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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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십대의 나는 "사람이 희망이다"라거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같은 말이 불편했다. 대학생 시절 사회구조적인 모순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사람 개개인의 관계성보다는 '구조적인 개선'이 시급하고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이러한 생각은 진중권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진중권에 따르면, 한국사회의 가장 문제가 혁명이나 근대화 과정의 갈등을 경험하지 않고 근현대 사상을 동시대에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에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모던을 건너뛰고 포스트모던 담론화에 치중한 나머지 도리어 사회 전 영역에서 논리적인 설득과 합리적인 사고, 이를 통한 합의점에 도달하는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근대 이전으로 회귀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그래서 그 글 제목이 '백 투더 퓨처'였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혈연, 지연을 극복하고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실명으로 상대의 논리적인 맹점을 치열하게 비판하는 것이 정당하며 나아가 그것이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그가 가혹할 정도의 표현을 썼건 안 썼건 자신의 견해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라면 상호가 흔쾌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

미국에서 비롯된 자본주의 스타 시스템의 맹점으로도 보이는 인간 - 물론 이것은 소수의 선택받은 인간에 국한되지만 - 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인간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연줄들을 끊고 어떤 개인이건 이상적 시스템 안에서 평등하고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 최장집 교수가 주장하는 보스 정치에서 정당 정치로의 이행,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논지의 말미에 붙이는 "구조적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선행되야" 한다는 이야기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2.
그런 생각에 꽂혀서인지. 나는 지인들에게조차 '개새끼'라고 욕을 먹더라도 정당한 비판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크고 작은 논쟁에 비교적 적극적이었다. (어머니와 누나는 언제부턴가 나를 "쌈닭"이라고 놀리기 시작했다.ㅠㅠ) 인간관계는 당연히 이슈 중심, 모임 중심으로 흘러갔고 나의 모든 시간은 어떤 막연한 목적성을 가진 조직(?)들에 사용되었다. 당연히 그런 공간에서조차 토론은 살벌했고 온오프를 오가는 상호 비판은 자주 작은 모임에서조차 분리에 분리를 거듭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나는 심정적으로 누군가와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성격이었다. 연애를 할 때도 헤어질 것 같은 혹은 헤어져야 할 것 같은 상황이 올까봐 미리 선을 긋곤 했다. 나의 논리와 나의 성품은 점점 충돌하기에 이르렀고 어느 순간 나는 멘붕이 되어 '일' 혹은 '이슈'와 관련된 인간관계를 버렸다.

그 시기 내가 뒤늦게 깨달은 충격적인 사실은 내게 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동료? 동역자? 뭐 이런 건 있는데 그냥 만나 술한잔 하거나 어깨동무하고 들어가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거나 당구를 치거나. 뭐가 됐든 '그냥' 연락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 알았던 친구들에게 당시의 난 항상 '바쁜 사람' 뭔가 모임이 많은 사람, 놀자고 하면 몇 개의 모임 이름을 대며 머리를 긁적이며 뒷걸음치는 사람일 뿐. 그러나 이제는 일이 없으면 마땅히 전화를 걸만한 사람조차 없었다.

친구도 없고(사실, 없었다기 보다 내가 그들을 밀어내버린) 제대로 놀아본 적도 없는. 여행을 다녀본 적도 없고 시간이 나면 모임으로 약속을 빼곡히 채우던 나의 캠퍼스 생활. 그 끝물에 나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내 모습을 발견했다.

#3.
나이 서른을 넘기고서야 나는 새삼 친구의 중요성을 느꼈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직장 생활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나는 조금더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책으로만 만났던 사회 이슈들은 그 안에서 환원되지 않는 각기 다른 배경의 사람들의 이슈로 가득했다. 내가 생각했던 논리게임은 어떤 이에게는 정당했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부당하게 다가옴을 알았다.

구조적인 개혁, 변화에 꽂혀 있던 나는 사회문제나 조직의 문제를 보면서 결국 이것이 사람의 문제라는 생각을 좀더 하게 되었다. 특히 몇몇 사람들이 조직 전반에 좋은 방향성을 제시하는가 하면 반대로 몇몇 사람들에 의해 어떤 조직은 아주 심각한 악영향을 받았다. 그들이 다른 조직으로 옮겨가면서 이전 조직은 와해되기도 하고 회복하기도 한다. 빌 게이츠처럼 한명이 몇 천명을 먹여살리는 엘리트를 예찬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세운 구조는 아무리 견고해도 사람이 금새 변화(개선)시키거나 망쳐 놓을 수 있다는 게 현실이라는 생각. 최근들어 더 많이 하게 된다.

요즘도 가끔 지인들에게 전화가 온다. 무슨 일 있냐면 '아니 그냥 해봤다, 잘 지내냐'는 말에 자주 나는 가슴이 뭉클하다. 그냥 연락하고 싶은 사람. 그 관계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요즘은 한다. 예전에도 자주 얘기한 적이 있는데 나는 '쓰다듬'의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이십대에는 의지적으로 그것을 극복하고 '모던보이'가 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한때는 '조직의 개새끼'가 되는 게 무슨 훈장이나 되는 줄 착각한 적도 있다.

기독교에는 회심이라는 개념이 있다. 선한 영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 우리는 전적으로 그 영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르게 내 속에서 선한 일들을 행할 동력이 생겨난다는 거다. 기독교를 믿는다는 건 타인이 아무리 악한이라도 그가 회심의 과정을 언젠가 겪게 되면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악인과 대치상황이 벌어지는 상황에서조차 사람 그 자체를 미워하는 것이 죄가 된다. (설령 그가 MB라 하더라도.)

지금은 흔쾌히 받아들인다.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우며 "꽃으로라도 사람을 때리"면 안된다는 말들. 솔직히 이제는 구조의 변화보다 사람의 변화를 더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이 기독교적이고 현실적이고 인간 냄새 나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012/10/28 21:53 2012/10/2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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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가 구토와 고열을 동반한 증상으로 새벽에 응급실에 다녀왔다.
다행스럽게도 고열의 원인은 목감기였는데...
새벽에는 열이 너무 올라서(39.4도ㅠㅠ)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

밤새 침대시트와 이불 빨고 성하 해열제 먹이고 닦아주다가 응급실 찍고 회사에 30분 지각...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똑같은 시간에 해가 뜨고
사람들은 로봇들처럼 어제 그 자리에 앉아서 정해진 일들을 하고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조용한 사무실의 아침.

문득...
어제 이 시간의 나와 같지 않은 내 모습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되는 아침.


'12. 10. 19

2012/10/19 23:46 2012/10/19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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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모처럼 한산하게 재즈 음악을 들으며
성하랑 피자를 시켜먹던 중.
카페 같은 분위기에 나른한 햇살을 맞으며
성하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피자를
먹여주고 있는데 아내가 지나가다가 말했다.
"너희 둘... 데이트하는 커플 같아."
...
...
성하야 성하야, 아빠랑 살자.ㅋㅋㅋㅋㅋㅋㅋ

 

 

'12. 9. 30

2012/09/30 23:46 2012/09/30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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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에게 칭찬스티커를 80장을 붙이면 장난감을 사주기로
약속했는데 어느덧 70장에 가까운 수를 모았다.
성하가 사려는 것은 변신합체 로봇. (반다이 제품 ㅠㅠ)
슬슬 준비하려고 검색해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리스트를 보다가 합체는 안 되지만 로봇이 3개가 들어있는

제품을 발견. 가격이 1/3정도 저렴했다.
흐뭇한 마음에 연습 조금하고 성하와 목욕하면서 물어봤다.
"성하야. 아빠가 알아봤는데 변신합체 로봇..."
"어!!!!! 변신합체로봇!!!!!!!!"

"만화에 나오는 로봇 3개가 같이 있는 장난감이 있더라.
근데 그건 변신은 안 되는데 3개가 같이 있구..."
"우와~"
"변신은 되는데 로봇이 하나밖에 없는 로봇이 있더라구..."
"..."
"성하는 어떤게 좋아? (우후후후...)"
"(단 한번 망설임도 없이) 아빠, 난 변신합체되는 한 개가 좋아."
"어... 어..."
"랄~ 랄~ 랄~ 어푸어푸... (물놀이 중)"
"알았어... 변신합체로봇..."
...
성실하게 스티커 80개 모은 아들에게 좀더 값싼 장난감 사주려는 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배추가 비싸니 양배추로 김치먹으라는 정부와 닮았다는...ㅠㅠㅠㅠ
(성하야. 미안하다...)

 

 

'12. 9. 24

2012/09/24 23:45 2012/09/24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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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일거리를 집에 가져와도 그 일만 하고 자면 됐다. 원래 수요일은 퇴근을 조금 일찍 하는 편인데 오늘도 성하가 놀이터에 나가고 싶어 했단다. 엄마는 평소와 같이 아빠가 오면 같이 가라고 설득했고 성하는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 집에오니 벌써 깜깜해졌건만 성하는 못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엄마가 아빠 오면 놀이터 가도 된다고 약속했다... 그래, 아이와의 약속을 쉽게 어기지 않겠다고 결심했지. 평소엔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로 꼬시면 넘어갔건만 오늘은 얄짤 없다.ㅠㅠ 결국 나는 성하르 데리고 놀이터를 나갔고 친구들이 없는 놀이터 주변을 산책하다가 들어왔다. 이윽고 잘시간이 되자, 성하는 굳이 아빠와 자겠다고 했고 나는 다시 막 시작하려던 일을 접고 성하를 재웠다.

 

가끔 아이를 키워야 어른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육아 경험이 없는 청년들을 살짝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세대론 내지는 나이로 젊은 사람들을 하대하는 느낌이 들어 반감만 높아지곤 했다. 아이를 키우면 다 어른인가, 철이 들고 매순간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알아야 어른이지... 뭐 이런 생각.

 

성하를 키우면서. 아직 성하가 4살밖에 안 되었지만 그 아이로 인한 제약과 구속이 있다. 물리적으로 하루 세끼를 챙겨줘야하고 자주 함께 놀아야 하고, 안 자려고 버티는 아이를 재워야 한다. 유아 시기엔 자주 아파서 주말 약속을 모두 접고 잦은 감기나 기타 고열의 아이를 돌봐야 할 때도 많다.

 

부모가 정말 중요한 일임에도 그것에 열중할 수 없는 시간들이 생기고 그것을 일상적인 무엇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일종의 없던 의무감, 책임감을 일상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삶에서 배우는 부분이 분명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왜 나는 성하르 재우고서도 일을 안 하고 이런 글을 쓰고 있단 말인가... 아.하.하.하. 발등의 불이 떨어져도 이런 글을 끄적일 줄 아는 대인배의 풍모... 그것도 나의 아름다움 아니겠는가. (뭐래는거야...ㅠㅠ)

 

 

'12. 9. 13

2012/09/13 23:45 2012/09/1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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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뒤끝작렬 아빠...(음 여자 아빠) ㅡ.ㅡ++
어제 성하 목욕시키면서 또 물어봤다.
"성하야 아빠 남자야 여자야?"
"(딴짓하고 물놀이하며 건성으로) 여자잖아."
"어... 아닌데 아빤 남잔데."
"아니거든! 나만 남자거든!"
...
이윽고 내 눈치를 조금 살펴다가 결심한 듯,
"아빠도 남자야. 남자 맞아." (혼자 끄덕끄덕하며)
"정말?"

그러나. 뒤이어 성하가 말하길.
"어. 이제 아빠도 남자고, 엄마도 남자야."
뭥미...ㅡ,,ㅡ;;;;;;;;;;;;;;;;;;;;;;;;;;;;;
...
그게 더 기분나빠...!!!!


'12. 9. 11

2012/09/11 23:44 2012/09/11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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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가 파워레인저 흉내를 내면서 쇼파위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총을 쏘면서 상상 속 괴물을
죽이며... 완전 몰입 모드 중 갑자기 소리쳤다.
"이야! 나는 남자거든!"
어린이집에서 여자 아이들과 놀면서 씩씩함을
과시할 때 하던 말인 듯 했다.

성하는 혼자 싸울 수 없으므로 자주 나에게 싸워
달라고 조른다.ㅋㅋㅋ 그래서 피곤하니까 조금만
싸우자고 달래고는 두 세번 정도 총칼을 가지고
'응대'해주곤 한다.

며칠 전에 싸우다가 나도 삘 받아서 진지하게
총도 쏘고 변신도 하고 안방에서 마루로 도망도
치다가 문득 성하의 표현이 떠올랐다.
"이야~! 아빠는 남자거든!"
그러자 싸우려고 따라오던 성하가 멈칫 서서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에게 말했다.
...
"아빠는 여자 아니었어?"
...
...;;;;;; 이건 뭥미...ㅠㅠㅠㅠ
"아니야. 엄마는 여자고 아빠는 남자야."
"아니야 엄마도 여자고 아빠도 여자야. 나만 남자야!"
...
아.... 뭔가 알았다. 성하에게 남자라는 게 뭔지...ㅠㅠ

 

'12. 9. 10

2012/09/10 23:43 2012/09/1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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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상과의 인연은 건 대학교 휴학 중에 우연찮게 기고한 글로 인해서 시작되었다. 당시 이십대 초반이었던 나는 대학생을 필자로 대접해주는 분위기에 자뻑하여 잡지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는데 깊이 들어간 복상이라는 잡지는 당시 위상과는 달리 거의 폐간 위기에 처한 상태였다.

매달 발송 도우미를 모집하는가 하면 기자들 없이 편집장이 교정 교열을 일일이 보고 과장 한 분이 영업과 기타 모든 행정업무를 보는 식이었다. 매월 적자가 누적되어 급여 및 디자인 업체에 비용 지불이 안 된지도 거의 1년이 다 되어갔다. 당시에 독자모임을 만들었고 거기에서 만들어진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 때 편집부의 멤버들이 모두 물러났고 혼란스럽던 재정문제를 뉴스앤조이가 떠 안았다. 뉴스앤조이는 복상이라는 잡지 자체를 살리려는 생각 하나로 뛰어들었지만 괜히 복상을 탐낸다는 오명을 얻었고, 복상 또한 그렇게까지 생명을 연장해야겠냐는 비난도 받았다.
 
이후로 나는 다소 거리를 두고 이 매체를 지켜봤다. 잡지 자체가 '읽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부실하던' 시절도 있었다. 작년 초엔가 박총형이 귀국하여 복상 편집장으로 일하게 됐고 나는 그의 권유로 편집위원으로 합류했다. 거지꼴 같은 복상이지만 그 와중에도 오랜 생명력과 좋은 컨텐츠로 말미암아 한국의 크리스채너티투데이급으로 분류하는 이 잡지의 편집위원이 된 것이 한편으론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편집부의 열악한 상황으로 박총형은 근무중 병을 얻어 편집장 직을 내려놓았다. 대체로 내부 분위기는 잡지를 살리자는 의견이었고 사실상 편집위원 중 존재감이 없는 나는 박총형의 사임에 함께 책임, 내지는 입장을 정하자는 의도로 편집위원직을 내려 놓았다.
 
그 이후로 복상은 힘들게 운영되다가 최근 새 편집장을 영입했고 10월호를 휴간하고 다시 정상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정말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때때로 나는 복상이 참 '악마같은 잡지'란 생각이 든다. 잡지와 관련된 사람들을 괴롭히고 상처를 주면서 정작 잡지의 명성은 커가는 느낌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복상을 대할 때 극단적 양가감정에 휩싸인다. 잡지의 생존을 걱정하며 달려들었다가 불에 덴 것처럼 아파서 멀어지고... 그러면서도 완전히 결별하지 못한 채 이 잡지 주변을 기웃거린다.

이 잡지를 통해 정말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또한, 원치않게 그 소중한 관계가 틀어지는 걸 지켜봐야했다. 십여년 동안 반복되는 이 뒤틀린 관계를 생각할 때면 이제는 현기증으로 물리적인 구토가 날 지경이다. 오늘 아침에는 영화 '서편제'가 생각났다. 이 영화에서 판소리꾼은 자기 딸의 득음을 위해 일부러 눈을 멀게 만든다. 오빠도 떠나보낸다. 그 고통 속에서 그 딸은 판소리의 대가로 성장하고 그 목소리는 어떤 판소리꾼보다 깊어진다.

물론 복상이란 잡지가 일부러 연관된 사람들에게 고통과 분열을 안겨주는 건 아니겠지만, 어떤 유의미한 목적을 위해 구성원들의 상처와 시련으로 '그 대상이 완성된다'는 의미에서 복상과 서편제는 닮았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자주 책임 운운하며 이 조직을 떠나곤 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선 송구스럽고 백번 사과하고 싶다.

아울러 바라기는. 나는 복상이 누군가가 바라듯 탁월하고 풍성한 컨텐츠가 넘치는 잡지가 되길 기대하지는 않게 되었다. 차라리 사람들이 "도대체 이 쓰레기 같은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은 왜 저렇게 맨날 즐거워 보이는거지?"라는 소문이 무성한 잡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내 소박한 바람이다.

2012/09/09 21:51 2012/09/09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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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전화를 받고 나서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아내가 말하길, 오늘 성하가 어린이집 친구인 지연이와 결혼하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빠직) 내일 결혼할거란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내일 월차내고 지연이 부모님을 만나러 가야겠다!!!! 집에 와서 최대한 온유하게, 평정심을 잃지 않고 성하에게 물어봤다.


나: 성하야 너 지연이랑 결혼하겠다고 했어?
성하: 응
나: 아... 그렇구나...아하하 ㅡㅡ+
성하: 근데 나 해솔이랑도 할거야.
나: 뭐? 둘이랑 결혼한다구...?
성하: 응. 둘다 좋아.
나: ...
다시 나: 그건 안돼. 한사람과만 해야지...어..어... 엄마 아빠도 한사람하고만 했잖아. 너, 엄마가 둘이면 좋겠어? (젠장, 이게 먼소리야..ㅠㅠ)
성하: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

이때 아내가 황당해하며 개입!
아내: 성하는 그냥 여자친구가 둘다 좋단 소리야!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거야?!


...
ㅠㅠㅠㅠ
난 그저 성하를 뺏기는 게 싫을 뿐이라구...쩝...

 

 

'12. 9. 5

2012/09/05 23:42 2012/09/05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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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lieve that a great sense of humor save the world."
(탁월한 유머 감각이 세상을 구원할거야.)

오늘 페북에 올린 글이다. 다소 설명이 필요한 글이 될 것 같다. 최근에 나는 영화 한 편과 책 한 권을 봤다. 먼저는 책을 소개할까 싶다. <언제나 새로웠어요>라는 제목의 책인데, 이 책은 케이 재미슨이라는 정신과 교수가 죽은 그의 남편을 기억하며 쓴 것으로, 사실 저자의 이전 책인 <조울병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 An Unquiet Mind>을 인상적으로 읽었기에 이 책은 그로 인해 집어들게 된 케이 재미슨의 두번째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책의 저자인 그녀는 정신과 교수이기 이전에 중증 조울증 환자이기도 했으며 이 정신병으로 인해 오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저자가 '되었다'. 사실 그 길고도 고통스러웠던 분투의 과정에는 친오빠나 전 남자친구, 그녀의 정신과 의사 등 숨겨진 조력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의 병을 이겨내는 데 남편의 도움이 컸다고 말한다. 그녀가 회상하는 남편은 섬세한 의사이며 뛰어난 '유머감각'의 소유자였다.

"리차드는 사랑뿐만 아니라 사랑과 함께 찾아온 나의 조울증이라는 병을 날마다 조금씩 더 겪는 것도 낯설어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대단한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정말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나를 웃게 할 수 있었다. 그는 극진히도 나를 사랑해주었다. 한번은 심한 말다툼 끝에 숙모에게서 선물로 받은 도자기 토끼인형을 침실 벽에다 집어던진 적이 있었다. 사실 지금은 왜 그랬는지 조차도 기억이 안 난다. 귀여운 토끼 '눈 뭉치'는 산산조각이 났다. 핑크빛 귀 한쪽과 조그마한 발을 제외하고는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깜짝 놀란 리처드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웃음을 보였다. 나를 더 자극하지 않으려고 등을 돌리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리튬(조울증 약)을 너무 많이 복용했어" 한참 후에 말을 이었다. "표적이 빗나갔잖아." 결국 우리는 웃음보가 터져서 바닥에 쓰러졌다. 나의 분노는 리처드의 유머를 당할 수 없었다." (케이 재미슨, <언제나 새로웠어요>)

다음으로 언급하고 싶은 건 영화. 이미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Il y a longtemps que je t’aime>란 영화다. 주인공인 줄리엣 역을 맡은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최근엔 '사라의 열쇠'로 많이 알려진)의 신들린 연기가 영화의 몰입도를 더욱 높여주기도 했다. 영화에서 줄리엣은 15년만에 감옥에서 출소하여 동생 레아의 집에 머문다. 그녀는 15년 전 자신의 6살난 아들을 죽인 살인혐의로 구속되었고 남편의 불리한 증언에 의해 징역이 확정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그녀는 단 한 마디의 변호도 하지 않았다고 영화는 설명한다. 레아는 그녀를 증오하게 된 부모님의 반대로 언니와 연락조차 못하고 지내다가 출소 후에야 만나게 되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온다. 다소 충격적인 이 사건에 있어, 영화의 말미에 드러난 진실은 이렇다. 사실 줄리엣의 아들은 고통스러운 병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 증상을 의사인 그녀가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된다. 아들이 고통 가운데 죽어갈 것을 염려한 그녀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 아들과 행복한 하루를 보낸 후 아들에게 약물을 투여해 죽게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죽음이 예정된 아들'이라는 그녀의 현실이, 그녀에게는 감옥이나 다름 없었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에게서 고통을 제거하고 자신은 물리적인 감옥으로 걸어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 오랜 시간동안 줄리엣은 침묵했고 경직되어 있었고 퇴소 후에도 여전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레아의 집에 머물면서 마주치는 레아의 어린 딸들을 속으로는 애뜻해 하면서도 실제로는 일부러 거리를 두었고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던 남자와의 섹스 후에도 그 표정은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한 것처럼 건조해 보인다.

그런 줄리엣을 레아의 학교 동료 교수인 미셸이 지켜본다. 미셸은 '위트'가 넘치는 중년 남자다. 그 또한 아내와 이혼한 지 10년이 되었고 영화는 그 이혼이 순탄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친구들과 함께 별장으로 놀러가서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술취한 한 친구가 줄리엣의 과거를 집요하게 물어보고 참다못한 줄리엣은 자신이 아들을 죽여서 감옥에 갔노라고 덤덤히 말한다. 친구들은 집요한 물음에서 벗어나려는 농담으로 치부하여 다함께 크게 웃어넘기지만, 미셸은 그녀의 말이 진실임을 직감한다. 그 후로 자주 미셸은 줄리엣 주변에서 그녀에게 바보같은 농담을 던진다. 미셸은 조금씩 그 위트에 반응한다. 감정이 없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그는 시도때도 없이 농담을 날리는 느낌이다. 그 농담들은 줄리엣을 웃게 만든다. 그와 시간을 보내던 줄리엣은 어느 순간 레아의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고(영화에서는 피아노를 함께 치는 장면으로 상징된다) 결국 영화의 말미에 레아에게 자신의 아들을 어떻게 죽이게 되었는지를 15년 만에 처음으로 고백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 '미셸의 유머'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믿는다.

그런 얘기다. 내가 하고픈 말, "탁월한 유머가 세상을 구할 것이란 믿음"은 그런 얘기였다. 여기에서 '세상'은 '세상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말한다. 지금도 세상은 신음한다. 구조적인 악에 의해 고난을 당하거나, 타인에 의해 깊은 상처를 입었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심감에 빠졌거나, 어릴 적 트라우마로 인해 평생 분노에 휩싸여 살거나 간에... 그 깊은 고통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추상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막연히 나무나 숲을 관망하는 것과는 별개로 사물을 아주 가까이에서 직시할 때. 그런 가까운 거리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나는 자주 뒤틀려진 관계의 실타래를 발견하곤 한다. 굳어진 관계, 굳어진 사람, 굳어진 대화, 굳어진 삶의 터전들. 결국 그 사이사이를 '사람'이 지나 다닌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굳어진 얼굴에 던져진 탁월한 유머 몇 개가 그들에게 실소를 자아낸다. 틈이 생기고 그 틈을 통해 굳어진 무언가가 갈라진다. 그게 세상을 바꾸는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본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요즘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2012/09/05 18:42 2012/09/05 1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