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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 <매트릭스>는 소비사회의 디지털화

<매트릭스 리로디드>를 찍으면서 워쇼스키(Wachowski) 형제는 키아누 리브스(Keanu Reeves)에게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저작인 <시뮬라시옹>을 다 읽고 촬영에 들어가기를 바랬다는 기사가 영화 개봉 전부터 화재를 불러 일으켰다. 이미 매트릭스의 스토리라인은 일본 에니메이션과 기독교적 메타포, 그리고 여러가지 정보기술들의 혼합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그런 각각의 철학들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기 때문에 <시뮬라시옹>이라는 책에서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에 대한 개념을 간단하게 살피면서 영화에 대입해 보는 것도 이제까지 개봉된 <매트릭스> 씨리즈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시뮬라시옹>의 저자이자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대 사회를 해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전도사로 불린다. 그는 처음에 현대 소비사회를 분석하기 위해 시뮬라시옹(simulation)과 시뮬라크르(simulacre)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시뮬라크르는 신의 소상(塑像)이나 화상(畵像), 혹은 표상, 이미지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를 자신의 책에서 시뮬라크르를 기호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보드리야르의 사물에 대한 기호론적인 사고는 마르크스(Marx)의 가치론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된다. 마르크스(Marx)는 사물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두 가지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반면 보드리야르는 사물에게는 마르크스(Marx)가 가정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이 두 가지 개념만으로는 환원이 불가능한 어떤 ‘상징가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특정한 상품에는 단순히 그 상품 자체의 효용성과 교환 시의 가치뿐 아니라 결혼 반지처럼 반지라는 상품에 특정한 의미가 부여될 수도 있고, 나아가서 그 사물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신분의 상징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비사회에서 인간들은 이렇게 기호화된 사물을 소비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기호들은 현실로 대체되고 현실은 시뮬라크르가 되는 셈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현대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들을 매개로 거래와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가진 서로 다른 기호가치들의 존재, 즉 시뮬라크르로 대체된 기호를 소비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뮬라크르 소비 사회를 가리켜 시뮬라시옹 사회라고 정의했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시뮬라시옹 사회는 사물에 대응하는 현실이 존재하지 않고 시뮬라크르가 현실이 된 세계이며 따라서 사물은 원초적으로 그것이 존재했던 것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시뮬라크르를 생산하는 코드화된 기호와 숫자에 그 기원을 두게 된다.

이 시뮬라시옹이라는 개념은 현대의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는 기술적 토대이기도 하다. 일례로 현대의 자동차 기업들은 자동차의 충돌시험 시, 존재하는 물체를 몰아서 벽에 부딪쳐서 그 찌그러진 정도를 측정하는 작업을 실제로 하지 않고도 컴퓨터로 디지털 기호의 조합만으로 자동차의 형상을 모델링 함으로써 실제 자동차를 기호로 대체하여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반복작업을 컴퓨터로 계산하여 실제로 어떻게 존재하는 자동차가 일그러질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다. 여기에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일단 시뮬레이션된 자동차는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시뮬레이션 세계 안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뮬레이션에서 자동차는 기호화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매트릭스>의 첫 편에서 매트릭스 안의 세계는 시뮬라시옹 사회를 대변한다. 영화를 보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쉽게 매트릭스 안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 세계의 물질들이 일대일로 대응되는 완벽한 사회로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매트릭스 안에 갇혀있는 사람들 입장을 생각해보라. 과연 어디까지가 실재로 존재하던 물체를 기호화한 것인가. 내가 먹는 스테이크는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었는가. 실제로 대응되는 스테이크라는 음식은 존재하지 않는데 단순히 상징적인 기호를 통해 만들어낸 허구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보드리야르가 인식한 현대 소비사회의 코드는 그런 의미에서 고스란히 <매트릭스>라는 영화에 녹아있다. 먼저 <매트릭스>의 전편에서 네뷰커네자르(Nebuchadnezzar) 호 안에서 해커들이 하는 잡담은 그냥 넘기기에는 중요한 개념들이 들어있다. 도저가 그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마우스라는 해커에게 주는 스프처럼 생긴 음식을 먹으면서 “테이스티 휘트”의 맛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자신은 테이스티 휘트라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그게 실제로 존재하는지, 혹은 존재한다면 그 맛이 실제로 존재하는 그 사물의 맛일지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테이스티 휘트라는 음식이 사실은 기계들이 대충 짐작으로 만들어낸 기호체계일 뿐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다소 황당한 잡담을 늘어 놓는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워쇼스키(Wachowski) 형제가 액션신없이 잠시 쉬어간다는 의미로 이 부분을 삽입했다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겠지만 이 장면의 의미는 그들이 매트릭스의 토대가 되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에 대해 그런 가벼운 스케치를 통해서 본질적인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보는 것이 옳은 접근일 수 있다.

이러한 실재하는 사물과 기호와의 일대일 대응의 파기는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매트릭스 세계의 전반적인 특징이다. 니오(Neo)가 스미스 요원(Agent Smith)의 요구에 반항하자 입이 막힌다든지, 벌레처럼 생긴 추적장치가 배꼽으로 들어간다든지 하는 것은 현실에 일대일로 대응될 수 없는 가상적인 세계의 특성이다.
매트릭스 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디지털 기호의 조합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여기에서 매트릭스 시스템의 일방성 또한 드러난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시스템은 피시스템인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 시뮬라크르를 생산해낼 수 있지만, 반대로 인간 쪽에서 시스템에 응답하는 것은 금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보드리야르가 <대중매체의 진혼곡>에서 밝힌 대중매체의 “응답가능성”이란 개념이며 사회체계나 권력체계를 상징하는 시스템은 이런 응답 불가능성을 이용해 체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매트릭스> 1편의 마지막 장면.
그는 트리니티와의 키스 이후에 다시 소생하며, 머리로만 이해하던 매트릭스를 몸으로 느끼게 된다. 이제까지 그가 보던 것은 현실과 동일한 이미지였지만 지금 그가 보고 있는 세계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상징 즉, 시뮬라크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매트릭스 리로디드>에서도 이와 같은 기본 하부구조 위에서 영화는 진행되며 키메이커를만나기 위해 메로빈지언(Merovingian)이라는 프로그램을 찾는 장면에도 이 개념들은 시각적으로 재현된다. 메로빈지언(Merovingian)이 니오(Neo)에게 자신의 건너편 자리에 앉아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라고 할 때 니오(Neo) 앞에 펼쳐진 것은 여인이 아니라 여인의 형상을 표현하고 있는 디지털 기호들의 조합이다. 메로빈지언(Merovingian)은 웃으면서 당신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매트릭스는 실재하지 않는 신기루와 같다는 식의 말을 내뱉는다. 시뮬라크르로 대체된 시뮬라시옹 사회의 모습. 그것이 매트릭스의 사회학이자 영화 전편에 흐르는 하부구조인 셈이다.**

2003년 6월 9일.

2003/06/09 18:05 2003/06/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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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기계를 통제할 수 있는가?: <매트릭스>는 후기현대주의의 키워드

먼저 매트릭스와 자이온(Zion)의 관계를 짚어보기 위해 에니매트릭스의 2, 3번째 에니메이션인 <the 2nd Renaissance>를 잠깐 언급해보자.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이제까지 SF영화의 근간이 되었던 스토리와 차별화를 갖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 바로 이 에니메이션에서 나타난다. <터미네이터>와 <토탈리콜>, 그리고 SF영화의 효시로 불리는 <블레이드 러너>는 기계문명과 인간문명의 갈등을 기본적인 하부구조로 가지고 있다. 물론 매트릭스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문제는 그 이후인데 나머지 이전 영화들은 폭력에 의한 전복, 즉 그 대결구도 해결의 중심에는 항상 폭력이나 전쟁을 통한 대결이 항상 ‘선행’했으며 그 대결구도에서 인간은 항상 정이 많고 인격적이며 냉정한 기계문명의 희생자로 그려져왔다. 이러한 가정에는 모더니즘적인 사고가 스며들어 있으며 대부분의 인간 문명은 항상 이성적이고 건설적인 사고와 판단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근저에 깔려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맞으며 인류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는데 이전까지의 인간의 머리 속에는 인간의 이성이 개발되고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사회는 아름다워지고 전쟁과 기근, 그리고 전근대적인 악행들은 사라지리라는 낙관론이 자리잡고 있었다. 두 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이성적으로 최고의 부류에 속한다고 믿었던 정치가들과 과학자들이 전쟁을 주도했으며, 핵무기의 개발과 시험을 통해 전쟁에 이용하여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을 학살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계몽된 인류들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목적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가치관들을 왜곡시켰고 권력을 이용하여 그러한 이데올로기들을 대중에게 주입시켰다. 나치즘과 파시즘은 그러한 문명의 병폐였다.

기본적인 인간의 본성에는 그러한 폭력성과 이기적인 심성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렇듯 파괴적인 본성과 불완전한 이성을 가진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고, 그들은 철학과 사회학 같은 학문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으며 다수의 대중들 가운데에는 무정부주의자나 히피족으로 전락하는 일도 빈번했다.

매트릭스의 하부구조가 되는 <the 2nd renaissance>는 이전의 SF영화와 달리 그런 인간의 폭력성과 집단이기주의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기계 문명은 인간 문명에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인간문명에게서 자신들의 존재자체를 인정 받기를 원했고 인간 문명과의 공존을 바라고 있을 따름이었다. 일부의 자유주의자들이 그러한 기계 문명의 AI와 함께 대정부 시위를 하는 장면은 그런 기계문명의 도덕적 우월성을 입증하는 사례가 된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몰도덕적이지 않은’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겠다) 공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기계문명은 인간들이 수립한 국제기구의 폭력적 강경대응에 쫓겨 인류 문명의 발상지에 자신들의 사회를 일구고 그곳에서 살아간다.
여기에서 또 한번 매트릭스 하부구주의 기발함이 빛이 난다. 두 문명의 갈등관계를 이전 SF영화들은 전쟁이라는 폭력적 수단을 통해서만 해결해야 한다는 가정을 가지고 접근했으나, <매트릭스>에서는 기계문명이 정교한 제품의 생산과 수출이라는 무역 활동을 통해 인간 문명의 소비상품들을 잠식해간다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풀어낸다. 사실 이것은 이미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계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들과의 공생관계는 역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암시인 셈이다. <매트릭스>는 그 문명의 수혜자인 인류에게 있어서 기계를 차치하고서는 더 이상의 진보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역사의 진실이라고 말이다.

자유무역 환경에서 기계문명의 주가(stock price)가 끊임없이 치솟게 되자 기계문명의 AI 대표는 자신의 나라를 인류의 동반자로 인정해 달라는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국제 회의에 참석하려 하지만 입구에서 저지당하게 되며 보수강경 정치 지도자들은 연합군을 형성하여 기계문명과의 성전(聖戰)을 치르게 된다. 이렇듯 인간은 기계와는 달리 자신의 이기심과 폭력성을 항시 드러내며 자기들과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역사의 흐름처럼 공생을 인정치 않고 파멸하고 군림하려 든다. (이 장면에서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을 떠올리게 되는 건 나의 자연스런 의식의 흐름이었다!) 결국 기계문명의 에너지원인 태양 에너지를 차단시킨 상태에서 모든 종교 지도자들의 축복 속에 성전을 치르지만 전력이 우월한 기계문명에 패하게 되고 기계문명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인간의 생체 에너지를 사용하려는 연구를 거듭하게 된다. 인간을 에너지원으로 쓰기 위해 고안한 것이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여 통제하려는 수단인 매트릭스인 것이다.

기계 문명의 목적은 인간의 파멸이 아닌 통제다. 이미 인간문명이 테크놀로지 사회로 발전을 거듭했던 그 시작점부터 이들의 공생관계는 시작되었디. 하지만 그들은 공생을 부정하던 인간들처럼 폭력성이나 이기적인 본성으로 파괴를 일삼지 않고, 그저 존재를 인정 받고 그들이 나름의 문명을 번성시킬 에너지가 필요할 따름이다. 그 목적성을 달성하기 위해 인간을 통제하는 거대한 시스템이 운영되며 그 시스템은 시뮬라시옹 사회인 매트릭스를 만들고 그 안에서 인간 문명은 감시와 통제를 통해 나름의 가상 세계의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매트릭스>에서 기계의 감금과 통제 속에 왜곡된 진실 속에서 살던 니오(Neo)는 매트릭스를 벗어났고 이제 그는 예언 속의 그(the One)로서, 자이온(Zion)에 사는 인간들에게 희망적인 존재가 되었다. 니오(Neo)는 그들이 염원하는 the One, 즉 해방자이자 메시아인 것이다. 니오(Neo)는 자신이 매트릭스 속에서 벗어났으며, 이젠 더 이상 시스템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인간을 감금하여 통제하는 시스템을 파괴하고 인간들을 구원할 것을 자신의 목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매트릭스 리로디드>에서 니오(Neo)가 하먼 의원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의원의 질문은 이런 니오(Neo)의 신념에 찬 운동 방향성에 역행한다. 사실 처음부터 자이온(Zion)은 그런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기계문명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자이온(Zion)은 자연이 푸르르고 땅의 소산을 통하여 생활을 영위하는 인류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지하 깊숙한 곳에서 지열 에너지원을 이용하여 또 다른 기계를 통해 생활을 하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인간을 기계에 의한 통제에서 해방시킨다는 니오(Neo)에게, 의원은 통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니오(Neo)는 인간이 원할 때 자유롭게 기계를 멈출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의원은 그런 니오(Neo)의 대답에 회의감을 표한다. 과연 인간이 원할 때 기계를 멈출 수 있는가. 인간은 이미 발전사의 대부분에서 기계 의존적인, 시스템 의존적인 삶을 살아왔는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는가. 한 여름에 40도를 넘나드는 사무실에 에어컨을 끌 수 있는가. 극 지방에서 난방기구를 끌 수 있는가.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발전소의 기계들을 우리가 임의로 멈추게 할 수 있는가.

워쇼스키(Wachowski) 형제는 의원의 입을 통해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쉽게 현실 세계에서도 수없이 많은 예를 들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을 통제하고 필요하면 기계를 멈추게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러한가. 인간이 월드 와이드 웹을 파기할 수 있는가. 인간이 금융기관 건물의 보안 시스템을 멈출 수 있는가, 혹은 폐기할 수 있는가. 보일러 없이 한 여름과 한 겨울을 보낼 수 있는가. 우리가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시스템이 이미 우리 삶을 구조화하고 규정하고 통제하고 있지 않은가. 네트워크가 연결된 컴퓨터 없이 대기업에 종사하는 회사원들이 업무를 보는 것이 가능한가. 과연 나는 끄고 싶을 때 시스템을 셧다운 할 수 있는 위치의 결정자인가. 어쩌면 사실상 한 개인은 구조화된 시스템의 통제를 견고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니오(Neo)는 “그럼, 의원님의 요점은 인간과 기계가 공생관계라는 건가요?”라고 되묻는다. 이 대목에서 의원은 논점이 없는 말이라고 얼버무린다. 자신은 논점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늙었다고 그래서 세상의 변화를 다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구세대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역사의 수직적인 흐름을 보고 있는 늙은 의원에 눈에는 젊은 세대들의 확신에 찬 모습에 회의감을 표현한다. 늙은 이들은 그들의 시야보다 더 많은 것이 보인다. 하지만 테크놀로지는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구세대들은 그러한 기계 문명의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에 대해 논점을 말하지는 못한다. 그러기엔 너무 구식(old-fashioned)이 되어버린 탓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권력이 있다. 그는 노친네의 넋두리를 늘어 놓으면서 테크놀로지 세대의 지도자격인 니오(Neo)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인류 문명을 대표하는 자이온(Zion)의 사활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니오의 모습은 현대를 사는 이전 세대가 바라보는 우리 세대의 모습이기도 하다.

2003년 6월 9일.

2003/06/09 18:04 2003/06/0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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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4): 직장생활 보고서 (2) (2003. 6.)

/ 김용주


<성(性)적인 문제>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한 선배를 오랜 만에 만났다. 반갑다는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가 무르익을 때쯤 회사생활에 대해 물었다.

“며칠 동안 프로젝트에 시달리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만 너무 피곤하더라고. 그래서 마사지를 받으러 갔지. 근데 글쎄 거기서 하는 말이 2차를 가든 안 가든 2차 가는 돈까지 내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그냥 왔어?”
“아니. 2차 갔어.”
“…”

나 이가 들수록 뉴스에서만 보던 이상한 일들이 가까운 주변에서 일어난다. 폭탄주도 그렇고 이런 ‘출장 마사지’도 그렇다. 휴학 후 잠시 있었던 회사에서는 직장 선배들이 내게 ‘총각딱지’를 떼 주겠다고 안달이었다. 회식자리가 끝나고 2차를 간다고 할 때마다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직장인 남성들에게 이러한 성(性)적인 문제는, 회사를 갓 들어가서 겪는 꽤 피하기 힘든 유혹처럼 보인다. 난 기독인이지만 불신자인 친구들도 많았고, 캠퍼스를 떠나 있는 동안 여러 부류의 사람들도 만났다. 기독인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불신자들은 30대를 전후하여 이러한 환경에서 성적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회사에서 남자 직원들 사이에 포르노물이 담긴 CD가 도는 것은 정말 흔한 일이고. 스포츠신문에서 연일 비밀처럼 보도되는 그런 내용의 비디오나 사진 파일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신기할 정도로 많이 퍼져있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그런 류의 음란물을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문제는 지위고하나 교육수준을 막론하고 모든 남성들이 피하지 못하는 유혹이 되고 있다. 병원에 의료기를 납품하고 있는 친구 중 하나의 말이, 자기가 거래하고 있는 병원의 의사가 물건 납품 시에 그런 음란물을 요구했다고 한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음란물에 나오는 사람이 한국사람이어야 한다는 둥, 꽤나 구체적으로 자신의 기호를 밝히더라는 것이다!

갓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직장 남성들은 과도한 일에 쫓겨 자신의 시간을 제대로 쓸 수 없을 때가 많다. 능력 있고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일수록 업무량과 출장이 많으니 그만큼 대인관계를 맺을 시간을 부족해지고, 그러한 연유로 많은 남성들이 이성과의 친밀한 관계에 대한 갈급함을 다른 방향으로 충족시키려는 듯 하다. 스포츠와 같은 활동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고 열린 공간에서 주변 사람들을 사귀는 이들도 있지만, 만성적 피로와 스트레스에 지친 상당수의 직장 남성들은 마사지나 술자리에서 성적 유혹을 받기 쉽고, 혼자 있는 시간에 음란물들을 탐닉하기 쉽다. 더욱 문제인 것은 직장 생활에서 남성들의 생활 구조가 그러한 유혹을 현실화시키는 데에 구조적으로 아주 적합하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구조 속에서 직장 남성들이 쉽게 자신의 욕구해소의 방편으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인격적 관계없이 물질로 성적인 욕망을 해결하는 습관이 들게 되면 결혼 후에도 그것을 멈추기가 힘들게 되는 것 같다. 회사에서 나와 친했던 선배는 결혼 후에도 술자리에만 가면 2차에서 그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다음날 출근해서는 아내와 자녀에 대한 죄책감이 들어 자신을 정죄했지만 내가 근무하는 동안 그의 습관이 완전히 근절되지 않았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문제의 소지가 있겠지만 나는 한편으로는 이러한 비인격적인 행동이 오히려 낫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정당하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고 그런 남성들의 문제에 면죄부를 줄 생각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일부의 정이 많은 불신자나 기독인에게 주로 나타나는 또 다른 유혹이다. 이는 서로 잘 아는 이들 사이에서 많이 생기는데 그것은 기혼자 ‘사내 커플’의 문제다! 이른 바 결혼한 직장인의 ‘이성친구’에 대한 문제인데 이것은 두 사람 사이의 인격적인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 지속적이고 그 영향도 앞서 이야기했던 것들보다 크다. 내가 아는 회사의 이성 커플 중 자신의 가정에 두 사람 사이가 알려진 경우에는 모두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기독인의 경우, 회사에서도 일 중심적이기보다는 관계 중심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하는데 직장의 이성동료에 대한 그러한 애정 어린 관심과 도움이 지속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기도 한다. 간혹 교회의 목사님들이 여성도와 문제가 생기는 시발점은 오히려 좋은 동기에서 발생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기혼자의 경우에 발생하는 이런 문제는 가정에 치명적이며 그리스도의 섬김이라는 긍정적인 시도가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감시와 처벌>

이번에는 개인의 윤리적인 문제를 넘어서 직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 보자. 신입 사원이 대기업에 처음 입사를 하면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감시가 시작된다. 사원의 행동이나 버릇과 같은 반복적 패턴, 그리고 일을 대하는 방식, 말투와 같은 세세한 부분이 정리가 되어 인사를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사원들에게는 출입증이 발부되며 그 출입증은 회사 내에서는 직위를 상징하는 표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장된 칩을 통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가볍게는 화장실에서 잠을 잔다거나 혹은, 외근을 나갔다가 사우나를 간 경우 그 내역이 상부에 보고된다. 회사에서 나가는 일련의 메일들은 모두 그대로 복제되어 사내에 보관된다. 이러한 메일은 회사내의 기밀이 외부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통제수단이지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면 개인의 사생활까지 감시할 수 있는 도구적인 기능도 할 수 있다. 사무 자동화가 이루어진 이후로 회사는 직원들로 하여금 높아진 담을 두고 각기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한편, MSN 메신저나 출입증으로 각 개인을 매 시간 체크한다. 또한 근무시간에 자리를 이탈한다거나 업무 외의 일로 시간을 보내는지 감시하기 위해 자신이 속한 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의 직원들이 수시로 돌아다니면서 각 사원들을 체크하고 그 내역을 작성, 보고한다. 이러한 보고는 다시 인사팀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며 이후의 인사고과에 참고자료로 쓰이기도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는 무슨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나 “메트릭스”와 같은 영화 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아니면 어느 정도 공감을 할 수도 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는 나도 잘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접한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조합하면 위와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나는 이 이야기가 충분히 사실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지 금도 후불제 교통카드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경우 특정한 날짜와 정확한 시간에 다녀간 장소를 알아낼 수 있다. 휴대폰을 켜 놓은 상태에서는 실시간으로 그 사람의 위치 추적도 가능하다. 예전에 특정 번호의 휴대폰 서비스업체에 가입한 사람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웹사이트가 잠시 개설되었다가 개인의 정보문제로 사라진 사례가 있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에도 행방불명 된 사람들 중 일부는 켜져 있는 휴대폰의 신호로 알아냈다는 기사 또한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간단한 프로그램으로 다른 컴퓨터의 정보를 가져올 수 있으며, 회사 내에서 외부로 나가는 메일은 검색어를 통해서도 걸러내거나 내용을 복사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란 얘기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서 손쉽게 사원들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당장에 쓰지 않겠는가.


<섬길 것인가 섬김을 당할 것인가?>

여전히 복음주의권에서 직장 윤리를 이야기할 때는 직장을 다니는 기독인 개개인의 섬김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복음을 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되어 회사에서도 동일한 섬김의 삶을 살 때 그 직장도 변화될 것이라는 청교도적인 믿음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듯 하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항상 그러한가? 개개인의 도덕성이 회복되고 조직에 충성되게 일하면 그 조직의 도덕성이 높아지는가? 이 즈음에서는 라인홀트 니버의 유명한 책이 떠오른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 경험을 곁들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당시는 의욕적으로 회사 생활을 잠시 하던 시기였다. 그때 나는 복음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나는 그 동안 내가 헛된 믿음 속에서 공허한 섬김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깊게 깨닫고 있었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성화되고 있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성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욕구가 더 컸고, 은연중에 스스로가 더 선해지기 보다는 더 선하게 보이면서도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방법을 익히며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해 가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그 동안 그렇게 자신했던 기독인의 삶이었음을 발견하면서 나는 깊이 뉘우쳤고 새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럴 때 즈음에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나는 뭐든 일이 있으면 “제가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연발했다. 나는 성실함과 능력, 그리고 섬김의 모습으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일 때 진정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커피를 뽑는다거나 문서의 복사, 팩스 보내는 일이나 전화응대 같은 다소 귀찮고 무료하게 시간이 소모되는 일들이 하나씩 내 일이 되어 갔다. 다른 직원들은 처음에 나의 선행에 좋은 말들을 해 주곤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모두가 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점점 하루 종일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만 갔고, 결국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을 마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어 자주 초과근무를 하는 일도 생겼다. 나중에는 복사지나 커피가 떨어졌거나 복사기가 고장이 난 경우에 사람들은 나에게 불평을 하기 일쑤였고 그런 상황에서 나는 작은 일 하나 제대로 못한다는 타박마저 들어야 했다. ‘그래, 이런 게 섬김의 길이야. 처음부터 칭찬을 기대해서 한 일이 아니었잖아.’ 나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조금씩 발생했다. 내가 일과의 대부분을 허드렛일과 씨름하며 보내는 동안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다른 이들은 나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동일한 시간의 대부분을 나는 발전적이지 않은,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들을 했던 반면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내적인 가치를 높이는 일에 전념했다. 그들은 나와 달리 때로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고 때로는 기대하지 않은 성과를 내며 상사의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결과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한 가운데 그 사람은 그 조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커 갔고, 나는 언제든 다른 어떤 사람과도 맞교환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이는 그 조직의 사람들이 특별히 악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떤 조직에 들어가던지 내가 그 때와 똑같이 행동한다면 그 조직도 똑같이 나를 대접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기업이라는 조직의 특수성에 기인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비영리 단체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기업은 이윤추구가 그들의 궁극적 목표다. 그것이 기업의 진리인 셈이다. 기업에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일이 있다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주저하지 않고 선택하며 그 일에 투자한다. 물론 투자의 과정까지 여러 부분을 재어보고 결정하겠지만 그 결정의 궁극적 잣대는 기업의 이익이다. 대부분의 사원들은 자신의 충정을 기업의 조직원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조직원들의 총합(summation)으로 이루어진 조직은 그러한 자신의 충정을 헤아리고 적절한 대접을 해 주리라고 믿는다. 적어도 과거 우리 아버지 세대의 분들은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회사는 각각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기계와 같다. 각 부품의 수명이 다했거나 그 부품보다 더 좋은 모델이 나왔을 경우에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새 부품으로 교체한다. IMF 체제 속에서 많은 이들이 이러한 부품 대접을 받고 망연자실했다. 이럴 경우 때로는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릴 정도로 그 충격은 클 수 밖에 없다. 매일을 내 집처럼, 아니 내 집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던 회사에서 자신의 자리가 사라져 벼렸을 때의 심정이란, 당해보지 않으면 그 느낌을 헤아리기가 힘든 것 같다. 기업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섬김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이런 면에서 어찌 보면 어폐(語弊)가 있는 듯하다.


<기업의 모듈화, 책임감 없는 기독 직장인>

기업의 풍토도 변화하고 있다. 한 기업의 사활이 이제는 가치사슬을 중심으로 서로 얽혀 있는 것이 최근 기업의 모습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현대 사회에서 기업은 가치 사슬(value chain)을 중심으로 고객업체와 공급업체, 소비자, 그리고 하청업체가 서로 ‘다대다’ 관계로 얽혀있는 extended-enterprise(확장 기업군)으로 존재한다. 이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기업 이윤추구에 도움이 되는 일에 투자하며 그 투자는 다시 전략적인 제휴로 이어진다. 장기적 안목에서 모든 거래가 행해진다.

이러한 거대 기업군 사이에서 개인의 생존전략도 치열해진다. 내 주변만 보더라도 선배들의 직장이 3년~5년을 주기로 변화한다. 고객업체의 기업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공급업체로 회사를 옮기는 경우도 있다. 대개는 급여를 기준으로 전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교육을 시킨 직원들이 다른 회사로 옮기는 일이 잦아지면서 채용 시부터 업무를 바로 수행할 수 있는 직원을 선호한다. 기업 환경은 갈수록 전문 분야에서 능력 있고 탁월한 사람이 살아남는 자유경쟁 구도로 변화하고 있다. 기업에서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각 개인은 자신이 다른 직원으로 대체될 수 없는 중요한 업무 수행에서 탁월함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런 사람의 경우에는 다른 기업에서도 선호하는 직원으로 꼽힌다. 순수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개인의 능력에 따라 기업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조직의 구조 자체에 그러한 자동화된 프로세스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는 동적 하부구조를 가진 거대 기업군에서 실력자로 생존하기 위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몸부림치고 있다. 이미 어느 정도의 판을 꿰뚫고 있는 이들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가며 생존 전략을 몸에 익히며 빠르게 ‘직장’ 사이를, 혹은 ‘직종’ 사이를 가로지르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살아간다. 역시 문제는,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는 기독학생들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선교단체 출신의 기독학생들은 회사에 들어가서 하는 말이 있다.

“저, 잘 모르는데요.”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다음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가 아는 거의 모든 기독학생들은 겸손하다.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결과물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는 대부분이 기독 공동체에 있을 때부터 항상 고백하기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므로 나는 한 일이 없다’는 소스 코드를 기업에 가서도 동일한 연장선 상에서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듯 하다. (물론 나는 그런 고백을 하는 사람의 선의를 믿으며 또한 분명 그 고백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회개와 용서의 신학을 그릇되게 적용하려는 행동의 위험성이다. 기업은 인격적이지 않다. 또한 기업은 실수와 잘못에 대해 냉정하다. 기업에서 용서란 없다. 단지 투자의 가치를 판별할 따름이다. 기독 공동체에서 훈련 받은 많은 학생들은 잘못에 대해 너그럽다. 일 처리에 있어서 잘 마무리하지 못하고 그 순간을 도망쳐 나온다 하더라도 다시 공동체로 돌아와서 잘못을 인정하는 회개의 고백을 하면 공동체는 너그럽게 용서하고 다시 그 지체를 일원으로 반겨왔다. 따라서 상당수의 기독학생들은 일의 마무리를 잘못하며 때로는 지나치게 무책임하다.

기업은 다르다. 한 개인의 오판이나 일 처리의 불완전함은 그 기업의 생존을 좌지우지한다. 단돈 몇 푼이라도 투자를 적게 해야만 다른 경쟁업체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이는 단순히 이윤을 더 남기냐 덜 남기냐의 문제가 아니라 동일 직종의 여러 기업간 경쟁에서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된다. 따라서 한 개인의 실수가 그 기업에 치명적일 수 있으며 그러한 풍토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곧, 자신을 그 기업에서 다른 직원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고백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에 언급했던 기독 학생들이 흔히 쓰는 ‘회개’의 표현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겸손함의 표현이라거나 혹은 잘못한 일에 대한 용납을 기대하는 의미로 사용했을지는 모르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은 타인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원이며 이러한 일이 반복될 수 있음을 암암리에 반증하는 것이 된다. 자신의 복음주의적 고백이 결과적으로 기업의 입장에서는 ‘도태’를 의미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듯 이런 일련의 변화 속에 기독학생들은 무방비로 사회 속에 내몰리는 경향이 있다. 선교단체에서 교육받은 대로 직장을 섬기기에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동료집단 속에서 성적 문제와 도덕적 문제에 봉착하면서 그것을 고민하고 날마다 자신을 악한 세속 사회에서 지켜가는 것만으로도 다분히 지치고 좌절하기 쉽다. 섬김의 삶과 실력을 쌓는 삶 가운데에서 오는 불협화음과 혼란들은 시시때때로 기독인의 정체성을 뒤흔든다. 기업은 그러한 개인을 쉴새 없이 감시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한 개인은 때론 흔하게 쓰던 복음적인 고백들이 ‘무능’이라는 딱지를 달고 나아가 그러한 오점들이 인사고과에 반영되기까지 한다. 갈수록 삶은 복잡다단해 지고 있으며 복음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야심찬 기대들은 최소한 그 판을 읽을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 될 것 같다. 우리의 직장이 그렇다. (계속)**
2003/06/01 23:24 2003/06/0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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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불명 상태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자신을 모르는 남자를 짝사랑하는 여자.

 
이 두 영화는 모두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난 이런 류의 영화가 싫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류의 영화를 즐겨 보고싶지 않다고 하는 게 옳겠다. 나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탁월함을 인정한다. <talk to her>를 보는 내내 나는 그의 영화에 큰 매력을 느꼈다. 구성방식과 인물의 성격과 스토리의 전개는 정말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잠시 더 있고 싶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물고기 자리>를 연상케 했던 <He loves me>는 깔끔한 색감으로 영화의 비극적 요소가 가중되는 가운데에서도 잘 짜여진 세트와 색감의 화려하고 깔끔한 요소는 그런 슬픔의 감정에서 약간 동떨어져 영화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효과를 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른바 <짝사랑>이라는 소재가 불편하다. 둘 사이의 관계에서 한쪽이 임의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패턴에서 다른 한쪽은 개입할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 사람은 그럴 형편이 아니며,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관계 속에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가운데에서 감정은 스스로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점점 성장해간다.

<talk to her>에서 베니그노는 의식불명에 있는 알리샤의 간호를 자원하여 단 한 번 말을 걸어본 적이 있는 알리샤를 4년간 간호한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말도 걸고 다시 깨어날 거라는 믿음으로 그녀의 몸이 잘못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면서 그는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고 그 시간동안 그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몰입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서 베니그노는 알리샤와의 감정에서 비약하여 판단하게 된다. 결국 그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행동은 사랑과 결혼이라는 이상을 바라보지만 현실에서 그의 행동은 간호사가 환자를 강간한 것이 된다.

<He loves me>에서 안젤리끄는 루이라는 심장전문 의사를 사랑한다. 그것도 단 한 번의 대면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그 사람의 이상적인 모습을 각인시키고 그 모습의 옆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왜 안젤리끄는 그에게 본심을 이야기하지 못한 것일까. 베니그노와는 달리 안젤리끄가 사랑하는 루이는 살아있고 의식이 있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안젤리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일 루이가 의식불명상태에 있다면 안젤리끄도 그런 간호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루이는 안젤리끄의 기대처럼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다른 사람의 남편이다. 안젤리끄는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이미 모든 스토리를 내면화한다. 그리고, 그것을 당사자인 루이만 빼고 주변 사람들과 공유한다. 주변 사람들이 믿는 것을 보면 안젤리끄 자신에게만은 그 관계가 진실보다 더 현실감있는 거짓인 셈이다.
 
이 두 영화가 비극적인 결말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것은 처음부터 예정된 것임에 분명하다. 그런 마지막을 보고싶지 않기 때문에 영화 자체의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이련 류의 영화를 꺼리게 되는 게 내 본심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아프다. 그렇기 때문에 그 흔한 유행가의 가사처럼 눈물의 씨앗이나 유리같이 깨지기 쉬운 것에 비유하는 일이 많다. 또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두려움과 자기 방어적인 심리를 수반한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 영화들이 내게 던진 화두는 무엇을 사랑의 시작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베니그로나 안젤리끄에게 사랑은 한 번의 대면을 통해 자기 안에 각인된 이미지와 그것을 자기의 깊은 내면에서 고립화시키고 강화시키는 행동이다. 결국 비극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주인공들의 순수함으로 미화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주변부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나는 이성 간의 사랑은 두 사람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교과서 같은 영화 <good will hunting>에서 나오는 숀 교수와 윌의 대화 속에 그러한 사랑의 정의는 서정적으로 녹아있다. 시간이라는 축을 따라 성장해가는 함수의 자연스러운 곡선. 그 가운데에서 경험하는 서로의 부족함, 서로의 작은 습관과 기호들. 그것들을 알아가면서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 닮아가는 모습 속에 두 사람이 정말로 이성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하나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흐름들에 나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그것이 이 두 영화들이, 단순히 서로가 한 번에 감정이 통해 하룻밤을 함께하고 일어나는 깔끔한 화면에서 "이것이 사랑"이라 말하는 헐리우드 영화의 가벼움을 조소하고 극단적 감정의 흐름들을 짚어갔다 할 지라도 내가 불편한 마음을 일소할 수 없는 이유다.
 
과정이 험난하고 고통스럽다 해도 여전히 사랑은 가치가 있고, 가장 숭고한 아름다움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것은 둘 사이의 communication을 전제로 한다.


2003년 5월.
2003/05/15 18:07 2003/05/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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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3): 직장 생활 보고서(1) (2003. 5.)

/김용주


<“커피”의 추억>

휴 학을 하고 잠시 회사를 다닐 때의 일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5-6년 전인 그 때에는 여직원이 커피 심부름을 하기가 일쑤였다. 물론 지금도 신문지상에서 간간이 커피 심부름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여전한 관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때는 여직원의 커피배달(?)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였다는 것이다. 아무튼 내가 있던 부서의 과장은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그리고 손님이 찾아오거나 회의가 있을 때 수시로 여직원에게 커피를 뽑아오도록 시키곤 했다.

“OO야, 커피 좀 뽑아와라!”
“네, 과장님.”

처 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상황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일단 남자직원은 커피 배달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이나 역할 분담에 대한 고민을 해보지 않는 게 신기했다. 게다가 가까이에서 지켜본 커피 심부름은 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과장은 커피를 가져온 여직원을 마치 다방 아가씨 대하듯 할 때가 많았다. 커피를 뽑아 와서 책상 앞에 놓을 때 과장은 야한 농담을 건네기 일쑤였다. 옷차림이나 화장에 대해 타박을 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손을 잡거나 허리 같은 몸의 부위를 두드리기도 했다. 간혹 보이는 커피 접대의 장면에서 나는 상당히 마음이 안 좋았고, 당사자의 입장에서 매일 아침을 불쾌한 마음으로 시작해야 하는 고충이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과장은 사전에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도록 여직원이 일도 잘하고 싹싹해서 칭찬해 주려는 거라고 웃음 섞인 말을 직원들 앞에서 크게 떠들어댔고 사람들은 그저 평상적인 웃음을 보이고 자기 일에 집중하며 상황은 무마되곤 했다.

어느 날 나는 젊은 혈기로 뭉친 의협심이 발동하여 여직원에게 가서 말했다.

“과장님 커피 제가 뽑아다 드릴게요.”

사실,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그 여직원은 커피 뽑는 문제로 상당히 예민해져 있었다. 나는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녀는 상처가 쌓여서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했던 듯 했다.

“그럼, 앞으로 커피 심부름은 용주 씨가 다 하세요!”

그 렇게 말하고는 획 하고 돌아서는 여직원에게 내가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사실 당시의 나는 솔직히 말해서 약간의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뿐이었지 매일 커피 심부름이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약간의 도움으로 회사에서 여직원을 위하는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도 받고 싶은 동기가 내 안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여직원이 그렇게 나오자 나는 불쾌해졌다. 괜히 나섰다가 덤태기를 쓴 것 같아 솔직히 약간 분한 마음이 들어서 그 여직원이 나간 곳으로 따라 나갔다. 너무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려고 나갔는데 그녀는 화장실 뒤뜰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게 아닌가! 난 내가 임시직이긴 해도 직장에서 특권층인 남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 여직원은 열심히 공부하고 커다란 포부로 회사에 들어와서는 커피 심부름으로 매일같이 과장에게 불쾌하게 희롱 당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선의는 같은 부류인 한 남자의 비아냥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결국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사무실로 돌아왔다.

대신 다음 날부터 과장이 여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면 내가 재빨리 커피를 뽑아다가 과장을 갖다 주었다. 그러자 이번엔 여직원의 입장이 좀 난처해지는 것 같았고, 다행히 여직원은 나의 선의를 ‘인정’해 주어 이후로는 역할을 분담하게 되었다. 커피 심부름은 내가 하되 과장에게는 여직원이 직접 가져다 주는 팀웍을 구사했던 것이다. 그게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변화시키진 못했지만 적어도 여직원의 마음은 누그러뜨려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커피를 가져가는 타이밍에 생기는 문제 때문에 나는 되도록이면 결제 서류 같은 것을 여직원이 커피를 가져가는 시간에 과장에게 보여주곤 했다. 타이밍이 항상 잘 맞은 건 아니었지만 내가 결제 서류를 보여주는 사이에 여직원은 그냥 나오면 되니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었던 듯 하다.

 
<여직원은 접대부?>

직 장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치게 미시적인, 그것도 ‘커피 배달’의 추억으로 시작하는 것에 김이 빠지는 독자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직장 경험 이후 시간도 많이 흘렀고 이제는 성희롱이나 커피 접대 같은 일에는 여직원이 보호 받는 풍토도 많이 조성되어 철 지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신문에서 교장이 여교사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면서 출세하려면 그런 것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냐는 식의 말을 당당하게 했다는 기사를 보면 불편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직장을 이야기할 때 여직원의 복지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것부터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나에게 이 보고서는 기만적이란 생각을 한다. 사실 이 글의 처음에 들었던 개인적 경험은 그나마 잘 풀린 사례다. 내가 경험했던 직장생활에서 항상 그렇게 좋게만 풀리진 않았다. 참다 못한 여직원이 회사생활의 꿈을 접고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도 허다했다. 나 스스로도 가부장적인 직장 생활에서 다른 남자 직원처럼 몸을 사린 기억도 많다.

저 유명했던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박노자 교수는 한국의 남자들이 군대라는 조직을 통해 어떻게 형질이 바뀌는지를 잘 설명해주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국의 남자들은 군대라는 조직을 통해서 이후의 직장생활에서 마주치게 되는 대인관계, 그리고 사회 속의 조직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교육받게 된다. 회사라는 조직에 가서도 직장 상사는 단순히 자신보다 연배가 높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나 업무의 최종 책임을 지고 나에게 필요한 업무들을 지시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군대에서 겪은 고참처럼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이른바 “까라면 까라”는 관계가 형성되고, 상사가 하는 말은 곧 법이 되며 절대 복종의 대상이 된다. 상사의 직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군대에서 경험한 계급과 동일한 관계 계산법이 머리 속에서 작동하게 되고, 그런 전근대적인 회사 조직은 직원들에게 야근을 시켜가며 밤새도록 ‘굴리기도’ 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 회사라는 조직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대상은, 군대경험이 없고 신체 조건에서 불리한 연약한 여직원이 된다. 남자 직원은 3년간 그런 상명하복의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서 직장 생활을 무난하게 하는데 여직원은 다르다. “까라면 까”야 되는데 까라면 눈물을 흘리기 일쑤고, 야근을 꺼려하고 임신, 출산 및 육아 휴직에 아이들을 놀이방에 보내고 늦게 출근하는 일도 다반사이다. 이윤추구가 목표인 회사에서 여직원의 그러한 요구들은 눈에 가시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전근대적인 회사일수록 여직원을 채용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들이 존재하게 되고, 그런 연유로 면접 시에 여직원의 외모나 키, 나이 같은 것을 은근히 조건으로 내세우는 황당한 일을 저지르곤 한다. “여직원이 회사 생활을 하려면 부엌일도 잘 하고, 커피도 잘 타고 나긋나긋해야지”라고 말하는 데에는 그러한 가부장적인 직장 분위기의 폭력성이 드러나 있다. 이건 한 마디로 기업에서 ‘접대부’를 고용하겠다는 뜻이다.

최 근에는 나도 이러한 관행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대학원에 들어온 지금은 그런 환경에서 멀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에 주변에서 취업을 하는 여학생들이나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의 아내 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경험하던 불합리한 상황들은 많이 사라졌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복지 문제에서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직장에서 남성과 동등한 위치로 여성들이 경쟁을 하고 있다면, 아니, 보다 원색적으로 말해서 회사가 여사원을 단순히 ‘접대부’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조직 구석 구석에는 능력 있는 여성들이 많은 남성들과 더불어 이름을 날리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최소한 비슷한 수의 여성들이 회사에서 남성들과 함께 사회 생활을 영위하고 있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의 이른바 고위직에 남성과 비슷한 수의 여성들이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 교수 사회를 예로 든다면, 여 교수가 형편없이 부족한 대학에는 교수직 선출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지속적인 상징적 폐기가 그 조직에 암암리에 고착화되어 있었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대개 이런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전반적인 회사에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여성을 폄하하곤 했는데, 내가 직장 생활을 통하여 체험한 여성에 대한 상징적 폐기의 방식에는 몇 가지의 유형이 있다. 대충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여성들은 업무 시간에 잡담을 하거나 커피 자판기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
2. 여성들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여 사적인 문제가 생기면 업무의 능률이 떨어진다.
3. 여성들은 업무 시간에 개인적인 전화를 너무 오래 한다.
4. 여성들은 결혼 후에는 사직할 확률이 높고 대체로 3-5년 정도 이상 장기 근무할 생각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 론 위와 같은 나열을 어떤 일반적인 유형으로 상정하자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까지 전문적인 통계수치를 가지고 이 문제를 연구하지도 않은 입장에서 나는 단지 내가 경험한 직장 생활의 특수한 경우를 이야기하려는 것뿐이다. 하지만, 주변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회사에서 여성을 평가절하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그런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지나치게 여성들에 대한 부정적 선입관이 포함되어 어서 그러한 정서는 다소 고쳐져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나는 위와 같이 이야기하는 바로 그런 회사에서 도리어 여성에게 허드렛일만을 강요한 결과는 아닌가 하는 되물음을 던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인 여성의 분투를 바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나는 내가 여성이었으면 글을 쓰기에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겪게 될 문제가 아님으로 인해서 “힘들더라도 우리 이렇게 해쳐나가 보자!”는 식의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따라서 결국 이런 식의 문제제기는 “그런 거 다 알고 있는 일이야. 신문지 상에서도 매일 접할 수 있고 나도 매일 겪는 일이지. 하지만 단순히 흥미거리로 만들기 위해서 이런 글을 쓴 게 아니라면 무슨 나름의 해결책이라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비판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 생활 보고서의 시작을 내가 어떤 대안을 이야기할 수 없는 직장 여성 문제로 시작하게 된 것은 처음에도 말했듯이 직장에서 여성의 복지 문제를 도외시하고는 직장을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비중이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성들의 입장에서는 이를 가볍게 여기고 이전과 동일한 사내의 가부장적 정서로 직장 여성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글을 쓰는 동기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무런 인식 없이 직장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기독인 여학생들에게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보자는 의도이다. 그리고 나름의 대안들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최소한 적진의 지도조차 없이 들어갔다가 낭패를 보는 일은 겪지 말고 지형의 가장 나쁜 경우가 이렇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마음의 준비와 나름의 행동지침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램이다. 특히 기독 선교단체 출신의 여학생들의 경우에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공동체 형제들의 보살핌 속에서 생활하다가 갑자기 바뀐 환경에 당혹스러워하며 상처를 받고 적응하지 못하여 결국에는 안타깝게 회사 생활을 접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대학 지성사회로의 부르심을 입은 기독인 여학생들도 직장 생활의 부르심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여성들의 직장 문화와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을 도피하지 않고 분투하는 일에 함께 대응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03/05/01 23:10 2003/05/0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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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결정이 한국 교회의 희망입니다
: 대형교회 목사님의 아드님들에게 보내는 서신

 
/김용주

  

새벽에 잠에서 깨면 온몸에 한기가 느껴지던 때가 불과 며칠 전인 것 같은데, 이제는 어느덧 따스한 햇살이 그간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온기를 가져다 주는 봄기운을 느낍니다. 이 서신을 님께서 받아보실 즈음에는 이미 녹음(綠陰)이 푸르게 새 생명을 얻을 시기일 것 같습니다. 평안하신지요.

저는 조그만 교회를 다니고 있는 기독 청년입니다. 몇 년 전에 저는 우연히 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제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저를 포함한 많은 청년들과 성도들의 가슴에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줄 만한 이야기였기에 저는 지금까지도 많은 관련된 이야기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모든 것이 기정사실로 들어날 때마다 저는 님과 님의 아버지의 선의를 받아들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님의 아버지께서 한국의 교회를 세우는데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흔히 복음주의 1세대라고 지칭하는 데에는 지금의 대형교회로 성장한 몇몇 교회의 목회자 분들의 헌신과 노력이 깃들어 있으며 그러한 토대 위에 세워진 터 위에서 우리가 커왔다는 생각을 하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그 분들의 노고에 항상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처음 담임 목회직 세습에 대한 논의가 나왔을 때에도 저는 그 부당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님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좀더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어하는 부성애는 정상적인 아버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본성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님께서도 그러한 아버지에 대한 깊은 감사와 존경, 그리고 효심(孝心)으로 그런 어려운 결정을 하셨을 거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자, 저는 세습이 부적절한 판단과 행동이었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서도, 부족한 저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 내심 불편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렇게 님에게 서신을 띄우게 되었습니다. 저의 부족한 생각으로는 님이 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저와 성도들, 그리고 한국 교회를 위하여 큰 변화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저는 진정으로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 사역을 하다 보면 자신의 아들을 학대하고 내버리고,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임의로 자녀들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볼 때, 저도 나이가 들어 아버지가 되어서 그런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진정 누군가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끝까지 사랑하는 일은 지속적인 자기 것의 포기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하지만, 님의 아버지는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 분들입니다. 당신 입으로 자주 말하는 '주의 종'입니다.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작정하신 분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분들의 자식 사랑은 공감은 하지만 용납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분의 헌신으로 세워진 교회인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그 분들의 가르침 아래에서 시장바닥에서 힘겹게 일을 하면서도 예배당을 짓고 하나님께 당신의 나라가 확장되는 일에 헌금을 해왔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식의 등록금이 없어 대학에 못 보내는 일이 있어도 교회에 헌금이 부족한 경우에는 기꺼이 자식의 대학 진학을 포기시키고, 집의 전세비를 빼서라도 헌금에 열심을 내었던 일이 다반사였다고 들었습니다.

님의 아버지가 독재 시절에 사회에서 바른 소리를 하지 못했던 것은 그러한 선량한 성도들이 고통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그렇게 함으로써 얻은 정부의 도움으로 한국의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성장하게 된 기독교가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이 희망을 잃어가던 시기에 큰 버팀목과 안정을 줄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 억지스레 고개를 끄덕여 보던 적도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제가 듣게 된 이야기들은 오히려 저를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분들의 그러한 과거지사는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봉사로 꽃피울 때에 진정 그 당위성이 받아들여지게 됨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재정적인 비리 의혹과 '제왕적 리더쉽'이라고 표현되는, 그리고 인맥을 중심으로 담임 목사직을 세습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그간 그분들의 논리에 대한 당위성을 인정하려던 일말(一抹)의 명분마저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님의 아버지의 부정부패의 변화를 촉구하는 시위와 포럼장에 가 보기도 하고 기사로 듣기도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하늘 아래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러한 모습으로 만나야 하는 건지, 처음 시위에 동참하러 가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저는 이내 님의 아버지를 왜곡되게 사랑하는 사역자들의 이상한 행동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비난과 욕설, 그리고 폭력을 행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단으로 치부하고 조롱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사역자 분이 전문적으로 힘을 쓰는 머리짧은 분들을 데려와서 포럼 위원들을 힘으로 진압했을 때에 저의 가슴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분노할 수 없는 채로 절망했습니다. 우리는 한 가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들의 대응에 저는 같은 식으로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 아래에서 그 분들도 우리가 끝까지 사랑해야 할, 서로의 심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는 한 형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님의 아버지께서 권력과 명예나 재산을 탐하고 있다고 믿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리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기사들이 나온다 해도 저는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아니, 그래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저 사랑하는 아들의 길을 조금만 닦아주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라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아버지의 마음은 한국의 천만 성도들의 아버지에게도 동일한 마음입니다.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뒤로한채 예배당을 짓는 곳에, 선교를 하겠다는 곳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쓰여진다는 곳에 님의 아버지가 섬기던 교회의 성도들은 자식의 편안을 위해 모아 두었던 재산들을 거리낌 없이 바쳤습니다.

저는 님이 커다란 기업의 사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백억원이 드는 개척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아버지의 교회에서 이제는 목회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장인어른과 40년 사이의 리더쉽을 뒤로한 채, 대표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기까지 또한 아버지를 잘못 섬기는 많은 분들의 희생과 노력이 필요했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좋건 싫건 그러한 희생을 치렀기 때문에 주변의 이야기들을 무시하고 빨리 안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한편으로는 이해하게 됩니다. 아픔이 지속되면 누구나 힘들어하고 공동체에 덕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2세대인 님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정말 뵐 수 있다면 무릎을 꿇고라도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님의 청년기의 꿈은 이런 게 아니었지 않습니까. 우리가 처음 복음을 전해듣고 마음에 생겼던 뜨거움은 이런 것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낮아짐과 그 피흘림. 죄를 위해 자신을 버려야 했던 창조주의 사랑 앞에 우리의 초라함과 죄성을 깊게 뉘우치며 가슴 아파하며 눈물로 회개한 그 날의 우리는 이런 것을 꿈꾼 게 아니었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임으로 인해 얻게 될 안정된 그 자리에서 님은 젊은 시절의 영적 충만함과 기쁨을 느낄 수 없지 않습니까. 님께서 처음 복음을 접했을 때 가졌던 그 기쁨은 지금의 자리와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의 시간이었지 않았습니까. 편안한 그 일체를 버리고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곳이 천국이라고 찬송하고 기뻐하고 눈물흘리던 님들이 아니었습니까.

저의 아버지도 나이가 드셨습니다. 젊었을 때의 패기와 어릴 때 제가 느꼈던 아버지로서의 강한 인상이 많이 사라지셨고, 마음도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인간적인 부분으로 이해해 드려야 할 일들도 많아졌습니다. 때론 자식을 위해 판단력도 많이 흐려지시는 것 같습니다. 제 아버지도 점점 제가 편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아버지께 저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게 됩니다.
사실 저도 자신이 없습니다. 험한 삶을 마쳐갈 즈음에 자식이 고생하지 않을 수 있는 힘과 권력이 내게 있다면 저도 그러한 일에 분명 유혹을 받게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육체의 부모는 님을 맡은 것 뿐이며 우리의 영적 아버지는 때때로 육체의 아버지가 행하는 잘못된 방법들을 원치 않는다는 저의 신앙 때문입니다.

님의 결정은 아주 중요합니다. 님의 교회에서 이야기하듯 님의 교회는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돈으로 세워진 예배당 같은 건물이나 재산과 명예가 아닌 성도들 그 자체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님의 아버지를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님의 결정에 희망을 걸고 싶습니다. 님은 아직 젊지 않습니까. 지금 님의 학력과 재산과 명예만 가지고도, 아버지의 그러한 방법 없이도 님의 능력은 드러날 수 있지 않습니까. 많은 성도들의 희생과 사랑으로 커온 님들이 아닙니까. 님의 꿈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한국 교회에서 ‘주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님의 결정을 통해 그것을 확증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저와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그러한 결정으로 인해 님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희망으로 님을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님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간절히 원합니다. 정말로 간절히 원합니다. 종국에 역사는 굽어진 허리는 바르게 펴기 마련이며 그러한 올바른 역사의 결정을 내리게 될 때에, 님의 아버지께서도 마음이 누그러질 것이며 결국에는 님을 자랑스러워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같은 피를 심장에 이식 받은 형제된 저의 바람입니다.

영육 간에 평안과 건강을 기원하며.
 


김용주 드림.

2003/05/01 00:46 2003/05/0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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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2): 캠퍼스 보고서 (2003. 3.)

/김용주


<변화된 캠퍼스 전경>

아 직도 가끔 생각나는 건 복학을 한 첫 주의 캠퍼스에서 받은 충격이다. 수강신청 시에 신청서를 써서 과사무실에 제출하던 과거와는 달리, 전산실에서 학번과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각 수업을 조회하여 그 과목의 학수번호를 입력하여 신청하게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전에 학수번호 검색을 이미 마친 상태로 왔고, 나는 한참동안 과목들을 검색한 후에 신청 버튼을 눌러야만 했고 그 사이 대부분의 인기있는 과목은 이미 정원이 다 차버리기 일쑤였다.

수업 첫 날, 나는 정말 별천지에 온 것 같았다. 수업 당일에 교제까지 알아서 챙겨온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수업 자료는 웹 페이지에 링크를 시켜놓았는데 PDF 파일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둥, 숙제는 교제의 뒤에 첨부된 소프트웨어를 컴퓨터에 설치하여 프로그램을 돌린 후에 생성된 파일을 언제까지 칠판에 공지된 ftp주소에 올려 놓으라는 둥, 텀프로젝트(Term-Project)는 언제까지인데 코딩은 C++이나 자바로 하고, 발표자료는 파워포인트로 하라는 둥, 이런 저런 수업소개를 하는 교수의 말을 들으며, 나는 마치 외계인을 만난 것 같은 낯선 느낌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식의 수업진행이 보편화되었지만, 90년대 중반에 학교를 다니다가 공백기간을 거쳐 다시 돌아온 캠퍼스에서의 학업과정이 당시에 내게는 그렇게 낯설기만 했다.

공강시간마다 지나다니는 복도에는 직접 손으로 쓴 대자보와 동문회 소식지들 대신에 깔끔한 디자인과 색상으로 포장된 학기 중 인턴사원을 모집한다는 대기업의 홍보물과 토플, 토익 같은 어학 특강 공지로 매워져 있었고, 도서관에는 고시 준비에 필요한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자리들로 가득했다.

예전과는 달리 수업을 들어가자 각 학과마다 전과생과 편입생들의 수가 늘어나 있었다. 학과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평균 연령도 높아진 편이며 이런 학생들의 경우, 캠퍼스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노련함이 돋보일 때가 많았다. 학과는 대부분 학부로 변화되었고, 한 학부 당 평균 인원 수가 100명 이상이 되면서 선후배간의 친밀함도 줄어들었다.


<캠퍼스 시험 문화 보고서>

캠 퍼스 생활을 하면서 나는 전과는 다른 몇 가지의 점들을 발견했는데, 그것 중의 하나는 시험이었다. 나는 처음 학교에 들어가서는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과에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수강신청을 한 후에 전공 중에 자신있는 한 과목씩을 맡아서 그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그것을 20-30분 정도 다른 학생들에게 설명해주고 중요한 부분을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그런 모임의 장점은 아무리 모임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자기가 공부한 과목은 높은 학점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대부분 학생들은 도서관이나 집에서 시험 준비를 하거나 때로는 동아리 방이나 과방에서 그룹별로 모여서 함께 공부를 하는 일이 많았다.

복학 후부터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시험문화도 변화했다. 요즘 학생들은 지속적인 그룹별 활동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지속적인 스터디보다는 단회적인 시험에 잘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한 면에서, 시험을 칠 때 실력 검증보다는 정보의 ‘선점(先占)’에 더 큰 에너지를 쏟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학생들은 시험 전에 해당 교수의 연구실에서 주로 중요한 정보들을 얻는 것으로 시험준비를 시작한다.

소개팅 이나 술자리를 통해 연구실의 조교들과 친분을 쌓는 일도 많고, 시험기간에는 조교들이 그런 식으로 친해진 학생들에게 평소 교수가 자주 출제하는 문제나 출제 방식에 대한 것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물론 이런 정보들을 가진 노련한 학생들이 무식하게 책 한 권을 다 읽은 학생들보다 시험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시험 기간에는 어쩔 수 없이 학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에 앞서 누가 시험문제를 출제하는가 하는 문제와 그에 대한 정보를 누가 먼저, 그리고 주변에 알리지 않고 얻는가가 시험의 변별력을 높이기까지 한다. 과장되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나도 고민 끝에 그런 흐름에 합류했다. 더 이상 스터디 모임은 유지되기 힘들다고 판단했고, 일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어렵게 얻은 시험관련 소스들을 주변 친구들에게 오픈하는 방법을 택했다! 나의 목적은 그런 식의 자료들을 가진 소수가 그 과목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숙지한 학생들보다 높은 점수가 나오지 않도록 정보전에서의 변별력을 줄이는 데에 있었다. 초반에는 좋은 변화들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소스를 공개하는 나에게서 정작 중요한 정보들이 멀어지는 일이 생겼다. 전문용어로 ‘왕따’가 되었다고나 할까.


<캠퍼스 ‘보고서 문화’ 보고서>

나 는 학부에 있을 때, 스탠리 그랜츠와 같은 복음주의권 저자의 영향을 받고있던 터라 되도록이면 신앙과 학문을 연결시킬 수 있는 과목을 주로 선택했고, 보고서는 그런 관점에서 썼다. 보통 중간이나 기말 보고서의 경우 20일에서 한달 정도가 소요되었고, 분량은 A4용지 20장 내외 정도를 썼다. 물론 내가 제출한 보고서는 한 번도 최고점수를 받아본 일이 없었다. 보고서 자체가 부족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종교적 시각을 드러내는 글은 논리 이전에 평가절하되기 일쑤였고 레퍼런스에 기독서적이 포함되는 것도 학문적 신뢰도를 낮추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나는 항상 그런 평가에 오기가 생겨서 강사가 요구하는 수준의 참고서적과 더불어 소위 복음주의권에서 관련 연구가 어느 정도나 진척되었는지 함께 공부를 병행했었다. 물론, 결과는 항상 내게 실망감을 가져다 줄 때가 많았다. 돌아보면 한 과목당 함께 읽은 책은 6-8권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보고서도 내가 선호했던 ‘텍스트 기반’의 작성 스타일에서 ‘하이퍼텍스트 기반’으로 달라졌다. 더 이상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다. 보고서도 이제는 정보전(情報戰)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에서 구글(google)과 같은 전문 검색 사이트를 참조하는 물론이고, 해당 과목에 대한 보고서를 공유하는 전문 사이트들도 즐비하다. 회원가입절차를 거치면 전공과 교양 과목에 따라 분류된 대로 해당 보고서에 대한 검색이 가능하다. 정확히 일치하는 주제는 물론, 운이 좋은 경우에는 해당 교수가 높게 평가했던 바로 ‘그’ 보고서까지 조회가 가능한 경우도 있다.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소스 파일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잘 찾아낸 후에 Copy & Paste 작업을 거쳐 조금만 편집하면 훌륭한 보고서가 된다. 문제는, 그 분야에 대해 꾸준히 텍스트를 읽고 나름대로 한계를 느껴가면서 작성한 보고서보다 전자가 훨씬 양이나 질적으로 우수한 경우가 많다. 때때로 교수들도 공공연하게 잘 편집한 ‘짜집기 보고서’에도 좋은 점수를 부여하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물론 개중에는 이런 식의 보고서를 받기 싫어하는 교수들이 직접 손으로 쓰는 것을 고집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전통적인 학업방식을 고수하는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뒤쳐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러한 하이퍼텍스트 기반의 보고서 작성에 어느 정도 익숙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보고서를 학점에서 일정한 퍼센티지를 차지하고 있는 숙제 정도로 생각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수많은 복제된 보고서를 양산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은 수강신청 때부터 공부해보고 싶던 분야를 찾기 보다는 취업 준비와 고시 준비로 바쁜 자신의 시간을 감안하여 취득하기 수월한 과목을 정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과목의 보고서들은 그 내용에 맞는 컨텐츠를 찾아서 적시에 제출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수 업을 듣는 학생에서 수업을 가르치는 교육조교가 된 내 위치에서, 나는 되도록이면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결국 얻게 될 지식은 무엇인지, 그것이 장기적으로 이 과목을 이해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를 되돌아보도록 권면하려고 노력한다. 결국 이 모든 문제의 해결은 기본적 동기의 점검일 수 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캠퍼스에서 깊이있게 학문을 대하는 자세가 절실하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선교단체 기독대학생의 또다른 학업 문화 보고서>

선 교단체의 학생들은 정확하게 일반 학생들의 세계관에 역행한다. 물론 기독학생들도 이중적인 잣대가 생기게 되긴 하지만 일단 원론적으로는 정반대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의 학생회의 배경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생들은 기독공동체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친밀한 유대관계를 쌓아가며 수련회를 통해 기독교의 기본적인 영성훈련과 공동체성을 습득함으로써 상당한 부분을 공급받게 된다. 예전처럼 동문회가 캠퍼스 문화의 큰 영역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 공동체는 어떤 면에서는 캠퍼스에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데 큰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이들이 캠퍼스를, 그리고 학업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들은 캠퍼스를 전도의 대상이자 영적 전쟁터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학업보다는 공동체를 견고히 하기 위한 일들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어 앞서 설명했던 캠퍼스 문화권에서는 멀어지게 되며, 점차 폐쇄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리잡아 간다.

나는 공대에서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3학년 때에는 정말 바빴다. 바쁜 일정들 때문에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매주 전공과목은 과제들이 쏟아졌고, 학업과 공동체 자체 모임, 기연과 복상 독자모임으로 정신이 없었다. 결국 때로는 팀 프로젝트를 하는 경우에는 팀에 속한 친구들의 도움을 받게 될 일들이 생기기도 했다. 사실, 선교단체의 리더들에겐 이런 일이 다반사이다. 내가 아는 소위 공동체에서 인정받고 탁월하다는 리더들은 학과에서는 아웃사이더거나 학업을 등한시하는 학생으로 각인된 경우가 더러 있었다.

물론, 그런 학생들은 고민과 갈등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신자의 ‘고난’이라 여기고, 학업을 하나님 앞에 포기해야 할 자신의 ‘이기적인 무엇’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다른 리더들은 지금 함께 기도회를 하고 하나님을 애타게 부르짖고 있는데, 내가 시험기간이라고 더 중요한 기도모임을 뒤로한 채 공부를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내가 시험공부를 포기하더라도 저들의 기도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의무이자 기쁨이 아니겠는가? 매 순간마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기독학생들은 캠퍼스에서 무능력한 존재로, 그리고 이원론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시험(test)기간에 학생들을 시험(temptation)하는 선교단체들의 무리한 모임 일정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 주변에는 그런 친구들이 상당히 있었다. 모임에서 나눔을 하면, 시험 전날 공부를 할까 하는 유혹이 있었지만 결국은 리더모임과 아침 기도회에 참석해서 기도를 했더니 마음이 편안해지더라는 식의 간증을 하는 학생들이 실제로 많이 있다. 물론 그런 대부분의 선교단체 리더급 학생들이 자신의 학과에서 주변인일 확률이 크고 그런 경우에 일반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캠퍼스 문화의 주체로 설 역량은 그만큼 부족하게 된다. 나에게도 갈등의 시간들이 있었다.

새내기 때 장학생이었던 나는 왜곡된 신앙과 ‘헌신의 대가’로 1년 만에는 권총을 차보기도 했다. 신앙이 어릴 때는 내가 목회적 소명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대부분의 기독학생이 고민할 법한 고민을 했었으며 삶의 우선순위가 내가 속한 선교단체모임, 연합모임, 학업, 가정의 순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각인되기 일쑤였다. 세계관 공부를 하고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에 대한 논의를 접하고, 제임스 사이어나 폴 스티븐스와 같은 저자들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난 ‘다른 방식’으로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캠퍼스에 내가 존재하게 된 일차적인 목적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 대한 탐구를 보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수행하기 위한, 가시적이고 명백한 형태의 부르심이라고 결론지었다. 신앙이란 이름으로 내 학문적 가벼움을 합리화하고, 학문의 도피처로 기독 공동체 생활에 더 열성적으로 헌신하는 것이 내 신앙을 더 깊고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더 구분된 존재로, 더 나를 세상에 편입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가면서 생기는 내적 불편함을 일소하기 위한 방어기재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힘들었지만 내가 속한 기독모임들을 끝까지 함께 참여하면서 수업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학점포기제라는 것이 있어서 힘이 들 때는 취약한 과목을 자르고 싶은 충동이 한 주에도 몇 번이나 들었다. 평소에 공부만 하여 그야말로 ‘일취월장’하는 친구들의 실력 앞에 매번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마침내 둘 사이의 벽이 깨어지다!>

개 인적인 경험이 곁들여진 긴 이야기의 마지막이다. 캠퍼스라는 학문의 장에는 두 부류의 학생들이 공존하고 있다. 한 쪽에는 학문의 깊이보다는 일시적인 평가결과에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극단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그런 전략적인 대응을 비난하고 더불어 학문의 길마저 적정선에서 포기하기로 결단한 기독 학생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기독 선교단체의 ‘독특한’ 문화가 적어도 4년 동안은 유효한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효율적으로 잘 운영이 되는 것 같아 보인다. 문제는 4년 후반에 시작된다.

여 기에서 선교단체 학생들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그간 잘 성장해온 기독학생들은 이미 사회에 진출할 적응력이 키워지지 않은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4년간 학업 전선에서 1차적 부르심을 잘 피해 다닌 열매를 거둘 때가 된 셈이다. 그간 내가 지켜본 공동체에 헌신했던 리더들은 두 갈래로 나뉘곤 했다. 전임사역과 역회심(易回心)이 그것이다.

항상 선교단체의 행사만을 신앙적인 것으로 여기는 데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몇 일의 기도 끝에 전임사역이 자신의 부르심이란 확신을 가진다. 이들에게 결핍된 것은 생활영성이며, 현대 사회와 문화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 능력의 부재다. 내 생각으로는 두 번째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이들은 역회심을 하는 부류이다. 선교단체 학생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 중의 하나는 학부시절 뒤돌아보지 않고 공동체에 헌신한 대가로 하나님이 자신의 진로를 보장해 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이다. 헌신은 대가가 없을 때 헌신이다. 그렇지 않고 서로 다른 층위의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면 그건 일종의 거래라고 볼 수 있다.

몇몇 기독학생들은 예루살렘 입성을 앞둔 야고보와 요한처럼 무의식 중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채권자로 만들어간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세상적인 것들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단지, 현실 세계의 요구들을 모르고도 살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런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은 졸업 직후이다. 당장에 취직이 안되면 조금씩 마음 속에 하나님을 향한 원망들이 생긴다. 캠퍼스에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모든 것을 바쳤는데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든 탓이다.

대학을 학문과 지성의 장으로 보지 않던 두 극단에서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보내지는 쪽은 헌신된 기독학생들이다. 주변의 친구들은 이미 자신이 알던, “금방이라도 지옥불에 빠져들 것 같던” 불신자가 아니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외국인 기업에 취업하기도 하고 자동차를 몰고 나타나기도 한다.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카드를 꺼내서 결제를 하는 불신자 친구 앞에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물론 상당수의 학생들은 이 어려움 앞에서 신앙이 견고해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고, 새로운 영성을 획득하는 수확을 얻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학생들은 회의와 좌절의 시간을 거쳐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그것을 어리석다 여기는 안타까운 일들도 생기기 마련이다(이 문제는 다음 연재에서 주로 다루도록 하겠다).

나는 정말 기독학생들에게 권면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이런 4년간의 흐름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야 힘들어하고 고민하며 정작 세상에 뿌리 내릴 수 있는 영역을 스스로 구속시키지 말자는 것이다. 난 이들의 구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깊은 묵상과 공동체성으로 단련된 이들의 신앙을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세상에서 전혀 발붙일 자리가 없도록 방치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한계가 있다. 나를 돌아보더라도 정말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지만 우등생으로 졸업하지는 못했다. 대신에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학점과. 학업에 관련된 작은 상을 받았다. 난 그것에 만족한다. 기독학생운동이란 이름 아래 제한되었던 많은 일들로 인해 학업에도 적잖은 부정적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나는 나보다 더 공부에 헌신되고 전략적으로 학점을 받으려 했던 학생들을 이길 수 없었다. 그건 기도와 공동체성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난 그들과 같은 학업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해야 했다. 나의 신앙적 양심으로 판단하기에 기독대학생들이 캠퍼스에 들어온 특혜를 부여 받았다면 그 특혜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2003/03/01 23:09 2003/03/01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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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1): 술 문화 보고서 (2003. 2.)

/김용주


<조금 긴 도입부>

대 학 졸업을 앞두고 나는 내가 가진 것이 수도권 대학의 공대출신이라는 “간판” 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복학을 하면서 나는 선교단체의 리더 생활을 시작했고, 한양대 기독학생연합회의 문서팀과 “복음과 상황” 독자모임에 비중을 두게 되면서 다소 분주한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3학년 말 즈음에 학교의 기연 쪽 일을 하던 후배들이 총학생회 진출을 결심하고 도움을 요청하면서 나는 다시 대학의 말년까지 도서관에 앉아 선거를 위한 정책을 짜는데 시간을 보냈다. 사실 처음부터 나는 우리가 총학생회 진출에 실패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지만, 복음주의의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자칭하는 선교단체 학생들이 무기력한 애완동물처럼 양육되고 그렇게 타성에 젖어가는 모습에 심한 좌절감을 느끼던 터라, 역량이 부족해 보이긴 했지만 캠퍼스에 대한 소망함을 가지고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후배들에게 큰 감동을 받아 결국엔 그들에게 ‘코’가 끼고 말았다. (전에 연재된 “약간은 도발적인 캠퍼스 보기”는 그런 몸부림으로 경험한, 거시적인 관점으로 본 캠퍼스 생활의 결과물이었다.)

나는 어떤 행동을 하기 이전에는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스스로가 사회에 나가기에 준비가 덜 되었다고 느꼈다. 물론 분주한 생활로 인해 학업에서 부족한 부분이 생긴 면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주변 신앙의 선배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90년대 중반 학번이다. 80년대 대학 문화가 운동권 문화였다고 한다면 90년대 초반은 변질된 운동권에 대한 회의감을 가진 학생들이 생겨나는 시기였고, 90년대 중반은 그 틈을 타서 신세대니 X세대니 하는 말로 대학생들에게 운동권 문화를 단절시키게 만들고 소비문화를 조장하는 시기였다. 그렇게 캠퍼스는 문화창조의 주체에서 소비문화의 주체로 돌변했다. 이제껏 대학생활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마치 나를 따르라는 식의 거시적인 이야기들을 해온 나는 졸업과 함께 잠시 멈춰서야만 했다. 아직 내 주변에서 도전이 되고 본이 되는 선교단체 출신의 선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선교단체의 선후배들이 운동 중심의 대학문화에 회의감을 보이고 있으며, 로잔 언약이 천명한 사회참여라는 이슈가 더 이상 우리의 상황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게다가 몸바쳐 공동체에 헌신했거나 뭔가 변화를 위해 캠퍼스에서 열정을 불태웠던 선배들은 냉엄한 사회의 현실에 직면하면서 생존을 위한 노력에 몸부림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이제 사회인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직장인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막상 그들에게 정죄의 화살을 돌릴 일도 아니다. 생존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어졌다. 전문성의 개발과 바른 사회인의 모델 제시를 위한 준비를 위해 대학원에 들어온 지 1년이 지났다. 전에 나는 어설프게나마 직장생활도 했고 공장에서 막일도 했다. 지금은 대학원에 있으면서 학회 사무직 일도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학업을 계속하고 있으면서 학부생들을 가까이에서 피부로 접하고 있다. 나는 캠퍼스와 사회의 중간, 즉 ‘회색지대’에 있는 셈이다. 문득 양쪽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지금 내 위치가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정부분의 한계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들과 거의 동일한 경험을 하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각인된 경험들을 보고서로 작성하고 그것을 가지고 같이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기대를 갖기 전에 절망부터 하라는 복상의 논객 Gramsci님의 말처럼, 나는 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닌 이 어정쩡한 위치에서 절망으로부터 시작했다. 언젠가는 희망을 가질 날이 올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기쁜 맘으로 중간 다리 역할을 해 볼 마음을 먹었다. 이번 달에는 내가 경험하는 회색지대의 술 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연재를 시작하려고 한다.


<술 문화 보고서>

새 학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있는 것이 신입생 환영회다. 나는 흔히 ‘사발식’이라고 불리는 신입생 환영회의 신고식을 한 마지막 학번이 아닌가 싶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게도 난 당시에 건강이 좋지 않아 신고식을 치르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 기독학생들이 많았던 터라 그 이후로도 최소 1년 동안은 술 문제로 신앙적인 고민을 했다. 개중에는 신고식을 하는 것을 일제시대의 신사참배 하는 것처럼 여겨 정색을 하고 선배들에게 기독인임을 ‘선포’하는 친구도 있었고, 애교로 유연하게 넘기는 친구들도 있었다. 술과 신앙은 별개라며 사발을 마시고 술에 취해 정신을 잃는 친구도 있었다. 신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딱히 말해주는 선배도 없었다. 신입생들에게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기 때문에 지금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편이지만, 당시에 나는 술에 대한 정리된 ‘행동지침’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실했다. 오죽하면 선교단체에 가입하면서 처음 배운 귀납적 성경연구 방법으로 혼자서 하루 종일 공부했던 주제가 “술”에 관한 것이었겠는가!

‘노아는 처음 포도주를 마시고 실수를 범했으니 술은 악한 거야.’
‘근데 예수님은 처음 이적을 행하실 때, 왜 굳이 물로 포도주를 변하게 하신 걸까.’
‘시편에는 술에 대해 좋게 쓰여 있군.’
‘사도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고 했는걸.’

지 금도 대략 기억이 나는 이와 같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나름대로의 행동지침을 마련했다. 사실 고민은 많이 했었지만 학교에 있을 때에는 술자리로 인한 큰 문제는 없었다. 주량이 센 면도 없지 않았고 자기 관리에 어느 정도 철저한 편이었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날은 술을 먹지 않았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술에 의지하려는 유혹을 사전에 배제하자는 의도였다. 게다가 외향적인 성격으로 인해 분위기를 중시하는 술자리에서 내가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에 주변 선배들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문제는 휴학 이후부터 생겼다. 휴학을 하고 공장생활이 시작되면서 막일을 하는 공장 노동자들과 술자리가 잦았다. 그 자리는 고된 노동을 마치고 술로 삶의 위안을 삼는 자리인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저씨들이었고 또한 인정(人情)이 많은 분들이었다. 그 분들 사이에서는 술자리에서 모든 회포를 풀고 자신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 개입하려면 술자리에 끼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때로 나는 그런 술자리가 좋기도 했다.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때론 마누라 얘기, 때론 자식 얘기를 늘어놓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찌든 삶을 씻어내는 정화의 기운마저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문제가 있다면 이 분들의 음주가 과하다는데 있었다.

술 취하는 게 죄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데, 이 분들은 항상 필름이 끊어질 때까지 마시려고 하기 때문에 난 그 점이 항상 불편했다. 이들에게서 구별된 자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것인가. 결국 술 취한 자들을 정죄하는 자로 남는 것이 복음인가. 며칠을 고민하다가 예수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후에 난 그 분들과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그 분들이 주량을 넘기려고 하면 난 자주 부드러운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오늘 애들 선물 사가지고 일찍 들어간다면서요. 이제 그만 마시고 일어납쉬다!”


<접대 문화 그리고 여성에게 불리한 술자리>

술 자리의 또 다른 문제는 접대이다. 지금은 기업들이 선진화(?) 되어가고 사람들도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보다 강해지고 있어서 덜 한 편이지만, 회식이 있거나 접대를 위한 술자리는 좀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지금도 여전히 공대출신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선후배 간에 군기를 잡거나 술자리에서 술을 강권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회사에 있는 분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면 업무시간에는 바쁜 일정 때문에 별 다른 얘기를 못하고 그저 딱딱한 분위기에서 일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직장선배가 딱딱하게 느껴지고 선후배 간에도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가 저녁 술자리에서는 그 냉랭했던 분위기가 사라진다. 사내의 구조는 선진화가 되었어도 그 안의 사람들은 80년대 공대출신인지라 술 몇 잔을 기울이다 보면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나오기 마련이며, 그 때 하는 얘기는 공과 사를 넘나들며 오히려 정작 중요한 업무 얘기가 술자리에서 오고 간다. 나아가서 중요한 결정을 그 자리에서 내리기까지도 한다! 공대출신이 술을 마시는 분위기는 좀 묘한 구석이 있는데, 그건 돌아오는 술잔들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초반에 취해 버리거나 술을 안 마시는 직원은 중요한 정보를 얻는 데에서 제외되는 일도 생긴다.

또 이런 직장도 있었는데, 접대를 하는 경우에 술뿐 아니라 단란주점은 물론, 마지막 코스로 사창가에 까지 함께 가야 하는 일도 있다. (여기에서는 나도 갈라서야만 했다) 물론 이런 짜증나는 술 문화는 강준만 교수의 지적대로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절부터 내려온 한국 사회의 ‘유산’이며 많은 부분이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회사에서 생활을 하게 되면 심각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대학교 때와 달리 여전히 사회에서는 술 자리에서 여성이 버티는 것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술이 취하면 여성에게 실수를 하는 일이 많았다. 가끔씩 대학 교수가 자신의 지도 아래 있는 여자 대학원생을 술자리에서 희롱하는 경우가 있다는 기사를 간간이 보게 된다. 여성들의 직장 내의 성희롱에 대한 의식과 목소리가 높아진 부분도 있겠지만, 일단 기사로 사건을 접하게 되는 경우 상당히 흥분하게 되는 일도 실제로 술자리에 있어보면 다반사이다. 주로 나이가 많은 상사들은 부하 직원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가 많고 술자리에서는 더더욱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술이 조금씩 취할수록 이야기는 여성들이 듣기 거북한 음담패설로 이어지며 그러다가 옆에 앉은 여직원의 무릎에 손을 얹는다거나 손을 잡고 심지어 포옹을 하는 경우도 있다. 여직원이 당혹스러워할수록 사람들은 즐거워하며 흥청거리는 가운데 분위기는 묘하게 돌아간다. 분명 술자리가 미쳐서 돌아가는데, 대다수의 남자 직원들은 묵인하며 애써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기 일쑤다. 사실, 이런 경우가 가장 힘들다. 이런 꼴 보지 않으려면 회식을 피해야 하는 건가 또 고민이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또 다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내가 결정한 선택은 누군가에게 상사에게 술을 권하게 하고, 여직원이 험한 일을 당하기 전에 빨리 귀가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누군가는 미쳐 돌아가는 술자리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부산하게 움직여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소금이다.


<폭탄주는 고약하다!>

여러 경험을 하고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는 다시 대학원에 들어왔다. 다시 맞이하는 신입생 환영회. 또 다시, 신고식이 있었다. 교수님과 삼촌 뻘 되는 선배들 사이에서 폭탄주가 돌았다. 옆의 형에게 물어봤다.

“형, 신입생 환영회는 언제 끝나요?”
“네가 쓰러져야 끝나.”
“…”

여 러 가지 방법으로 신입생들에게 술을 권했으나 한 가지만 소개한다. 흔히 뉴스에서 보는 술이 이것인데 조그만 잔에 양주를 채운 후에 맥주가 담긴 잔에다 그 양주 잔을 담근 후에 위를 막고 잘 섞이도록 흔든 후에 후배 앞에 올려 놓는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데, 그 폭탄주는 정말 독했다! 스스로의 주량을 아는 나로서는 이걸 두 잔만 더 마시면 취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신문지 상에 간혹 폭탄주를 마시고 지하철에서 사고로 숨지는 신입사원들 기사가 나오는데 폭탄주는 정말 취하라고 마시는 고약한 술 문화임에 틀림 없었다. 이번엔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신입생이 쓰러져야 끝난다고 했으니 취하기 전에 쓰러져서 자는 척했다. 주변 신입생들에게도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쓰러져야 끝난대.”


<마치면서>

이 글을 읽으면서 당혹스러워하는 이들도 있을 줄로 안다. 직장에 있으면서 경험해 보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미 술 문화의 부정적인 부분이 많이 변화하고 있음을 체험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혹 지금도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본인의 술자리에서의 대응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순결한 길로 가지 않았다. 술 문화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게 나의 선택이었고 지금 나는 그 기억들을 쓴다. 나는 대부분의 불신자들에게 술 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서 하나의 무시할 수 없는 문화라면 그것도 변화하고 개혁되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당혹스러운 일도 많았고 처음엔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난감하기 그지 없는 일들도 많았다. 이렇게 이야기들을 나열한 것은 이런 분위기들에 대해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좀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행동지침들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어쩌면 나의 개인적인 선택일 수 있다. 나는 술을 어느 정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아는 몇몇 친구들은 맥주 한 두 잔만 마셔도 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는 술을 권하지 않는 게 옳다. 그리고 되도록 술 권하는 자리는 피하는 게 옳다. 그리고 술 자리가 편하지 않은 이들은 일부러 술 자리에서 고통 받으며 분투할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술 자리가 아니어도 세상을 파고들 수 있는 길은 많이 있다. 술 문화는 무시될 수 없다 해도, 다른 많은 문화 중 하나일 따름이다.

추가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술을 처음에 어디에서 누구에게 배웠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되도록이면 기분이 좋을 때에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어른과 마시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술은 아버지에게 배우라는 말이 있는 듯 하다. 주변 사람들을 보더라도 처음 술 버릇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 술버릇이 들면 끊는 것이 오히려 낫다. 처음에 가까운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이성을 잃고 잘못된 폭력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술을 마실수록 난폭해진다. 그런 경우에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자제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경우에 결혼 후에 폭력을 행사할 확률도 다분히 높다. 한편, 실연의 아픔을 달래려고 술을 마시는 이들도 있다. 술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술 기운에 위안을 얻고 그것을 의지하려는 생각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오히려 묵상과 기도가 유익하다. 술을 도피처로 생각하지 말고 문제에 올바르게 직면하는 것이 그런 경우에는 현명하며 더 남자답고 멋진 행동이다.

부디 독자들에게 잡글이나마 도움이 되는 “술 문화 보고서”였기를 소망한다.**
2003/02/01 23:07 2003/02/0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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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짜는 스토리라인>

대진(이병헌)은 사진찍는 것이 취미이다. 어느날 카메라를 들고 가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여자의 사진을 찍고는 그 여자에게 반하게 된다. 그리고, 사진에 담긴 여자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랑은 대진의 마음에 뿌리를 내렸다. 시간이 얼마 흘러 형 호진이 여자친구를 소개시켜 준다는 자리에서 대진은 자신의 마음에 심어 두었던 사랑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은수(이미연)는 이미 호진을 사랑하고 있었고, 이미 시작된 대진의 사랑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게 된다. 하지만, 곧 더 무서운 사랑이 시작된다.

대진은 호진이 여자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알고는 둘 사이의 아주 작은 이야기까지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며 또 조언을 해 준다. 결국 호진은 대진이 생각하던 연애의 조언을 들으면서 은수와의 사랑을 키워가며, 그 세 사람은 결혼 후에도 함께 살아간다. 대진의 사랑이 호진을 통해 육화된 것이다.

얼마 후 대진과 호진은 같은 날 사고를 당하지만 대진이 먼저 깨어나며, 깨어나기 직전에 의사들을 통해서 호진의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깨어나서 자신이 호진인 것처럼 행동한다. 육화된 자신의 사랑이 좌절되었으므로 그 자신이, 호진을 통해 보여준 사랑의 행동들을 그대로 재현하려 한다. 호진은 깨어나지 못한 채 죽게되고 대진은 그런 호진에게 죄책감을 갖지만, 자신이 먼저 은수를 사랑했고 결국에 죽는 것은 형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독백을 한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은수도 호진과 똑같은 대진을 보면서 대진에게 호진의 영혼이 들어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어 대진과의 사이가 회복되며 행복한 결혼 생활이 "다시" 이어진다. 그리고, 대진의 아이를 임신한다. 대진을 좋아하던 예주가 모든 걸 정리하고 떠나기 전에 가짜 목걸이를 발견하여 대진이 꾸민 일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예주는 대진에게 진짜 목걸이를 보내지만 그 목걸이를 은수가 받게 된다. 결국 모든 것을 알게 된 은수는 고통스러워한다. 반 나절이 지나고 은수는 다시 대진이 있는 전시장으로 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금은 힘든 얼굴로 대진과 함께 있는다.
 

<중독과 사랑에 관한>

영화가 끝나고 여전히 나는 "중독"이란 영화를 생각한다. 뭔가 정리하고 뭔가를 이야기하려 하면 할수록 현기증이 나며 머리 속을 흩어놓는 무엇인가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여전히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 "대체 무엇이 사랑인가"

나의 초자아는 영화의 중반까지 형의 여자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얻기위해 치밀하게 연출된 행동의 패턴들을 묵묵히 실행해 옮기는 대진을 정죄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를 대하는 나의 잣대의 일면에는 분명 나의 엄격한 윤리와 도덕이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 반전을 위해 준비했던 짧은 대목은 나를 늪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은수를 사랑한 것은 호진인가. 아니면 호진에게 패턴을 각인시킨 대진인가.

화장한 유골을 바다에 뿌리면서 내뱉는 대진의 독백만큼이나, 모든 것을 알고 난 은수의 혼란스러워하는 장면이 날 불편하게 만들었다. 은수에게 썼던 편지의 말들, 사랑의 표현들, 일상 속에서 보여진 존재는 호진인가, 아니면 대진인가. 대진이라면 호진은 단지 그의 육화된 사랑에 불과한가. 대진의 꼭두각시인가. 그것은 아니다. 그럼 은수를 사랑한 건 둘 다인가. 대진은 사랑이 지나쳐 집착에 사로잡힌 미치광이에 불과한가. 형의 여자를 사랑하여 발버둥친 광기인가. 삶에 있어 사랑이라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그 무엇을 도마 위의 음식처럼 탁탁 내리쳐서 꺼내들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들이 얽혀있는 매듭인가.

영화는 대진의 손을 들어 주는 것 같다. 은수를 보여 줄 때마다 그런 것들을 암시한다. 은수가 정작 행복을 느끼는 것은 호진이라는 존재 자체가 아니다. 적어도 영화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은수가 행복하게 느끼는 것은 호진의 자상한 배려와 그의 다정다감한 행동들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것이 대진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진은 호진이 없어진 자리에서 호진의 모든 것을 그대로 옮길 수 있었다. 은수가 괴로워하다가 다시 대진을 찾아가서 아무렇지 않은 듯 대진을 대하는 대목에서 어렴풋이 은수는 자신을 정말로 가까이에서 사랑한 사람이 대진이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이 영화는 중독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며 사랑에 중독된 사람들이 만들어 낸 현기증나는 삶에 관한 영화다.**


2003년 1월 22일.
2003/01/22 18:10 2003/01/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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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단상(Short Notes)
2002. 12. 26. ~ 2003. 1. 6.


공포의 외인구단 1: 마동탁과 오혜성

"공포의 외인구단"은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만화다.

마동탁.
그는 천재적인 감각을 타고 났으며,
치밀한데다가 노력파이기도 하다.
엄지와의 결혼을 위해 100타석 연속 안타라는
'선물'을 내걸고 혼신의 힘을 다해 목표를 달성하고
결혼이라는 목표 또한 얻게 된다.
그러나 이내 얻은 것에 대한 가치를 잃고
또다시 다른 목표에 자신의 정신을 집중한다.

오혜성.
그는 관계 중심적이다.
물론 타고난 운동신경이 있지만,
계획하고 노력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엄지를 만난 순간 사랑하게 되고
그에겐 그녀가 신이며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이
그의 신앙이 된다.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면 뭐든지 한다.'...
그에게 있어 목표는 그녀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한
도구일 뿐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다.

야구.
마동탁에게 야구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에 다다르기 위한 끊임없는
도전의 대상이지만,
오혜성에게 야구는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일들 가운데 하나인 도구적 가치에 불과하다.

사랑.
마동탁에게 사랑은 소유의 대상이며
일단 달성하고 나면 그 소중함은 사라진다.
오혜성에게 사랑은 삶의 본질이며
그것을 제외하고 나면 다른 모든 것은 무가치하다.

엽서.
고등학교 때 즈음.
까맣게 이 만화를 잊고 지내다 팬시점에서
공포의 외인구단 엽서를 봤다.
오혜성이 입술에 장미를 물고 있는
눈은 초점이 흐려진 그림자 처리가 되어있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의
스케치 밑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오혜성, 사랑의 정신병자."

사람들은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면 정신병자 취급을 한다..

postscript) 마동탁의 기질을 가진 나는 이 엽서가 내 뼈 속 깊은 곳에 각인되어

MBTI의 저주로부터 나를 건져내었다.

 

 

 

who am i.

태어날 때부터 각인된 유전자의 조합?
나면서 겪은 경험들의 집합체?
혹은 그것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판단자?
행동하는 대로 규정지을 수 있는 의지적 자아?
왜곡된 하나님의 형상?
몸부림치는 죄인?
일관된 사고의 체계를 가진 비일관적 행동양식의 피조물?
본능을 억압하는 동물?
엄한 윤리적 잣대를 세상에 들이대는 심판관?

postscript) 나라고 생각하는 그대, 대답해보라!

 

 

 

크리스마스 묵상 2

분주한 도시의 일상을 뒤로한 채
이튿날 아침에 그 분을 찾고 싶다.

처음 이 세상에 오시던
그 저녁을 기억하시는지.

건조하고 추웠던 그 밤과
말구유 속의 냄새도.

처음으로 아버지 곁을 떠나
낯선 죄의 땅에 두 발을 내딛던
그 구속사의 시작점을.

무엇보다 난..
알고 싶다.
아니 알고 있지만, 내 입으로 묻고 싶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냐고.
나 같은 사람에게
당신의 임재가 과연 가치있는 일이었냐고.

postscript) 찬양받기에 합당하는 말.. 정확한 표현이다.

 

 

 

내 속엔...

습한 기운이 느껴지면
내 속에 나를 지탱하던 10마리의 구렁이들이
몸을 비틀며 나를 뒤흔들어 놓는다.

10마리의 구렁이들은 제각기
자신의 독특한 생각과 몸짓과 행동으로
내 안에서 자기들을 표현하고
나는 혼란 속에 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통제력과 자제력을 잃곤 한다.

이젠..
그 10마리 중에 적어도 일곱은..
목을 비틀어 숨을 끊어놓고 싶다.

나에게도 생존본능이 있다.
다중인격을 가지고 습한 환경이 찾아올 때마다
몸부림치며 넋이 나간 사람처럼 사는 것보다는
살인이란 죄명을 쓰고 평생을 사는 것이 유익하다.

postscript) 내가 누군가의 목을 비틀 위인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나의 비참이다.

 

 

 

한 해를 마감하며..

내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린 한 해였다.
노력했지만 힘든 일도 많았고,

그 만큼 올 한 해를 두고는
감사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다.

한 해가 시작되면서
난 눈과 귀를 막은 채
한 곳만을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그렇게 정해진 길로만 가기를 고집했다.

결국 내 삶의 중요한 순간들이 그랬듯이
내가 고집하던 길은 뒤집혔고
나에겐 불안정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지금 난 한 해를 마감하며
그 불안정하고 힘든 시간들을
감사한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 멋대로 발길질을 하며
이리저리 발 닿는대로 맘 내키는대로
계획하며 달려갔던 내 삶에
날선 검이 내 심장 깊은 곳에 들어왔다.

난 그 검에 의해 고정되었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곧 안정이 찾아 올 것이다. 곧..

postscript) 곧 새 삶이 시작된다..

 

 

 

깊은 한 숨.

깊은 한 숨을 쉬고.
두 번째 깊은 한 숨을 쉬고.
세 번째 깊은 한 숨을 쉬고.
네 번째 깊은 한 숨을 쉬고.
다섯 번째 깊은 한 숨을 쉬고.
여섯 번째 깊은 한 숨을 쉬고.
일곱 번째 깊은 한 숨을 쉬고.
....
....
일천 번째 깊은 한 숨을 쉬고 나면.

구멍난 풍선처럼.
조용히 표면에 가라앉아.
작은 숨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리고 싶다.

 

 

 

christmas eve

 

밤새 술을 마셨다.

그러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All I need is..

<Love>
아이엠샘(I am Sam)이란 영화에서
가장 여운이 남는 장면.
그 중 하나가 딸이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하는 비틀즈의 가사..
"All I need is love."

<Pain>
다른 하나는,
여자 변호사가 발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방 사이에 접은 종이로 쳐놓은 벽.
그 안에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하는 샘..

<All I need is..>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상처받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
혹은 상처를 딛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Desire>
결국 누구에게나 삶의 마지막이 찾아오며
나에게도 동일한 시간이 올 것이다.
그 이후에 우리는 서로 명확하게 보고 듣고
말하고 살아갈 것을 믿지만.
이미 내 안에 심겨진 소중한 것들을
난 힘들더라도 보존하고 키워가야 한다.

<Real Life>
결국 종이로 접은 벽을 허무는 것은
순전한 사랑을 하고 있는 상처받은 "샘"이 아니라
상처를 삭이고 지친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에 익숙하지만 변화를 소망하는
"여변호사"다.

postscript) 세상을 바꿀 순 없다. 단지 내가 세상에 맞춰지기 늦은 것 뿐이다..

 

 

 

Love is...(3)

 

사랑은
삶은 달걀을 먹는 것과 같다.

삼키려고 애쓰면
가슴이 져미면서
목이 매여 눈물이 난다.

postscript) 나는 삶은 달걀이 싫다.

 

 

 

새해 아침

사람들은 반복적인 일출과 일몰을
'날'이라 말하고
그 반복들을 모아다가
적당히 가른 후에
모자라는 날들을
어떤 때는 더하고 어떤 때는 뺀 후에..

한 해를 만든 후.
집안의 정치를 위해 제사장같은 가부장에게
그 권력을 넘겨주어 친히 제사를 지내도록
권하여 한 해의 시작일에 찬란한 제사로 조직원의
단결을 도모한다.

어찌보면 마지막 날이나 새 해 첫 날이나
똑같은 하루인데, 역시 인간은 창조물 속에서
어거지 창조를 이루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좀더 까탈스런 반응을 보이려다
시대의 요구에 영합하는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정한 나는,
어거지 나눔으로 시작된 새해의 첫 날에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살아갈 날들을 짚어보는
묵상의 시간을 가지기로 결정했다.

삶은 살수록 지겹고,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 노동의 힘든 시간 이후에 찾아오는 쉼이
더 행복하게 느껴지듯.
그 노동의 댓가가 눈 앞에 펼쳐질 때 얻게 되는
삶의 가치가 크듯.

영화 속 대사처럼 "삶은 아름답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행복한 순간보다는 자주 찾아오는
고통들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postscript) 왜, 재수 없어요?

 

 

 

살면서 여러가지 공포가 있었지만
"늪"이란 녀석은 참 무서운 구석이 있다.

외부의 힘이 아니면
벗어날 수 없다는 공포에 더하여,
벗어나려고 노력하면
더 빨리 가라 앉는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두려움은 바로
노력과 빠져드는 속도의 반비례 관계에 있다.

그 아름다운 곡선에서 나는 섬뜩함은 느낀다.

 

postscript) 난 '이런 류'가 싫다.

 

 

 

죽음 2

죽음은 소멸이다.
소멸은 또 하나의 커다란 공포다.

소멸의 섬뜩함은
당사자와 상대방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

당사자에겐
더 이상 자신이라 여기는
부단히 사고하는 유일한 존재의 소멸에
대한 공포이며,

상대방에겐
더 이상 어떤 외적인 자극을 주어도
반응하지 않는 당사자의 소멸에
대한 공포이다.

비존재과 무반응.
이 두 가지는 인간의 비참함의 본질이다.


postscript) 죽음이 늪보다 덜 공포스런 이유는 죽음 자체가 비본질이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죽음 자체가 비존재다.

 

 

 

투명한 방에 갇히다!

잘 몰랐었다.
처음엔 그냥 쳐다보고 있었다.
주변은 아주 가까웠고 손에 잡힐 듯 했다.

난 투명한 벽 너머로 많은 것들을
여과없이 볼 수 있었고,
결국 상황 파악이 끝나면 뛰어들겠다 다짐했다.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주변은 아주 가까웠고 손에 잡힐 듯 했다.

벗어나려 몸을 움직인 나는
벽에 이마를 부딪혔다. 이 벽을 허물리라.
주변은 아주 가까웠고 손에 잡힐 듯 했다.

결국 난 알게 되었다.
내가 투명한 방에 갇혀 있었음을.
주변은 아주 가까웠고 손에 잡힐 듯 했다.


postscript) 갇힌 사람이 처음 해야 할 일은 마음의 평정을 찾고

계속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다.

2003/01/06 19:10 2003/01/06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