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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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육아일기
성하가 어린이집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막 먹으려던 찰나.
...
나: 성하야 초콜릿 어디서 났어?
성하: OO(여자아이)가 줬어.
나: 아빠는 안 줘?
성하: OO가 나 혼자서만 먹으라고 했어.
나: 아... 그렇구나.
성하: (한큐에 냠냠)
나: 성하는 좋겠다....
성하: (냠냠) 왜?
나: 아빠는 어릴 때 초콜릿 받은 적 없거든.
성하: ...(계속 냠냠)
...
뭔가... 사소한 일로 비참해지는 이 느낌은 뭐지...
2014/03/09 00:23 2014/03/09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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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모임 활동/IVF팟캐스트

아는 분들은 알고 모르는 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작년 4월부터 동서울IVF 학사회 임원들과 함께
IVF 졸업생들을 위한 팟캐스트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부담없이 아이폰 하나만을 가지고 방송을 시작해보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서울IVF 학사회 임원들. 이 분들입니다...ㅋㅋ>

컨셉은 기독교계의 거대담론이나 교회를 대표하는
방송이 아닌, 철처히 로컬방송 IVF, 그것도 동서울IVF에 국한된
방송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지역방송이긴 하지만 학부를 졸업한 또래 졸업생들의
고민과 대안들을 모색하는, 그렇지만 정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그저 수다 수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송을.

하지만 너무 어수선하면 안 되니 가이드가 될만한 책을 정해서
그 책을 중심으로 잡담이나 나눠보자는 취지였지요.
그렇게 동서울IVF 팟캐스트 <북잡담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총 10회의 방송을 녹음하고 팟캐스트로 공개했는데요.

간단히 하나씩 살펴볼까요.


1회.
'이성교제' 이야기 (13년 3월 16일)
추천도서: 하버드 사랑학 수업

처음이라 좀 어색하기도 했고 파일럿 방송으로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감도 있었지만 무사히 녹음을 마치고 당당히
IVF On Campus 서버에 올라가게 되었지요.
녹음 당일에 1층에서는 요즘 가장 잘나가시는 김지윤 소장님의
연애 강의 공개녹화가 진행되어서 6층에서 아이폰으로 녹음을
하던 우리 모습이 왠지... 비교되던 느낌.ㅠㅠ


2회.
'캠퍼스 추억' 이야기 (13년 4월 16일)
추천도서: 행복의 조건

게스트: 조종현 학사 외 1인
이제 본격적으로 학부시절의 추억, 흑역사, 뒷담화를 털어놓는
방송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졸업생이 되고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수준의 '썰'을 푸는
여러 학사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아마도 2회가 올라갔을 때는 간사님들, 좀 긴장하셨을 듯.^^
이 방송으로 조종현 학사가 이름을 날리는 계기가 되기도.(아닌가)


3회.
'소개팅' 이야기 (13년 5월 14일)
추천도서: 감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게스트: 닉네임 구름님.
졸업생들의 관심사인 연애, 특별히 '소개팅' 경험담 이야기로
꽃을 피워봤습니다.
소개팅 에티켓이나 진상 사례, 개인 경험등을 편하게 나누는
묘미가 있었구요, 호감 가는 이성의 행동들도 살펴보았습니다.


4회.
'일상생활사역연구소'와 함께 (13년 6월 17일)
추천도서: 일삶구원

게스트: 지성근, 김종수, 정한신, 홍정환
동서울학사회와 일상생활사역연구소 공동주최로 세미나
<일상 축제> 행사와 더불어 기획한 팟캐스트 방송이었습니다.
강의 외에 좀더 생생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준비했고
홍정환 간사님의 유쾌한 입담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잘 알지 못했던 일상생활사역연구소의 내실있는 컨텐츠들의
소개와 더불어 네분 연구원들의 내공을 경험한 시간이었지요.
책은 도울 뿐.^^


5회.
'직장 생활' 이야기 (13년 7월 19일/24일)
추천도서: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

졸업한 학사들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
그 일상의 어려움과 처세, 경험담들을 들어봤습니다.
특히 직장생활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 내부의 어떤
암묵적인 규율 같은 것들을 짚어보고 그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지혜로운가...를 두서없이 나눠봤구요.
사실 당일에 좀 우왕좌왕...ㅠㅠ 게다가 이번 녹음 때는
주말이 아닌 주중 녹음이라 다들 컨디션 난조를 보이면서
무려 3시간이 넘는 '썰'을 풀고는 2회에 걸쳐 죽음의 편집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6회~10회 에피소드 계속...)


*동서울IVF학사회 팟캐스트 <북잡담회>
팟빵: http://www.podbbang.com/ch/2057
아이튠스: https://itunes.apple.com/kr/podcast/id503496472

2014/03/06 23:37 2014/03/06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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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기고글 모음/제이언니의 IT이야기
한때 음반시장은 LP와 CD가 공존했던 시기가 있었다. 음원의 수명이나 음질로 볼 때 LP가 결코 유리한 조건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CD라는 새로운 방식 자체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만만치 않았다. 아날로그 사운드를 0과 1의 조합으로 이뤄진 디지털 신호로 변환한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기도 했고 청음을 했을 때 잡음이 완전히 제거된 CD의 소리는 뭐랄까 비현실적인 묘한 어색함에 알 수 없는 불쾌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물론 그 어색함은 몇 년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경쟁하는 2개의 기술이 시장에 나왔을 때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은 뭘까. 아마도 그것은 그 기술이 '표준'이 되어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도태되어 사라질 운명에 처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본다. 그런 연유로 중학교 시절, 나는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모아서 LP를 살 것인가, CD를 살 것인가를 놓고 레코드 가게 앞에서 한 시간 넘게 고민에 빠지곤 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이전인 70, 80년대에는 비디오 테입의 두가지 방식, 즉 소니의 베타맥스와 JVC사의 VHS(Video Home System) 방식의 경쟁이 있었다. 두 회사의 긴 과거사를 되내일 필요는 없겠지만 그 시절 가지고 있던 베타맥스 방식의 테입 상당수가 쓰레기로 둔갑했던 기억이 역력한 나로서는 이후 CD나 기타 새 기술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토마스 쿤은 자신의 유명한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정상과학이 다른 이론과 충돌하면서 새로운 이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용어로 설명한 바 있다. 이 때 두 이론 간에는 절대 비교를 할 수 있는 척도가 존재하지 않는데 이를 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라고 부른다.

흥미롭게도 쿤의 이러한 패러다임 이론이라거나 통약불가능성은 과학 이론보다는 현대 IT 기술에 대입해볼 때 더욱 적절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쉽게 말해 특정 기술 간의 장단점이 명확하더라도 그 장단점이 정량적으로 비교되지 않을 뿐더러 나름의 방식을 유지하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한동안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기술의 대립이 극명한 부분 중 하나는 '손글씨'의 디지털화 방식이다. 물론 컴퓨터 환경에서 정교한 펜작업의 디지털화를 향한 열망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전통적으로는 스캐너를 사용하거나 펜마우스나 태블릿(지금은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PC를 의미하는 용어가 되었지만)을 사용했지만 대중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다시금 터치스크린에 직접 필기를 하려는 이들이 많아졌고 이에 따른 시장의 대응도 활발하다.

액정 스크린에 직접 필기하는 터치펜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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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날로그 노트를 디지털로 변환시키려는 제품들. 사진은 Livescribe의 에코펜.
ⓒ 김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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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흐름이 있는데, 먼저는 액정 스크린에 직접 필기하는 터치펜 방식이 그것이다. 가장 대중적인 3M의 정전식 터치펜에서부터 미세한 터치와 압력조절이 가능한 Adonit사의 JOT 시리즈까지 액정에서 정밀한 터치를 향한 기술의 진보가 활발하다. 물론 삼성은 전용 S펜을 통해 디지타이저 분야(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의 화면 위에 스타일러스 펜으로 필기하듯이 터치를 인식하는 기술)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편이다.

다른 흐름은 - 솔직히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 아날로그 노트에 쓴 글씨를 디지털화 하는 방식이다. 이 분야에 원천기술은 아무래도 스웨덴 기업인 ANOTO(http://www.anoto.com)가 가지고 있다. ANOTO는 마이크로 카메라가 달린 펜과 특수 패턴 노트를 이용하여 자신의 노트를 pdf나 이미지 파일로 저장해주는 방식을 개발했다. 이것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술로 보인다. 즉, 아날로그 방식의 필기감을 유지하면서도 디지털 기기로의 변환도 용이하게 만들어 주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여전히 과도기적 기술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휴대용 스캐너의 기능 대비 더 진보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노트의 글씨를 인식하는 방식은 스마트폰의 카메라나 휴대용 스캐너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ANOTO의 제품들은 그렇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도리어 ANOTO의 기술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자사 제품이 아닌 LIVESCRIBE의 스마트펜 시리즈였는데 이 회사의 스마트펜은 2008년부터 2년동안 40만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ANOTO의 기존 제품과 이 스마트펜의 가장 큰 차이는 녹음 기능이었는데 필기를 하는 동안 실시간으로 녹음이 가능했다.

이 간단한 아이디어는 이 필기도구를 엄청난 학습도구, 전문가들(법조인, 기자들)의 노트 도구로 변신시켰고 그 결과 단순한 기능의 추가를 넘어 하나의 혁신이 되었다. 제품 사용자의 30%는 대학생이었고 강의 녹취와 노트 내용 중 더불어 필요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재생할 수 있는 기능은 학습효과에 큰 도움을 주었다.

아날로그 노트와 디지털 노트 기업 사이의 합작 기술들도 눈에 띈다. 아날로그 노트업체로 유명한 몰스킨은 에버노트와 합작하여 '몰스킨 에버노트' 제품을 내놓았다. 이 노트는 아날로그로 필기한 후 태블릿PC에 설치된 에버노트 어플에 탑재된 카메라를 통해 노트 분류가 가능하도록 돕는다.

에버노트는 3M과 합작하여 포스트잇을 디지털 노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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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잇을 색깔별로 태블릿에 옮겨주는 에버노트 기능.
ⓒ 김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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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해 기능적인 유용함 보다는 브랜드 가치를 통해 두 독립된 기업의 제품들을 선호하는 소비자를 위한 목적이 강한 느낌이다. 최근 에버노트는 3M과 합작하여 포스트잇을 디지털 노트로 만들어주는 기능을 추가했다. 4가지 색깔에 따라 자동으로 노트들을 특정 노트북으로 분류해주는 이 기능은 포스트잇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충분히 발휘하면서도 디지털 노트(에버노트)에서 이를 충분히 구현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 모든 IT기술들은 과도기적으로 보인다. 태블릿에 직접 쓰는 터치펜 방식은 정밀한 필기감의 한계가 명확하다. 특히 필기감을 위해 특정 브랜드의 종이노트나 만년필을 선호하는 소비자에게 터치펜 방식이 극복해야 할 기술적 문제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 반대로 아날로그 노트를 디지털화 하는 방식 또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ANOTO의 스마트펜은 기본적으로 두껍고 자사의 특수패턴 노트만 사용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에버노트의 아날로그 타입 임베디드 방식 제품들, 이를테면 몰스킨 노트나 포스트잇은 카메라를 통한 후처리 방식으로 딱히 실용적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나는 아날로그 임베디드 방식의 제품들을, 향수(鄕愁)에 의존한 과도기 제품으로 보는 입장이다. 그 말은 시장의 선도 기술이 되기는 여전히 어려울 것 같다는 의미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점은 나를 포함한 많은 소비자들이 실용성을 넘어선 향수에 자극을 받고 그것에 반응을 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옛날도시락'이 지금 식당의 메뉴로 오르내리듯 우리의 정서를 자극하는 아날로그적인 방식들이 녹아든 제품들은 나름의 매력이 있다.

쿤의 지적대로 두 방식의 장단점을 아무리 전문가들이 비교한들 그것이 정량화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현대 IT기술은 과거처럼 특정 방식이 시장에서 쉽게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최근 다시 히트를 친 포토 프린터가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살리는 상상력들이 IT기기 안에 더 많이 녹아 들기를 기대해본다. 설령 그 방식이 최적이 아니더라도, 조금 불편하더라도 소비자는 충분히 그것을 감내할 정서적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2014/02/25 23:07 2014/02/25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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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블릿이 처음 나온 시점부터 이 기기의 잠재적인 활용도에 열광하게 되었고 그동안 그로 인한 금전 지출이 만만치 않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태블릿을 샀는데 조금 지나니 더 나은 제품이 등장한다거나, 주변기기를 샀는데 기대보다 활용도가 떨어져서 집구석에 처박아뒀다가 아내에게 타박을 받는 경우.

오늘은 그런 고민들을 잘 다듬어서 나름의 가이드가 된 내용을 나누어 볼까 한다. 누구나가 그랬겠지만 태블릿을 고를 때 가장 고민은 제품의 가격과 성능이다. 줄여서 흔히들 '가성비'가 우수하다는 제품에 구매수요가 집중되기 마련이다.

사실 가격은 저렴하면 그만이지만(게다가 점점 가격대는 낮아지는 추세다) 성능은 특정 제품이 좋다고 말할 때 개개인의 비교 인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내 주변 공대 출신의 직장인들은 하드웨어 사양을 주로 비교하는 편이지만 다수의 일반인들은 CPU나 해상도 정도를 확인하고는 디자인이나 사이즈를 주로 보는 듯하다.

태블릿 사이즈가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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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패드 에어(왼쪽)와 2010년 첫 선을 보인 1세대 아이패드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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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는 무엇보다 사이즈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도 한 번 사이즈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지만(관련 기사 : 7인치 vs. 10인치) 태블릿 사이즈는 좀 더 크게 보냐 작게 보냐의 차이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7인치는 아마존 킨들로 대변되는 '전자책 단말기'의 경쟁품으로 그 포지셔닝을 맞춘 것이다. 따라서 7인치 태블릿은 주로 전자책을 보거나 간단한 웹검색 등을 위해 개발되었고 무게도 전자책 단말기와 동일대인 200g 수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반면 10인치로 대변되는 아이패드, 갤럭시탭10.1 등은 넷북, 컴팩트 노트북과 경쟁을 위한 제품으로 단순히 검색이나 전자책 사용을 위한 읽기 도구(Reading Tool)가 아니라 문서작성, 프리젠테이션 등 오피스 프로그램이나 그래픽 작업도 고려한 쓰기 도구(Writing Tool)에 해당한다.

따라서 무게가 조금 나가더라도 백팩에 들어갈 정도의 사이즈에 노트북보다 가벼우면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10인치 태블릿은 600g 수준에서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사이즈가 중요한 이유는 패션코드 즉, 여성의 핸드백에 들어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따로 파우치나 백팩을 준비해야 하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백팩을 어깨에 매는 순간 여성은 옷을 맞춰입기가 쉽지 않다), 또 한편으로는 무게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마존에서 개발한 킨들이 전자책 단말기의 대명사가 된 건, 여성이나 노약자들도 부담없이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200g의 '감성적' 무게를 만족했기 때문이다(대체로 300g이 넘으면 무게감이 피부로 느껴진다). 따라서 태블릿 업체들은 7인치와 10인치 제품을 각각 선호하는 구매자를 비교적 명확히 구분짓곤 했다.

급변하는 태블릿 시장

사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이런 기준으로 제품을 구입하고 주변에도 권할 수 있었는데 그 사이 제품군이 더욱 다양해지고 기기 자체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삼성의 경우 갤럭시탭이 이미 7/7.7/8.9/10.1인치의 라인업을 가지게 되었고 갤럭시노트는 8인치와 12.1인치가 추가됐다. 넥서스는 7인치와 10인치를 운영했지만 8인치를 출시한다고 밝히면서 7.9인치의 아이패드 미니와 사이즈가 겹치게 됐다. 킨들 파이어도 7인치와 8.9인치 2개의 사양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모토로라를 인수한 레노버도 아이디어패드 7/10인치 및 8인치인 MIIX2와 태블릿 요가를 추가했다.

따지고 보면, 그간 7인치를 순수하게 읽기 도구로만 쓰기에는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었기에 8인치 사양이 생겨나게 됐고 또 10인치를 노트북처럼 쓰려는 수요가 12인치로의 확장을 욕망하는 셈이다.

그것뿐인가. 태블릿과는 무관해 보였던 스마트폰도 점점 커지는 추세라 스티브 잡스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 4인치 화면은 이제는 답답하게 느껴진다(결국 아이폰5는 세로 길이를 추가로 늘렸다).

이렇게 되면 5.7인치 스마트폰 사용자가 굳이 7인치 태블릿을 구입할 이유가 없게 되므로 태블릿의 적정 사이즈도 8인치 이상이 되는 게 합리적이다. 게다가 아이패드는 신제품 '에어'를 출시하면서 무게를 470g대로 줄였고, 킨들도 '공기(Air)보다 가볍다'는 광고를 통해 374g의 무게를 부각시키는 등 과거엔 작은 사이즈 제품이 가졌던 무게의 매력이 점점 무색해지고 있다.

전자책 단말기, 태블릿, 그리고 노트북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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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블릿에 무선키보드는 분리형을 권한다. 키보드 자체의 무게도 중요하다.
ⓒ 김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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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태블릿 시장이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건,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이 기기가 전자책 단말기와 노트북을 대체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스티브 잡스가 처음 아이패드를 세상에 소개했을 때 그는 정확히 전자책 단말기와 넷북을 경쟁 상대로 꼽았다).

여전히 전자책 단말기가 시장에 유통되고 있지만 나는 곧 그것들이 사라지거나,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점차 시장 점유율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태블릿의 기능이 더 다양하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전자책 단말기를 선호하는 주요 이유로 책만 볼 수 있는 단순한 기능을 꼽는 사용자들이 많다.

나는 태블릿의 해상도가 높아지고 무게가 같아진 지금, 무엇보다 물리적인 책의 상당수가 컬러책이라는 사실 때문에 전자책 단말기를 비관적으로 본다. 점점 더 컬러책을 흑백 기기로 보고 싶어하지 않는 유저들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북미의 전자책 선도업체인 아마존이 이윤을 크게 보지 않으면서도 킨들 파이어라는 태블릿을 개발해서 전자책 사용자에게 안겨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그럼 노트북은? 아마도 OS의 편리함 때문에 노트북 시장은 지속될 것 같다. 단지 10인치 태블릿 시장과 겹치는 영역, 즉 넷북으로 대변되는 저가 10인치 사양들은 점점 규모가 줄어들지 않을까.

그리고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태블릿과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동해서 쓰는 사용자들이 점점 늘어가는 추세에 걸맞게 고가의 태블릿 케이스 일체형 무선키보드를 장만하는 이들을 종종 본다. 대체로 문서작업이 잦은 직업을 가진 분들이 필요를 가장한 '지름신'에 낚이곤 하는데 나는 케이스 일체형 키보드에 부정적이다.

굳이 사고 싶다면 태블릿과 케이스 일체형 키보드를 합한 무게를 한번 따져보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요즘 40~50만원대 노트북의 무게가 1kg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충분히 가볍지 않다면 태블릿에 다시 비싼 돈을 보태어 '노트북을 만들' 이유가 없다.

솔직히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있는 이들에게 태블릿은 필요 이상의 기기임에 분명하다. 소위 '어른들의 장난감'이란 의미이다. 물론, 나는 이 태블릿이 노트와 다이어리, 책, 넷북 대용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까놓고 말해서 이 기기가 없을 때도 불편함 없이 잘 살아왔다.

고로 이 기기의 정체성을 '유희'나 '자기만족적' 측면이 있음을 쿨하게 인정한다면 다음 스텝은 이 '잉여기기'를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리라. 전자제품들이 늘 그렇듯 꼭 필요해 보여서 장만했다가 시간이 지나도 손에 익지 않아 책상 서랍이나 창고에 처박아두게 되는 일이 자주 있지 않던가.

고백하건대 앞서 말한대로 나도 자주 기기를 중복해서 구입하고는 처분하기를 반복했다. 부화뇌동하지 않고 조금만 기기의 특성과 용도를 생각했다면 적절한 기기를 사고 주변기기들도 잘 맞춰서 샀을 텐데. 매번 사탕가게에 처음 들어간 아이처럼 모든 것이 필요해 보였고 다 잘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뭐, 자본주의 시장의 모토가 '필요없는 제품도 사게 만들라' 아니던가. '지름신의 강림'으로 필요가 절절하지 않은 제품을 사는 걸 참기 어렵다면 만족스럽게 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꼼꼼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괜히 비싸게 사놓고는 자녀들의 장난감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자주 '대상 자체'를 오래 따지기 보단 최저가 사이트에서 몇 천원 싸게 사는 데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지 않던가.
2014/02/25 23:06 2014/02/25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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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그러니까, 대략 15년, 20년 전 즈음 '전자기학'을 가르치던 우리과(기계과) 교수님은 수업 진도와 무관하게 자주 흥분한 목소리로 '앞으로는 전자통신 분야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다', '전기전자 분야의 기업들이 길바닥에 뿌려진 돈을 갈고리로 긁어댈 날이 머지 않았다'며 이야기하곤 했다.

난 수업 집중도가 꽤 높은 학생이었음에도 그 과목의 수업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그분이 '황금알'이라고 말할 때, 뭐랄까 부러움, 애잔함, 기대감, 분노가 한데 뒤엉킨 듯한 교수님의 표정만 떠오를 뿐.

당시에 휴대용 전자기기는 CD플레이어가 전부였고 통신기기도 '삐삐'라고 불리던 무선호출기(비퍼)가 유행이었지만 휴학을 하고 다시 복학을 하는 그 몇 년 사이에 세상은 급변했다. 휴대폰이 대중화된 것이다. 나는 이동통신사들이 정부지원금을 받아가며 헐값에 뿌려댄 휴대폰 단말기들이 금세 꼬박꼬박 받아낸 할부금과 통신요금 명세서를 보면서 자주 '황금알' 비유를 떠올렸다.

건별로 부과되는 문자 메시지나 발신자 표시 서비스 등의 부가 서비스들이 특히 그랬다. 특별히 물건을 만들어 팔지 않아도 일단 통신망만 깔고 나면 사용자의 수만큼 고스란히 수입이 보장되는 정말 신기에 가까운 사업이 아닌가. 교수님이 말했던 예언이 성취되는 듯한 경험에 나는 자주 전율했다!

이제는 '카카오톡' 같은 무료 문자 어플이나 인터넷 전화 같은 데이터를 이용한 통신 방식들이 널리 퍼지면서 이른바 통신망의 '민주화'가 이루어졌지만 다시 통신사들은 이 환란을 극복하려고 애쓰고 있다. '데이터 무제한'의 유혹으로 고객 다수를 스마트폰 유저로 만들고 다시 데이터 망의 속도를 올려 고객들의 주머니를 털려는 전략인 셈이다.

물론 고객들도 변했다. 과거에는 흑백의 액정으로 의사소통만 되면 '장땡'이었지만 지금은 HD급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끊김없이 보고 싶어하는 '신인류'가 등장했다. 빠르게 급변하는 고객의 취향을 충족 시켜주기 위해서, 혹은 변덕스런 고객들의 주머니를 확실히 털기 위해서라도 기업들도 머리를 굴려서 황금알을 계속 만들어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여섯살 아들의 애니메이션 중독... 콘텐츠 사용로가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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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내놀이터에서도 TV를 틀면 아이들은 놀이를 멈춘다.
ⓒ 김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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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섯 살된 아들이 애니메이션 중독 초기 증상을 보였다. 시작은 이랬다. 우리집은 원래 TV 자체를 보지 않았는데 통신사에서 몇 개월을 무료로 보게 해주는 조건으로 (무료로)셋톱박스(디지털 방송 수신기기)를 설치해 줬고 무료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몇 달을 더 연장해 주고 그 이후에는 요금의 상당 부분을 할인해 줬다.

그렇게 트로이 목마처럼 우리집에 침투한 이 기기는 요술 상자처럼 끊임없이 아이가 원하는 만화영화를 보여줬다. 이 요술상자에 빠진 우리 아이는 무료 콘텐츠를 중심으로 시청하다가 조금씩 최신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유료 프로그램들도 보게 됐다. 처음엔 내가 매번 결제를 해줬는데 어느 날 우리 아이가(날 때부터 IT 신동이었던지) 혼자서 패스워드를 '뚫었다'(사실, 비밀번호가 같은 숫자 4개였으니 그리 어렵진 않았으리라).

그때 나는 무얼 하고 있었냐고? 아이에게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시간은 부모가 지쳐서 쉬고 싶을 때다. 만화를 보는 그 시간만큼은 아이가 아빠를 찾지 않는다. 그렇게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간은 조금씩 늘어갔고 아빠인 나도 은근히 그 여유가 싫지 않았다(젠장… 쓰다보니 무슨 중독자의 고백록 같다).

그렇게 우리 아이는 아침에도 꼭 한두 편의 만화를 보고 어린이집을 가야 하고, 집에 와서도 꼭 몇 편을 봐야 잠자리에 드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당연히 통신비도 점점 올랐다. 급기야 최근에는 명세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콘텐츠 이용료가 무려 10만 원이 넘었다.

망연자실. 애니메이션을 보는 아이와 통신비 명세서를 번갈아 가며 보다가, 문득 그 교수님의 수업시간이 떠올랐다. 아아, 길거리에 뿌려진 돈을 쓸어 담듯 통신사가 우리집 주머니를 이렇게 털어가는구나 싶었다. 더욱 화가 나는 건, 이런 콘텐츠들은 한시적으로 볼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짧게는 하루 이틀, 길게는 한 달이 지나면 다시 같은 금액을 결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같은 애니메이션을 반복적으로 보기도 하고 한 편을 보다가 쉽게 질려 다른 것을 보기도 하지 않나. 결국 아이를 둔 집에서는 동일한 콘텐츠를 구입하기 위해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린 파일'이나 굿다운로더 콘텐츠도 한 번 구입해서 다운받으면 컴퓨터에 영구적으로 소장할 수 있는 요즘 같은 세상에, 아이의 욕망과 부모의 나태함을 조장한, 정말 악한 상술이 아닌가 싶다.

아내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결국 셋톱박스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박스를 제거하던 날 아이는 진심으로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 요술박스를 쳐다봤다.

"아빠, 이제 OO는 못 봐? OO도?"

아, 왠지 측은하다. 갑자기 애니메이션 천국에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아이의 일상을 생각하니 너무 갑자기 환경을 바꾸려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감도 들었다. '대인배' 엄마와 달리 잔 걱정이 많은 나는 아이가 걱정이다.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창고에 있던 하드디스크, 셋톱박스로 딱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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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드 외장 케이스는 셋톱 박스처럼 활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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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갑자기 없애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아, 즐겨보던 애니메이션 몇 개라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문득 집에서 굴러다니던 오래된 하드디스크를 보고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구입한 지 10년이 넘은 이 하드디스크는 예전에 쓰던 조립PC에서 떼어낸 것인데 IDE방식(인터페이스 타입의 일종)의 구형이라 SATA방식만을 사용하는 최근의 컴퓨터 메인보드에는 연결하기도 쉽지 않아 창고에 처박아둔 것이었다. 이 하드디스크를 USB에만 연결할 수 있으면 TV에서도 동영상 파일을 재생할 수 있겠다 싶어서 인터넷에서 구형 하드디스크 인터페이스를 지원하는 케이스를 만 원에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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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형 하드디스크를 지원하는 외장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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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케이스는 외부전원을 지원해서 하드디스크를 USB처럼 쓸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굴러다니던 애물단지 구형 하드디스크를 마치 셋톱박스처럼 TV에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다운받은 파일 몇 개를 보여주자 아이도 조금은 안심하는 눈치(하지만 이제 애니메이션 천국의 시대는 갔단다).

사실 일상적으로 가계 비용을 털어가는 통신항목들이 적지 않다. 기기도 통신상품도 점점 새로워지고 더 좋아지고 있지만 그와 더불어 기업들은 소비자의 무지, 불성실, 나아가 욕망의 구멍을 찾아 주머니를 털어간다. 적절한 상품에 대해 합리적인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때로 IT기술들은 소비자로 하여금 카지노 룰렛을 돌리는 형태와 유사한 행위를 조장하는 것 같다. 어쨌거나 우리 아이의 애니메이션 중독이 아빠를 자극했고, 폐기될 운명의 하드디스크도 구했다. 이제 아이와 물리적으로 좀 더 많이 놀아주는 일만 남은 건가.(휴…)
2014/02/25 23:05 2014/02/25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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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스티브 잡스가 소파에 앉아서 아이패드를 시연한 이후 우리에게도 태블릿PC(아래 태블릿)는 스마트폰과 더불어 친숙한 IT 기기가 되었다.

나는 '메모광'에 '노트중독자'라고 불릴 만큼 평소에 종이에 끄적이는 것을 즐겼는데 이 노트들을 보관하는 것은 정말 골칫거리였다. 게다가 플래너도 매일 꼬박꼬박 기록하는 편이었고 가방엔 항시 몇 권의 책을 넣어 다녀야 안심이 됐다. 언제나 내 가방에는 종이들 뭉치로 가득했고 아내는 자주 백팩을 멘 나에게 '거북이 등껍데기' 같다고 놀리곤 했다. (사실 아내도 나 못지 않게 가방이 무거운 편이어서 나는 '달팽이'라고 맞받아쳤다. 부부란 원래 좀 유치해야 제맛이다.)

그런데 이런 내게 태블릿의 출현은 종이더미 삼종 세트로부터 내 등짝을 해방시켜 주리라는 희망을 안겨다 주었다. 플래너와 노트, 그리고 종이책이 그것이었다. 지금은 더 많아졌지만 노트와 플래너 어플(Application)들이 물리적인 노트들의 대용품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심어줬고 그 시기부터 전자책 시장의 전망도 밝다는 류의 기사들이 매체에 종종 등장했다.

이제 거북이에서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게 된 셈이다. 그 해 연말 육아의 책임(이라 쓰고 즐거움이라 읽는다)을 충실히 수행했다며 갖고 싶은 선물이 있으면 사주겠다는 아내의 말에, 망설임 없이 태블릿을 선택했고 그렇게 태블릿 유저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태블릿PC 덕분에 '거북이 가방' 벗고 가벼워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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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서 출시된 전자책단말기 페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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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블릿 출현 이전부터 전자책이나 전자출판 자체에 관심도 많았고 이미 당시 시중에 유통된 '페이지원'(페이지원 골수 사용자였던 우리들은 그녀를 '지원이'라고 불렀다)을 사용하면서 전자책 시장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당시에도 하드웨어 측면에서 단말기의 완성도가 높아 보였고 전자책 시장의 남은 과제는 그저 라이센스를 둘러싼 출판업계와 온라인서점, 그리고 소비자 간의 문제로 여겨졌다. (쉽게 말해, MP3 파일처럼 종이책도 광범위하게 불법유통, 다운로드되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 같은 두려움이 그 실체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원이'를 사용하면서, 그리고 본격적으로 태블릿 헤비 유저가 되어가면서 문득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태블릿이 종이책을 구원하지 않을까.

종이책을 구원한다고? 물론이지. 나만 하더라도 가방에 항시 넣어 다니던 대여섯 권의 책과 노트들이 사라졌다. 이렇게 종이로 둘러싸인 내 생활방식이 전자매체로 변하게 되면 수많은 나무들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내가 잠시 '지름신'이 강림하여 내 한 욕심 차리자고 구입한 태블릿은 사실 전 지구적 환경 보존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기도 한 것 같았다.

고가의 태블릿을 사기 위해, 은근히 아내 눈치도 보고 마음 한 구석도 찜찜했는데 잘됐다 싶어 관련 책들을 찾아봤다. (나는 일상적 논리를 만들 때조차 일단 책을 찾아보는 편이다. 떨쳐내지 못하는 모범생 기질이여.) 몇 시간의 검색 끝에 적절한 책을 찾았다. 애니 레너드라는 환경학자의 유명한 책 <물건이야기>. 이 책은 내가 고민하던 문제를 쉽고 자세하게 다룬 듯했다.

그 책에서 애니 레너드는 북아메리카 나무의 절반이 신문, 포장재, 문구류에 이르는 종이를 만드는 데 쓰이며 매년 미국에서 판매되는 책에 나무 3000만 그루가 들어간다고 말한다. 우리가 독서를 열심히 하면 엄청난 양의 나무가 끊임없이 죽어가는 셈이다. 게다가 종이를 만드는 데에는 나무만 희생되는 게 아니다.

종이 제조업은 온실가스 배출 5위 안에 들며 많은 양의 물과 독성 화학물질이 사용되는데 이것은 생태계로 가감없이 방출된다. 종이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화학물질은 염소와 수은이 있으며 이는 내분비계, 생식계, 신경계, 면역체계 손상 및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무염소 표백이나 대안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등 이러한 화학 물질들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종이의 질을 악화 시키는 방향이므로 개선이 쉽지 않다.

결국 종이책을 소비하는 것에는 나무를 좀 더 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공정상의 수많은 유해한 작업들이 내재해 있다. 책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쉽게 구입하면서도 쉽게 버리는 노트들과 박스들도 동일한 공정을 거친다.

이렇게 본다면 생태적 마인드를 고취하는 의미에서라도 태블릿은 대안적인 삶의 지표가 되리라는 내 가설은 옳았다. 나의 '지름신 강림'의 사적 욕구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구원을 이뤄주는 건 아닐까 하는 흥분감마저 드는 순간이다. 내가 1년에 소비하는 책만 전자파일로 태블릿에 들어온다면 많은 나무들의 잔혹사 없이도, 화학물질 처리나 폐수들의 오남용 없이도 클린 소비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 나는 아내에게 더 당당하게 태블릿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헤헷.

전자기기가 만들어내는 환경오염의 실체 알고 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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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블릿이 종이책을 구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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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책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종이 제조는 이 책에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고 그 다음부터는 전자기기들의 환경 문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게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책장을 계속 넘겼다. 역시나 애니 레너드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노트북과 태블릿의 제조 과정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상상대로 전자기기는 종이책의 제조공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제조공정이 복잡했다.

한때 실리콘밸리도 하이테크 개발에 의한 독성물질 오염지역이 너무 많아 청정화 프로그램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판정받았다. 현재는 공장의 상당수가 인건비가 더 낮고 노동자안전 및 환경규제가 덜 엄격한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로 이전되었다.

태블릿에 들어가는 마이크로칩만 보더라도 그 작은 칩 안에 2000개 이상의 물질이 들어가며 그 물질들에는 금, 탄탈, 구리, 알루미늄, 납, 아연, 니켈, 주석, 은, 철, 수은, 코발트, 비소, 카드뮴, 크롬 등의 중금속이 포함된다. 태블릿에 들어가는 기판 하나의 무게는 대략 0.16그램인데 기판 하나를 생산하는 데 물 20리터와 화학물질 45그램이 들어가며 100와트짜리 전구를 18시간 동안 켤 수 있는 에너지가 들어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태블릿 한대가 환경을 오염 시키는 수준은 종이책 몇 권에 상당한 것일까. 처음의 희망은 접고 어차피 태블릿 유저가 된 이상, 최소한 그 정도로는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 같은 게 막 생기려고 한다.(일단 후퇴다…) 정확한 셈을 할 수는 없었지만 태블릿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생태계에 도움이 되리라는 셈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으리라.

허나 문제는 태블릿의 신제품 주기가 1년밖에 되지 않으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2~3년 주기로 태블릿을 신형으로 바꾸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는 점이다. 해상도가 좋아졌다는 이유로, 무게가 줄었다는 이유로, 과거에 지원되던 OS를 지원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유로 우리는 되도록 빨리 새 기기로 갈아탈 것을 '뽐뿌질' 당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신제품 출시 없이 같은 기기를 장기적으로 시장에 방치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우사인 볼트에게 더 천천히 달리라고 요구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주문이다.

솔직히 올해 초 나는 사용하던 태블릿을 중고로 처분하고 새 제품을 구입했다. 기기는 올림픽 구호처럼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 작동했다. 가격은 2년 전과 동일하거나 때론 더 저렴해졌다. 조금만 공부해 보면 당신이 태블릿으로 종이책을 구원하려는 원대한 포부를 가졌다면 최소한 5년에서 10년은, 아니 제품이 고장 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전자기기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줘야 할 판이다.

다시 말해 아이패드 사용자는 지금도 2010년에 출시된 초기 모델을 꿋꿋이 써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나는 그럴 자신은 없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생태적 마인드를 가지고 일상을 살아간다는 건 거대담론의 논지에 동의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항상 수반하는 듯하다.

문득 홀쭉해진 가방쪽을 쳐다봤다. 가방 속 태블릿에는 70권이 넘는 전자책이 들어있다. 매일 가방에 넣을 책을 고르느라 고민하던 시간이 줄긴 했다. 더 이상 거북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더 '인간'다워졌다고 할 수도 없는 내 출근길. 이렇게 또 반복된다.
2014/02/25 23:04 2014/02/25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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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올해의 영화> - 나도 숟가락을 얹어봤음.^^

 

 

더 테러 라이브
- 속도도 좋고 내용도 간명하고

 

 그래비티
- 인생, 뭐 있어. 카르페 디엠!

 

A Late Quartet (마지막 4중주)
- 은퇴는 이렇게...라고 생각함

 

 라이프 오브 파이
- 이안 감독은 최고의 거장이라 생각함.

 

서칭포 슈가맨
- 슈가맨.ㅠㅠㅠㅠ

 

 누구의 딸도 아닌 혜원/우리 선희
- 올해는 홍상수 감독 적극적 긍정의 해

 

Metallica: Through the never
- 공연장에서도 누릴 수 없을 듯한 광경

 

 로마 위드 러브/ 블루 재스민
- 우디 알렌의 영화는 양잿물을 섞어도..ㅋ

 

 일대종사
- 양가위 영화를 보러갔다가 양조위가 아닌 장쯔이에 꽂힘

 

The Master
- 호야킨 피닉스의 재발견.

 

비포 미드나잇
- 3부작의 완성. 현실적 디테일에 몰입..

 

연애의 온도
- 김민희는 이래서 인기가 있군

 

 더 헌트
-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았던..

 

레 미제라블
- 대선 패배의 슬픔 힐링 영화였음.

 

원데이
- 앤 해서웨이의 약진, 그리고 이상적 연애상.

 

문라이즈 킹덤
- 몇 안 되는 아름다운 성장 영화

 

 맨 오브 스틸
- 상상 속 수퍼맨이 드디어 육화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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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영화평>

 

- 누구의 딸도 아닌 혜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43916

 

- 서칭포 슈가맨: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44442

 

- 비포 미드나잇: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73025

2014/01/30 23:44 2014/01/30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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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읽은 책 중 인상적인 것들

 

 

 라캉과 정신의학 - 브루스 핑크
- 라캉 이해의 폭을 넓힌 책. 임상 중심이라 더더욱...

 

아이의 사생활 - EBS
- 육아의 교과서적인 책. 올해 다시 읽으니 좀더 이해가 잘 되는 면이 있더라.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 울리히 벡
- 연애강의를 위해 읽은 책 중 단연 으뜸이었던 책.

 

당신으로 충분하다 - 정혜신
- 나의 심정적 마음 주치의 정혜신 선생의 집단치료서

 

 미생 - 윤태호
- 올해는 윤태호 작가의 해가 아니었나.

 

현시창 - 임지선
- 한달 동안 고통스럽게 읽은 책. 사례들을 잊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다시 읽고 싶지도 않다.

 

하버드 사랑학수업 - 마리 루티
- 연애 강의를 계획하도록 화두를 던진 책. 정혜윤님의 추천사 또한 백미.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 정희진
- 정희진 선생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책. 현시창과 더불어 읽기엔 괴로운 가정폭력서.

 

피로사회 - 한병철
- 짧고도 굵었던 책. 서평에 많은 얘기를 한 지라...

 

엄마되기, 킬링과 힐링사이 - 백소영
- 서평에다 옷을 팔아서라도 이 책을 사라고 했다가 욕 좀 먹었던 책. 그렇다고 생각이 바뀌진 않았다.

 

대한민국 부모 - 이승욱 외
- 결혼, 육아, 자녀교육, 중년이라는 이슈를 관통하는 한국사회 '부모'라는 괴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든 책.

 

마흔앓이 - 크리스토프 포레
- 곧 다가올 미래체험? 우울한 건 다 공감이 가더라는 거...

 

거대한 사기극 - 이원석
- 올해는 이원석 형님의 해가 아니었던가.ㅋㅋ

 

 다른 길이 있다 - 김두식
- 나는 충직한 김두식 교수님 저서들의 애독자. 한겨레 인터뷰 때부터 행복했음.

 

올드보이 한대수 - 한대수
- 오늘 다 읽음. 뇌세포 하나하나가 즐거웠던 경험. 올해엔 한대수빠로 살까 고민 중...

2014/01/15 23:46 2014/01/1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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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주변에 얘기해도 잘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소문난 모범생이었다. 특목고 진학을 꿈꾸던 중학생 시절, 나는 그저 ‘공부기계’였다. 같은 문제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풀었으므로 시험을 보면 답이 툭툭 튀어나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코흘리개 시절에 소심하다거나 착하단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시험을 몇 번 잘 치고 나니 ‘모범생’이란 딱지가 붙었다.

그 이후로 나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범생의 모습을 유지하고자 부단히 애를 썼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당시에 부모님은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다. 두 분이 잠시 별거를 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를 때면,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를 우울한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아마도 그때 나는, 내가 모범생이 되면 부모에게 기쁨을 줄 수 있게 되고 그러면 내가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다시는 이전처럼 슬프게 헤어지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도 어떤 조직에 들어가거나 어떤 일을 할 때 다분히 성취 지향적인 행동에 집착하여 매사에 지나치게 긴장하는 습관을 갖게 된 건 아마 그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되고 싶었고,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고, 그것도 좋은 학과에 가고 싶었다. 물론 그 근저에는 항상 ‘부모가 원하는’ OO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솔직히 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부모가 뭐가 되라고 괴롭힌 적도 없지만,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공부를 잘하면 의례히 그렇게 되리라는 ‘어떤’ 학과와 직업을 제시하곤 했고 나는 그것을 목표로 공부만 해댔다.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공부기계가 되고 ‘모범생 코스프레’를 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 몹쓸 모범생 코스프레는 30대 초반까지 줄곧, 그리고 불혹을 앞둔 지금까지도 나를 짓누르는 어떤 내적 지향성이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 또래의 많은 이들이 참 착한 자녀의 삶을 살아왔고 그 모범생의 삶을 이제는 자기 자녀에게 강요하는 걸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주변의 많은 이들도 부모의 기대, 바람의 대물림을 반복하고 있는 듯하다. ‘타자의 욕망’, 특히 부모의 욕망에 따른 삶에 익숙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삶의 주체성이 결여된 채 분주하게 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분주함의 대부분은 파편화된 사건들, 그 개별적인 것들을 잘 마치는 것, 그 성과로 누군가에게(부모에게, 직장상사에게, 혹은 남친이나 여친에게, 배우자나 자녀에게) 칭찬받는 것에 목적을 둔다. 얼핏 보면 책임감이 강하고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그 내면 깊은 곳에서는 영혼이 소멸되는 느낌, 나 자신의 삶을 살지 않는 것 같은 느낌, 칭찬해주는 주체가 없으면 존재 이유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자신을 지배하는 셈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회사를 왜 다녀야 하는지, 왜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같은 당연한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순간 숨이 멎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조금은 다른 얘기지만, 요즘 ‘픽업 아티스트’라는 직업이 성행한다고 한다. 이게 무슨 예술가인가 했더니 쉽게 말해서 여자 꾀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이란다. 이런 곳에다 몇 백만 원씩이나 돈을 내며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넘쳐난다고 하니, 이성을 사귀고 싶지만 잘 안 되는 싱글들이 많기는 많은 모양이다. 연애를 하는 이들은 ‘연애 상담’도 많이들 받는다. 연애 중인 커플들은 ‘결혼예비학교’라는 곳도 간다. 그뿐이랴. 요즘 결혼 후 아이를 출산한 부모들을 위한 ‘부모학교’도 성행하고 있다. 이렇듯 모두가 모범적인 연애, 결혼, 육아, 자녀교육을 실수나 시행착오 없이 수행하고 싶어 한다. 물론 배우는 건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배움 행위들이 어떤 내러티브나 연관성을 갖지 않고 파편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해서 개인이나 관계의 근본적인 성장을 담보로 한다기보다는, 중고교 시절의 반복처럼 연애, 결혼, 출산, 육아도 그 개별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이른바 그 분야의 모범생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느낌이 강하다는 말이다.

연애, 결혼, 출산, 육아 매 단계에 모범생이 되는 게 인생의 목표가 아님을, 나는 결혼한 지 10년째인 지금에서야 아내를 통해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일례로 나는 칭찬받는 연애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정작 연애를 하는 중에는 즐겁지 않을 때가 많았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나는 생애에 한번뿐인 귀한 예식에 집중하기보다는 주변의 눈치를 참 많이 봤다. 그 과정에서 정작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한 것도 있었고 원하지 않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다. 신혼 초에 심하게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이 결혼이 좌초되고 실패한 무엇으로 전락하게 될까봐 두려움에 떨었다.(매번 아내보다 내가 더 지질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본다. 난 무엇을 두려워했던 걸까. 진실한 삶 그 자체였나, 아니면 인생에서 중요한 매 단계마다 누군가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으려 한 건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모범생의 티를 벗으려고 애쓰는 내 모습을 본다. 내 잣대대로 남을 평가하지 않는 것, 나아가 그 잣대대로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는 것, 타인의 눈치를 보기보단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음성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 문득 그런 상상을 해봤다. 나의 부모가 서로 깊이 사랑해서 그 충분한 사랑을 통해 자주 “우리 걱정은 말고 네가 원하는 걸 하렴.”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면, 그러면 나는 어떤 아이가 되었을까. 생각만으로도 표현 못할 감정이 요동치는 느낌이다. 지금 우리 가정에, 내 아이에게, 그리고 나와 내 아내에게도 필요한 음성은 아닐까.
2014/01/15 23:44 2014/01/15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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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일상성에 관하여

[서평] 김동건 <빛, 색깔, 공기>

 

 

연초부터 소화도 안 되고 배에 통증이 느껴졌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약을 먹어도 그 증상이 사라지지 않자 혹시 큰 병이 아닌지 슬슬 걱정이 되었다. 몇 달 사이 몸무게도 7~8kg이 빠져 걱정이 가중되었고, 어느새 스스로 판단하기에도 '건강염려증' 수준으로 심리적으로도 불안해지는 것 같아서 위장 내시경 검사 예약을 했다. 검사 결과 다행히 큰 병은 아니었다. 의사는 만성 위염이라고 했다. 내 염려는 하나의 헤프닝으로 끝났지만 몸이 안 좋아진 순간부터 검사 결과를 알게 된 몇 달 동안은 이런저런 생각이 참 많았다.

 

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한 번도 내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나 미치 엘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같은 훌륭한 책을 통해 죽음을 눈앞에 둔 이들의 인생 정리 방식을 간접적으로나마 인상 깊게 지켜보긴 했지만, 내가 진짜 '관'에 들어간다는 상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적어도 올해 전까지는 말이다. 그저 죽음을 눈앞에 둔 이들이 죽음을 대하는 자세, 통찰, 그 삶의 혜안들을 얻는 것이라면 모를까.

 

결혼을 하고 자식까지 생기고 나니 죽음이란 단어는 참 심각하게 다가왔다. 혹시 내가 큰 병으로 죽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드니 아내와 아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불현듯 회사에 입사하면서 얼떨결에 든 사망보험이 생각이 나자 조금 안심이 됐다. 적어도 내가 죽으면 당장 생활비가 끊기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혹시 병이 심각해서 갑작스럽게 죽게 되면 아내에게 알려 줘야 할 정보들, 이를테면 통장 비밀번호나 컴퓨터 하드디스크 안에 든 자료들 같은 게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가진 책들을 누굴 줄 것인지, 내가 쓴 글들과 메모들은 정리본을 만들어놔야 할 텐데 하는 걱정 등등 이른바 현실적 미련들도 들었다.

 

이런저런 걱정들로 시작된 죽음에 대한 공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전하니, 어느새 보다 근본적인 질문들에 휩싸였다. 죽음을 둘러싼 신앙적인 회의감이랄까. 물론 기독교인으로서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음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좀더 실제적인 궁금함, 걱정들이 존재했다. 이를테면 내가 지금 죽으면 내 아이를 멀리서 지켜보게 될까, 아니면 어딘가로 가게 되어 잠시 헤어져 있게 될까,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이 세상을 창문 너머로 내려다볼 수 있는 걸까 같은 류의 궁금함이랄까. 나아가, 죽고 나면 나는 더 이상 내 아내의 남편일 수 없고 내 아이의 아빠일 수는 없는 건가. 혹은 이 모든 신앙과 달리 그냥 죽으면 사라지게 되는 건 아닐까.

 

   
▲ <빛, 색깔, 공기> / 김동건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 320면 / 1만 3000원

 

<현대신학의 흐름>으로 유명한 김동건 교수의 <빛, 색깔, 공기>를 다시 읽었다. 이 책은 홍성사에서 나왔던 책을 개정하여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새로 출판한 것이다. 홍성사에서 나온 책을 읽었으나 그땐 너무 어렸기에 더더욱 이 책의 바른 '독해'가 쉽지 않았다. 물론 당시에도 나름의 감흥, 감상이 있었지만 그건 정말 형이상학적 그 무엇이었지 저자의 가정에 일어난 죽음이라는 사건에 깊이 공감할 만한 마음의 넓이가 부족했다. 내 죽음에 깊이 매몰된 최근에서야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가장 큰 깨달음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죽음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주변에서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죽음'이란 현실을 우리는 애써 외면한다. 죽음을 터부시하므로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끝까지 '기적', '치유'의 기대감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마치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자체를 부정하면서 우리의 일상에서 비껴가기를 기대한다. 죽음 자체가 비극이며 슬픔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일상의 영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또한 건강한 반응은 아닌 셈이다.

 

김동건 교수의 아버지이신 고 김치영 목사의 죽음 여정에서 나는 죽음의 '일상화'를 경험했다. 김 목사는 당신의 죽음을 에둘러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자주 직설적으로 가족과 나누었고 가족들도 그것을 받아들였다. 물론 죽음을 앞에 둔 가족들 모두가 힘들고 슬펐겠지만 그것을 애써 외면하거나 덮어 두거나 미화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책 속에서 김 목사는 자신의 장례식에도 상복을 입지 말고 평상복을 입은 채로 울거나 곡을 하지 말 것을 권했다. 기독교인은 죽음을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것이라는 당신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분은 적절한 때에 단백질 주사를 제거해 달라고 부탁했고 매 순간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며 그 시간들을 잘 준비하고 실행해 나갔고 그렇게 종국에는 당신의 죽음을 맞이했다.

 

이 책은 병상 일기로 독해할 수도 있고 혹은 죽음에 관한 신학 교수 아들과 목사 아버지 사이의 대화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한 가족이 어떻게 아버지를 떠나보냈는가에 대한 짧은 기록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죽음의 일상성'을 일깨운 귀한 책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하루하루 숨을 잃어 가고 있다. 너 나 할 것 없이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 죽음의 일상성에서 배제되지는 않는다. 심지어 내 인생의 주인공인 나조차도.

 

갑작스럽게 비극적 사건처럼 생겨나는 이 실존 앞에, 자주 우리는 흔들리며 마음의 평정을 잃는다. 물론 우리가 죽음의 일상성을 인지한다고 해서 슬픔을 극복할 수 없고 고통이 경감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삶의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어떻게 낭비하지 않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저자는 우리에게 큰 선물을 남겼다. 고 김치영 목사님과 김동건 교수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김용주 / 현대·기아자동차연구소 연구원, 전 <복음과상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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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2 01:00 2013/12/22 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