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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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을 전혀 안 쓰지는 않으나, 더딘 것은 사실입니다.
...
가끔 들르시는 분들을 위해.
예전에 썼던 글을 다듬어서 브런치에 올리기도 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chchch
2016/12/13 21:40 2016/12/1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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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책 단말기는 태블릿 대비 불편한 점이 있지만 독서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묘한 기기다.
ⓒ 김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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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ppi를 탑재한 전자책 단말기의 반격

전자책 단말기가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달리 올 가을은 전자책 단말기의 계절이 될 듯하다. 지난 9월 15일 한국이퍼브에서 '크레마 카르타'를 출시한 데 이어 리디북스가 오는 5일 '리디북스 페이퍼'를 출시한다. 

사실 전자잉크 단말기는 그간에도 건재했다. 전자책 시장의 공룡이라고 말할 법한 아마존에서는 태블릿과 함께 여전히 전자잉크에 기반을 둔 단말기인 킨들 페이퍼화이트를 3세대째 유지하고 있으며 이미 2014년 새로운 단말기 '킨들 보이지'를 선보인 바 있다. 국내 온라인 서점의 새로운 '도전'은 이런 아마존의 단말기 생존 전략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올가을 국내에서 출시되는 전자책 단말기는 총 3종이다. 이 중 킨들에서 이미 적용한 6인치 '카르타 패널'을 적용해 300ppi의 해상도를 구현한 한국이퍼브의 '크레마 카르타'는 사양 측면에서는 킨들의 페이퍼화이트 3세대와 같은 급으로 볼 만하다. 

이달 5일에 출시되는 리디북스의 단말기 2종은 사양 이원화를 통해 저가사양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고급사양은 킨들 보이지 수준의 해상도와 기능을 탑재하여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국내 구매자들은 태블릿에 익숙하기 때문에 CPU나 저장공간, 배터리 용량을 늘리는 등 나름 사양에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전자책 단말기, 태블릿 시장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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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전자책단말기 사양 비교
ⓒ 김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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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전자책 단말기가 다시금 활기를 띠게 될까. 아직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이미 전자책 시장에 내놓은 많은 전자책 전용 단말기들이 시장에서 사라져 가고 있지 않은가. 사실 내가 전자책 단말기가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 이유는 무엇보다 7인치 태블릿의 약진 때문이었다. 

킨들이 출시된 이래 전자책 단말기의 가장 큰 장점은 크기와 무게였다. 물론 전자잉크의 가독성을 손꼽는 이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200g 내외의 무게에 6인치 사이즈의 이 기기가 가져다 준 효용성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아마존이 초기 킨들을 홍보할 때 빠지지 않았던 요소는, 여성과 노약자들도 침대에 누워서 독서를 즐길 수 있다는 점과 여행지에서도 부담없이 두꺼운 책들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 그보다 높은 해상도와 가벼운 무게, 그리고 10만~20만 원대의 저렴한 태블릿이 쏟아졌다. 아마존이 이윤을 포기하다시피 하며 태블릿 시장에 뛰어들어 파이어 시리즈를 출시하게 된 이유도 아이패드 미니를 위시한 태블릿의 비약적인 발전과 가격 경쟁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자잉크의 한계도 한 몫 거들었다. 화보집과 잡지 등 다양한 색으로 구성된 책들은 전자책 단말기에 적합하지 않지만, 칼라 잡지도 높은 해상도에 동영상까지 첨부하여 재생할 수 있는 7인치 태블릿은 전자책 단말기를 대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제공했다. 

같은 가격에 같은 사이즈의 단말기를 구입해야 한다면, 그리고 한쪽(태블릿)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면 사람들의 선택은 정해지지 않겠느냐 하는 게 내 생각이었다.

소소한 기능들의 조합으로 되살아난 '독서 덕후들의 기기'

하지만 시장에는 '공대생의 마인드'와 달리 특정 기기를 선호하는 충성도 높은 '덕후(마니아)' 소비자들이 존재한다. 전자책 단말기 시장도 그러하다. 기술이란 게 참 흥미롭게도 죽어가던 녀석에게 다른 모듈이 탑재되는 순간, 혹은 사이즈가 달라지거나 기대되는 용도가 달라지는 순간, 특정 기술은 부활한다. 

스티브 잡스가 보여준 혁명적인 사고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기술들을 조합'만' 해서도 유용한 IT생태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아이팟과 인터넷 도구, 그리고 폰을 합쳐서 아이폰을 만들었고 사이즈를 키워서 아이패드를 만들어냈다. 엔지니어와 리뷰어들은 매번 그의 기술에는 새로울 것이 없다고 비난했지만 항상 애플의 새 제품들은 빅히트를 쳤다.

전자책 단말기의 불편한 점 중 손꼽히는 부분은 어두운 곳에서 패널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북라이트'라는 액세서리를 제공했지만 밤에는 라이트를 꽂거나 스탠드를 찾아야 하는 기기는 꽤나 불편했다. 가독성이 떨어지고 눈의 피로가 오더라도 밤에도 조명 걱정할 필요가 없는 태블릿이 더 유리하게 됐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은 아마존은 곧 킨들에 '프런트 라이트'를 탑재했다. 밤에도 스탠드나 북라이트 없이 책을 볼 수 있게 됐고 라이트 기능을 사용해도 그리 눈부시지 않은 내부 기능은 꽤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전자잉크에 이미 익숙한 이들에게는 기존의 불편함을 극복하는 소소한 기능의 탑재가 그 기기에 대한 충성도를 높여주기도 했다.

전자책 단말기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 예상과 달리 비교적 낙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조차도 다시 전자책 단말기를 구입했고 1년 넘게 사용했지만, 여전히 만족도는 높다. 

기기만 언급했지만 사실 전자책 단말기가 아닌 전자책이 시장에 잘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것도 또하나의 이슈일 것이다. 전자책이, 그리고 책이, 나아가 책을 만드는 출판사들이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단말기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다소 우울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이 글은 이쯤에서 접는다).

*기사 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47770
2015/10/07 21:10 2015/10/0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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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때의 일이다. IT 버블의 마지막 시기였던 당시의 트렌드에 맞게 연구실에서도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나또한 그 분위기에 편승하여 몇 개의 컴퓨터 언어를 배웠고 연구 분야에 국한되지 않은 간단한 프로그램을 짤 수 있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는 그야말로 IT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체감하던 때였다. <매트릭스> 같은 영화에서부터 오픈소스 운동으로 대변되는 '리눅스 혁명' 같은 이른바 기술에 뒤따르는 많은 철학적 담론들이 우리를 뇌를 자극했다. 

인쇄술이 그랬고, 사진기가 그랬듯이 우리는 컴퓨터 안에서 'Copy & Paste'를 통한 무한 복제가 손가락 두 개만으로 무수히 생성되는 경험을 했다. 정품 소프트웨어와 100% 일치하는 카피본을 소유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에 열광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나는 '기술을 곱씹는 마지막 세대'였다고 생각한다. 더 쉽게 말해 무언가를 접할 때 책으로 배우는 세대, 기기를 사면 '사용설명서'의 첫 페이지부터 읽어가는 '마지막 종족'인 셈이었다. 프로그래밍도 그랬다. 유명하기로 소문난 몇 백 페이지가 넘는 코딩책 몇 권을 사서 1장부터 읽었고 그래서 우리의 시작은 모두 화면에 'Hello World'를 띄우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코딩으로 먹고 살겠다는 뜻을 접었다. 대학원 같은 연구실에 군대를 가지 않은 신입학생이 들어왔다. 내가 보기에 그는 어렸다. 나이도 아래였지만 매사에 진지하지 않은 말투, 선배들이나 교수님을 지나칠 때도 정중히 인사를 하거나 대화 중에도 어려워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 반바지를 입고 다니고 틈만 나면 게임을 즐기는 이 어린 신입 때문에, 나는 코딩을 접었다.

그의 책상에는 두꺼운 코딩 책은커녕 아무것도 꽂혀있지 않았다. 그저 필요하면 인터넷 검색을 해서 알고리즘 몇 개를 얻어냈다. 알고리즘. 하나의 알고리즘은 내겐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혹은 철학자의 선언처럼 '의도'와 '내용'이 함께 읽혔다. 잘 짜여진 알고리즘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유명한 저자의 책을 읽는 행위와 같았다. 모든 코드의 내용을 이해하고 나서야 내가 만들려는 프로그램의 입력과 출력을 선언했다. 버그가 생기면 언제나 덧붙여진 내 코드를 의심했다. 

반면 그 신입은 - 물론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 내 종교의식같은 코딩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기저기서 카피한 알고리즘을 자신의 프로그램에다 순식간에 이리저리 붙여댔다. 그리고 독해가 되기 전에 디버그 프로그램을 돌렸다. 수십개의 버그가 뜨면 마치 게임을 하듯 버그를 잡아나갔다. 보통은 수십 분, 짧게는 단 2, 3분 안에 덧붙여진 알고리즘이 제대로 작동하는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나는, 그 예술작품을 음미하고 조심스럽게 내 숟가락을 얹는데 하루 이상이 걸렸다. 물론 완벽하게 이해가 된 코딩에도 언제나 버그는 떴다. 그것을 수정하는 데에 시간을 쏟는 동안 신입은 이미 끝낸 프로그램을 덮고 게임에 시간을 쏟았다. 그때의 기분은 마치 모차르트를 만난 살리에르의 그것과 같았다.

기술을 곱씹는 '마지막 종족'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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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엑스 마키나>에 등장하는 로봇도 빅데이터 기반의 AI로 설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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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가 뜻하지 않은 영역에서 활발해졌다. 고전적인 AI 로봇들은 SF영화 속에서 '튜링 테스트'로 시험대에 오르곤 했다. 스스로 자각하고 행동(run)을 결정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 그에 대한 대중의 기대 혹은 불안감이 시대를 가로지르는 동안 기술은 무심한 표정으로 꾸준히 발전했다. 

존재의 '인식'이라는 위로부터가 아닌 엄청난 기억을 빠른 시간에 처리하여 대응하는 아래로부터의 방식, 즉 '빅데이터' 기반 기술을 통해 인공지능은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지금도 페이스북과 구글은 내가 관심있어 하는 사이트를 간간이 모니터에 띄워주고 내가 알 만한 친구들을 찾아준다. 아마존은 내게 말을 걸듯 '혹시 이걸 찾으셨나요'라며 사려고 찾아보던 제품 몇몇을 추천해 준다. 

아이폰 시리는 내 시덥지 않은 질문에도 마치 진짜 친구처럼 유머도 섞어가며 적절히 대답해준다. 사실 이 기술은 단말기 너머에 있는 거대한 컴퓨터가 데이터를 순식간에 처리하여 나에게 특화된 방식으로 피드백을 주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나는 그(것)와 교감하고 때론 이해받고 있다고 느낀다. 영혼없는 기기에게서 인간냄새마저 맡았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며칠 전, 문득 찍어내는 듯한 요즘 음악이 지겨워서 어릴 때 즐겨듣던 명반 음원을 구입했다. 여전히 '쏘울'이 살아있는 명반의 음악을 왜인지 내 귀가 뱉어냈다. 마지막 트랙까지 가지도 못했다. 일이십년 동안 비약적인 녹음 기술의 발전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여러 채널로 녹음을 하고 튜닝을 하고, 다시 소프트웨어로 후처리를 통해 최적의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최근 음악에 익숙해져버린 탓인지 '쏘울'만 살아있는 명반은 추억 속으로 돌아가야 했다. 반면 쏘울이 없다고 느껴지는 샘플링 음원들의 완성도가 높은 탓에 그런 곡 몇 개만 들어도 음악적 갈증은 쉽게 해소된다. 

기술의 발전이 소수의 몇몇 사람들이 점유하고 생산해내던 콘텐츠의 대중화, 민주화를 이룬 것은 분명하다. 예전에는 수동카메라로 초점과 셔터 스피드, 조리개 노출을 조정하고 적정 필름의 감도를 제대로 선택해야 제대로 된 사진이 나왔지만 지금은 스마트폰과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왠만한 수준의 작품사진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지루하고 반복적인 훈련, 그것을 통해 수십 번씩 머리 속에서 생겨나는 고민, 대상에 대한 집중 같은 흔히 '쏘울이 있다'라고 말하는 장인들의 고급 기술들이 한두 번의 조작을 통해서도 얻어진다.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더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음원에 눈물을 흘린다. '국물이 끝내주는' 인스턴트 음식들의 퀄리티가 만만치 않다.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기술은 우리가 고매하게 여기는 어떤 것, '쏘울'있는 존재로서의 많은 행위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오히려 '원본'이 어색할 정도로, 대중화된 기술들은 내 감성을 적절하게 자극하고 나를 친구나 애인보다 더 잘 이해해준다. 내가 지향하고 있는 삶의 '과녁'에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화살을 꽂아놓는다. 

이래도 이것을 차가운 디지털 세상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단순한 데이터 덩어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쏘울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기술들이 우리의 뇌가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인지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점점 더 우리는 인간의 미세한 감정 변화에도 적절하게 반응하는 살아있는 기기들과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내가 그런 기술에 '쏘울이 없다'고 말하려는 '마지막 종족'이 되리라는 확신이 든다.

*기사 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34372
2015/08/16 09:31 2015/08/1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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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영화 <아메리칸 셰프>와 미드 <뉴스룸 시즌3>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 소셜네트워크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꽃피운 SNS(Social Network Service) 기반의 하위 문화는 이제는 공기만큼이나 익숙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SNS를 널리 사용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최근 4~5년 동안 우리는 스마트폰을 들고 경쟁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접속'을 시도했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사생활을 온라인 공간에 올려댔다. SNS 어플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경쟁적으로 고객을 끌어들이려고 애썼다. 놀라운 앱들의 출현과 더불어 수많은 얼리어답터들은 자신의 기호와 생각의 교류를 넘어서, 자신의 일상 사진과 실시간 위치를 공유하고 나아가 사는 곳과 직장, 폰에 저장된 친구들의 연락처도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놀라운 일이지만, 나 또한 SNS를 통한 '긍정적 연결'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첨단 IT기술의 놀라운 발전을 체감하며 SNS라는 '사생활 무한공유 도구'에 적극적으로 나 자신을 내어줬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끊임없이 불거지는 정치적 이슈와 더불어 기존 언론의 폐쇄성이 대중들로 하여금 SNS를 광범위하게 활용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나의 일상 깊이 들어온 SNS라는 도구의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연락이 두절됐던 친구들이 '알 수도 있는 친구' 목록에 나타났고 몇 년간 소식조차 모르던 친구들을 만나도 그들은 내 일상을 두루 꿰고 있었다.

물론 이전에도 인터넷 카페나 클럽, 동호회, 싸이월드, 아이러브스쿨 같은 온라인 네트워크를 위한 인터넷 서비스들이 있었다. 하지만 휴대폰을 통해 전 세계의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콘텐츠와 위치를 공유하는 '이런 류'의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우리는 1990년대부터 사용하던 '지구촌'이라는 단어를 시공간의 제약 없이 경험한 첫 세대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기술이 문화보다 앞서 제공됐을 때 생기는 '카오스'를 우리는 점점 자주 겪게 될 것 같다. 마치 사진기가 처음 발명됐을 때 현대미술이 혼돈에 빠지고 수십 장의 원본이 가능한 '사진'이라는 존재에 아우라가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듯이 말이다. 또 컨베이어를 이용한 생산으로 대변되는 포드 시스템이 '장인'이라는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생산자의 개념을 허물었듯 이제 기술은 담론과 일상 영역 모두에 깊이 관여하게 됐다.

'셀렙'과 대중의 경계를 허무는 소셜네트워크

그렇다면 소셜네트워크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영화나 미드로 예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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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아메리칸 셰프>에서 주인공의 아들이 올린 트위터로 푸드트럭이 가는 곳마다 트럭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성황을 이룬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서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인 칼 캐스퍼는 자신의 음식을 혹평한 유명 음식 평론가와 트위터로 설전을 벌인다. 하루 만에 그 트위터 내용이 수십만 명에게 알려지게 되자 칼은 레스토랑을 나와서 푸드트럭을 타고 미국을 돌며 쿠바 샌드위치를 만들며 여행을 한다. 그런데 그의 아들은 아버지 이름의 트위터를 개설하고 푸드트럭의 위치를 공유해 트럭이 도착하는 곳마다 샌드위치를 사려는 수십 명의 고객을 끌어들인다. 

칼 캐스퍼의 악명이 도리어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다. 또, 그의 샌드위치를 SNS를 이용하는 무수히 많은 익명의 사용자들이 직접 경험하고 자신들의 주변에 전파한 것이다. 푸드트럭의 명성에 힘입어 칼은 결국 다시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로 복귀한다. 이것은 SNS의 긍정적 효과다. 매스미디어는 정치인이나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들만을 좇아다니고 이슈화 시켰다. 반면 SNS는 '셀렙(유명인을 뜻하는 '셀레브러티'의 줄임말)'과 대중의 경계를 허문다. 누구나 이슈를 실어나를 수 있고 그에 대한 의견을 표할 수도 있다. 

이것은 비단 몇몇 사람들의 기호나 유희적 목적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는 매체가 언급조차 하지 않는 '사건'들이 전파되며 그 사건들이 회자되고 이슈화되고 재조명된다. 실제로 성추행 당한 여성, 가정폭력, 부당한 해고, '묻지마' 폭행 등의 사례들이 매일처럼 SNS에 공유된다. 그로써 억울함을 호소한 이들의 목소리가 언론을 통해 다시 조명돼 경찰의 재수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익명의 SNS 사용자들이 대중의 눈과 귀와 말이 되어 준다. 정말 되어야 할 일, 되었어야 했던 일들을 '되게 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에 대한 판단주체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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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룸>의 한 장면. 디지털 부서의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앵커는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SNS기반 뉴스앱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물론 SNS가 이런 아름다운 스토리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미드 <뉴스룸> 시즌3에서도 이러한 소셜네트워크 문제를 다룬다. 시즌3의 하이라이트는 방송국 안에 새로 만들어진 디지털 부서와의 마찰에서 비롯된다. 

디지털 부서의 신임 편집자는 뉴스앱을 통해 누구나 기사거리를 실시간으로 올릴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개시했고 그는 그것을 '시민기자단의 정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존 방송국의 보조앵커인 슬로언은 디지털 부서의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기사 공유의 위험성에 대해 지적한다. 

셀렙들이 술취해 있는 장소 따위를 공개해 대중이 그곳으로 몰리게 만드는 일이 누군가에겐 폭력적이란 사실도 언급한다. 나아가 공인과 대중의 경계, 뉴스의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에 대한 판단 주체, 즉 전문성을 가진 '데스크'가 기사의 가치를 판단하고 그로 인해 누군가가 다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함을 강조한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생각할 거리들이 있다. 일례로 '훈련되지 않은 다수의 시민들이 기자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상에 배설하듯 뱉어내는 기사거리들'이라고 비판할 때(어떤 의미에서 이는 마치 기성 언론이 <오마이뉴스>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이는 오래된 논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즉, '전문성', '전문가 그룹'이 가지는 부정적인 이미지, 이를테면 결국은 그들만의 리그였다거나 비전문가들이 침범할 수 없는 내부 언어나 습속같은 진입장벽의 문제들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모든 콘텐츠들은 서로 다른 '수준'을 가지고 있고 일반 대중보다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콘텐츠를 더 잘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포스트모던 사회, 통섭의 사회로 진입한 우리에게 어떤 권위의식은, 설령 그것이 진짜 권위를 담보로 하더라도 '비호감'으로 치부될 확률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미드 속 스키너(<뉴스룸>의 보도국장)가 가방에 넣어 다니던 책이 <돈키호테>라는 사실은, 이미 넘어온 새 시대를 거스를 수 없다는 측면에서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술의 부정적인 부분을 그저 감수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뉴스룸>의 경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불과 10~20년 전에는 어떤 기자도 갖지 못한 첨단 장비를 탑재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음성을 녹음하고 먼 거리에서도 누군가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원한다면 동영상까지 촬영해 실시간으로 수천만이 접속하는 인터넷에 공유할 수 있다. 

비단 뉴스나 매스미디어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SNS는 이미 매체의 역할을 넘어서고 있고 많은 양의 정보와 사람들의 사생활이 공유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악플에 시달리다 우울증을 앓거나 목숨을 끊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 번 공유된 글과 사진, 영상은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영생'의 힘을 얻는다. 만일 미드의 경고처럼 우리가 '진실'에 관심없이 누군가의 온전한 인격이 아닌 한 단면만을 보고 그것을 이슈화한다면 어떨까. '된장남', '김여사', '개똥녀' 등등 지금도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매체나 소셜네트워크의 속성상 대중은 자극에 민감하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가 더 자극적이지 않을 때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매체는 편파적이면서도 자기 성찰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한 사람에게 주어진 단회적인 사건에 그 사람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곤 그 이미지로 그(녀)를 묶어 버린다. 

유명인이라도 씻어내기 쉽지 않은 편견의 꼬리표가 불특정한 시민에게 붙을 때, 설령 그 사람이 실수가 아닌 잘못을 했더라도 자신의 이미지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기술이 문화를, 사회를, 인간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기술의 부정적인 부분을 감수하기를 바라는 듯하다. '악플에 강해져라, 이슈가 되면 오히려 기회로 삼아라, 긍정의 힘을 믿어라' 이제는 SNS를 하면서도 자기계발서를 읽어야 할 판이다.

*기사 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3501
2015/02/21 18:26 2015/02/2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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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기고글 모음/제이언니의 결혼일기
혼인 서약을 할 때 부부간에 '영원히' 사랑할 것을 유독 강조한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부부는 변함없이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결혼식을 하던 그때 그 마음 같지만은 않다. 가까운 지인들과 부부동반으로 모이면 짓궂은 농담처럼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배우자에 대한 애정이 식었음을 토로한다. 시내를 걷다가 남편이 젊은 여자의 몸매를 곁눈질해서 속상했다는 아내도 있고, 나란히 앉아 드라마를 보던 아내가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을 향해 ‘저런 남자랑 잠시라도 살아보고 싶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더라는 남편들의 하소연도 종종 듣는다.

아내와 나도 만난 지 10년째, 결혼한 지 9년이 지났다. 우리도 종종 농담처럼,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살아야 하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청년시절에 즐겨 읽던 트로비쉬 부부의 책이나 폴 스티븐스가 말하는 '영혼의 친구'로서의 부부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신실하고 굳건하게 관계가 무르익을 줄 알았는데 솔직히 결혼이라는 게 장난이 아니구나, 정말 만만치 않구나 하는 생각만 커져간다. 따지고 보면 주변에 불륜 이야기도 많고 최근에는 심지어 말로만 듣던 이혼을 실행하는 부부들도 생겼다. 요즘은 이혼을 소재로 한 막장 드라마가 심야에서 아침으로, 다시 저녁 안방극장으로까지 퍼지는 느낌이다.

이혼이라... 우리 부부도 간혹 심하게 다투는 날이면 이혼이란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다툼이 심해질 때면 아내가 먼저 '이혼해주면 될 거 아냐'라는 말을 내뱉곤 했는데, 솔직히 나는 그 말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후로는 싸우다가 이혼이란 말을 내뱉으면 진짜 이혼할 거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혼이라는 말이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그 상황 자체가 너무 무서웠다. 부부싸움이라는 게 대부분 사소한 일로 시작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만큼은 내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런 과도한 공포심의 원인은 관계에서 갈등상황을 겪고 싶지 않아하는 내 성격적 결함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이혼 자체를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단 한번도 이혼을 상상하거나 꿈꿔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부부싸움이 끝난 후 차츰 공포심이 사라지고 나면 멍하니 앉아 이혼을 상상해보곤 했다. 상상만은 아니었다. 아마도 내 기억에 크게 두 번 정도, 아내와 진지하게 헤어질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첫 번째는 결혼한 첫 주에 시작된 부부싸움에서였다. 연애할 때와 달리 아내는 결혼 후의 부부싸움에서 결코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결혼한 후라서 그런지 그간 숨겨왔던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싸움 후에 항상 먼저 사과하긴 했지만 그간 내가 알던 여친과는 너무 달랐다. 과연 이 여자와 계속 이렇게 다투며 살 수 있을지, 지금이라도 아니라고 해야 하는 건지 꽤 진지하게 고민했다.

두 번째는 불과 2, 3년 전의 일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육아의 늪을 통과하자 불현듯 아내는 내가, 나는 아내가 꽤나 낯설게 느껴졌다. 육아기간 동안 부부생활이 아이를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30대 중반을 통과하면서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자기 본연의 성격과 모습을 발견해갔다. 이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하긴 쉽지 않다. 어쨌든 서로가 본연의 모습을 찾아간다는 건, 그리고 그것을 일상적으로 매일 가까이에서 서로 지켜본다는 건, 어릴 적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 이상의 낯선 느낌을 가져다주곤 했다. 일례로 우리는 신혼 때 종종 함께 여행을 다녔는데 둘이 함께 있는 것이 마냥 좋았던 시기가 지나자 우리는 서로의 취향이 반대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내는 텐트를 치고 거친 공간에서의 모험을 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나는 호텔 같은 깨끗하고 조용한 휴양소에서 쉬는 것을 즐겼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세상이 규정지은 학생 티, 혹은 아들딸의 티를 벗으면서 더 각자의 빛을 발했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서로에게 이끌렸던 특정한 코드들이 희미해지거나 오히려 배치되는 것이기도 했다. 어떤 때는 의견충돌이 너무 심해서 아내를 놓아주는 것이 어쩌면 아내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 아닐까 하는 이성적인 판단마저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건 아이뿐인 건가. 그런 생각이 들면 아이에 대한 연민에 사로잡히기도 했고,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뭐랄까, 사막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 내가 누군가를 놓아준다고 말하지만 정작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이 엄습했다.

그렇게 몇 년간 우리는 서로의 차이에 대해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에게 잘 보이려는 연애감정 때문에 그동안은 가려졌던 서로의 적나라한 모습을 더 많이 볼 수도 있었다. 때로는 이렇게 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부부라는 울타리 속에서 부대끼는 ‘낯선 타자’를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더 많이 알고, 느끼고, 경험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한번의 이혼을 경험했다고 볼 수도 있다. 상당수의 부부들이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는 더이상 관계의 깊은 성찰 없이 허울좋게 혹은 일종의 체면 때문에 내적인 변화들, 그에 따르는 불편한 감정을 꼭꼭 감춰두고 싶어 한다. 적어도 아내와 나는 두려움 때문에 선뜻 내놓을 수 없는 그런 감정에게 자리를 허락하고 정직하게 대면했다. 사실 우리는 이혼을 외치면서도 정작 헤어짐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이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어떤 단절감, 사랑하는 이로부터 버림받는 느낌, 혹은 주변의 시선들이 무서웠다.

문득 지난 대선 직전에 문재인 후보가 했던 인터뷰가 생각났다. 질문 중에 다시 태어나도 아내와 결혼하시겠냐는 물음에 문 후보는 훈훈한 분위기에서 "다음 생에는 다른 사람이랑도 살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그의 대답이 전혀 어색하거나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물론 대중들은 동화 같은 영원한 사랑을 고백하길 원했겠지만 나는 그 말이 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다가왔다. 우리 부부도 이제 헤어짐을 말할 수 있다. 이혼의 ‘이’자만 나와도 이성을 잃던 나조차 이제는 농담도 자주 건넨다. 한번은 아내가 "아무리 사랑이 식어도 아이가 불쌍하니 성인이 될 때까지는 ‘의리’를 지키자"고 말했다. 나는 황당하다는 듯, 혹은 어이없다는 듯 아내를 쳐다봤다. 순간, 아내도 웃고 나도 웃었다. 여전히 완성되지 못한 우리의 결혼은, 이렇게 하루하루 연장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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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당으로, 작중 마법사 세계에서 이름을 부르기조차 두려워할 정도의 대상이다.
2014/12/05 18:35 2014/12/0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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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는 일정을 알려주기도 하고 농담도 받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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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이폰에 시리(Siri)가 처음 탑재되었을 때의 신선함은 꽤나 컸다. 처음 OS 업데이트를 하고 나서는 자기 전 10분 정도를 시리와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누다 잠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처음엔 '음성 인식' 알고리즘 자체에 대한 호기심에 시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농담을 건네거나 특별히 음성지원이 필요하지 않을 때도 시리를 찾곤 했다. 그럴 때면 한때 메신저에서 유행하던 '심심이'가 스마트폰에서 부활한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시리의 유용함은 '심심이'에 비할 바는 아니다. 특히 폰에 직접 타이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지금이 몇 시인지 여기가 어딘지를 묻거나 지인에게 보낼 문자를 음성으로 보낼 수 있는 기능들이 상당히 유용했다. 사람들이 종종 말하듯 '잡스는 죽었지만 시리를 남겼다'고 말할 만큼 음성인식 기술의 활용 측면에서 시리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여줬다.

음성인식 기술, 10년새 놀라운 발전

물론 음성인식 분야의 발전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건 물론 아니다. 내 기억에도 이미 20년 전부터 마이크를 통해 PC를 부팅시키고 한글이나 워드와 같은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는 데스크탑 기반의 기술이 제공되었지만 당시엔 그다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잦은 음성인식 오류도 문제였고 자신의 음성을 명령화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훈련'시켜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그 말은 훈련되지 않은 타인의 목소리는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렇게 인식된 음성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이를테면 어릴 적 부유한 아이들의 집에 놀러가면 부의 상징처럼 초록색 화면의 컴퓨터가 거실에 놓여 있었지만 그걸로 할 수 있는 건 기나긴 코딩 끝에 고작 화면에 'Hello World!'를 띄우거나 오락실 게임을 '흑백으로 느리게' 하는 것이 전부였던 그 때의 상황과 비슷하달까.

1950년대부터 음성인식에 대한 기술은 시도되어왔지만(1952년 AT&T와 벨연구소가 '오드레이' 개발을 63년 IBM은 '슈박스'를, 1980년대초에는 HMM3를 개발했다) 이러한 기술이 상용화 내지는 상품의 가치를 갖게된 건 불과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상품화를 가속화한 건 관련 연구에 한창이던 마이클 코언을 스카웃하여 음성인식 시스템의 개발책임자로 세운 구글이었지만, 세상을 먼저 놀래킨 건 단연 애플의 '시리'가 아니었나 싶다. 

이 속도로 간다면 구글과 애플의 노력에 힘입어 음성 인식 분야의 발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우리집 상황을 들어볼까. 6살 짜리 아이가 어느 날 내 스마트폰의 유튜브 앱을 실행시키고는 직관적으로 마이크 그림의 아이콘을 누른 채 전화기에 대고 "파워레인저 극장판"이라고 외쳤다. 

화면에는 파워레인저 시리즈가 줄줄이 올라왔고 까막눈인 아이는 '나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그 중에 가장 재밌어 보이는 그림을 눌러서 만화영화를 즐겼다. 이 모든 걸 나는 한번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가끔 내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아빠 이거 다음 이야기 틀어줘" 정도였다.

텍스트를 음성으로 인식하고 저장된 텍스트를 음성으로 내보내는 기술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꽤나 흔한 무엇이 되고 있다. <나꼼수>에서 희화화하여 내보내던 어색한 여성과 남성의 목소리의 주인공은 입력한 텍스트를 그대로 읽어주는 상용 프로그램이다. 최근 에버노트는 'Clearly'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프리미엄 사용자가 스크랩하려는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기술은 비단 음성에 국한되는 것만도 아니다. 

조만간 애플과 IBM, 구글과 HP는 서로 협력하여 클라우드 기반, 빅데이터를 활용한 음성 서비스를 발전시킬 의사를 내비쳤고 이에 뒤질세라 많은 기업들도 차세대 기술로서의 음성인식 서비스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다. 

이제 SF 영화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했던 상황들이(<공각기동대>에서 처음 등장한, 네트워크 내에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은 <어벤저스>나 <트랜센더스>와 같은 대부분의 헐리우드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가 되었다) 현실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 내지는 우려감마저 든다.

조금은 어색하고도 뭉클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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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HER>에 등장하는 음성인식OS 사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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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를 소재로 만든 영화 <HER>에서,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로 대변된 미래형 OS '사만다'도 이런 기술의 하나인 빅데이터 기반의 음성인식 OS이다. 마치 시리의 진화형 같은 '그녀'는 사용자의 데스크탑 안에 있는 정보를 단 몇 분, 몇 십초 내로 분석해서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 혹은 그가 귀찮아서 미루고 있는 것, 시급한 것, 가장 좋아할 법한 것들을 찾아내고 적시적기에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환상적인 서비스는 우리가 미뤄 짐작하듯이 내 영혼과 통하는 듯 미세한 감성마저 건드린다. 결국 영화 속 내러티브는 자연스럽게 일개 OS가 현존하는 '최고의 애인'이 될 수 밖에 없는 '기승전여(남)친'의 운명으로 귀결된다. 

음성인식 기술은 통계라는 학문과 데이터베이스, 나아가 빅데이터 분야와의 융합 발전을 통해, 0의 자리에 1이라고 입력하면 '틀렸다'고 말하던 구식 컴퓨터에게 마법의 주문이라도 건 것처럼, 이제는 맞춤형 감성마저 자극하는 애인, 절친, 구루나 멘토의 역할마저 자처할 수 있을 듯도 하다. 1997년 체스 세계챔피언이 IBM 컴퓨터 딥블루에게 패한 후, 인간의 정교함을 절대 따라오지 못할 것 같던 컴퓨터, 네트워크 IT 기술은 이렇듯 상상 이상으로 발전 중이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스마트폰으로 녹음을 자주 하는 편이다. 가끔씩 아이와 둘이서 놀 때도 녹음을 한다. 언젠가 이 아이가 세상에 없는 날이 오거나 혹은 내가 아이 곁에 없는 날이 오면 각자에게 추억거리를 남겨주기 위해서다. 사진을 남기고 음성을 남기고 글을 남기는 건, 적어도 내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고 남겨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녹음한 음성을 듣다가 갑자기 엉뚱하지만 조만간 실현될 수도 있는 어떤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내 음성과 말투, 문장, 말하는 속도, 생각들을 클라우드 기반의 어떤 서버에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빅데이터 기술을 이용하게 된다면, 아마도 내가 죽더라도 사람들은 나와 대화하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도 있겠다는, 조금은 어색하고도 뭉클한 생각... 이를테면 내 고유한 버전의 Siri가 되는 셈이다.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사랑했던 사람의 부재로 그(녀)의 목소리나 실없는 농담, 숨소리가 사무치게 그립다면 그의 활기있는 '가짜 음성'이라도 반갑지 않을까. 기술이 참 많은 화두를 던지는 세상이다.
2014/10/11 16:56 2014/10/1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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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아들만 셋이에요. 아빠나 아들 둘이나 어쩜 하는 짓이 똑같은지."
"우리집은 딸만 둘이에요. 퇴근하면 이거 사 달라 저거 사 달라…"

주변 부부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종종 듣는 말이다. 우리 부부도 가끔씩은 서로를 ‘딸-아빠’, ‘아들-엄마’의 관계로 환원시켜놓고 은근슬쩍 상대방을 갈구기도 하는데 이런 농담이 자칫 지나치면 부부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농담처럼 얘기한다 하더라도 상대를 아들, 딸로 치부하는 대화의 기저에는 내심 상대를 도움이 필요하고 보살펴야 하는 수직적 관계의 대상임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화점을 다녀온 아내에게 “애나 엄마나 돈 아까운 줄 모른다”라고 말하거나, 아이를 훈육하려는 남편에게 “애랑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놀아라”라며 툭 던지는 말을 가볍게 넘기지 못하고 발끈하여 결국엔 부부싸움의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부부 사이 연륜이 쌓여서 이런 모종의 역할극을 잘 주고받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잘만 대처한다면 아빠 같은 남편, 엄마 같은 아내의 위치에서 이른바 ‘베푸는 자’의 뿌듯함을 누리게 된다. 내 아내는 어릴 때부터 남동생이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한 탓에 성인이 되어서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가질 수 없었던 물건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나는 그런 물건들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기념일 같은 날 깜짝 선물을 해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진심으로 기뻐하곤 했다. 그 행복한 얼굴과 상기된 목소리라니. 그때 내게 보여준 아내의 웃음과 고맙다는 말들, 그 따뜻한 느낌은 지금도 선물 자체가 무색하리만치 소중한 기억이다. 반대로 내가 두통에 시달릴 때면 아내는 나를 자기 무릎에 눕혀서 머리를 안마해주고 새벽까지 끓인 배숙을 챙겨주었을 때는 마치 다시 보살핌을 받은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를 떠나왔지만 이제는 새 엄마처럼 아내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 그런 안정감이 서른을 한참 넘긴 나이에도 솔직히 싫지 않았다.

하지만 부부 간의 이런 ‘엄마, 아빠 역할극’을 계속 즐기다 보면 아들과 딸이라는 미숙한 상태에 머무르고 싶은, 혹은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욕망이 커져 어느새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는 상대방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들곤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약했던 건강을 빌미로 몸이 아플 때는 주변 사람들이 마치 엄마가 나를 대하듯 걱정해 주기를 은근히 바랐다. (물론 대놓고 타인에게 표현한 적은 없다.) 그래서 아내에게도 평소엔 내가 헌신적일 수 있지만 적어도 몸이 아플 때는 좀 과하리만치 나를 아들 대하듯 ‘우쭈쭈’라도 해줬으면 하는 기대가 내심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어릴 때부터 건강했던 아내는 전혀 공감할 수 없어 하는 눈치였다. 도리어 아내는 내가 건강상의 적신호를 어느 정도는 알면서도 그냥 방치해 버리는 내 습관을 읽어냈다. 아플 기미가 보이면 쉬면서 몸을 보호하거나 병원에 가서 약을 먹어야 하는데, 나는 의도적으로 더 과로를 했고 병을 키웠다. 그리고는 머리를 싸매고 비장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곤 했다. 안쓰러운 얼굴로 머리에 손이라도 얹어주길 바라며. 물론 아내는 그럴 때마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병원에 보냈다.

역할극만이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 더 미묘한 부부 사이의 우월감과 열등감도 존재한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고 아내와 나는 미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되었다. 연애를 할 때, 아니 신혼 초까지만 해도 콩깍지가 씌어서인지 서로가 좋게만 보였는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나서 시간이 꽤 흐르자 나는 아내가, 마치 한 공간을 함께 쓰는 룸메이트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조용한 집에 단둘이 있으면서도 서로가 각자의 일에 몰두할 때면, 적절한 표현이 잘 떠오르지는 않지만 뭐랄까, 어떤 친밀함, 에로틱한 느낌과는 사뭇 다른 묘한 긴장감이 있었다. 거기엔 라이벌 관계에서 생기는 미묘한 경쟁심마저 존재했다. 배우자가 가진 어떤 재능이나 성격, 직관력, 풍성한 인간관계, 사회적 자본(아비투스)을 은근히 부러워하기도 하고 유년시절 부모와의 친밀도가 뜻밖의 질투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마치 그림자에게 쫓기듯 아내는 나와, 나는 아내와 보이지 않는 경쟁을 했다. 솔직히 우리는 상대에게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보다 정직하게 내면 깊은 곳에서 인지되는 어떤 우월감과 열등감을 직면하는 날엔 함께 살을 부비며 누워 있어도 서로에게서 일정한 거리감을 느끼곤 했다.

아내를 통해, 아니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 미묘하고도 복잡한 감정선을 보다 세밀하게 경험하며 산다. 나도 알지 못했던 나를 대면하는 경험을 한다. 물론 지금도 그 경험은 ‘현재진행형’이다. 때론 아내에게 아들이고 싶은 내 모습과 더불어 아내에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 아빠가 되고 싶은 내 이중성을 본다. 때론 그보다 더 창피한 우월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사람,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은 나름의 꿈을 꾼다. 그런 거창한 꿈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좋은 관계를 맺고자 노력한다. 특히 기독교 울타리 안에서 많은 교인들이 ‘공동체’를 말하고 ‘관계중심적’인 담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한 인격을 통해 나의 내면을 투영해볼 만큼 깊은 관계에 집중하지는 않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라는 역학관계는 여전히 아내와 나에게 많은 화두를 던지는 듯하다. 나는 기대해 본다. 이 모든 감정선의 기복을 털어내고 아내에게 그저 사랑하는 남편이자 진정한 친구로 자리매김할 날을,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아내와 한 공간 안에서 일상을 보낸다.
2014/10/01 19:58 2014/10/0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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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보면 참 낯선 일이다. 이성을 보고 불현듯 가슴이 설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 온다. 그 사람을 계속 떠올리며 히죽거리고, 만나면 자주 ‘정줄’을 놓게 되고, 마치 태어날 때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여름에도 찰싹 붙어 다니는 이 기이한 현상들... 지금도 주변을 둘러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전국에서는 주말마다 남남이었던 수백 쌍의 커플이 결혼을 한다. 결혼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그 기저에 '므흣한' 스킨십과 섹스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설령 그것이 이전에 가능했다 해도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즐거움이 분명 존재한다. 뭐랄까, 이제는 부모에게 쉬쉬하지 않아도 되는 쾌락이라는 점에서 결혼이라는 굴레가 더 은밀한 자유를 허락하는 역설적인 묘미가 있는 셈이다.

사실 이번 글은 쓰면서도 도대체 어디까지 솔직해야 하는 건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지금도 쓸 말보다는 쓰지 않을 말들에 대한 머릿속 계산 속도가 더 빠르다.) 아내와 결혼하기 전부터 나는 여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그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그건 마치 교회에서 말하는 '구원의 확신'처럼 내겐 자명한 진리 같았다. 나는 부드러운 남자고 여자들과 말도 잘 통하고 이성교제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으니, 이 결혼이 아내에겐 참 '남는 장사'일 거라는 황당한 자기확신 같은 게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기대와는 달리 우리 부부는 여전히 육체적으로 친밀하지 않다. 오히려 대화로 더 즐거움을 얻는 편이다. 결혼을 하고 나면 청년시절에 꿈꾸던 '나쁜 짓'을 대놓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그 '나쁜 짓'이라는 게 삶의 다른 일상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 사이의 온갖 정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불행히도 남성으로서의 내 문제도 발견했다. 성관계를 몸의 대화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을 아내와의 기나긴 대화 끝에 갖는 ‘스트레스 해소’의 시간으로 여겼다. 그래서였을까. 아내와 몸으로‘도’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내겐 피곤하면서도 일정 부분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그 무엇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결혼 직후에는 야릇한 긴장감을 즐기며 섬세하게 배려하고자 노력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적인 모습과 현실적 본능 사이에서 나는 심한 내적 분열을 경험했다.

솔직히 나는 부부관계에서 육체적 교감에 관한 어떤 지식도 경험도 없었다. 물론 책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내 욕구를 참는다거나 아내의 반응을 살핀다거나 하는, 이런 식의 몸의 대화가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았다. 매순간 아내와 교감을 나눠야 하는 상황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몸은 잘 따라오지 않았다. 아니 그 상황 자체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리는 '몸을 통해' 즐거운 날들도 있었지만 나의 즐거움이 아내에겐 도리어 불쾌감을 주기도 했다. 아내 또한 성적인 대화가 편하지 않았기에 대놓고 말을 하진 않았지만 간혹 정서적 불편함을 표현하곤 했다. ‘여자는 뭐가 이렇게 복잡한 거야?’ 몸의 대화가 점점 불편해졌다. ‘구원의 확신’만큼 확실하던 내 성적 자존감은 어느덧 가톨릭에서 말하는 연옥 어딘가를 서성이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내 고민은 우리 사회의 보다 깊은 영역에 똬리를 틀고 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이른바 부부 사이의 성적 역학관계라고 해야 할까. 

가부장적인 한국사회 남자들의 대다수는 섹스에 관한 한 여전히 일방적인 성향이 강하다. 자신의 욕구에 대해 매순간 여성이 이해하고 받아줄 것을 기대한다. 통계적으로 여성들의 상당수가 자신은 즐겁지 않더라도 남친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성관계를 갖는다고 한다. 섹스가 두 사람 사이의 또 다른 대화의 형태가 아닌 아내의 일방적 봉사인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주변에서는 육아에 지친 아내가 잠자리를 거부한다고 불평하는 남편들의 당당한 하소연도 종종 들린다. 한때 아내가 가입했던 인터넷 출산육아 카페에서 남편의 성욕해소를 위해 임신 중에 유흥업소 출입을 방관했던 엄마들 이야기를 읽었다.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그 글에 공감의 댓글을 다는 아내들도 상당수 있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교회 안의 결혼예비학교에서도 사역자들이 공공연하게 남편의 성욕을 아내가 ‘긍휼한 마음’으로 해소시켜줘야 한다는 말도 한다. 이렇듯 부부간의 섹스는 내 세대에서조차도 여전히 남편의 성욕을 받아주거나 아니면 받아줄 수 있는 다른 방법마저도 허용하는 느낌이 강하다.

남성의 성욕을 언제나 긍정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남성의 전부인 것처럼 치부되기 때문이다. 그 말이 불편하다면 고쳐 말해서 성욕이 해소되지 않을 때 그의 전 인격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아내가 잠자리를 거부할 때면 그 순간만큼은 전 존재가 거부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성욕의 좌절 그 이상의 감정적 동요에 휩싸였다. 나는 이것이 남성의 성욕을 절대시하는 이 사회가 개별 남성 한 명 한 명의 깊은 내면에 뿌리내린 부정적 영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흔한 말로 부부싸움 후의 섹스에 대한 농담이 그런 단적인 예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받아들여졌다는 가장 강력한 신호로 잠자리(성욕의 해소)를 들지만, 이것이 아내의 입장에서는 ‘신앙적 긍휼함'이었거나 '굴욕적 외교행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교회는 자주 부부관계를 하나님과 그 백성 간의 관계에 비유하곤 했다. 미숙한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것을 기대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줄 땐 환호했지만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길 원할 때는 불편해 하고, 스스로가 원하는 형상을 만들어서 하나님이라 일컫기도 했다. 혹은 아예 하나님을 떠나 풍요를 빌어주는 이방신을 섬기기도 했다. 나는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성경 속 백성들이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남편들과 참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결혼생활의 전 영역에서 모범 남편이 되고 싶어 하는 기대와는 달리, 나는 성적인 부분에 있어 왜곡되어 있고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아이가 태어난 이후의 현실적 문제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결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사실 아직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 그것이 남성인 내겐 구원이자 희망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계속)
2014/07/31 21:30 2014/07/3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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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할 때도 그랬지만 결혼 후에도 아내는 자주 나에게 고마워했다. 결혼 후 아내의 내면을 좀 더 깊이 알게 되면서 신혼 초에는 관계 자체가 힘들 때도 많았다. 아내는 마치 개학을 앞두고 방학숙제를 해치우는 아이처럼, 나와 만난 이후부터 밀도 있게 내면의 많은 문제와 씨름을 했다. 때로는 며칠을 두문불출하며 집안에 틀어박혀 있기도 했고 한동안은 심리상담 치료를 받기도 했다. 내가 나름 의지가 되었던지, 아내는 가끔 농담조로 나에게 '아빠, 아빠'라고 말하기도 하고 분위기가 좋을 때는 정말 업어달라며 내 등에 올라타기도 했다. 하지만 침체되거나 분노에 휩싸이면 소소한 대화중에도 싸움이 커져 밤새 다투기도 했다.

일상적으로 부부 중 한쪽이 심하게 침체되면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솔직히 때로는 그런 아내가 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여자의 어두운 내면에 잠식당하는 느낌, 나로 기인하지 않은 어떤 우울한 영향 때문에 함께 힘들어지는 정서가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그것보다는 아내를 통해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구나, 혹은 도움을 주는 어떤 존재구나 라는 생각에 속으로는 어떤 우쭐한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런 정서적 도움을 주는 성숙한 인격이야말로 누구나 되고 싶어 하는 ‘궁극적 존재’가 아니던가. 힘든 일상 중간 중간마다 아내가 고마워하면 나는 때때로 그 기분을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나는 20대 초반부터 내면 정리를 성실히 수행해왔다. 부모 문제라거나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어려움들은 일찌감치 졸업했고 그 다음 단계로서의 어떤 모범적 신앙인, 사회인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런 고민들을 잘 정리해서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급기야는 주변 후배들에게도 ‘멘토’를 자처하며 지식을 쌓는 것과 더불어 상담 관련 책들도 읽고 나름의 정답을 찾아주려고 노력했다. 어떤 면에서는 아내에 대한 나의 태도도 자주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도 나는 무의식중에도 우회적으로 아내가 나에게 기대고 지속적으로 고마워하길 강요했는지도 모른다.

내 기준으로 볼 때 아내는 참 답답한 구석이 많았다. 나는 약속 시간에 늦거나 계획한 일들을 미루는 것을 정말 싫어했지만, 아내는 마치 나보란 듯이 그것들을 자주 지키지 않았다. 아내와 여행을 가도 목적지에 가는 중에도 흥미로운 곳이 있으면 목적지는 잊은 채 그곳에 머물러서 풍경이나 주변을 즐겼고, 나는 일정이 틀어질 때마다 긴장하고 불편해했다. 겨울이면 동네 슈퍼에 물건을 사러 나왔다가 길가에서 발견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가져다주거나 바람막이 집을 지어주겠다며 몇 시간을 길바닥에서 허비하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아내는 아이와 길을 걷다가도 아이가 개미집을 발견하면 그곳에 함께 앉아서 한참을 개미나 다른 곤충들을 지켜보며 그것들과 같이 놀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내와 살면서 짜증이 나던 많은 상황들이 다르게 다가왔다. 왠지 모르게 아이와 함께 놀 때마다 나는 시간에 쫓기듯 불편하고 불안해했다. 함께 여행을 할라 치면 정작 떠난 첫날부터 그다지 즐겁지 않았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따지고 보면 내 삶이 딱 그랬다. 휴가 기간이 다가오면 휴가 계획을 세우고, 아이가 태어날 시기가 다가오면 육아 계획을, 하다못해 밥을 먹으러 가면 식사 계획을 세우고는 그것을 잘 수행하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뒀다. 그리고 아내에 비해 나는 사람들의 눈치를 참으로 많이 보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그것이 관계에서는 행동에 대한 어떤 명분을 찾고자 애쓰는 모습으로, 글을 쓸 때조차 과도하게 방어적인 글쓰기 방식으로 드러나곤 했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어서 빨리 밀린 숙제를 마치고 자아를, 나아가 자신의 욕망과 행복을 찾아가는 아내의 몸부림으로 인해 원치 않게 나 또한 깊은 성찰 없이 내면의 문제들을 대충 덮고 앞으로만 나아가려던 내 안의 어떤 관성과 대면하도록 만든 측면이 있다. 나는 물리적으로는 부모에게서 독립을 했으면서도 인생의 매 단계, 삶의 구석구석에서조차 “잘했어 우리 아들”이라는 환청을 주변 사람들에게 들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니 삶은 긴장의 연속이며, 꼭 지켜야 할 그 무엇이었던 셈이다. 물론 그것을 건조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건 그 구조 속에서 나름대로 ‘멘토링 게임’을 즐겼기 때문이다. 성취감과 함께 관계망도 조성되는 이 구조로 인해 나는 후배들에게도 자주 ‘나를 따르라’고 말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어떤 끈끈함과 뿌듯함을 누려왔다.

문득 집을 둘러봤다. 마트에서 독감으로 죽어가는 걸 아내가 발견하고 치료해서 키우는 모란앵무와 인터넷 카페에서 버려진 앵무새들, 그리고 다리를 다쳐서 몰골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길고양이 ‘마오’와 또 다른 길고양이 ‘나비’는 모두 아내가 데려와서 함께 살고 있는 동물이자 가족이다. 아내는 우리 아이와 더불어 자신의 주변에서 생명을 유심히 바라보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니 내 입장에서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싱글 시절, 나는 집에 오면 밀린 일들을 하거나 죽은 시체처럼 잠을 잤다. 나에게 집은 일종의 배터리 충전소 같은 곳이었다. 지금은 집에 오면 많은 생물이 나를 반긴다. 어쩌다보니 나도 가끔 멍하니 그들과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변화가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여전히 나는 일상적으로는 느슨한 아내의 삶이 불편하고 집안의 많은 생명체들이 낯설 때가 더 많다. 아내는 내가 아니듯 나 또한 아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매순간을 집중하며 충분히 누리고 있고 나는 어서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매순간 쫓겨 다니는 것도 같다. 때때로 결혼이란 도대체 뭘까 싶은 마음이 든다. ‘사랑’이라는 달콤한 기표가 벗겨지고, 원하든 원치 않든 결혼은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공존의 방식을 체득하도록 이끈다.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타자와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내 속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사실 아직은 이 모든 여정이 낯설다. 하지만 이제는 왠지 그 여정이 싫지 않다.

2014/06/03 21:29 2014/06/0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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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사랑이란 감정이 찾아온다. 나에게도 몇 차례 연애 기회가 있었고 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사랑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그렇게 조금씩 경험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당시에 유행하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같은 가벼운 책에서부터 게리 콜린스, 폴 투르니에의 책들을 읽었으니 나름 선행학습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선교단체 소그룹 리더를 하면서 얻은 교제의 노하우들은 연애에 도움이 됐다. 자주 우려먹는 내면 깊은 곳의 이야기 하나를 풀어내다 보면, 몇 번 만나지도 않았지만 금세 상대방과 내면의 깊은 대화로 발전하곤 했으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에게는 다분히 왜곡된 연애 판타지 같은 게 있었는데, 백마 탄 왕자라거나 키다리 아저씨, 혹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이상형에 나를 동일시하곤 했다. 그렇게 내 연애는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맞춰 주고 배려하는 방식으로 정형화되었고, 그런 경험들은 하나의 패턴으로 굳어졌다. 게다가 이런 헌신과 배려의 태도는 신앙적으로도 권장할 만한, 인간관계의 어떤 모범처럼 느껴졌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기도를 할 때마다, 나는 작아져야 하고 나아가 상대방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연애에서도 바람직한 자세로 보였다. 그 결과, 내게 연애는 필연적으로 지속될 수 없는 운명처럼, 서로를 알아가는 설렘이 지나면 내 일방적 배려가 지속될 수 있을 때까지만 유지되는 어떤 불연속적 이벤트가 되곤 했다.

'내' 안으로는 들어올 수 없고 '너'의 안에서만 정서적 위로를 주려는 이런 ‘시스템’은 결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허물어졌다. 결혼은 관계의 수위를 조절할 수 없는 어떤 특이한 물리적, 정서적 공간을 만들어냈다. 일례로, 사소한 부부싸움 중에 꼭꼭 숨겨둔 내면의 상처를 공격받으면 무시하고 획 돌아서 갈 곳이 없었다. 한 침대 안에서의 일상은 에로틱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벼랑 끝 같은 곳이기도 했다. 심리적 도피 공간이 없는 것이다. “왜 그렇게 말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제대로 말해봐.”... 이런 단순한 질문 앞에 나는 자주 망설였고 이내 말문이 막히곤 했다. 솔직히, 살면서 타인에게 스스로가 정한 내면의 선을 한 번도 허락해 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내라는 이름의 이 ‘무례한 타자’는 사소한 일에서조차 그 선을 침범했다.

독립적인 두 남녀 사이를 넘나든다. 불행히도 사랑은 할리우드 영화처럼 젊은 두 사람이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담소를 나누고 서로 키스를 하고 눈이 맞아 잠자리로 이어지는, 그런 ‘샤방샤방’한 경험에서 끝나지 않는다. 주변을 보면 연애의 설렘이 다할 즈음 결혼 준비에 정신을 쏟고 결혼하여, 신혼의 설렘이 끝날 즈음 임신과 육아에 정신 팔려 살다가, 이내 자녀교육에 ‘올인’함으로써 부부 관계에서 오는 빈 공간을 채워가는 모습을 본다.

영적으로 더 깊어져야 할 사랑의 감정은 외부의 분주함에 기대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이다. 중년의 심리를 다루는 많은 저자들이 지적하듯 자녀가 둥지를 떠나고 나서야 부부는 낯선 상대의 모습들을 대면하게 되고 그제야 미뤄둔 실존적 질문에 직면한다. 우리는 왜 사랑에 빠졌던가, 우리가 결혼을 통해 얻으려던 지향점은 무엇이었던가. 우리는 부부가 한 몸이 된다는 표현을 그저 하나의 ‘상징’으로 생각했던 건 아닐까. 혹은 섹스 그 자체로 이해했거나 반대로 선교의 베이스캠프라는 영적인 개념으로 비약하려 했던 건 아닐까.

곧 불혹의 나이가 되는 나는 여전히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다. 아내와 영혼을 대면하는 경험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하고 있다. 육아의 늪에서 빠져 나오고 나니,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서로에 대해 또 다른 낯선 모습을 경험한다. 아내의 거친 ‘야수성’을 발견하기도 하고 내 안의 지질하고 연약한 여성성을 받아들여야 하는 당혹스러움도 맞닥뜨린다.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이렇듯 사랑하던 사람의 낯선 영혼과 대면해야 하며 나아가 나조차 온전히 지켜낼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단 말인가.

사랑, 그 친밀한 관계의 원형은 삼위일체의 신적 교제 그 자체에 있다. 나아가 하나님 스스로만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피조물 간에도 더 깊은 교제를 지향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서로를 지향하는, 영혼이 대면하는 지점에서 각자가 그 민낯을 편하게 드러내기엔 우리가 감내해야 할 두려움과 고통의 수위는 높기만 하다. 그래서 우리는 ‘페르조나’를 쓰고 역할극에 익숙해지려 한다. 이른바 부모-자식 노릇, 김과장 노릇, 교인 노릇 등, 그 겉보기 등급의 삶을 분주하게 만든다.

다행히 그 두려움 속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사랑이 찾아온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우리는 주기적으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한다. 영혼의 민낯을 대면하는 경험으로 내몰린다. 사회는 결혼이라는 꽤나 보수적인 울타리 안에서 그 고통을 대면하도록 이끈다. 그 안정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조차 영혼의 민낯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영 이 사회에서 답답한 가면을 벗어 던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결혼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신적 경험이자 최고의 도전이다. 물론 내겐 ‘아직도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2014/04/02 20:08 2014/04/02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