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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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최근에 우연한 기회로 김두식 교수님을 만났다. 만나는 내내 마치 옆에 창비 책다방 팟캐스트를 틀어놓은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익숙한 목소리에 흠칫흠칫 놀라곤 했다.ㅋㅋ 개인적으로 평하기로는... 소심한 듯 날카롭고 어눌한 듯 세련된 톤이었다.^^

#1.
사실 교수님은 기억을 못할 수도 있지만 김두식 교수님에 대한 복잡한 심경은 15년 정도를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김교수님은 기독 진보매체인 <복음과상황>의 간판 필진이었다. 지유철(당시에는 그렇게 불렸으므로) 전도사님, 유재희 간사님(우린 그렇게 불렀다) 등과 더불어 내가 가장 애정하는 연재글 필진 중 하나였다.

당시(1999년~2000년 즈음)는 한창 독자모임이 이뤄지고 몇몇 대형교회에서 담임목회직 세습반대 운동이 한창이었던 지라 교계 안에서... 안티적인 발언을 하는 이들이 복상 필진과 독자 사이에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김대중 정권 시절이니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담론들이 꽃을 피웠고 안티 조선 운동과 같은 내거티브 운동들이 한창이었다.(내 정서 상으로도 당시엔 누군가를 '까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분위기에서 김교수님은 그닥 어떤 운동성있는 발언이나 참여에 미온적이었기에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운 마음이 항상 있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김교수님은 연재글의 후반 즈음에 내거티브 운동 자체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본인은 내거티브 운동으로 세상을 바꾸리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차라리 그 정력이면 포지티브 운동에 힘을 싣는게 낫지 않겠냐는 류의 논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온라인 게시판에다 그런 김교수님의 반응에 실망했다는 류의 까칠한 글을 썼다. 헌데 김교수님이 직접 내 글에 자신의 솔직한 댓글을 달아주었다. 내 기억으로는... '그래, 맞다 나는 비겁한 사람이고 내거티브 운동 자체가 불편한 사람이다, 너무 기대하게 만들어 미안하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당시에 나는 그 실망감이 사라지지 않았고 이후로 그의 연재는 탐탁치 않은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재미있어 하며 계속 읽곤 했던 기억이 난다.-_-;;; 물론 우리가 알다시피 그 이후로 김교수님은 연재글을 모으고 다듬어서 책을 내기 시작했고 그의 글의 상당 부분은 양심적 병역거부, 동성애 문제 옹호, 법조계의 비리 지적 등 교계를 넘어서서 한국사회에서 독특한 정화지점을 만들어냈다. 뭐 지금은 굳이 내가 말할 것도 없겠지만. 결국 어느 순간 불편했던 과거의 기억을 그저 그렇게 지웠다. 아니 지웠다기 보단 너무 쉽게 잊혀져 버렸다.

#2.
오늘. 문득 페북을 보다가 한종호 목사님이 공유한 신영복 선생의 유투브 강의를 클릭했다. 한시간이 넘는 강의인데 중간에 멈출 수가 없었다. 세포 하나하나가 찌릿한 느낌으로 선생의 강의를 봤다. 사실 나는 오랜 시간 신영복 선생님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김두식 교수님에게 가졌던 내 불편한 마음과 어느 정도는 비슷한 것이었다. 하다못해 나는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의 추천사를 신영복 선생이 쓴 것도 어느 정도는 비판적이었다.

그것은 내 안에 이분법처럼 작동하던 사회참여의 어떤 기준을 준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대목이기도 했고, 보수세력에 대한 내거티브 운동, 혹은 그에 상응하는 발언, 그것도 아니면 그 운동에 힘을 실어주는 어떤 행동이 이루어졌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내 판단의 분수령이기도 했다.

사실 오늘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들으면서 다 표현하지 못할 것 같은 어떤 느낌, 생각이 안에서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사실 나는 항상 신영복 선생의 글과 그 분의 삶을 사랑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표현대로 신영복 선생이 자신의 위치에 계속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위로와 힘이 된다는 사실에 상당 부분 공감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내 잦은 불편함은, 어떤 의미에서 상당히 작위적이고 내 안에서 기인하지 않은 때로 나조차도 불편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기도 했다.

#3.
이 정서를 누군가가 공감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김두식 교수도, 신영복 선생도 내면 깊이 좋아했다. 내가 실망했다고 말하고 다니던 그 시절조차도 그랬다. 상당히 오래 주절거렸지만, 정작 그 말이 하고 싶었다.
2014/03/09 23:39 2014/03/09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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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해 샬롬을 선포하는 것
(기독교사상 8월호, "이 책을 말한다_김두식 <평화의 얼굴>")

/김용주


군대 이야기
 돌이켜 보면 20대 초반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군대 문제였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남자 어른들은 6.25 전쟁 당시 피난 생활의 기억들을 간간이 떠올리곤 하셨고 그에 이어 이어지는 것은 언제나 군대 이야기였다. 구타도 심했고 근무 여건도 좋지 않은데다가 기간도 길었던 당시의 군대 생활이 그분들에게는 힘든 시기이기도 했겠지만 추억거리, 혹은 자랑거리들이 많은 시기이기도 했다. 대체로 누가 더 힘든 군생활을 했느냐가 대화의 중심이었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담을 듣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또한 그분들 이야기 속에서의 군대는 소년이 남자로 거듭나는 통과의례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따라서 누구든지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입대를 꺼려하는 조짐이 보이면 ‘겁쟁이’, ‘계집애’, ‘엄마 치맛자락이나 잡고 다니는 애송이’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나이야 스물이 되었지만 아직 세상 물정 모르던 그 시절의 나는 군대라는 ‘진정한 남자들의 세계’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다가오곤 했다.

 시간이 흘러 군대라는 ‘숙제’를 마치고 돌아온 캠퍼스에서 친척들 모임에서 큰 아버지나 작은 아버지에게 들었던 영웅담을 다시금 들을 수 있었다. 술자리에서 복학생들의 대화는 30분이 지나면 대부분 군대 이야기로 모아졌고 거기에서는 또 여러 명의 영웅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물론 반대로 피해자들의 하소연이 이어지기도 했다. 군대 생활을 통해 다친 몸으로 돌아온 친구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전투 체육이나 기타 훈련, 혹은 근무 중에 다친 친구들 중에는 인대가 끊어졌던 경우가 가장 흔했고 팔이나 다리를 잘 못쓰거나 시신경을 다쳐서 무리한 운동을 못하게 된 경우도 더러 있었다. 공개되진 않았지만 통계에 의하면 한 해에 군대에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는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나는 때때로 군대라는 조직을 통해 얻은 힘든 경험들은 무의식 중에 각인되어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박노자 교수의 지적대로 한국 사회에서 대다수의 남성들은 군대라는 조직을 통해 사회 생활, 직장 생활, 대인 관계에서의 권력적 요소를 습득하게 되고 그러한 조직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을 불편해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회사에서는 “그 친구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래!”, “군대 생활 편하게 해서 회사가 놀이터로 보여?”, “좀 굴러야 정신을 차리겠구먼!”과 같은 이야기들이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다루다
 최근에 김두식 교수는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을 받은 <헌법의 풍경>이후로 3년 만에 신간 <평화의 얼굴>을 출간했다. 이 책은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중심으로 다룬 것으로, 2002년에 기독매체 뉴스앤조이에서 출판한 <칼을 쳐서 보습을>을 전면 수정한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이 책을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김두식 교수의 접근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 나 또한 처음 ‘양심적 병역거부’, ‘집총거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평화를 사랑하거든. 그래도 군대는 가야지. 사실 무서워서 그러는 거 아냐?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 못하니까 자꾸 구실을 찾는 거겠지. 차라리 당당히 갔다 와서나 그런 이야기를 하시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너무 철이 없었는가. 사실 그랬다. 하지만 지금도 병역 문제와 관련된 모든 담론들은 이러한 무의식적 반감의 두꺼운 층에 막혀 전쟁이나 평화주의적 사고에 대한 논리적 논의 자체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병역거부의 대명사로 통하는 ‘여호와의 증인’은 길거리에서 갑자기 접근해서 <파수대>라는 이상한 전단지를 나눠주고, 가정 집까지 찾아와서는 자꾸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기괴한 이들이며 그들이 취하는 집총거부는 동일하게 ‘기괴한 행동’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솜털이 보송보송했던 금쪽 같은 아들을 눈물 쏟으며 군대로 떠나 보냈던 대다수의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들을 그 길에서 피신시킨 이회창 대선후보에게 등을 돌렸다. 아버지들은 사회조직의 권위적, 상명하복적 규율을 처음으로 전수받은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겁쟁이의 하소연 정도로 치부한다. 국민가수 유승준에게 환호했던 그의 팬들은 그가 입대하겠다던 말을 번복했다는 이유로 이제는 “스티브 유, 양키 고 홈!”이라며 비아냥거린다. 한국의 남학생들은 군가산점 때문에 공무원 시험에 불리하다고 하소연을 쓴 여대생의 인터넷 게시판 글에 ‘미친년’ 운운하며 흥분하여 몇 백 개의 댓글을 달고 있다. 이렇듯 군대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너, 군대 갔다 왔어, 안 갔다 왔어?’의 문제로 환원되며, 군대를 피하려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만큼은 다수의 사람들이 지나칠 정도의 심정적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김두식 교수는 1장에서 ‘나의 양심 재판 체험기’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경험을 서술한다. 자신이 만난 여호와 증인들이 집총거부로 군사재판을 받았던 이야기로 입을 뗀다. 책의 문체도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 형식으로 마치 친절한 상담자가 내 앞에서 차분하게 설명해주는 느낌이 든다. 김 교수가 만난 병역 거부자들은 운동가 정신으로 무장된 남성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아직 세계관조차 정립되지 않은 듯한 여린 소년에 가까웠고 그가 여호와 증인이라는 종교적 배경에 의해 선택한 집총거부로 인해, 이후 자신의 남은 삶에 받게 된 사회적 처벌의 무거움을 생생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 교수가 만난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생길 법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다시금 그들을 향한 연민을 억누른다. ‘그럼 군복무를 수행한 나는 뭐 전쟁광인가. 나는 안 불쌍한가. 내가 허비한 2년의 힘들었던 시간들도 쉽지 않았어. 결국 군대 안 가려고 자신이 불행을 자초한거야.’ 자연히 이런 생각들이 드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연이어 양심적 병역겨부를 반대하는 이들은 ‘비양심적 병역이행자’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례들을 이야기한다.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란 용어의 일괄적 사용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며 이에 대해서는 병역자체의 거부와 집총 거부를 나눌 것을 지적하며, 전자에 대해서는 대체 복무를 시키는 방법이 있고 후자에 대해서는 비전투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음도 설명한다. 여기에 또 다른 질문이 가세한다. 군사재판 때에도 자주 물어보았다고 하는 이 질문은 ‘그럼 만약 네 여동생을 누가 강간하고 죽이려 하면 어떡할래?’이다. 이쯤 되면 다시 독자의 내면은 원상 복귀되며 오히려 그들에 대한 반발심만 커진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이상(理想)이고 현실에서는 악한 사람들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다급하고 필요한 폭력이 있다는 생각이 다시금 우리를 괴롭힌다. 이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3장에서 존 하워드 요더의 글을 인용하여 그 질문의 부당성을 역설하고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는 여호와 증인과 같은 이단들만의 문제라는 생각에 대해서도 과거 정통으로 분류되는 기독교 역사에서 드러난 사례들을 통해 주의를 환기시키며(4장), 무엇보다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평화주의자였고 전쟁을 반대했음을 지적한다(5장). 그렇다면 전쟁은 모두 나쁘기만 하며 정당한 전쟁은 없는지 궁금해진다. 이에 대해서는 ‘정당한 전쟁론’이라는 용어가 평화주의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으로 ‘정당한 전쟁’은 평화주의의 친구에 가까우며 오히려 문제는 정당한 전쟁을 가장한 ‘짝퉁’ 정당한 전쟁론에 있음을 보여준다(6장). 책의 후반은 우리 나라의 특수성에 기인한 문제들을 주로 다루는데 그 중 하나가 전쟁 중인 나라에서는 징집제도를 불가피하게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본서는 전쟁 중에 있었던 혹은 지금도 대치중인 다른 나라들의 사례들을 들어 반박하며(8장), 그런 상황에서도 전쟁을 거부했던 이들의 역사를 돌아본다(9장).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내에서 이뤄진 지독한 병역거부 탄압의 사례들을 소개하고(10장), 그에 대한 대안으로 대체복무제도를 언급한다(11장). 특히 11장에서는 대체복무제도의 현주소와 그 내용에 대해 소개하고 각 안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형평성에 맞게 제도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설명한다.


진정한 변화를 위한 온정적 글쓰기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그랬듯 ‘해돌이의 모험’ 같은 반공 만화나 로보트 만화를 보고 자란 내게, 그리고 장난감 총을 들고 밖에 나가 아이들과 총 싸움을 했던 내게, 평화라는 단어는 피를 보고 나서야 ‘우리’에게 돌아오는 상급과 같은 것이었다. 남자다워지려고 배웠던 태권도는 자신과 이웃을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대련이라는 방법으로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즐거움을 선사했고, 회심한 이후에도 교회 안에서 설교를 통해 구약의 전쟁들을 예화로 들으며 이스라엘 민족들이 전쟁에서 승리할 때면 속으로 크게 환호하곤 했다. 샬롬과 평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기독교를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 20대 중반의 일이었고 기독매체를 통해 접했던 존 하워드 요더의 <예수의 정치학>이나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와 같은 책들의 내용을 통해 생각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한국의 싸나이’로서 내면의 중심에는 병역거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마치 주변에서 ‘너 자상하고 친절한 척 하지만 사실은 겁쟁이지? 전쟁 나면 도망이나 갈 녀석!’라고 비웃는 것 같았다. 이런 내면의 문제를 안고 있던 내게 김 교수의 책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군대라는 문제로 여전히 뒤틀려 있던 내 내면의 친절한 상담가가 되어 주었다. 책을 읽는 동안 속으로 가끔은 난감한 질문을 하기도 하고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는 내 반응에도 불구하고 공감한다는 태도와 말투로, 그리고 지루하리만치 방대한 자료와 사례들을 차분히 풀어내는 그의 설명에 이제는 나도 충분히 ‘설득’되었고 그 찜찜한 심기를 털어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정당성을 입증하려 했던 많은 전쟁 사례들이 지금도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을 맴돈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책에서 김두식 교수가 지적하였듯이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 시작된 당위적 전쟁들조차도 또 다시 많은 수의 피해자들을 만들어 냈고 그들의 피 흘린 복수가 세계 역사의 큰 흐름을 이루어왔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칼을 뽑아 다른 사람에게 휘두르는 순간 평화는 깨어지고, 폭력은 도리어 폭력을 낳게 되는 것이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예수님은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마26:52)’고 말씀하셨다. 세상은 말한다. 내 가정, 내 나라, 내 종교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전쟁과 피흘림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에 항거하여 반전 행동을 실천했던 많은 이들의 모습을 본다. 이 책은 그러한 이들이 묵묵히 수행했던 길, 즉 세상에 대해 샬롬을 선포하는 것, 전쟁에 나서는 것을 반대하는 부단한 실천만이 복수로 점철되어 온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다 준다.

 지식인들 혹은 글 쓰는 이들 가운데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스타일은 급진적이고 도발적이지만 찬찬히 읽고 나면 알맹이가 없거나 진부한 경우가 있고, 반대로 차분하고 따뜻하여 다소 온건한 느낌을 문체로 썼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신선하고 개혁적이며 진보적인 경우가 있다. 사실 나는 전자의 글은 말할 나위 없거니와 후자의 글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 왔다. 때론 몸을 사리는 것 같기도 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대개 끝을 보지 않아서였다. 김두식 교수의 글은 물론 후자에 속한다. 그의 모든 글에 대해서는 아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군대’ 문제에 대해 이 책에서 보여준 그의 스타일을 나는 기꺼이 옹호하고 싶다. 그렇다. 그의 스타일이 옳다. (끝)

2007/08/05 18:29 2007/08/05 1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