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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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이 있지만 설계만큼 기본에 충실해야하는 일이 또 있을까. 신기술이 적용된 부품, 최고의 디자인, 성능 개선품, 다 좋지만 기본 갭을 확보하지 못한 부품은 자동차 안에서 부품간 간섭을 일으키거나 고온의 엔진룸 안에서 열변형을 일으켜 부품으로써의 제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특히 내가 설계하는 부품은 차량 진동소음에 지대한 영향을 주므로 아무리 뛰어난 성능의 부품을 만들었다 해도 부품 간 간섭이 일어나면 무용지물에 차량이상진동의 주원인이 된다. 또한 부품 설계단계전에 측정하는 엔진의 중량, 무게중심좌표와 같이 기본적으로 측정하는 데이터를 제대로 따져보지 않으면 오차가 있는 데이터에서 최적 설계를 해본들 실차에서의 성능과는 더욱 멀어질 뿐이다.

요즘처럼 한끝 차이에서 명품이 구별되는 시대에 배워야 할 기술도 많고 알아야할 트렌드도 많지만 실제로 손에 잡히는 물건을 만들면서 느끼는 건 기본이 엉망인 물건 위에 아무리 새로운 어떤 걸 입혀도 소용이 없더라는 거다.

어떨 때는 설계를 하면서 문득 내 인격이나 내 인생을 전체를 돌아보게 된다. 허공에 떠도는 이상적 사고를 많이 하는 내게, 부품 설계업무는 엄한 인생 선생같을 때가 있다.

2012/02/08 21:36 2012/02/0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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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러진 화살]을 봤다. 나는 검사와 스폰서를 볼 때도 느꼈지만 사법부가 근본적으로 개혁되긴 어렵다고 본다.

사법부 얘기로 시작했지만 삼천포로 조금 빠지련다. 구정연휴에 여성 페친 중 한분이 자기가 다니는 교회 목사를 만나려다 수행원들에게 물리적 제압을 당하고 옷도 찢긴 일이 있었다. 물론 정황상 그분은 담임목사의 비리로 피켓시위도 했고 소송도 걸려 있는 상태로 보인다. 그 담임 목사는 자기 눈앞에서 여성 성도가 제압당하는 걸 보고도 교양있는 척 대꾸하다가 황급히 자리를 뜨려했고 자신을 팔을 잡고 늘어지는 그녀를 경멸하듯 쳐다봤다고 했다.

나는 목사에 대한 '은근한' 반감이 있다. 그것은 처음부터였다기 보다는 교회 안에서 오랜시간 성장하면서 '후천적'으로 습득된 반감이다. 목사는 설교자다. 성경을 해석하여 공동체 안에서 풀어내는 은사르를 가진 자다. 교회 공동체는 자신의 은사대로 그 공동체를 섬기는 만인제사장 집단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중소 규모 교회의 목사만 되도 목사의 급여가 1억을 넘고 자녀들은 유학을 가고 그랜저급 이상의 차를 몰고 다니며 전도사나 강도사라 쓰고 수행원이라 부르는 사람들을 달고 다닌다. 교회에 전화하면 목사와 직통으로 통화할 수 없고 비서가 스케줄을 조율해준다.

이 사람은 우리가 느끼는대로, 성경을 풀어내는 만인제사장 그룹의 한 성도가 아니라 중소기업 회장의 이미지다. 실제로 그들은 목사안수를 받고 나면 아파트 단지 주변에 상가 지하에 세를 얻고 두 주먹으로 교회를 개척하여 성도들을 은혜로 이끌어 지상으로 옮기고 평수를 넓히고 주변 땅을 사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려서 자수성가한 개척자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지만 그건 수사적 표현일 뿐 교회 재산이 자신의 것이며 자기 가족들에게 돌아가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성도가 목사님, 목사님할 때 목사는 회장님, 회장님으로 들린다.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건 개인적으로 한국교회에서 목사라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함이다. 목사가 수행원이나 비서를 왜 달고 다니며 왜 교회를 자기가 세웠다고 생각하고 성도들을 자기 회사 직원이나 아랫사람 대하듯 하대하는지 성경만 읽어서는 도통 알 수가 없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앞서 얘기한 여성분의 글을 읽고 열 뻗쳐서 "이런 개새끼가 있나. 부축하며 괜찮냐고 물어봐도 시원찮을 판국에"라고 썼다. 헌데 그 이후로 달리는 댓글이 대체로 맘에 들지 않는다. 힘내세요, 신경쓰지 마세요, 주님의 위로를 류의 댓글들. 나아가서 그런 사람은 목사가 아니고 그런 교회는 교회가 아니니 맘에 담아두지 말라고도 한다.

위로의 한 측면으로 인정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목사가 아니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사회에서 목사가 아닐 수 없고 많은 교회가 비리를 저지르고 있기에 그 교회가 진정 하나님이 보시기에 교회가 아니라고 우리가 선포한다하여 그 교회가 눈꿈쩍이나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 교회와 목사들이 여전히 교회질하고 목사질 하는데 '그들은 똥이니 피하세요' 라고 하는게 과연 옳을까.

나는 이런 이원론적 인식이 교회를 병들게 만들고 목사들이 '회장놀이'하는데 기여한다고 본다. 내 주변에서도 목사를 비판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에 무거운 돌 하나를 올려놓은 것 같이 괴로운 분들이 천천이요 만만이다. 어른들 중에는 원론적으로 만인제사장임을 인정해도 정서상 우리 목사님에게 굴비도 갖다 드리고 토종꿀도 갖다드리고 미국 가시면 차비도 드리고 차도 기왕이면 좋은 차 타야 안전하실 거고, 우리 위해 새벽기도도 하시는데 자녀들 유학도 보내드리고.. 섬겨드리고 싶은 맘 간절하다.

설령 목사님을 미워하게 되더라도 그 교회를 떠나거나 피하는 선에서 그치려고 하지 목사의 적이 되고 비판을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 모든게 은혜롭지 못한 일이라 치부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교회는 성역이 되어가고 비판도 없고 자정능력도 상실한다. 목사는 신학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안수받고 초창기 개척하느라 고생 좀 하다가 40대 전후로 중소기업 회장직에 등극하게 되면 굽신거리는 성도들로 말미암아 자기도 모르는 새에 비서도 달고 수행원도 달고 돈도 많이 쌓고 산다. 그뿐인가 자기말에 아멘아멘 하며 은혜받기 일쑤니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을 보면 인내 자체가 어렵다. 자기가 고용한 교역자들 막 짤라대는 걸 보면 자기 인식이 '회장님'이 확실히다.

물론 이런 생각이 나도 너무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목사님들도 많고 정말 어떤 소명의식에 의해 정직하게, 그리고 힘들게 사역하는 분들도 많은데 말이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숨어서 하는 선행 대비 대놓고 이상한 짓하는 목사들이 한국에는 너무 많다. 일단 목사들이 너무 많다. 목사 하려고 줄선 신학생들이 너무 많다. 목사의 길이 좁은 길이 아니라는 것 자체가 목사직에 어떤 이익적 요소가 많다는 반증인 셈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독 한국에서만 신학생들이 넘쳐나는 이 기막힌 수요를 설명할 길이 없다.

나는 교회도 개혁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편이다. 나라가 나서서 목사들을 핍박하고 잡아가지 않는 한 이 흐름을 뒤짚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예배시간에 가장 은혜로웠던 순간은 교회개혁에 대한 나의 심적 부담감을 내려놓았을 때였다. 그렇다고 비판마저 안 할 수는 없다. 대안의 길을 가되 비상식과는 타협할 수는 없다. 회피하고 묵인하는 순간 비상식은 상식이 된다. 이런 상식이 교회가 번성한 건의 상당수는 그것을 묵인, 용인한 성도의 책임이 있다. (이를테면 친구먹어도 되는 목사를 회장님으로 모신..) 자기 수행원이 제압해서 물리적 고통을 받은 성도를 보며 다친 데 없냐고 물어보지 않고 감정의 동요없이 지켜보고, 유유히 교양있게 말하는 목사. 그 목사를 비난하지 않고 당한 성도에게 신경쓰지 말라고 그 사람은 '진정한 목사'가 아니라고 위로하는 주변 성도들. 여기에서 나는 조국 교회의 미래를 본다.

쓰다보니 삼천포가 본류가 됐다.ㅠㅠ(물론 삼천포를 의도하고 쓴 글이지만) 나는 부러진 화살을 보며 사법부를 묵상하다가 교회의 목사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교회도 개혁되지 못하리라는 내 확신이 강화되었다. 목사가 그럴진대 검사, 판사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인간이 독특한 면이 있지만 인간이기에 비슷한 면이 있다. 자기가 엘리트였고 특혜를 받으면, 그것도 나이가 어릴 때 굽신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하면 왠만해서는 뒤집을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법부의 개혁도 그렇고 교회 개혁도 그렇고 개혁되어 보이는 지점이 간혹 생길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어렵다. 따라서 그들의 '친구'인 우리가 옆에서 계속 불편하게 해주는 수밖에 없다.



덧글.

내 페친중 적어도 20%는 목사이거나 목사가 될 사람들임을 알고 있다. 그들의 목회적 진의를 왜곡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해서 사과를 덧붙인다. 특히 내가 아는 분들 중 기독잡지 정기구독료 오만원을 낼 여유조차 안 되는 시골교회 목사님도 계신다. 거듭 그런 분들에게 사과를 드린다.

2012/01/26 18:36 2012/01/2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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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영문법 학문연구기
중고등학교시절 나는 영어신동이었다.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겐 나름의 룰이 있었다. 당시 일반학생들은 이해하기쉬운 맨투맨 기본영어를 공부했고 공부를 쫌 잘한다 싶은 애들은 성문기본영어를, 겁나 잘하는 애들은 성문종합영어를 공부했다.

나는 당빠로 성문종합영어를 중학교 때부터 보고 이해하는 영어신동이었던 거시다! 따라서 나는 S(주어) V(동사) O(목적어) C(보어)의 위치에 따라 문장의 형식을 완벽히 맞췄고 남들이 어려워하는 '독립분사구문' 문장도 척척 맞춰내는 능력자였다.

따라서 영어시험에서 점수를 잃는 일 따위는 나와 무관한 저급한 학생들의 문제였고 나는 구름위를 날듯 영어 과목에서 항상 우위를 선점하던 시기를 한동안 구가했다.

그러나(급전환 모드)... 당시 나는 실제로는 New England를 "새로운 영국"이라고 번역하는 수준의 영어공부생이었다.



제2기: 단어왕 및 독해왕기
성문종합영어파들은 괄호 안에 들어갈 변형, 이를테면 원동사를 주면 형용사형으로 변환할지 부사형으로 변형할지, 조동사+have PP로 넣을지를 기똥차게 맞추는 능력자들이었지만 실제로 뉴욕타임즈나 미쿡서적들을 단 한 줄도 번역하지 못하는 도메스틱파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영어신동이던 나는 그런 일본식 영어공부의 문제점을 간파했다. 그래, 일본에서 수입된 일본식 영문법을 공부해서는 본토 영어를 이해할 수 없구나. 시험문제를 다 맞춰도 영어 한줄 번역 못하니, 오호 통재라. 그런 낙심을 하던 차에 국가는 입시를 수학능력시험으로 전환했고 수학능력시험에는 수학만 나오지 않고 영어도 나오고 국어도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런데 내가 간파한 영어공부의 문제점을 국가도 간파했던지 영어 시험은 독해의 비중을 엄청 높였고 급기야 5문제나 듣기시험도 보게 만들었다. 그때 나를 비롯한 영어신동들이 교재를 바꾸기에 이르는데 그때 불같이 번진 교재는 바로 이찬승 박사의 능률영어 씨리즈. 과학적 영단어 암기비법과 함께 리딩튜터라는 걸출한 학습지를 내놓은 능률영어사의 교재들은 입소문으로 순식간에 영어신동들 손에 들리게 된다.

고2 시절. 능률영어사의 도움에 힘입어 하루 100개의 단어를 외우고 20-30개의 독해본문을 풀며 입에 단내나게 영어를 연마한 나는 급기야 고3 수능시험에서 일본식 영문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영어만점의 영예를 누리지만... 입시에는 낙방하고 2지망 대학에 안착한다.

그러나(다시 다크포스 스멜)... 당시 나는 실제로는 미국사람을 만나면 "암... 엄..." 수준의 회화를 구사하는 영어공부생이었다.



제3기: 본격 솰라솰라-기(이른바 회화가능시기)
중고등학교 6년을 영어를 연마한 학생들이 어메리칸을 만나면 단 한마디도 못하는 상황에 대해 학계는 여러가지 추론을 해왔다. 동방예의지국에 사대주의 정서도 있는지라 대화를 주도하기 보다는 경청해서 그렇다느니 동양인들은 내성적이라 자기 표현에 약하다느니 나름 난리BLUES였다.

허나 그간 영어의 문제들을 척척 극복해온 신동이 입장에서 볼 때 그런 학계의 추론들은 개소리였다. 영어신동인 내 입장에서도 미쿡사람이 솰라솰라 하면 80% 이상이 안 들렸다. "씨바... 뭐래는거야..ㅠㅠ" 수능 영어만점에 빛나는 내가 이정도니, 이건 국가의 명예 측면에서 보더라도 내가 솰라솰라를 못알아듣고 말도 한마디 못한다는 사실은 정말 국익에 반하는 행위가 아닌가.

그래서 영어신동의 영어회화 학원 탐방기가 시작된다. 처음 학원에 가자 상담실에서 언니가 물었다. "미(국)인 회화반을 원하시나요?" 조금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기왕이면 미인이면 좋죠." 아놔... 그 때 언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저넘은 시골마초임에 분명하다'는 눈빛이었음.)

어쨌거나 나는 이 시기를 회화학원에 돈퍼주기, 갖다 바치기...시기로 칭한다. 또한 이때를 갠적으로 내 멘탈에 대한 미국문화강점기로 칭한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할 수 있다면 닥치는대로 뭐라도 할 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회화반 선생이 자기네 친구들이랑 밴드연주한다는 미국인 클럽에도 따라가서 음악도 듣고 미쿡선생님 친구들과 술마시며 내가 원어민의 일원처럼 보이면 겁나 흐뭇해하던 시기를 보냈다. (그 시기에 나는 술취해서 횡설수설하는 미쿡사람 첨봤다. 그 와중에도 나는 술주정도 명확히 듣기 위해 음주를 자제하고 귀를 쫑끗 세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씨바.)

집에서는 비디오 틀면 자막 안보이게 TV 아래부분에 마분지를 붙여놓고 헐리우드 영화 눈에 단내나게 봤다. 미쿡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꿈도 꿀 정도였다.-_-;;;;; 언어란 게 참 재밌어서 영어를 배우려던 나는 미쿡 문화를 통째로 거의 흡수하다시피했고 나는 햄버거에 콜라를 먹으며 원어민의 삶을 동경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뼈속까지(투더코어~) 친미....처럼 보였다.(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그럴 듯.)

그러나(다시 다크포스 스멜)... 휴학 후 나는 영어 침체기에 빠진다. 내게 있어 휴학기는 내 인생 최고의 폭풍독서시기로 정의되는데 그 때 불온서적 참 많이 읽었다. 뼈속까지 친미가 되어가던 내가 빨갛게 물드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두둔.



제4기: 침체기, 이른바 진보주의자 시기
폭풍독서기에 섭렵한 책들은 노암 촘스키(노안 아니고.), 하워드진과 같은 진보 지식인의 책들과 국내에 열풍이 분 안티조선운동의 멤버들, 이를테면 강준만, 진중권, 고종석, 김규항, 박노자 등의 책들을 흡수하던 시기. 오리엔탈리즘과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등등 빈 대가리에 채워넣으면 넣을수록 우리 미쿡 친구들이 마구마구 싫어지던 시기...라 할 수 있겠다.

유학 준비 때문에 3-4번 갔던 미쿡땅도 그리 달갑지도 않았고 거기서 본 디즈니랜드, 유니버셜 스튜디오, 라스베가스 등등. 다 나쁘게만 보였다. (당시에 나를 봤다면 미국에 간 북한사람 같은 느낌이었을거다. 미국에 사시는 이모가 현지 가이드를 해주셨는데 당시에 결례를 많이 했다. 이모는 개고생하고 고맙다는 인사도 못 들으셨으니... 이모, 죄송합니다. 흑흑)

어쨌거나. 자연스레 미쿡에 대한 반감이 내 영어사랑에 제동을 걸었고 점점 영어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 (사실, 그런 맘도 있었다. 영어공부 할만큼 해서 나... 이정도면 됐지 않나. 영어회화만 5-6년 했는데 뭘 더 바래. 뭐 이런 생각?) 유학에 대한 기대치도 비슷하게 줄어들어 결국 대학원도 국내로 들어간다.

예전에는 미쿡사람만 보면 반가워서 겁나 말걸고 싶고 내 영어가 잘 먹히나 확인도 받고 싶은 충동이 컸는데(아... 창피하다) 그 시기에는 미쿡사람만 보면 왠지 내가 아는 지식을 다 동원해서 앵글로색슨족들을 까대고 싶은 심정이었달까... 그래서 간혹 미쿡사람 길 물어보면 가르쳐주고 나서 "여기는 한국이니 니가 한국말을 배워서 물어봐야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흠흠... 그거 영작해서 외우느라 30분 정도 걸렸다.ㅋㅋ)

그러나(다시 다크포스...예감) 세상은 나에게 영어를 하라 하네...의 시기가 왔으니. 직장을 알아보다보니 영어점수를 내야 했고 나는 머리털나고 첨으로 토익을 봤다. 나의 영어신동의 기량을 보여줄 시험이라 여겨서 나는 건곤일척의 마음으로 시험을 봤다. 한달뒤 나온 점수는 695점이었다. 뭥미!!!!!



제5기: 토익시험 쪽집게 추종기
토익시험을 본 첫 인상은 그러했다. 일단 2시간 내도록 달려야 하고 화장실도 못간다는 규정? 지침?이 왠지 더 내 오줌보를 자극했다. 그리고 리딩파트는 인간적으로 너무 문제가 많아보였다. 눈알을 이경규처럼 굴려야만 시간내에 다 풀수 있겠거니 싶었다. 영어신동의 자체 평가와 달리 내 근방에 있는 사람들은 문제를 다 푼 사람도 있었다! 뭐야 너도 신동이야?

그런데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뭐라고 이야기하는데.. 글쎄 확 꽂힌 말이 있었다. "야... 진짜 다 나오지 않았냐? 나 반은 그냥 다 맞췄어." 허걱. 뭔소리야... 씨바 지금 문제 사전 유출이라도 했다는거야.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가방을 싸는 척하며 내 온갖 기를 모아 그들의 대화를 줏어들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린 사람의 이름...이 있었으니. 이름하야 김.대.균...

집에가서 유사 인터넷검색사의 실력을 가진 나는 겁나 뒤져봤다. FTP 사이트며 웹하드, 대학원 연구실 네트워크...

유.레.카.

한때 김대균이 토익을 평정하던 시기가 있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김대균이 유명해진 데에는 영어공부에 대한 그의 정공법과 더불어 꼼수가 공존함을 아는 사람은 안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김대균은 거의 매달 토익시험을 봤고 그는 시험문제를 외워서 나오기를 거듭한다. 그가 깨우친 토익의 맹점이 있었는데 2달에 한번은 전세계적으로 치는 시험이지만 격달로 치는 시험은 그렇지 않아서 대체로 문제은행에서 뺑뺑이를 돌리는데 한국이 경우 그 전년도의 같은 달 문제가 절반 이상 출제됐다.

몇년을 시험을 친 김대균은 그 패턴을 알아챘던 거다. 그래서 2월에 시험을 치는 수험생들에게 전년도 2월에 출제된 문제들의 상당수를 알려줬고 그 문제를 풀어본 수험생들은 토익시험장에가서 자기가 아는 문제가 절반이 나온 토익시험에서 2시간을 여유있게 시험을 볼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김대균은 토익시험에서 선호하는 답들을 DB화 해서 그 패턴을 알려줬다. 이를테면 "답 중에 instead가 있으면 그게 답이다" 뭐 이런 식이다.

물론 김대균은 이런 꼼수보다는 정공법을 더 강조했다. 본인도 그렇게 정공법으로 영어공부를 했기에 지금의 베스트셀러 선생이 된 것이고. 지금은 김대균 덕분에 토익시험도 자체 시험패턴들을 모두 바꾸었다. 허나 그의 꼼수가 사실 사람들을 모았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다. 어쨌거나.

나의 식어버린 미쿡사랑과 김대균의 꼼수가 절묘하게 어울려서 나는 토익시험을 겁나 잔대가리 굴려가며 봤다. 내가 입사하기 직전에 받은 토익점수는 800점 정도. 정확하게 기억은 안난다. (나중에 더 얘기하겠지만 나는 영어를 공교육+사교육 토탈 10년을 공부했다. 내또래들이 공감할지는 모르겠지만 참 웃기는 일 아닌가. 뭐하나를 10년 공부했으면 거의 박사끝내고 포닥하고 있을 시기인데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그 점수로 회사를 들어갔다. 문제는 다시 발생하는데. 교육받을 때 사무실 배치받으면 적극적으로 의지를 보이라고 겁나 세뇌교육 시킨다. 나도 사무실 배치 받고 눈에서 레이져 뿜으며 대기하고 있는데 사수님이 물었다. "김용주씨 영어 잘하나?" 나는 질문이 뇌로 올라가기도 전에 대답했다. "네 잘 합니다." ㅋㅋㅋㅋ ㅠㅠㅠㅠㅠㅠ 이후로 나는 1년간 독일업체와 기술용역에 쓰임받게 된다.



제6기: 기술고문 응대시기~현재
독일 업체와 용역이 시작되었고 그날이후 '영어잘하는 신입사원'이 된 나는 신입사원인데 회의 때마다 끌려가서 회의록을 작성하고 파란눈의 아저씨들에게 업무적으로 말도 해야하는 위기일발...마징가...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문제는. 내가 하는 말에 따라 업무의 범위가 결정되거나 책임소지가 뒤바뀌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는 점. 특히 용역 계약서를 받고는 며칠을 혼자끙끙대야 했다. (영어잘하는 신입사원인데 계약서의 업무분장을 어떻게 하기로 한건지 도통 이해가 안 되더군. 검은 건 글씨요 하얀건 종이로다... 아하하하하하)

특히 기억에 남는 일화. 업체선정을 앞두고 업체들이 제대로 자료들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사수의 지시에 따라 위협적인 메일을 보낸다. 오늘까지 자료 안 주면 업체 선정에서 배제하겠다는 게 메일의 내용이었다. 다소 무시무시한 선언을 하자 현지 출근시간이 되자마자 업체 부사장이라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근데 윗사람들은 퇴근한 상태였고 급기야 내가 전화를 받았다.

헬로 아이엠 솰라솰라.. 바이스 프레지던트 어쩌구... 니 메일 잘 받았다... 자료 바로 보내주면 우리 안 짜를거냐.. 뭐 그런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일단 독일에서 직통전화가 온 게 당황스럽기도 했고 책임질 사수나 윗분들이 없이 내가 부사장이라는 사람과 통화를 해야하는 상황도 ㅎㄷㄷ인지라. 허나 영어신동이자 영어잘하는 신입사원인 내가 아마추어같이 보이면 안 될 터. 여유있게 이야기를 재확인한 후 이야기한 내용을 내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으니 메일로 다시 보내달라, 처리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업체 선정에 짤릴까봐 걱정했는데 내 대답에 한숨 돌린 눈치였다.

근데 전화를 끊기 직전 나도 모르게 익숙하게 튀어나온 말이 있었으니 "thank you for calling."... 니가 전화해줘서 고마우이...ㅠㅠ 메일로는 너 기한 어겨서 짤리게 생겼다고 위협해놓고, 전화로 아,,, 전화해줘서 참 고맙습니다...라고 하니. 그 부사장이라는 사람이 전화기에 대고 와하하하하하하...하고 웃었다. 그러고는 "you. are. welcome"이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마치 한국사람들은 땡큐-유어웰컴 구문이 도식화되어 있다는 걸 비웃기라도 하는듯.-_-;;;;;;

뭐... 그 외에도 머리를 쥐어뜯을 만한 일화들이 참 많이 있으나 과감히 삭제하고. 요즘은 기술용역, 기술고문 관련해서 간헐적으로 회의가 있다. 나는 영어도 잘 못하면서 영어잘한다고 떠들어댄 관계로. 아직도 끌려들어가는 편이다.

근데 이제는 좀 게을러져서 그런지 점점 영어가 콩글리쉬가 되어간다. 긴장감이 떨어져서 그런 부분도 있겠고 예전에는 유창하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면 지금은 업무진행상 책임소지나 회의록 상에 명확하게 정리되는 게 중요하다보니 '말' 자체를 잘 하고자 하는 부분의 비중이 다소 떨어졌달까.

물론 아마 우리의 외쿡 아저씨들은 내가 영어 겁나 못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얼마전 회식자리에서 파트장이 나를 소개하며 "영어를 잘하는 친구"라고 말했는데 외쿡 업체 아저씨의 표정이 묘했다. 아마 "Do you?"라고 하고 싶었을거다.ㅠㅠㅠㅠ



작가 후기
결론적으로 나는 영어를 10년, 그것도 꽤나 하드트레이닝을 했음에도... 지금도 영어가 딸린다. 예전엔 스트레스였는데 지금은 또 딱히 그렇지도 않다. 원서를 보는 게 여전히 불편하고(지금은 아예 안 보는 편)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 "뭐라고 주절대는거야"하며 이해 못하기 일쑤다.

내 영어공부기는 그런 문제의식에 대한 자기희화화이다.ㅡㅡ;;; 영어신동... 사실 무늬만 그런거다. 10년간 영어를 했는데 중고등학교 때는 시험도 잘봤는데 영어를 대체 뭘 잘한다는 건가. 그렇다고 영문학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회화도 따로 공부해야 했고, 토익은 토익대로 꼼수로 공부하고. 참 웃기는 일이다.

한편으로 영어를 언어의 하나 정도의 위치로 놓자는 의견도 있다. 그냥 의사수단의 하나이지 않냐... 의사소통만 되면 되는거지 넘 열올려하지말자... 근데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와 직결된다. 우리에게 영어란 무엇인가는 우리에게 미국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예전 노트를 정리하다보면 영어공부 노트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때마다 내 머리속이 참 복잡하다.

아, 이 길었던 애증의 영어공부기여...(끝)
2012/01/20 18:34 2012/01/2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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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지식은 실천성, 현장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쉽게 말해 '공부해서 남주자', 사회와 이웃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구, 고민을 하자는 것인데 반대로 말하면 실천성을 담보로 하지 않는 지식에 대한 반감 같은 게 있다는 말도 된다.

문제는 실천성이 담보되지 않은 지식들, 학문들도 세상에는 많다. 이른바 잉여, 유희를 위한 모든 지식행위들은 간접적으로는 사회를 즐겁게 해주고 기호를 고급화해주기는 하겠지만 직접적인 실천성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자연의 원리를 캐내는 것 자체에 침잠하지 않으면, 그러니까 앞뒤 안 보고 한우물을 파지않고 그 안에서 좋은 응용지식들을 얻고자 하는 사심으로 학문연구를 하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다분히 '정치적'인 접근일 수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우리가 공감하듯이 소설을 쓰거나 음악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예술 행위도 반드시 실천예술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든지 이 생각을 어떻게 써먹을까 어떻게 구현할까에 몰입하는 행위는 학문을 실용적이냐 아니냐의 범주로 판단하게 만드는 지식의 '실용주의', '도구주의'의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원론적으로 깊이 생각해보면, 실천적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문제되지 않으나 그 역은 다분히 위험하고 협소한 생각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천성을 담보로 하지 않는 학문, 지식 습득에 대한 날을 세우고 사는 편이다. 대안없는 비판이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비판을 시작했다면 대안을 고민하는 다음 단계를 밟아야만 하고 어떤 학문을 시작하든지 자신이 서 있는 그 물리적 자리에서부터 그 방향성과 실천의 부담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취미가 공부고 자기 지식을 널리 자랑하는 것을 즐거움, 나아가 사명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시작은 그리할 수 있겠지만 한 우물만 십년 넘게 파면서 여전히 공부를 위한 공부, 학문을 위한 학문, 유희와 잉여질에 머무르는 학문을 하는 이들에 대해 나는 실눈을 뜨고 그 의중을 의심한다. 이른바 '고급취미'를 가지면서 존경까지 받고 싶어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내게는 실천적 지식인이라는 화두뿐 아니라 실척적이지 않은 지식에 대한 비판 또한 여전히 유효하게 다가옴을 부정할 수 없다.

2012년 1월 18일



#2.
어제 새로 오신 목회자님의 설교를 들었다. 담임목사님의 설교가 내실있기 때문에 그간 부교역자 설교는 본인 입장에서나 성도들 입장에서도 부담 네지 긴장감이 있는 것이었기에 기대반, 마음비움반으로 예배당에 앉아 있었다.

설교가 시작되었고 새로오신 강도사님은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정통' 설교자의 면모를 보여주셨다. 사복음서 일화 중 하나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경험을 나누면서 풀어갔다. 때때로 본문과 좀 멀리 있어보이는 부분까지도 꼼꼼이 다루는 측면이 없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무관한 본문이 아니어서 연관있게 들었고 설교의 후미에는 최근에 죽은 청년부 성도와의 일담까지 곁들여져서 많은 성도들이 눈물까지 훔쳤다. 머리속으로 이건 설교의 정석이야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전혀 감동이 되지도 마음이 움직이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물론 내 마음 밭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제의 설교를 듣는 내내 나는 설교자의 욕망을 보았다, 아니 욕망이라기 보다는 설교에 대한 부담감을 보았다는 것이 좀더 유연한 평가이리라. 첫 설교에서 성도들의 감동과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소 과잉의 설교를 했다는 느낌 말이다. 특히 마지막 일화는 슬프기 짝이 없는 것이었지만 실상 본문과 연결고리가 조금은 느슨해 보였다.

마지막 주기도문에 이르기까지, 첫 설교치고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강도사님의 인도에서 나는 <나는 가수다>에서 가수가 펼치는 명경연의 느낌을 받았다. 이 설교로 강도사님은 자신의 기량을 백분 선보였고 다수의 성도는 만족스러워보였다. 근데 애석하게도 나는 마음이 식었다. 냉랭해졌다. 딱히 누굴 탓할 일은 아니지만 자꾸 어제 설교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2012년 1월 16일.

2012/01/18 21:36 2012/01/1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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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와 있을 때의 행복감 그 뒷면에는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한 touch가 있음을
나는 자주 깨닫는다.
성하를 간지럽히고 안아주고 만져주고
쓰다듬어주고 폭풍뽀뽀 작렬할 때
성하의 입장에서 느낄 감정을 관찰하고
추정하며 나름 즐거워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가 나를 아끼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항상 내가 잘 때나 퇴근했고
아버지가 '우리 애들'이라고 말하면
누나와 내가 아닌 회사 직원들을 지칭했고
대체로 술취해서 들어오셨고
상당 기간 집에 와서는 어머니와 싸웠으며
내 친구의 이름이나 내가 좋아하는 일체를
알지 못했다.


가끔 나는 아내에게 성하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다.
물론 그 때는 아내가 성하를 대하는 모습이
남편인 나를 대할 때보다 더 부드럽고
애정가득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잠들고
밥먹고 같이 놀던 경험을 한번도 해보지 못한
나의 내면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좋은 교훈이나 법칙, 지식보다는
좋은 유년시절의 정서를 주고 싶은
아내와 나의 바람.
한편으로 그 씁쓸한 바람은
내가 성하에게 해주면서도 유체이탈하여
그것을 누리고 있는 '셀프 쓰다듬'에 다름 아니다.^^


단 한번도 아버지는 내가 울때 꼭 안아준 적이 없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성하가 울어서 꼭 안아줬다.
진정...주면서 치유되는 '셀프 쓰다듬'이다.

2011/12/15 21:34 2011/12/15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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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참 배울게 많다는 생각을 하지만 동시에 책'만' 읽는 사람에게는 참 배울 게 없다는 생각도 한다.

김두식 교수님은 몇년전 예수원이라는 기도원에서 경험한 일을 잡지에다 기고한 바 있는데... 평소 그렇게 기도도 열심히고 입만 열면 잘난 척하던 목사들이 노동시간만 되면 다들 뒷걸음질을 치는 반면 매일 공사판에서 일하던 일반 성도들은 나서서 고된 일들을 자처하는 모습에 대해 은근히 꼬집은 바 있다.

모 편집부에 갔더니 점심시간에 남성 편집부장은 신문보고있고, 여자 직원들이 밥상을 차리더니 밥먹고나서도 그분은 커피마시며 노닥거리고 여성들만 설거지에 뒷정리하더라는 이야기를 주워 들은 적이 있다. 아는 목사님 한분은 하루종일 엄청난 양의 독서를 즐기시지만 정작 아내가 집을 비우면 청소나 설거지도 안 하고 아이들도 방치한채 계속 책만 보다가 식사도 배달음식만 드신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쯤되면 도대체 책을 통한 지식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노동과 공동체적 봉사를 '제거'해주면서까지 이들을 사회적 응석받이로 키워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책이 사람들이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대리충족시켜주지만 그 대리경험에만 빠져서 대리경험적 지식들만로 자신을 가득채운 형이상학적인 인간으로 '승화'하면 안 되겠다는 반성도 해본다.

'배워서 남주자'는 모토도 그렇다. 배워서 남주는 건 좋은데 그 지식의 전달, 혹은 '이식'이 마치 게임에 미쳐있는 초등학생들이 스스로 더 높은 레벨에 쉽게 올라가는 법을 공유하는 수준의 낮은 사회성, 실천성을 담보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전문용어나 수많은 저자 이름들 속에서 우리가 피부에 와닿게 배울 점을 찾지 못한다면 그건 한낱 아이큐 자랑에 불과한 것 아니겠는가.


*페이스북 노트글. ('11. 12. 6)

2011/12/06 21:34 2011/12/06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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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데이에 빼삐로 사갔더니 성하가 달려와서 혼자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폭풍흡입.

 어이가 없어서 아빠도 하나만 주라..했더니 성하기 여유롭게 나를 안심시키며

'아빠는 내가 다음에 사줄게. 걱정마, 걱정마'한다. 걱정이다, 정말.^^

 

 

'11. 11. 14

2011/11/14 23:42 2011/11/14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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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지 못하는 새'라는 핸디캡을 가진 주인공. 그는 매순간 날기를 꿈꾸며 파일럿 복장을 즐겨 입는다. 과학자의 면모를 풍기며 엄청난 발명품을 만들지만 다혈질과 경쟁심 등 감정 기복이 심한 캐릭터. 노래를 못하는 새, 멸종된 외톨이 공룡, 이상향을 가지 못하고 주저 앉은 이들. 그들을 돌보는 공동체. 예쁘지만 요리를 못하는 여성, 요리는 잘하지만 외모가 출중하지 못한 여성. 다분히 마이너한 코드들이 숨어 있는 대서사극.

 

 

'11. 11. 8

2011/11/08 23:41 2011/11/08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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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은 공적 글쓰기와 사적 글쓰기가 공존하는 공간.
사적공간을 침해당한다는 생각 때문에
예전에 싸이월드도 별로 이용하지 않았다. 왠지 불편했다.
어쨌든 페이스북은 대세가 됐고, 본격적으로 이 플랫폼에
정착한 후에 나는 사적/공적 글쓰기 공간 사이의 담이 허물어질때
... 생기는 상당히 흥미로운 모습들을 목격한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관찰이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언젠가 좀더 풀어내고 싶은 화두...


*페이스북 '11. 10/16
2011/10/16 21:33 2011/10/1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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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엔 '사람이 희망이다' 내지는 '사람이 어쩌고', '리얼 휴머니즘' 등등 연륜있는 이들이 내뱉는 '사람, 인간이 다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는 류의 말을 할 때면 대체로 흘려 들었다.

당연한 얘기 같기도 하고 나이들어 약해지니 지인을 찾는 거 아닌가 하는 얄팍한 냉소도 솔직히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때때로 진심으로 인생의 선배들이 어떤 맥락에서 '사람'을 부각시켰는지를 잠시 멈춰서서 돌아보게 된다.
 
내가 흘려들은,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인 '사람'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이 그들이 살면서 경험한 많은 환경과 그 안에서 무수히 따져본 우선순위들, 말들, 행동들, 삶들 속에서 부여잡은 뜨거운 그리고 유일한 실체임을. 요즘은 참 많이 공감하게 된다.


*페이스북 '11. 10/15.

2011/10/16 21:32 2011/10/16 2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