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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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불명 상태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자신을 모르는 남자를 짝사랑하는 여자.

 
이 두 영화는 모두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난 이런 류의 영화가 싫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류의 영화를 즐겨 보고싶지 않다고 하는 게 옳겠다. 나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탁월함을 인정한다. <talk to her>를 보는 내내 나는 그의 영화에 큰 매력을 느꼈다. 구성방식과 인물의 성격과 스토리의 전개는 정말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잠시 더 있고 싶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물고기 자리>를 연상케 했던 <He loves me>는 깔끔한 색감으로 영화의 비극적 요소가 가중되는 가운데에서도 잘 짜여진 세트와 색감의 화려하고 깔끔한 요소는 그런 슬픔의 감정에서 약간 동떨어져 영화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효과를 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른바 <짝사랑>이라는 소재가 불편하다. 둘 사이의 관계에서 한쪽이 임의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패턴에서 다른 한쪽은 개입할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 사람은 그럴 형편이 아니며,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관계 속에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가운데에서 감정은 스스로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점점 성장해간다.

<talk to her>에서 베니그노는 의식불명에 있는 알리샤의 간호를 자원하여 단 한 번 말을 걸어본 적이 있는 알리샤를 4년간 간호한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말도 걸고 다시 깨어날 거라는 믿음으로 그녀의 몸이 잘못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면서 그는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고 그 시간동안 그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몰입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서 베니그노는 알리샤와의 감정에서 비약하여 판단하게 된다. 결국 그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행동은 사랑과 결혼이라는 이상을 바라보지만 현실에서 그의 행동은 간호사가 환자를 강간한 것이 된다.

<He loves me>에서 안젤리끄는 루이라는 심장전문 의사를 사랑한다. 그것도 단 한 번의 대면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그 사람의 이상적인 모습을 각인시키고 그 모습의 옆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왜 안젤리끄는 그에게 본심을 이야기하지 못한 것일까. 베니그노와는 달리 안젤리끄가 사랑하는 루이는 살아있고 의식이 있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안젤리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일 루이가 의식불명상태에 있다면 안젤리끄도 그런 간호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루이는 안젤리끄의 기대처럼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다른 사람의 남편이다. 안젤리끄는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이미 모든 스토리를 내면화한다. 그리고, 그것을 당사자인 루이만 빼고 주변 사람들과 공유한다. 주변 사람들이 믿는 것을 보면 안젤리끄 자신에게만은 그 관계가 진실보다 더 현실감있는 거짓인 셈이다.
 
이 두 영화가 비극적인 결말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것은 처음부터 예정된 것임에 분명하다. 그런 마지막을 보고싶지 않기 때문에 영화 자체의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이련 류의 영화를 꺼리게 되는 게 내 본심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아프다. 그렇기 때문에 그 흔한 유행가의 가사처럼 눈물의 씨앗이나 유리같이 깨지기 쉬운 것에 비유하는 일이 많다. 또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두려움과 자기 방어적인 심리를 수반한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 영화들이 내게 던진 화두는 무엇을 사랑의 시작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베니그로나 안젤리끄에게 사랑은 한 번의 대면을 통해 자기 안에 각인된 이미지와 그것을 자기의 깊은 내면에서 고립화시키고 강화시키는 행동이다. 결국 비극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주인공들의 순수함으로 미화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주변부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나는 이성 간의 사랑은 두 사람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교과서 같은 영화 <good will hunting>에서 나오는 숀 교수와 윌의 대화 속에 그러한 사랑의 정의는 서정적으로 녹아있다. 시간이라는 축을 따라 성장해가는 함수의 자연스러운 곡선. 그 가운데에서 경험하는 서로의 부족함, 서로의 작은 습관과 기호들. 그것들을 알아가면서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 닮아가는 모습 속에 두 사람이 정말로 이성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하나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흐름들에 나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그것이 이 두 영화들이, 단순히 서로가 한 번에 감정이 통해 하룻밤을 함께하고 일어나는 깔끔한 화면에서 "이것이 사랑"이라 말하는 헐리우드 영화의 가벼움을 조소하고 극단적 감정의 흐름들을 짚어갔다 할 지라도 내가 불편한 마음을 일소할 수 없는 이유다.
 
과정이 험난하고 고통스럽다 해도 여전히 사랑은 가치가 있고, 가장 숭고한 아름다움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것은 둘 사이의 communication을 전제로 한다.


2003년 5월.
2003/05/15 18:07 2003/05/15 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