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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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컨텐츠/영화평
#1.
국제시장을 봤다.
극장에서 볼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버지가 권해서 봤다. 참고로 아버지는 평생에 내게 뭘 하라고 압력을 준 적이 별로 없었기에. 가족과 함께 보러가라고 했지만 가족 대표로 나만 봤다. 영화는 나쁘지 않았다. 특히나 몇몇 장면에서는 눈물을 쏟았다.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자신으로 인해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은 소년의 죄책감. 그리고 네가 이제 가장이니 가족을 보살피라는 아버지의 음성이 평생 한 소년의 어깨를 짓눌렀으리라는 부분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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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아버지세대의 평범한 가장들이 부모나 가족을 잃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전쟁 후의 비정상적인 삶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국제시장은 그런 평범한 한국의 아버지세대의 미시사를 관통하고 있다.논객 허지웅으로 인해 이슈가 됐던 대목 "이 어려운 시대를 내 자식들이 겪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부분도 맥락에서 충분히 공감이 갔다. 주인공은 가족에 헌신적이어야 하는 자신의 삶을 팔자처럼 받아들이고 아내에게 편지를 쓰면서 내 아들이 겪는 것보다 낫지 않냐라고 위로하는 맥락의 말이었다.

정작 아버지는 자식들에게는 준엄하게 가오잡고 훈계하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처럼. 그저 뜬금없이 욕을 하거나 대화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뒷걸음질친다. 그런 디테일들이 잘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2.
하지만 정작 이 영화를 대작의 반열에 놓을 수 없는 부분은 논란이 된 세대 갈등이나 보수-진보갈등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겐. 이 영화의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영화가 IT기기로 치자면 '샤오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플 짝퉁.

영화가 끝날 때 나는 이 영화가 <포레스트 검프>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한국판이란 비평만 남았다. 백인이 입어서 사랑받은 옷을 아시아인에게도 입혀본 느낌. 뭐 옷이 좋으면 아시아인도 멋져보이는 그런 느낌. 깃털이 나비가 되고 존 레논이 남진이 되고, 애플이 현대건설로, 이만기로 대체되고 마지막에 아버지를 떠올리며 우는 장면은 라이언 일병이 죽은 상사의 무덤 앞에서 우는 장면과 정확하게 교차했다.

흥행을 위해 영화도 흥행을 담보하는 규칙을 세워서 공용가능한 플랫폼을 짜고 모듈을 만들어서 한국인의 컨텐츠에도 옷처럼 영화를 입히는구나. 게다가 그게 대중에게 먹히기까지 하는구나. 뭐 이런 생각 때문에 진영논쟁, 세대논쟁에는 관심을 기울일 마음의 여유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건 예술인가 상품인가. 어쨌든 짝퉁도 많이 팔리면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씁쓸함이 흘린 눈물을 무색하게 만든다.
2015/02/21 19:56 2015/02/21 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