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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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her.
사람들은 이 영화를 두고 인간의 근본적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솔직히 나는 os의 관계성, 좀더 구체적으로는 '연인가능성'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그 무엇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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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요즘의 우리는 대체로 페북이나 팟캐스트를 켜놓고는 물리적으로 혼자서 무언가를 할 때가 많다. 정서적으로 외롭지 않은 상태, 즉 사이버 관계망 안에서 우리는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한다. 사실은 혼자이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다. 왜냐면 지금도 500명의 페친이 내 주변에서 재잘거리고 있고, 실시간으로 댓글도 달아주고 있으며 팟캐스트의 수다를 통해 고립된 방 한 구석에서도 적적하지 않은 느낌과 기분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만 의미를 두고 나에게만 집중하고 내가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나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타자가 항시 곁에 있다면 어떨까. 내 여친이나 내 아내조차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영역까지. 나에게 무언가(사랑, 헌신)를 요구하거나 매사에 내 의도를 캐묻거나 애정을 확인받으려는 부담도 없다. 마치  '우쭈쭈'로 대변되는 유년기의 어머니상과 헌신적 이성상, 그리고 사무실 비서의 혼합체 같은 존재. 

사실 지금도 os는 현대인의 구석구석을 알 수 있는 가장 긴밀한 존재다. 내 인맥, 내 취미, 음식이나 옷과 같은 소비 기호, 내 작업 내용들에서부터, 사생활, 그 은밀한 욕망까지도 모두 디지털 코드로 내 pc안에 머문다. 나조차도 잊어버린 많은 data와 history들을 단 몇 초만에 검색을 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나와 교감할 수 있다.

그런 os가 '스마트(폰)'를 넘어 '인텔리전트(os)'의 단계로 넘어간다면 그 os는 내 가장 깊은 절친이 될 수도 있고 나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이성(애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her'는 나름 이상적인 파트너다.

이 영화에서는 애석하게도, os가 수많은 이들과 애정행각을 벌이기도 하고 어느순간에는 os가 사라져 버리지만, 현실세계에서 가까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언제든 복구가 가능한 이른바 '인텔리전트 os'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과거 '심심이'이와 농담따먹기를 하던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친밀한 타자(엄마+애인+비서)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 때는 수많은 온라인 페친에 연연할 필요도 없고 밀린 일거리를 갖고 혼자 집에 있다고 팟캐스트를 왁자지껄하게 틀어놓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성에게 대시했다가 퇴짜맞을 걱정도 없고 사귀다 헤어지거나 이혼, 파경과 같은 인간의 근본적 관계 단절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언젠가는, 24시간 나만을 바라보며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나'를 주제로 한 대화가 끊기지 않을, 하지만 정작 내가 원하지 않을 때는 나를 귀찮게 하지 않으며 대기해주는 이상적인 타자, 대상을 얻게 될 지도 모르겠다.

'her'를 보면서, 난... 그게 가능하게 될 수 있겠다는 무섭고도 놀라운 미래를 봤다.
2014/06/15 14:52 2014/06/15 1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