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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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짜는 스토리라인>

대진(이병헌)은 사진찍는 것이 취미이다. 어느날 카메라를 들고 가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여자의 사진을 찍고는 그 여자에게 반하게 된다. 그리고, 사진에 담긴 여자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랑은 대진의 마음에 뿌리를 내렸다. 시간이 얼마 흘러 형 호진이 여자친구를 소개시켜 준다는 자리에서 대진은 자신의 마음에 심어 두었던 사랑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은수(이미연)는 이미 호진을 사랑하고 있었고, 이미 시작된 대진의 사랑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게 된다. 하지만, 곧 더 무서운 사랑이 시작된다.

대진은 호진이 여자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알고는 둘 사이의 아주 작은 이야기까지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며 또 조언을 해 준다. 결국 호진은 대진이 생각하던 연애의 조언을 들으면서 은수와의 사랑을 키워가며, 그 세 사람은 결혼 후에도 함께 살아간다. 대진의 사랑이 호진을 통해 육화된 것이다.

얼마 후 대진과 호진은 같은 날 사고를 당하지만 대진이 먼저 깨어나며, 깨어나기 직전에 의사들을 통해서 호진의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깨어나서 자신이 호진인 것처럼 행동한다. 육화된 자신의 사랑이 좌절되었으므로 그 자신이, 호진을 통해 보여준 사랑의 행동들을 그대로 재현하려 한다. 호진은 깨어나지 못한 채 죽게되고 대진은 그런 호진에게 죄책감을 갖지만, 자신이 먼저 은수를 사랑했고 결국에 죽는 것은 형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독백을 한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은수도 호진과 똑같은 대진을 보면서 대진에게 호진의 영혼이 들어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어 대진과의 사이가 회복되며 행복한 결혼 생활이 "다시" 이어진다. 그리고, 대진의 아이를 임신한다. 대진을 좋아하던 예주가 모든 걸 정리하고 떠나기 전에 가짜 목걸이를 발견하여 대진이 꾸민 일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예주는 대진에게 진짜 목걸이를 보내지만 그 목걸이를 은수가 받게 된다. 결국 모든 것을 알게 된 은수는 고통스러워한다. 반 나절이 지나고 은수는 다시 대진이 있는 전시장으로 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금은 힘든 얼굴로 대진과 함께 있는다.
 

<중독과 사랑에 관한>

영화가 끝나고 여전히 나는 "중독"이란 영화를 생각한다. 뭔가 정리하고 뭔가를 이야기하려 하면 할수록 현기증이 나며 머리 속을 흩어놓는 무엇인가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여전히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 "대체 무엇이 사랑인가"

나의 초자아는 영화의 중반까지 형의 여자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얻기위해 치밀하게 연출된 행동의 패턴들을 묵묵히 실행해 옮기는 대진을 정죄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를 대하는 나의 잣대의 일면에는 분명 나의 엄격한 윤리와 도덕이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 반전을 위해 준비했던 짧은 대목은 나를 늪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은수를 사랑한 것은 호진인가. 아니면 호진에게 패턴을 각인시킨 대진인가.

화장한 유골을 바다에 뿌리면서 내뱉는 대진의 독백만큼이나, 모든 것을 알고 난 은수의 혼란스러워하는 장면이 날 불편하게 만들었다. 은수에게 썼던 편지의 말들, 사랑의 표현들, 일상 속에서 보여진 존재는 호진인가, 아니면 대진인가. 대진이라면 호진은 단지 그의 육화된 사랑에 불과한가. 대진의 꼭두각시인가. 그것은 아니다. 그럼 은수를 사랑한 건 둘 다인가. 대진은 사랑이 지나쳐 집착에 사로잡힌 미치광이에 불과한가. 형의 여자를 사랑하여 발버둥친 광기인가. 삶에 있어 사랑이라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그 무엇을 도마 위의 음식처럼 탁탁 내리쳐서 꺼내들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들이 얽혀있는 매듭인가.

영화는 대진의 손을 들어 주는 것 같다. 은수를 보여 줄 때마다 그런 것들을 암시한다. 은수가 정작 행복을 느끼는 것은 호진이라는 존재 자체가 아니다. 적어도 영화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은수가 행복하게 느끼는 것은 호진의 자상한 배려와 그의 다정다감한 행동들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것이 대진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진은 호진이 없어진 자리에서 호진의 모든 것을 그대로 옮길 수 있었다. 은수가 괴로워하다가 다시 대진을 찾아가서 아무렇지 않은 듯 대진을 대하는 대목에서 어렴풋이 은수는 자신을 정말로 가까이에서 사랑한 사람이 대진이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이 영화는 중독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며 사랑에 중독된 사람들이 만들어 낸 현기증나는 삶에 관한 영화다.**


2003년 1월 22일.
2003/01/22 18:10 2003/01/22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