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 종이책, 전자책, 그리고 북스캔 파일까지 | |
ⓒ 김용주 |
6회.
직장생활 (13년 9월 2일)
추천도서: 관계중심 시간경영(황병구)
7회.
간사 특집, '나는 간사다' (13년 9월 29일)
추천도서: 없음
게스트: 서형석, 안지혜 간사님
2회 '캠퍼스 추억'편에서는 학사들이 학생 시절 지부 간사님에게
서운했던 에피소드들로 썰을 풀었다면 이번에는 간사님들의 역습,
'나는 간사다' 편을 준비했습니다.
두분 간사님의 털털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좋았던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외모로 아내를 취했다고 하면서도(ㅋㅋㅋ)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는 서 간사님과 혼자 영화보고 이소라 음악을 즐긴다는
안 간사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구요.^^
또한 학생-간사-학사 간의 관계설정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들을 품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8회.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13년 11월 10일)
추천도서: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필립 얀시)
게스트: SJ, 빼빼로 학사님(익명)
두 분의 익명의 학사님들과 교회의 즐거운 추억과 힘들었던 기억들을
함께 나누어보았습니다. 특별히 교회에서의 아픈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은 것 같아 마음이 무겁기도 했구요.
재미는 조금 떨어지는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교회 문제로 고민했던
몇몇 학사들을 통해서는 좋았다는 후문을 들어서 나름 의미를 찾았던 녹음
이었습니다.
9회.
이강일 이시종 간사님 특집 (13년 12월 8일)
게스트: 이강일, 이시종 간사님
IVF의 전설적 지성으로 꼽는 두 간사님을 초대하여 최근 근황과
사역의 이모저모를 들어보았습니다. 이강일 간사님은 복음주의연구소를,
이시종 간사님은 중앙회 학사회를 담당하고 계시지요.
섭외하기가 쉽지 않은 두분을 한 번에 섭외한 저의 능력에 스스로 '자뻑'하며
녹음도 혼자 막 유쾌하게 진행했었는데요, 사실 당일에 녹음 마치고
더 교제를 나누고 싶었으나 서로 스케줄이 있어서 많이 아쉬웠던 기억이 나네요.
두 분 모두 안식년을 외국에서 보내고 들어오신 지 얼마 되지 않은 관계로
외국 생활과 돌아온 이후의 사역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 함께 나눠보았습니다.
10회.
착한남자, 그것이 알고싶다. (14년 1월 14일)
게스트: 없음
이 녹음은 임원회 송년 모임 때 '착한 남자'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는 학사회
총무 이재섭 학사와의 대화 중에 정치, 사회 관련 얘기를 나누다가 대화 내용으로
팟캐스트를 기획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나쁜남자,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제목으로 동서울IVF 안에서의 기독학생들의 사회참여, 정치참여에 관련된 이슈로
썰을 풀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아주 흥미로운 주제여서 녹음 때도 유익하게 느꼈고,
방송이 업로드된 후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개인 후기를 남기기도 했지요.
- 후기
: 사실 저는 정치성향으로 본다면 딸셋아빠님(누군지 다들 아시지요?^^)보다
더 진보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주제에 맞게 대화를 진행하다보니 자연스레
'딸셋아빠'님이 충분히 진보적인 입장의 설명을 해주셨고 저는 IVF 안에서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지점들을 어필하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각자의 정치성향에
따라 녹음된 논의 자체에 부족함을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저도 각 사안별로 하고픈
말이 많지만 그런 토론 논쟁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구요. 녹음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부디 동서울 학사님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셨으면...하고 바래봅니다.
11회.
돈관리 막장토론 (14년 3월 14일)
게스트: 콩깍지 님의 그 분.
10회 때 착한남자님의 기획이 괜찮았다고 느껴져서 11회는 '방청객'님에게
부탁하여 돈문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특히, 갈수록 학사들의 관심이 떨어지는 느낌이라 살아남기 위해 대놓고
'막장방송'을 표방하게 되었고요.ㅋㅋㅋ
당일에 무려 2시간 반동안 녹음을 했고요, 죽음의 편집을 거쳐서 파격적으로
시간을 줄이려고 했으나 상당 부분을 살려서 2시간 정도의 분량을 그냥
내보냈습니다.
게스트로는 '콩깍지'님의 남친님이 함께 해주셨는데요, 교회 헌금 문제로 너무
흥분한 나머지 두분 커플이야기를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네요.
다음 기회에 다시? ^^
마치면서.
무심코 내던진 '팟캐스트나 한번 해볼까요?'라는 말이 현실이 되어
벌써 1년이 다 되었고 11번의 녹음을 마쳤습니다.
작년에는 <IVF on Campus>에서 다운로드 1위 및 탑10 중 3개가 저희 방송이
되는 좋은 소식도 있었고요. (다... 연애를 주제로 해서 그런 듯.ㅋㅋㅋ)
어제 아내가 실내놀이터에서 모여있는 엄마들 대화 중에 남편에 대한 호칭 문제를 지적받았다는 얘길 했다. 흥미로운 건 그 얘길 처음부터 한 게 아니라 한참을 사귄 지금에서야 꺼냈다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은 친해지면 무례하게 개입해도 된다는 생각을 암묵적으로 하는 것 같다. 이런 오지라퍼들...
신혼초부터 아내는 나를 두고 자주 '용팔이'라고 불렀다. 뭐 '오빠'라고도 부르고 '여보야'라고도 부르지만 나도 '배뱅'이라고도 부르고 '여보야'라고도 부르니 쌤쌤인 셈.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내가 남편의 별명을 불러댈 때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대체로... 여자가 여전히 철없다 여긴다.
남편은 가장이니 집에서 둘이 어떻게 부르건 간에 대외적으로는 남편을 어른 대접, 집안의 대장 대접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대체로 실내놀이터에서 엄마들을 지켜본 바로는 다들 모여서 남편욕을 해대다가는 남편이 나타나면 예의를 갖추는 행동, 미친듯이 씹어대다가 저녁시간이 되면 따신 밥을 지어주려고 허둥지둥 귀가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내가 회사에서 상사를 대하는 태도와 아주 유사하다.
전형적인 가부장제 사회의 일원 역할을 여성이 자처하고 있는 셈이다. 마음이 그렇지 않아도 그 룰을 확실히 따르면서 주위에도 그 룰을 어기는 여성에게 지적질을 해대는 경지에 이른 셈이기도 하다. 불필요한 페르조나가 얼굴에 완전히 들러붙은 경우랄까. 실내놀이터에 죽돌이처럼 앉아 있다 보면 집에서도 거대한 가부장제 기업의 말단 사원 노릇을 하고 있는 착한 며느리 직원들이 많다.
살아보니 아내의 솔직함이 좋다.(때론 쪼꼼 과할 때도 있다.-_-;;;) 아내에게 내가 '용팔이'이기 때문에 용팔이라고 부르는 거지 오빠의 위치에, 좀더 먼 위치에 내가 서 있었다면 아내는 절대 나를 그렇게 친근하고 만만한 말투로 부르지 못했을 것을 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들의 친구라고 말했다. 스승이자 주인의 서열에서 오는 두려움을 해소한 자만이 친구의 관계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 진정한 관계에 자신이 없는 많은 이들은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채 그저 정치적 관계의 설정을 유지하고 타인에게도 강요한다. 그 결과 피상적인 관계만이 남는다. 팀원은 팀장의 뒷담화를 까고 앞에서만 그 룰을 지킨다. 아내들도 가부장 기업 안에서 그 행동을 답습한다.
진정한 관계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로 나아간다. 부부가 진정한 친구가 되고 나면 서열과 피상적인 대접의 눈치가 필요 없어진다. 진정한 존경은 상호 친밀함에서 나오는 것이지 어떤 행동을 피상적으로 강요하고 그것을 학습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로, 나는 아내의 '용팔이' 호칭을 지지한다! (주먹 꽉지고...-_-v)
개인적으로 시대의 변화를 가장 크게 느낀 건 대학생들이 문화소비자의 위치로 전락한 때부터였다. 학생들은 대자보로 의견을 말했고 문화의 밤이나 동아리 축제, 대학축제 같은 공간에서 컨텐츠의 생산자로 자리매김했다. 언제부턴가 대학교의 대자보는 기업들의 홍보지로 가득차게 되었고 학교의 축제도 엄청난 돈을 들여 아이돌 그룹을 모셔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됐다.
캠퍼스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공간이 아니라 문화를 소비하는 곳, 아니 문화와 무관하게 취업준비에 집중해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담론을 생산하던 많은 지식인들도 어느덧 도매상을 자처하거나 문화비평, 이를테면 음악평, 영화평, 서평에 몰두하는 모습도 이제는 익숙하다. 대중은 맛집 비평, 대기업 상품평에 자신의 노하우와 지식의 깊이를 내보이며 뛰어난 제품들의 간접 홍보자를 자처한다.
어느덧 그것이 우리가 우리의 가치를 보여주는 행위가 되었다. 문화생산자는 치열한 자본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본과 권력,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 프로페셔널한 영역에 국한되고 그 영역에 들어가려면 엄청난 경쟁력을 뚫어야 할 뿐 아니라 들어가서도 '저녁이 없는 삶'을 담보로 한 야근과 노력, 경쟁구도에 순순히 자신의 청춘을 바쳐야 한다. 그 청춘의 녹을 먹고 그 안에서 선별된 글로벌 경쟁력이 보장된 컨텐츠만이 살아남게 되고, 다시 그 양질의 컨텐츠를 지친 대중은 찬양하고 열광해하며 쉼을 얻는다.
백설공주를 상상하면 월트디즈니 만화의 최적화된 캐릭터가 떠오르고 커피나 마카롱만 검색어에 쳐도 최고의 브랜드를 찾아준다. 조금만 어설퍼도 우리는 채널을 돌리고 음식점에서 먹다말고 뛰쳐나와 인터넷에 악평을 단다. 소비자가 일상에서조차 생산 구조 자체를 제로섬게임으로 내몰면서도 대중은 책에서, 뉴스에서 읽는 신자유주의 유령만을 비난한다. 사실상 우리는 일상적으로 자본주의를 찬양하며 일상적으로도 경쟁을 부추기며 일상적으로도 차별에 찬성한다.
아이들 재롱잔치는 내 아이이기 때문에 감내해도 남의 아이의 어설픔에는 하품을 해대고 제품의 하자는 고쳐지길 기대하기보단 그 제품이 세상에서 사라지길 바라기도 한다. 그러한 긴장과 불안 속에서 우리는 이미 컨텐츠를 생산해내던 행복한 아마추얼리즘을 잃었다. 교회에서 밤 늦은 저녁, 청춘남녀가 모여 낭송하던 자작시나 클래식 기타를 뜯으며 화음을 맞추던 어설픈 듀엣곡들은 없다. 자신의 창의성을 뽐내기 보다는 프로페셔널들의 컨텐츠를 평하며 그것에 안주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나또한.
자주 그 장단에 춤을 추다가도 가끔씩은 이런 일상이 얼마나 낯선 것인지를 떠올리곤 한다. 한때 우리는 모두 아마추어였고 겁없이 무대에 나서곤 했다. 서로를 글로벌 잣대로 냉정하게 평가하기 보다는 어설든 매력에 빠져들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하향평준화됐지만 그런 사실마저도 행복해했다. 가끔 겁나게 잘난 녀석이 나타날 때면 시샘을 하면서 속으로 열광하기도 했다. 지금의 삶이 지옥같다는 말은 아니지만 가끔 어설프게 주변에서 만들어내던 컨텐츠들이 그립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