무원이나 교사가 좋다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


사랑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

얼마 전 2%라는 음료 선전용으로 5분짜리 광고가 인터넷 상에 뜬 적이 있었다. 사랑에 대한 짧은 드라마형식이었는데 처음 보았을 때 그 영상이 너무 충격적이라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했던 기억이 난다. '충격적'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내 또래의 직장 초년생 내지는 취업을 앞둔 대학생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이유 때문이라 하겠다. 내용을 대충 이야기하자면, 동갑내기 커플 중 남자는 군대를 갔다와서 복학을 한 학생신분이고, 여자는 갓 취업하여 직장을 다니는 회사원이다. 이 여자는 직장에 가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고 직장에서 능력있고 매너도 좋은 직장 선배 남자에게 마음이 끌리게 된다. 그 사실을 남자친구가 알게 되고 다투는 대목에서 여자는 울면서 자신에게 언제 고급 레스토랑에 데려가 본 적 있느냐며, 사랑만 있다고 사랑이 되냐는 말로 남자에게 상처를 준다. 나에게 이 영상이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나온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여자 주인공의 나레이션에서 보이는 합리성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감정은 2년이 넘지 못한다"는.

주위 사람들을 만나보면 사랑에 대한 나름의 여러 생각들을 가지고 있음을 본다. 또한, 그러한 사랑에 대한 고유한 정의는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준의 것이고 그런 연유로 사랑에 대해서는 각자의 생각과 정의, 그리고 경험에 맞추어 보아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함부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곤 한다. 위에서 예로 든 광고회사에서 자신의 광고에서도 누구의 '사랑관'을 선호하는지 투표를 했고, 두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다는 점을 보면 그러한 서로의 입장에 대해 굳이 시시비비를 가리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물론, 실제 투표에서는 여자 주인공의 입장이 좀더 높은 동의를 얻었다)

나도 개인적으로 광고에 나온 여자 주인공의 나레이션과 반응에 큰 공감을 표하게 된다. 물론 대부분의 순수파 혹은 순정파 연인들에게 여주인공의 행동은 비난을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고 있는 또래 학생들과 직장 초년생의 연애관은 그들이 여전히 자신을 규정짓지 못하고 있는 만큼 불안정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결단대로 행동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허다하다. '영원한 사랑', '변치 않는 마음'과 같은 류의 고백들이 진정 서로가 지켜나갈 수 있는 류의 고백인지 아직 스스로조차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연인들 상호간에 '사랑'이라는 정의도 개인의 경험에 따라서 그 의미와 규모는 사뭇 차이가 난다. 그간 무수한 사랑에 관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듯이 처음 만나서도 부드러운 대화가 이어지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어 만난 당일에 깔끔한 세트로 꾸며진 집 안에서 잠자리를 같이 하는 식의 작위적 설정으로 인해 젊은 남녀도 그런 상상 속에 많이 휘둘리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이들은 운명적 만남에 대한 환상이 너무 큰 경우도 많다. 이들은 자신의 결정에 항상 회의감을 가진 관계로 의지적인 측면에서의 사랑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광고 속 여주인공의 대사처럼 그러한 감정적인 설레임은 2년 이상을 넘지 못하고 그 이후에는 자신이 선택한 이성이 운명이 아니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정이라 믿게 된다. 갈수록 많은 연인들 간에는 감정이 식으면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불편한 무엇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듯 하다.

이런 순수파, 감정파에 비해 광고 속 여주인공이 더 많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연인들에게 있어 사랑이라는 것은 감정적인 무엇, 첫 눈에 반하는 무엇, 혹은 운명적인 만남과 같은 이상적인 형태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첫눈에 반하는 요소들은 대부분인 외모, 말하거나 행동할 때의 깔끔한 매너, 목소리 정도이며 간단한 대화를 통한 상대방의 기호 정도가 된다. 그것을 운명의 일부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결국 일상에서의 지루한 관계가 지속될수록 무료함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그런 연유로 부모들 입장에서, 혹은 광고 속 여주인공 입장에서 상대방의 배경이나 재산,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을 돌아보게 하는 것도 동의까지는 아니라도 때로는 납득이 된다. 사람이 만나서 부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는지에 대해 순정파의 입장에서는 너무 성글게 생각하는 듯 하고, 속물파의 입장에서는 너무 치밀하게 계산하는 듯 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연애를 막는 선교단체의 폭력성

결 국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는,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연애관을 수정하고 또한 돌아보게 되는 데에는 이성간의 만남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너무 진지한 시작은 좋지 않겠지만 주위의 관심아래에서 연애는 권장되어 마땅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교단체는 이에 역행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지난 번에 연재되었던 “약간은 도발적인 캠퍼스 보기”에서도 언급했듯이 선교단체의 학생들은 전적으로 시간에 쫓기게 되어 있고, 결국 공동체의 운영에 있어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영역들은 공동체 자체적으로 금지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성교제와 아르바이트이다. 내가 아는 한 선교 단체에서는 이성교제와 아르바이트를 하면 공동체에서 제명되는 일도 있었다. 이는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잘못 구분한 탓이다. 이성교제를 금지하는 공동체는 많다. 많은 동아리들도 동아리 내에서 이성교제를 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동아리 활동을 등한시하고 때때로 두 사람이 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많은 기독 공동체에서도 이성교제를 음성적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금하는데 이는 많은 시간을 교제에 쏟게 되고, 지체를 섬겨야 할 리더들의 감정기복이 심해지며 두 사람이 함께 공동체를 떠나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성훈련이 제대로 선행되지 않은 학생들의 이성교제가 문제가 될 위험성이 있으며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경우에 공동체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등의 이유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위험성을 뿌리뽑자는 심산인 듯하다. 많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황당한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 학생시절에 이성교제를 놓고 힘들어하며 이런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했더니, 어머니는 내가 통일교 내지는 이단 단체에 들어간 줄 알고 동아리 활동을 중단하도록 권면을 받은 적도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지금 세대 공동체보다도 개화된 여성인 모양이다.

이러한 제재 속에서 대부분의 기독학생들은 이성교제에 있어서는 '순수파'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선교단체에서 남녀간에 거리낌 없는 관계가 오랜 시간 이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이들에 비해 이성을 대하는 것이 더 낫다는 평가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동체에서의 남녀 관계와 이성교제에서의 남녀 관계는 사뭇 다르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내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도 군중 속에 있을 때, 아니 심지어 친한 친구와 있을 때에 비해 애인과 있을 때는 큰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그게 정상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4년간 제재를 당해온 많은 기독학생들은 자신에게 맞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성교제를 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교제를 시작하게 되고, 이후에 생겨나는 여러 복잡하고 힘든 감정의 기복들로 어려움을 겪다가 이내 기도원에 들어가거나 새벽기도를 꾸준히 가면서 '이 사람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를 되뇌게 된다. (여기에서 하나님에게 묻는 행위 자체를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이성교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이루어져야 할 고백이다. 문제는 이런 학생들은 단순히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편함과 두려움을 신이라는 절대자에게 대신 뒤집어 씌우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캠퍼스 보고서' 때와 마찬가지의 역회심 문제로 돌변하기도 한다. 일례로 이런 학생들은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유치하고 미성숙한 잣대였다고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능력, 연봉, 집안 배경 같은 것들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기도 한다.


건강한 연애 보고서를 쓰기바라며
 
첫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꼭 그렇게 된다기 보다는 '처음' 하게 되는 그 무엇이기 때문에 생기는 시행착오에 기인하는 듯하다. 무엇이든 처음 시작한 일은 낯설기 마련이고, 또한 자기 몸에 꼭 들어맞기까지는 적응을 위한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사물이나 기구, 자동차를 다루는 일도 그러한데 사람을 다루는 일, 사람과 사귀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창조주가 허락한 두 사람이 일체가 되는 과정으로서의 사랑의 시작인 만큼 이성교제에 많은 주의와 노력이 필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리 없다. 그리고 그러한 처음에서 오는 시행착오로 서로간의 감정과 관계성을 잘 조율하지 못해 헤어지게 되는 경우에는 미련과 아픔이 남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그 기간이 길기도 하고 쉽게 회복하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인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러하기 때문에 나는 많은 후배들과 동기들에게 이성교제를 권장한다. 한 사람과 완전하게 투명한 교제를 해 본 적이 없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혹은 자신이 말하는 섬김과 헌신이 얼마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던 신기루에 불과한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서로가 투명하게 자신의 내면을 터놓는 과정을 통해 얼마나 스스로가 자신이 의도했던 대로 사랑을 베풀기를 싫어하는 존재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고, 자기가 말했던 그런 사랑 어린 행동에도 노력과 연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된다.

대부분의 동아리나 기독 선교단체, 심지어 대학원 내에서도 이성교제는 암암리에 혹은 공개적으로 금기시 하는 분위기가 많다. 그것은 공동체의 견고함을 위한 제재이기도 하고, 또한 개인이 서투르게 교제를 하다가 헤어진 이후에 오는 상처와 심적 어려움에 대해 과잉보호를 하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런 식의 제재는 오히려 이성교제를 음성화시키고 음성적으로 만남을 갖는 커플의 경우는 관계에서 더 잘못되기 쉽다.

물론 이성교제 시의 발생할 법한 문제는 항시 존재한다. 헤어질 때 생기는 마음의 상처뿐만 아니라 함께 있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육체적인 친밀함이 더해지는 것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애가 시작되면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게 되는 문제로 인해 때로는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말들이나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알게 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데, 일상적인 일들에 대한 편안함을 느끼기도 전에 관계가 급진전되는 것도 경계할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기독인의 경우에는 '신실한 형제', 혹은 '신실한 자매'에 대한 왜곡된 태도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일부로 글 전체에서 신실한 사람에 대한 강조를 제외했다. 나는 그 신앙적 신실성 여부로 그 사람이 이성교제에서도 동일하게 그러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신뢰하지 않는다. 신앙적 신실함은 정작 이성교제를 할 때에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 분명하지만 나는 그 신실함 때문에 시작된 교제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신실함 자체가 체화된 것이 아닌 경건의 외형인 이유도 있었지만, 실제로 신앙이 깊어도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나를 포함한 젊은 세대들의 신앙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 아직 우리의 신앙 자체가 삶의 여러 문제들을 접하고 그 안에서 난관을 통해 얻어진 신앙이 아니라 비닐 하우스에서 재배되고 있는 식물들처럼 머리로만 혹은,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는 신앙적 행동양식들이 실제 삶에서는 그 텍스트대로 드러나질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신실해 봐야 얼마나 신실하겠는가. '신실한 사람'이라 칭하는 것은 중년기는 넘긴, 그리고 신앙의 열매를 이제는 조금씩 내고 있는 이들에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며 그런 의미에서 내가 중시하는 것은 허울뿐인 신실함보다는, 오랜 시간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그 일상적 친밀함, 그 가운데에서 쌓여가는 신뢰를 통해 감정적으로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긴 여정이라고 믿는다. 부디 많은 기독 청년들의 멋진 연애 보고서를 기대한다! **
2003/10/01 23:26 2003/10/0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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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5): 직장생활 보고서 (3) (2003. 9.)

 

/ 김용주

 


<직장 문화, 대중 문화, 그리고 소비 문화>

 

많은 직장인의 경우, 아침에 출근을 하면 일단 컴퓨터를 부팅함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컴퓨터가 켜지면 메신저에 접속을 하고 스포츠 신문을 검색하면서 무슨 재미난 기사거리가 없나 헤드라인들을 훑어 본다. 다음은 주식에 관련된 컨텐츠들을 검색한다. 이미 주식을 가진 직장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주가의 오르고 내림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틈틈이 자신들이 주로 이용하는 쇼핑몰에서 많은 시간들을 보낸다. 대개 쇼핑몰을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은 잠시라도 사람들의 눈을 잡아두기 위해 여러 가지의 볼거리들을 제공한다. 곳곳에서 "2시간 동안 50% 대박 세일"이라거나 마일리지 적립과 같은 방식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대개 많은 직장인들은 당일에 생기는 이런 류의 기회들에 항상 눈을 떼지 못하게 된다. 남성들의 경우에는 중고차 사이트라거나 컴퓨터 주변기기, 디지털 카메라와 같은 전자제품에 관한 사이트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제품들을 고르면서 쉬는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이런 직장인들의 성향에 발맞추어 가장 낮은 가격을 찾아주는 사이트들도 꽤 많아졌다.

 

또한 인터넷 상에서 결제할 수 있는 사이버 머니들도 마일리지나 충전 방식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결제 체계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를 넘나들며 할인 혜택까지 주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대개 회사에서 소위 인기 있는 동료는 그러한 정보들에 민감한 사람이다. 바쁜 일정 속에서 직장인들은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점점 소비문화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느낌이며 그런 이유에서인지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물건을 구매하거나, 유명한 음식점이나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일에 혈안이 되는 듯 하다. 대개 커피를 마시며 보내는 짧은 시간의 대화는 아침에 검색한 스포츠 신문에 나온 연애인의 스캔들과 같은 내용이 아니면, 맛있는 음식점의 위치나 좋은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는 사이트, 마일리지로 결제할 수 있는 페밀리 레스토랑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그러한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직장에서 인기도 높다. 물론 정치 이야기가 가끔 나오지만 항상 "더러운 판"이라거나, "정치하는 이들은 모두다 썩었다"는 식으로 흘러서 금새 화제는 바뀌고 만다.

 

결국 회사에서 생활하는 많은 시간에서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의 대부분을 거의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이러한 소비 문화를 잘 할 수 있는 데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으며, 그러한 기호에 아주 민감하게 기업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방향의 소비 패키지 상품들을 개발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그러한 정보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직장 문화의 중심에 서게 되는 듯 하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대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했던 고민 두 가지는 직장과 이성교제였다. 둘 중에 하나가 해결된 사람은 자연히 다른 쪽으로 관심이 집중되기 마련이었다.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면서 주변에서는 보다 진지한 연애 소식들이 들려왔고, 조금씩 주말이면 정장을 입고 국수를 먹으러 다녀야 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러다가 집들이를 한다고 여기저기 찾아가는 일도 생기더니, 급기야 이제는 돌잔치에 가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어린 시절, 가끔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 같은 일일 연속극을 어른들은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한 회도 빠지지 않고 보는 것일까 하고 궁금해 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비슷한 이야기들이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니까 설령 드라마에서 엇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어도 동질감이 느껴지고 자신과 동일시 할 수 있는 상황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드라마 속 집안 이야기의 전개가 궁금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씩 주변에서 가정을 이루어 가는 선배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실 그 중에는 학부시절에 존경하던 선배들도 많이 있다. 캠퍼스에서 그들은 금방이라도 자신의 몸을 불태워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것 같았고, 세상의 구조적인 악행들에 크게 분노하고 마음 아파하며 자신들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부르짖곤 했었다. 정치인들에게 내밀던 날카로운 잣대들과 하루하루 자신을 연단하고 모임 때마다 고백하던 그 도전적인 이야기들이 나에겐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나 보던 영웅담처럼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그 나이가 되어 그런 리더가 되어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곤 했다.

 

그들이 졸업을 하고 직장을 갔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다. 난 조만간 그들이 속한 곳에서부터 무언가 대단한 움직임이 생길 거라 기대했다. Home Coming Day처럼 올드 멤버들이 캠퍼스 후배들을 찾아오는 행사가 있는 날이면, 나는 그들의 '승전보'를 들을 마음에 가슴이 설레곤 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그들의 대부분은 나타나지 않았다. 간혹 들리는 이야기들만 무성했다. 취업이 될 때까지 나타나지 않겠다는 선배도 있었고, 때론 선배 중에 그렇게 자신이 비난하고 정죄의 화살을 던지던 불신자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릴 때의 철없던 열정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선배도 만났다.

 

솔직히 말해서 난 선배들에 대한 배신감 비슷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들의 신앙이 '영적 허구'였다며 그들이 캠퍼스 시절에 세웠던 칼날 그대로, 그 텍스트를 가져다가 그들의 컨텍스트를 해체해 버리고 싶었다. 그 모순된 삶의 방향에 딴죽을 걸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부끄럽지만 당시의 내 마음이 그러했다. 나에게 그들은 신화나 전설에나 나오던 영웅이었으니까.

 


<연애, 결혼, 그리고 육아>

 

내가 칼자루를 놓게 된 건 친 누나가 결혼을 하고 그 집에서 자취를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때 난 30대 전후의 가정의 문제에 대해 알게 되었고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 그 이후로 난 '생존'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경기가 나빠진 이후로 대부분 내 주변의 직장인들은 정상적인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지만 그에 비해 장래에 대한 보장은 더 희미해져 가고 있다. 항상 제2의 직장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가며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이 사회에서 심하게 휘둘리면서 말이다. 때론 자신이 그렇게 신봉하던 가치관의 혼란을 겪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변하기도 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이성 교제가 시작되고 대개 서로 직장을 가지고 있는 남녀 직장인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문화가 이끄는 대로 연애를 하기에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바쁜 가운데에서도 서로 시간을 맞추는 일부터 시작하여 백일, 이백일, 오백일, 천일 기념, 그리고 Valentine Day, White Day부터 시작하여 Yellow Day에서 '빼빼로' Day까지! 나름대로 의미를 담아서 챙겨야 한다. 사실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이런 기념일들은 기업들의 횡포로 인해 그 가치가 퇴색하고 있으며 각종 기념일마다 거리에 쏟아지는 소모적인 상품들은 마치 그러한 상품을 주고받지 않으면 친밀함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하나의 소비의 '장'을 형성한다.

 

결혼을 하고 나면, 이제는 집을 장만하기 위해 정신 없이 돈이 되는 일에 매달리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수도권에 살고 있는 맞벌이 직장인 커플의 경우에는 그것이 생존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 이유로 주식에 손을 대거나 아니면 자신의 직업 외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도 많다. 게다가 결혼을 하고 나면 두 집안 사이에 있는 경조사를 챙기는 일도 두 사람이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 중에 하나가 된다.

 

조금 안정이 될 때 즈음에는 아이가 생기고, 아이가 자라면서 육아에 대한 부담으로 여성의 경우는 직장을 그만 두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생후 몇 년 간은 아이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육아에 대부분의 관심을 집중하게 되고 아이가 크면서부터는 또다시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한 스타일의 교육 열풍에 휘둘리게 된다. (많은 부모들은 남들이 다 하는데 우리 아이만 바보가 되고 있다는 이상한 분위기에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는 듯 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 서로 관계를 맺고 그 가운데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하루하루 성실하고 자족하며 사는 것이 아름답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상을 시간을 배분하여 삶에서 필요한 일들을 하기 위해 나누어 쓰는 개념으로 따져본다면, 정작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미시적인 부분에서만 최선을 다하고 살아도 항상 부족함이 느껴지고 한계가 느껴지기 마련이다.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일수록 가까운 자신의 주변 관계 속에서도 부족함을 끊임없이 돌아보게 되고 그렇게 대부분의 기독 직장인들은 나름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분투하며 살고 있다. 내가 쉽게 생각한 것처럼, 그들은 사회에서 사라진 게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놀면서 삶을 향유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도 그들은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있을 따름이다.

 


<운동가의 편견>

 

직장인들의 반대편에는 운동가들이 있다. 내 주변에는 이러한 운동가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삶은 대부분 청빈하고, 검소하고 또한 소박하다. 대의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줄 알며 소비문화가 이야기하는 요구들에 둔감하다. 그러한 것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이며 그러한 것들에 휘둘리는 삶의 무가치함을 일찌감치 깨우친 탓이다.

 

그 분들과 함께 있을 때면 나는 항상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내 안에 그들과 같은 삶이 정답이라는 생각으로 인해, 그리고 나는 아직은 정답에 이르지 못한 삶 가운데 있다는 자괴감으로 인해서 오는 불편함 때문이다.

 

물론 그 분들이 금욕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버려야 할 것에 대해 미련을 갖지 않으며 이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 구조적인 악행들에 대해 자신의 아픔으로 여길 수 있는 거룩함이 그 분들에게는 있다.

 

사실 난 그 분들에게 어떠한 문제제기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음을 안다. 하지만, 나는 불편한 마음을 한 편에 두고서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겠지만 운동가들의 대부분은 일반적인 사람들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돌리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이 바뀌기 위해서는 많은 일반인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조금씩 변화가 이루어져야지만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별 문제의식 없이 소비 문화에 젖어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각성을 요구하는 운동가들의 의식은 그들의 정중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결국 '너, 똑바로 살아'의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 깊게 발을 들여 놓았고 그 안에서 허우적대며 살고 있다. 운동가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세상을 편하게 산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름의 삶은 누구보다 고단하고 스트레스로 가득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기독 직장인들은 미시적인 차원에서는 악행을 저지르는 일은 드물며 오히려 누구보다 더 자상하고 배려를 잘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운동가들은 어쩔 수 없다. '비도덕적인 사회'를 위해 대부분 자신의 미시적인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도덕적인 개인'에게, 힘들더라도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너, 똑바로 살아.'

 


<중간 지점을 모색하다>

독자들에 따라서는 약간 편향되게, 때론 과장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이제까지의 이야기가 내가 경험하고 있는 직장 생활의 이모저모이다. 꽤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직장인들이 사회에서 묻힐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변명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그리고 한편에서 내심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운동에 대해 이야기였다.

 

나는 복학 후에 저학년 때 나와 친했던 친구들 가운데 상당수를 잃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친구 관계는 그럭저럭 유지되었지만 많은 비전을 나누던 선교단체의 동료들을 잃었다고 표현하는 게 옳겠다. 그들은 폐쇄적인 공동체 생활을 하며 그 안에서 어떠한 경건의 훈련들을 모색했던 데에 비해, 당시의 난 기독인의 사회 참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문서운동이나 학내 문제, 기독 시민운동에 대한 고민들, 대안들을 모색하고 움직이려고 주변을 '충동질'했기 때문이었다. 내 주변에는 시위를 나가는 이도, 총학생회에 진출하겠다는 생각에 뜻을 같이 하겠다는 이도, 사회에 대하여 바르게 인식하고 기독인의 사회참여에 대해 그 대안들을 모색해 가자는 제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이도 없었다. 내가 내 것들을 포기해 감에 따라 주변의 기독인들은 그런 나를 부담스러워 했다.

 

다수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에 가까운 나를 '좌편향'으로 위치매김시켜 균형 잡히지 않은 부류라며 거리를 두었고, 가까운 리더들은 내가 가진 잣대로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려 한다고 생각하며 그런 식의 정죄는 시대착오적인 운동권의 잔재라고 충고했다.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기독학생이 정치적인 색깔을 드러내면 '급진적'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급진적' 복음주의라고..)

 

나는 이러한 일련의 문제의식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 90년대 선배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도리어 그들을 비난하려던 나의 시도는 비슷한 판에 속하게 되고 함께 공유하는 문화를 통해 조금씩 무뎌지게 되었다.

 

직장생활에 대한 글을 마치면서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까 한다. 사실 졸업 후에, 내가 복음주의 기독운동에 뛰어들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한국에서 기독운동을 하려면 한국 기독교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게 될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 판단으로는 한국의 복음주의권 보다는 한국의 진보 진영이 도덕적으로 더 깨끗해 보였고, 난 개혁을 외치면서 한국 복음주의권에서 주는 녹을 먹으면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보다 큰 이유는 기독 운동가들보다 기독 직장인들이 많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리고 최소한 한국의 복음주의를 변화시키는 것은 소수의 운동가들이 아니라 다수의 직장인들의 더디지만 전반적인 변화에 의해서일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캠퍼스에서 문서 운동을 하던 것처럼 직장인과 운동가 사이의 중간 지점을 설정하고 거기에서 서로의 벽을 허물고 어떤 적정선의 행동방식을 찾아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행동방식'이 직장인들 나름의 상황을 이해하고 거기에 걸맞는 선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다.

 

언젠가 직장에 갓 들어간 동기와 논쟁이 붙은 적이 있었다. 학생들의 사회참여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친구는 회사에 들어가면 QT조차 제대로 못하는 기독인들이 많음을 지적하면서 학생 시절에는 경건훈련이나 열심히 하고 사회인이 되어서 사회참여를 하라는 충고를 했다. 하지만, 결국 그런 나름의 공감할 만한 논리를 구사하던 그 친구도 4-5년이 지난 지금 사회참여를 하는 사회인이 아니라 단순한 직장인으로 수면에서 사라졌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과거 가진 것 하나 없던 시절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운동을 해 본 일이 없는 대부분의 기독 학생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사회에 들어가고 난 후에 미시적인 차원에서 너무 많은 책임과 관계에 얽매이기 때문에 적신일 때도 하지 못했던 운동성이 있는 행동은 엄두도 못 내는 채로 결국 주저앉기 마련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내 주변의 그런 친구들과 과거 영웅처럼 대하던 선배들의 적절한 운동성을 살리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내가 회색지대에 머무는 이유일 게다.**

2003/09/01 23:25 2003/09/0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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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4): 직장생활 보고서 (2) (2003. 6.)

/ 김용주


<성(性)적인 문제>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한 선배를 오랜 만에 만났다. 반갑다는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가 무르익을 때쯤 회사생활에 대해 물었다.

“며칠 동안 프로젝트에 시달리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만 너무 피곤하더라고. 그래서 마사지를 받으러 갔지. 근데 글쎄 거기서 하는 말이 2차를 가든 안 가든 2차 가는 돈까지 내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그냥 왔어?”
“아니. 2차 갔어.”
“…”

나 이가 들수록 뉴스에서만 보던 이상한 일들이 가까운 주변에서 일어난다. 폭탄주도 그렇고 이런 ‘출장 마사지’도 그렇다. 휴학 후 잠시 있었던 회사에서는 직장 선배들이 내게 ‘총각딱지’를 떼 주겠다고 안달이었다. 회식자리가 끝나고 2차를 간다고 할 때마다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직장인 남성들에게 이러한 성(性)적인 문제는, 회사를 갓 들어가서 겪는 꽤 피하기 힘든 유혹처럼 보인다. 난 기독인이지만 불신자인 친구들도 많았고, 캠퍼스를 떠나 있는 동안 여러 부류의 사람들도 만났다. 기독인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불신자들은 30대를 전후하여 이러한 환경에서 성적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회사에서 남자 직원들 사이에 포르노물이 담긴 CD가 도는 것은 정말 흔한 일이고. 스포츠신문에서 연일 비밀처럼 보도되는 그런 내용의 비디오나 사진 파일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신기할 정도로 많이 퍼져있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그런 류의 음란물을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문제는 지위고하나 교육수준을 막론하고 모든 남성들이 피하지 못하는 유혹이 되고 있다. 병원에 의료기를 납품하고 있는 친구 중 하나의 말이, 자기가 거래하고 있는 병원의 의사가 물건 납품 시에 그런 음란물을 요구했다고 한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음란물에 나오는 사람이 한국사람이어야 한다는 둥, 꽤나 구체적으로 자신의 기호를 밝히더라는 것이다!

갓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직장 남성들은 과도한 일에 쫓겨 자신의 시간을 제대로 쓸 수 없을 때가 많다. 능력 있고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일수록 업무량과 출장이 많으니 그만큼 대인관계를 맺을 시간을 부족해지고, 그러한 연유로 많은 남성들이 이성과의 친밀한 관계에 대한 갈급함을 다른 방향으로 충족시키려는 듯 하다. 스포츠와 같은 활동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고 열린 공간에서 주변 사람들을 사귀는 이들도 있지만, 만성적 피로와 스트레스에 지친 상당수의 직장 남성들은 마사지나 술자리에서 성적 유혹을 받기 쉽고, 혼자 있는 시간에 음란물들을 탐닉하기 쉽다. 더욱 문제인 것은 직장 생활에서 남성들의 생활 구조가 그러한 유혹을 현실화시키는 데에 구조적으로 아주 적합하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구조 속에서 직장 남성들이 쉽게 자신의 욕구해소의 방편으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인격적 관계없이 물질로 성적인 욕망을 해결하는 습관이 들게 되면 결혼 후에도 그것을 멈추기가 힘들게 되는 것 같다. 회사에서 나와 친했던 선배는 결혼 후에도 술자리에만 가면 2차에서 그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다음날 출근해서는 아내와 자녀에 대한 죄책감이 들어 자신을 정죄했지만 내가 근무하는 동안 그의 습관이 완전히 근절되지 않았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문제의 소지가 있겠지만 나는 한편으로는 이러한 비인격적인 행동이 오히려 낫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정당하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고 그런 남성들의 문제에 면죄부를 줄 생각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일부의 정이 많은 불신자나 기독인에게 주로 나타나는 또 다른 유혹이다. 이는 서로 잘 아는 이들 사이에서 많이 생기는데 그것은 기혼자 ‘사내 커플’의 문제다! 이른 바 결혼한 직장인의 ‘이성친구’에 대한 문제인데 이것은 두 사람 사이의 인격적인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 지속적이고 그 영향도 앞서 이야기했던 것들보다 크다. 내가 아는 회사의 이성 커플 중 자신의 가정에 두 사람 사이가 알려진 경우에는 모두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기독인의 경우, 회사에서도 일 중심적이기보다는 관계 중심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하는데 직장의 이성동료에 대한 그러한 애정 어린 관심과 도움이 지속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기도 한다. 간혹 교회의 목사님들이 여성도와 문제가 생기는 시발점은 오히려 좋은 동기에서 발생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기혼자의 경우에 발생하는 이런 문제는 가정에 치명적이며 그리스도의 섬김이라는 긍정적인 시도가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감시와 처벌>

이번에는 개인의 윤리적인 문제를 넘어서 직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 보자. 신입 사원이 대기업에 처음 입사를 하면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감시가 시작된다. 사원의 행동이나 버릇과 같은 반복적 패턴, 그리고 일을 대하는 방식, 말투와 같은 세세한 부분이 정리가 되어 인사를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사원들에게는 출입증이 발부되며 그 출입증은 회사 내에서는 직위를 상징하는 표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장된 칩을 통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가볍게는 화장실에서 잠을 잔다거나 혹은, 외근을 나갔다가 사우나를 간 경우 그 내역이 상부에 보고된다. 회사에서 나가는 일련의 메일들은 모두 그대로 복제되어 사내에 보관된다. 이러한 메일은 회사내의 기밀이 외부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통제수단이지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면 개인의 사생활까지 감시할 수 있는 도구적인 기능도 할 수 있다. 사무 자동화가 이루어진 이후로 회사는 직원들로 하여금 높아진 담을 두고 각기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한편, MSN 메신저나 출입증으로 각 개인을 매 시간 체크한다. 또한 근무시간에 자리를 이탈한다거나 업무 외의 일로 시간을 보내는지 감시하기 위해 자신이 속한 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의 직원들이 수시로 돌아다니면서 각 사원들을 체크하고 그 내역을 작성, 보고한다. 이러한 보고는 다시 인사팀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며 이후의 인사고과에 참고자료로 쓰이기도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는 무슨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나 “메트릭스”와 같은 영화 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아니면 어느 정도 공감을 할 수도 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는 나도 잘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접한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조합하면 위와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나는 이 이야기가 충분히 사실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지 금도 후불제 교통카드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경우 특정한 날짜와 정확한 시간에 다녀간 장소를 알아낼 수 있다. 휴대폰을 켜 놓은 상태에서는 실시간으로 그 사람의 위치 추적도 가능하다. 예전에 특정 번호의 휴대폰 서비스업체에 가입한 사람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웹사이트가 잠시 개설되었다가 개인의 정보문제로 사라진 사례가 있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에도 행방불명 된 사람들 중 일부는 켜져 있는 휴대폰의 신호로 알아냈다는 기사 또한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간단한 프로그램으로 다른 컴퓨터의 정보를 가져올 수 있으며, 회사 내에서 외부로 나가는 메일은 검색어를 통해서도 걸러내거나 내용을 복사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란 얘기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서 손쉽게 사원들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당장에 쓰지 않겠는가.


<섬길 것인가 섬김을 당할 것인가?>

여전히 복음주의권에서 직장 윤리를 이야기할 때는 직장을 다니는 기독인 개개인의 섬김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복음을 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되어 회사에서도 동일한 섬김의 삶을 살 때 그 직장도 변화될 것이라는 청교도적인 믿음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듯 하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항상 그러한가? 개개인의 도덕성이 회복되고 조직에 충성되게 일하면 그 조직의 도덕성이 높아지는가? 이 즈음에서는 라인홀트 니버의 유명한 책이 떠오른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 경험을 곁들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당시는 의욕적으로 회사 생활을 잠시 하던 시기였다. 그때 나는 복음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나는 그 동안 내가 헛된 믿음 속에서 공허한 섬김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깊게 깨닫고 있었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성화되고 있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성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욕구가 더 컸고, 은연중에 스스로가 더 선해지기 보다는 더 선하게 보이면서도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방법을 익히며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해 가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그 동안 그렇게 자신했던 기독인의 삶이었음을 발견하면서 나는 깊이 뉘우쳤고 새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럴 때 즈음에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나는 뭐든 일이 있으면 “제가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연발했다. 나는 성실함과 능력, 그리고 섬김의 모습으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일 때 진정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커피를 뽑는다거나 문서의 복사, 팩스 보내는 일이나 전화응대 같은 다소 귀찮고 무료하게 시간이 소모되는 일들이 하나씩 내 일이 되어 갔다. 다른 직원들은 처음에 나의 선행에 좋은 말들을 해 주곤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모두가 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점점 하루 종일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만 갔고, 결국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을 마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어 자주 초과근무를 하는 일도 생겼다. 나중에는 복사지나 커피가 떨어졌거나 복사기가 고장이 난 경우에 사람들은 나에게 불평을 하기 일쑤였고 그런 상황에서 나는 작은 일 하나 제대로 못한다는 타박마저 들어야 했다. ‘그래, 이런 게 섬김의 길이야. 처음부터 칭찬을 기대해서 한 일이 아니었잖아.’ 나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조금씩 발생했다. 내가 일과의 대부분을 허드렛일과 씨름하며 보내는 동안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다른 이들은 나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동일한 시간의 대부분을 나는 발전적이지 않은,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들을 했던 반면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내적인 가치를 높이는 일에 전념했다. 그들은 나와 달리 때로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고 때로는 기대하지 않은 성과를 내며 상사의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결과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한 가운데 그 사람은 그 조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커 갔고, 나는 언제든 다른 어떤 사람과도 맞교환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이는 그 조직의 사람들이 특별히 악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떤 조직에 들어가던지 내가 그 때와 똑같이 행동한다면 그 조직도 똑같이 나를 대접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기업이라는 조직의 특수성에 기인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비영리 단체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기업은 이윤추구가 그들의 궁극적 목표다. 그것이 기업의 진리인 셈이다. 기업에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일이 있다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주저하지 않고 선택하며 그 일에 투자한다. 물론 투자의 과정까지 여러 부분을 재어보고 결정하겠지만 그 결정의 궁극적 잣대는 기업의 이익이다. 대부분의 사원들은 자신의 충정을 기업의 조직원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조직원들의 총합(summation)으로 이루어진 조직은 그러한 자신의 충정을 헤아리고 적절한 대접을 해 주리라고 믿는다. 적어도 과거 우리 아버지 세대의 분들은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회사는 각각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기계와 같다. 각 부품의 수명이 다했거나 그 부품보다 더 좋은 모델이 나왔을 경우에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새 부품으로 교체한다. IMF 체제 속에서 많은 이들이 이러한 부품 대접을 받고 망연자실했다. 이럴 경우 때로는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릴 정도로 그 충격은 클 수 밖에 없다. 매일을 내 집처럼, 아니 내 집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던 회사에서 자신의 자리가 사라져 벼렸을 때의 심정이란, 당해보지 않으면 그 느낌을 헤아리기가 힘든 것 같다. 기업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섬김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이런 면에서 어찌 보면 어폐(語弊)가 있는 듯하다.


<기업의 모듈화, 책임감 없는 기독 직장인>

기업의 풍토도 변화하고 있다. 한 기업의 사활이 이제는 가치사슬을 중심으로 서로 얽혀 있는 것이 최근 기업의 모습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현대 사회에서 기업은 가치 사슬(value chain)을 중심으로 고객업체와 공급업체, 소비자, 그리고 하청업체가 서로 ‘다대다’ 관계로 얽혀있는 extended-enterprise(확장 기업군)으로 존재한다. 이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기업 이윤추구에 도움이 되는 일에 투자하며 그 투자는 다시 전략적인 제휴로 이어진다. 장기적 안목에서 모든 거래가 행해진다.

이러한 거대 기업군 사이에서 개인의 생존전략도 치열해진다. 내 주변만 보더라도 선배들의 직장이 3년~5년을 주기로 변화한다. 고객업체의 기업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공급업체로 회사를 옮기는 경우도 있다. 대개는 급여를 기준으로 전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교육을 시킨 직원들이 다른 회사로 옮기는 일이 잦아지면서 채용 시부터 업무를 바로 수행할 수 있는 직원을 선호한다. 기업 환경은 갈수록 전문 분야에서 능력 있고 탁월한 사람이 살아남는 자유경쟁 구도로 변화하고 있다. 기업에서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각 개인은 자신이 다른 직원으로 대체될 수 없는 중요한 업무 수행에서 탁월함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런 사람의 경우에는 다른 기업에서도 선호하는 직원으로 꼽힌다. 순수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개인의 능력에 따라 기업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조직의 구조 자체에 그러한 자동화된 프로세스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는 동적 하부구조를 가진 거대 기업군에서 실력자로 생존하기 위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몸부림치고 있다. 이미 어느 정도의 판을 꿰뚫고 있는 이들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가며 생존 전략을 몸에 익히며 빠르게 ‘직장’ 사이를, 혹은 ‘직종’ 사이를 가로지르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살아간다. 역시 문제는,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는 기독학생들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선교단체 출신의 기독학생들은 회사에 들어가서 하는 말이 있다.

“저, 잘 모르는데요.”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다음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가 아는 거의 모든 기독학생들은 겸손하다.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결과물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는 대부분이 기독 공동체에 있을 때부터 항상 고백하기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므로 나는 한 일이 없다’는 소스 코드를 기업에 가서도 동일한 연장선 상에서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듯 하다. (물론 나는 그런 고백을 하는 사람의 선의를 믿으며 또한 분명 그 고백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회개와 용서의 신학을 그릇되게 적용하려는 행동의 위험성이다. 기업은 인격적이지 않다. 또한 기업은 실수와 잘못에 대해 냉정하다. 기업에서 용서란 없다. 단지 투자의 가치를 판별할 따름이다. 기독 공동체에서 훈련 받은 많은 학생들은 잘못에 대해 너그럽다. 일 처리에 있어서 잘 마무리하지 못하고 그 순간을 도망쳐 나온다 하더라도 다시 공동체로 돌아와서 잘못을 인정하는 회개의 고백을 하면 공동체는 너그럽게 용서하고 다시 그 지체를 일원으로 반겨왔다. 따라서 상당수의 기독학생들은 일의 마무리를 잘못하며 때로는 지나치게 무책임하다.

기업은 다르다. 한 개인의 오판이나 일 처리의 불완전함은 그 기업의 생존을 좌지우지한다. 단돈 몇 푼이라도 투자를 적게 해야만 다른 경쟁업체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이는 단순히 이윤을 더 남기냐 덜 남기냐의 문제가 아니라 동일 직종의 여러 기업간 경쟁에서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된다. 따라서 한 개인의 실수가 그 기업에 치명적일 수 있으며 그러한 풍토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곧, 자신을 그 기업에서 다른 직원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고백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에 언급했던 기독 학생들이 흔히 쓰는 ‘회개’의 표현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겸손함의 표현이라거나 혹은 잘못한 일에 대한 용납을 기대하는 의미로 사용했을지는 모르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은 타인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원이며 이러한 일이 반복될 수 있음을 암암리에 반증하는 것이 된다. 자신의 복음주의적 고백이 결과적으로 기업의 입장에서는 ‘도태’를 의미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듯 이런 일련의 변화 속에 기독학생들은 무방비로 사회 속에 내몰리는 경향이 있다. 선교단체에서 교육받은 대로 직장을 섬기기에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동료집단 속에서 성적 문제와 도덕적 문제에 봉착하면서 그것을 고민하고 날마다 자신을 악한 세속 사회에서 지켜가는 것만으로도 다분히 지치고 좌절하기 쉽다. 섬김의 삶과 실력을 쌓는 삶 가운데에서 오는 불협화음과 혼란들은 시시때때로 기독인의 정체성을 뒤흔든다. 기업은 그러한 개인을 쉴새 없이 감시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한 개인은 때론 흔하게 쓰던 복음적인 고백들이 ‘무능’이라는 딱지를 달고 나아가 그러한 오점들이 인사고과에 반영되기까지 한다. 갈수록 삶은 복잡다단해 지고 있으며 복음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야심찬 기대들은 최소한 그 판을 읽을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 될 것 같다. 우리의 직장이 그렇다. (계속)**
2003/06/01 23:24 2003/06/0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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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3): 직장 생활 보고서(1) (2003. 5.)

/김용주


<“커피”의 추억>

휴 학을 하고 잠시 회사를 다닐 때의 일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5-6년 전인 그 때에는 여직원이 커피 심부름을 하기가 일쑤였다. 물론 지금도 신문지상에서 간간이 커피 심부름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여전한 관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때는 여직원의 커피배달(?)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였다는 것이다. 아무튼 내가 있던 부서의 과장은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그리고 손님이 찾아오거나 회의가 있을 때 수시로 여직원에게 커피를 뽑아오도록 시키곤 했다.

“OO야, 커피 좀 뽑아와라!”
“네, 과장님.”

처 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상황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일단 남자직원은 커피 배달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이나 역할 분담에 대한 고민을 해보지 않는 게 신기했다. 게다가 가까이에서 지켜본 커피 심부름은 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과장은 커피를 가져온 여직원을 마치 다방 아가씨 대하듯 할 때가 많았다. 커피를 뽑아 와서 책상 앞에 놓을 때 과장은 야한 농담을 건네기 일쑤였다. 옷차림이나 화장에 대해 타박을 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손을 잡거나 허리 같은 몸의 부위를 두드리기도 했다. 간혹 보이는 커피 접대의 장면에서 나는 상당히 마음이 안 좋았고, 당사자의 입장에서 매일 아침을 불쾌한 마음으로 시작해야 하는 고충이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과장은 사전에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도록 여직원이 일도 잘하고 싹싹해서 칭찬해 주려는 거라고 웃음 섞인 말을 직원들 앞에서 크게 떠들어댔고 사람들은 그저 평상적인 웃음을 보이고 자기 일에 집중하며 상황은 무마되곤 했다.

어느 날 나는 젊은 혈기로 뭉친 의협심이 발동하여 여직원에게 가서 말했다.

“과장님 커피 제가 뽑아다 드릴게요.”

사실,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그 여직원은 커피 뽑는 문제로 상당히 예민해져 있었다. 나는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녀는 상처가 쌓여서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했던 듯 했다.

“그럼, 앞으로 커피 심부름은 용주 씨가 다 하세요!”

그 렇게 말하고는 획 하고 돌아서는 여직원에게 내가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사실 당시의 나는 솔직히 말해서 약간의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뿐이었지 매일 커피 심부름이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약간의 도움으로 회사에서 여직원을 위하는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도 받고 싶은 동기가 내 안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여직원이 그렇게 나오자 나는 불쾌해졌다. 괜히 나섰다가 덤태기를 쓴 것 같아 솔직히 약간 분한 마음이 들어서 그 여직원이 나간 곳으로 따라 나갔다. 너무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려고 나갔는데 그녀는 화장실 뒤뜰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게 아닌가! 난 내가 임시직이긴 해도 직장에서 특권층인 남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 여직원은 열심히 공부하고 커다란 포부로 회사에 들어와서는 커피 심부름으로 매일같이 과장에게 불쾌하게 희롱 당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선의는 같은 부류인 한 남자의 비아냥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결국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사무실로 돌아왔다.

대신 다음 날부터 과장이 여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면 내가 재빨리 커피를 뽑아다가 과장을 갖다 주었다. 그러자 이번엔 여직원의 입장이 좀 난처해지는 것 같았고, 다행히 여직원은 나의 선의를 ‘인정’해 주어 이후로는 역할을 분담하게 되었다. 커피 심부름은 내가 하되 과장에게는 여직원이 직접 가져다 주는 팀웍을 구사했던 것이다. 그게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변화시키진 못했지만 적어도 여직원의 마음은 누그러뜨려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커피를 가져가는 타이밍에 생기는 문제 때문에 나는 되도록이면 결제 서류 같은 것을 여직원이 커피를 가져가는 시간에 과장에게 보여주곤 했다. 타이밍이 항상 잘 맞은 건 아니었지만 내가 결제 서류를 보여주는 사이에 여직원은 그냥 나오면 되니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었던 듯 하다.

 
<여직원은 접대부?>

직 장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치게 미시적인, 그것도 ‘커피 배달’의 추억으로 시작하는 것에 김이 빠지는 독자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직장 경험 이후 시간도 많이 흘렀고 이제는 성희롱이나 커피 접대 같은 일에는 여직원이 보호 받는 풍토도 많이 조성되어 철 지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신문에서 교장이 여교사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면서 출세하려면 그런 것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냐는 식의 말을 당당하게 했다는 기사를 보면 불편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직장을 이야기할 때 여직원의 복지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것부터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나에게 이 보고서는 기만적이란 생각을 한다. 사실 이 글의 처음에 들었던 개인적 경험은 그나마 잘 풀린 사례다. 내가 경험했던 직장생활에서 항상 그렇게 좋게만 풀리진 않았다. 참다 못한 여직원이 회사생활의 꿈을 접고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도 허다했다. 나 스스로도 가부장적인 직장 생활에서 다른 남자 직원처럼 몸을 사린 기억도 많다.

저 유명했던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박노자 교수는 한국의 남자들이 군대라는 조직을 통해 어떻게 형질이 바뀌는지를 잘 설명해주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국의 남자들은 군대라는 조직을 통해서 이후의 직장생활에서 마주치게 되는 대인관계, 그리고 사회 속의 조직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교육받게 된다. 회사라는 조직에 가서도 직장 상사는 단순히 자신보다 연배가 높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나 업무의 최종 책임을 지고 나에게 필요한 업무들을 지시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군대에서 겪은 고참처럼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이른바 “까라면 까라”는 관계가 형성되고, 상사가 하는 말은 곧 법이 되며 절대 복종의 대상이 된다. 상사의 직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군대에서 경험한 계급과 동일한 관계 계산법이 머리 속에서 작동하게 되고, 그런 전근대적인 회사 조직은 직원들에게 야근을 시켜가며 밤새도록 ‘굴리기도’ 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 회사라는 조직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대상은, 군대경험이 없고 신체 조건에서 불리한 연약한 여직원이 된다. 남자 직원은 3년간 그런 상명하복의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서 직장 생활을 무난하게 하는데 여직원은 다르다. “까라면 까”야 되는데 까라면 눈물을 흘리기 일쑤고, 야근을 꺼려하고 임신, 출산 및 육아 휴직에 아이들을 놀이방에 보내고 늦게 출근하는 일도 다반사이다. 이윤추구가 목표인 회사에서 여직원의 그러한 요구들은 눈에 가시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전근대적인 회사일수록 여직원을 채용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들이 존재하게 되고, 그런 연유로 면접 시에 여직원의 외모나 키, 나이 같은 것을 은근히 조건으로 내세우는 황당한 일을 저지르곤 한다. “여직원이 회사 생활을 하려면 부엌일도 잘 하고, 커피도 잘 타고 나긋나긋해야지”라고 말하는 데에는 그러한 가부장적인 직장 분위기의 폭력성이 드러나 있다. 이건 한 마디로 기업에서 ‘접대부’를 고용하겠다는 뜻이다.

최 근에는 나도 이러한 관행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대학원에 들어온 지금은 그런 환경에서 멀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에 주변에서 취업을 하는 여학생들이나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의 아내 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경험하던 불합리한 상황들은 많이 사라졌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복지 문제에서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직장에서 남성과 동등한 위치로 여성들이 경쟁을 하고 있다면, 아니, 보다 원색적으로 말해서 회사가 여사원을 단순히 ‘접대부’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조직 구석 구석에는 능력 있는 여성들이 많은 남성들과 더불어 이름을 날리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최소한 비슷한 수의 여성들이 회사에서 남성들과 함께 사회 생활을 영위하고 있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의 이른바 고위직에 남성과 비슷한 수의 여성들이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 교수 사회를 예로 든다면, 여 교수가 형편없이 부족한 대학에는 교수직 선출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지속적인 상징적 폐기가 그 조직에 암암리에 고착화되어 있었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대개 이런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전반적인 회사에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여성을 폄하하곤 했는데, 내가 직장 생활을 통하여 체험한 여성에 대한 상징적 폐기의 방식에는 몇 가지의 유형이 있다. 대충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여성들은 업무 시간에 잡담을 하거나 커피 자판기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
2. 여성들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여 사적인 문제가 생기면 업무의 능률이 떨어진다.
3. 여성들은 업무 시간에 개인적인 전화를 너무 오래 한다.
4. 여성들은 결혼 후에는 사직할 확률이 높고 대체로 3-5년 정도 이상 장기 근무할 생각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 론 위와 같은 나열을 어떤 일반적인 유형으로 상정하자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까지 전문적인 통계수치를 가지고 이 문제를 연구하지도 않은 입장에서 나는 단지 내가 경험한 직장 생활의 특수한 경우를 이야기하려는 것뿐이다. 하지만, 주변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회사에서 여성을 평가절하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그런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지나치게 여성들에 대한 부정적 선입관이 포함되어 어서 그러한 정서는 다소 고쳐져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나는 위와 같이 이야기하는 바로 그런 회사에서 도리어 여성에게 허드렛일만을 강요한 결과는 아닌가 하는 되물음을 던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인 여성의 분투를 바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나는 내가 여성이었으면 글을 쓰기에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겪게 될 문제가 아님으로 인해서 “힘들더라도 우리 이렇게 해쳐나가 보자!”는 식의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따라서 결국 이런 식의 문제제기는 “그런 거 다 알고 있는 일이야. 신문지 상에서도 매일 접할 수 있고 나도 매일 겪는 일이지. 하지만 단순히 흥미거리로 만들기 위해서 이런 글을 쓴 게 아니라면 무슨 나름의 해결책이라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비판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 생활 보고서의 시작을 내가 어떤 대안을 이야기할 수 없는 직장 여성 문제로 시작하게 된 것은 처음에도 말했듯이 직장에서 여성의 복지 문제를 도외시하고는 직장을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비중이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성들의 입장에서는 이를 가볍게 여기고 이전과 동일한 사내의 가부장적 정서로 직장 여성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글을 쓰는 동기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무런 인식 없이 직장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기독인 여학생들에게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보자는 의도이다. 그리고 나름의 대안들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최소한 적진의 지도조차 없이 들어갔다가 낭패를 보는 일은 겪지 말고 지형의 가장 나쁜 경우가 이렇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마음의 준비와 나름의 행동지침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램이다. 특히 기독 선교단체 출신의 여학생들의 경우에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공동체 형제들의 보살핌 속에서 생활하다가 갑자기 바뀐 환경에 당혹스러워하며 상처를 받고 적응하지 못하여 결국에는 안타깝게 회사 생활을 접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대학 지성사회로의 부르심을 입은 기독인 여학생들도 직장 생활의 부르심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여성들의 직장 문화와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을 도피하지 않고 분투하는 일에 함께 대응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03/05/01 23:10 2003/05/0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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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2): 캠퍼스 보고서 (2003. 3.)

/김용주


<변화된 캠퍼스 전경>

아 직도 가끔 생각나는 건 복학을 한 첫 주의 캠퍼스에서 받은 충격이다. 수강신청 시에 신청서를 써서 과사무실에 제출하던 과거와는 달리, 전산실에서 학번과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각 수업을 조회하여 그 과목의 학수번호를 입력하여 신청하게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전에 학수번호 검색을 이미 마친 상태로 왔고, 나는 한참동안 과목들을 검색한 후에 신청 버튼을 눌러야만 했고 그 사이 대부분의 인기있는 과목은 이미 정원이 다 차버리기 일쑤였다.

수업 첫 날, 나는 정말 별천지에 온 것 같았다. 수업 당일에 교제까지 알아서 챙겨온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수업 자료는 웹 페이지에 링크를 시켜놓았는데 PDF 파일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둥, 숙제는 교제의 뒤에 첨부된 소프트웨어를 컴퓨터에 설치하여 프로그램을 돌린 후에 생성된 파일을 언제까지 칠판에 공지된 ftp주소에 올려 놓으라는 둥, 텀프로젝트(Term-Project)는 언제까지인데 코딩은 C++이나 자바로 하고, 발표자료는 파워포인트로 하라는 둥, 이런 저런 수업소개를 하는 교수의 말을 들으며, 나는 마치 외계인을 만난 것 같은 낯선 느낌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식의 수업진행이 보편화되었지만, 90년대 중반에 학교를 다니다가 공백기간을 거쳐 다시 돌아온 캠퍼스에서의 학업과정이 당시에 내게는 그렇게 낯설기만 했다.

공강시간마다 지나다니는 복도에는 직접 손으로 쓴 대자보와 동문회 소식지들 대신에 깔끔한 디자인과 색상으로 포장된 학기 중 인턴사원을 모집한다는 대기업의 홍보물과 토플, 토익 같은 어학 특강 공지로 매워져 있었고, 도서관에는 고시 준비에 필요한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자리들로 가득했다.

예전과는 달리 수업을 들어가자 각 학과마다 전과생과 편입생들의 수가 늘어나 있었다. 학과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평균 연령도 높아진 편이며 이런 학생들의 경우, 캠퍼스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노련함이 돋보일 때가 많았다. 학과는 대부분 학부로 변화되었고, 한 학부 당 평균 인원 수가 100명 이상이 되면서 선후배간의 친밀함도 줄어들었다.


<캠퍼스 시험 문화 보고서>

캠 퍼스 생활을 하면서 나는 전과는 다른 몇 가지의 점들을 발견했는데, 그것 중의 하나는 시험이었다. 나는 처음 학교에 들어가서는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과에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수강신청을 한 후에 전공 중에 자신있는 한 과목씩을 맡아서 그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그것을 20-30분 정도 다른 학생들에게 설명해주고 중요한 부분을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그런 모임의 장점은 아무리 모임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자기가 공부한 과목은 높은 학점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대부분 학생들은 도서관이나 집에서 시험 준비를 하거나 때로는 동아리 방이나 과방에서 그룹별로 모여서 함께 공부를 하는 일이 많았다.

복학 후부터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시험문화도 변화했다. 요즘 학생들은 지속적인 그룹별 활동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지속적인 스터디보다는 단회적인 시험에 잘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한 면에서, 시험을 칠 때 실력 검증보다는 정보의 ‘선점(先占)’에 더 큰 에너지를 쏟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학생들은 시험 전에 해당 교수의 연구실에서 주로 중요한 정보들을 얻는 것으로 시험준비를 시작한다.

소개팅 이나 술자리를 통해 연구실의 조교들과 친분을 쌓는 일도 많고, 시험기간에는 조교들이 그런 식으로 친해진 학생들에게 평소 교수가 자주 출제하는 문제나 출제 방식에 대한 것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물론 이런 정보들을 가진 노련한 학생들이 무식하게 책 한 권을 다 읽은 학생들보다 시험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시험 기간에는 어쩔 수 없이 학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에 앞서 누가 시험문제를 출제하는가 하는 문제와 그에 대한 정보를 누가 먼저, 그리고 주변에 알리지 않고 얻는가가 시험의 변별력을 높이기까지 한다. 과장되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나도 고민 끝에 그런 흐름에 합류했다. 더 이상 스터디 모임은 유지되기 힘들다고 판단했고, 일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어렵게 얻은 시험관련 소스들을 주변 친구들에게 오픈하는 방법을 택했다! 나의 목적은 그런 식의 자료들을 가진 소수가 그 과목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숙지한 학생들보다 높은 점수가 나오지 않도록 정보전에서의 변별력을 줄이는 데에 있었다. 초반에는 좋은 변화들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소스를 공개하는 나에게서 정작 중요한 정보들이 멀어지는 일이 생겼다. 전문용어로 ‘왕따’가 되었다고나 할까.


<캠퍼스 ‘보고서 문화’ 보고서>

나 는 학부에 있을 때, 스탠리 그랜츠와 같은 복음주의권 저자의 영향을 받고있던 터라 되도록이면 신앙과 학문을 연결시킬 수 있는 과목을 주로 선택했고, 보고서는 그런 관점에서 썼다. 보통 중간이나 기말 보고서의 경우 20일에서 한달 정도가 소요되었고, 분량은 A4용지 20장 내외 정도를 썼다. 물론 내가 제출한 보고서는 한 번도 최고점수를 받아본 일이 없었다. 보고서 자체가 부족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종교적 시각을 드러내는 글은 논리 이전에 평가절하되기 일쑤였고 레퍼런스에 기독서적이 포함되는 것도 학문적 신뢰도를 낮추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나는 항상 그런 평가에 오기가 생겨서 강사가 요구하는 수준의 참고서적과 더불어 소위 복음주의권에서 관련 연구가 어느 정도나 진척되었는지 함께 공부를 병행했었다. 물론, 결과는 항상 내게 실망감을 가져다 줄 때가 많았다. 돌아보면 한 과목당 함께 읽은 책은 6-8권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보고서도 내가 선호했던 ‘텍스트 기반’의 작성 스타일에서 ‘하이퍼텍스트 기반’으로 달라졌다. 더 이상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다. 보고서도 이제는 정보전(情報戰)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에서 구글(google)과 같은 전문 검색 사이트를 참조하는 물론이고, 해당 과목에 대한 보고서를 공유하는 전문 사이트들도 즐비하다. 회원가입절차를 거치면 전공과 교양 과목에 따라 분류된 대로 해당 보고서에 대한 검색이 가능하다. 정확히 일치하는 주제는 물론, 운이 좋은 경우에는 해당 교수가 높게 평가했던 바로 ‘그’ 보고서까지 조회가 가능한 경우도 있다.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소스 파일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잘 찾아낸 후에 Copy & Paste 작업을 거쳐 조금만 편집하면 훌륭한 보고서가 된다. 문제는, 그 분야에 대해 꾸준히 텍스트를 읽고 나름대로 한계를 느껴가면서 작성한 보고서보다 전자가 훨씬 양이나 질적으로 우수한 경우가 많다. 때때로 교수들도 공공연하게 잘 편집한 ‘짜집기 보고서’에도 좋은 점수를 부여하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물론 개중에는 이런 식의 보고서를 받기 싫어하는 교수들이 직접 손으로 쓰는 것을 고집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전통적인 학업방식을 고수하는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뒤쳐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러한 하이퍼텍스트 기반의 보고서 작성에 어느 정도 익숙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보고서를 학점에서 일정한 퍼센티지를 차지하고 있는 숙제 정도로 생각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수많은 복제된 보고서를 양산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은 수강신청 때부터 공부해보고 싶던 분야를 찾기 보다는 취업 준비와 고시 준비로 바쁜 자신의 시간을 감안하여 취득하기 수월한 과목을 정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과목의 보고서들은 그 내용에 맞는 컨텐츠를 찾아서 적시에 제출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수 업을 듣는 학생에서 수업을 가르치는 교육조교가 된 내 위치에서, 나는 되도록이면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결국 얻게 될 지식은 무엇인지, 그것이 장기적으로 이 과목을 이해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를 되돌아보도록 권면하려고 노력한다. 결국 이 모든 문제의 해결은 기본적 동기의 점검일 수 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캠퍼스에서 깊이있게 학문을 대하는 자세가 절실하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선교단체 기독대학생의 또다른 학업 문화 보고서>

선 교단체의 학생들은 정확하게 일반 학생들의 세계관에 역행한다. 물론 기독학생들도 이중적인 잣대가 생기게 되긴 하지만 일단 원론적으로는 정반대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의 학생회의 배경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생들은 기독공동체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친밀한 유대관계를 쌓아가며 수련회를 통해 기독교의 기본적인 영성훈련과 공동체성을 습득함으로써 상당한 부분을 공급받게 된다. 예전처럼 동문회가 캠퍼스 문화의 큰 영역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 공동체는 어떤 면에서는 캠퍼스에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데 큰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이들이 캠퍼스를, 그리고 학업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들은 캠퍼스를 전도의 대상이자 영적 전쟁터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학업보다는 공동체를 견고히 하기 위한 일들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어 앞서 설명했던 캠퍼스 문화권에서는 멀어지게 되며, 점차 폐쇄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리잡아 간다.

나는 공대에서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3학년 때에는 정말 바빴다. 바쁜 일정들 때문에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매주 전공과목은 과제들이 쏟아졌고, 학업과 공동체 자체 모임, 기연과 복상 독자모임으로 정신이 없었다. 결국 때로는 팀 프로젝트를 하는 경우에는 팀에 속한 친구들의 도움을 받게 될 일들이 생기기도 했다. 사실, 선교단체의 리더들에겐 이런 일이 다반사이다. 내가 아는 소위 공동체에서 인정받고 탁월하다는 리더들은 학과에서는 아웃사이더거나 학업을 등한시하는 학생으로 각인된 경우가 더러 있었다.

물론, 그런 학생들은 고민과 갈등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신자의 ‘고난’이라 여기고, 학업을 하나님 앞에 포기해야 할 자신의 ‘이기적인 무엇’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다른 리더들은 지금 함께 기도회를 하고 하나님을 애타게 부르짖고 있는데, 내가 시험기간이라고 더 중요한 기도모임을 뒤로한 채 공부를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내가 시험공부를 포기하더라도 저들의 기도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의무이자 기쁨이 아니겠는가? 매 순간마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기독학생들은 캠퍼스에서 무능력한 존재로, 그리고 이원론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시험(test)기간에 학생들을 시험(temptation)하는 선교단체들의 무리한 모임 일정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 주변에는 그런 친구들이 상당히 있었다. 모임에서 나눔을 하면, 시험 전날 공부를 할까 하는 유혹이 있었지만 결국은 리더모임과 아침 기도회에 참석해서 기도를 했더니 마음이 편안해지더라는 식의 간증을 하는 학생들이 실제로 많이 있다. 물론 그런 대부분의 선교단체 리더급 학생들이 자신의 학과에서 주변인일 확률이 크고 그런 경우에 일반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캠퍼스 문화의 주체로 설 역량은 그만큼 부족하게 된다. 나에게도 갈등의 시간들이 있었다.

새내기 때 장학생이었던 나는 왜곡된 신앙과 ‘헌신의 대가’로 1년 만에는 권총을 차보기도 했다. 신앙이 어릴 때는 내가 목회적 소명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대부분의 기독학생이 고민할 법한 고민을 했었으며 삶의 우선순위가 내가 속한 선교단체모임, 연합모임, 학업, 가정의 순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각인되기 일쑤였다. 세계관 공부를 하고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에 대한 논의를 접하고, 제임스 사이어나 폴 스티븐스와 같은 저자들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난 ‘다른 방식’으로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캠퍼스에 내가 존재하게 된 일차적인 목적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 대한 탐구를 보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수행하기 위한, 가시적이고 명백한 형태의 부르심이라고 결론지었다. 신앙이란 이름으로 내 학문적 가벼움을 합리화하고, 학문의 도피처로 기독 공동체 생활에 더 열성적으로 헌신하는 것이 내 신앙을 더 깊고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더 구분된 존재로, 더 나를 세상에 편입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가면서 생기는 내적 불편함을 일소하기 위한 방어기재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힘들었지만 내가 속한 기독모임들을 끝까지 함께 참여하면서 수업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학점포기제라는 것이 있어서 힘이 들 때는 취약한 과목을 자르고 싶은 충동이 한 주에도 몇 번이나 들었다. 평소에 공부만 하여 그야말로 ‘일취월장’하는 친구들의 실력 앞에 매번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마침내 둘 사이의 벽이 깨어지다!>

개 인적인 경험이 곁들여진 긴 이야기의 마지막이다. 캠퍼스라는 학문의 장에는 두 부류의 학생들이 공존하고 있다. 한 쪽에는 학문의 깊이보다는 일시적인 평가결과에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극단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그런 전략적인 대응을 비난하고 더불어 학문의 길마저 적정선에서 포기하기로 결단한 기독 학생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기독 선교단체의 ‘독특한’ 문화가 적어도 4년 동안은 유효한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효율적으로 잘 운영이 되는 것 같아 보인다. 문제는 4년 후반에 시작된다.

여 기에서 선교단체 학생들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그간 잘 성장해온 기독학생들은 이미 사회에 진출할 적응력이 키워지지 않은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4년간 학업 전선에서 1차적 부르심을 잘 피해 다닌 열매를 거둘 때가 된 셈이다. 그간 내가 지켜본 공동체에 헌신했던 리더들은 두 갈래로 나뉘곤 했다. 전임사역과 역회심(易回心)이 그것이다.

항상 선교단체의 행사만을 신앙적인 것으로 여기는 데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몇 일의 기도 끝에 전임사역이 자신의 부르심이란 확신을 가진다. 이들에게 결핍된 것은 생활영성이며, 현대 사회와 문화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 능력의 부재다. 내 생각으로는 두 번째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이들은 역회심을 하는 부류이다. 선교단체 학생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 중의 하나는 학부시절 뒤돌아보지 않고 공동체에 헌신한 대가로 하나님이 자신의 진로를 보장해 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이다. 헌신은 대가가 없을 때 헌신이다. 그렇지 않고 서로 다른 층위의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면 그건 일종의 거래라고 볼 수 있다.

몇몇 기독학생들은 예루살렘 입성을 앞둔 야고보와 요한처럼 무의식 중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채권자로 만들어간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세상적인 것들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단지, 현실 세계의 요구들을 모르고도 살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런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은 졸업 직후이다. 당장에 취직이 안되면 조금씩 마음 속에 하나님을 향한 원망들이 생긴다. 캠퍼스에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모든 것을 바쳤는데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든 탓이다.

대학을 학문과 지성의 장으로 보지 않던 두 극단에서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보내지는 쪽은 헌신된 기독학생들이다. 주변의 친구들은 이미 자신이 알던, “금방이라도 지옥불에 빠져들 것 같던” 불신자가 아니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외국인 기업에 취업하기도 하고 자동차를 몰고 나타나기도 한다.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카드를 꺼내서 결제를 하는 불신자 친구 앞에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물론 상당수의 학생들은 이 어려움 앞에서 신앙이 견고해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고, 새로운 영성을 획득하는 수확을 얻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학생들은 회의와 좌절의 시간을 거쳐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그것을 어리석다 여기는 안타까운 일들도 생기기 마련이다(이 문제는 다음 연재에서 주로 다루도록 하겠다).

나는 정말 기독학생들에게 권면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이런 4년간의 흐름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야 힘들어하고 고민하며 정작 세상에 뿌리 내릴 수 있는 영역을 스스로 구속시키지 말자는 것이다. 난 이들의 구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깊은 묵상과 공동체성으로 단련된 이들의 신앙을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세상에서 전혀 발붙일 자리가 없도록 방치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한계가 있다. 나를 돌아보더라도 정말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지만 우등생으로 졸업하지는 못했다. 대신에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학점과. 학업에 관련된 작은 상을 받았다. 난 그것에 만족한다. 기독학생운동이란 이름 아래 제한되었던 많은 일들로 인해 학업에도 적잖은 부정적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나는 나보다 더 공부에 헌신되고 전략적으로 학점을 받으려 했던 학생들을 이길 수 없었다. 그건 기도와 공동체성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난 그들과 같은 학업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해야 했다. 나의 신앙적 양심으로 판단하기에 기독대학생들이 캠퍼스에 들어온 특혜를 부여 받았다면 그 특혜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2003/03/01 23:09 2003/03/01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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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1): 술 문화 보고서 (2003. 2.)

/김용주


<조금 긴 도입부>

대 학 졸업을 앞두고 나는 내가 가진 것이 수도권 대학의 공대출신이라는 “간판” 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복학을 하면서 나는 선교단체의 리더 생활을 시작했고, 한양대 기독학생연합회의 문서팀과 “복음과 상황” 독자모임에 비중을 두게 되면서 다소 분주한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3학년 말 즈음에 학교의 기연 쪽 일을 하던 후배들이 총학생회 진출을 결심하고 도움을 요청하면서 나는 다시 대학의 말년까지 도서관에 앉아 선거를 위한 정책을 짜는데 시간을 보냈다. 사실 처음부터 나는 우리가 총학생회 진출에 실패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지만, 복음주의의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자칭하는 선교단체 학생들이 무기력한 애완동물처럼 양육되고 그렇게 타성에 젖어가는 모습에 심한 좌절감을 느끼던 터라, 역량이 부족해 보이긴 했지만 캠퍼스에 대한 소망함을 가지고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후배들에게 큰 감동을 받아 결국엔 그들에게 ‘코’가 끼고 말았다. (전에 연재된 “약간은 도발적인 캠퍼스 보기”는 그런 몸부림으로 경험한, 거시적인 관점으로 본 캠퍼스 생활의 결과물이었다.)

나는 어떤 행동을 하기 이전에는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스스로가 사회에 나가기에 준비가 덜 되었다고 느꼈다. 물론 분주한 생활로 인해 학업에서 부족한 부분이 생긴 면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주변 신앙의 선배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90년대 중반 학번이다. 80년대 대학 문화가 운동권 문화였다고 한다면 90년대 초반은 변질된 운동권에 대한 회의감을 가진 학생들이 생겨나는 시기였고, 90년대 중반은 그 틈을 타서 신세대니 X세대니 하는 말로 대학생들에게 운동권 문화를 단절시키게 만들고 소비문화를 조장하는 시기였다. 그렇게 캠퍼스는 문화창조의 주체에서 소비문화의 주체로 돌변했다. 이제껏 대학생활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마치 나를 따르라는 식의 거시적인 이야기들을 해온 나는 졸업과 함께 잠시 멈춰서야만 했다. 아직 내 주변에서 도전이 되고 본이 되는 선교단체 출신의 선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선교단체의 선후배들이 운동 중심의 대학문화에 회의감을 보이고 있으며, 로잔 언약이 천명한 사회참여라는 이슈가 더 이상 우리의 상황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게다가 몸바쳐 공동체에 헌신했거나 뭔가 변화를 위해 캠퍼스에서 열정을 불태웠던 선배들은 냉엄한 사회의 현실에 직면하면서 생존을 위한 노력에 몸부림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이제 사회인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직장인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막상 그들에게 정죄의 화살을 돌릴 일도 아니다. 생존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어졌다. 전문성의 개발과 바른 사회인의 모델 제시를 위한 준비를 위해 대학원에 들어온 지 1년이 지났다. 전에 나는 어설프게나마 직장생활도 했고 공장에서 막일도 했다. 지금은 대학원에 있으면서 학회 사무직 일도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학업을 계속하고 있으면서 학부생들을 가까이에서 피부로 접하고 있다. 나는 캠퍼스와 사회의 중간, 즉 ‘회색지대’에 있는 셈이다. 문득 양쪽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지금 내 위치가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정부분의 한계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들과 거의 동일한 경험을 하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각인된 경험들을 보고서로 작성하고 그것을 가지고 같이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기대를 갖기 전에 절망부터 하라는 복상의 논객 Gramsci님의 말처럼, 나는 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닌 이 어정쩡한 위치에서 절망으로부터 시작했다. 언젠가는 희망을 가질 날이 올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기쁜 맘으로 중간 다리 역할을 해 볼 마음을 먹었다. 이번 달에는 내가 경험하는 회색지대의 술 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연재를 시작하려고 한다.


<술 문화 보고서>

새 학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있는 것이 신입생 환영회다. 나는 흔히 ‘사발식’이라고 불리는 신입생 환영회의 신고식을 한 마지막 학번이 아닌가 싶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게도 난 당시에 건강이 좋지 않아 신고식을 치르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 기독학생들이 많았던 터라 그 이후로도 최소 1년 동안은 술 문제로 신앙적인 고민을 했다. 개중에는 신고식을 하는 것을 일제시대의 신사참배 하는 것처럼 여겨 정색을 하고 선배들에게 기독인임을 ‘선포’하는 친구도 있었고, 애교로 유연하게 넘기는 친구들도 있었다. 술과 신앙은 별개라며 사발을 마시고 술에 취해 정신을 잃는 친구도 있었다. 신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딱히 말해주는 선배도 없었다. 신입생들에게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기 때문에 지금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편이지만, 당시에 나는 술에 대한 정리된 ‘행동지침’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실했다. 오죽하면 선교단체에 가입하면서 처음 배운 귀납적 성경연구 방법으로 혼자서 하루 종일 공부했던 주제가 “술”에 관한 것이었겠는가!

‘노아는 처음 포도주를 마시고 실수를 범했으니 술은 악한 거야.’
‘근데 예수님은 처음 이적을 행하실 때, 왜 굳이 물로 포도주를 변하게 하신 걸까.’
‘시편에는 술에 대해 좋게 쓰여 있군.’
‘사도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고 했는걸.’

지 금도 대략 기억이 나는 이와 같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나름대로의 행동지침을 마련했다. 사실 고민은 많이 했었지만 학교에 있을 때에는 술자리로 인한 큰 문제는 없었다. 주량이 센 면도 없지 않았고 자기 관리에 어느 정도 철저한 편이었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날은 술을 먹지 않았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술에 의지하려는 유혹을 사전에 배제하자는 의도였다. 게다가 외향적인 성격으로 인해 분위기를 중시하는 술자리에서 내가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에 주변 선배들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문제는 휴학 이후부터 생겼다. 휴학을 하고 공장생활이 시작되면서 막일을 하는 공장 노동자들과 술자리가 잦았다. 그 자리는 고된 노동을 마치고 술로 삶의 위안을 삼는 자리인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저씨들이었고 또한 인정(人情)이 많은 분들이었다. 그 분들 사이에서는 술자리에서 모든 회포를 풀고 자신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 개입하려면 술자리에 끼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때로 나는 그런 술자리가 좋기도 했다.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때론 마누라 얘기, 때론 자식 얘기를 늘어놓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찌든 삶을 씻어내는 정화의 기운마저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문제가 있다면 이 분들의 음주가 과하다는데 있었다.

술 취하는 게 죄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데, 이 분들은 항상 필름이 끊어질 때까지 마시려고 하기 때문에 난 그 점이 항상 불편했다. 이들에게서 구별된 자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것인가. 결국 술 취한 자들을 정죄하는 자로 남는 것이 복음인가. 며칠을 고민하다가 예수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후에 난 그 분들과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그 분들이 주량을 넘기려고 하면 난 자주 부드러운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오늘 애들 선물 사가지고 일찍 들어간다면서요. 이제 그만 마시고 일어납쉬다!”


<접대 문화 그리고 여성에게 불리한 술자리>

술 자리의 또 다른 문제는 접대이다. 지금은 기업들이 선진화(?) 되어가고 사람들도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보다 강해지고 있어서 덜 한 편이지만, 회식이 있거나 접대를 위한 술자리는 좀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지금도 여전히 공대출신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선후배 간에 군기를 잡거나 술자리에서 술을 강권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회사에 있는 분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면 업무시간에는 바쁜 일정 때문에 별 다른 얘기를 못하고 그저 딱딱한 분위기에서 일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직장선배가 딱딱하게 느껴지고 선후배 간에도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가 저녁 술자리에서는 그 냉랭했던 분위기가 사라진다. 사내의 구조는 선진화가 되었어도 그 안의 사람들은 80년대 공대출신인지라 술 몇 잔을 기울이다 보면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나오기 마련이며, 그 때 하는 얘기는 공과 사를 넘나들며 오히려 정작 중요한 업무 얘기가 술자리에서 오고 간다. 나아가서 중요한 결정을 그 자리에서 내리기까지도 한다! 공대출신이 술을 마시는 분위기는 좀 묘한 구석이 있는데, 그건 돌아오는 술잔들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초반에 취해 버리거나 술을 안 마시는 직원은 중요한 정보를 얻는 데에서 제외되는 일도 생긴다.

또 이런 직장도 있었는데, 접대를 하는 경우에 술뿐 아니라 단란주점은 물론, 마지막 코스로 사창가에 까지 함께 가야 하는 일도 있다. (여기에서는 나도 갈라서야만 했다) 물론 이런 짜증나는 술 문화는 강준만 교수의 지적대로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절부터 내려온 한국 사회의 ‘유산’이며 많은 부분이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회사에서 생활을 하게 되면 심각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대학교 때와 달리 여전히 사회에서는 술 자리에서 여성이 버티는 것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술이 취하면 여성에게 실수를 하는 일이 많았다. 가끔씩 대학 교수가 자신의 지도 아래 있는 여자 대학원생을 술자리에서 희롱하는 경우가 있다는 기사를 간간이 보게 된다. 여성들의 직장 내의 성희롱에 대한 의식과 목소리가 높아진 부분도 있겠지만, 일단 기사로 사건을 접하게 되는 경우 상당히 흥분하게 되는 일도 실제로 술자리에 있어보면 다반사이다. 주로 나이가 많은 상사들은 부하 직원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가 많고 술자리에서는 더더욱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술이 조금씩 취할수록 이야기는 여성들이 듣기 거북한 음담패설로 이어지며 그러다가 옆에 앉은 여직원의 무릎에 손을 얹는다거나 손을 잡고 심지어 포옹을 하는 경우도 있다. 여직원이 당혹스러워할수록 사람들은 즐거워하며 흥청거리는 가운데 분위기는 묘하게 돌아간다. 분명 술자리가 미쳐서 돌아가는데, 대다수의 남자 직원들은 묵인하며 애써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기 일쑤다. 사실, 이런 경우가 가장 힘들다. 이런 꼴 보지 않으려면 회식을 피해야 하는 건가 또 고민이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또 다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내가 결정한 선택은 누군가에게 상사에게 술을 권하게 하고, 여직원이 험한 일을 당하기 전에 빨리 귀가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누군가는 미쳐 돌아가는 술자리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부산하게 움직여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소금이다.


<폭탄주는 고약하다!>

여러 경험을 하고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는 다시 대학원에 들어왔다. 다시 맞이하는 신입생 환영회. 또 다시, 신고식이 있었다. 교수님과 삼촌 뻘 되는 선배들 사이에서 폭탄주가 돌았다. 옆의 형에게 물어봤다.

“형, 신입생 환영회는 언제 끝나요?”
“네가 쓰러져야 끝나.”
“…”

여 러 가지 방법으로 신입생들에게 술을 권했으나 한 가지만 소개한다. 흔히 뉴스에서 보는 술이 이것인데 조그만 잔에 양주를 채운 후에 맥주가 담긴 잔에다 그 양주 잔을 담근 후에 위를 막고 잘 섞이도록 흔든 후에 후배 앞에 올려 놓는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데, 그 폭탄주는 정말 독했다! 스스로의 주량을 아는 나로서는 이걸 두 잔만 더 마시면 취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신문지 상에 간혹 폭탄주를 마시고 지하철에서 사고로 숨지는 신입사원들 기사가 나오는데 폭탄주는 정말 취하라고 마시는 고약한 술 문화임에 틀림 없었다. 이번엔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신입생이 쓰러져야 끝난다고 했으니 취하기 전에 쓰러져서 자는 척했다. 주변 신입생들에게도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쓰러져야 끝난대.”


<마치면서>

이 글을 읽으면서 당혹스러워하는 이들도 있을 줄로 안다. 직장에 있으면서 경험해 보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미 술 문화의 부정적인 부분이 많이 변화하고 있음을 체험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혹 지금도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본인의 술자리에서의 대응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순결한 길로 가지 않았다. 술 문화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게 나의 선택이었고 지금 나는 그 기억들을 쓴다. 나는 대부분의 불신자들에게 술 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서 하나의 무시할 수 없는 문화라면 그것도 변화하고 개혁되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당혹스러운 일도 많았고 처음엔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난감하기 그지 없는 일들도 많았다. 이렇게 이야기들을 나열한 것은 이런 분위기들에 대해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좀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행동지침들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어쩌면 나의 개인적인 선택일 수 있다. 나는 술을 어느 정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아는 몇몇 친구들은 맥주 한 두 잔만 마셔도 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는 술을 권하지 않는 게 옳다. 그리고 되도록 술 권하는 자리는 피하는 게 옳다. 그리고 술 자리가 편하지 않은 이들은 일부러 술 자리에서 고통 받으며 분투할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술 자리가 아니어도 세상을 파고들 수 있는 길은 많이 있다. 술 문화는 무시될 수 없다 해도, 다른 많은 문화 중 하나일 따름이다.

추가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술을 처음에 어디에서 누구에게 배웠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되도록이면 기분이 좋을 때에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어른과 마시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술은 아버지에게 배우라는 말이 있는 듯 하다. 주변 사람들을 보더라도 처음 술 버릇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 술버릇이 들면 끊는 것이 오히려 낫다. 처음에 가까운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이성을 잃고 잘못된 폭력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술을 마실수록 난폭해진다. 그런 경우에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자제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경우에 결혼 후에 폭력을 행사할 확률도 다분히 높다. 한편, 실연의 아픔을 달래려고 술을 마시는 이들도 있다. 술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술 기운에 위안을 얻고 그것을 의지하려는 생각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오히려 묵상과 기도가 유익하다. 술을 도피처로 생각하지 말고 문제에 올바르게 직면하는 것이 그런 경우에는 현명하며 더 남자답고 멋진 행동이다.

부디 독자들에게 잡글이나마 도움이 되는 “술 문화 보고서”였기를 소망한다.**
2003/02/01 23:07 2003/02/01 2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