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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 (2): 캠퍼스 보고서 (2003. 3.)

/김용주


<변화된 캠퍼스 전경>

아 직도 가끔 생각나는 건 복학을 한 첫 주의 캠퍼스에서 받은 충격이다. 수강신청 시에 신청서를 써서 과사무실에 제출하던 과거와는 달리, 전산실에서 학번과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각 수업을 조회하여 그 과목의 학수번호를 입력하여 신청하게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전에 학수번호 검색을 이미 마친 상태로 왔고, 나는 한참동안 과목들을 검색한 후에 신청 버튼을 눌러야만 했고 그 사이 대부분의 인기있는 과목은 이미 정원이 다 차버리기 일쑤였다.

수업 첫 날, 나는 정말 별천지에 온 것 같았다. 수업 당일에 교제까지 알아서 챙겨온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수업 자료는 웹 페이지에 링크를 시켜놓았는데 PDF 파일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둥, 숙제는 교제의 뒤에 첨부된 소프트웨어를 컴퓨터에 설치하여 프로그램을 돌린 후에 생성된 파일을 언제까지 칠판에 공지된 ftp주소에 올려 놓으라는 둥, 텀프로젝트(Term-Project)는 언제까지인데 코딩은 C++이나 자바로 하고, 발표자료는 파워포인트로 하라는 둥, 이런 저런 수업소개를 하는 교수의 말을 들으며, 나는 마치 외계인을 만난 것 같은 낯선 느낌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식의 수업진행이 보편화되었지만, 90년대 중반에 학교를 다니다가 공백기간을 거쳐 다시 돌아온 캠퍼스에서의 학업과정이 당시에 내게는 그렇게 낯설기만 했다.

공강시간마다 지나다니는 복도에는 직접 손으로 쓴 대자보와 동문회 소식지들 대신에 깔끔한 디자인과 색상으로 포장된 학기 중 인턴사원을 모집한다는 대기업의 홍보물과 토플, 토익 같은 어학 특강 공지로 매워져 있었고, 도서관에는 고시 준비에 필요한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자리들로 가득했다.

예전과는 달리 수업을 들어가자 각 학과마다 전과생과 편입생들의 수가 늘어나 있었다. 학과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평균 연령도 높아진 편이며 이런 학생들의 경우, 캠퍼스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노련함이 돋보일 때가 많았다. 학과는 대부분 학부로 변화되었고, 한 학부 당 평균 인원 수가 100명 이상이 되면서 선후배간의 친밀함도 줄어들었다.


<캠퍼스 시험 문화 보고서>

캠 퍼스 생활을 하면서 나는 전과는 다른 몇 가지의 점들을 발견했는데, 그것 중의 하나는 시험이었다. 나는 처음 학교에 들어가서는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과에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수강신청을 한 후에 전공 중에 자신있는 한 과목씩을 맡아서 그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그것을 20-30분 정도 다른 학생들에게 설명해주고 중요한 부분을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그런 모임의 장점은 아무리 모임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자기가 공부한 과목은 높은 학점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대부분 학생들은 도서관이나 집에서 시험 준비를 하거나 때로는 동아리 방이나 과방에서 그룹별로 모여서 함께 공부를 하는 일이 많았다.

복학 후부터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시험문화도 변화했다. 요즘 학생들은 지속적인 그룹별 활동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지속적인 스터디보다는 단회적인 시험에 잘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한 면에서, 시험을 칠 때 실력 검증보다는 정보의 ‘선점(先占)’에 더 큰 에너지를 쏟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학생들은 시험 전에 해당 교수의 연구실에서 주로 중요한 정보들을 얻는 것으로 시험준비를 시작한다.

소개팅 이나 술자리를 통해 연구실의 조교들과 친분을 쌓는 일도 많고, 시험기간에는 조교들이 그런 식으로 친해진 학생들에게 평소 교수가 자주 출제하는 문제나 출제 방식에 대한 것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물론 이런 정보들을 가진 노련한 학생들이 무식하게 책 한 권을 다 읽은 학생들보다 시험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시험 기간에는 어쩔 수 없이 학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에 앞서 누가 시험문제를 출제하는가 하는 문제와 그에 대한 정보를 누가 먼저, 그리고 주변에 알리지 않고 얻는가가 시험의 변별력을 높이기까지 한다. 과장되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나도 고민 끝에 그런 흐름에 합류했다. 더 이상 스터디 모임은 유지되기 힘들다고 판단했고, 일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어렵게 얻은 시험관련 소스들을 주변 친구들에게 오픈하는 방법을 택했다! 나의 목적은 그런 식의 자료들을 가진 소수가 그 과목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숙지한 학생들보다 높은 점수가 나오지 않도록 정보전에서의 변별력을 줄이는 데에 있었다. 초반에는 좋은 변화들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소스를 공개하는 나에게서 정작 중요한 정보들이 멀어지는 일이 생겼다. 전문용어로 ‘왕따’가 되었다고나 할까.


<캠퍼스 ‘보고서 문화’ 보고서>

나 는 학부에 있을 때, 스탠리 그랜츠와 같은 복음주의권 저자의 영향을 받고있던 터라 되도록이면 신앙과 학문을 연결시킬 수 있는 과목을 주로 선택했고, 보고서는 그런 관점에서 썼다. 보통 중간이나 기말 보고서의 경우 20일에서 한달 정도가 소요되었고, 분량은 A4용지 20장 내외 정도를 썼다. 물론 내가 제출한 보고서는 한 번도 최고점수를 받아본 일이 없었다. 보고서 자체가 부족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종교적 시각을 드러내는 글은 논리 이전에 평가절하되기 일쑤였고 레퍼런스에 기독서적이 포함되는 것도 학문적 신뢰도를 낮추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나는 항상 그런 평가에 오기가 생겨서 강사가 요구하는 수준의 참고서적과 더불어 소위 복음주의권에서 관련 연구가 어느 정도나 진척되었는지 함께 공부를 병행했었다. 물론, 결과는 항상 내게 실망감을 가져다 줄 때가 많았다. 돌아보면 한 과목당 함께 읽은 책은 6-8권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보고서도 내가 선호했던 ‘텍스트 기반’의 작성 스타일에서 ‘하이퍼텍스트 기반’으로 달라졌다. 더 이상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다. 보고서도 이제는 정보전(情報戰)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에서 구글(google)과 같은 전문 검색 사이트를 참조하는 물론이고, 해당 과목에 대한 보고서를 공유하는 전문 사이트들도 즐비하다. 회원가입절차를 거치면 전공과 교양 과목에 따라 분류된 대로 해당 보고서에 대한 검색이 가능하다. 정확히 일치하는 주제는 물론, 운이 좋은 경우에는 해당 교수가 높게 평가했던 바로 ‘그’ 보고서까지 조회가 가능한 경우도 있다.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소스 파일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잘 찾아낸 후에 Copy & Paste 작업을 거쳐 조금만 편집하면 훌륭한 보고서가 된다. 문제는, 그 분야에 대해 꾸준히 텍스트를 읽고 나름대로 한계를 느껴가면서 작성한 보고서보다 전자가 훨씬 양이나 질적으로 우수한 경우가 많다. 때때로 교수들도 공공연하게 잘 편집한 ‘짜집기 보고서’에도 좋은 점수를 부여하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물론 개중에는 이런 식의 보고서를 받기 싫어하는 교수들이 직접 손으로 쓰는 것을 고집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전통적인 학업방식을 고수하는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뒤쳐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러한 하이퍼텍스트 기반의 보고서 작성에 어느 정도 익숙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보고서를 학점에서 일정한 퍼센티지를 차지하고 있는 숙제 정도로 생각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수많은 복제된 보고서를 양산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은 수강신청 때부터 공부해보고 싶던 분야를 찾기 보다는 취업 준비와 고시 준비로 바쁜 자신의 시간을 감안하여 취득하기 수월한 과목을 정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과목의 보고서들은 그 내용에 맞는 컨텐츠를 찾아서 적시에 제출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수 업을 듣는 학생에서 수업을 가르치는 교육조교가 된 내 위치에서, 나는 되도록이면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결국 얻게 될 지식은 무엇인지, 그것이 장기적으로 이 과목을 이해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를 되돌아보도록 권면하려고 노력한다. 결국 이 모든 문제의 해결은 기본적 동기의 점검일 수 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캠퍼스에서 깊이있게 학문을 대하는 자세가 절실하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선교단체 기독대학생의 또다른 학업 문화 보고서>

선 교단체의 학생들은 정확하게 일반 학생들의 세계관에 역행한다. 물론 기독학생들도 이중적인 잣대가 생기게 되긴 하지만 일단 원론적으로는 정반대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의 학생회의 배경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생들은 기독공동체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친밀한 유대관계를 쌓아가며 수련회를 통해 기독교의 기본적인 영성훈련과 공동체성을 습득함으로써 상당한 부분을 공급받게 된다. 예전처럼 동문회가 캠퍼스 문화의 큰 영역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 공동체는 어떤 면에서는 캠퍼스에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데 큰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이들이 캠퍼스를, 그리고 학업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들은 캠퍼스를 전도의 대상이자 영적 전쟁터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학업보다는 공동체를 견고히 하기 위한 일들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어 앞서 설명했던 캠퍼스 문화권에서는 멀어지게 되며, 점차 폐쇄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리잡아 간다.

나는 공대에서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3학년 때에는 정말 바빴다. 바쁜 일정들 때문에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매주 전공과목은 과제들이 쏟아졌고, 학업과 공동체 자체 모임, 기연과 복상 독자모임으로 정신이 없었다. 결국 때로는 팀 프로젝트를 하는 경우에는 팀에 속한 친구들의 도움을 받게 될 일들이 생기기도 했다. 사실, 선교단체의 리더들에겐 이런 일이 다반사이다. 내가 아는 소위 공동체에서 인정받고 탁월하다는 리더들은 학과에서는 아웃사이더거나 학업을 등한시하는 학생으로 각인된 경우가 더러 있었다.

물론, 그런 학생들은 고민과 갈등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신자의 ‘고난’이라 여기고, 학업을 하나님 앞에 포기해야 할 자신의 ‘이기적인 무엇’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다른 리더들은 지금 함께 기도회를 하고 하나님을 애타게 부르짖고 있는데, 내가 시험기간이라고 더 중요한 기도모임을 뒤로한 채 공부를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내가 시험공부를 포기하더라도 저들의 기도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의무이자 기쁨이 아니겠는가? 매 순간마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기독학생들은 캠퍼스에서 무능력한 존재로, 그리고 이원론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시험(test)기간에 학생들을 시험(temptation)하는 선교단체들의 무리한 모임 일정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 주변에는 그런 친구들이 상당히 있었다. 모임에서 나눔을 하면, 시험 전날 공부를 할까 하는 유혹이 있었지만 결국은 리더모임과 아침 기도회에 참석해서 기도를 했더니 마음이 편안해지더라는 식의 간증을 하는 학생들이 실제로 많이 있다. 물론 그런 대부분의 선교단체 리더급 학생들이 자신의 학과에서 주변인일 확률이 크고 그런 경우에 일반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캠퍼스 문화의 주체로 설 역량은 그만큼 부족하게 된다. 나에게도 갈등의 시간들이 있었다.

새내기 때 장학생이었던 나는 왜곡된 신앙과 ‘헌신의 대가’로 1년 만에는 권총을 차보기도 했다. 신앙이 어릴 때는 내가 목회적 소명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대부분의 기독학생이 고민할 법한 고민을 했었으며 삶의 우선순위가 내가 속한 선교단체모임, 연합모임, 학업, 가정의 순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각인되기 일쑤였다. 세계관 공부를 하고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에 대한 논의를 접하고, 제임스 사이어나 폴 스티븐스와 같은 저자들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난 ‘다른 방식’으로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캠퍼스에 내가 존재하게 된 일차적인 목적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 대한 탐구를 보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수행하기 위한, 가시적이고 명백한 형태의 부르심이라고 결론지었다. 신앙이란 이름으로 내 학문적 가벼움을 합리화하고, 학문의 도피처로 기독 공동체 생활에 더 열성적으로 헌신하는 것이 내 신앙을 더 깊고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더 구분된 존재로, 더 나를 세상에 편입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가면서 생기는 내적 불편함을 일소하기 위한 방어기재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힘들었지만 내가 속한 기독모임들을 끝까지 함께 참여하면서 수업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학점포기제라는 것이 있어서 힘이 들 때는 취약한 과목을 자르고 싶은 충동이 한 주에도 몇 번이나 들었다. 평소에 공부만 하여 그야말로 ‘일취월장’하는 친구들의 실력 앞에 매번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마침내 둘 사이의 벽이 깨어지다!>

개 인적인 경험이 곁들여진 긴 이야기의 마지막이다. 캠퍼스라는 학문의 장에는 두 부류의 학생들이 공존하고 있다. 한 쪽에는 학문의 깊이보다는 일시적인 평가결과에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극단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그런 전략적인 대응을 비난하고 더불어 학문의 길마저 적정선에서 포기하기로 결단한 기독 학생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기독 선교단체의 ‘독특한’ 문화가 적어도 4년 동안은 유효한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효율적으로 잘 운영이 되는 것 같아 보인다. 문제는 4년 후반에 시작된다.

여 기에서 선교단체 학생들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그간 잘 성장해온 기독학생들은 이미 사회에 진출할 적응력이 키워지지 않은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4년간 학업 전선에서 1차적 부르심을 잘 피해 다닌 열매를 거둘 때가 된 셈이다. 그간 내가 지켜본 공동체에 헌신했던 리더들은 두 갈래로 나뉘곤 했다. 전임사역과 역회심(易回心)이 그것이다.

항상 선교단체의 행사만을 신앙적인 것으로 여기는 데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몇 일의 기도 끝에 전임사역이 자신의 부르심이란 확신을 가진다. 이들에게 결핍된 것은 생활영성이며, 현대 사회와 문화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 능력의 부재다. 내 생각으로는 두 번째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이들은 역회심을 하는 부류이다. 선교단체 학생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 중의 하나는 학부시절 뒤돌아보지 않고 공동체에 헌신한 대가로 하나님이 자신의 진로를 보장해 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이다. 헌신은 대가가 없을 때 헌신이다. 그렇지 않고 서로 다른 층위의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면 그건 일종의 거래라고 볼 수 있다.

몇몇 기독학생들은 예루살렘 입성을 앞둔 야고보와 요한처럼 무의식 중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채권자로 만들어간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세상적인 것들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단지, 현실 세계의 요구들을 모르고도 살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런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은 졸업 직후이다. 당장에 취직이 안되면 조금씩 마음 속에 하나님을 향한 원망들이 생긴다. 캠퍼스에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모든 것을 바쳤는데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든 탓이다.

대학을 학문과 지성의 장으로 보지 않던 두 극단에서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보내지는 쪽은 헌신된 기독학생들이다. 주변의 친구들은 이미 자신이 알던, “금방이라도 지옥불에 빠져들 것 같던” 불신자가 아니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외국인 기업에 취업하기도 하고 자동차를 몰고 나타나기도 한다.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카드를 꺼내서 결제를 하는 불신자 친구 앞에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물론 상당수의 학생들은 이 어려움 앞에서 신앙이 견고해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고, 새로운 영성을 획득하는 수확을 얻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학생들은 회의와 좌절의 시간을 거쳐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그것을 어리석다 여기는 안타까운 일들도 생기기 마련이다(이 문제는 다음 연재에서 주로 다루도록 하겠다).

나는 정말 기독학생들에게 권면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이런 4년간의 흐름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야 힘들어하고 고민하며 정작 세상에 뿌리 내릴 수 있는 영역을 스스로 구속시키지 말자는 것이다. 난 이들의 구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깊은 묵상과 공동체성으로 단련된 이들의 신앙을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세상에서 전혀 발붙일 자리가 없도록 방치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한계가 있다. 나를 돌아보더라도 정말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지만 우등생으로 졸업하지는 못했다. 대신에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학점과. 학업에 관련된 작은 상을 받았다. 난 그것에 만족한다. 기독학생운동이란 이름 아래 제한되었던 많은 일들로 인해 학업에도 적잖은 부정적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나는 나보다 더 공부에 헌신되고 전략적으로 학점을 받으려 했던 학생들을 이길 수 없었다. 그건 기도와 공동체성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난 그들과 같은 학업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해야 했다. 나의 신앙적 양심으로 판단하기에 기독대학생들이 캠퍼스에 들어온 특혜를 부여 받았다면 그 특혜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2003/03/01 23:09 2003/03/01 2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