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을 쓰려던 <한국교회와 여성>은 서평을 쓰기에는 좀 거시기한 구석이 있어서 간을 보는 중.
일단 3개의 발제문 중 이정숙 교수의 "우리 딸들이 즐겁게 예배하기 위해"를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그녀가 언급한 '젠더타협' 혹은 '젠더협상' 이론에는 별로 동의가 되지 않았지만 아래 내용들은 유익했고 공감할 부분이 많았다. 여성신학도 갈 길이 멀구나...
"스탠리 그렌츠는 보수적 기독교에서 교회 내 여성문제에 대해 두 가지 그룹으로 나뉘어 양극화 현상을 보인다고 전한다. 즉 사역의 모든 면들이 여성에게도 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평등주의자들과, 여성은 오직 도와주는 역할로서만 합당하게 공헌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보완주의자들이다. 보완주의자들을 1987년 성경적 남성과 여성을 위한 협의회를 결성하고 1988년에 ...덴버성명서를 작성했다. 이들 그룹과 관련된 신학자들로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제임스 패커, 웨인 그루뎀, 페이지 페터슨, 로버트 갓프리, 존 파이퍼 등이 있다.
여성의 교회 사역에 관한, 또 부부관계에 관한 이들의 입장은 성명서의 다음 부분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아내들은 남편의 권위에 저항하지 말고 남편의 리더십에 자발적으로 기쁘게 순종해야 한다."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은 남성과 여성에게 동일한 축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다스리고 가르치는 어떤 일들은 남성에게 제한되어 있다." (113~114쪽)
교회 여성들조차 여성신학 관련 연구가 너무 학자연하여 공감하기 어려운 데다가 과격하고 또 모든 여성들을 대변하는 신학이라기보다는 일부 진보적이거나 상아탑 안의 여성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은 여성 신학자들의 메시지가 신학적 색깔론에 가려져 여성들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면서 충분한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109쪽)
2000년 이후 지식층이며 진보적 인사를 자칭하는 남성들 중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는 학문적으로 지지하는 듯 했지만 구체적인 헌신없는 관심으로 끝났다. 반면 복음주의 남성들은 여성주의를 멸시하거나 은근히 두려워하기도 했다. 마치 몇몇 여성주의자들이 온 세상을 타락시키고 전복시킬지 모른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이들도 막상 자신의 딸들이 사회적 지위를 갖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했고 예외적 여성이라고 평가받기 원했다. 교회 여성들의 경우는 진보나 보수를 떠나 비교적 유사해 보인다. (111쪽)
여성들은 교회 사역에서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양성 평등적 사고가 부족해 뎡등하지 못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다. 설문조사에 응한 절반의 여성들(51.0%)은 교회에서 주로 하는 일이 '청소와 음식 만들기'라고 하며, '교사, 예배 기도, 설교' 등의 항목에서는 모두 합해 1.7%의 여성들만이 참여한다고 답했다. 이는 교회 내에서 여성의 위치가 결코 평등한 차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문제가 문제로서 인식되지 않으니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설문조사에서 교회 여성들의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차이를 인상깊게 보았다.(129쪽)
신대원을 졸업한 H는 남편의 이해를 얻지 못해 예전처럼 평신도로서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H의 경우 남편은 오히려 교회에서 다양한 사역을 하는데 비해 신학을 공부한 자신은 제한된 사역을 하고 있다고 했따. 동기동창인 남편이 평소 자신을 은근히 경쟁상대로 생각해 질투하며 불편해 하는 것을 감안해, 남편이 좀더 신앙적으로 성숙해져 자신의 사역을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중략) 그런데 H의 주저함이 남편의 머리됨을 인정해서인지 가정의 평화를 위함인지는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았다.(137쪽)"
(<한국 교회와 여성> 중 2장 '우리의 딸들이 즐겁게 예배하기 위해', 이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