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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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말한 대로 완전한 깨달음을 가진 사람은 없다. 내가 존경하고 미국의 역사가 자랑하는 조나단 에드워즈도 내가 보기에는 목회자로서는 한쪽이 비어 있었다고 본다. 현실에서 생존의 싸움을 하고 있는 성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성경의 잣대를 가지고 나무라고 정죄하는 데 열을 올리는 목회자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아빠의 소신이다. 나는 로버트 슐러의 목회 철학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세미나에 참석해서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목회 균형을 잡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릭 워렌이나 빌 하이벨스를 나는 존경한다. 내가 꿈도 꾸지 못하던 사역을 할 뿐 아니라, 오늘의 문화에 젖어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데 획기적인 프론티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목사가 청바지를 입고 설교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그들의 용기를 높이 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책을 보아 그 배경에 로버트 슐러가 숨어있다고 나는 한번도 느끼지 못했다. 놀라울 정도로 로버트의 좋은 점들을 목회의 밑거름이 되게 만드는 재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립 얀시도 마찬가지다. 내가 부탁하는 것은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52쪽)

 

아버지는 가톨릭에 대해 일반적인 개신교 목회자와는 달리 매우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테레사 수녀처럼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큰 교회에 '어느 정도' 화목한 가정까지 남들 보기에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사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죄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90쪽)

 

2007년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평양 부흥 100주년'을 기념하는 집회가 있었습니다. 설교를 맡은 아버지는 그날 수술후 당신의 몸 속에 남아 있는 한 개의 폐마저 터져나갈 듯이 '주여 살려 주시옵소소!'라는 메시지를 간절하게 외쳤습니다. 그 설교는 가장 큰 죄인인 나부터 용서해달라는 외침이었습니다. 교인들을 잘못 가르친 목사, 나부터 살려 달라는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오로지 비주류의 목사만이 할 수 있는 메시지였습니다.

 

 

이 옥한흠 목사가 죄를 지었나이다.
주여! 죄를 회개하오니 살려주시옵소서!
한국 교회가 타락한 것이 이 목사에게 있습니다.
아버지시여!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옥한흠 목사가 죄를 지었나이다.

주여! 죄를 회개하오니 살려 주시옵소서!
한국교회가 타락한 것이 이 목사에게 있습니다.
아버지시여!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한국교회가 세계 제일의 교회가 되고 새벽예배가 많은 것은
목숨을 아까지 않고 충성하는 목자와 평신도가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회가 교회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입으로만 가지고 구원을 받았다면서
주여주여 설교하는 목회자들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모두 행함이 없는 거짓 믿음입니다.
거짓 목회자들입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주여 살려주시옵소서!

 

- 2007년도 한국 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회 설교 중에서

 

 

그 날 집회 후 아버지의 설교를 향해 일부 사람들의 노골적인 불평이 이곳 저곳에서 들려왔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죄인인 나를 용서해 달라는 아버지의 메시지는 기독교 주류의 메시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비주류의 쓴 소리는 언제 어디서나 주류를 불쾌하게 만드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115쪽)

 

그로부터 무려 이십 년이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던 아버지의 그 당혹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라지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의 목회 전반에 대한 깊은 고민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 고민의 이유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바로 아버지가 지향하고 붙잡은 자신의 교회론과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오는 교회의 현실이 서로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목사로서 교회는 커졌고 사람들은 많아졌을지 몰라도 자신이 믿고 붙잡고 가던 ‘교회론’에 걸맞은 결과를 교회 속에서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 말입니다. (137-8쪽)

 

“은퇴 후 저는 제 목회가 자체적으로 자기모순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너무 키워버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 교회론에 부합한 교회는 너무 비대해져 버리면 그 정신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 목회가 교회론과 제자훈련이 엇박자를 이룬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것은, 양이 많아져 버리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제가 은퇴할 때 사랑의 교회가 주일 출석 장년 교인수 이만 삼천 명, 전체 등록 교인수 오만 명, 벌써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어찌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제자훈련의 선두주자로서 교회론으로 볼 때, 그 정신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또, 교회론의 본질에서도 위선자적인 입장에 빠질 수 있어 고민이 됩니다.” (143쪽)

 

아버지가 목회를 하시며 내내 교회가 커지는 고민 속에서 하나의 돌파구로 붙잡은 길은 목숨을 건 설교 준비였습니다. 아버지에게 나날이 늘어나는 성도가 주는 내적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길, 그나마 많은 성도들을 제대로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설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145쪽)

 

“흔히들 나를 보고 매주마다 수만 명의 성도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느냐고 하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설교가 나에게 보람은 안겨주었을지 모르지만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설교의 부담감 때문이었다. 설교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숨은 군중들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강대상에 서고 싶지 않을 때가 없지 않았다." (146쪽)

 

아버지는 어쩌면 단 한번도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제대로 전달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은퇴할 당시 어느 방송에서 고백했듯이 자신의 부족한 은혜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의 설교를 통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데 대하여 성도들에게 미안해하고 하나님 앞에 송구해 했습니다. (148쪽)

 

아버지는 목사로서도 또 인간으로서도 고독했습니다. 무엇보다 설교자라는 점을 숙명적으로 지고 사는 사람으로서 은혜에 대한 갈급함은 그를 필연적으로 고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고독은 아버지 스스로가 초래한 결과였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알지 못해 그 큰 은혜를 사람에게서 제대로 선포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사람들과 어울려 놀 여유를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무겁고 크며 거룩한 존재일수록 설교는 그에게 엄중하며 생명을 다루는 문제였습니다. 항상 자신은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말하던 아버지는 하나님과 단 둘이 대면하는 인간적 고독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채찍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지키기 위해 찾은 답이 어떤 의미로 아버지에게는 ‘고독’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종종 이런 목회자의 고독을 ‘날마다 죽는 목회자’라고 표현하곤 했습니다. (150쪽)

 

인공호흡기를 낀 아버지는 어제 간신히 손에 들린 펜으로 이렇게 쓰셨습니다. “성도들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아마도 아버지의 진심은 이것이었을 듯 합니다. “성도들에게 미안하다.”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성도들에게 미안해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 깊이 더 넓게 보여주지 못하는 설교자로서 미안함 뿐 아니라, 자신의 교회론과는 달리 너무도 커버린 교회 때문에 또한 성도들에게 미안해했습니다. 아버지의 이 미안함은 지금도 여전히 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랑의교회 건축 과정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교회론에 걸맞게 좀더 제대로 목회했다면 결코 더 큰 겨교회 건물을 지어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더 큰 교회 건물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가 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했습니다. (159쪽)

2013/01/23 23:30 2013/01/2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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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성호 집사님. 안녕하셨는지요. 김용주입니다. 일전에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쓰셨을 때 뵌 이후로 처음입니다. 그간 평안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번에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출판하셨더군요. 저도 본서를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개인적으로 본서를 읽고 크게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고 또한 동일하게 지적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특히 공감하는 부분은 북미 복음주의의 신학적 가벼움입니다. 본서에서는 "마케팅에 물든"이라는 표현으로 대변된 기독교계의 소비자중심주의적인 신앙의 성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도 미국에 세차례 정도 짧게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미국의 한인교회와 로버트 슐러 목사의 수정교회를 보았고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실용주의적 사고와 노만 빈센트 필로 대변되는 "적극적 사고방식", 내적 치유와 자아 회복이 죄성과 복음을 대체하는 성향들을 보았습니다.
미국은 정말 상담과 심리치료의 천국이더군요. 저는 이러한 심리적 기재에 기댄 교회의 문제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물론 심리학 자체에 대한 평가에서는 옥 집사님과 차이가 있음을 이전에 출판된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에 관한 토론을 하면서 느낄 수도 있었지요.

또한 저는 본서에서 지적하고 싶은 몇 가지의 주제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너무 부족한 관계로 글을 몇 번에 걸쳐 나눠 쓰려고 합니다. 제가 본서에서 지적하고 싶은 부분 중 첫번째 것은 교리와 교파에 관련된 것입니다. 앞서 강진용 님이 지적해 주셨기 때문에 그 글을 먼저 인용합니다.

"아마도 저자께서는 개혁주의(칼빈주의)의 입장에 있는 듯 보입니다. (제 추측에 불과합니다만) 웨슬리안 전통에서도 인간은 역시 전적 타락한 존재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선행은총에 의해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지, 인간 스스로의 노력이나 행위로 하나님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에 대한 낙관론을 가졌다면 "웨슬리"가 영국사회에 회개를 선포할리 있겠습니까? 아마도 마케팅교회들이 가진 인간론은 펠라기우스의 입장을 수용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유주의자 역시 웨슬리나 알미니안을 따르는 것이 아니구요. 개혁주의 입장에서 간혹 펠라기우스와 웨슬리안-알미니안의 차이를 간과하는 경우가 있는 듯 보입니다만, 이 사이에는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냐 아니야의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제 생각엔 웨슬리안-알미니안에서의 복음적 신인합동설과 개혁주의(칼빈주의)의 예정론의 차이는 예수님 오실 때까지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특히 저는 칼빈주의와 구별되는 가톨릭, 성공회나 루터교, 웨슬레-알미니안 등의 교리적 차이에 의해 교회를 분리시키려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옥 집사님의 경우에는 교리의 수호를 위해 분리적인 태도를 취했던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입장을 따르는 것으로 생각되나 저는 오히려 교회의 일치를 위해 노력했던 존 스토트 목사의 입장을 따르는 편입니다.존 스토트의 말년 저작인 <복음주의의 기본진리>에서 지적한 내용에 저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나는 이제 쓰려고 하는 글에서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구별되는 기독교 사상계(가톨릭, 자유주의, 복음주의)가 항상 상호 배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님을 잊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차이점과 더불어 합일점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을 지지하는 것과 절대 다수의 개신교인들이 종교개혁의 많은 진리들을 여전히 확증하고 있는 것에 대해 참으로 기뻐하고 감사한다. 다시 말해서 복음주의의 모든 핵심 진리가 복음주의만의 독특한 특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략)

나는 분열을 거듭하는 복음주의의 경향에 대해 계속해서 깊이 염려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수많은 복음주의 '분파'에 대해 언급하며 '복음주의' 앞에 어떤 성격을 나타내는 형용사를 붙이기를 좋아한다. 보수적, 자유적, 급진적 점진적, 개방적, 개혁파, 은사주의적, 포스트모던 등 그러한 예들은 많다. 복음주의 신앙에 대한 우리의 특정한 이해를 선한 양심으로 고수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를 복음주의자들로서 연합시키는 것이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보다 헐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는 없다는 말인가? (중략)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비록 세계교회협의회의 자유주의적인 방침과 종종 원칙없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교회 연합 운동에서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은 확증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거부하는 자유를 주장하면서 분별력을 발휘하려고 노력해 왔다."


결국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핵심적인 교리, 이를 테면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 구원의 유일성, 성경의 권위, 성령의 주되심과 같은 핵심적인 교리에 있어 합의점에 도달하는 교회와는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됨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하나됨 안에서 충고와 책망 그리고 격려가 필요하겠지요. 제가 느끼기에 옥 집사님의 글에서는 그러한 하나됨 안에서의 책망과 건설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다소 분리주의적인 자세로 교회답지 않은 pseudo(사이비) 교회들을 칼빈주의 교리의 입장에서 분리시켜내려는 시도로 읽힙니다.
따라서 그러한 칼날로 작용하는 교리에 대한 불편함이 제 심정적 반감을 불러오는 듯 합니다. 물론 혹여, 제가 옥 집사님의 의도를 잘못 파악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제 독해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 더 이야기해 볼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복음주의권 내부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본서에서 비판하고 있는 빌리 그레엄 목사로 대변되는 신복음주의 진영의 이들이 그렇습니다. 빌리 그레엄 목사도 그 분명한 한계와 많은 대형 집회 전도의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저는 분명 그 분이 20세기가 낳은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지의 편집장으로 있었던 필립 얀시와 씨 에스 루이스, 그리고 본서에 언급된 릭 워렌 목사와, 빌 하이벨즈 목사도 그렇습니다. 저도 이들에 대해 동일하게 비판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신앙과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모습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종종 본서를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신복음주의, 성공회, 가톨릭, 웨슬레주의자들과 분리되어야 함을 옥 집사님은 주장하시려는 듯이 읽혀집니다.

물론 분명하게 분리되어야 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존 스토트의 명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서문에 보면 영국 복음주의 학생운동 역사 가운데 CICCU가 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었던 SCM으로부터 구분지어 나온 이야기가 언급됩니다. 그 때에 구별되어 나온 이들의 수는 극히 소수였으나 복음주의적인 신앙을 유지했던 그들이 더 크게 부흥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이 분수령에 있어 옥 집사님은 칼빈주의로 대변되는 보수적 입장에 교리를 국한 시키는 듯 하며 저는 좀더 넓은 범주에서 은사주의자들이나, 개혁주의, 에큐메니칼, 가톨릭, 성공회, 감리교도와 급진적 복음주의자를 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연합 집단에서도 옥석을 가려야 함은 자명합니다. 신앙의 스펙트럼에 있어서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옥 집사님의 입장에 제게는 구획의 측면에서 너무 좁게 잡으신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혹은 칼빈주의를 정답, 정교리, 정교파로 확정짓고 나머지 교회들을 그 틀로 쳐내려는 듯이 보입니다. 왜냐하면 "마케팅에 물든"의 잣대로 시작된 본서는 교파를 구분하면서 "오래된 복음주의" 대 "신복음주의" 혹은 그 외의 교회들(가톨릭, 웨슬레주의, 에큐메니칼 등)으로 확장시키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케팅에 물든"이라기 보다는 "교리에 차이를 보이는"으로 대체되는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개혁주의, 혹은 칼빈주의나 신칼빈주의 교회 내에서도 "마케팅에 물든"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이 강하게 보이는 교회들이 많은데 이는 그 구획에서 논리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일단 첫번째 제 생각은 이 정도까지 입니다.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다음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부흥과개혁사 홈페이지에 있는 부족한 기독교 토론방에 올린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참고 바랍니다. http://rnrbook.com/
2011/11/27 18:32 2011/11/27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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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일 낮
제가 고등학생이던 어느 주일 낮이었습니다. 오후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오신 아버지는 응접실에 있던 내게 말을 건 것인지 아니면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왜 이런거지?” 아버지가 내뱉은 의문문의 문장에 대답할지 말아야 할지를 잠시 망설였던 저는 조용히 되물었습니다.“아빠, 뭐가요?” 아마도 그 날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었나 봅니다. 비록 그 상대가 날마다 공부는 뒷전에 내팽개치고 놀기에 바쁜 아들이었을망정 말입니다.“어…그게 말이야…” 아버지는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성호야 내가 한참을 생각해도 잘 모르겠구나.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사람들을 교회에 많이 보내주시는지 말이야. 오늘 주일 예배 숫자가 5천명이 넘었어. 오늘 예배 후 차를 타는 대신 집까지 천천히 걸어오면서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도 정말 알 수가 없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지. 나 같은 사람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까지 이렇게 쏟아주시는 그 뜻을 도통 알 수가 없어.” '아니, 사람이 많아지면 좋은거지…별 이상한 걸 가지고 다 고민이네….'아버지의 불평 아닌 불평에 대답할 가치를 못 느낀 저는 내려놓았던 사과를 다시 집으며 보고 있던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얼마든지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단 몇 십 초에 불과했던 그 날의 기억이 아직까지 이렇게 생생하게 제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그 날 제가 느꼈던 바로 그 ‘이상함’ 때문입니다. 좋아해야 할 일을 놓고 좋아하는 대신 고민하고 당황하는 아버지의 그 모습이 준 의아함 때문입니다. 비록 그 날 이후 아버지는 늘어나는 사람들이 주는 고민을 우리 가족들에게 드러내 얘기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무려 이십 년이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던 아버지의 그 당혹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라지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의 목회 전반에 대한 깊은 고민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 고민의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바로 아버지가 지향하고 붙잡은 자신의 교회론과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오는 교회의 현실이 서로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론
아마도 많은 분들은 아직도 3년 전 상암 운동장에서 열린 평양 부흥 100주년 기념 예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날 설교에서 절규에 가까운 회개의 메시지를 내뿜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혹자는 도대체 옥한흠 목사는 뭘 그렇게 잘못한게 많아서 함께 기뻐하고 감사해도 모자란 부흥 100주년에 저런 찬물 끼얹는 설교를 할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 날 하나님께서 100년 전 부어주신 그 부흥의 역사를 기억하며 감사와 찬양 대신 하나님 앞에 회개의 통곡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그만이 갖고 있던 바로 이 오랜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목사로서 교회는 커졌고 사람들은 많아졌을지 몰라도 자신이 믿고 붙잡고 가던 '교회론'에 걸맞는 결과를 교회 속에서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 말입니다.

그만큼 아버지에게 '교회론'은 사랑의교회를 목회하는 내내 생명과도 같이 붙잡고 있던 가치였습니다. 아버지는 '교회론'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저에게 있어서 교회론은 목회자와 교회가 사는 생명과도 같습니다. 교회론이 왜 생명과 같으냐고 물으면 목회가 살고 죽는 것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도들을 영적으로 죽이느냐 살리느냐를 판가름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무엇이냐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목회자는 진정한 목회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목회자의 생명을 결정하는 '바로 그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중요한 교회론이 그가 목회하는 교회의 현실과 부합되지 않을 때 그 사실은 아버지에게 말못할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점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현실이 충돌할 때 고민하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그토록 붙잡고 있던 그의 교회론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 제가 관심을 갖는 교회론은 어떤 영역이나 분야가 아니고, 교회의 본질과 연결된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즉, 교회의 주체가 누군인가 하는 것입니다. 교역자인가 아니면 평신도인가?저는 교회의 주체가 평신도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했고, 교회 주체인 평신도를 위해 목회자가 어떤 사역을 우선에 두어야 하는지, 성도들에게 주어진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스러운 신분과 소명이 무엇인지, 그것을 목회자로서 어떻게 극대화시켜줄 수 있는지 등 이런 것을 고민하는 것이 저의 교회론의 중심이 되어 버렸습니다.....전통 목회는 평신도가 동원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저는 평신도를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주체, 동역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결국 아버지가 붙잡은 교회론의 핵심은 교회의 주체가 누구인가의 문제였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주체에 대한 재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어떻게 볼 때 목회자를 위해 존재했다면 이제 교회는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아니었습니다. 이를 위해 평신도는 교회의 주체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그 말씀에 의지해 그리스도를 닮은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야만 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목사와 교사를 교회에 보내셨으며 이제 교회는 기존의 예배 공동체와 선교 공동체로서의 정체성 외에 훈련 공동체로서의 또 하나의 얼굴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평신도를 명실상부한 교회의 주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그들에 대한 훈련이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결국 아버지의 교회론이 꽃피기 위해 필연적으로 소그룹을 중심으로 한 제자훈련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자도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교회의 주체이자 주인이 평신도라는 사실과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는 것이 왜 서로 충돌할까요? 도리어 좋아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교회의 주체되는 평신도들이 늘어나니까 말입니다. 주체들이 늘어나면 교회도 더 강성해지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교회론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인 제자도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교회론을 실현하는 실천적 방안으로 제자도를 정리하며 그 내용의 핵심을 다음 두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1. 한 사람 철학
정말로 아버지는 한 사람을 붙잡고 사역을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래 전 성도교회 대학부를 맡았을 때에도 당시 대학부에 남아있던 단 한 명의 학생, 지금의 방선기 목사님을 붙잡고 대학부를 시작했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시작할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이 볼 때 무식하고 답답한 방식인 소그룹 훈련에 매달려 매일을 씨름했습니다. 밤마다 제자훈련에 치중하다보니 새벽에 일어날 수 없었던 아버지에게 많은 분들은 새벽기도를 인도하지 않는 이상한 목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커지며 더 이상 소그룹을 직접 인도할 수 없게된 이후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제자훈련 교재 집필에 진액을 쏟았습니다. 아버지에게 한 사람은 교회 전체였고 교회는 바로 한 사람이었습니다.

2. 섬기는 리더쉽
교회의 주체를 평신도로 이해하고 그들을 양육하는 사명을 하나님께 받았다는 그의 교회론을 근거할 때 아버지에게 목사가 평신도를 섬겨야 하는 존재임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혹자는 가르치는 사람이 어떻게 섬길 수 있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늘 같은 주인의 아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를 생각할 때 가르치는 자가 사실상은 섬기고 있다는 점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에게 그가 지향하는 예수님을 닮은 제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남을 섬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섬김의 모델은 누구보다도 자신을 비롯한 목회자들에게 가장 먼저 적용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렇기에 ‘목회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동시에 성도의 종이다’라는 신념 아래 그는 자주 '이끌면서 섬기고 섬기며 이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주체는 평신도이며 주체된 그들을 바로 섬기며 이끌기 위해 목회자는 한 사람 철학으로 무장되어야 한다고 확신한 아버지에게 너무도 커버린 교회는 한 사람 철학을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든 구조, 제대로 평신도를 섬기기 힘든 구조의 그 무엇으로 다가왔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 은퇴 후 저는 제 목회가 자체적으로 자기 모순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너무 키워버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 교회론에 부합한 교회는 너무 비대해져 버리면 그 정신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 교회가 교회론과 제자훈련이 엇박자를 이룬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것은, 양이 많아져 버리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제가 은퇴할 때 사랑의교회가 주일 출석 장년 교인수 2만 3천명, 전체 등록 교인수 5만 명, 벌써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지금 사랑의 교회는 어찌 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제자훈련의 선두주자로서 교회론으로 볼 때, 그 정신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또 교회론의 본질에서도 위선자적인 입장에 빠질 수 있어 고민이 됩니다."

아버지는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정말로 내가 내 자신이 주장하는 대로 한 영혼에 최선을 다해 집중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가 과연 이렇게 클 수 있었을까? 아니, 결론적으로 이렇게 커진 상태에서 이제 더 이상 한 사람 철학을 바탕으로 한 나의 교회론 자체가 아예 가능이나 한 얘기일까?"


은혜 또 은혜
아버지의 사랑의교회 목회 내내 이런 고민 속에서 그가 하나의 돌파구로 붙잡은 길은 그냥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목숨을 건 설교준비였습니다. 아버지에게 나날이 늘어나는 성도가 주는 내적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길, 그나마 많은 성도들을 제대로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설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2004년 아버지가 조기 은퇴했을 때 많은 언론들은 모범적인 사역 계승이자 살신성인하는 지도자의 모습이라며 아버지를 일제히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제가 아들로서 볼 때 아버지가 조기은퇴를 결심한 진짜 이유는 89년에 잃은 건강이 주는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매주 피말리는 설교준비가 영적 중압감을 더 이상 버텨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설교는 십자가이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양심을 놓고 셈해야 할 몫이기도 했습니다.

" 흔히들 나를 보고 매주마다 수만 명의 성도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느냐고 하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설교가 나에게 보람은 안겨주었을지 모르지만,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설교의 부담감 때문이었다. 설교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숨은 군중들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강대상에 서고 싶지 않을 때가 없지 않았다."

이런 아버지가 매주 다가오는 설교의 중압감 속에서 붙잡은 유일한 것은 다름아닌 더 큰 은혜에의 갈망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역 전체를 꿰뚫는 이론적 개념으로서의 토대가 그의 교회론이라고 한다면 목사 옥한흠이라는 한 인간의 신앙 전체를 관통하는 한 가지는 다름아닌 은혜에의 갈망입니다. 아버지는 그 중에서도 어린 시절 자신이 맛본 특별한 은혜에 대한 그리움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내가 은혜에 취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은혜는 식지 않고 지속되었다. 성경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진하게 가슴을 울리는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황홀하게 만드는지, 나는 이 기간에 넘치도록 맛보면서 살았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이 강렬한 은혜의 맛이 서서히 식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그 은혜의 경지를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때에 받은 은혜가 내 한평생의 신앙생활과 목회의 질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요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받은 은혜의 질이 목회의 질을 결정한다는 아버지의 믿음은 그의 목회 내내 더 큰 은혜에의 사모함으로 드러났습니다. 무엇보다 목회자로서 받는 은혜의 깊이가 성도들의 신앙의 깊이를 결정한다는 그의 생각은 그에게 결코 쉽지 않은 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은혜에 대한 갈망이 간절한만큼 설교는 아버지에게 더 큰 무게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매주 설교를 놓고 그가 치르는 영적 전투는 피를 말리는 치열함 그 자체였습니다.

아버지는 어쩌면 단 한 번도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제대로 전달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은퇴할 당시 어느 방송에서 고백했듯이 자신의 부족한 은혜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의 설교를 통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데 대하여 성도들에게 미안해 하고 하나님 앞에 송구해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그렇게 무력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은혜에 갈급한 아버지의 그 약함을 통해 성령께서 더 강하게 그의 설교를 통해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한국설교학회장이며 서울신대 설교학 교수인 정인교 목사는 아버지의 설교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 우선 주목할 것은 설교를 대하는 옥목사의 진지성이다. 옥 목사는 자신이 설교를 준비하는 작업을 ‘십자가’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란 벗어버리고 싶은 부담을 의미한다. 그가 설교를 이토록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전하는 설교 말씀이 과연 하나님의 바른 말씀인가'에 대한 근본 질문에서 오는 고통이다. 옥목사는 바로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설교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고민과 고통이 그의 설교를 균형 잡힌 모범으로 만드는 기초가 되었다. 그의 설교에 묻어나는 설교자의 고민 그리고 말씀과의 치열한 전투 흔적이라는 진지성은 옥목사 설교를 설교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이다….중략….. 마지막으로 옥 목사에게서 보여지는 설교자로서의 특징은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설교자로서의 기품이다. 이 기품이란 본질적으로 그의 신앙적 인격과 투명한 삶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에게서 배어나오는 진지함과 장중함은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신’으로 그를 각인시킨다. 이것은 최근 강단을 희극화시키고 가볍게 만드는 일부 ‘코미디형 설교자’와는 대별되는 모습이다. 그는 강단에서 결코 자신을 과장하지 않을 뿐더러 회중의 귀를 즐겁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회중을 몰아붙이고 성도의 치부를 드러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접근은 일부 과도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말씀 전달자로서의 설교자에 대한 자각과 온전한 삶과 균형 잡힌 인격을 모토로 하는 것이다."

고독
아버지는 목사로서도 또 인간으로서도 고독했습니다. 무엇보다 설교자라는 짐을 숙명적으로 지고 사는 사람으로서 은혜에 대한 갈급함은 그를 필연적으로 고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고독은 아버지 스스로가 초래한 결과였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알지 못해 그 큰 은혜를 사람에서 제대로 선포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사람들과 어울려 놀 여유를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무겁고 크며 거룩한 존재일수록 설교는 그에게 엄중하며 생명을 다루는 문제였습니다. 항상 자신은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말하던 아버지는 하나님과 단 둘이 대면하는 인간적 고독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채찍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지키기 위해 찾은 답이 어떤 의미로 아버지에게는 '고독'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종종 이런 목회자의 고독을 '날마다 죽는 목회자'라고 표현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이 고독의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오늘의 목회자들을 보며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교회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대안은 목회자가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교회가 커지만 목회자도 사람이니까 잘못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전부 외형을 가지고 평가합니다. 교회가 커지만 목회자가 대단한 인물로 부각되고, 그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하게 됩니다. 사방에서 끌어당깁니다. 적당히 거절하지 못하면 정신없이 자기 과시하는 데 애쓰게 됩니다. 양떼를 돌보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고 설교 준비를 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생명을 짜는 설교 준비가 아닌 설교를 위한 설교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은 없어지고 건물만 남는 교회가 됩니다. 교회가 병들지 않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설교준비에 죽어야 하고, 밖으로부터의 유혹, 권력으로부터의 유혹, 인기에의 유혹을 철저히 끊고 자기가 죽을 때, 교인들의 숫자가 많아져도 그것을 커버할 수 있는 만큼의 큰 품이 생기게 됩니다. 그 밑에서 공부하는 부교역자도 다 본받기 때문에 위험성이 크지 않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버지가 좀 더 사람들과 어울리고 인생의 다양한 재미들을 즐기며 살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에게 육체의 병이라는 가시를 통해 그가 더욱 더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을 향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고독과 병을 보며 저는 약함 가운데 능력이 되는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질병이 그의 설교를 듣는 누군가에게 치료의 원인이 되었고 그의 고독이 누군가에게 예수님과 동행하는 기쁨의 원천이 되었음을 잘 알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미안함
인공 호흡기를 낀 아버지는 어제 간신히 손에 들린 펜으로 이렇게 쓰셨습니다. "성도들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아마도 아버지의 진심은 이것이었을 듯 합니다. "성도들에게 미안하다..."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성도들에게 미안해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 깊이 더 넓게 보여주지 못하는 설교자로서의 미안함 뿐 아니라 자신의 교회론과는 달리 너무도 커 버린 교회 때문에 또한 성도들에게 미안해 했습니다. 아버지의 이 미안함은 지금도 여전히 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랑의교회 건축 과정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교회론에 걸맞게 좀 더 제대로 목회했다면 결코 더 큰 교회 건물을 지어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더 큰 교회 건물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가 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했습니다. 그랬기에 항상 불편한 환경 가운데서 예배 드리는 성도들을 보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사랑의교회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보내주시는 데에는 분명 그 분의 거룩한 뜻이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 확신 속에서 전체 성도가 다 교회 건축을 찬성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그가 생명을 걸고 함께 동역한 교회의 주인인 사랑의교회 성도들의 판단을 신뢰했습니다.

주일 오후 중환자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버지는 폐를 대신해 호흡하는 인공호흡기를 꽂고 24시간 꺼지지 않는 중환자실의 형광등을 바라보며 병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는 암투병을 기록한 그녀의 책에서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 순간씩만 살기로 했다.'라고 썼습니다. 지금 아버지에게 그 한 순간 조차도 얼마나 길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아버지는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자신이 무슨 고통을 제대로 알았다고 '고통에는 뜻이 있다'라는 책을 냈을까라고 하며 자조의 말을 내뱉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말은 안 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한번의 기회를 더 주신다면 이제는 고통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좀 더 잘 전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분명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하나님께 지난 몇 년 간의 그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결코 그렇게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70년이 넘는 평생동안 당신이 하나님으로 받은 축복과 은혜가 이토록 넘치는 데 지금 이 세상에서 좀 더 살고 싶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너무도 염치 없기 때문이라고요. 하지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좀 더 시키실 일이 남아있으면 분명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실 것이고 그게 아니면 가장 좋은 시간에 자신을 데려가실 것이라고요. 아버지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 하나님은 이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유독 아버지의 설교들 결론이 '하나님을 사랑하라'가 많은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 모든 문제의 답이며 또한 인생의 본질이니까요.

저는 지금 저 중환자실에 홀로 누워 있는 아버지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뭔가를 전하고 싶다면 그 메세지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작년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목회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회한을 피력했습니다.

" 사랑의교회는 양적으로 너무 비대해져 버렸습니다. 교회론대로 목회했다면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즉, 사랑의교회라는 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도록 좀 더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목회를 했어야 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하나님 앞에 죄송스럽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이제 사랑의교회라는 한 교회가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가 커가도록 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크게는 사랑의교회와 제자훈련의 철학을 함께 나누는 모든 교회들 그리고 작게는 저희 가족의 몫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아버지는 무엇보다도 교회 속에 파고든 세속주의를 향해 경계하며 지금 교회는 침체가 문제가 아니라 교회 본질이 파괴되는 문제 앞에 서 있다고 통탄했습니다.

" 교회가 처한 가장 심각한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속주의다. 세상적인 가치를 거의 다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 입장에서 수용을 하되, 성경적으로 적당히 포장해서 수용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 사람들이 다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한국 교회를 생각하며 세속주의가 이토록 교회 깊이 파고든 오늘날 유일한 치료약은 평신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제자로 자라나고 목회자는 한 명의 평신도를 위해 죽을 수 있는 한 사람 철학으로 거듭나는 것 밖에는 없다고 말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목회에 '엇박자'가 발생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그 '엇박자'를 통해 하나님만이 만드실 수 있는 기막힌 '화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교회를 통해 만들어내셨던 아름다운 화음을 통해 영광 받으셨듯이 하나님께서 이 순간에도 싸우고 있는 '암'이라는 고통을 통해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기를 소원합니다.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시는 모든 성도들에게 가족을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다시 한번 설교자 옥한흠을 강단에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옥성호


**기사출처: 이태형 국민일보 I미션라이프부 부장 thlee@kmib.co.kr

2010/09/19 21:10 2010/09/19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