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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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70-80년대를 살면서 시대의 사건들을 크게 느끼지 못했을런지도 모른다. 여염집 며느리 마냥 장님 3년,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을 보내고 나니, 국민투표로 대통령도 뽑고 경제도 어느 정도 발전하여 거리에는 헐리우드 영화에서만 보던 프랜차이즈들이 즐비한데다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 분야와 영화, 미디어들, IT와 같은 첨단 기술들이 발전하면서 그것을 따라잡고 향유하는 데에도 정신과 시간, 물질을 투자하기 바빴을테니 말이다.

인문학 내지 사회학을 하는 사람들의 어설픈 흉내를 내지 않더라도 우리는 흔히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민감하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가까운 집에서 이혼을 했다거나 아이가 죽었다거나, 부모님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이사를 갔던 일들에 대한 유년기의 기억들을 되내어 보면 소문만 무성했지 정작 그 사람들의 손을 맞잡거나 이사를 도와주거나 어려웠던 부분들을 함께 짊어지기 보단 쉽게 이야기하고 가볍게 넘기던 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시작은 어떤 의미에서 나를 심하게 짜증나게 만들었다. 3.15 부정선거에 주인공 성한모(송강호역)는 그 동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야산에 투표함을 묻거나 투표용지를 먹어버리는 일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믿는 이발사였다. 가까이 일하는 이발사 보조(문소리역)를 강간하여 동거를 시작하는 구도도 그러했다. 코믹한 설정이지만 내심 그게 그렇게 우습게 치부할 성질의 일들이냐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1960년 4월 19일에 있었던 부정선거 철회 집회의 스케치였다. 사사오입을 억지로 갖다 붙여 임신한 아이를 낳게 되는 당일에 군인들은 무고한 시민들에게 총질을 해댔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쳤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성낙안이라는 아이의 코믹한 출산의 배경으로만 지나치는 개그씬에 다름아닌 장면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운 반면 영화를 보는 내내 조금씩 집중할 수 있었던 대목이 있었다면 그런 코믹한 장면들 뒤로 무덤덤하게 보도되는 왜곡된 라디오 뉴스 때문이었다. '사실은 이러했는데 사람들은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었다'는 느낌을 주는.. 너무나 담담한 보도였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영화가 <개그 콘서트> 분위기에서 <송환>의 분위기로 전환하는 대목은 성한모의 아들 성낙안이 전기고문을 받고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면서부터다. 사실 암울한 시대의 여러 사건들이 효자동에 사는 이발사에게는 별 생각없이 웃을 수 있는 일상이었지만, 옆집 사람들이 잡혀가게 되고 그들이 병신이 되어 돌아오거나 감옥으로 가게 될 때에는 그러한 거리감이 조금씩 좁혀지게 된다. 결국 자신의 아들이 돌아오지 않게 되자 영화는 코미디의 색을 잃는다. 잿빛 하늘처럼 어두워진 플롯은 결국 아들이 영원히 주저앉은 채로 일어서지 못하는 대목에서 객관성도.. 무덤덤함도 잃어버린채 울분의 정서가 폭발하고 만다. 일개 이발사에 불과한 성한모가 가위로 자신의 머리를 마구 자르며 길바닥에 주저앉아 나라를 욕하는 장면에서 이제 더이상 이 영화는 세상을 타자화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인간은 참으로 간사하다. 특정 지역의 사람들이 주검이 되고 병신이 되어 돌아온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은폐하기도 하고 흥미로워하기도 하고 대부분이 그렇듯이 무관심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 병신이 되거나 주검이 되어 돌아왔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이미 자신의 역사이며 자신의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탓이다. 영화는 무엇을 말해주려고 했을까. 이러한 인간들의 간사함과 그로인해 겪은 사회의 비참함을 피부로 느끼게 해 주려고 일부러 처음에는 바보처럼 웃어 재끼도록 설정을 한 건 아닐까. 아무 생각없이 웃고있던 많은 사람들이 종국에는 간사하고 이기적인 자신을 쳐다보며 느끼게 될 당혹감을 위해.. 미리 준비해 둔 괴롭고 아프지만, 귀하디 귀한 선물은 아니었을까..

2008/12/27 19:24 2008/12/27 1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