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상황] 도발적인 캠퍼스보기 (6): 캠퍼스 부흥은 영적 허구(SF)인가?
/김용주
<캠퍼스 부흥에 대한 단상>
대학교 2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교단체 간사님의 권유로 마틴 로이드존스(M. Lloyd-Jones)의 부흥 (생명의말씀사)을 처음 읽고, 몇 주 동안 부흥이라는 주제를 놓고 오랜 시간 들뜬 상태로 기도했던 기억이 있다. 그 책과 성령의 주권적 사역 (CLC)에서 로이드존스는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초월적인 사역인 부흥은, “진정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시기에 소망 없는 장소에서 하나님이 일으키신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 이후로도 오랜 동안 ‘부흥’이라는 주제는 내 머리 속을 맴돌았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한국의 교회와 선교단체는 부흥이라는 모토로 수많은 집회와 CCM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 시기부터 지금까지 캠퍼스 리더들과 사역자들 사이에 가장 흔한 복음주의적인 고백들은 이런 류이다.
“나는 실패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실패하지 않는다.”
“내가 쓰러진 그 시점이 하나님이 진정 주권적으로 일하시는 때이다.”
“내가 하는 모든 노력들은 무의미하다. 하나님이 채우실 때에만이 진정한 그 분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처음 부흥에 관한 신학적인 서적들을 읽으며 2차 대각성운동 시기 동안의 찰스 피니(Charles Finney)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를 접했을 때, 나 또한 위와 같은 고백들이 충분히 되돌아볼 만한 가치가 있음을 깊게 묵상한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국의 캠퍼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부흥이라는 주제와 그 방향성을 좀더 냉정하게 살펴본다면 캠퍼스에서 받아들여지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과 부흥의 원대한 열망은 그 의미가 어느 정도는 퇴색되는 경향이 있다.
<날개잃은 천사(?)>
실제로 많은 선교단체의 학생들은 처음 대학에 들어가서 선교단체를 통해서 수련회와 집회들을 가지면서 캠퍼스에 대한 원대한 꿈들을 품게 된다. 이들은 아직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열정이 가득하며 많은 가능성들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이다. 처음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캠퍼스에 존재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돌아보기도 하고, 기독학생의 연합문제와 학내의 문제들에 대해,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는 있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생각들을 가지고 때로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궁금해 하기도 하며 캠퍼스 안에서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변화시켜 가기를 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시기는 잠시이며, 곧 이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의 견고함에 놀라며, 점차 그 거대한 구조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함과 동시에 선교단체 활동과 전공공부 간의 시간활용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선교단체의 기존 사역자들은 대다수가 학내와 사회에 대한 참여적인 문제나 기독학생 연합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자신이 속해 있는 선교단체의 사역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모임에 헌신된 리더를 양육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선교단체 안에서 학생들이 복음주의적 마인드를 가진 전문인의 비전을 품는다거나, 혹은 연합과 사회참여적인 생각, 그리고 기독교적 지성을 개발하려는 시도들은 종종 부정적으로 치부되며, 결국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암묵적으로 ‘큐티와 기도생활 같은 개인경건훈련에 철저한가’,‘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모하고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가 뭔가 해내려는 불순한 동기가 있진 않은가’ 혹은 ‘한 사람을 전인격적으로 품을 수 없는데 무슨 사회참여냐’는 식의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기존의 캠퍼스에 편입된 이질적이며 가능성 있는 학생들은, 실제적 한계와 공동체 안의 부정적 분위기로 인해 총체적 복음의 한쪽 날개인 ‘사회참여’라는 이슈를 포기하게 되며, 심하게 말하면 복음주의 유산의 절반으로부터 ‘회심’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종종 그런 간증을 한다.
“이제까지 내가 뭔가를 하려고 노력했는데 하나님은 나를 꺾으셨습니다. 한 사람도 품지 못하고 멤버들을 전적으로 사랑하지도 못하는 내가 이제껏 뜬구름을 잡듯이 사회니 통일이니 하는 류의 이야기들만 하고 다녔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능력들을 부어주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분의 일하심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나는 캠퍼스 4년간 이런 간증을 하는 학생들을 무수하게 보아왔다. 물론 개인적인 상황과 그에 대한 차이로 인해 때로는 나에게 크게 감동적인 간증이 될 때도 있었지만, 그런 간증 이후에 이러한 ‘회심자들’의 삶을 돌아보면 난 많은 부분에 있어 큰 아쉬움이 생긴다.
<더 중요한 것>
한국의 복음주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독교적 유산은 말씀 선포이다.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이제까지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부흥을 기다리는 많은 ‘회심자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일하심, 그리고 성령으로 부어주심을 가장 강하게 ‘느끼는’ 때는, 각종 집회 때나 설교시간에 성경강해를 들을 때이다.
이들은 더 탁월한 강해, 더 탁월한 세미나에 목말라하며, 그런 집회에서 듣는 설교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느낌’으로 마음속에 달궈진 에너지를 이후에 있는 찬양 시간에 쏟아낸다. 결코 어느 락 가수의 콘서트 못지 않게 뜨거운 찬양시간을 통하여 이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며, 그렇게 한 한두 시간을 찬양을 하고 나서는 소그룹을 통해 예배시간에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했으며, 얼마나 뜨겁게 느꼈는지에 대한 나눔(sharing)을 하고 기도제목을 나누는 일련의 ‘끈끈한’ 교제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통성으로 기도한다.
이런 스타일의 모임이 일주일에 한두 번, 그리고 방학에 몇 번의 수련회를 통해 이뤄진다. 그리고 이런 예배 형태의 모임들을 유지하기 위한 또 다른 모임이 필요하다. 일단 모임날짜가 정해지면 그 모임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또 다시 예배의 형태로 준비모임을 가지며, 또한 강의를 듣고 도전 받은 내용으로 찬양하고, 또 모임을 이끄는 사람들 사이에 소그룹이 편성되며 또다시 그들 사이에 나눔을 갖는다. 그러한 가운데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들의 모든 에너지를 이 사역에 다 쏟아낸다.
이런 일련의 반복적인 예배 형태의 모임들을 부정적으로만 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각심을 가지고 직면해야 할 문제가 있지 않은가, 더 중요한 것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많은 부분들이 있지는 않은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박제(剝製)가 된 부흥>
99년에 언급했던 소위 ‘헨리 나우웬식 영성’은 캠퍼스에서도 그 여파가 여전하다. 나도 헨리 나우웬의 책을 좋아한다.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영성은 항상 나에게 잔잔한 감동과 경외감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 또한 버릴 수 없는데, 그것은 법정 스님의 책을 접할 때에도 비슷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내가 법정 스님이나 신영복 교수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얻는 효용 때문이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나란 존재는 감옥에서 힘겹게 몇십 년간을 복역한 적도 없고, 모든 소유를 버리고 산에서 기름 한 방울 없이 살아본 적도 없다. 더욱이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도 않았으며, 그 삶을 통해서 내가 대신 경험한 지식으로 내면을 좀더 풍성하게(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풍성해 보이게) 만들고, 저자들과 동일한 깨달음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만 있었을 뿐이다. 내가 꿈꾸던 부흥이 영적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당시 우연한 기회로 하게 된, 몇 개월간의 공장 막노동 생활을 통해서였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철저하게 불의했고, 내가 철저하게 겸손하지도 거룩하지도 선하지도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단순히 종교 문화 속에 있을 때에만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 단 몇 개월 만에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 전까지 내가 헌신된 그리스도의 사역이라고 칭하며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았다고 굳게 확신했던 일들은, 소그룹 멤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찬양인도를 ‘극적’으로 하며 기도회를 인도하는, 소위 아주 ‘영적인’ 일들이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그때까지 나는 모임 장소에서 걸레질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내 삶을 되돌아보관대, 내 삶은 ‘실제로는’ 전혀 영적이지 않았다. 나의 영성은 전혀 내 생활과 관련이 없음을 깨달은 셈이다. 선교단체에서 ‘보여지는’ 일들을 제외하면 나는 세속적 인간의 전형이었다. 게다가 나는 그때까지 전혀 내 신앙과 삶 사이의 괴리감을 깨닫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선교단체의 제자도 가운데 내가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함에 있어 철저하게 싸워야 할 상황이 전혀 강조되지 않아 왔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세상을 부정하고 엑소더스를 꿈꾸지만, 그 안에서 현실에 깊게 뿌리를 내린 채로, 치열하게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며 끊임없는 영성의 훈련들을 해나가는 것은 강조되지 않은 채 일확천금을 노리고 복권을 구입하듯이, 하나님이 어느 순간에 꾸준한 하루하루 생활의 성실함 없이도 자신을 완전하게 바꿔주실 것을 기대한다.
헨리 나우웬의 <제네시의 일기>나 <아담>과 같은 책을 통해, 그리고 내가 그간 겪은 일들을 통해, 나는 ‘영성’이라는 것이, 말씀을 읽고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는 것이 아무리 지속적이라고 해도, 그것이 현실과 우리의 기저가 되는 일상에 뿌리를 박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한 영성의 관념을 정리시켜주는 책들을 통해 느끼는 심정적 자위책(自慰策)으로서가 아닌,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푸대자루를 나르고 본드칠을 하며, 접시를 닦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 - 불신자이건 학교를 다니지 않았건 장애인이건 상관없이 - 과 지속적인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에 그들의 삶 속에 깊게 관여하고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을 온전하게 섬기는 삶을 살아보지 않는 한, 우리가 이야기하는 부흥과 영성은 영적 허구에 불과하며, 그것은 지적인 허영이자, 관념 속에 맴도는 섬김의 신기루에 불과하다.
가정의 변화를 원하지만, 가족들에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캠퍼스 복음화를 외치지만 과에서는 섬김보다는 아웃사이더의 삶에, 혹은 다른 학우들과 똑같이 경쟁하고 부정행위를 하며, 수업에도 충실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낮아짐의 설교는 몇 번씩 듣고 섬김을 주제로 한 수련회는 줄곳 다녀오지만, 정작 사회에서 가난과 고통으로 외면 당한 사람들의 사정과 현실은 모른 채로, 하향적 삶은 우리의 관념 속에서 맴돌다가는 이내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이러한 가운데 캠퍼스의 문제, 우리 나라의 문제, 세계적인 문제들은 더더욱 우리의 관심에서 사라져간다. 우리에게 부흥은 철저히 ‘박제’된 개념인 셈이다.
<실천의 장은 없는가>
“1970-80 년대 남미국가들은 좌파혁명에 시달리고 있었다. 각 국가들은 부정과 부패로 파산하기 시작했고,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혁명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캠퍼스 젊은이들마저도 무력혁명에 가담하거나 대부분 운동권 세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다. 무력혁명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도 총기를 소유하고 때로는 강의실까지 들어와 자신들의 혁명에 동참할 것을 강요하는 상황이니 교수들도 그들이 두려워 방관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다.
당시 대학 안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하고 있던 복음주의 학생들은 이러한 상황에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먼저 교수님을 찾아가 정식으로 학생들에게 진정한 해방을 가져다주는 복음을 전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그들은 강의실로 들어가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됐다. 학생들은 말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그룹을 만들어 빈민가로 찾아갔다. 당시 남미에서 혁명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정부의 부패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외면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학교 안에 알려지기 시작하자, 당시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 과격 무력운동권에 질려있던 학생들이 이 모임에 관심을 보였고, 곧 성경공부 모임은 크게 부흥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이 무력혁명권 학생들을 자극했다. 성경공부 모임 리더들은 테러의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복음을 전했다. 결국 한 리더의 약혼자인 자매가 테러로 죽임을 당하게 됐다.
이런 희생을 치른 결과 남미의 기독학생모임은 대학 안에서 점차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복음이 그들이 처한 가난과 부패라는 상황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남미의 학생운동은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고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대륙으로 바뀌었다.”
(한철호,“국경 없는 캠퍼스의 증인들”, IVF 격월간지 대학가 1999년 7월호에서)
이것은 당시 남미 기독학생운동의 간사였던 사무엘 에스코바(Samuel Escobar)의 이야기이다.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 의 저자인 로날드 사이더(Ronald Sider)는 <물 한모금, 생명의 떡> (이상 IVP)이란 그의 또다른 책에서 복음전도와 사회사역을 결합한 총체적인 선교현장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다. 나의 느낌이었을까. 사이더는 복음주의권에서도 그러한 사역이 ‘절실’하며, 또한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회심이후에 Prison Fellowship을 이끌고 있는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은 <이것이 교회다> (홍성사)에서 부흥을 통해 임한 하나님의 교회가 사회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는지에 대한 2년여간의 귀한 자료들에 감동을 더하는 대각성 운동의 신학적 살을 붙였다.
기독교 세계관이 한국에 보급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우리의 현장에서는 왜 부르짖는 부흥만큼의 열매가 없는 것인가. 물론 부끄럽게도 나 스스로가 문서사역을 통해서 변화가 된 많은 학생들이 집단적 행동을 해나갈 때에야 현장으로 뛰어들고 싶어하는 유사(pseudo) 복음주의자며 나와 같은 부류의 기독인이 많기 때문인 면도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 각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이 각성하고 실천의 장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일과 더불어, 진정 함께 해나가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이유도 규명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학복협에서 세미나가 있었고, 그곳에서 같은 분과 포럼이었던 이은창 간사(새벽이슬)가 이 문제에 대해 지적했던 부분은, 우리가 지적 허영에만 빠져있지 실제로 현장에 뛰어들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동의한다. 나 또한 그런 문제에 봉착해 있음을 안다. 하지만, 대부분 캠퍼스 선교단체의 경우, 그러한 현장 실천에 장애가 되는 것은 개인적인 죄성에 기인한 문제보다는 제자도에서 그것을 강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회심의 열매를 허구적인 영성에 기반을 두는 것이 문제이며, 그것은 현장에서 몸부림치는 것이 진정한 회심의 열매라는 사실을 뼈속 깊숙이 각인시켜 주는 교육이 선교단체의 제자도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애초부터 회심이 ‘헌신의 기쁨’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헌신의 대가’를 가늠해 보고, 자신의 삶의 작은 부분에서 몸부림쳐 본 이후에야 그것이 성화의 과정으로서의 기쁨임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기름부음 받은 이후에 작은 무리의 양떼들을 이스라엘 백성들만큼 소중하게 섬기면서 그 현장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다윗과,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든지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 가운데에서 성실함과 온유함으로 영성의 깊이를 더해갔던 요셉의 삶을 돌아보라. 갑자기 하나님께서 들어서 영웅처럼 세우시는 것에 감동 받는, 우리들이 보기에 형편없고 무료해 보이기만 했던 그분들의 길고도 낮은 위치의 ‘현장’은 반드시 강조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러한 실천의 장이 필요하다. (끝)
2002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