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이 외모도 좋고 글도 잘쓰고 생각도 깊고...
인용할 부분이 워낙 많아서 힘들었음.
-----
오바마는 2008년 ‘희망’과 ‘변화’를 표방하며 공화당 후보 존 매케인을 물리치고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재선 때는 오바마 캠프에서 희망이나 변화 같은 공약을 포기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를 인류의 구원자로 내세웠던 민주당 캠프는 2012년에 다른 전략을 썼다. 오바마가 적어도 상대 후보인 밋 롬니보다는 낫다는 것이 그들이 내세운 기본 메시지였다.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인 것은 맞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그 사실을 운운하는 것이 한국 정치문화에 도움이 되는가? ‘독재자의 딸’을 수없이 외쳤지만 민주당은 결국 선거에서 패배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정희를 반대하는 국민보다지지하는 국민이 더 많다는 사실올 순순히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명예훼손이 '불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나 독재 정권에서 유독 심각한 문제로 취급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권력자를 비판하려는 기자나 논평가를 주저하게 만드는 현상을 ‘위축 효과'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명예훼손 위반으로 최대 7년 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으니 재갈물리기 효과가상당하다. 가끔 필자 주변의 한국인들에게 위축 효과 이야기를 하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한국은 영국이나 미국과 다릅니다. 한국은 정치문화가 성숙하지 못해서 엄격한 법이 없으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사람들이 생길 겁니다" 필자는 한국은 다르다며 자국올 평하하고 서방 국가를 특별 취급하는 논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혹시 거기에는 서구인들은 정치적으로 성숙한 어른이고 한국인들은 어린이라는 발상이 깔려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논리일지 모르지만 자국민을 모욕한 발언임은 물론 사대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최근 가장 심각한 사례는 세월호 참사 이후 드러난 해운사들과 규제감독기관 간의 유착이었다. 하지만 이뿐이 아니다. 외신기자로 일할 때 은행 고위 간부들과 금융위원회 둥 규제 당국 간의 회의에 여러 번 참석했는데 서로 너무나 친해서 매번 놀랐다. 이들은 엄연히 피감 대상과 감독기관 관계다. 말하자면 밀렵꾼과 파수꾼의 관계와 같다. 필자가 아는 금융위원회 간부 한 명은 금융위원회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줌직한 국영 은행의 요직을 꿰쳤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사실 <이코노미스트>의 경우 광고 수업이 전체 수업의 3분의 1에 불과해 특정 광고주가 회사전체에 실질적인 영향올 미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 광고 빼버리겠다는 으름장은 먹히지 않는다 반면 한국에서는 언론사 수익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높아 대기업이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 홍보팀은 약점올 가진 한국 기자들을 함부로 다루는데 너무 익숙한 나머지 외신기자들에게도 무례를 저지르고만 것이다. 다른 대기업 홍보 담당자는 “내가 요구만 하면 우리 할머니 팔순 잔치 기사도 써줄걸"이라며 특정 신문에 막강한 피워를 휘두를 수 있다고 으스댔다. 또다른 신문에는 돈을 써서 회사에 부정적인 온라인 기사를내린 적이 있다며 한국 신문사들이 재정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라고 귀띔했다.
노무현 정부 후반부터 한국 언론의 자유는 절대적 기준으로 보나 상대적 기준으로 보나 꾸준히 후퇴해왔다. 2006년 국경없는기자회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언론의 자유는 7.75점으로 세계 31위를 기록했다. 2013년에는 언론자유도 지수가 24.48점으로 치솟아 세계 50위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상황이 더 악화돼 25.66점을 기록하며 세계 57위를 차지했고 급기야 2015년에는 26.55점으로 세계 60위를 기록해 아이티, 파푸아뉴기니, 말라위보다 언론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는 늘 숫자와 세계 순위에 신경 쓰는 것 같은데 언론자유도지수 순위등은 예외다. 2011년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을 '언론 자유국'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유명 대학 교수들이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발언하며 유명인사가 될 수 있다. 책을 출간하고 기자들의 전화를 받을 준비가 된 교수라면 얼마든지 특정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올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에 널리 퍼진 교육열을 반영한다 한국에서는 하버드 박사연 똑똑할 뿐 아니라 오류가 없고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한국에서는 어떤 인격을 가진 사람이냐는 것이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정치인의 덕목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연 필자는 똑똑한 것뿐 아니라 남융 위한 삶을 살아왔는지 공직에 헌신하려는 의지가 있는지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대답하겠다.
한번은 김어준이 성차별주의자로 해석될 법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러자 내가 아는 좌파성향 친구들 절반정도가 우리 영웅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SNS에 토로하며 큰 실망강올 표했다. 하지만 애초에 김어준올 구세주, 총수로 받들지 않았더라면 실망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 김어준은 호감가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명박을 싫어한다. 하지만 단지 나와 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김어준 또는 그 누구라도 완벽하길 기대하지는 마라.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인 것은 맞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그 사실을 운운하는 것이 한국 정치문화에 도움이 되는가? ‘독재자의 딸’을 수없이 외쳤지만 민주당은 결국 선거에서 패배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정희를 반대하는 국민보다지지하는 국민이 더 많다는 사실올 순순히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명예훼손이 '불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나 독재 정권에서 유독 심각한 문제로 취급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권력자를 비판하려는 기자나 논평가를 주저하게 만드는 현상을 ‘위축 효과'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명예훼손 위반으로 최대 7년 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으니 재갈물리기 효과가상당하다. 가끔 필자 주변의 한국인들에게 위축 효과 이야기를 하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한국은 영국이나 미국과 다릅니다. 한국은 정치문화가 성숙하지 못해서 엄격한 법이 없으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사람들이 생길 겁니다" 필자는 한국은 다르다며 자국올 평하하고 서방 국가를 특별 취급하는 논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혹시 거기에는 서구인들은 정치적으로 성숙한 어른이고 한국인들은 어린이라는 발상이 깔려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논리일지 모르지만 자국민을 모욕한 발언임은 물론 사대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최근 가장 심각한 사례는 세월호 참사 이후 드러난 해운사들과 규제감독기관 간의 유착이었다. 하지만 이뿐이 아니다. 외신기자로 일할 때 은행 고위 간부들과 금융위원회 둥 규제 당국 간의 회의에 여러 번 참석했는데 서로 너무나 친해서 매번 놀랐다. 이들은 엄연히 피감 대상과 감독기관 관계다. 말하자면 밀렵꾼과 파수꾼의 관계와 같다. 필자가 아는 금융위원회 간부 한 명은 금융위원회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줌직한 국영 은행의 요직을 꿰쳤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사실 <이코노미스트>의 경우 광고 수업이 전체 수업의 3분의 1에 불과해 특정 광고주가 회사전체에 실질적인 영향올 미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 광고 빼버리겠다는 으름장은 먹히지 않는다 반면 한국에서는 언론사 수익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높아 대기업이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 홍보팀은 약점올 가진 한국 기자들을 함부로 다루는데 너무 익숙한 나머지 외신기자들에게도 무례를 저지르고만 것이다. 다른 대기업 홍보 담당자는 “내가 요구만 하면 우리 할머니 팔순 잔치 기사도 써줄걸"이라며 특정 신문에 막강한 피워를 휘두를 수 있다고 으스댔다. 또다른 신문에는 돈을 써서 회사에 부정적인 온라인 기사를내린 적이 있다며 한국 신문사들이 재정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라고 귀띔했다.
노무현 정부 후반부터 한국 언론의 자유는 절대적 기준으로 보나 상대적 기준으로 보나 꾸준히 후퇴해왔다. 2006년 국경없는기자회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언론의 자유는 7.75점으로 세계 31위를 기록했다. 2013년에는 언론자유도 지수가 24.48점으로 치솟아 세계 50위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상황이 더 악화돼 25.66점을 기록하며 세계 57위를 차지했고 급기야 2015년에는 26.55점으로 세계 60위를 기록해 아이티, 파푸아뉴기니, 말라위보다 언론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는 늘 숫자와 세계 순위에 신경 쓰는 것 같은데 언론자유도지수 순위등은 예외다. 2011년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을 '언론 자유국'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유명 대학 교수들이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발언하며 유명인사가 될 수 있다. 책을 출간하고 기자들의 전화를 받을 준비가 된 교수라면 얼마든지 특정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올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에 널리 퍼진 교육열을 반영한다 한국에서는 하버드 박사연 똑똑할 뿐 아니라 오류가 없고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한국에서는 어떤 인격을 가진 사람이냐는 것이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정치인의 덕목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연 필자는 똑똑한 것뿐 아니라 남융 위한 삶을 살아왔는지 공직에 헌신하려는 의지가 있는지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대답하겠다.
한번은 김어준이 성차별주의자로 해석될 법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러자 내가 아는 좌파성향 친구들 절반정도가 우리 영웅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SNS에 토로하며 큰 실망강올 표했다. 하지만 애초에 김어준올 구세주, 총수로 받들지 않았더라면 실망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 김어준은 호감가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명박을 싫어한다. 하지만 단지 나와 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김어준 또는 그 누구라도 완벽하길 기대하지는 마라.
“어마어마한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해법은 무엇일까요" 토크콘서트 마지막에 있는 질의응답 시간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다.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듯 사람들은 시사평론가들이 해결책까지 제시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들이 마치 모세라도 되는듯이 말이다. 정작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는 실속 있는 해답을 내놓지 않으연서 자신감 넘치고 강한 어조로 설득력 있게 말하는 사람은 보통 정치인이거나 종교기업가다. 질문에 잘만 대응하연 크게 성공활 수도 있고 영향력도 확장할 수 있다 .이들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하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길 바라는 보통 사람들의 욕망을 잘 간파하고 이를 이용한다. 그런데 강한 어조로 호소하는 답변이 정말 좋은 걸까? 때로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무지의 소치가 아니라 오히려 현명하고 솔직한 대답 아닐까.
한국은 아직 사회, 경제적 지위 향상에 대한 열망이 강한 나라다. 많은 사람이 부자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으며 주사위는 이미 재벌에 유리하게 던져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랍도 남들보다 앞서고 싶어한다. 솔직히 그들도 아이들이 명문대에 가길 바라고 좋은 것을 사고 싶어한다. 계급의식이랄 것도 없다. 예를 들어 내 고향인 영국 북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노동계급의 긍지 말이다. 2014년 퓨 리서치 센터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78퍼센트가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70퍼센트), 영국(65퍼센트)을 포함한 10대 ‘선진국’보다 높은 수치다. 엄밀히 말해 한국은 자유시장경제가 아닌데도 대다수 국민은 ‘자유 시장’이라는 말에 매료되는 것 같다. 따라서 매우 안타깝게도 빈곤충에 대한 자비로움을 강조해봤자 효과가 없고 빈부격차로 인한 계급 갈둥 이야기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한국좌파는 외신기자와 인터뷰할 때 통계나 경제이론을 인용하거나 차분하고 합리적인 어조로 전경련 같은 조직이 내세우는 주장의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지 못한다. 대신 삼성이 엄청난부를 축적하는데 아직도 빈곤충이 많은 것은 부당하며 정부는 소수 특권층인 최상위 1퍼센트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사실에 기반한 논리적 주장을 듣고 싶어하는 윌스트리트 저널이나 파이낸셜타임즈 기자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반면 한국 우파는 어떻게 포장해야 영미권에 어필할 수 있는지 잘 파악하고 있다. 대기업 독주를 침해하는 모든 것은 ‘시장 원리에 반하는’ 것으로 매도하고 ‘사회주의’라는 구호가 미국인에게는 공산주의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것 또한 잘 알고 활용한다. 유창한 영어로 경제이론도 이것저것 언급한다. 똑똑하고 박식한 기자라면 그런 주장이 말도 안 되며 한국 대기업의 독주가 시장원리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지만 모든 기자가 똑똑하고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새정치연합은 과거 386 세대와 운동권 지식인충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젊은 유권자나 보통 사람들의 고충올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앞에서 말한 바 있다. 인권변호사와 언론인 등을 포함한 운동가 중심 정당의 또다른 문제는 경영 역량을 갖춘 사람이 드물다는 점이다. 운동가나 인권변호사 둥이 당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조직력이 뛰어난 검중된 인물들도 필요하다.
2011 년과 2012년의 안철수만큼 유명하고 존경받는 인물이 연단에 올라 ‘대선에 출마하겠습니다'라는 말 대신 ‘각지역 공동체에서 함께 모여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아이디어나 제안을 나누며 즐기자'고 했다면 실로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올 것이다. 적어도 각 공동체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 유권자 스스로 정책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마련됐을 것이고 연령대나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데 모여 협력했올 것이다. 어쩌면 한국 정치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운동이 태동했을지도 모른다.
왜 한국의 불평등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질까? ... 좌파는 대기업의 끝없는 탐욕이 원인이라고 지적할 테고 우파는 현대자동차의 '귀족’ 노동자 둥을 예로 들며 상대적으로 좋은 여건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 여건에 처한 동료 노동자에게 폐를 끼치는 ‘이분화’된 노동 시스템을 문제로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차적인 문제들이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한국 노동계에 닥친 재난은 한국이 중국 등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한미FTA를 반대하던 그 많ejs 소위 ‘진보주의자’들이 다른 FTA 에 대해서는 조용한 것을 보면 정말 놀랍다. 미국과 연관된 것은 나쁘고 (일본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가 엮이면 신경 쓸 것 없다는 것이 한국 진보의 사고방식이다.
가장 보수 성향의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정부가 복지 예산을 확대했다가는 그리스꼴이 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현 정부가 연간복지 예산을 9퍼센트까지 확대했지만 한국은 아직도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전체 GDP에서 복지 지출이 10퍼센트 미만인 두 나라 중 하나다. 한국이 구미에 맞는 부분만 취사선택해서 닮고 싶어하는 나라, 미국의 복지 지출은 19퍼센트 수준이다. 그리스는 그보다 높은 24퍼센트로 영국과 비슷한 수준이고, 프랑스의 복지 지출은 33퍼센트에 달해 솔직히 지나치게 관대한 편이다.
독일도 최근 몇 년간 실업수당 규모를 축소했지만 여전히 영국의 실업수당보다 후하다. 복지병을 믿는 사람이라면 두둑한 실업수당이 보장된 독일 사람들이 영국 사람들보다 일을 더 안 하려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독일의 실업률은 영국보다 낮다. 독일에서는 보통 사람이 양질의 일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 아닌가 싶다. 게다가 ‘게으른’ 영국에서 실업수당이 전체 사회복지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런데 셜문조사 결과 영국인들은 그 수치를 41퍼센트로 실제보다 훨씬 높게 추측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민주당이 내세운 메시지는 이랬다. ‘가난하고 딱한 국민이여, 국민의 최상위 1퍼센트만 부자가 되고 나머지는 빈곤해진 이명박 정권 아래 끔찍한 시간을 보낸 여러분, 여러분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해 복지를 확대하겠습니다.’ 마치 사탕을 잃어버린 어린아이를 어르는 듯한 수사였다. 복지에 대한 궁극적 메시지는 ‘복지는 정부가 여러분에게 투자한 것입니다. 투.자를 통해 여러분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나중에 세금을 많이 낼 수 있을 만큼 성공해서 돌려주십시오‘라고 전달되어야 한다. 지위 상숭에 대한 열망이 강한 한국에서 특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먼저 페미니즘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특히 직장 내 여성의 지위 문제에 관해서는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111위)가 아랍에미리트(109위)나 바레인(112위) 수준과 비슷한 것으로 발표된 2013년 세계 경제포럽의 세계 성격차 보고서 내용올 전적으로 수긍하기는 어렵지만 여성이 심각하게 차별받고 있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다. 여성 노동력 활용 비율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여성 차별문제는 공정성 변에서 따져야 할 문제일 뿐 아니라 경제 문제와도 직결된다.
우리는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 사건의 책임자, 백혈병으로 근로자가 사망한 수원 삼성반도체, 캄캄한 밤에 빙판길임에도 총알 배달을 요구해 배달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중국음식점 주인, 여학생을 뺑소니치고 도로에 방치해 내상으로 죽게 한 음주 운전자를 비난할 수 있고, 비난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나서서 제대로 규제해야 그와 같은 안타까운 인명사고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역대 한국 정부는 하나같이 안보의 중요성은 외치면서 안전은 외면해왔다. 하지만 안전이야말로 정부 존립의 핵심이다. 정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정부의 존재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한국 정치계에서 동물 권리는 아직 주요 이슈 대접을 못 받지만 동물 권리에 대한 세대 간 인식은 판이하게 다르다. 예쁜 프릴 달린 코트를 업은 반려견 사진을 끊임없이 찍는 20대가 있는가 하면 모란시장 같은 곳에서 개를 때려죽이는 사랍도 있다. 개인적으로 개고기를 먹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호기심에 두 번 정도 먹어본 적도 있다. 하지만 잔인한 방식으로 식용 개가 도살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부터는 다시는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따라서 좀더 인도적인 방식의 동물사육이나 도살을 추진히는 정치인이 있다면 최소한 젊은 동물애호가들은 감동하지 않을까.
한국은 아직 사회, 경제적 지위 향상에 대한 열망이 강한 나라다. 많은 사람이 부자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으며 주사위는 이미 재벌에 유리하게 던져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랍도 남들보다 앞서고 싶어한다. 솔직히 그들도 아이들이 명문대에 가길 바라고 좋은 것을 사고 싶어한다. 계급의식이랄 것도 없다. 예를 들어 내 고향인 영국 북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노동계급의 긍지 말이다. 2014년 퓨 리서치 센터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78퍼센트가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70퍼센트), 영국(65퍼센트)을 포함한 10대 ‘선진국’보다 높은 수치다. 엄밀히 말해 한국은 자유시장경제가 아닌데도 대다수 국민은 ‘자유 시장’이라는 말에 매료되는 것 같다. 따라서 매우 안타깝게도 빈곤충에 대한 자비로움을 강조해봤자 효과가 없고 빈부격차로 인한 계급 갈둥 이야기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한국좌파는 외신기자와 인터뷰할 때 통계나 경제이론을 인용하거나 차분하고 합리적인 어조로 전경련 같은 조직이 내세우는 주장의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지 못한다. 대신 삼성이 엄청난부를 축적하는데 아직도 빈곤충이 많은 것은 부당하며 정부는 소수 특권층인 최상위 1퍼센트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사실에 기반한 논리적 주장을 듣고 싶어하는 윌스트리트 저널이나 파이낸셜타임즈 기자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반면 한국 우파는 어떻게 포장해야 영미권에 어필할 수 있는지 잘 파악하고 있다. 대기업 독주를 침해하는 모든 것은 ‘시장 원리에 반하는’ 것으로 매도하고 ‘사회주의’라는 구호가 미국인에게는 공산주의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것 또한 잘 알고 활용한다. 유창한 영어로 경제이론도 이것저것 언급한다. 똑똑하고 박식한 기자라면 그런 주장이 말도 안 되며 한국 대기업의 독주가 시장원리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지만 모든 기자가 똑똑하고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새정치연합은 과거 386 세대와 운동권 지식인충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젊은 유권자나 보통 사람들의 고충올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앞에서 말한 바 있다. 인권변호사와 언론인 등을 포함한 운동가 중심 정당의 또다른 문제는 경영 역량을 갖춘 사람이 드물다는 점이다. 운동가나 인권변호사 둥이 당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조직력이 뛰어난 검중된 인물들도 필요하다.
2011 년과 2012년의 안철수만큼 유명하고 존경받는 인물이 연단에 올라 ‘대선에 출마하겠습니다'라는 말 대신 ‘각지역 공동체에서 함께 모여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아이디어나 제안을 나누며 즐기자'고 했다면 실로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올 것이다. 적어도 각 공동체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 유권자 스스로 정책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마련됐을 것이고 연령대나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데 모여 협력했올 것이다. 어쩌면 한국 정치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운동이 태동했을지도 모른다.
왜 한국의 불평등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질까? ... 좌파는 대기업의 끝없는 탐욕이 원인이라고 지적할 테고 우파는 현대자동차의 '귀족’ 노동자 둥을 예로 들며 상대적으로 좋은 여건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 여건에 처한 동료 노동자에게 폐를 끼치는 ‘이분화’된 노동 시스템을 문제로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차적인 문제들이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한국 노동계에 닥친 재난은 한국이 중국 등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한미FTA를 반대하던 그 많ejs 소위 ‘진보주의자’들이 다른 FTA 에 대해서는 조용한 것을 보면 정말 놀랍다. 미국과 연관된 것은 나쁘고 (일본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가 엮이면 신경 쓸 것 없다는 것이 한국 진보의 사고방식이다.
가장 보수 성향의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정부가 복지 예산을 확대했다가는 그리스꼴이 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현 정부가 연간복지 예산을 9퍼센트까지 확대했지만 한국은 아직도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전체 GDP에서 복지 지출이 10퍼센트 미만인 두 나라 중 하나다. 한국이 구미에 맞는 부분만 취사선택해서 닮고 싶어하는 나라, 미국의 복지 지출은 19퍼센트 수준이다. 그리스는 그보다 높은 24퍼센트로 영국과 비슷한 수준이고, 프랑스의 복지 지출은 33퍼센트에 달해 솔직히 지나치게 관대한 편이다.
독일도 최근 몇 년간 실업수당 규모를 축소했지만 여전히 영국의 실업수당보다 후하다. 복지병을 믿는 사람이라면 두둑한 실업수당이 보장된 독일 사람들이 영국 사람들보다 일을 더 안 하려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독일의 실업률은 영국보다 낮다. 독일에서는 보통 사람이 양질의 일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 아닌가 싶다. 게다가 ‘게으른’ 영국에서 실업수당이 전체 사회복지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런데 셜문조사 결과 영국인들은 그 수치를 41퍼센트로 실제보다 훨씬 높게 추측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민주당이 내세운 메시지는 이랬다. ‘가난하고 딱한 국민이여, 국민의 최상위 1퍼센트만 부자가 되고 나머지는 빈곤해진 이명박 정권 아래 끔찍한 시간을 보낸 여러분, 여러분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해 복지를 확대하겠습니다.’ 마치 사탕을 잃어버린 어린아이를 어르는 듯한 수사였다. 복지에 대한 궁극적 메시지는 ‘복지는 정부가 여러분에게 투자한 것입니다. 투.자를 통해 여러분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나중에 세금을 많이 낼 수 있을 만큼 성공해서 돌려주십시오‘라고 전달되어야 한다. 지위 상숭에 대한 열망이 강한 한국에서 특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먼저 페미니즘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특히 직장 내 여성의 지위 문제에 관해서는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111위)가 아랍에미리트(109위)나 바레인(112위) 수준과 비슷한 것으로 발표된 2013년 세계 경제포럽의 세계 성격차 보고서 내용올 전적으로 수긍하기는 어렵지만 여성이 심각하게 차별받고 있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다. 여성 노동력 활용 비율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여성 차별문제는 공정성 변에서 따져야 할 문제일 뿐 아니라 경제 문제와도 직결된다.
우리는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 사건의 책임자, 백혈병으로 근로자가 사망한 수원 삼성반도체, 캄캄한 밤에 빙판길임에도 총알 배달을 요구해 배달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중국음식점 주인, 여학생을 뺑소니치고 도로에 방치해 내상으로 죽게 한 음주 운전자를 비난할 수 있고, 비난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나서서 제대로 규제해야 그와 같은 안타까운 인명사고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역대 한국 정부는 하나같이 안보의 중요성은 외치면서 안전은 외면해왔다. 하지만 안전이야말로 정부 존립의 핵심이다. 정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정부의 존재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한국 정치계에서 동물 권리는 아직 주요 이슈 대접을 못 받지만 동물 권리에 대한 세대 간 인식은 판이하게 다르다. 예쁜 프릴 달린 코트를 업은 반려견 사진을 끊임없이 찍는 20대가 있는가 하면 모란시장 같은 곳에서 개를 때려죽이는 사랍도 있다. 개인적으로 개고기를 먹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호기심에 두 번 정도 먹어본 적도 있다. 하지만 잔인한 방식으로 식용 개가 도살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부터는 다시는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따라서 좀더 인도적인 방식의 동물사육이나 도살을 추진히는 정치인이 있다면 최소한 젊은 동물애호가들은 감동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