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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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과 관련하여 가장 잘못된 편견은 그가 예술지상주의자라는 것이다. 지금도 이중섭에게는 '처자식도 버리고 그림만 그리다가 미쳐 죽은 광기의 천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사정은 정반대다. 혹시 그렇게 기대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결코 예술만을 위해 살다 죽은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예술이 인생에 봉사해야 한다고 믿는 편이었다. "그림은 나를 말하는 수단"이라고 할 때, 그 말은 인생(나)이 주인이요 그림은 수단이란 뜻이다. 

무엇보다 이중섭은 인생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분리하여 아름다움 자체를 즐기려는 유미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많은 편지에서 '아름다운', '아름다움'이란 표현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삶과 예술이 구분되어 있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기 싫어했던 것이다. 반대로 그는 훌륭한 예술, 참다운 예술, 행동하는 회화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으며, '새로운 생명을 내포한, 믿을 수 있는 방향을 지시하는 회화'를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그는 예술이 우리들의 생활에 무언가 유익한 작용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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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 <아름다운 사람 이중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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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1 21:07 2016/12/21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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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인간이 느끼는 희로애락 가운데 타인의 공감을 얻기가 가장 힘든 감정이다. 분노는 지극히 주관적인, 각자만의 고유한 방식에 따라 개인적인 역사의 기반 아래 만들어지는 감정이다. 분노는 그 자체로 내 개인의 역사가 응축된 '감정적 지문'이다. 그리하여 분노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타임 슬립이 가능하다."
- <당신이 화내는 진짜 이유> 중에서
2015/07/19 20:44 2015/07/19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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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이 외모도 좋고 글도 잘쓰고 생각도 깊고... 
인용할 부분이 워낙 많아서 힘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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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2008년 ‘희망’과 ‘변화’를 표방하며 공화당 후보 존 매케인을 물리치고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재선 때는 오바마 캠프에서 희망이나 변화 같은 공약을 포기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를 인류의 구원자로 내세웠던 민주당 캠프는 2012년에 다른 전략을 썼다. 오바마가 적어도 상대 후보인 밋 롬니보다는 낫다는 것이 그들이 내세운 기본 메시지였다.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인 것은 맞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그 사실을 운운하는 것이 한국 정치문화에 도움이 되는가? ‘독재자의 딸’을 수없이 외쳤지만 민주당은 결국 선거에서 패배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정희를 반대하는 국민보다지지하는 국민이 더 많다는 사실올 순순히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명예훼손이 '불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나 독재 정권에서 유독 심각한 문제로 취급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권력자를 비판하려는 기자나 논평가를 주저하게 만드는 현상을 ‘위축 효과'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명예훼손 위반으로 최대 7년 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으니 재갈물리기 효과가상당하다. 가끔 필자 주변의 한국인들에게 위축 효과 이야기를 하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한국은 영국이나 미국과 다릅니다. 한국은 정치문화가 성숙하지 못해서 엄격한 법이 없으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사람들이 생길 겁니다" 필자는 한국은 다르다며 자국올 평하하고 서방 국가를 특별 취급하는 논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혹시 거기에는 서구인들은 정치적으로 성숙한 어른이고 한국인들은 어린이라는 발상이 깔려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논리일지 모르지만 자국민을 모욕한 발언임은 물론 사대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최근 가장 심각한 사례는 세월호 참사 이후 드러난 해운사들과 규제감독기관 간의 유착이었다. 하지만 이뿐이 아니다. 외신기자로 일할 때 은행 고위 간부들과 금융위원회 둥 규제 당국 간의 회의에 여러 번 참석했는데 서로 너무나 친해서 매번 놀랐다. 이들은 엄연히 피감 대상과 감독기관 관계다. 말하자면 밀렵꾼과 파수꾼의 관계와 같다. 필자가 아는 금융위원회 간부 한 명은 금융위원회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줌직한 국영 은행의 요직을 꿰쳤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사실 <이코노미스트>의 경우 광고 수업이 전체 수업의 3분의 1에 불과해 특정 광고주가 회사전체에 실질적인 영향올 미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 광고 빼버리겠다는 으름장은 먹히지 않는다 반면 한국에서는 언론사 수익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높아 대기업이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 홍보팀은 약점올 가진 한국 기자들을 함부로 다루는데 너무 익숙한 나머지 외신기자들에게도 무례를 저지르고만 것이다. 다른 대기업 홍보 담당자는 “내가 요구만 하면 우리 할머니 팔순 잔치 기사도 써줄걸"이라며 특정 신문에 막강한 피워를 휘두를 수 있다고 으스댔다. 또다른 신문에는 돈을 써서 회사에 부정적인 온라인 기사를내린 적이 있다며 한국 신문사들이 재정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라고 귀띔했다.

노무현 정부 후반부터 한국 언론의 자유는 절대적 기준으로 보나 상대적 기준으로 보나 꾸준히 후퇴해왔다. 2006년 국경없는기자회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언론의 자유는 7.75점으로 세계 31위를 기록했다. 2013년에는 언론자유도 지수가 24.48점으로 치솟아 세계 50위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상황이 더 악화돼 25.66점을 기록하며 세계 57위를 차지했고 급기야 2015년에는 26.55점으로 세계 60위를 기록해 아이티, 파푸아뉴기니, 말라위보다 언론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는 늘 숫자와 세계 순위에 신경 쓰는 것 같은데 언론자유도지수 순위등은 예외다. 2011년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을 '언론 자유국'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유명 대학 교수들이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발언하며 유명인사가 될 수 있다. 책을 출간하고 기자들의 전화를 받을 준비가 된 교수라면 얼마든지 특정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올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에 널리 퍼진 교육열을 반영한다 한국에서는 하버드 박사연 똑똑할 뿐 아니라 오류가 없고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한국에서는 어떤 인격을 가진 사람이냐는 것이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정치인의 덕목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연 필자는 똑똑한 것뿐 아니라 남융 위한 삶을 살아왔는지 공직에 헌신하려는 의지가 있는지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대답하겠다.

한번은 김어준이 성차별주의자로 해석될 법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러자 내가 아는 좌파성향 친구들 절반정도가 우리 영웅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SNS에 토로하며 큰 실망강올 표했다. 하지만 애초에 김어준올 구세주, 총수로 받들지 않았더라면 실망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 김어준은 호감가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명박을 싫어한다. 하지만 단지 나와 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김어준 또는 그 누구라도 완벽하길 기대하지는 마라.
“어마어마한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해법은 무엇일까요" 토크콘서트 마지막에 있는 질의응답 시간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다.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듯 사람들은 시사평론가들이 해결책까지 제시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들이 마치 모세라도 되는듯이 말이다. 정작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는 실속 있는 해답을 내놓지 않으연서 자신감 넘치고 강한 어조로 설득력 있게 말하는 사람은 보통 정치인이거나 종교기업가다. 질문에 잘만 대응하연 크게 성공활 수도 있고 영향력도 확장할 수 있다 .이들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하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길 바라는 보통 사람들의 욕망을 잘 간파하고 이를 이용한다. 그런데 강한 어조로 호소하는 답변이 정말 좋은 걸까? 때로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무지의 소치가 아니라 오히려 현명하고 솔직한 대답 아닐까.

한국은 아직 사회, 경제적 지위 향상에 대한 열망이 강한 나라다. 많은 사람이 부자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으며 주사위는 이미 재벌에 유리하게 던져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랍도 남들보다 앞서고 싶어한다. 솔직히 그들도 아이들이 명문대에 가길 바라고 좋은 것을 사고 싶어한다. 계급의식이랄 것도 없다. 예를 들어 내 고향인 영국 북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노동계급의 긍지 말이다. 2014년 퓨 리서치 센터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78퍼센트가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70퍼센트), 영국(65퍼센트)을 포함한 10대 ‘선진국’보다 높은 수치다. 엄밀히 말해 한국은 자유시장경제가 아닌데도 대다수 국민은 ‘자유 시장’이라는 말에 매료되는 것 같다. 따라서 매우 안타깝게도 빈곤충에 대한 자비로움을 강조해봤자 효과가 없고 빈부격차로 인한 계급 갈둥 이야기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한국좌파는 외신기자와 인터뷰할 때 통계나 경제이론을 인용하거나 차분하고 합리적인 어조로 전경련 같은 조직이 내세우는 주장의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지 못한다. 대신 삼성이 엄청난부를 축적하는데 아직도 빈곤충이 많은 것은 부당하며 정부는 소수 특권층인 최상위 1퍼센트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사실에 기반한 논리적 주장을 듣고 싶어하는 윌스트리트 저널이나 파이낸셜타임즈 기자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반면 한국 우파는 어떻게 포장해야 영미권에 어필할 수 있는지 잘 파악하고 있다. 대기업 독주를 침해하는 모든 것은 ‘시장 원리에 반하는’ 것으로 매도하고 ‘사회주의’라는 구호가 미국인에게는 공산주의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것 또한 잘 알고 활용한다. 유창한 영어로 경제이론도 이것저것 언급한다. 똑똑하고 박식한 기자라면 그런 주장이 말도 안 되며 한국 대기업의 독주가 시장원리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지만 모든 기자가 똑똑하고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새정치연합은 과거 386 세대와 운동권 지식인충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젊은 유권자나 보통 사람들의 고충올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앞에서 말한 바 있다. 인권변호사와 언론인 등을 포함한 운동가 중심 정당의 또다른 문제는 경영 역량을 갖춘 사람이 드물다는 점이다. 운동가나 인권변호사 둥이 당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조직력이 뛰어난 검중된 인물들도 필요하다.

2011 년과 2012년의 안철수만큼 유명하고 존경받는 인물이 연단에 올라 ‘대선에 출마하겠습니다'라는 말 대신 ‘각지역 공동체에서 함께 모여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아이디어나 제안을 나누며 즐기자'고 했다면 실로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올 것이다. 적어도 각 공동체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 유권자 스스로 정책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마련됐을 것이고 연령대나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데 모여 협력했올 것이다. 어쩌면 한국 정치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운동이 태동했을지도 모른다.

왜 한국의 불평등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질까? ... 좌파는 대기업의 끝없는 탐욕이 원인이라고 지적할 테고 우파는 현대자동차의 '귀족’ 노동자 둥을 예로 들며 상대적으로 좋은 여건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 여건에 처한 동료 노동자에게 폐를 끼치는 ‘이분화’된 노동 시스템을 문제로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차적인 문제들이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한국 노동계에 닥친 재난은 한국이 중국 등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한미FTA를 반대하던 그 많ejs 소위 ‘진보주의자’들이 다른 FTA 에 대해서는 조용한 것을 보면 정말 놀랍다. 미국과 연관된 것은 나쁘고 (일본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가 엮이면 신경 쓸 것 없다는 것이 한국 진보의 사고방식이다.

가장 보수 성향의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정부가 복지 예산을 확대했다가는 그리스꼴이 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현 정부가 연간복지 예산을 9퍼센트까지 확대했지만 한국은 아직도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전체 GDP에서 복지 지출이 10퍼센트 미만인 두 나라 중 하나다. 한국이 구미에 맞는 부분만 취사선택해서 닮고 싶어하는 나라, 미국의 복지 지출은 19퍼센트 수준이다. 그리스는 그보다 높은 24퍼센트로 영국과 비슷한 수준이고, 프랑스의 복지 지출은 33퍼센트에 달해 솔직히 지나치게 관대한 편이다.

독일도 최근 몇 년간 실업수당 규모를 축소했지만 여전히 영국의 실업수당보다 후하다. 복지병을 믿는 사람이라면 두둑한 실업수당이 보장된 독일 사람들이 영국 사람들보다 일을 더 안 하려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독일의 실업률은 영국보다 낮다. 독일에서는 보통 사람이 양질의 일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 아닌가 싶다. 게다가 ‘게으른’ 영국에서 실업수당이 전체 사회복지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런데 셜문조사 결과 영국인들은 그 수치를 41퍼센트로 실제보다 훨씬 높게 추측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민주당이 내세운 메시지는 이랬다. ‘가난하고 딱한 국민이여, 국민의 최상위 1퍼센트만 부자가 되고 나머지는 빈곤해진 이명박 정권 아래 끔찍한 시간을 보낸 여러분, 여러분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해 복지를 확대하겠습니다.’ 마치 사탕을 잃어버린 어린아이를 어르는 듯한 수사였다. 복지에 대한 궁극적 메시지는 ‘복지는 정부가 여러분에게 투자한 것입니다. 투.자를 통해 여러분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나중에 세금을 많이 낼 수 있을 만큼 성공해서 돌려주십시오‘라고 전달되어야 한다. 지위 상숭에 대한 열망이 강한 한국에서 특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먼저 페미니즘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특히 직장 내 여성의 지위 문제에 관해서는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111위)가 아랍에미리트(109위)나 바레인(112위) 수준과 비슷한 것으로 발표된 2013년 세계 경제포럽의 세계 성격차 보고서 내용올 전적으로 수긍하기는 어렵지만 여성이 심각하게 차별받고 있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다. 여성 노동력 활용 비율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여성 차별문제는 공정성 변에서 따져야 할 문제일 뿐 아니라 경제 문제와도 직결된다.

우리는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 사건의 책임자, 백혈병으로 근로자가 사망한 수원 삼성반도체, 캄캄한 밤에 빙판길임에도 총알 배달을 요구해 배달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중국음식점 주인, 여학생을 뺑소니치고 도로에 방치해 내상으로 죽게 한 음주 운전자를 비난할 수 있고, 비난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나서서 제대로 규제해야 그와 같은 안타까운 인명사고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역대 한국 정부는 하나같이 안보의 중요성은 외치면서 안전은 외면해왔다. 하지만 안전이야말로 정부 존립의 핵심이다. 정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정부의 존재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한국 정치계에서 동물 권리는 아직 주요 이슈 대접을 못 받지만 동물 권리에 대한 세대 간 인식은 판이하게 다르다. 예쁜 프릴 달린 코트를 업은 반려견 사진을 끊임없이 찍는 20대가 있는가 하면 모란시장 같은 곳에서 개를 때려죽이는 사랍도 있다. 개인적으로 개고기를 먹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호기심에 두 번 정도 먹어본 적도 있다. 하지만 잔인한 방식으로 식용 개가 도살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부터는 다시는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따라서 좀더 인도적인 방식의 동물사육이나 도살을 추진히는 정치인이 있다면 최소한 젊은 동물애호가들은 감동하지 않을까. 
2015/06/19 22:58 2015/06/19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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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과서에는 없는 심리학적 방법으로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도둑질을 하는 아이에게 매번 1실링의 상을 준 것은 이론에 따른 행동이 아니었다. 그 이론은 훨씬 뒤에 나왔는데, 잘못된 것은 아니었겠지만 불충분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도둑질을 하는 아이는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다. 그 아이는 상징적으로 사랑을 훔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 동전이란 형태로 사랑의 표시를 보여주었다. 요점은 그 방법을 계속 되풀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간단치만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서머힐에서 그 아이에게 주어진 자유가 그 아이를 치유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을까? 다른 친구들에게 자기가 좋은 녀석으로 받아들여지기를 그 아이는 얼마나 갈망했을까?"

(A.S. 닐, '자유로운 아이들, 서머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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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3 23:14 2015/06/13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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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을 활용한 빅데이터 처리와 IT 의 팡범위한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문 기술은 거의 없다. (방사선 전문의, 회계사, 중간 판리자, 그래픽 디자이너, 마케팅 담당자 풍을 포함하는) 각양각색의 지식 노동자들은 패턴 인식 소프트웨어가 모든 전문 영역을 관통하기 시작한 불편한 상황을 이미 감지하고 있다. 

마이크 맥크레디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이용해 히트할 가능성이 있는 음악을 식별해 내는 스타트업 뮤직엑스레이 (Music Xray) 대표이다. 삼년도 지나지 않아 5000 명이 넘는 아티스트와 음원 계약을 맺은 이 회사는 곡의 구조를 이전에 녹음된 곡들과 비교하는 정교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신곡이 음악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잠재력이 있는지 추정한다. 그들은 이미 무명 아티스트의 곡을 찾아내 그 성공을 정확하게 예상한 인상적인 실적올 자랑하고 있다. 

에파고긱스가 개발한 이와 유사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은 영화 대본을 분석해 홍행작을 예상한다. 이 프로그램이 홍행작을 식별히는 데 성공을 거둔 덕분에 업계에서는 알고리즘 평가 표준 요금 체계까지 구축되었다. 미래에는 이런 종류의 예측도구 덕에 값비싼 포커스 그룹조사를 수행하거나 시장조사 계획을 실행할 마케팅 에이전트를 비싸게 고용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어차피 정확도 변에서도 알고리즘이 걸러 낸 빅데이터에 대한크라우드소싱의 성과에 비하면 무색할테니까 말이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은 갖가지 정보로 관심을 끄는 친근한 어조의 스포츠 뉴스 광고 문안을 창작해 내는 데에도 사용되고 있다. 빅텐네트워크 (Big Ten Network) 는 경기가 끝나고 나서 바로 몇 초 뒤에 게시할 문안 원본을 알고리즘을 사용해 작성한다. 카피라이터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셈이다."

- 제레미 리프킨, <한계비용 제로사회>
2015/01/02 11:31 2015/01/0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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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을 남자보다 하위의 성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여성들은 큰 상처를 받는다. 사회 각 분야에서 벌어지는 여성 차별이 그 전형이다. 같은 일을 하는데 남자보다 못한 대우를 받거나 여자라고 중요한 직무는 맡기지 않고 잡일만 시키는 것도 그녀들의 자존감을 다치게 한다.

그러면서도 남자들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여성의 섬세함을 기대한다. 어차피 여자들이 나중에 다 정리해주겠지, 라는 식이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다 자기 엄마 같은 줄 안다.

또 이런 사회에서는 남자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까지 여성에게 요구한다. 물론 책임지기가 두려워 남자를 보살피는 역할에 만족하는 뒤틀린 여자들도 적지 않으니 남자만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전반이 여성에게 '아내이자 엄마'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 미즈시마 히로코, <여자의 인간관계> 중
2015/01/02 11:29 2015/01/0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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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 다니엘 튜더

나는 자주 내가 꽤나 자기성찰적이고 객관적이라고 믿는 부류 중 하나다.
그런데 한국에 매료되어 한국을 깊이 경험한 젊은 영국 기자의 이 책을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처음엔 그 깊이에 놀라기만 했지만 천천히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나를 자극하는 어떤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깨달았다. 인지하지 못하던 한국인 특유의 행동양식,사고방식. 이건 마치 심리검사지를 통해 나에 대해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되는 경험과 유사했다. 밑줄을 그은 본문이 하도 많아 고민하다가 정리를 해두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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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조정의 파벌 중 일각에서는 중국에 도움을 청했다. 동학농민군을 막을 만한 힘이 조선 조정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청나라에서 보낸 3천 명의 군인을 동원해 동학농민군의 북상을 막고 휴전을 위한 협상을 벌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중국의 개입은 추후 조선을 병합하고자 영향력을 넓혀가던 일본을 자극하고 말았다. 일본은 그 앙갚음으로 8천명 규모의 군대를 조선에 보내 궁궐을 포위하고 정부 고위 관료들을 친청파에서 친일파로 전부 교체했다. 중국과 일본이 조선을 놓고 벌이던 힘겨루기는 1984년에서 1985년까지 진행된 1차 청일전쟁의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4월 19일 학생들은 고려대학교에서 경무대까지 행진했다. 군인들의 발포로 2백 명 가량이 죽었다. 그로 인해 시위대의 행렬은 더욱 불어나 마침내 4월 25일에는 경찰과 군이 시위대를 향한 발포를 거부하기에 이른다. 이승만은 하와이로 도망쳐 5년 후 그 곳에서 사망했다.

한국에서 극좌로 간주되곤 하는 정치집단은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극우의 요소로 평가되는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기 때문에 외국에서 온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일쑤다. 친미적이고 반복적인 성향 외에도 이승만, 박정희 정권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 협력했던 이들에게 관용적인 입장을 취하곤 했기에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했다. 이승만은 일제강점기에 치안을 담당했던 친일 협력자들을 대거 받아들여 같은 일을 시키고 예전과 비슷한 직급을 유지하게 해주었다. 1965년, 박정희가 일본으로부터 소프트론 및 차관 형식으로 미화 8백만 달러를 받는 대가로 추진한 한일국교정상화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 심지어 훗날 대통령이 된 당시 20대 초반의 이명박 또한 한일국교정상화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했다가 3개월간 투옥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친미적 성향과 친일 잔재에 맞서고자, 한국의 좌파 세력은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정치사상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좌파는 '민족'과 같은 단어를 적극적으로 차용했고 심지어 한 좌파 성향의 신문은 그 이름이 '민족일보'였다. 오늘날의 주요 좌파 언론인 한겨레는 '하나의 민족', 혹은 '하나의 인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반대로 우파는 '국가'라는 단어를 지지했는데 그것은 한반도의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같은 민족을 배제한 한국만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유교는 교육을 통한 성공과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것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남들에게 밀리지 않을 만한 최소한의 기준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것이 한국인에게는 언제나 달성할 수 없는 목표처럼 보인다.

한국에서는 직업을 구할 때, 이력서에 여권 사진을 붙이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 이런 관행 때문에 특히 여성 지원자를 뽑는 경우, 입사 서류 심사는 일종의 미인 대회로 둔갑해버리기도 한다. 성형수술이 하도 성행하다보니, 마치 출전한 선수 절반이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고 단거리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본인이 내키지 않아도 수술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에서의 삶을 스트레스로 가득 채운다.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원인이 바로 이 과잉 경쟁 때문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녀가 더 행복하고 균형잡힌 삶을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다.

한국어에는 '촌스럽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뭔가가 구식이고 조잡해보일 때 쓰는 말이다. 머리 모양, 옷, 가수, 심지어 사람의 이름마저 촌스럽다는 지적을 받아 조롱거리나 놀림감이 될 수 있다. 급속한 경제 발전을 거치는 과정에서 시골에 속한 것들은 서울의 새것과 반대돠는 것, 뒤처지고 낡은 것, 갈아치워야 할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교외 지역과 '오래된 것'이 완벽히 동일한 것처럼 취급된다는 것은, 도시의 화려한 생활방식과 도시화가 사람들에게 끼친 전면적인 영향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010년대 들어 홍익대학교 근처의 '곱창전골'처럼 1960, 70년대의 낡은 음악을 틀어주고는 술집들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복고풍마저 결국은 문화적 엘리트들이 즐기는 첨단 유행이라는 것이다.

정치영역에서도 한국인들은 비슷한 변덕을 부리는데 이 경우에는 앞에서 언급한 경우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곤 한다. 추문에 휩싸인 정치인은 잠시 경멸을 당하지만, 운이 좋으면 대중이 곧 그 사건과 그의 비행을 잊어버리게 되고, 훗날 그는 복귀할 가능성이 열린다. 이런 현상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는 표현으로 '냄비근성'이란 말이 있다. 이는 냄비처럼 빨리 끓어올랐다 금새 식어버리는 그래서 모든 일에 금방 분노하고 또 금방 잊어버리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말이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은 막판 인터넷 여론몰이로 승리를 거뒀지만 그의 지지자들 중 상당수가 임기 초반에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렸다. 그러자 노무현의 반대 세력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근거로 삼아, 노무현이 총선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며 그를 탄핵하고자 했다. 이에 밪발해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대통령의 지지도는 극적으로 다시올라갔다. 하지만 이후 노무현의 지지율은 다시 떨어졌다. 여기서 핵심은 노무현이 좋은 대통령이었는지 여부가 아니라, 대중이 그만큼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노무현을 좋게 봤다가, 나쁘게 봤다가, 좋게 봤다가, 다시 나쁘게 봤다. 그리고 2012년 노무현은 박정희 다음으로 한국에서 두번째로 인기 있는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기업은 노동자들에게 회사를 가족처럼 여기라고 했지만, 한국에서는 일본에서와 같은 진정한 평생직장의 개념이 성립된 바 없다. 이 직장 저 직장 오가는 서구권 노동자와 달리 한국 노동자에게는 고용주에 대한 충성이 요구됐지만, 노동자들은 50대가 되면 은퇴할 것을 강요받는 처지가 되었고, 따라서 그들의 충성심은 제대로 된 보상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정부는 항상 포장마차와 길거리 음식점들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특히 올림픽, 월드컵, G20 정상회담 등 국제적인 행사가 열릴 때는 그 노력을 두 배로 늘려 숫제 이들을 없애버리겠다는 식으로 달려든다. 관료들은 이런 대중 음식점들이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들에게 후진적인 것처럼 보여서 나쁜 인상을 줄 거라는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있다. 그들은 대신 정제된, 따라서 지루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의 모습, 즉 경복궁과 김치와 전통 춤 같은 걸로 꽉 채운 모습을 보여주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에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 방식은 실패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예컨대 가까운 중국을 놓고 봤을 때, 솔직히 규모로만 따지면 한국의 어떤 유물도 자금성 하나를 압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포장마차 같은 것을 억누르는 대신 다른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한국만의 무언가를 홍보한다면 한국을 좀더 잘 알릴 수 있을 것이다.

1997년 들어 재벌들은 영화판에서 흥미를 잃어버렸다. 삼성과 대우는 영화 제작에서 손을 뗐는데...재벌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운 것은 벤처 투자자들로 그들은 소극적 투자를 하면서 가급적 간섭하지 않고 재능있는 감독들이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던 찰나, 투자자들은 완벽한 시기를 잡아 혜택을 누린 것이다. 경제위기가 해소되면서 인터넷 중심의 벤처 열풍이 불었고 정부가 좀더 작은 규모의 기업들을 육성하고자 지원에 나서면서 한국 경제에는 이지머니가 홍수를 이루게 되었다.

오늘날 발라드 가수들은 대부분 기술적으로 완전무결하게 훈련받은 이들인데, 사람들의 눈물샘을 제대로 자극할 수 있도록 과도한 감정이 실린 소몰이 창법을 구사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앞서 언급한 두 정신과 의사에 따르면 '정'은 개인의 가슴이나 머리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이기 때문에 정은 '우리'에 대한 강한 의식을 필요로 하지만 다른 문화에서는 그런 것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의사는 또 "한국인들에게 '우리'는 단순한 복수형 대명사가 아니다. 그보다 '우리'는 집단화된 '나'에 가깝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을 '나의'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의 누군가 라고 표현한다. '내 엄마'는 '우리 엄마'가 된다.

어떤 사람들은 정이 사랑이나 우정과 다를 게 뭐냐고 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맞는 지적이지만, 사랑이나 우정과 달리 정은 지역 단위나 조직, 혹은 사회적 차원과 같이 큰 집단의 구성원 사이에서도 느낄 수 있다. 같은 고향 사람, 같은 부대 병사, 같은 학교 동문들은 정에 기반한 실질적 상호 부조 및 책임을 느낄 수 있다. 대학 동문회나 교회처럼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집단은 가시적인 영향력을 확장해나갈 수도 있다.

한국에서 사업은 곧 개인적인 일이다. 장차 함께 일할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종교가 어떻게 되세요?"나 "왜 결혼 안 하셨어요"같은 질문을 던져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단기적인 주고받기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관계 형성에 능해야 사업에 성공한다. 그러므로 인간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서구인들에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수준보다 훨씬 더 많은 개인 정보를 교환해야 한다. 이제 막 같이 일하게 된 사이에서 상대방이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다소 껄끄러운 일이지만, 열린 마음으로 호응하는 사람에게는 장기적인 사업상의 이익뿐 아니라 진솔한 우정이라는 보상이 돌아오게 되어 있다. 오랫동안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일해온 미국 이민 4세대 피터 언더우드의 말에 따르면 한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건 "일단 믿고 봐야" 하는 일이다.

명예란 이토록 중요한 것이므로 거래 상대방인 한국 기업이나 그곳 직원을 동료들 앞에서 비판할 일이 있으면 대단히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일단 개인적으로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마지막 극약처방으로 공개적인 비판을 개진해야 하는 것이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내뱉는 거친 말은 어떠한 종류의 관계에든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SKY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한국의 사회적 사다리 중 가장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다. 한국 엘리트 대학에서 교수를 하는 사람들은 수월하게 정치계, 재계에 진출하기도 하고, 자신이 비판하는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 보유 여부와 무관하게 언론 지면에 오르내리는 공공 지식인의 역할도 맡을 수 있다. 그 결과 교수라는 직함은 액면가보다 휠씬 값어치가 높아지며, 정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 수천만 원 이상의 뇌물이 오간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2014/04/16 23:09 2014/04/16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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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말한 대로 완전한 깨달음을 가진 사람은 없다. 내가 존경하고 미국의 역사가 자랑하는 조나단 에드워즈도 내가 보기에는 목회자로서는 한쪽이 비어 있었다고 본다. 현실에서 생존의 싸움을 하고 있는 성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성경의 잣대를 가지고 나무라고 정죄하는 데 열을 올리는 목회자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아빠의 소신이다. 나는 로버트 슐러의 목회 철학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세미나에 참석해서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목회 균형을 잡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릭 워렌이나 빌 하이벨스를 나는 존경한다. 내가 꿈도 꾸지 못하던 사역을 할 뿐 아니라, 오늘의 문화에 젖어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데 획기적인 프론티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목사가 청바지를 입고 설교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그들의 용기를 높이 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책을 보아 그 배경에 로버트 슐러가 숨어있다고 나는 한번도 느끼지 못했다. 놀라울 정도로 로버트의 좋은 점들을 목회의 밑거름이 되게 만드는 재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립 얀시도 마찬가지다. 내가 부탁하는 것은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52쪽)

 

아버지는 가톨릭에 대해 일반적인 개신교 목회자와는 달리 매우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테레사 수녀처럼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큰 교회에 '어느 정도' 화목한 가정까지 남들 보기에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사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죄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90쪽)

 

2007년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평양 부흥 100주년'을 기념하는 집회가 있었습니다. 설교를 맡은 아버지는 그날 수술후 당신의 몸 속에 남아 있는 한 개의 폐마저 터져나갈 듯이 '주여 살려 주시옵소소!'라는 메시지를 간절하게 외쳤습니다. 그 설교는 가장 큰 죄인인 나부터 용서해달라는 외침이었습니다. 교인들을 잘못 가르친 목사, 나부터 살려 달라는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오로지 비주류의 목사만이 할 수 있는 메시지였습니다.

 

 

이 옥한흠 목사가 죄를 지었나이다.
주여! 죄를 회개하오니 살려주시옵소서!
한국 교회가 타락한 것이 이 목사에게 있습니다.
아버지시여!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옥한흠 목사가 죄를 지었나이다.

주여! 죄를 회개하오니 살려 주시옵소서!
한국교회가 타락한 것이 이 목사에게 있습니다.
아버지시여!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한국교회가 세계 제일의 교회가 되고 새벽예배가 많은 것은
목숨을 아까지 않고 충성하는 목자와 평신도가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회가 교회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입으로만 가지고 구원을 받았다면서
주여주여 설교하는 목회자들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모두 행함이 없는 거짓 믿음입니다.
거짓 목회자들입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주여 살려주시옵소서!

 

- 2007년도 한국 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회 설교 중에서

 

 

그 날 집회 후 아버지의 설교를 향해 일부 사람들의 노골적인 불평이 이곳 저곳에서 들려왔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죄인인 나를 용서해 달라는 아버지의 메시지는 기독교 주류의 메시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비주류의 쓴 소리는 언제 어디서나 주류를 불쾌하게 만드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115쪽)

 

그로부터 무려 이십 년이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던 아버지의 그 당혹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라지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의 목회 전반에 대한 깊은 고민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 고민의 이유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바로 아버지가 지향하고 붙잡은 자신의 교회론과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오는 교회의 현실이 서로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목사로서 교회는 커졌고 사람들은 많아졌을지 몰라도 자신이 믿고 붙잡고 가던 ‘교회론’에 걸맞은 결과를 교회 속에서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 말입니다. (137-8쪽)

 

“은퇴 후 저는 제 목회가 자체적으로 자기모순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너무 키워버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 교회론에 부합한 교회는 너무 비대해져 버리면 그 정신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 목회가 교회론과 제자훈련이 엇박자를 이룬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것은, 양이 많아져 버리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제가 은퇴할 때 사랑의 교회가 주일 출석 장년 교인수 이만 삼천 명, 전체 등록 교인수 오만 명, 벌써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어찌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제자훈련의 선두주자로서 교회론으로 볼 때, 그 정신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또, 교회론의 본질에서도 위선자적인 입장에 빠질 수 있어 고민이 됩니다.” (143쪽)

 

아버지가 목회를 하시며 내내 교회가 커지는 고민 속에서 하나의 돌파구로 붙잡은 길은 목숨을 건 설교 준비였습니다. 아버지에게 나날이 늘어나는 성도가 주는 내적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길, 그나마 많은 성도들을 제대로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설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145쪽)

 

“흔히들 나를 보고 매주마다 수만 명의 성도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느냐고 하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설교가 나에게 보람은 안겨주었을지 모르지만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설교의 부담감 때문이었다. 설교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숨은 군중들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강대상에 서고 싶지 않을 때가 없지 않았다." (146쪽)

 

아버지는 어쩌면 단 한번도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제대로 전달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은퇴할 당시 어느 방송에서 고백했듯이 자신의 부족한 은혜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의 설교를 통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데 대하여 성도들에게 미안해하고 하나님 앞에 송구해 했습니다. (148쪽)

 

아버지는 목사로서도 또 인간으로서도 고독했습니다. 무엇보다 설교자라는 점을 숙명적으로 지고 사는 사람으로서 은혜에 대한 갈급함은 그를 필연적으로 고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고독은 아버지 스스로가 초래한 결과였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알지 못해 그 큰 은혜를 사람에게서 제대로 선포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사람들과 어울려 놀 여유를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무겁고 크며 거룩한 존재일수록 설교는 그에게 엄중하며 생명을 다루는 문제였습니다. 항상 자신은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말하던 아버지는 하나님과 단 둘이 대면하는 인간적 고독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채찍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지키기 위해 찾은 답이 어떤 의미로 아버지에게는 ‘고독’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종종 이런 목회자의 고독을 ‘날마다 죽는 목회자’라고 표현하곤 했습니다. (150쪽)

 

인공호흡기를 낀 아버지는 어제 간신히 손에 들린 펜으로 이렇게 쓰셨습니다. “성도들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아마도 아버지의 진심은 이것이었을 듯 합니다. “성도들에게 미안하다.”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성도들에게 미안해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 깊이 더 넓게 보여주지 못하는 설교자로서 미안함 뿐 아니라, 자신의 교회론과는 달리 너무도 커버린 교회 때문에 또한 성도들에게 미안해했습니다. 아버지의 이 미안함은 지금도 여전히 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랑의교회 건축 과정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교회론에 걸맞게 좀더 제대로 목회했다면 결코 더 큰 겨교회 건물을 지어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더 큰 교회 건물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가 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했습니다. (159쪽)

2013/01/23 23:30 2013/01/2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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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자 감히 투표장을 기웃거린다는 이유로 흑인들이 죽을 때까지 맞는 사건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린치는 빈번하게 일어났다. 1882년부터 1968년 사이 3,446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린치(맞아죽음)를 당했다. 그 가운데 159명은 여성이었다.

단지 죽이는 게 끝이 아니었다. 분노한 백인들은 린치를 당해 죽은 시신을 화형하거나 나무에 매다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흑인들은 신고조차도 두려운 일이었다. 범행에 가담한 이들을 법정으로 부르는 일도 없었다.

루이스 알렌은 두 명의 흑인 린치 사건을 다룬 시 'Strange Fruit'을 1936년 잡지 <뉴욕 티처>를 통해 처음 공개했다. 어느 정도 반응을 얻자 참상을 알리기 위해 시를 띄울 만한 노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빌리 홀리데이는 'Strange Fruit'을 부르며 애써 슬픔을 밖으로 터뜨리지 않았다. 남의 일인 것처럼 읊조리듯 담담하게 소화했다.

'Strange Fruit'은 빌리 홀리데이의 싱글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이다. 그토록 열띤 호응을  얻었지만 정작 노래가 끝날 때마다 빌리 홀리데이는 언제나 침울해했다고 동료들은 회고한다. 그녀는 클럽의 인기스타가 되었지만 도약은 어려웠다.

도시 사람들은 틀을 깨는 그녀의 신선한 노래에 감동했지만 그래봐야 그녀를 노래하는 노예 정도로만 취급할 뿐이었다. 청중의 주문은 이런 식이었다. "그 흑인 열매인지 뭔지 대롱대롱 매달렸다는 그 노래 한 번 불러봐." 고급 호텔 공연이 잡혀 있을 때, 흑인인 그녀는 정문으로 출입할 수 없었다. 그게 호출을 받아 미국 전역을 오가며 노래하던 인기 가수의 삶이었다."

- 이민희, <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되었을까> 중에서
2013/01/22 23:29 2013/01/22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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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쉽지도 빠르지도 않다. 그러니 웃으며 기다려라."
- 밥 말리.


"트렌치타운은 자메이카의 불안정한 정치가 고스란히 드러나던 현장이었다. 자메이카는 오랜 영국의 식민지로 살아왔다. 마침내 독립을 얻지만 사회주의 노선의 인민공화당과 친미 성향의 자메이카 노동당이 첨예하게 대립해 피바람이 불었다. 그가 사는 트렌치타운에서도 연일 시위가 있었다. 시위에 참여했다가 죽거나 사라지는 사람도 있었다.

밥 말리의 노래는 수많은 자메이카인을 위로했다. 그의 노래는 어지러운 정계를 비판하고 소박한 민중의 삶을 대변했다. 그러면서 곧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간다. 1973년 밥 말리가 "I Shot The Sheriff."를 발표한 후 미국의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이 원곡을 해석해 빌보드 1위를 기록하면서부터다. 원래 제목은 "나는 경찰을 쏘았다"였지만 정부의 간섭으로 제목을 바꾸게 됐다.

그는 노래를 통해 권력을 비난했고 대다수의 약자들이 그의 노래를 지지했다. 밥 말리는 평화를 노래했지만 그가 노래하는 현장은 평화롭지 못했다. 그는 떠나야 했다. 1976년 그의 매니저와 아내가 총상을 입으면서다. 눈 앞에서 삶의 위협을 느끼고 망명을 택한 밥 말리는 영국으로 간다.

정부는 내쫓다시피 했던 밥 말리를 다시 부른다. 자메이카 양측 정당의 무력단체 대표들이 마침내 휴전을 약속하는 평화협상을 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선언하기 위해 밥 말리를 상징 인사롤 초빙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고국의 부름을 받고 돌아온다. 밥 말리의 복귀와 함께 자메이카가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공연이 기획된다. 돌아온 밥 말리는 '사랑과 평화의 콘서트' 현장으로 달려갔다.

밥 말리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생일 2월 6일은 자메이카의 국경일로 지정됐다."

- 이민희, <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되었을까> 중에서
2013/01/22 23:28 2013/01/22 2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