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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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일상성에 관하여

[서평] 김동건 <빛, 색깔, 공기>

 

 

연초부터 소화도 안 되고 배에 통증이 느껴졌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약을 먹어도 그 증상이 사라지지 않자 혹시 큰 병이 아닌지 슬슬 걱정이 되었다. 몇 달 사이 몸무게도 7~8kg이 빠져 걱정이 가중되었고, 어느새 스스로 판단하기에도 '건강염려증' 수준으로 심리적으로도 불안해지는 것 같아서 위장 내시경 검사 예약을 했다. 검사 결과 다행히 큰 병은 아니었다. 의사는 만성 위염이라고 했다. 내 염려는 하나의 헤프닝으로 끝났지만 몸이 안 좋아진 순간부터 검사 결과를 알게 된 몇 달 동안은 이런저런 생각이 참 많았다.

 

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한 번도 내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나 미치 엘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같은 훌륭한 책을 통해 죽음을 눈앞에 둔 이들의 인생 정리 방식을 간접적으로나마 인상 깊게 지켜보긴 했지만, 내가 진짜 '관'에 들어간다는 상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적어도 올해 전까지는 말이다. 그저 죽음을 눈앞에 둔 이들이 죽음을 대하는 자세, 통찰, 그 삶의 혜안들을 얻는 것이라면 모를까.

 

결혼을 하고 자식까지 생기고 나니 죽음이란 단어는 참 심각하게 다가왔다. 혹시 내가 큰 병으로 죽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드니 아내와 아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불현듯 회사에 입사하면서 얼떨결에 든 사망보험이 생각이 나자 조금 안심이 됐다. 적어도 내가 죽으면 당장 생활비가 끊기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혹시 병이 심각해서 갑작스럽게 죽게 되면 아내에게 알려 줘야 할 정보들, 이를테면 통장 비밀번호나 컴퓨터 하드디스크 안에 든 자료들 같은 게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가진 책들을 누굴 줄 것인지, 내가 쓴 글들과 메모들은 정리본을 만들어놔야 할 텐데 하는 걱정 등등 이른바 현실적 미련들도 들었다.

 

이런저런 걱정들로 시작된 죽음에 대한 공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전하니, 어느새 보다 근본적인 질문들에 휩싸였다. 죽음을 둘러싼 신앙적인 회의감이랄까. 물론 기독교인으로서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음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좀더 실제적인 궁금함, 걱정들이 존재했다. 이를테면 내가 지금 죽으면 내 아이를 멀리서 지켜보게 될까, 아니면 어딘가로 가게 되어 잠시 헤어져 있게 될까,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이 세상을 창문 너머로 내려다볼 수 있는 걸까 같은 류의 궁금함이랄까. 나아가, 죽고 나면 나는 더 이상 내 아내의 남편일 수 없고 내 아이의 아빠일 수는 없는 건가. 혹은 이 모든 신앙과 달리 그냥 죽으면 사라지게 되는 건 아닐까.

 

   
▲ <빛, 색깔, 공기> / 김동건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 320면 / 1만 3000원

 

<현대신학의 흐름>으로 유명한 김동건 교수의 <빛, 색깔, 공기>를 다시 읽었다. 이 책은 홍성사에서 나왔던 책을 개정하여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새로 출판한 것이다. 홍성사에서 나온 책을 읽었으나 그땐 너무 어렸기에 더더욱 이 책의 바른 '독해'가 쉽지 않았다. 물론 당시에도 나름의 감흥, 감상이 있었지만 그건 정말 형이상학적 그 무엇이었지 저자의 가정에 일어난 죽음이라는 사건에 깊이 공감할 만한 마음의 넓이가 부족했다. 내 죽음에 깊이 매몰된 최근에서야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가장 큰 깨달음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죽음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주변에서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죽음'이란 현실을 우리는 애써 외면한다. 죽음을 터부시하므로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끝까지 '기적', '치유'의 기대감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마치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자체를 부정하면서 우리의 일상에서 비껴가기를 기대한다. 죽음 자체가 비극이며 슬픔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일상의 영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또한 건강한 반응은 아닌 셈이다.

 

김동건 교수의 아버지이신 고 김치영 목사의 죽음 여정에서 나는 죽음의 '일상화'를 경험했다. 김 목사는 당신의 죽음을 에둘러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자주 직설적으로 가족과 나누었고 가족들도 그것을 받아들였다. 물론 죽음을 앞에 둔 가족들 모두가 힘들고 슬펐겠지만 그것을 애써 외면하거나 덮어 두거나 미화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책 속에서 김 목사는 자신의 장례식에도 상복을 입지 말고 평상복을 입은 채로 울거나 곡을 하지 말 것을 권했다. 기독교인은 죽음을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것이라는 당신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분은 적절한 때에 단백질 주사를 제거해 달라고 부탁했고 매 순간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며 그 시간들을 잘 준비하고 실행해 나갔고 그렇게 종국에는 당신의 죽음을 맞이했다.

 

이 책은 병상 일기로 독해할 수도 있고 혹은 죽음에 관한 신학 교수 아들과 목사 아버지 사이의 대화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한 가족이 어떻게 아버지를 떠나보냈는가에 대한 짧은 기록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죽음의 일상성'을 일깨운 귀한 책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하루하루 숨을 잃어 가고 있다. 너 나 할 것 없이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 죽음의 일상성에서 배제되지는 않는다. 심지어 내 인생의 주인공인 나조차도.

 

갑작스럽게 비극적 사건처럼 생겨나는 이 실존 앞에, 자주 우리는 흔들리며 마음의 평정을 잃는다. 물론 우리가 죽음의 일상성을 인지한다고 해서 슬픔을 극복할 수 없고 고통이 경감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삶의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어떻게 낭비하지 않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저자는 우리에게 큰 선물을 남겼다. 고 김치영 목사님과 김동건 교수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김용주 / 현대·기아자동차연구소 연구원, 전 <복음과상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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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2 01:00 2013/12/22 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