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 리얼 스토리ㅣ최민수는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허지웅 기자
세상은 얼마나 쉽게 이유를 만들고 합리를 씌워 결과를 만들어내는가. 누군가의 신념을 매도하고 개성을 희롱하고 사실을 왜곡하기에 얼마나 편리한 곳인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게, 누군가는 괴물이 된다.
최민수가 산에 들어 간지 4개월이 지났다. 산 속에서 홀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다. 가끔 급하게 필요한 물건을 매니저에게 부탁할 때를 제외하면 대개 그렇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최민수 사건은 어렴풋한 자취만 남기고 지워진지 오래다. 최민수가 훈계하는 노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칼을 휘두르고 차에 매달아 질주하다 세상의 질타를 당하고 산 속으로 숨어들어갔다지. 그렇게 막돼먹은 패륜의 기운만 묻어날 뿐이다. ‘최민수 70대 노인 폭행 의혹’ 사건이 아니라 ‘최민수 70대 노인 폭행’ 사건으로 남았다. 400억 원 규모 한-미-일 합작영화 <스트리트 오브 드림즈>의 출연은 무산됐다. 드라마 <한강> 출연료 미반납을 이유로 2번에 걸쳐 피소되면서 반갑지 않은 구설수에 다시 올랐다. 언론은 악재가 겹쳤다고 보도했다. 물론 사연이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민수의 연기 경력은 끝장난 것처럼 보였다. 아니, 정상적인 사회 활동이 더 이상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다. 세상은 누군가에 대해 한 번 내린 판단을 쉽게 뒤집지 않는다. 그것이 왜곡된 진실이라도 마찬가지다. 굳이 헤집어 진실을 따져볼 의지 따윈 드물다.
그러나, 저 떠들썩했던 ‘최민수 70대 노인 폭행 의혹’ 사건은 재판까지 가지도 못했다. 사건이 검찰로 송치된 이후 최민수는 두 번 서울 서부지방 검찰청에 출석했다. 처음은 단독 조사, 두 번째는 유씨 노인과의 대질 조사였다. 최민수는 변호사조차 대동하지 않았다. 경찰 조사 때부터 그랬다.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법이 공정한 판결에 따라 죄를 묻는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겠다며 굳이 변호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지난 6월 27일 서부지검은 최민수에 대한 폭행 및 협박 혐의에 대해 모두 ‘혐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무혐의였다. 기소되지 않았다. 항간에는 화해조로 거금의 합의금이 오고갔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거기 합의금 같은 건 없었다. 최민수는 죄가 없음이 밝혀지고 나서도 산에 머물렀다. 언론은 전만큼 시끄럽지 않았다. 정정보도는 당연히 없었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나
지 난 4월 21일 오후 1시경, 최민수는 운동을 마치고 하야트 호텔을 나섰다. 자기 소유의 지프 랭글러를 타고 이태원을 향했다. 늘 그곳을 경유해 집으로 가곤 했다. 그래서 이태원을 지나다보면 종종 오토바이나 지프차에 올라탄 최민수를 목격할 수 있었다.
이 태원 소방 사거리를 약간 미치지 못해 갑자기 도로가 막히기 시작했다. 신호 대기가 아니라 아예 차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은 최민수가 차에서 내렸다. 50미터 전방에 견인차가 길을 막고 있었다. 견인차는 D주차장 앞에 서있는 BMW 자가용을 견인해가려 했다. 이를 방해하고 있는 건 D주차장 직원들과 이 주차장을 사용하는 갈비집의 사장 유씨 노인이었다. 유씨 노인은 그 지역 유지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용산 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들과도 대부분 안면이 있을 정도라 경찰서를 찾았던 최민수측 일행들이 놀랐다는 후문이다.
이들의 다툼 탓에 체증이 발생한 것이다. 도로는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좀체 이런 걸 참지 못한다는 최민수가 상황에 합세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최민수는 견인차가 BMW를 견인해갈 수 있도록 도우려 했다. 결국 시비는 최민수와 유씨 노인의 몸싸움으로 옮겨 붙었다. 노인이 먼저 최민수의 멱살을 잡았고, 상호 몸싸움을 동반한 실랑이 중에 최민수가 입고 있던 셔츠 상단 단추가 모두 뜯겨 나갔다(이 뜯겨진 셔츠도 경찰에 증거로 제출되었으나 이에 대해 보도한 언론은 없었다). 최민수가 했다는 ‘폭행’은 이때의 몸싸움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폭력행사는 아니지만 멱살을 뿌리치기 위해 밀치는 것 역시 폭행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최민수가 주위 이목이 있으니 일단 주차장 사무실로 가서 이야기하자 제의했다. 사무실 안에서도 다툼이 계속 이어졌다. 이때에 대한 진술은 이해당사자에 따라 크게 엇갈린다. 최민수는 때리려는 것처럼 손을 들기는 했으나 폭력을 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유씨 노인은 최초 출동한 지구대 경찰들에게 최민수가 군화발로 처참히 짓밟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최민수는 바이커들이 종종 신는 큼직한 워커를 신고 있었다. 거기에 밟혔다면 건장한 청년이라도 무사하기 어렵다. 그러나 유씨 노인은 결과적으로 상반신에 동전만한 멍이 들었을 뿐이었다.
BMW의 견인이 완료되자 최민수가 자리를 떠나려 시도했다. 최민수가 사무실을 나서 자기 지프로 향하자 유씨 노인이 서둘러 신고를 했다. 사건은 이태원 지구대에 접수됐다. 최민수가 차를 출발해 50미터 가량 움직이다가 이태원 소방서 사거리에서 신호대기를 위해 멈춰 섰다. 그때 유씨 노인이 최민수의 출발을 막기 위해 지프 앞 보닛에 매달렸다. 마침 파란 불이 들어왔다. 당황한 최민수는 지프를 도로 갓길에 세우기 위해 차를 출발시켰다. 노인이 매달린 채로 지프가 수 미터 이동해 갓길에 멈춰 섰다. 수백 미터 질주 따윈 애초 없었다. 최민수가 노인을 지프 안으로 끌어들였다. 옆 좌석에 탄 노인과 최민수 사이에 다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사건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지점이 여기서 발생한다. 지프의 기어 뒤쪽에 움푹 팬 작은 공간이 있었다. 평소 오프로드를 즐기는 최민수는 거기에 작은 나이프를 상비해둔 상태였다. 나이프 주머니를 아예 본드로 차체에 부착해놓았다. 유씨 노인은 나중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진술을 번복하기 전까지 최민수가 칼을 끄집어내 휘둘렀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최민수는 끝까지 칼에 손도 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정적으로 최민수가 칼을 빼내 휘둘렀다는 목격자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 증언이었다. 당시 증언을 했다는 박모씨는 “칼을 꺼내 휘둘렀다고 말한 게 아니라 최민수씨가 칼을 꺼내 휘둘렀다고 외치는 노인의 말을 들었다고 증언한 것”이었다며 더 이상의 설명을 회피했다. 명백한 위증이다. 그러나 처벌할 수 없다. 현행 법상 재판 중이 아닌 수사 과정에서의 위증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이 때 지구대의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은 조사를 위해 지구대 사무실로 가야한다고 말했고, 최민수와 유씨 노인은 지프에 탄 채 그대로 지구대까지 이동했다. 지구대 사무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초반에는 고성을 지르며 서로의 입장을 변호했다. 그러나 곧 원만하게 화해했고 지구대 경찰 또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유씨 노인의 말에 사건을 종결지었다. 모든 게 거기서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 날 이후 무슨 일이 있었나
바 로 다음 날 최민수의 이름이 ‘배우 C'로 명기된 사건 기사가 인터넷에 등장했다. 일간스포츠의 보도였다. 최민수의 매니저도, 유씨 노인의 가족도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뒤늦게 사실을 안 매니저가 유씨 노인이 경영하는 갈비집을 찾았을 때는 이미 케이블 방송 취재진들이 도착해있는 상황이었다. 취재진들이 인터넷에 보도된 기사 내용대로 가족들에게 사건을 설명했고, 가족들은 무척 흥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3일에는 용산경찰서에 사건이 다시 신고 됐다. 유씨 노인이 한 것은 아니었다. 경찰은 당시 사건을 목격한 제보자의 신고였다고 설명했다. 유씨 노인이 먼저 경찰의 호출을 받았고, 유씨 노인이 최민수에게 “제보자가 경찰에 신고했다고 하니 조사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연락해와 같은 날 최민수 역시 용산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 다음 날인 24일, 최초로 최민수의 실명이 거론된 기사가 등장했다. 쿠키뉴스의 보도였다. 기자는 “경찰에 따르면”이라는 단서를 단 채로 “교통체증이 심하자 최씨는 차에 앉은 상태에서 주변을 향해 큰 소리로 마구 욕을 퍼부었다” “최씨는 차에서 내려 유씨를 폭행했다” “대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주먹으로 수차례 유씨를 때렸다” “최씨의 폭행에 놀란 유씨는 휴대전화로 ‘살려달라’며 인근 지구대에 신고를 했다” “최씨는 유씨는 매단 채로 200-300미터를 운전했다” “유씨가 떨어지지 않자 최씨는 오픈 지프차에 앉은 채로 소지하고 있던 등산용 칼을 꺼낸 뒤 본네트에 매달린 상태의 유씨를 향해 위협적으로 휘드르며 ‘죽인다’고 소리쳤다”고 상황을 서술했다. 경찰은 “경찰에 따르면”식의 인용이 가능할 정도로 제공한 정보가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 전달을 넘어선 수사나 감정의 개입이 눈에 띠는 기사다. 아니 기사라기보다 이건 차라리 소설에 가까웠다. 이후 타 언론사의 유사한 보도들이 일일이 사례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져 나왔다. 여론은 더할 수 없이 험악해졌다. 인터넷은 최민수를 향한 공격성 게시물로 넘쳐났다. 모두가 최민수를 증오했다.
최민수가 쿠키뉴스의 실명 보도 사실을 안 건 24일 최수종과 박수홍이 진행하는 <더 스타쇼>의 녹화 중간이었다. 이 날 촬영분은 전파를 타지 못하고 이후 폐기처분 됐다. 최민수는 공식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회견에 앞서 먼저 유씨 노인의 갈비집을 찾아가 무릎을 끓고 용서를 빌었다. 회견은 저녁 9시 30분 이뤄졌다. 그는 어쨌든 노인과 시비가 붙어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폭행혐의에 대해 다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고 전부가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다. 어제 진술을 다 끝냈다. 과장의 부분도 있다. 어차피 조사가 끝나면 다 밝혀질 것 같다”고 답했다. 더불어 "만약 그것(노인 폭행)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여러분들은 제발 나를 용서하지 말라. 진실은 밝혀지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이 유씨 노인측을 결정적으로 자극했다. 유씨 노인은 전치 2주의 진단이 나왔다며 고소할 뜻을 밝혔다. 28일 최민수가 노인이 입원해있는 병원을 문안차 방문했을 때 둘 사이에 화해가 이뤄지면서 비로소 유씨 노인의 마음이 풀렸다. 다음 날 유씨 노인은 폭행건과 관련해 최민수측과 합의키로 했다. 30일 경찰이 최민수와 유씨 노인을 다시 소환했다. 이날 조사에서 유씨 노인은 “당시 경황이 없어서 칼을 휘둘렀다고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 발짝 물러섰다. 또한 최민수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제출했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목격자 조사 등을 거듭한 결과 주먹질이나 발길질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최민수가 피해자를 매달고 수백 미터를 질주했다는 이야기 역시 크게 과장됐다"고 밝혔다. 이후 사건은 흉기 사용건에 한해 협박죄가 적용돼 5월 초 검찰로 송치됐다. 앞서 언급했듯이 검찰은 최민수가 흉기를 사용해 협박한 부분에 대해 6월 27일 최종적으로 무혐의를 선언했다. 서울 서부지검 황윤성 차장검사는 "폭행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최씨와 폭행당한 유모씨 사이에 합의가 이뤄진 사항이고, 흉기로 위협했다는 것도 실제로 칼을 뽑아 든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최민수는 괴물이 되었다
어 떤 한 사람을 향한 불특정 다수 언론의 왜곡보도가 이토록 집중적으로 자행됐던 사례가 있었던가. 이 정도면 폭격이라 할만하다. 기자회견 직후 최민수는 잠시나마 자살을 염두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번도 정정 보도를 요청하지 않았다. 더불어 구체적인 해명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어차피 해명이 아닌 변명으로 들릴 말이라면 하지 않는 게 좋고 어차피 시간이 다 해결해줄 것”이라며 스스로 거부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세상이 자신을 온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과연 죄가 없음이 판명됐다. 그러나 가끔은 비온 뒤에 굳지 않는 땅도 있는 법이다. 그는 이미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뒤였다.
유씨 노인 잘못이 아니다. 시시비비는 늘 발생하기 마련이다. 상황이 급박했기에 판단이 흐려졌을 수도 있다. 모두가 그렇듯, 사람은 때때로 기억을 조작한다. 문제는 언론에 있었다. 악랄했다. 사건 초반, 모든 게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였다. 상식을 거스를 정도로 기이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오보의 가능성 따위 얼마든지 감수하면서 기사를 내보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확한 사실을 알리고자 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무도 사실을 욕망하지 않았다. 정작 그들이 욕망했던 건 진실이 아니라 이슈였다. 정확한 사실전달보다 좀 더 빠르고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를 원했다. 뉴스 소비 행태가 인터넷 포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황색 저널리즘이 유난히 강화됐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특히 인터넷 언론이 보인 행태를 주목해보자. 눈에 띠는 제목일수록, 자극적인 이야기일수록, 특종처럼 보일수록 더 나은 자리에 기사가 배치될 수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더 많은 구독자는 더 많은 광고를 의미한다.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최민수 아니라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라도, 돈만 된다면 순식간에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 언론이다.
이 사안과 관련해 최민수측에 사과를 하거나 정정 보도를 한 매체는 하나도 없었다. 엉뚱하게도 윤승환이라는 이름의 네티즌이 ‘최민수씨 사건내막, 언론의 코미디’라는 글을 써 인터넷에 게시하면서 사실을 전달하려 애썼다. 최민수는 이 글을 보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사건 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비호감을 사고 있었다. 그의 과장된 남성성과 눈에 띠는 자의식, 일반인의 상식을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내는 듯한 문어체 발언들을, 사람들은 싫어했다. 이 정도 규모의 매도는 개인 최민수에 대한 선입견이 전제되지 않고선 좀체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 편으로 최민수는 보기 드물게 자기 목소리를 가진 배우였다. 자기 얼굴을 자기 소신을 자기 생각을 가진 배우였다. 더불어 그것을 거리낌 없이 표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이 시끄러운 시장판에서 배우 개인은, 엔터테이너 개인은 하나의 기업과도 같다. 뻐꾸기 마냥 빤한 말만 늘어놓는다. 느는 건 화장술뿐이다. 최민수의 말과 행동이 설사 호감을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해도 우리는 그를 조금 더 아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언론은 뜨거운 기사거리를 앞에 두고 조금 더 신중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나중에라도 사과하고 최민수 개인의 명예 복원을 위해 조금 더 신경 써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최민수는 괴물이 되었다. 허지웅 기자 (<프리미어> '리얼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