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추천사를 읽다가 이렇게 뭉클하긴 처음이다...
"연애지침서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공략 대상으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 방법을 설파하느라 여념이 없다. 성공적인 연애를 위해 구사할 전략들을 나열하고,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흉내내기,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모방, 사랑을 가장한 목표 달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마리 루티 교수가 말하듯이 사랑은 요령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단순한 것도 아니다. 사랑은 수많은 것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의 어린 날의 경험들, 노동 조건, 삶의 조건, 살아보고 싶은 삶의 모습, 욕망과 소망, 그리고 또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디테일들, 웃는 모습, 찡그리는 모습, 손의 느낌, 걷는 모습, 잠든 모습.
이 시대에, 이 고독하고 우울한 시대에 우리가 사랑하고 싶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와는 마음을 나누고, 의미있는 관계를 맺고 , 그에게 만큼은 모든 것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신비롭다고 할 만한 최초의 매혹에 끌리는 경험. 자신을 사랑하듯 남을 사랑해보는 경험. 너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 말하고 그것을 간절히 꿈꿔보는 경험. 상실과 결핍, 방황 끝에 충만함을 맛보는 경험. 한 사람을 통해 세계를 맛보는 경험. 한 사람을 사랑한 덕에 세계가 달라지는 경험. 온전히 이해받아 보는 경험. 자신을 벗어나보는 경험. 다른 사람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보는 경험.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경험...
사랑 안에서만 가능한 이런 경험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들여다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생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는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우리에겐 무엇이 빠져 있는가. 사랑은 우리 삶에 일어난 시끌벅적한 사건이다. 조금은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사건이다. 그 사람이 없었으면 생겨나지 않았을, 불가능했을 어떤 세계가 태어나는 사건이다."
- 정혜윤, <하버드 사랑학 수업> 추천사 중에서.
2012년 12월 27일
21세기의 시작은 병리학적으로 볼 때 박테리아적이지도 바이러스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신경성 질환들,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이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다. 따라서 타자의 부정성을 물리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면역학적 기술로는 결코 다스려지지 않는다. (12쪽)
사회는 오늘날 면역학적인 조직과 방어의도식으로는 전혀 파악할 수 없는 구도 속으로 점차 빠져들어가고 있다. 이 새로운 구도는 이질성과 타자성의 소멸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한다...타자성 역시 날카로움을 잃고 상투적인 소비주의로 전락한다. 낯선 것은 이국적인 것으로 변질되며, 여행하는 관광객의 향유 대상이 된다. 관광객, 또는 소비자는 더이상 면역학적 주제가 아니다. (13쪽)
면역학적 패러다임은 세계화과정과 양립하기 어렵다. 면역 반응을 촉발하는 이질성은 탈경계과정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면역학적으로 조직화된 세계는 특수한 공간구조를 지닌다. 그것은 경계선, 통로, 문턱, 울타리, 참호, 장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보편적 교환과 교류과정을 가로막는다. 오늘날 삶의 모든 영역은 일반적인 난교 상태로 특징지어지며, 이는 면역학적 관점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이질성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16쪽)
과잉생산, 과잉가동, 과잉 커뮤니케이션이 초래하는 긍정성의 폭력은 '바이러스적'이지 않다. 면역학은 그러한 폭력에 대해 아무런 수단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긍정성의 과잉에 대한 반발은 면역 저항이 아니라 소화 신경적 해소 내지 거부 반응으로 나타난다. 과다에 따른 소진, 피로, 질식 역시 면역 반응은 아니다. 그것은 모두 폭력 현상으로서 면역학적 부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이러스성 폭력에 해당되지 않는다. (20쪽)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소진증후군과 같은 신경성 질환은 바이러스성 폭력과 같이 여전히 내부와 외부, 자아와 타자의 면역학적 도식을 따르며, 시스템에 적대적인 특이한 개별자나 이질성을 전제하는 개념으로는 정확히 기술할 수 없다. 선경성 폭력은 시스템에 이질적인 부정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시스템적인 폭력, 시스템에 내재하는 폭력이다. 우울증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나 소진증후군도 긍정성 과잉의 징후이다. 소진증후군은 자아가 동질적인 것의 과다에 따른 과열로 타버리는 것이다. 활동과잉에서 과잉은 면역학적 범주가 아니며, 다만 긍정적인 것의 대량화를 의미할 뿐이다. (24쪽)
능력의 긍정성은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따라서 사회적 무의식은 당위에서 능력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성과주체는 복종적 주체보다 더 빠르고 더 생산적이다...능력은 규율의 기술과 당위의 명령을 통해 도달한 생산성의 수준을 더욱 상승시킨다. 생산성이란 측면에서 당위와 능력 사이에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적 관계가 성립한다. (28쪽)
긍정성의 과잉상태에 아무 대책도 없이 무력하게 내던져져 있는 새로운 인간형은 그 어떤 주권도 지니지 못한다.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물론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강조적 의미의 자아개념은 여전히 면역학적 범주다. 그러나 우울증은 모든 면역학적 도식 바깥에 있다.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31쪽)
멀티태스킹이라는 시간 및 주의 관리 기법은 문명의 진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멀티태스킹은 후기근대의 노동 및 정보사회를 사는 인간만이 갖추고 있는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퇴화라고 할 수 있다...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적 주의(attention)에 힘입은 것이다. 문화는 깊이 주의할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깊은 주의는 과잉주의(hyperattention)에 자리를 내주며 사라져가고 있다. 다양한 과업, 정보 원천과 처리 과정 사이에서 빠르게 초점을 이동하는 것이 이러한 산만한 주의의 특징이다. (35쪽)
기계처럼 어리석게 계속되는 활동은 중단되는 일이 거의 없다. 기계는 잠시 멈출 줄을 모른다. 컴퓨터는 엄청난 연산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다. 머뭇거리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컴퓨터가 인간의 뇌보다 더 빨리 계산할 수 있고 엄청난 데이터를 조금도 토해내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컴퓨터에 어떤 종류의 이질성도 들어설 여지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컴퓨터는 긍정기계이다. 천재 백치가 보통은 계산기밖에 해낼 수 없는 과제를 척척해내는 것은 바로 부정성의 부재와 자폐적 자기 관련성 덕택이다. 세계가 전반적으로 긍정화되는 추세 속에서 개인도 사회도 자폐적 성과 기계로 변신한다. (58쪽)
(한병철, "피로 사회" 중에서)
존 파이퍼는 완전히 확신하고 있다...그는 자신의 관점으로 보는 '하나님의 의'가 '언약적 신실함'보다 더 깊은 의미이며 '법정적' 함의보다 더 깊은 의미라고 주장한다. 그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관심이라고 주장한다. (83)
'하나님의 의'가 실제로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관심'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학자는 내가 알기로는 옛관점, 새관점, 가톨릭, 개혁주의, 복음주의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폭넓게 지지받는 관점은 체다카/디카이오쉬네가 일반적으로는 '규범에의 순응'을 의미하며, 이 의미가 하나님의 '의'라는 맥락에서 사용될 때 가장 개연성이 높은 것은 그것이 하나님 자신이 세운 규범, 다른 말로 하면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충실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패커는 이렇게 말했다. "이 본문들(이사야와 시편)이 압제받는 자신의 백성들을 하나님이 변호하시는 것에 대해 그의 '의'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과 맺은 하나님 자신의 언약적 약속에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84)
파이퍼의 해석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전가(imputation) 교리 체계 안에서, '하나님의 의'에 대한 그의 특이한 정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전혀 분명하지 않다. 만약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관심'이라면 이 의를 믿는 사람에게 전가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86)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내내 창세기 15장을 반복해서 인용하며, 이 사실은 바울이 말하려는 내용을 강력하게 암시해준다...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상을 알게 된다.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을 통하여, 전 세계를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단일한 계획'. 이것이 내가 바울에 관한 글을 쓰면서 줄임말로서 '언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이다... 이 위대한 내러티브가 바울 자신에 따르면 창세기 15장, 신명기 27-30장, 다니엘 9장 같은 '언약적인' 본문들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87)
로마서 3장 1절~8절의 주제는 하나님의 속성과 사람의 실패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불충성'은 그들의 믿음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요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계를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지만 이스라엘이 그 위임에 충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파이퍼에 반대하여 로마서 3장 5절의 "디카이오쉬네 떼우'를 '언약적 신실함'으로 번역하여 이해할 수 있는 이유이다.(88-89)
파이퍼는 그의 전체적인 논의 안에서 법정적인 비유의 중요성을 격하하려고 시도하는데, 이는 극히 설득력이 없는 시도이다...첫 번째에서 다말, 두 번째 예에서의 다윗이 소유하게 되는 '의'의 상태는 히브리 소송에서 법정이 그들이 옳다고 판결을 내렸을 때 무죄를 선고받은 피고나 유리한 판결을 받은 원고가 소유하게 되는 상태로서, 절대 그 재판을 판결한 판사의 '의'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89-90)
파이퍼는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 자신의 영광에 대한 그의 관심으로 본다. 이는 이를테면 하나님의 일차적인 관심이 결국 자신에게로 귀착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당연히 그러한 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창조로부터 언약을 거쳐 새 예루살렘까지 흘러가는 위대한 성경 이야기는, 자신이 아닌 그 외의 모든 것의 번영과 안녕에 대한 하나님의 흘러넘치는, 인자한, 창조적인 사랑에 대해서, 그렇게 불러도 괜찮다면 하나님의 관심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한다...물론 하나님 자신의 영과엥 대한 관심과도 연결되어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그와 반대되는 하나님의 외부를 향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는 사랑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라는 개념이 신적 나르시시즘의 형테로부터 구출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특별히 삼위일체 하나님이 언제나 자격이 없는 사람들, 자격이 없는 이스라엘, 그리고 자격이 없는 피조 세계를 향해 풍성하고 인자한 사랑을 끊임없이 쏟아붓고 계시기 때문이다. (92-93)
“왜 이런거지?” 아버지가 내뱉은 의문문의 문장에 대답할지 말아야 할지를 잠시 망설였던 저는 조용히 되물었습니다.“아빠, 뭐가요?” 아마도 그 날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었나 봅니다. 비록 그 상대가 날마다 공부는 뒷전에 내팽개치고 놀기에 바쁜 아들이었을망정 말입니다.“어…그게 말이야…” 아버지는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성호야 내가 한참을 생각해도 잘 모르겠구나.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사람들을 교회에 많이 보내주시는지 말이야. 오늘 주일 예배 숫자가 5천명이 넘었어. 오늘 예배 후 차를 타는 대신 집까지 천천히 걸어오면서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도 정말 알 수가 없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지. 나 같은 사람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까지 이렇게 쏟아주시는 그 뜻을 도통 알 수가 없어.” '아니, 사람이 많아지면 좋은거지…별 이상한 걸 가지고 다 고민이네….'아버지의 불평 아닌 불평에 대답할 가치를 못 느낀 저는 내려놓았던 사과를 다시 집으며 보고 있던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얼마든지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단 몇 십 초에 불과했던 그 날의 기억이 아직까지 이렇게 생생하게 제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그 날 제가 느꼈던 바로 그 ‘이상함’ 때문입니다. 좋아해야 할 일을 놓고 좋아하는 대신 고민하고 당황하는 아버지의 그 모습이 준 의아함 때문입니다. 비록 그 날 이후 아버지는 늘어나는 사람들이 주는 고민을 우리 가족들에게 드러내 얘기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무려 이십 년이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던 아버지의 그 당혹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라지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의 목회 전반에 대한 깊은 고민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 고민의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바로 아버지가 지향하고 붙잡은 자신의 교회론과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오는 교회의 현실이 서로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론
아마도 많은 분들은 아직도 3년 전 상암 운동장에서 열린 평양 부흥 100주년 기념 예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날 설교에서 절규에 가까운 회개의 메시지를 내뿜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혹자는 도대체 옥한흠 목사는 뭘 그렇게 잘못한게 많아서 함께 기뻐하고 감사해도 모자란 부흥 100주년에 저런 찬물 끼얹는 설교를 할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 날 하나님께서 100년 전 부어주신 그 부흥의 역사를 기억하며 감사와 찬양 대신 하나님 앞에 회개의 통곡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그만이 갖고 있던 바로 이 오랜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목사로서 교회는 커졌고 사람들은 많아졌을지 몰라도 자신이 믿고 붙잡고 가던 '교회론'에 걸맞는 결과를 교회 속에서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 말입니다.
그만큼 아버지에게 '교회론'은 사랑의교회를 목회하는 내내 생명과도 같이 붙잡고 있던 가치였습니다. 아버지는 '교회론'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저에게 있어서 교회론은 목회자와 교회가 사는 생명과도 같습니다. 교회론이 왜 생명과 같으냐고 물으면 목회가 살고 죽는 것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도들을 영적으로 죽이느냐 살리느냐를 판가름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무엇이냐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목회자는 진정한 목회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목회자의 생명을 결정하는 '바로 그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중요한 교회론이 그가 목회하는 교회의 현실과 부합되지 않을 때 그 사실은 아버지에게 말못할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점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현실이 충돌할 때 고민하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그토록 붙잡고 있던 그의 교회론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 제가 관심을 갖는 교회론은 어떤 영역이나 분야가 아니고, 교회의 본질과 연결된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즉, 교회의 주체가 누군인가 하는 것입니다. 교역자인가 아니면 평신도인가?저는 교회의 주체가 평신도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했고, 교회 주체인 평신도를 위해 목회자가 어떤 사역을 우선에 두어야 하는지, 성도들에게 주어진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스러운 신분과 소명이 무엇인지, 그것을 목회자로서 어떻게 극대화시켜줄 수 있는지 등 이런 것을 고민하는 것이 저의 교회론의 중심이 되어 버렸습니다.....전통 목회는 평신도가 동원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저는 평신도를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주체, 동역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결국 아버지가 붙잡은 교회론의 핵심은 교회의 주체가 누구인가의 문제였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주체에 대한 재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어떻게 볼 때 목회자를 위해 존재했다면 이제 교회는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아니었습니다. 이를 위해 평신도는 교회의 주체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그 말씀에 의지해 그리스도를 닮은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야만 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목사와 교사를 교회에 보내셨으며 이제 교회는 기존의 예배 공동체와 선교 공동체로서의 정체성 외에 훈련 공동체로서의 또 하나의 얼굴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평신도를 명실상부한 교회의 주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그들에 대한 훈련이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결국 아버지의 교회론이 꽃피기 위해 필연적으로 소그룹을 중심으로 한 제자훈련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자도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교회의 주체이자 주인이 평신도라는 사실과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는 것이 왜 서로 충돌할까요? 도리어 좋아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교회의 주체되는 평신도들이 늘어나니까 말입니다. 주체들이 늘어나면 교회도 더 강성해지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교회론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인 제자도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교회론을 실현하는 실천적 방안으로 제자도를 정리하며 그 내용의 핵심을 다음 두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1. 한 사람 철학
정말로 아버지는 한 사람을 붙잡고 사역을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래 전 성도교회 대학부를 맡았을 때에도 당시 대학부에 남아있던 단 한 명의 학생, 지금의 방선기 목사님을 붙잡고 대학부를 시작했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시작할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이 볼 때 무식하고 답답한 방식인 소그룹 훈련에 매달려 매일을 씨름했습니다. 밤마다 제자훈련에 치중하다보니 새벽에 일어날 수 없었던 아버지에게 많은 분들은 새벽기도를 인도하지 않는 이상한 목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커지며 더 이상 소그룹을 직접 인도할 수 없게된 이후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제자훈련 교재 집필에 진액을 쏟았습니다. 아버지에게 한 사람은 교회 전체였고 교회는 바로 한 사람이었습니다.
2. 섬기는 리더쉽
교회의 주체를 평신도로 이해하고 그들을 양육하는 사명을 하나님께 받았다는 그의 교회론을 근거할 때 아버지에게 목사가 평신도를 섬겨야 하는 존재임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혹자는 가르치는 사람이 어떻게 섬길 수 있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늘 같은 주인의 아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를 생각할 때 가르치는 자가 사실상은 섬기고 있다는 점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에게 그가 지향하는 예수님을 닮은 제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남을 섬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섬김의 모델은 누구보다도 자신을 비롯한 목회자들에게 가장 먼저 적용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렇기에 ‘목회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동시에 성도의 종이다’라는 신념 아래 그는 자주 '이끌면서 섬기고 섬기며 이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주체는 평신도이며 주체된 그들을 바로 섬기며 이끌기 위해 목회자는 한 사람 철학으로 무장되어야 한다고 확신한 아버지에게 너무도 커버린 교회는 한 사람 철학을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든 구조, 제대로 평신도를 섬기기 힘든 구조의 그 무엇으로 다가왔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 은퇴 후 저는 제 목회가 자체적으로 자기 모순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너무 키워버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 교회론에 부합한 교회는 너무 비대해져 버리면 그 정신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 교회가 교회론과 제자훈련이 엇박자를 이룬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것은, 양이 많아져 버리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제가 은퇴할 때 사랑의교회가 주일 출석 장년 교인수 2만 3천명, 전체 등록 교인수 5만 명, 벌써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지금 사랑의 교회는 어찌 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제자훈련의 선두주자로서 교회론으로 볼 때, 그 정신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또 교회론의 본질에서도 위선자적인 입장에 빠질 수 있어 고민이 됩니다."
아버지는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정말로 내가 내 자신이 주장하는 대로 한 영혼에 최선을 다해 집중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가 과연 이렇게 클 수 있었을까? 아니, 결론적으로 이렇게 커진 상태에서 이제 더 이상 한 사람 철학을 바탕으로 한 나의 교회론 자체가 아예 가능이나 한 얘기일까?"
은혜 또 은혜
아버지의 사랑의교회 목회 내내 이런 고민 속에서 그가 하나의 돌파구로 붙잡은 길은 그냥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목숨을 건 설교준비였습니다. 아버지에게 나날이 늘어나는 성도가 주는 내적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길, 그나마 많은 성도들을 제대로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설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2004년 아버지가 조기 은퇴했을 때 많은 언론들은 모범적인 사역 계승이자 살신성인하는 지도자의 모습이라며 아버지를 일제히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제가 아들로서 볼 때 아버지가 조기은퇴를 결심한 진짜 이유는 89년에 잃은 건강이 주는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매주 피말리는 설교준비가 영적 중압감을 더 이상 버텨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설교는 십자가이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양심을 놓고 셈해야 할 몫이기도 했습니다.
" 흔히들 나를 보고 매주마다 수만 명의 성도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느냐고 하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설교가 나에게 보람은 안겨주었을지 모르지만,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설교의 부담감 때문이었다. 설교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숨은 군중들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강대상에 서고 싶지 않을 때가 없지 않았다."
이런 아버지가 매주 다가오는 설교의 중압감 속에서 붙잡은 유일한 것은 다름아닌 더 큰 은혜에의 갈망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역 전체를 꿰뚫는 이론적 개념으로서의 토대가 그의 교회론이라고 한다면 목사 옥한흠이라는 한 인간의 신앙 전체를 관통하는 한 가지는 다름아닌 은혜에의 갈망입니다. 아버지는 그 중에서도 어린 시절 자신이 맛본 특별한 은혜에 대한 그리움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내가 은혜에 취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은혜는 식지 않고 지속되었다. 성경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진하게 가슴을 울리는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황홀하게 만드는지, 나는 이 기간에 넘치도록 맛보면서 살았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이 강렬한 은혜의 맛이 서서히 식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그 은혜의 경지를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때에 받은 은혜가 내 한평생의 신앙생활과 목회의 질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요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받은 은혜의 질이 목회의 질을 결정한다는 아버지의 믿음은 그의 목회 내내 더 큰 은혜에의 사모함으로 드러났습니다. 무엇보다 목회자로서 받는 은혜의 깊이가 성도들의 신앙의 깊이를 결정한다는 그의 생각은 그에게 결코 쉽지 않은 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은혜에 대한 갈망이 간절한만큼 설교는 아버지에게 더 큰 무게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매주 설교를 놓고 그가 치르는 영적 전투는 피를 말리는 치열함 그 자체였습니다.
아버지는 어쩌면 단 한 번도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제대로 전달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은퇴할 당시 어느 방송에서 고백했듯이 자신의 부족한 은혜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의 설교를 통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데 대하여 성도들에게 미안해 하고 하나님 앞에 송구해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그렇게 무력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은혜에 갈급한 아버지의 그 약함을 통해 성령께서 더 강하게 그의 설교를 통해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한국설교학회장이며 서울신대 설교학 교수인 정인교 목사는 아버지의 설교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 우선 주목할 것은 설교를 대하는 옥목사의 진지성이다. 옥 목사는 자신이 설교를 준비하는 작업을 ‘십자가’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란 벗어버리고 싶은 부담을 의미한다. 그가 설교를 이토록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전하는 설교 말씀이 과연 하나님의 바른 말씀인가'에 대한 근본 질문에서 오는 고통이다. 옥목사는 바로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설교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고민과 고통이 그의 설교를 균형 잡힌 모범으로 만드는 기초가 되었다. 그의 설교에 묻어나는 설교자의 고민 그리고 말씀과의 치열한 전투 흔적이라는 진지성은 옥목사 설교를 설교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이다….중략….. 마지막으로 옥 목사에게서 보여지는 설교자로서의 특징은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설교자로서의 기품이다. 이 기품이란 본질적으로 그의 신앙적 인격과 투명한 삶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에게서 배어나오는 진지함과 장중함은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신’으로 그를 각인시킨다. 이것은 최근 강단을 희극화시키고 가볍게 만드는 일부 ‘코미디형 설교자’와는 대별되는 모습이다. 그는 강단에서 결코 자신을 과장하지 않을 뿐더러 회중의 귀를 즐겁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회중을 몰아붙이고 성도의 치부를 드러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접근은 일부 과도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말씀 전달자로서의 설교자에 대한 자각과 온전한 삶과 균형 잡힌 인격을 모토로 하는 것이다."
고독
아버지는 목사로서도 또 인간으로서도 고독했습니다. 무엇보다 설교자라는 짐을 숙명적으로 지고 사는 사람으로서 은혜에 대한 갈급함은 그를 필연적으로 고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고독은 아버지 스스로가 초래한 결과였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알지 못해 그 큰 은혜를 사람에서 제대로 선포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사람들과 어울려 놀 여유를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무겁고 크며 거룩한 존재일수록 설교는 그에게 엄중하며 생명을 다루는 문제였습니다. 항상 자신은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말하던 아버지는 하나님과 단 둘이 대면하는 인간적 고독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채찍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지키기 위해 찾은 답이 어떤 의미로 아버지에게는 '고독'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종종 이런 목회자의 고독을 '날마다 죽는 목회자'라고 표현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이 고독의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오늘의 목회자들을 보며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교회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대안은 목회자가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교회가 커지만 목회자도 사람이니까 잘못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전부 외형을 가지고 평가합니다. 교회가 커지만 목회자가 대단한 인물로 부각되고, 그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하게 됩니다. 사방에서 끌어당깁니다. 적당히 거절하지 못하면 정신없이 자기 과시하는 데 애쓰게 됩니다. 양떼를 돌보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고 설교 준비를 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생명을 짜는 설교 준비가 아닌 설교를 위한 설교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은 없어지고 건물만 남는 교회가 됩니다. 교회가 병들지 않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설교준비에 죽어야 하고, 밖으로부터의 유혹, 권력으로부터의 유혹, 인기에의 유혹을 철저히 끊고 자기가 죽을 때, 교인들의 숫자가 많아져도 그것을 커버할 수 있는 만큼의 큰 품이 생기게 됩니다. 그 밑에서 공부하는 부교역자도 다 본받기 때문에 위험성이 크지 않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버지가 좀 더 사람들과 어울리고 인생의 다양한 재미들을 즐기며 살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에게 육체의 병이라는 가시를 통해 그가 더욱 더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을 향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고독과 병을 보며 저는 약함 가운데 능력이 되는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질병이 그의 설교를 듣는 누군가에게 치료의 원인이 되었고 그의 고독이 누군가에게 예수님과 동행하는 기쁨의 원천이 되었음을 잘 알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미안함
인공 호흡기를 낀 아버지는 어제 간신히 손에 들린 펜으로 이렇게 쓰셨습니다. "성도들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아마도 아버지의 진심은 이것이었을 듯 합니다. "성도들에게 미안하다..."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성도들에게 미안해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 깊이 더 넓게 보여주지 못하는 설교자로서의 미안함 뿐 아니라 자신의 교회론과는 달리 너무도 커 버린 교회 때문에 또한 성도들에게 미안해 했습니다. 아버지의 이 미안함은 지금도 여전히 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랑의교회 건축 과정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교회론에 걸맞게 좀 더 제대로 목회했다면 결코 더 큰 교회 건물을 지어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더 큰 교회 건물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가 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했습니다. 그랬기에 항상 불편한 환경 가운데서 예배 드리는 성도들을 보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사랑의교회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보내주시는 데에는 분명 그 분의 거룩한 뜻이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 확신 속에서 전체 성도가 다 교회 건축을 찬성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그가 생명을 걸고 함께 동역한 교회의 주인인 사랑의교회 성도들의 판단을 신뢰했습니다.
주일 오후 중환자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버지는 폐를 대신해 호흡하는 인공호흡기를 꽂고 24시간 꺼지지 않는 중환자실의 형광등을 바라보며 병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는 암투병을 기록한 그녀의 책에서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 순간씩만 살기로 했다.'라고 썼습니다. 지금 아버지에게 그 한 순간 조차도 얼마나 길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아버지는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자신이 무슨 고통을 제대로 알았다고 '고통에는 뜻이 있다'라는 책을 냈을까라고 하며 자조의 말을 내뱉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말은 안 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한번의 기회를 더 주신다면 이제는 고통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좀 더 잘 전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분명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하나님께 지난 몇 년 간의 그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결코 그렇게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70년이 넘는 평생동안 당신이 하나님으로 받은 축복과 은혜가 이토록 넘치는 데 지금 이 세상에서 좀 더 살고 싶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너무도 염치 없기 때문이라고요. 하지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좀 더 시키실 일이 남아있으면 분명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실 것이고 그게 아니면 가장 좋은 시간에 자신을 데려가실 것이라고요. 아버지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 하나님은 이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유독 아버지의 설교들 결론이 '하나님을 사랑하라'가 많은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 모든 문제의 답이며 또한 인생의 본질이니까요.
저는 지금 저 중환자실에 홀로 누워 있는 아버지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뭔가를 전하고 싶다면 그 메세지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작년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목회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회한을 피력했습니다.
" 사랑의교회는 양적으로 너무 비대해져 버렸습니다. 교회론대로 목회했다면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즉, 사랑의교회라는 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도록 좀 더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목회를 했어야 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하나님 앞에 죄송스럽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이제 사랑의교회라는 한 교회가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가 커가도록 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크게는 사랑의교회와 제자훈련의 철학을 함께 나누는 모든 교회들 그리고 작게는 저희 가족의 몫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아버지는 무엇보다도 교회 속에 파고든 세속주의를 향해 경계하며 지금 교회는 침체가 문제가 아니라 교회 본질이 파괴되는 문제 앞에 서 있다고 통탄했습니다.
" 교회가 처한 가장 심각한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속주의다. 세상적인 가치를 거의 다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 입장에서 수용을 하되, 성경적으로 적당히 포장해서 수용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 사람들이 다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한국 교회를 생각하며 세속주의가 이토록 교회 깊이 파고든 오늘날 유일한 치료약은 평신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제자로 자라나고 목회자는 한 명의 평신도를 위해 죽을 수 있는 한 사람 철학으로 거듭나는 것 밖에는 없다고 말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목회에 '엇박자'가 발생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그 '엇박자'를 통해 하나님만이 만드실 수 있는 기막힌 '화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교회를 통해 만들어내셨던 아름다운 화음을 통해 영광 받으셨듯이 하나님께서 이 순간에도 싸우고 있는 '암'이라는 고통을 통해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기를 소원합니다.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시는 모든 성도들에게 가족을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다시 한번 설교자 옥한흠을 강단에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옥성호
**기사출처: 이태형 국민일보 I미션라이프부 부장 thlee@kmib.co.kr
에미넴의 팬들은 화목하지 못한 가족관계, 경제 문제, 편부모 가정의 성장 환경, 여자친구와의 결별 등과 같이 영화가 묘사하는 에미넴의 난처한 상황에 자신들도 공감한다고 털어 놓는다. 기독교인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고통을 인정하고 살핌으로써 그들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어쩌면 에미넴은 그런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교회에 상기시켜 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p153)
"기독교인이 에미넴의 음악을 들어도 될까?"라고 질문하는 것도 중요하나, 그 질문에 집착하는 태도는 기독교인이 은둔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제한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이 말했다고 전해지듯이 에미넴은 사실상 "미국 미성년자들에게 소아마비 다음으로 가장 해로운 위협"일지도 모른다. 에미넴이 그 정도로 심상찮은 위협을 의미하긴 하지만, 정말 기독교인이라면 청취자들이 에미넴에 심취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만큼 매력적인 새로운 문화 아이콘을 창조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 (p156)
(사리스키, 절망과 속죄-에미넴에 대한 신학적 평가)
1969년 7월 19일, 3선개헌반대 시국대강연회 연설 (효창구장)
▶ 미친 황소는 도살장으로'71년 장충단공원 연설' 전문 (1971. 4. 18)
‘독재·특권경제 끝내겠습니다”
연설을 시작하기 전 나의 경쟁상대인 공화당 박정희 후보의 건강과 건투를 빕니다. 나는 전국의 유세결과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제야말로 우리의 승리로 결정났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번에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박정희씨 영구집권의 총통시대가 오게 됩니다. 나는 공화당이 그런 계획을 했다는 사실과, 이번에 박정희씨가 승리하면 앞으로는 선거도 없는 영구집권의 총통시대가 온다는 확고한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야당이 이번에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더 이상 싸워나갈 힘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박정희씨는 며칠 전 대전에서 연설하면서 ‘나의 상대는 북괴뿐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김일성은 박정희 후보만의 상대가 아니라 3천만 국민의 대결상대요, 여러분과 나의 대결상대인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공산당을 키워주고 공산당을 승자로 만든 박정권의 독재와 썩은 정치와 특권경제를 우리가 다같이 종식시키지 않으면 이 나라는 장차 공산당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공산당을 이기기 위해서도 박정권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것을 나는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이 나라의 독재체제를 단호히 일소할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지금부터 4년 전 목포에 나를 잡으러 왔었습니다. 유명한 6·8 목포선거 당시 내가 박대통령에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나서 국회의원 부정선거한 것을 보니까 삼선 개헌할 목적 아니냐” 이랬더니 박대통령이 목포 역전에 2 만여명을 모아놓고 연설을 했습니다. “삼선개헌은 절대로 안한다. 내가 삼선개헌을 한다는 것은 야당놈들의 모략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2년이 못 가서 재작년에 절대로 안 한다는 삼선개헌을 해버렸습니다.
‘대통령은 두 번밖에 할 수 없다’는 헌법 제69조 3항은 누구도 고칠 수 없다고 헌법부칙에 못박아 앞으로 이 나라에서는 누구든 자기 한 사람의 영구집권을 위해 헌법을 고치는 일은 영원히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나는 정권을 잡으면 정보정치를 일소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 나라는 말만 민주주의입니다. 백성 민(民), 임금 주(主) 백성이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백성에게 선거의 자유가 없습니다. 야당유세장엔 나오지도 못하고 가더라도 박수를 치지 못합니다.
중앙정보부는 언론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그래서 신문과 방송이 사실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부정선거를 지휘하고 야당을 탄압하고 분열시키고 심지어 여당조차도 박정희 1인 독재에 반대한 사람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재작년 삼선개헌 때 반대한 공화당 국회의원들은 지하로 끌려가서 몽둥이로 맞고 온갖 고문을 당했습니다. 삼선개헌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공화당 의장직을 그만두고 탈당한 김종필이라는 사람이 오늘날 자기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정보정치의 압력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공산당을 이깁니다”
중앙정보부는 학생들을 괴롭히고 학자와 문화인들을 탄압하고 있으며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경제에 개입해서 모든 이권에 간섭합니다. 요즘도 경제인들을 수백명 불러다가 “김대중에게는 돈을 주지 말아라. 만일 돈을 주었다가는 너희 사업을 아주 망쳐놓겠다”고 협박해서 절대로 안 준다는 각서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각서를 썼다는 말도 밖에 나가서 안 하겠다는 각서를 또 한 장 받고 있습니다.
중앙정보부는 독재의 본산입니다. 이 같은 정보정치를 그대로 놔두면 이 나라의 암흑과 독재는 영원할 뿐 아니라 국민 여러분의 권리와 자유가 소생될 길이 없습니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중앙정보부를 단호히 폐지해서 국민의 자유를 소생시킬 것을 여러분 앞에 약속드립니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지방자치를 실시해서 민주주의 기초를 확립하겠습니다. 대통령 직속 하에 여성지위향상위원회를 두어서 우리 1천5백만 여성들의 교육과 생활과 사회적 대우에 대해 특별배려를 하고, 우리 여성들의 능력을 개발해서 지금까지 파묻혔던 여성들의 실력을 국가건설에 활용해 새로운 민족중흥의 힘을 발휘하게 할 것입니다. 여성문제에 대한 특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산당을 잡으려는 중앙정보부나 전국의 정보경찰들이 지금 공산당을 잡고있습니까. 내가 전국을 다녀보니까 그 사람들이 밤잠 안자고 잡으러 다니는 것은 공산당 간첩이 아니라 신민당 대통령후보 김대중을 잡으러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공산당도 잡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국군을 정치적으로 악용해 사기를 떨어뜨리고 전력을 저하시키고 있습니다. 군대내 사고가 빈발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고립돼버렸습니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1년 이내 서울 5백50만 시민들이 안심하고 발 뻗고 잘 수 있는 국방태세를 완수할 것입니다. 첫째로 완전히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부가 서기 때문에 공산당이 발붙일 데가 없습니다. 모든 정보기관이 공산당 잡는 데 집중하니까 간첩이 얼씬도 못합니다. 국군을 정치적으로 완전히 중립시키니까 오직 대공전투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국제적으로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살아나서 신임과 존경을 받게 되니까 우리 우방국가들이 더욱 도와주고 여기에 미군의 철수가 준비됩니다.
이번에 정권교체가 돼야만 민주주의가 승리하게 되고, 우리의 안보태세는 반석 위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가지 책임지고 말하겠습니다. 김일성은 앞으로 10년내에는 대한민국을 침범하지 못합니다. 38선을 돌파하지 못합니다. 김일성은 지금 그럴 힘이 없습니다. 다만 문제는 우리 정치가 잘못돼서 우리 내부에서 사고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치를 하루빨리 시정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정권교체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 내가 향토예비군을 폐지한다고 말했더니 전국 국민들이 호응했습니다. 우리는 향토예비군이 없어도 예비역이 있어서 유사시 10분내 동원할 법과 제도가 있는 것입니다. 향토예비군은 민주주의 아래서는 필요가 없습니다. 향토예비군은 이중 병역의무입니다. 헌법위반입니다. 중앙정보부에서는 향토예비군 중대장을 불러다 훈련시키는데 그것이 공산당을 잘 잡으라는 게 아니라 이번 대통령선거에 김대중 후보를 잘 때려잡으라는 얘기나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정권을 잡으면 국방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독재체제 강화에 악용되는 군사조직, 향토예비군을 전면 폐지한다는 것을 약속하는 바입니다.
공화당은 우리에 대해 생트집만 잡고 있습니다. 내가 볼 때 박정희 정권은 바뀌게 돼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선거 때는 야당이 비판을 하고 트집을 잡고, 여당이 정책대결을 하려고 하더니 이번에는 야당이 정책대결하고 여당이 트집만 잡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화당이 이미 국민에게 내세울 밑천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4대국 한반도 전쟁 억제 방안’은 아까 유진산 당수가 말했기 때문에 내가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 나라에서 제2의 일·청전쟁, 일·러전쟁을 하지 말아라. 뒷구멍에서 조정해 이 나라에 다시는 6·25같은 것을 일으키게 하지 말아라’는 겁니다. 뭐가 잘못입니까.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남북교류 문제에 있어서도 김일성이 전쟁을 포기하고 파괴분자를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 동포끼리 소식도 알아보고 체육경기도 하고 기자도 왔다갔다 하자, 뭐가 나쁘냐 말입니다. 세계에서 동족끼리 자기 부모형제간에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편지도 못하는 나라는 박정권 치하 대한민국뿐입니다.
국제정세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한 ‘4대국의 한반도 전쟁억제’ 방안은 내가 지난번 미국에 갔을 때 험프리 전 미국 부통령도 내 설명을 듣고 “당신의 그런 훌륭한 정책을 미국 지도자들이 다 알았으면 좋겠다”고 널리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버드대학의 라이샤워 교수나 MIT대학의 윌리엄 교수 같은 사람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닉슨 대통령도 금년 연두교서에서 아시아에서의 안전보장은 4대국가에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박정희씨에게 조그마한 국내정치를 악용하려고만 하지 말고 크게 아시아와 세계를 내다보고, 50년과 1백년 앞을 내다보고 국가의 운명을 생각하는 대통령학을 공부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요즘 지방을 다녀보면 도처에 ‘중단없는 전진’이라고 써 있습니다. 박정권이 전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진은 무슨 전진입니까. 이 나라에서 중단없이 전진하는 것은 오직 부패입니다. 이 나라의 부정부패는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박정희씨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청와대 비서실의 책임자, 경호실 책임자, 박정희씨 처남, 박정희씨 처조카 사위….
독일같은 데서 1백만∼2백만원짜리 비싼 개를 사다가 사람도 못 먹는 쇠고기를 먹이는 이런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단단히 세금을 물려야 합니다. 노인은 땅 한 평 없는데 30만평·40만평짜리 골프장이 대한민국에 10개 이상 있습니다. 단단히 입장세를 내야 합니다. 3백만원·5백만원짜리 보석반지를 끼고 다니는 사람들은 사치세를 내야 합니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은 적게 냅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나라나 사회의 형편도 생각지 않고 사치와 낭비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부유세와 특별세를 받는 일대 조세혁명을 단행할 것을 공약합니다.
군대와 국민은 하나
나의 공약에 대해 공화당이 실천가능성이 없다고 합니다. 이중곡가제와 도로포장, 초등학교 육성회비 폐지, 기타 지금까지 내가 한 공약에 모두 6백90억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예산 5천2백억의 1할5부만 절약해도 7백50억이 나옵니다. 오늘날 특정재벌과 결탁해 합법적으로 면세해준 세금만 1천2백억입니다. 정권을 잡아 받아들일 것을 받아들이면 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오히려 돈이 8백억이나 남는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박정권의 정신과 도덕을 무시한 정책을 시정해서 종교단체와 사회단체의, 또 문화인과 교육자들의 국민정신 재건과 국민도의 재건정책에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사회부패를 일소하고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하는 건전한 시민사회를 만들어 나라의 정신을 회복시키고 물질만능을 배격할 것입니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국내외에 걸친 민주 거국내각을 실시하고, 군에 대해서도 내가 완전무결하게 장악·통솔할 것입니다. 민주국가의 군대는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군대도 그런 군대입니다. 군대와 국민을 따로 갈라놓아 생각하는 것은 박정권의 독재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내가 이번에 승리하면 군대는 3군 총사령관인 나의 명령에 복종할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내가 박정희씨와 공명선거에 대해 협의하려고 해도 그는 안 하려고 합니다. 서로 만나서 얘기하자고 해도 안 합니다. 국민 앞에서 TV나 라디오를 통해 토론하자고 해도 안 합니다. 독재적인 수법만 취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을 총동원해서 부정선거를 하고 있습니다.
4·19는 학생의 혁명이었습니다. 5·16은 군대가 저질렀습니다. 이제 오는 4월27일은 학생도 아니고 군대도 아닌 전 국민이 협력해서 이 나라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의 손에 의해 평화적으로 정권교체한 위대한 민주주의 혁명을 우리가 이룩하자는 것을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7월1일은 청와대에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입니다. 서울시민 여러분, 7월1일 청와대에서 만납시다.
연금해제·사면복권 이후 서울에서의 최초 대중집회 연설 (1987.9.10 홍사단금요강좌)
민족발전을 위한 나의 정치철학
우리민족의 위대한 스승이었던 도산 안창호(安昌浩)선생! 이 민족을 그토록 뜨겁게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셨던 우리들의 애국자 安昌浩 선생! 이 분은 독립투사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의 진실한 교육자였습니다. 이 분은 독립만이 목적이 아니라 민족의 발전이 목적이었습니다.도산선생의 정신을 계승한 ,또 선양시키는 이 흥사단(興士團)에 와서 불초 이사람이 감히 민족발전을 위한 나의 생각을 말씀드린다는 것은 외람되기도 하지만,한편 생각하면 지극히 의의가 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께 양해구할 것은,너무 열기를 내서 말하는 이사람이 좀 더운데 저고리를 벗어도 됩니까?(네)
우리민족을 생각할 때,아시아 대륙의 동쪽에 조그만 혹같이 붙어있는 한반도를 생각할 때 ,우리는 참으로 기적같은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중국을 보십시오.지금부터 4천년 전에 중국에서 일어났던 오늘의 한(漢)민족,이들이 양자강 이남까지 ·서쪽까지 ·동쪽까지 동화시켜왔습니다. 한 때 이민족들이 중국을 점령해서 많은 제국을 세웠지만,특히 원나라를 세워서 100년을 지배한 몽고족의 징기스칸이 했던 것, 동·서로 그 판도를 넓혀서 아시아 대륙의 최대패자(覇者)였던 몽고족,이 몽고족이 오늘날 모두 중국에 포함되어 버리고, 몽고인민공화국에는 150만 밖에 사람이 없습니다.또 1616년에 만주족이 청나라를 만들어 청조 300년을 통치했습니다. 중국을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만주족은 한사람도 없이 증발했습니다.
그런데 기원전 108년,한무제가 우리나라를 쳐들어 왔던 이래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종교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중국의 영향을 받아온 우리 한민족! 우리가 어떻게 하여 중국사람되지 않고 ,몽고사람·만주사람 다 중국사람됐는데 ,어떻게 우리만 되지않고 ,아시아 동쪽이 한반도가 오늘날 6천만 대민족이 -여러분 ! 6천만이면 얼마나 큽니까? 세계 160개 나라 중에 12번째 대민족입니다.영국보다 불란서보다 이태리보다 큰민족입니다.이런 대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고 가장 교육수준이 높고 가장 부지런하고 가장 성취동기가 높은 이 민족이 여기 엄연히 있다,절대 중국사람되지 않는다,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민족을 생각할 때 과거 사대, 열등적인 역사관을 배제한다면,우리 조상들이야말로 이 어려운 지경에서 ,그 압도적인 영향속에서,우리 조선민족, 한민족의 자주성과 우리의 본질을 지켜온 우리조상들이 얼마나 위대한 조상들인지 새삼스럽게 감사하지 않울 수 없다 이거예요.만일 위대한 민족이 이웃나라를 함부로 강탈하고, 지배하고, 착취하고, 빼앗고 이런 민족을 위대한 민족 이라고 한다면 우리민족은 절대 위대한 민족이 아닙니다.
그러나 힘이 있어도 남을 침략하지 않고 그러나 내 주체성은 꼭 지키고 ,어떠한 경우에도 나의 본질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독자적인 문화,독자적인 의식구조,독자적인 정치·경제·학문, 제도를 유지해 가는 그러한 평화적이고 자주적인 민족이 위대한 민족이라면 ,우리 한민족은 위대한 민족임에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겁니다.(박수)
여러분! 독립운동의 역사를 보십시오.여기 안창호선생도 독립운동가의 한 분으로서 옥중에서 병을 얻어가지고 돌아가셨지만 세계에서 나라가 망했는데 근 40년동안,그 이상 이웃나라를 이리저리 방황하고 다니면서 독립군을 만들어 가지고 끝까지 투쟁한 그런 민족이 있습니까? 많은 식민지 민족이 있었지만 없습니다. 3·1운동이 나자마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워서 불과 9년전에 있었던 제국제도를 폐지하고 국왕제도를 폐지하고 민주공화제를 만든,이러한 진취적인 민족,그래서 고난속에서 ,박해속에서 ,천대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간판을 짊어지고 상해에서 중경으로 옮겨다니면서 끝내 해방되는 날까지 우리의 명맥을 유지하려고 했던 이런 민족이 세계에 있느냐 이거예요.
이를테면 나는 지난번에 헌법 전문(憲法全文)을 만들때,이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고,또 그것이 다행히 넣어졌습니다만,나는 이런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리의 해방은 미국의 승리 연합군의 승리 덕택이라는 말은 말은 안된다 이겁니다.만일 그렇다면, 카이로 회담에서, 포츠담 선언에서 한국 독립이 특별히 규정됐겠느냐? 한국의 독립이 그렇게 특별히 규정된 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의 선열들이 만주에서, 시베리아에서, 중국대륙에서 목숨을 걸고 황야에서 이리떼의 밥이 되면서도 싸운 그 덕택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해방이 외세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라는 사대주의적인 역사관을 단호히 버려야 한다 이말이에요.(박수)
이렇게 쟁취한 해방이었는데, 해방 이후 42년은 우리 민족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민족발전이 저해된 그런 42년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조국이 둘로 갈라져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아무 책임도 없이 미·소 강대국이 멋대로 줄을 쳐가지고 우리를 두 동강이로 잘라놨어요. 그래가지고 북쪽은 공산주의 , 남쪽은 자본주의 또 이렇게 점령군의 영향을 받게 됐어요. 이러한 우리의 본의 아닌 분단, 통일신라 이래 1300년 동안 유지해왔던 우리의 통일국가가 이와 같이 외세에 의해 분단됐다는 그 사실뿐만 아니라, 역대 남북을 지배한 정권 배후에서는 이 외세 강대국들이 자기들의 체제를 강요하고, 백성을 무시하고, 소수자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고, 이렇게 해서 자기 나라에 굴종하고 추종하는 그런 체제를 강요하고,(박수)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 민족의 발전을 저해한 최대 요인은 외세의 간섭이었다고 단언하면서, 그러한 외세의 간섭에 대해서 이것은 자기네들이 사적인 동기를 위해 여기에 영합하고 아부한 사대주의자들이 이 나라 민주발전을 망쳤다고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옳소!", 박수)
남한 내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우리의 민족발전을, 국민발전을 망친 것은 하나는 친일정권이요, 다른 하나는 군사정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박사, 명색이 애국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는 사람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친일파를 주위에 집결시켜 가지고 대한민국을 처음부터 친일파 일색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래서 군에는 광복군이나 독립군에 참가했던 사람을 제외되고, 만주군·일본군에 나갔던 일제의 고등계 형사들이 다 잡았고, 관리는 총독부 관리들이 다 잡았어요.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해서 애국자들은 전부 소외되었을 뿐만아니라 김구선생의 경우에서 본바와 같이, 우리의 절대 애국자인, 일본놈들도 감히 죽이지 못했던 그 분이 친일파들 손에 의해서, 李承晩정권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것이 얼마나 민족반역적인 것인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박수)
나는 지금도 그렇게 억울하게 돌아가신 김구선생, 황량한 벌판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떨다 돌아가신 애국자들, 아버지 때문에 일제시대에 박해받고 공부도 못하다가 해방 후도 여전히 고통에 휩쓸려 교육을 못받은 그 후손들, 반면에 친일파의 자식들은 전부 고관대작, 부자 아버지 덕에 외국 유학도 가고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대대로 잘사는 그 사실, 이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李박사 치하의 현실인 것입니다. 李박사의 신념은 친일파적이었습니다. 그런데 李박사 시대가 끝나고 나니까 박정희라는 진짜 친일파가 등장했습니다.(웃음)
오늘의 정권이란 것도, 이 친일정권 박정희씨 가 친일파의 후계자들이요, 이 정권의 교관들이나 이 정부 이 사회의 소위 지배층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아버지가 친일파였고, 그 돈으로 외국 유학갔던 사랍들이요. 이런 자들이 이 나라를 계속 지배하고 있으니, 민족정통성이 서지 않는, 정의가 서지 않는, 올바르고 정직하고 양심적으로 사는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는, 조국을 위해 몸바친 사람들이 버림받는 이런 사회야말로 민족발전을 근본적으로 저해하는 사회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중략)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 특별연설 (2009.6.11)
존경하는 선배 동지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많이 나와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6.15와 10.4선언을 생각할 때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 대통령과 저만이 북한에 가서 남북정상회담을 한 그 사건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과 저하고 이상하게 닮은 점이 많습니다. 둘 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고, 노 대통령은 부산상고, 저는 목포상고를 나왔습니다(청중 웃음).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돈이 없어 대학에 못 갔고 저도 돈이 없어 대학에 못 갔습니다(청중 웃음). 노 대통령은 대학 못간 뒤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가 됐고, 저는 열심히 사업해서 돈 좀 벌었습니다(청중 웃음). 그 후로 저는 이승만 정권, 노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 등 독재정권에 분개해 본업을 버리고 정치에 들어간 것입니다.
정치에 들어가서 또 다시 반독재투쟁을 같이 하는 등 노 대통령과 저는 참으로 연분이 많습니다. 당도 같이 했고, 국회의원도 같이 했고, 그리고 북한도 교대로 다녀왔습니다. 이런 걸 가만히 보니까 전생에 노 대통령과 저하고 무슨 형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형님은 제가 되고요(청중 웃음). 제가 노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 ‘내 몸의 반쪽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것은 지나간 과거만 봐도 여간한 인연이 아닙니다. 제가 대통령할 때 노 대통령을 해양수산부장관을 시켰습니다.
저는 오늘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을 맞이해서 먼저 이명박 대통령과 북한에 대해서 몇 말씀하고 싶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우리 국민이 얼마나 불안하게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개성공단에서 철수하겠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북한에서는 매일같이 남한이 하는 일을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 무력대항 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이렇게 60년 동안이나 이러고 있는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강력히 충고하고 싶습니다.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합의해 놓은 6.15와 10.4를 이 대통령은 반드시 지키십시오. 그래야 문제가 풀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방적으로 철수한 금강산 관광을 다시 복구시켜야 합니다. 개성공단에 노동자를 위한 숙소를 지어주기로 우리가 약속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6.15와 10.4의 약속을 지키고, 금강산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한 것을 철회하고, 개성공단 숙소 건설을 약속한 것 등 우리의 의무사항을 우리가 이행하겠다는 것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 어떻습니까(박수).
다음에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에게 말씀하고 싶습니다. 저는 북한이 많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1994년 제네바협정을 해 가지고 북한은 핵을 포기했습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 경수로를 지어주고 경제 원조를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클린턴 대통령이 합의해 놓은 것을 부시 대통령이 들어서 완전히 뒤집어버렸습니다. 여기에서 불신이 생겨났습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운동 중에 자기가 당선되면 북한과 이란의 수반들을 직접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후 자기의 대북정책은 부시 정책이 아니라 클린턴 행정부가 하던 정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북한의 기대가 아주 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중동, 러시아, 심지어 쿠바까지 대화하겠다고 손 내밀면서 북한에 대해서 한마디도 안 한다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참으로 참기 어려운 모욕입니다. 북한이 또 다시 속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갖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극단적인 핵개발까지 끌고 나간 것은 절대로 지지할 수 없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6자회담에 하루 빨리 참가해서, 또 미국과 교섭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해야 합니다. 한반도 비핵화는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제가 이번에 중국에 가서 시진핑 부주석을 만나 1시간 정도 얘기했는데, 중국 지도자 누구를 만나 봐도 북한 핵을 반대하는 것은 틀림없었습니다. 저는 중국이 북한 핵을 상당히 반대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북한이 핵실험을 하니까 중국이 상당히 엄격한 비난을 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대북결의안이 합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억울한 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핵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핵을 만들면 누구에게 쓰겠습니까. 거기에는 우리 남한 사람도 포함돼 있을 것입니다. 1,300년 통일국가, 5,000년 역사를 가진 우리가 우리끼리 상대방을 전멸시키는 전쟁을 해서 되겠습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계속해서 아직 오바마 대통령이 대북 정책을 발표 안했기 때문에 기다릴 필요 있습니다. 물론 초조한 심정은 알겠지만,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클린턴 정책을 따라가겠다고 한 말이 있으므로 기다려야 합니다.
이번에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저와 만찬을 했는데, 클린턴 대통령은 저와 같이 한 햇볕정책을 실천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도 북한 핵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고, 그러나 상대방에 대해 상응하는 대가를 주면서 상대방 기분도 챙겨가면서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여러 가지 건의를 했는데, 자기가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여사에게 전달하겠다는 말도 한 일이 있습니다.
저는 북한이 요구한 안전보장과 경제재건, 미국과 일본과의 국교 재개 등을 미국이 존중하고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북한 핵 문제는 1994년 제네바 회담에서 합의되었고, 2005년 6자회담 9.19 합의에 의해서,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과 외교관계를 열고, 한반도는 평화협정을 맺고, 미국은 북한에 대해 경제적 지원을 한다는 것을 합의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교섭과 인내심을 가지고 연구하면서 해야지, 핵 문제를 갖고 나온다는 것은 안 된다고 김정일 위원장에게 강력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7월 14일 주한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 초청연설을 위해 준비했던 마지막 미발표 연설문
9.19로 돌아가자
존경하는 장 마리 위르띠제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 회장, 장 자끄 그로하 소장, 유럽연합의 각국대사, 그리고 이 자리에 오신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제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몇 말씀드리게 된 것을 매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21 세기는 세계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세기입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시대가 출현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그 동안 세계는 미국의 일방주의 시대였습니다. 세계는 미국과의 친소관계, 이해관계, 종교적 차이 등으로 양분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후 세계는 달라졌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과거의 친소와 원근에 상관없이 대화를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세계는 그동안 미국의 이분주의에 고통을 겪다가 이제 정치, 경제, 종교,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대화와 협력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세계에 대한 희망이 부풀어 오른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그 동안 소원하고 적대관계에 있던 이란, 시리아, 러시아, 쿠바 등과 대화를 시작하고 있으며 이슬람 세계와의 접근이라는 획기적인 자세도 보이고 있습니다.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반도 문제만은 예외가 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란, 북한의 지도자들과 직접 만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당선 이후에는 클린턴 대통령이 취했던 정책처럼 유연한 태도로 북한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우리를 크게 고무시켰습니다. 아마 북한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태는 우리의 기대처럼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오바마 정권은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 언급하지 않고 차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바마 정부의 태도에 실망하고 위협을 느낀 북한은 극단적인 반발자세로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를 둘러싼 북한 내부의 상황이 사태를 더욱 촉진시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만, 여하튼 북한으로서는 지금 절박한 입장에 처한 것은 사실입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서 안심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든지, 그것이 불가능하면 사생결단의 자세로 생존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증거가 있습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를 통해 북한은 핵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클린턴 정부를 이은 부시 정부는 당시 합의된 경수로 건설, 국교정상화, 경제협력 등의 약속을 파기했습니다. 그리고 북미간 실질적인 합의에 접근한 장거리 미사일 문제 협상도 부시 정권에 의해서 파기되었습니다.
이에 반발하여 북한은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고, IAEA(국제원자력기구) 감시요원을 추방시켰으며, 핵실험까지 강행했습니다. 북핵 문제는 다시 꽁꽁 얼어붙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부시 정부는 6년 동안 북한에 온갖 압박을 가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굴복하지 않았고 북한정권이 무너지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미국은 태도를 바꾸어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의 합의를 통해 핵문제 해결의 길을 열었습니다.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한다. 미국은 북한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경제지원을 한다. 미국과 북한은 협력해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실현한다’ 등이 합의되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합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북한 핵문제 해결에 다시 희망의 무지개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다시 핵 사찰 문제, 에너지 지원 부진 등으로 혼미한 사태가 거듭되다가 부시 정권은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지도자와 직접 대화를 통해서 핵문제를 풀겠다는 오바마 정권이 등장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바마 정권 하에서는 세계적인 문제들이 대화를 통해 유연하게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북한과의 관계도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한반도 비핵화에 협조하는 동시에 2005년 9.19 합의에서 이루어진 북미 국교 정상화를 위한 관계개선 등의 약속이 지켜질 것으로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사태는 우울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북한 핵문제는 전쟁으로 해결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도 중국이 협력하지 않는 한 성공의 가능성은 없습니다. 저는 지난 5월 중국을 방문해서 시진핑 국가부주석 등 여러 정치지도자들과 대화했습니다. 중국의 태도는 분명했습니다. ‘우리는 북한 핵을 절대 반대한다. 그러나 이웃국가인 북한에 대한 경제적 원조는 끊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은 역사적, 지리적 관계로 봐서 이웃국가인 북한이 파멸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을 것입니다.
전쟁이 있을 수 없고, 경제제재가 큰 효과를 얻지 못한다면 방법은 무엇입니까? 대화와 협상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북한에 대한 국제적 제재는 어느 정도 고통을 주겠지만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협상은 우방국가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이해를 주고받고 윈윈(win-win)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면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와도 얼마든지 협상을 해야 합니다. 북한의 근본적 목표는 국가안보와 체제보장, 북미 국교 정상화와 경제협력을 통한 국제사회의 진출입니다. 또한 한국과 미국의 궁극적인 목표 역시 북한으로 하여금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포기하게 해서 태평양 국가들의 위협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안전보장, 핵과 미사일 문제의 해결, 이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조건입니다. 이 조건에 대한 합의는 이미 2005년 9.19 선언으로 합의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저는 이 자리에서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립니다. 북한은 완전무결하게 핵을 포기해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시켜야 합니다. 미국은 북한과 국교 정상화하고 북한을 국제사회에 편입시켜서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평화롭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원만한 해결의 길입니다.
변화를 내건 오바마 대통령은 오래된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비핵화를 통한 점진적 관계개선'이라는, 장기간이 소요되는 단계별 접근방식을 지속하기에는 상황이 달라졌고, 사태가 급박합니다. 북한의 핵무장을 조속히 막아야 합니다.
미국은 ‘관계정상화를 통한 비핵화'라는 근본적이고도 포괄적인 접근방법으로 전환할 때가 되었습니다. 평화협정, 외교관계 수립, 경제협력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함께 핵 폐기를 실현하는 일괄타결방식으로 한반도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다시 압축해서 말씀드리면 오늘의 북핵문제 해결방안은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미국은 관계정상화를 통해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길뿐입니다. 이 외에 대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원칙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의 공동성명, 그것을 준수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도 좋고, 일본도 좋고, 중국도 좋고, 러시아도 좋고, 한국도 좋고, 북한도 좋은 것입니다. 다시 9.19 선언으로 돌아갑시다. 그리하여 동북아시아에 평화와 안전, 협력의 시대를 열어갑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