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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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옥 집사님이 본서에서 언급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과도한 단순화입니다. 본서에서 옥 집사님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를 반기독교적인 사상으로 다원주의적인 사고로 나아가게 만드는 주범으로 설명합니다. 또한 이제 절대 진리는 없고 모두가 상대적인 관점으로만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게 되어 어떤 문제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잣대를 잃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절대 진리, 즉 하나님이라는 절대적인 존재를 믿는 것이므로 기독교와 포스트모더니즘은 궁극적으로 양립할 수 없고 그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면 반기독교적이자 사탄적인 사상으로 둔갑합니다.

이렇게 단순하게 포스트모더니즘을 설명하면 그 입장이 근본주의적인 성향으로 치닫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기독교출판을 전제로 하였다 하더라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해의 폭이 상당히 좁게 느껴지며 이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연구와 설명이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야기하면서 관련된 사상가나 문헌이 거의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러한 생각을 굳히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기본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할 때 언급되는 대표적인 학자들 이를테면, 니체와 하이데거로 비롯되어 리오타르와 데리다, 푸코와 같은 이들의 관점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없으며 포스트모더니즘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 사상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 된 구조주의 이후의 후기구조주의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 그리고 리쾨르 같은 학자들의 간략한 이해가 동반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성중심주의, 형이상학의 극복과 같은 주제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전/후기 사상들도 어느 정도는 섭렵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런 많은 사상가들과 학문적 배경들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설명드리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를 쓸 때 이미 그 사상적 복잡함 속에 던져졌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순히 영화 몇 편과 근본주의적인 신앙 서적에서처럼 단순하게 접근하기에는 그 깊이와 넓이면에서 상당한 격차가 존재합니다. 또한 제 생각에 포스트모더니즘은 신앙인도 충분히 고려할 만한 긍정적 요소들이 존재하며 그러한 이해없이 무작정 상대주의적이며 다원주의적이고 사탄적인 사상으로 치부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모더니즘의 세 축은 과학주의, 경험주의, 그리고 합리주의로 대변됩니다. 이러한 소위 계몽주의적인 접근이 모든 학문을 객관적인 잣대, 절대 진리의 추구, 역사 진보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며 이 사상의 중심인 서구인들의 자신감에 그 사상적 배경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양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진보, 계몽, 이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의 상실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학문적 영역에서 사이비학문처럼 보이는 형이상학, 신학과 같은 것들을 학문의 구획에서 제거하려는 노력들이 오히려 수포로 돌아가고 학문, 특히 과학과 같은 객관적 진리 영역으로 치부되던 학문, 사상들에 있어서도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생각이 만연하게 됩니다. 또한 서구중심적이었던 서양인들은 자문화 우월주의적인 생각으로 제3세계에 제국주의적인 침략과 교화(?)를 일삼던 것에 대해 반성하고 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동양 문화와 사상을 흡수하게 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과 성찰, 완성 혹은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반기독교적인 요소는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가 서구중심적인 종교라는 이유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또한 절대 진리의 부정 역시 단순히 절대 신의 존재를 반대한다는 단순한 도식 보다는 그간에 이루어진 '구조'에 대한 성찰, 이성중심주의의 타파, 거대담론의 해체, 절대적 판단자로서의 이성의 한계 인식, '주체'의 죽음과 같은 배경 속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 이러한 접근은 모더니즘과 계몽주의의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타당하며 또한 기독교인들도 충분히 섭렵하고 이해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면에는 기독교가 지나치게 '모더니즘의 옷'을 걸치고 있다는 비판적 성찰에도 기인합니다.

물론 상대주의적인 관점, 서양 종교이자 절대 종교로서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 진리에 대한 다원주의적인 시각은 포스트모더니즘 사상 속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할 요소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항상 어떠한 문제나 사상, 사물의 존재나 발생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없이 현상만으로 단정짓고 그것을 자신의, 이를테면 우리에게는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로 난도질하는 접근에 대해 경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복음주의와 근본주의의 구별 자체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며 결국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다원주의와 기독교에 대해 설명한 후 근대 후기 사회에서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접근을 보여 줍니다. 제 생각에는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접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근본에는 세상과 세상의 사상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선행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에 지적하고 싶은 글에서도 언급하겠지만 옥 집사님의 글에서는 복음과 비교하자면 현대 사상과 문화, 그리고 현대적인 방식들이 얼마나 가치가 없는가에 대한 방향으로 글이 전개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가 당대 사상이나 문화, 세속적 방식과 대립적인 요소가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 전개 방향이 지나치게 근본주의적이고 개혁주의에 반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감이 듭니다. 이에 대해서는 마지막 글에서 설명을 좀더 하겠습니다.
2007/11/27 18:34 2007/11/2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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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부 중 헨리 나우웬이란 사람의 <상처입은 치유자>란 책이 있다.
그 책의 요지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상처를 입은 사람만이 타인의 상처를 볼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자신의 상처를 싸매면서 타인의 상처에 공감하고 다가가서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서에서 저자는 자신에게 있었던 고통스러웠던 과거들에 대해 적나라한 서술을 아끼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손자이자 자폐증세를 보이는 샘에게 그의 인생에 도움을 주고자
꺼낸 자신과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학습장애를 딛고 상담가로의 인생을 시작할 때 즈음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에 이르게 된다.
그 가운데 이혼, 그리고 우울증에 시달렸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낸 장본인이다.
그의 소중한 딸이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아이가 자폐아 판정을 받게된다.
이에 저자는 손자의 상황에 마음 아파하다가 이 아이에게 편지를 쓸 결심을 한다.
이 아이에게 정상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의 의미와 충고 그리고 격려들이 담긴 편지를
4년에 걸쳐 쓰게 된다. 본서는 그런 책이다.
상담 사례들이 등장하고 자전적인 이야기가 쓰여졌지만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그 사람에게 애정어린 격려와 충고의 글로 가득하다.

때론 눈시울이 붉어지고 때론 나에게 상황을 대입시켰을 때
예리한 칼처럼 마음을 도려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미치 엘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이후 참 훈훈한 책을 만났다. 감사하다.
2007/11/15 18:36 2007/11/1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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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해 샬롬을 선포하는 것
: 김두식, '평화의 얼굴' 서평



군대 이야기

 돌이켜 보면 20대 초반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군대 문제였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남자 어른들은 6.25 전쟁 당시 피난 생활의 기억들을 간간이 떠올리곤 하셨고 그에 이어 이어지는 것은 언제나 군대 이야기였다. 구타도 심했고 근무 여건도 좋지 않은데다가 기간도 길었던 당시의 군대 생활이 그분들에게는 힘든 시기이기도 했겠지만 추억거리, 혹은 자랑거리들이 많은 시기이기도 했다. 대체로 누가 더 힘든 군생활을 했느냐가 대화의 중심이었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담을 듣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또한 그분들 이야기 속에서의 군대는 소년이 남자로 거듭나는 통과의례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따라서 누구든지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입대를 꺼려하는 조짐이 보이면 ‘겁쟁이’, ‘계집애’, ‘엄마 치맛자락이나 잡고 다니는 애송이’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나이야 스물이 되었지만 아직 세상 물정 모르던 그 시절의 나는 군대라는 ‘진정한 남자들의 세계’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다가오곤 했다.

 

 시간이 흘러 군대라는 ‘숙제’를 마치고 돌아온 캠퍼스에서 친척들 모임에서 큰 아버지나 작은 아버지에게 들었던 영웅담을 다시금 들을 수 있었다. 술자리에서 복학생들의 대화는 30분이 지나면 대부분 군대 이야기로 모아졌고 거기에서는 또 여러 명의 영웅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물론 반대로 피해자들의 하소연이 이어지기도 했다. 군대 생활을 통해 다친 몸으로 돌아온 친구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전투 체육이나 기타 훈련, 혹은 근무 중에 다친 친구들 중에는 인대가 끊어졌던 경우가 가장 흔했고 팔이나 다리를 잘 못쓰거나 시신경을 다쳐서 무리한 운동을 못하게 된 경우도 더러 있었다. 공개되진 않았지만 통계에 의하면 한 해에 군대에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는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나는 때때로 군대라는 조직을 통해 얻은 힘든 경험들은 무의식 중에 각인되어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박노자 교수의 지적대로 한국 사회에서 대다수의 남성들은 군대라는 조직을 통해 사회 생활, 직장 생활, 대인 관계에서의 권력적 요소를 습득하게 되고 그러한 조직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을 불편해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회사에서는 “그 친구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래!”, “군대 생활 편하게 해서 회사가 놀이터로 보여?”, “좀 굴러야 정신을 차리겠구먼!”과 같은 이야기들이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다루다
 최근에 김두식 교수는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을 받은 <헌법의 풍경>이후로 3년 만에 신간 <평화의 얼굴>을 출간했다. 이 책은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중심으로 다룬 것으로, 2002년에 기독매체 뉴스앤조이에서 출판한 <칼을 쳐서 보습을>을 전면 수정한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이 책을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김두식 교수의 접근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 나 또한 처음 ‘양심적 병역거부’, ‘집총거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평화를 사랑하거든. 그래도 군대는 가야지. 사실 무서워서 그러는 거 아냐?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 못하니까 자꾸 구실을 찾는 거겠지. 차라리 당당히 갔다 와서나 그런 이야기를 하시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너무 철이 없었는가. 사실 그랬다. 하지만 지금도 병역 문제와 관련된 모든 담론들은 이러한 무의식적 반감의 두꺼운 층에 막혀 전쟁이나 평화주의적 사고에 대한 논리적 논의 자체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병역거부의 대명사로 통하는 ‘여호와의 증인’은 길거리에서 갑자기 접근해서 <파수대>라는 이상한 전단지를 나눠주고, 가정 집까지 찾아와서는 자꾸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기괴한 이들이며 그들이 취하는 집총거부는 동일하게 ‘기괴한 행동’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솜털이 보송보송했던 금쪽 같은 아들을 눈물 쏟으며 군대로 떠나 보냈던 대다수의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들을 그 길에서 피신시킨 이회창 대선후보에게 등을 돌렸다. 아버지들은 사회조직의 권위적, 상명하복적 규율을 처음으로 전수받은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겁쟁이의 하소연 정도로 치부한다. 국민가수 유승준에게 환호했던 그의 팬들은 그가 입대하겠다던 말을 번복했다는 이유로 이제는 “스티브 유, 양키 고 홈!”이라며 비아냥거린다. 한국의 남학생들은 군가산점 때문에 공무원 시험에 불리하다고 하소연을 쓴 여대생의 인터넷 게시판 글에 ‘미친년’ 운운하며 흥분하여 몇 백 개의 댓글을 달고 있다. 이렇듯 군대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너, 군대 갔다 왔어, 안 갔다 왔어?’의 문제로 환원되며, 군대를 피하려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만큼은 다수의 사람들이 지나칠 정도의 심정적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김두식 교수는 1장에서 ‘나의 양심 재판 체험기’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경험을 서술한다. 자신이 만난 여호와 증인들이 집총거부로 군사재판을 받았던 이야기로 입을 뗀다. 책의 문체도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 형식으로 마치 친절한 상담자가 내 앞에서 차분하게 설명해주는 느낌이 든다. 김 교수가 만난 병역 거부자들은 운동가 정신으로 무장된 남성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아직 세계관조차 정립되지 않은 듯한 여린 소년에 가까웠고 그가 여호와 증인이라는 종교적 배경에 의해 선택한 집총거부로 인해, 이후 자신의 남은 삶에 받게 된 사회적 처벌의 무거움을 생생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 교수가 만난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생길 법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다시금 그들을 향한 연민을 억누른다. ‘그럼 군복무를 수행한 나는 뭐 전쟁광인가. 나는 안 불쌍한가. 내가 허비한 2년의 힘들었던 시간들도 쉽지 않았어. 결국 군대 안 가려고 자신이 불행을 자초한거야.’ 자연히 이런 생각들이 드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연이어 양심적 병역겨부를 반대하는 이들은 ‘비양심적 병역이행자’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례들을 이야기한다.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란 용어의 일괄적 사용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며 이에 대해서는 병역자체의 거부와 집총 거부를 나눌 것을 지적하며, 전자에 대해서는 대체 복무를 시키는 방법이 있고 후자에 대해서는 비전투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음도 설명한다. 여기에 또 다른 질문이 가세한다. 군사재판 때에도 자주 물어보았다고 하는 이 질문은 ‘그럼 만약 네 여동생을 누가 강간하고 죽이려 하면 어떡할래?’이다. 이쯤 되면 다시 독자의 내면은 원상 복귀되며 오히려 그들에 대한 반발심만 커진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이상(理想)이고 현실에서는 악한 사람들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다급하고 필요한 폭력이 있다는 생각이 다시금 우리를 괴롭힌다.

 

이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3장에서 존 하워드 요더의 글을 인용하여 그 질문의 부당성을 역설하고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는 여호와 증인과 같은 이단들만의 문제라는 생각에 대해서도 과거 정통으로 분류되는 기독교 역사에서 드러난 사례들을 통해 주의를 환기시키며(4장), 무엇보다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평화주의자였고 전쟁을 반대했음을 지적한다(5장). 그렇다면 전쟁은 모두 나쁘기만 하며 정당한 전쟁은 없는지 궁금해진다. 이에 대해서는 ‘정당한 전쟁론’이라는 용어가 평화주의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으로 ‘정당한 전쟁’은 평화주의의 친구에 가까우며 오히려 문제는 정당한 전쟁을 가장한 ‘짝퉁’ 정당한 전쟁론에 있음을 보여준다(6장). 책의 후반은 우리 나라의 특수성에 기인한 문제들을 주로 다루는데 그 중 하나가 전쟁 중인 나라에서는 징집제도를 불가피하게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본서는 전쟁 중에 있었던 혹은 지금도 대치중인 다른 나라들의 사례들을 들어 반박하며(8장), 그런 상황에서도 전쟁을 거부했던 이들의 역사를 돌아본다(9장).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내에서 이뤄진 지독한 병역거부 탄압의 사례들을 소개하고(10장), 그에 대한 대안으로 대체복무제도를 언급한다(11장). 특히 11장에서는 대체복무제도의 현주소와 그 내용에 대해 소개하고 각 안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형평성에 맞게 제도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설명한다.

 


진정한 변화를 위한 온정적 글쓰기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그랬듯 ‘해돌이의 모험’ 같은 반공 만화나 로보트 만화를 보고 자란 내게, 그리고 장난감 총을 들고 밖에 나가 아이들과 총 싸움을 했던 내게, 평화라는 단어는 피를 보고 나서야 ‘우리’에게 돌아오는 상급과 같은 것이었다. 남자다워지려고 배웠던 태권도는 자신과 이웃을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대련이라는 방법으로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즐거움을 선사했고, 회심한 이후에도 교회 안에서 설교를 통해 구약의 전쟁들을 예화로 들으며 이스라엘 민족들이 전쟁에서 승리할 때면 속으로 크게 환호하곤 했다. 샬롬과 평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기독교를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 20대 중반의 일이었고 기독매체를 통해 접했던 존 하워드 요더의 <예수의 정치학>이나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와 같은 책들의 내용을 통해 생각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한국의 싸나이’로서 내면의 중심에는 병역거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마치 주변에서 ‘너 자상하고 친절한 척 하지만 사실은 겁쟁이지? 전쟁 나면 도망이나 갈 녀석!’라고 비웃는 것 같았다. 이런 내면의 문제를 안고 있던 내게 김 교수의 책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군대라는 문제로 여전히 뒤틀려 있던 내 내면의 친절한 상담가가 되어 주었다. 책을 읽는 동안 속으로 가끔은 난감한 질문을 하기도 하고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는 내 반응에도 불구하고 공감한다는 태도와 말투로, 그리고 지루하리만치 방대한 자료와 사례들을 차분히 풀어내는 그의 설명에 이제는 나도 충분히 ‘설득’되었고 그 찜찜한 심기를 털어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정당성을 입증하려 했던 많은 전쟁 사례들이 지금도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을 맴돈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책에서 김두식 교수가 지적하였듯이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 시작된 당위적 전쟁들조차도 또 다시 많은 수의 피해자들을 만들어 냈고 그들의 피 흘린 복수가 세계 역사의 큰 흐름을 이루어왔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칼을 뽑아 다른 사람에게 휘두르는 순간 평화는 깨어지고, 폭력은 도리어 폭력을 낳게 되는 것이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예수님은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마26:52)’고 말씀하셨다. 세상은 말한다. 내 가정, 내 나라, 내 종교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전쟁과 피흘림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에 항거하여 반전 행동을 실천했던 많은 이들의 모습을 본다. 이 책은 그러한 이들이 묵묵히 수행했던 길, 즉 세상에 대해 샬롬을 선포하는 것, 전쟁에 나서는 것을 반대하는 부단한 실천만이 복수로 점철되어 온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다 준다.

 

 지식인들 혹은 글 쓰는 이들 가운데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스타일은 급진적이고 도발적이지만 찬찬히 읽고 나면 알맹이가 없거나 진부한 경우가 있고, 반대로 차분하고 따뜻하여 다소 온건한 느낌을 문체로 썼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신선하고 개혁적이며 진보적인 경우가 있다. 사실 나는 전자의 글은 말할 나위 없거니와 후자의 글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 왔다. 때론 몸을 사리는 것 같기도 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대개 끝을 보지 않아서였다. 김두식 교수의 글은 물론 후자에 속한다. 그의 모든 글에 대해서는 아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군대’ 문제에 대해 이 책에서 보여준 그의 스타일을 나는 기꺼이 옹호하고 싶다. 그렇다. 그의 스타일이 옳다. (끝)
2007/08/11 23:55 2007/08/1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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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해 샬롬을 선포하는 것
(기독교사상 8월호, "이 책을 말한다_김두식 <평화의 얼굴>")

/김용주


군대 이야기
 돌이켜 보면 20대 초반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군대 문제였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남자 어른들은 6.25 전쟁 당시 피난 생활의 기억들을 간간이 떠올리곤 하셨고 그에 이어 이어지는 것은 언제나 군대 이야기였다. 구타도 심했고 근무 여건도 좋지 않은데다가 기간도 길었던 당시의 군대 생활이 그분들에게는 힘든 시기이기도 했겠지만 추억거리, 혹은 자랑거리들이 많은 시기이기도 했다. 대체로 누가 더 힘든 군생활을 했느냐가 대화의 중심이었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담을 듣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또한 그분들 이야기 속에서의 군대는 소년이 남자로 거듭나는 통과의례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따라서 누구든지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입대를 꺼려하는 조짐이 보이면 ‘겁쟁이’, ‘계집애’, ‘엄마 치맛자락이나 잡고 다니는 애송이’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나이야 스물이 되었지만 아직 세상 물정 모르던 그 시절의 나는 군대라는 ‘진정한 남자들의 세계’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다가오곤 했다.

 시간이 흘러 군대라는 ‘숙제’를 마치고 돌아온 캠퍼스에서 친척들 모임에서 큰 아버지나 작은 아버지에게 들었던 영웅담을 다시금 들을 수 있었다. 술자리에서 복학생들의 대화는 30분이 지나면 대부분 군대 이야기로 모아졌고 거기에서는 또 여러 명의 영웅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물론 반대로 피해자들의 하소연이 이어지기도 했다. 군대 생활을 통해 다친 몸으로 돌아온 친구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전투 체육이나 기타 훈련, 혹은 근무 중에 다친 친구들 중에는 인대가 끊어졌던 경우가 가장 흔했고 팔이나 다리를 잘 못쓰거나 시신경을 다쳐서 무리한 운동을 못하게 된 경우도 더러 있었다. 공개되진 않았지만 통계에 의하면 한 해에 군대에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는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나는 때때로 군대라는 조직을 통해 얻은 힘든 경험들은 무의식 중에 각인되어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박노자 교수의 지적대로 한국 사회에서 대다수의 남성들은 군대라는 조직을 통해 사회 생활, 직장 생활, 대인 관계에서의 권력적 요소를 습득하게 되고 그러한 조직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을 불편해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회사에서는 “그 친구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래!”, “군대 생활 편하게 해서 회사가 놀이터로 보여?”, “좀 굴러야 정신을 차리겠구먼!”과 같은 이야기들이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다루다
 최근에 김두식 교수는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을 받은 <헌법의 풍경>이후로 3년 만에 신간 <평화의 얼굴>을 출간했다. 이 책은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중심으로 다룬 것으로, 2002년에 기독매체 뉴스앤조이에서 출판한 <칼을 쳐서 보습을>을 전면 수정한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이 책을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김두식 교수의 접근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 나 또한 처음 ‘양심적 병역거부’, ‘집총거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평화를 사랑하거든. 그래도 군대는 가야지. 사실 무서워서 그러는 거 아냐?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 못하니까 자꾸 구실을 찾는 거겠지. 차라리 당당히 갔다 와서나 그런 이야기를 하시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너무 철이 없었는가. 사실 그랬다. 하지만 지금도 병역 문제와 관련된 모든 담론들은 이러한 무의식적 반감의 두꺼운 층에 막혀 전쟁이나 평화주의적 사고에 대한 논리적 논의 자체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병역거부의 대명사로 통하는 ‘여호와의 증인’은 길거리에서 갑자기 접근해서 <파수대>라는 이상한 전단지를 나눠주고, 가정 집까지 찾아와서는 자꾸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기괴한 이들이며 그들이 취하는 집총거부는 동일하게 ‘기괴한 행동’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솜털이 보송보송했던 금쪽 같은 아들을 눈물 쏟으며 군대로 떠나 보냈던 대다수의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들을 그 길에서 피신시킨 이회창 대선후보에게 등을 돌렸다. 아버지들은 사회조직의 권위적, 상명하복적 규율을 처음으로 전수받은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겁쟁이의 하소연 정도로 치부한다. 국민가수 유승준에게 환호했던 그의 팬들은 그가 입대하겠다던 말을 번복했다는 이유로 이제는 “스티브 유, 양키 고 홈!”이라며 비아냥거린다. 한국의 남학생들은 군가산점 때문에 공무원 시험에 불리하다고 하소연을 쓴 여대생의 인터넷 게시판 글에 ‘미친년’ 운운하며 흥분하여 몇 백 개의 댓글을 달고 있다. 이렇듯 군대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너, 군대 갔다 왔어, 안 갔다 왔어?’의 문제로 환원되며, 군대를 피하려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만큼은 다수의 사람들이 지나칠 정도의 심정적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김두식 교수는 1장에서 ‘나의 양심 재판 체험기’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경험을 서술한다. 자신이 만난 여호와 증인들이 집총거부로 군사재판을 받았던 이야기로 입을 뗀다. 책의 문체도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 형식으로 마치 친절한 상담자가 내 앞에서 차분하게 설명해주는 느낌이 든다. 김 교수가 만난 병역 거부자들은 운동가 정신으로 무장된 남성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아직 세계관조차 정립되지 않은 듯한 여린 소년에 가까웠고 그가 여호와 증인이라는 종교적 배경에 의해 선택한 집총거부로 인해, 이후 자신의 남은 삶에 받게 된 사회적 처벌의 무거움을 생생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 교수가 만난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생길 법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다시금 그들을 향한 연민을 억누른다. ‘그럼 군복무를 수행한 나는 뭐 전쟁광인가. 나는 안 불쌍한가. 내가 허비한 2년의 힘들었던 시간들도 쉽지 않았어. 결국 군대 안 가려고 자신이 불행을 자초한거야.’ 자연히 이런 생각들이 드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연이어 양심적 병역겨부를 반대하는 이들은 ‘비양심적 병역이행자’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례들을 이야기한다.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란 용어의 일괄적 사용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며 이에 대해서는 병역자체의 거부와 집총 거부를 나눌 것을 지적하며, 전자에 대해서는 대체 복무를 시키는 방법이 있고 후자에 대해서는 비전투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음도 설명한다. 여기에 또 다른 질문이 가세한다. 군사재판 때에도 자주 물어보았다고 하는 이 질문은 ‘그럼 만약 네 여동생을 누가 강간하고 죽이려 하면 어떡할래?’이다. 이쯤 되면 다시 독자의 내면은 원상 복귀되며 오히려 그들에 대한 반발심만 커진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이상(理想)이고 현실에서는 악한 사람들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다급하고 필요한 폭력이 있다는 생각이 다시금 우리를 괴롭힌다. 이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3장에서 존 하워드 요더의 글을 인용하여 그 질문의 부당성을 역설하고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는 여호와 증인과 같은 이단들만의 문제라는 생각에 대해서도 과거 정통으로 분류되는 기독교 역사에서 드러난 사례들을 통해 주의를 환기시키며(4장), 무엇보다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평화주의자였고 전쟁을 반대했음을 지적한다(5장). 그렇다면 전쟁은 모두 나쁘기만 하며 정당한 전쟁은 없는지 궁금해진다. 이에 대해서는 ‘정당한 전쟁론’이라는 용어가 평화주의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으로 ‘정당한 전쟁’은 평화주의의 친구에 가까우며 오히려 문제는 정당한 전쟁을 가장한 ‘짝퉁’ 정당한 전쟁론에 있음을 보여준다(6장). 책의 후반은 우리 나라의 특수성에 기인한 문제들을 주로 다루는데 그 중 하나가 전쟁 중인 나라에서는 징집제도를 불가피하게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본서는 전쟁 중에 있었던 혹은 지금도 대치중인 다른 나라들의 사례들을 들어 반박하며(8장), 그런 상황에서도 전쟁을 거부했던 이들의 역사를 돌아본다(9장).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내에서 이뤄진 지독한 병역거부 탄압의 사례들을 소개하고(10장), 그에 대한 대안으로 대체복무제도를 언급한다(11장). 특히 11장에서는 대체복무제도의 현주소와 그 내용에 대해 소개하고 각 안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형평성에 맞게 제도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설명한다.


진정한 변화를 위한 온정적 글쓰기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그랬듯 ‘해돌이의 모험’ 같은 반공 만화나 로보트 만화를 보고 자란 내게, 그리고 장난감 총을 들고 밖에 나가 아이들과 총 싸움을 했던 내게, 평화라는 단어는 피를 보고 나서야 ‘우리’에게 돌아오는 상급과 같은 것이었다. 남자다워지려고 배웠던 태권도는 자신과 이웃을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대련이라는 방법으로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즐거움을 선사했고, 회심한 이후에도 교회 안에서 설교를 통해 구약의 전쟁들을 예화로 들으며 이스라엘 민족들이 전쟁에서 승리할 때면 속으로 크게 환호하곤 했다. 샬롬과 평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기독교를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 20대 중반의 일이었고 기독매체를 통해 접했던 존 하워드 요더의 <예수의 정치학>이나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와 같은 책들의 내용을 통해 생각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한국의 싸나이’로서 내면의 중심에는 병역거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마치 주변에서 ‘너 자상하고 친절한 척 하지만 사실은 겁쟁이지? 전쟁 나면 도망이나 갈 녀석!’라고 비웃는 것 같았다. 이런 내면의 문제를 안고 있던 내게 김 교수의 책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군대라는 문제로 여전히 뒤틀려 있던 내 내면의 친절한 상담가가 되어 주었다. 책을 읽는 동안 속으로 가끔은 난감한 질문을 하기도 하고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는 내 반응에도 불구하고 공감한다는 태도와 말투로, 그리고 지루하리만치 방대한 자료와 사례들을 차분히 풀어내는 그의 설명에 이제는 나도 충분히 ‘설득’되었고 그 찜찜한 심기를 털어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정당성을 입증하려 했던 많은 전쟁 사례들이 지금도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을 맴돈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책에서 김두식 교수가 지적하였듯이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 시작된 당위적 전쟁들조차도 또 다시 많은 수의 피해자들을 만들어 냈고 그들의 피 흘린 복수가 세계 역사의 큰 흐름을 이루어왔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칼을 뽑아 다른 사람에게 휘두르는 순간 평화는 깨어지고, 폭력은 도리어 폭력을 낳게 되는 것이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예수님은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마26:52)’고 말씀하셨다. 세상은 말한다. 내 가정, 내 나라, 내 종교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전쟁과 피흘림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에 항거하여 반전 행동을 실천했던 많은 이들의 모습을 본다. 이 책은 그러한 이들이 묵묵히 수행했던 길, 즉 세상에 대해 샬롬을 선포하는 것, 전쟁에 나서는 것을 반대하는 부단한 실천만이 복수로 점철되어 온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다 준다.

 지식인들 혹은 글 쓰는 이들 가운데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스타일은 급진적이고 도발적이지만 찬찬히 읽고 나면 알맹이가 없거나 진부한 경우가 있고, 반대로 차분하고 따뜻하여 다소 온건한 느낌을 문체로 썼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신선하고 개혁적이며 진보적인 경우가 있다. 사실 나는 전자의 글은 말할 나위 없거니와 후자의 글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 왔다. 때론 몸을 사리는 것 같기도 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대개 끝을 보지 않아서였다. 김두식 교수의 글은 물론 후자에 속한다. 그의 모든 글에 대해서는 아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군대’ 문제에 대해 이 책에서 보여준 그의 스타일을 나는 기꺼이 옹호하고 싶다. 그렇다. 그의 스타일이 옳다. (끝)

2007/08/05 18:29 2007/08/0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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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난 네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가끔은
그런 네 모습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언제나 밝고 다정다감했던 너의 낙천적인 성격.
사람들의 고민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진지하게 돌아보던 너의 모습은
항상 도전이 되곤 했다.

무엇보다 난 너의 열정이 부러울 때가 있다.
좌충우돌하긴 했지만,
항상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너의 도발적인 행동이
때론 불안정해 보일 때도 있었지만
이미 나에겐 사라져버린 모습이라
더더욱 귀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난 너와는 다른 내 모습을 본다.
어린 왕자와 같은 순수함도
삶에 대한 열정도
이젠 내 안에서 찾기 힘든 무엇이 되어 버렸다.
항상 무언가를 재어 보고,
어떤 일이든 일단은 냉소적으로 반응하고,
사람들을 대할 때
내 선입관을 드러내는 것이 먼저인 경우가 잦다.

하지만,
이제 난 너에게 없는 것들이 생겼다.

힘들 때마다 자주 사라져버리고
쉽게 포기했던 너와 달리
난 긴 시간동안 참아내고
시작한 일은 마무리를 짓는 집요함이 생겼다.

낙천적이고 밝은 모습은 없지만
슬픔을 광대같은 웃음으로 포장하지 않고
힘겨움과 고통을 피하려는
나약함의 그늘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지만
권위에 굴종하지 않고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으며
함부로 말하지 않는 만큼 내 말에 책임을 지게 되었다.

난 네가 그리울 정도로
많이 어두워졌고 그만큼 나약해졌지만
그런 만큼 거짓과 잦은 포기에서 멀어지고 있다.

(2004년 어느날.)

2007/07/24 19:12 2007/07/2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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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하셨다?"
/김영봉 (와싱톤한인교회 담임목사)


대학교에 다닐 때, 종종 종교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던 무신론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때문에 기독교에 관심이 있었지만, 동시에 비판적인 시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질문이었습니다.

가끔 기회가 되면 저는 그 친구에게 예수님을 믿어 보라고 권하곤 했는데, 그가 한 번은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야, 너희 기독교인들은 왜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갖다 붙이냐?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지 않니? 우리 어머님을 보고 느끼는 점인데, 밤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채어 넘어져도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니, 도대체 나는 이해를 할 수 없다.” 그 때 제가 뭐라고 답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궁색한 답변에 제 스스로가 멋쩍었던 기억은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소식이 끊겼었는데, 몇 년 전 우연히 연락이 되어 만나 보니, 감사하게도 신앙의 길에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제게 던졌던 질문이 지금도 제 뇌리에 울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너무나도 자주 만나기 때문입니다. 대화 중에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많이 입에 올릴수록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에게 갖다 붙여 해석해야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모두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합니다. 제가 만났던 한 선교사께서는 거의 매 문장에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제게 믿음이 부족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얼마나 듣기에 거북하던지요!

질병에 걸리면, “하나님이 병을 주셨다”거나, “하나님이 치셨다”고 말합니다. 사업이 망하거나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서 환난을 주셨다”거나 “하나님이 시험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몇 년 전 거대한 쓰나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을 때도, 많은 목회자들이 “하나님이 하셨다”고 해석했었습니다. 2001년 9월 11일의 테러 공격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하셨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이 응답을 주셨다”,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 주셨다”, “하나님이 보여 주셨다”라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몇 년 전에 만난 어느 부인이 생각납니다. 시카고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그 여인을, 저는 그 모친의 장례식에서 만났습니다. 처음 만나는 동양인 목사에게 그 여인은 마음을 터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겉으로는 유복한 중산층 백인처럼 보이는 그 여인은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 여인은 사랑하는 아들을 몇 년 전에 에이즈(AIDS)로 잃었습니다. 그 아들은 동성애자였는데, 수년 동안 에이즈로 고생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엄마로서 그 고통을 견디기에 얼마나 어려웠을까 싶어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그랬더니,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친지들이 내뱉는 위로의 말이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이 이 고통을 주신 겁니다”라는 위로의 말이 제일 싫었다고 합니다. 그 여인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아닙니다. 이건 하나님이 하신 것이 아닙니다”라고, 정색하며 대들곤 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러한 말 습관에 큰 불편을 느낍니다. 첫째, 많은 경우 사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도 질병을 앓아 보아 압니다만, 병은 대부분 저의 잘못된 생활 습관이 키우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욕심을 내어 무리해 놓고 병이 났는데, 왜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하는 겁니까?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사업 확장을 해 놓고, 그로 인해 부도를 냈을 때, 왜 “하나님이 시험을 주셨다”고 말하는 겁니까? 경황없이 허둥대며 살다가 자동차 사고를 냈을 때, “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못살게 구느냐?”고 말하는 겁니까? 자신의 잘못에 대해 아무도 탓할 사람이 없어 하나님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은 압니다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그렇게 어려움을 자초했을 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잘 극복해 내면, 고난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나게 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혹은 “고난이 내게 오히려 유익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은혜를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제게 병을 주셨습니다”라고 비약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둘째,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하게 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인간의 삶을 오해하게 됩니다. 이 어법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조정하는 인형과 같아집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되, 로봇처럼 혹은 인형처럼 살아가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오용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과 방향을 가지고 계시지만, 억지로 그것을 따르도록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것을 찾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만 인간이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주어로 사용하는 어법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해 치명적인 오해를 불러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 안에서 살아가는 영적인 삶이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한 것인지요! 그런데 믿음 좋다는 사람이 이 어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믿음 생활에 대해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다는 것, 영성 생활이라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손에 들린 인형이 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대 극단도 진실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계신 것처럼, 그리하여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연이나 우리 자신의 선택 만으로 말미암았다고 보는 것도 잘못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활동하십니다. 다만,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시며, 그 관계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될 때 자유의지가 손상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뜻이 우리 속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가장 인간적인 삶을 살게 되는 동시에 가장 영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불가항력적인 사건이나 사고 혹은 우리의 잘못된 선택들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우리에게 유익하게 변모됩니다. 이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말이 생각납니다. 이집트의 총리로서 형들을 만난 요셉이 마침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창 45:8). 매사를 하나님께 갖다 대는 ‘믿음 좋은’ 사람들은 이 구절을 보면서, “맞아, 형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긴 것도,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한 것도, 누명을 쓰고 감옥에 떨어졌던 것도 다 하나님이 하신 거야”라고 단정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형들을 시켜서 자신을 팔아넘기게 하고, 보디발의 아내를 조종하여 자신을 유혹하게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들은 인간의 악행이지만, 요셉이 하나님과의 사귐 안에서 신실하게 살아갈 때, 인간들이 그에게 행하는 모든 악행들을 하나님이 이용하셔서 결국 모두에게 유익한 결과를 만들어 내셨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토마스 켈리(Thomas Kelly)는, 믿는 사람은 인간사가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Testament of Devotion). 한 차원은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인간적인 차원입니다. 우리는 그것만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한 차원은 신적인, 영적인 차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만,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하므로”(고후 5:7) 그런 차원이 있음을 믿어 알고 있습니다. 가령, 제가 어느 사람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영적 차원에서 더욱 중요한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저는 세례 의식에 마음을 쏟을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다고 해도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끝마다 “하나님이…”를 반복하는 것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십계명의 제3계명(“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대화 중에 최대한 피했습니다. 그래서 그들만의 독특한 어법이 생겼습니다. ‘신적 수동’(divine passive)라는 것이 그것인데, 대화 중에 하나님이 주어가 될 경우,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입에 두지 않기 위해 수동태로 만드는 어법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로하셨어!”라고 말하고 싶으면, 수동태로 바꾸어, “내가 위로 받았어!”라고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주어로 두고 말하다가, 혹시나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을까 싶어 마음을 썼던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 좋은 사람들의 특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찌하여 정반대로 바뀌게 되었을까요? 혹시나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잃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한국 교회에 신적 수동의 어법이 회복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IVP BOOKNEWS, 2007년 7-8월|제15권 제23호 통권75호)

2007/07/15 18:28 2007/07/1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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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이 많이 늦었습니다. 이미 정리가 끝나는 마당이라 사실 글 쓰기가 좀 주저스럽습니다. 예전에 대학원 다닐 때는 한참 온라인에서 북적거리다가 갑자기 뒷북치는 논객들을 좀 답답해 했습니다만, 지금 제 처지가 그렇네요.ㅜㅜ


미리 말씀드리자면 제 글은 시기가 한참 늦었기 때문에 논쟁이라기 보다는 후기에 가깝겠습니다.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미리 말씀 드리고 시작하려 합니다. 따라서 글은 구어체 형식으로 편하게 쓰려고 합니다.^^

 

신광은 목사님과 양희송 전도사님(직업을 맞추다보니 그렇습니다.ㅡㅡ;;)의 글들이 기세 논쟁을 정리하는 데에 제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양희송 전도사님이 김기현 목사님의 기세를 리차드 니버의 구분을 가지고 "대립 모델"에 매핑시킨 부분이 제게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물론 김기현 목사님이 별 말씀 안 하시는 걸로 봐서는 "대립주의자" 혹은 "대립 모델의 기세"라고 인정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김 목사님의 기세를 신광은 목사님이 "무늬만 기세"라고 이야기한 듯 합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예전에 김기현 목사님이 번역하시면서 자주 언급하셨던 레슬리 뉴비긴의 <요한복음 강해>가 떠오르더군요. 헬라 철학의 옷을 입었지만 기독교의 정수를 드러냈던 사도 요한의 서신을 김목사님이 기세라는 종목에 적용시켜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김기현 목사님은 인용의 대가이시니 충분히 가능하다는 음모론적 생각..) 기세의 옷을 입고 있지만 속을 까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한 것이지요.^^

 

그건 그렇고, 신목사님 글에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광은 목사님은 답글을 쓰시면서 "용주님의 솔직 담백한 지적에 많은 부분 공감하면서도 지나칠 정도의 방어적 태도에 의아"했다고 이야기했는데 사실 글들을 죽~ 읽어보면 제 글에 대해 신목사님이 공감한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ㅡㅡ;;;


글 쓸 때 자주 하는 실수인데 사실 이런 글을 접하면 부부싸움 할 때 상대편이 "내가 참 많이 미안하긴 한데, 당신 그러면 안돼!"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자꾸 떠오릅니다. 신 목사님은 중간 중간에도 이런 류의 자극적인 표현들을 좀 쓰시는데 읽으면서도 진의가 의심스러울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기세 옹호론을 펼침으로써 지나치게 방어적인 자세로 변론하기 급급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지적도 그렇습니다. 저는 김기현 목사님의 연재를 읽다가 좀 과하다 싶은 부분들 몇 가지-신목사님에 따르면 3가지로 요약됩니다-를 지적했습니다. 논쟁의 과열이나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나머지 부분은 다 동의한다는 꼬리글까지 붙였는데 그렇게 읽으셨다면 그게 더 지나친 왜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려다 보니 오히려 신목사님이 제 글을 읽으시면서 "지나치게 방어적인 자세로 변론하기 급급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던 건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하게 만듭니다.

 

이원론-혼합주의 문제에 있어 신 목사님은 제가 "김목사님의 의견을 별로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 같으며 이원론의 문제를 모더니즘 탓으로 돌리는 단순한 논리를 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에서 신 목사님은 저의 "현대 사회에 대한 이렇게 놀라울 정도의 단순한 분석에 그저 할 말을 잃"었다고 말합니다. 신 목사님 반응에 사실 저도 좀 그렇습니다.ㅡㅡ;; 신 목사님이 안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게 말씀하실 수는 있겠으나 좀 오버하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물론 모더니즘 때문에만 신앙이 사유화, 내면화, 탈사회화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김기현 목사님이 이원론을 혼합주의로 대체할 때 논리적 비약이 좀 있었다는 것이었고 의도적으로 개혁주의 기세에서 상당한 부분의 변증을 일삼고 있는 모더니즘을 통째로 날려버린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모더니즘적인 요소를 부각시킨 것이지 신목사님 지적대로 모더니즘이 모든 문제의 원흉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제 글을 다시 읽어보아도 매도당할만큼 그렇게 강하게 읽히지는 않는 것 같은데요.ㅜㅜ) 신앙의 사유화, 탈사회화와 같은 문제는 사실 모더니즘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사실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과 다원주의적인 요소가 더욱 신앙의 사유화와 탈사회화를 가속시키는 요인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군부 독재라는 상황적 특수성으로 인해 신앙의 사회적인 역할의 고리들을 많이 잃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김기현 목사님이 모더니즘을 빼놓고 이원론을 비판하면서 혼합주의로 넘어가고 있었고-저는 그것이 좀 지나치다 싶었고-그렇기 때문에 저는 기독교가 개인적이고 내면적, 탈사회적인 종교로 축소될 것을 강요 받았던 근대사회에서 개혁주의 기세가 그에 대한 좋은 모델이 되지 않았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첨언하자면 저는 김목사님이 이원론이 아니라 혼합주의가 문제라고 이야기하면서 이 두가지의 문제를 쉽게 대체시키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양립하거나 통합 혹은 병렬적인 구조가 아니라 배제 혹은 대체로 읽혔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한 것입니다. 김목사님의 주장과는 달리 여전히 이원론이 문제라고 말이지요. 이원론 문제를 포함시킬 수 있는 기세로 논의를 통합하거나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덧붙여 기존의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저의 관점을 정리하자면 수정(modified) 개혁기세 혹은 확장(extended) 개혁기세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신목사님이 지적하신 것은 "현장성 문제"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동의되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는 말로 운을 떼시는데 앞에서 동의되는 부분을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좀 서운합니다.(아예 말을 마시지.. 저 엄청 기대했었습니다.ㅜㅜ) 이 대목에서 신 목사님은 제가 적반하장을 했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김 목사님의 연재가 기존 기세의 문제 지적과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인데 연재를 마칠 때까지, 그리고 그 대안적 기세 모델을 적용할 때까지의 유예기간을 줄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덧붙여서 글이 현학적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따질 것 없이 실천 가능성을 가지고 판단하자는 말씀도 하였습니다만 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제 반론에서 충분히 말씀을 드린 것 같습니다. 실천 가능성 여부는 사실 또 다른 문제입니다.)


다시 유예기간 문제로 돌아가자면, 저는 좀~ 그렇습니다. 물론 일리가 없는 말씀은 아니나 이번에 번역하신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은 1995년에 나온 책입니다. 김목사님이 인용하시는 많은 책들도 사실 옛날 책들이 많습니다. 제가 그 책을 원서로 본 것도 2003년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이제와서 다시 기세를 이야기한다면 그 유예기간은 좀 과하며, 좀더 짜게 말씀드리자면 이미 적용 사례를 이야기할 정도가 되어야만 이제 와서 이 지루한 기세 논쟁을 다시 끄집어 내는 것에 대한 '용서(?)'가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제가 지나친가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만 제 주변의 많은 분들이 이미 기세 논쟁을 좀 지겨워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습니다만(사실 이야기를 많이 하니 흥미롭습니다.^^), 지금도 기세 논쟁은 상당 부분 울궈먹기 내지는 '짜고 치는 고스톱' 같기도 합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오버라는 생각도 듭니다. 양희송 전도사님 지적대로 제가 기독교 세계관 전문가도 아닌데 제 영역을 넘어서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르게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그렇습니다. 공학 분야에서는, 아니 이미 여러 학문 분야에서는 이론에 대한 검증을 가짜로 해보는 일이 잦습니다. 자신의 이론을 가적용해보는 것이지요. 제안서도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될 것이다, 기대되는 효과는 이러이러하다는 등. 일종의 시뮬레이션이지요. 제가 김목사님 글에서 답답한 대목은 마치 통합적인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듯하다가 '무늬만 기세'인 다른 기세(another Christian worldview)를 이야기하는데, 거기에 적용 사례가 없다는 것입니다. 검증 사례가 아니라 적용사례 조차 없다는 말입니다. 지나치게 이야기하자면 김목사님은 자신의 기세를 현장에 적용해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미 저는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기독교적인 모델을 구축하면서 그것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려는 노력을 덜하더라는 것이지요. 물론 김목사님은 연재를 통해 "성경"이 어떻게 이야기 하는가가 중요하며 무엇보다 거기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논리로 새 모델, 혹은 대립 모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아우를 수 있는 모델을 기대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물론 적용 사례들이 풍성하다면 그것이 더 좋겠지요.

 

글이 길어졌네요. 토른 글들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들도 있었고 배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아무쪼록 더 많은 논의가 풍성하게 전개되기를 바라고 또한 무엇보다 김목사님의 연재와 다른 분들의 글들에 도움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신목사님 글에 좀 과하게 이야기한 부분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한 부분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자꾸 신목사님 글의 스타일을 자꾸 이야기하게 되었네요. 부디 신목사님의 글에 대한 애정이라고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글 중간에 김목사님이 저에게 '이쁘'다고 하셨더군요. 감사합니다. 김목사님도 연재 잘 마치시고 좋은 글들과 좋은 책 소개 많이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양희송 전도사님의 글은 언제나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군요. 역시 글쟁이 답습니다.^^
그럼, 샬롬.

2007/07/01 22:49 2007/07/0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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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많은 선생이 있다.
지금도 연락이 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그 시점 이후로는 완전히 관계가 단절된 분들도 있다.
군복무를 병무청에서 했는데
그 때 총무과장님이 내겐 그런 분이다.

지나고 보면 참 공무원들에 대한 안좋은 감정이 많았다.
문서수발을 하던 나는 짬이 날 때마다 책읽기를 즐겼는데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고
그것을 가지고도 트집 잡는 이들이 있었다.
군대생활 쉽게 한다는 둥, 그렇게 할 일이 없냐며
노가다나 개인 심부름을 악착같이 시키는 등
괴롭히는 이들에도 여러 부류가 있었다.

그 와중에 총무과장님이 새로 전근을 왔다.
다른 과장보다는 직급이 높았으나 아직 과장을 하던 때였다.
한 며칠 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무표정하게 보시다가
어느날 나를 불렀다.
나는 근무 시간에는 정도껏 봐라, 너 군대 생활 맞냐 하며
또 나를 괴롭힐 것이라 예상했다.
(사람에 대한 기본적 반감이 이 때에도 있었던 듯..^^)

과장님이 입을 열었다.
"네 나이 때는 되도록 두꺼운 책을, 그리고 되도록 고전을 봐라.
내 나이가 되면 책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질 않아.
지금은 나도 너 보는 정도의 책은 쉽게 보지만 두꺼운 책들은 이젠 볼 시간도 능력도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냐?"
과장님은 잠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고는 다시 원복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가서 일 봐"

이후로도 과장님은 나를 가끔씩 부르셔서
짧게 짧게 말들을 많이 해주었다. 경상도 분들 특유의 방식으로..
난 병무청에서 200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모두는 아니지만 상당한 분량의 책들이 500페이지가 넘는 책들로
읽으면서도 고통스러운 인문학 고전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과장님의 조언이 떠오르곤 했다.
내가 대학생이라면
교양서로 추천된 인문한 고전들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그 때 생겼다.

한 번은 내가 젊은 혈기로 인해 정말 난감한 경우에 처했을 때도
그 분은 친히 내 편을 들어주었고, 그 문제로 나에게 특별히 충고하지 않았다.
군복무 기간동안 그 분에 관한 이야기는 몇 개가 더 있는데 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워낙 무뚝뚝한 분이었고 또 금방 과가 바뀌어서 잊고 지냈는데
오늘 회사에서 짬을 내서 책을 읽다가 문득 책 페이지를 세는데 그 분 생각이 났다.
책 두께를 보면 생각나는 분, 내 지식의 기저를 만드는 동기를 부여한 분..
2007/06/16 19:11 2007/06/16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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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소견
: 직장인이 바라본 기독교 세계관

/김용주


들어가면서
최 근 복상에 김기현의 세계관 관련 연재가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 김기현만큼 제대로 기독교 세계관(이하 기세)을 논한 글을 읽어보지 못했다. '공격적 책읽기'로 널리 알려진 그는 이 연재를 쓰면서도 엄청난 양의 참고 문헌들과 신학과 철학 분야의 사상가들을 언급하고 있다. 혀를 내두를 정도다. 도예베르트, 아브라함 카이퍼, 리차드 니버로부터 시작해서 로버트 웨버, 제임스 사이어, 알버트 월터스, 브라이언 월쉬, 레슬리 뉴비긴. 이에 더하여 낸시 피어시, 스탠리 하우워와스, 알빈 플란팅가, 존 요더, 하워드 스나이더, 로날드 사이더, 자크 엘룰에 이르는 기독교 저자들의 최근 저작들까지도 자유롭게 넘나든다. 또한 데리다나 하이데거, 후설 같은 사상가들을 인용하며 그 사상의 깊은 의미를 반추하는가 하면 국내 저자들(송인규, 이승구, 신국원, 양승훈 등)의 저작들도 꼼꼼히 읽은 흔적이 역력하다. 뿐만 아니다. 양희송, 박총, 이원석, 정정훈 등 세계관에 대해 한 번이라도 글을 쓴 청년 필진들의 글들조차도 빠짐없이 읽고 적절한 대목에서 언급하는 성실함이 엿보인다. 이 정도라면 김기현의 기세 비판은 빈틈을 찾을 수 없이 촘촘하고 또한 성실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난처하다'는 김기현의 지적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깔끔하지 않은 부분들이 자꾸 머리 속을 맴돈다. 사실 그의 연재가 끝난 후에 글을 쓰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글을 쓰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이미 그의 초반 연재 글에서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연재 중반에 내가 지적하는 문제들이 후반에 가서 해결될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기세에 대한 논의의 풍성함을 위해 기꺼이 글을 쓰려 마음 먹었다. 이 글의 주목적이기도 하지만, 부족한 내 글이 종국에는 김기현의 연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를 바란다. 


본론 으로 들어가자. 김기현은 개혁주의 기세의 현실 진단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며 몇 가지로 기세를 비판한다. 사실 기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으며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것에 나도 동의한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 상에 김기현의 글이 위치하고 있고 그의 글은 이제까지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던 비판적 논의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기현이 연재 글에서 비판한 기세의 몇몇 문제에 대한 반론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적하려는 내용들 외에도 김기현은 자신의 연재 글에서 개혁주의 기세의 여러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논의의 축소를 위해 내가 언급하지 않는 내용은 거의 동의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사실 나는 김기현의 글에 비판적인 입장이라기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감탄하고 있으며 멀리서 뵌 기억 밖에는 없지만 동지 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이제부터 차근차근 그것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개혁주의 기세는 명제적이며 내러티브가 없다는 비판에 대해
첫 째는 기세에는 ‘내러티브(narrative)’가 없다, 즉 명제만 있고 이야기는 없다는 비판이다. 기세의 명제적 성격이 현실 세계와의 괴리감을 크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라는 이야기다. 이는 일반적으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에서도 동일하게 지적되는 부분이다. 사실 내러티브의 강조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있어 하나의 트렌드라 할 수 있다. 기세의 명제/내러티브 문제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이는 성경이 어떤 지침이나 규율, 혹은 신조와 같은 명제로 추출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가진 긴 서사(敍事)라는 말이다. 야곱이 경험한 하나님과 요셉이 경험한 하나님으로부터 공통 분모를 뽑아서 우리가 취해야 할 지침으로 삼는 것이 진정한 혹은 온전한 기독교인가? 거칠게 표현하자면 대충 이런 류의 고민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 의식이 신학과 세계관에 녹아나는 일은 고무적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제적 성격의 기세를 평가절하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이는 마치 예수님의 행적이 중요한가, 그가 가르친 주기도문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와 같다. 물론, 둘 다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 둘은 상호 보완이 필요하다. 관계를 따지자면 주기도문은 명제적 성격이 강하고 예수의 가르침이 압축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서사적인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내러티브의 살이 붙어야 그 명제가 온전히 드러나고 또한 강화된다. 이러한 문제는 성경에 기록된 십계명이나 사도신경에서도 잘 드러난다. 또한 신학분야에서도 특정한 주제들을 뽑아낸 조직신학이나, 성경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성경신학과 같은 도구의 효용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일례로 도로교통법에 의한 교통표지판을 상기해보라. 그 각각의 기표들은 특정한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일반인들은 적절한 시간 동안의 교육만으로도 교통표지판을 읽고 그 기표를 보고서 자동차를 몰 수 있다. 신호등의 파란불이 깜박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파란불의 깜박임은 너무 많은 생략이 있는 것은 아닌가. 차라리 구구절절 자세한 문장으로 길을 건너는 데에 필요한 설명을 보기 좋은 곳에 서술해 두어야 하지는 않을까. 내게 내러티브의 문제는 이와 비슷하다. 기독교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김기현은 상대적으로 내러티브를 강조하기 위해 이러한 압축적이고 일관성 있는 명제의 효용을 지나치게 축소시키고 있다. 반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세의 일관성과 명제성을 배제하고 내러티브를 살린다면 기독교를 효과적으로 관통할 수 있겠는가? 


나는 기세를 모르던 시절에도 경건의 시간을 5-6년 동안 가지면서 성경을 읽었다. 하지만 도통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성경은 신화적으로 다가왔고 예수님의 구속은 내 죄를 대속한 것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도예베르트의 창조, 타락, 구속으로 대변되는 기세와 ‘하나님의 나라’라는 틀로 역사를 관통하는 성경신학적 배경이 성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김기현의 문제 제기는 포스트모던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익숙한 지적이나 자칫 잘못하면 성경의 일관성을 파악하는 효과적인 틀 자체를 허물어뜨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실상 내러티브의 강조는 개혁주의 기세의 명제성을 허물어뜨린다기 보다는 내러티브의 도움으로 오히려 강화되고 내러티브를 통해 무미건조한 신학적 도그마로 전락하지 않는 상호보완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지적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원론이 아니라 혼합주의가 문제라는 비판에 대해
두 번째 비판 대상은 이원론이다. 김기현은 기세를 현실에 맞게 적용하려면 기존의 개혁주의 기세가 말하는 것처럼 이원론을 극복하는 것보다는 교회 내의 콘스탄틴주의, 즉 혼합주의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개혁주의 기세는 현실 진단에서부터 이미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이미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가 세상과 격리될 걱정을 하는 것은 기우(杞憂)에 불과하며 오히려 하나님 나라, 그 왕국의 가시적 형태인 교회가 도리어 세상 속에서 세상 정신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김기현은 송인규의 “평신도 신학”에서 언급한 ‘세상’이라는 개념의 구분을 언급한다.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 전체를 가리키는 ‘세상1’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정신을 의미하는 ‘세상2’를 구분하자는 송인규의 지적에 대해 “한국교회의 문제는 ‘세상1’과 ‘세상2’를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2’가 교회 안에 침투해서 사실상 장악 당한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김기현은 세상과 교회의 구분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 없이 오히려 우리가 교회의 세속화에 주목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 근거로 그는 신구약 성경의 내러티브와 콘스탄틴 이후 기독교의 혼합주의적 성격을 지적한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도 교회가 어떻게 권력과 결탁했으며 그로 인해 얼마나 기독교가 변질되어 왔는지를 설명한다. 그렇다. 적은 외부에 있지 않고 우리 내부에 있었으며, 결국 친절한 금자씨가 말하듯 “너나 잘하세요”가 우리 귀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으나 김기현이 이성주의 시대로 대변되는 ‘모더니즘’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듯이 근대주의는 이성의 절대성을 강조하여 경험적, 합리적, 과학적인 것들을 신격화하였다. 근대 기독교인들은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많은 탈기독교적인 답변들 속에서 혼란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모더니즘이 한 세대를 휩쓴 후, 기독교 신앙을 포함한 종교는 사유화되었고 내면화되었고 탈사회화 되었다. 종교는 이제 학문, 정치, 문화, 사회에 개입할 수 없으며 신존재에 대한 문제는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그 무엇이 되었다. 이로 인해 학문 영역 자체에서의 도피가 이루어졌으며-이를 두고 쉐퍼는 “이성에서의 도피”라고 말하기까지 했다-무신론으로 회심한 유물론자들로 인해 대다수의 기독인들은 과학, 심리학, 예술, 매체, 정치와 같은 영역의 것들은 세상적인 것이며 그 자체로 이단적이고 사탄적인 것으로 치부했다. 시대가 달라져도 인간 조건과 세상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로이드존스조차도 그의 대표적 저서인 “부흥(Revival)”의 초반부에서, 이런 근대적 사고로 인해 교회가 그 이전 세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에 봉착해 있음을 직시했다. 유대민족과 중세 유럽의 문제가 혼합주의였다면, 근대 이후에 생겨난 이성우월주의적 사고 때문에 대다수의 복음주의자들은 세상의 각 영역, 특히 학문과 문화 영역을 부정하고 이단시했다. 이 시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미시적인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도 하나의 포괄적인 틀로 제시될 수 있었던 기세의 긍정적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한국 교회도 개혁주의 기세에서 말하는 이원론의 극복이 ‘여전히’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김기현은 나와 생각을 달리할 것 같다. 지금은 모더니즘을 넘어선 포스트모던 사회로 들어섰으며 모더니즘의 문제에 집중했던 개혁주의 기세는 고스란히 모더니즘의 해악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으나 이는 한국 사회를 탈근대 사회로 볼 것이냐, 근대 사회로 볼 것이냐, 아니면 진중권의 지적처럼 오히려 전근대적인 방향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볼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나의 생각은 제3세계, 특히 북미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한국적 상황은 이 모든 것이 중첩된 형태를 띄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교회는 이원론적 사고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나는 개혁주의 기세로 대변되는 “구조와 방향 모델”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기독인들이 세상의 구조-문화, 정치, 사회, 학문, 예술 등-그 자체를 부정하고 불경스러워하며 담을 쌓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김기현의 문제 제기와는 반대로-송인규의 원래의 지적처럼-진정한 문제는 우리가 세상에 관심이 없는 것이며 또한 ‘세상1’(구조)을 ‘세상2’(방향)처럼 여겨서 ‘세상1’과 접촉하며 살아가는 그 자체를 혼합주의로 치부하고 정죄하고 멀리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리차드 미들톤의 교회와 세상에 관한 이원론적 사고의 문제성을 접했을 때 들떠 있었고, 월터스의 구조와 방향 모델을 접했을 때 내가 누리던 음악, 예술, 영화, 대중매체들이 악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제서야 졸이던 가슴을 펼 수 있었다. 송인규가 천국에는 예술 작품들이 있고, 문화가 보존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을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는 것, 나아가서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 기다려졌다. 김기현의 잣대로 본다면 나는 교회 안의 혼합주의에 전염된건가. 교회 안에서 사회와 문화를 누리고 더 나아가 변혁을 꿈꾸는 나는 콘스탄틴주의를 너무 가볍게 보고 있는 것인가. 이원론을 지적하는 기세는 여전히 현실을 잘못 파악한 건가. 나는 기세를 접한 그 때부터 후배들에게 기세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나와 같은 심리적 부자유함에 눌려 지내는 수많은 기독학생들을 만난다. 그 때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금도 나는 음악을 하면 CCM을 고집하는 청년들은 본다. 아침 기도회를 빼먹고 시험공부를 했다고 죄의식을 느껴 학점을 포기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화해하려는 학생들도 본다. 주변에서는 적성에 맞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주기적으로 신학교에 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는 회사원들도 자주 만난다. 게다가 그들 열에 하나 둘은 이미 회사를 떠났다. 나에겐 이원론이 여전히 극복의 대상이며 개혁주의 기세는 여전히 현실에서 유효하고 가치 있는 모델임을 느낀다. 김기현은 때때로 주변의 보수 교회들을 탐방해보라. 그 교회의 평신도들과 이야기해보라. 자신의 주변에 있는,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성도들이 아닌 보수 교단의 기독 직장인들, 기독청년들과 이야기해보라. 난 그렇게 생각한다. 여전히 이원론이 문제다!


한국이라는 컨텍스트와 이야기에 무감하다는 비판에 대해
세 번째로 김기현은 개혁주의 기세 운동이 한국적 상황과 이야기에 무감각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기세 운동은 처음부터 단순한 지식체계의 성립보다는 삶 한가운데서의 실천을 목적으로 해왔다”는 최태연의 말을 인용하면서 “도예베르트나 쉐퍼가 매력적이었던 건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고뇌하고 대답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널리 읽히는 세계관 서적들은 ‘한국’이라는 컨텍스트가 아예 부재하거나 언급하더라도 지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그 관점 역시 비판 받을 소지가 많다”고 결론 지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실 나는 이렇게 시작된 김기현의 연재에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이라는 컨텍스트를 관통하는 세계관의 비전을 제시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저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김기현의 세계관 연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렵고 오히려 “지식체계의 성립”에 치중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한국적 상황이 아주 언급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네 번째 연재인 “이원론과 혼합주의”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이라크 파병, 국가보안법, 사학법을 대하는 한기총의 정치 참여를 혼합주의의 틀로 보는 대목이 그 부분이다. 하지만 이 대목은 혼합주의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예시 정도로만 읽힌다. 그렇다. 김기현에게도 현장은 아직 멀기만 하다. 사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가 세계관에 관한 연재를 시작했을 때 나는 이런 류의 글을 기대하지 않았다. 친절하게 소개된 참고 문헌과 논문 버금가는 수준의 잘 짜여진 이론들의 종합과 비판을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생생한 현장성이 담보된 실체로서의 세계관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김기현은 한국 교회의 고질적 문제인 담임목사직 세습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미 FTA 문제는 어떤가? 교회의 세금 문제는 어떠한가? 지역 사회, 한국 사회에 대한 교회의 봉사와 사회 참여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혹은 수정로교회에서는 그런 현장성 있는 사역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내러티브와 현장성이 반영된 김기현의 사역은 부산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어떤 열매들을 맺고 있는가? 그가 일구어 가고 있는 하나님 나라 운동은 어디쯤 와 있는가? 사실 나는 이런 것들이 궁금하다. 모든 사역을 가시적인 열매로 환산하려는 것에는 나도 부정적이지만 세계관 운동을 이야기하면서 그리고 더군다나 현장성, 현실 세계의 참여를 이야기하면서 사역에 대한, 열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온 후로 세계관 관련해서는 별 다른 책들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물론 세계관 딱지를 달고 나오는 책들을 되도록 모두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실상 내게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책들은 현장성이 담보된 책들이다. 제3세계의 사회복음의 사례들이 잘 드러난 로날드 사이더의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다”나 사무엘 에스코바의 “벽을 넘어 열방으로” 같은 책들과 도시 빈민촌 선교행전이라고 볼 수 있는 “홍등가의 그리스도”, 그리고 일반 서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NGO 운동의 한계를 느낀 학생들이 비영리 기업을 조직하고 운영하여 성공한 이들을 인터뷰한 사례들이 담긴 “세상을 바꾸는 대안 기업가 80인”같은 책들이 그것이다. 이런 책들은 수사법이 화려하지 않으며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10배에 달하는 참고 문헌을 돌아볼 필요도 없다. 이미 그들은 또 하나의 사도행전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의 짧은 고백 속에는 언제나 ‘현장’이 묻어나며 그 소박함 속에서 울리는 공명은 내 깊은 양심을 오랫동안 뒤흔든다. 


사실 나는 이 대목에서 김기현이 지적하는, 이른바 개혁주의 기세라는 모델 자체가 현장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개혁주의 기세에 대한 모델의 검증이 안 된 것 아니냐는 얘기다. 김기현의 지적대로 개혁주의 기세가 영향력이 있었던 것은 그 세계관 배후에는 화란 개혁주의 기독교 선배들의 현장성이 담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기세는 그들의 삶의 토대 위에서 구축된 실천적 틀인 셈이다. 이미 어느 정도의 성공 사례가 있는 모델을 우리가 적용해보지도 않은 채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지 않냐는 거다. 내가 불편한 것은 김기현이 기세가 현실에 뿌리박지 못하는 이유를 자꾸 개혁주의 기세 내부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나는 사실 기세의 다양성 문제와 모더니즘적인 토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혁주의 기세 자체는 여전히 그 틀을 유지하면서 현실에 부단히 적용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백 번 양보해서 개혁주의 기세 운동이 우리나라 형편에는 일대일로 대응시켜서 적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니 수정, 보완하여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틀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나는 아직까지는 회의적이다.


기세 비판, 텍스트의 평이성을 지향해야
알 버트 월터스는 기독교 세계관을 철학, 신학과 구별 짓는 키워드로 ‘일상’과 ‘상식’을 든다. 세계관이 그만큼 일반적이고 비전문적인 문제라는 얘기다. 기독교 세계관은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지혜와 상식의 문제이며 일상적인 문제다. 하지만 개혁주의 기세 자체가 철학, 신학을 잘 알지 않으면 논의하기조차 어렵다는 점을 많은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고 나 또한 그에 동의한다. 김기현의 글에서 내가 답답한 대목은 김기현이 그런 기세의 문제를 지적하는 동안에도 다시 너무나 많은 철학과 신학의 토대를 넘나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세계관이 신학, 철학적 토대 없이 정립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세계관은 철학과 신학에 대해 메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철학적, 신학적 연구가 세계관의 형성에 영향을 준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관의 표현이 학문적인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세는 노동자나 어린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되어야 한다. 비록 그렇게 하기엔 다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되도록 텍스트의 평이성을 지향해야 한다. 


나는 기세의 수혜자다. 내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신학을 공부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러한 유혹이 만만치는 않다. 모두가 이야기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신학을 공부하는 방법만은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항상 그런 도전을 받아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솔직히 나는 기독교 세계관 논쟁에 끼어 들어야 하는지를 놓고도 몇 달을 고민해왔다. 사실 기세를 놓고 내가 할 얘기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사실 그렇다. 기세 논쟁은 그 텍스트의 난해함과 그를 해결하기 위한 방대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세계관 운동의 논의 자체에 세계관의 수혜를 입은 사회인들과 운동가들을 철저하게 배제시키고 있다. 기세 논쟁의 중심에는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결국 운동가들은 말 한마디 하려고 해도 좀처럼 논의에 끼지 못한다. 내가 아는 이들 중 참여연대나 기윤실, 공의정치포럼, 뉴스앤조이 혹은 사회 운동가들과 직장인들이 기세에 대해 이렇다 할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사실 그들이 세계관 운동을 하는 데에는 깊이 있는 철학과 신학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사실 기세를 이야기하려면 그런 현장에서, 미답지(未踏地)에서 분투하고 있는 운동가들을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그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담론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기세를 갇힌 학문의 영역에서 척박한 사회의 중심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나는 김기현이 그의 연재를 통해 원론적으로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의 기세 논의가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도 믿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의 논의가 진정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 되려면 학문의 옷을 벗고 보다 알기 쉬운 일반인들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학문적인 글이라도 리차드 파인만이나 송인규, 강준만 수준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나는 김기현의 글을 읽으면서 또다시 병이 재발하는 경험을 했다. 텍스트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김기현의 탁월함을 보면서 나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다시 신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사실 회사 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그의 해박한 지식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독서량에 한계를 느낀다. 내 문제의식이 지식의 한계 때문인가 하는 생각에 한 몇 달 동안을 1-20분만 시간이 나도 관련된 글들을 최대한 많이 그리고 자세히 읽어 보았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서서 11시 가까이 되어야 퇴근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저녁식사 시간을 포기하더라도 최소한 그가 인용한 참고 문헌은 다 읽어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지금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그의 연재를 다 읽을 때 즈음에는 나는 엄청난 참고 문헌의 늪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끝내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다. 내심 꽤나 성실하게 기세 관련 책을 읽었다고 자부하는 나는 내가 넘어설 수 없는 물리적 처지에 있는 김기현이 한편으로는 부럽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내 모습은 뱁새가 황새를 쫓아 가려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꼴이다. 하지만 나는 이변이 없는 한은 회사 생활을 지속할 것 같다. 또한 이 토대 위에서 지속적으로 기세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고 또한 나를 포함한 많은 운동가들을 위해서 꼭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면서: 기세가 현실에 뿌리박지 못한 진짜 이유는?
정 리하자면 이렇다. 기세가 현실세계에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를 김기현은 개혁주의 기세의 변혁 모델 ‘안’에서 찾고 있다. 나는 그의 비판 중 내러티브의 부재나 이원론에 대한 비판과 같은 일부는 좀 과하다는 지적을 했다. 김기현이 컨텍스트 문제를 거론하는 데에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기세라는 전략으로 경기를 뛰어본 선수가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군사 독재 시절 사회참여 문제를 놓고 기독연합 운동은 이른바 ‘6개대 사태’와 같은 사건들로 인해 보수-진보 세력 간의 아픔이 있었고 그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듯하다. 이후에 우리는 기세를 실천적으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내세울만한 현실의 운동 경험 없이, 북미의 영향을 듬뿍 받은 포스트모던-다원주의 시대를 맞이 했다. 권력은 다양화되었고 기세운동은 문화 운동으로 변화했으며 진보 세력은 분화되었다. 그 와중에 기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대두 되었고, 이제 기세는 김기현과 같은 신앙인들에 의해 한국 교회에서 아직 써보지도 못한 낡은 칼자루 취급을 받고 있다. 문제는 김기현이 ‘낡은’에 주목하고 있다면 나는 ‘아직 써보지 못한’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을 마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렇다. 나는 여전히 개혁주의 기세의 변혁모델을 유효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다는 점과 참여는 하고 싶으나 기세 논쟁 자체의 난해함으로 인해 토론의 시작점을 찾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내 글로 인해 보다 많은 이들이 기세 논쟁에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나의 부족한 잡문(雜文)이 김기현의 이후 기세 연재에 부족하나마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끝)

2007/06/01 22:48 2007/06/01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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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영 간사.
나는 그 사람을 복상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기숙영 간사님은 98년도에 복상에 쓴 내 글에 대한 반론을 썼고 나는 그에 대한 재반론을 쓴 적이 있었다. 그 이후에 지강유철 전도사님의 제안으로 복상 독자모임을 하게 되었고 처음 모임 공지에 기숙영 간사님과 내가 지강유철 전도사님 댁으로 찾아갔다. 그렇게 기숙영 간사님과는 처음 만나게 되었다. 기숙영 간사님은 처음 나를 만나서는 내 글에 대한 좋은 말들을 해 주셨다. 사실 나는 기분은 좋았으나 당시에 나는 글을 많이 써보지 않은 터라 인사치레이거니 하며 그냥 흘려 들었다.

그 이후로 담임 목사직 세습 문제로 복상도 뜨거웠고 독자 모임도 제법 많은 숫자가 모였었다. 독자 모임을 하는 동안 자주는 아니었지만 나는 기숙영 간사와 몇몇 지인과 친해져서 몇 번 정도 따로 만나서 함께 놀기도 했다. 당시 기숙영 간사님은 사랑의교회에서 선교부 간사로 섬기고 있었고 복상독자모임을 하던 시기에 연애와 결혼을 해서 한 번은 그녀의 신혼집에서 모임을 갖기도 했었다. 사실 자주 만났다거나 이야기를 많이 한 편은 아니지만 내게 기숙영 간사님은 청년 시절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겐 각별한 생각이 드는 분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다. 내가 학부 학생 때에 기숙영 간사님을 만났고, 다행히 그 분은 나를 좋은 후배로 본 것 같았다. 하루는 모임을 끝나고 나가는 참이었는데 그 분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그러고는 주먹을 내게 내밀면서 "꼭 주고 싶으니 그냥 받아. 책 사서 많이 읽고 훌륭한 청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내 손에 돈을 쥐어 주었다. (액수는 정확히 기억나질 않는다. 하지만 학생인 나로서는 큰 돈이었다.) 나는 극구 말렸으나 결국은 그 돈을 받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표현하면 사람들은 오바라고 여기겠지만, 나는 그 때 나에 대해 참 많이 생각했다. 마치 정말 무가치해보이는 내게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그 이해할 수 없는 은혜처럼 그녀의 호의도 그렇게 느껴졌다. 내 생각에 기숙영 간사님이 그 당시에 무슨 그런 돈의 여유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복학 시절에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나보다 더 여유 없이 사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였고 나는 기숙영 간사님이 굳이 내게 그런 '행동'을 한 것에 대해 큰 무게감을 느꼈다. 물론 나는 왜 그렇게 이 일에 큰 의미를 두는지 안다. 그 시기의 나를, 내 마음 속을, 내 내면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그녀에게 부끄러웠다.

난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복상을 위시한 교계를 기웃거리고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책도 읽고 공부도 해왔고 또한 지금은 직장 생활을 하느라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배운 것들을 삶에 적용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글로든 행동으로든 무언가 큰 짐을 진 사람처럼 노력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난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에 있어서 기숙영 간사님의 행동에 기인한 영향이 내 안에는 참 크다는 사실을. 잘난 척하기 좋아했던 나의 철없던 그 시절에, 나를 자신보다 낫게 여기고 내게 애정을 갖고 나에게 기대감을 가졌던 선배로서의 기숙영 간사님에 대한 자리가 내 안에는 참 크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로 인해 내겐 은혜를 입은 사람이 갚아야 할 빚이 있다고 느끼는 그 정서가 심장에 박혀 있다.

이후로 나는 기숙영 간사님의 소식들을 간간이 접했다. 반갑기는 하지만 소식을 들으면 갑자기 할 이야기가 별로 없어서 그렇게 넘기다가 연락이 뜸해진 지가 꽤 오래 되었다. (사실 내 인맥들이 다 그렇다. 물리적으로 점점 멀어져가고 있고 나는 그것을 담담히 받아 들이고 있다. 아니 사실, 요즘은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가 목표, 성취, 이름값, 영향력, 리더십과 같은 것들에 참 많이도 치중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은 어땠을까. 내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오랜 시간동안 그의 주변을 맴돌던 제자들이 생각난다. 예수님이 죽기 전까지 그의 의중을 몰랐던, 아니 아예 관심이 없었던 제자들과 그들을 사랑한 예수. 인간에게 자신을 내어준 예수는 도대체 어떤 분일까 하는 생각. 나이가 들수록 더 그 무게감이 커지고 있다.

때때로 나는 내 글에 호감을 갖는 사람들을 만난다. 모든 이들이 다 내 글에 공감하는 것은 아닐테지만 혹여 내 글에 도움을 받은 이들이 있다면 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사실은 기숙영 간사라고. 부족하나마 내 손에서 쓰여진 글은 그와  같은 선배들이 베푼 후배 사랑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은 사모님이 되었고, 그 때는 숙영 누님이라고도 불렀는데 역시 간사님이 가장 익숙하다.
2007/05/21 19:05 2007/05/21 1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