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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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에서 심문을 받고 있을 때의 일이다.

'청구회'의 정체와 회원의 명단을 대라는 추상 같은 호령 앞에서 나는 말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어떠한 과정으로 누구의 입을 통하여 여기 이처럼 준열하게 그것이 추궁되고 있는가. 나는 이런 것들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8월의 뜨거운 폭양 속에서 아우성치는 매미들의 울음소리만 듣고 있었다. 나는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아득한 그리움처럼 손때 묻은 팽이 한 개를 회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답변해주었다. '국민학교 7학년, 8학년 학생'이라는 사실을.

그후 나는 서울지방법원 8호 검사실에서 또 한번 곤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청구회 노래'인가?"검사의 반지 낀 손에 한 장의 종이가 들려져 있었다. 거기 내가 지은 우리 꼬마들의 노래가 적혀 있었다.

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처럼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
어깨동무 동무야 젊은 용사들아
동트는 새아침 태양보다 빛나게 나가자 힘차게 청구용사들.
밟아도 솟아나는 보리싹처럼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
배우며 일하는 젊은 용사들아
동트는 새아침 태양보다 빛나게 나가자 힘차게 청구용사들.


여기서 '주먹 쥐고'라는 것은 국가 변란을 노리는 폭력과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추궁을 받았다.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폭력의 준비를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끈질긴 심문이었다.

내가 겪은 최대의 곤혹은 이번의 전 수사과정과 판결에 일관되고 있는 이러한 억지와 견강부회였다. 이러한 사례를 나는 법리해석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 그 자체의 가공할 일면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는 특정한 개인의 불행과 곤혹에 그칠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성이 복재(伏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군법회의에서 이 '청구회 노래'의 가사를 읽도록 지시받고 '청구회'가 잡지사 '청맥사'를 의식적으로 상정하고 명명한 이름이 아니냐는 '희극적' 질문을 '엄숙히' 추궁받았다.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2007/04/15 18:22 2007/04/15 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