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복음과상황

용주 : 일단 청부론, 청빈론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깨끗한 부자는 가능한가, 크리스찬은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시작해 볼까요.


동언 : 질문이 영 맘에 들지 않는데요. (웃음)


상국 : 부자와 깨끗함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깨끗한 부자’와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는 서로 정의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만.
 

용 주 : CBS에서 있었던 청부론 관련 토론을 보면서 느낀건데, 가난과 부에 대해 다른 용례로 쓰이는 말들을 주고 받으면서 방향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논리적으로 강한 김목사님이 토론의 주도권을 쥐게 된 거죠. 토론회 이야기는 차후에 더 하기로 하구요. 서로가 생각하는 부와 가난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봐요. 물론, 그러면 청부론, 청빈론 사이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들은 해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구요.
 

상국 : 단순히 돈이 많이 있을 수는 있을 거 같아요.
 

용주 : 원론적으로는 돈이 많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상국 : 축재과정을 무시한다면.. 돈이 많은 것을 문제삼고 싶진 않은데요.
 

용주 : 그러면 책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해보도록 하지요. 김동호 목사님이 “부와 가난은 은사다”라고 하시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상국 : 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난이 은사같진 않아요. 자발적 가난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은사라고 표현할 수 있을 지 모르겠는데 그냥 가난은 은사로 취급될 수 없는 문제로 보여지는데요.
 

동언 : 부와 가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말인가요?
 

용 주 : 김동호 목사님은 가난과 부가 은사라는 논리를 방언을 예로 드시더군요. 방언은 은사인데 나는 방언을 받고 싶었는데 하나님이 안 주시더라. 방언은 받는 사람도 있고 못받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은사인 거다. 크리스찬으로 부를 얻는 사람도 있고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중요한 건 부가 축복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순복음교회의 이른바 “삼박자 구원론”을 의식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구요. CBS에서 그 문제를 놓고 토론도 하셨잖아요. 그리고 가난에 대해서는 가난하게 사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것도 은사이기 때문에 기독인 모두가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동언 : 저는 가난하게 살게된 게 목적의식적으로 청빈하고 검소하고 수도사적인 삶을 살겠다고 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열심히 살아도 마이너스인 사람이 많은 게 현실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상 국 : 깨끗한 부자라는 걸 쓰시게 된 것은 상황적 맥락이 아닐까요? 부자를 옹호하기 위해보다는 한국교회 상황에서 성도들이 부자되기를 좋아하고, 돈을 번다는 것이 인기가 있는 것이기에,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돈을 벌 수 있고 쓸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으로 쓰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언 :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길 수 있는 욕망에 대해서는 일단 긍정하고 보는 게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이상적이라 하더라도 성경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상국 : 그러면 다 못 입고 못 사는 걸 원하시는가, 하나님이 우리가 잘 되길 원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고생해서 가난하게 살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기초인 것 같아요.
 

용 주 : 동의하는 부분도 있는데요. <깨끗한 부자>에는 김목사님의 개인적인 예화들이 꽤 있거든요. 김목사님 개인적으로는 금전 사용의 바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책에서 가난이 은사다라고 말한 부분에는 문제의 소지가 많다고 생각해요. 물론 여기에서는 가난이란 말을 구분지을 필요가 있구요. 저는 자신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데 근검절약하는 삶을 사는, 이른 바 “청빈”은 개인의 인격적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가난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잖아요. 실제로 김목사님이 가난을 은사라고 표현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하면, 치료비가 없어서 병원을 못 가서 불치의 병이 아님에도 죽게 된 부모 혹은 자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심한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분들이 주변에 많은 게 현실이구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은사라고 김목사님이 표현하신 것이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현실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의 신앙적인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는 상황을 인정하겠다는 것이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봐요. 자본주의 사회,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것이 우리가 노력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해져 있는 체제로 인정해야 하니까 자연히 가진 자의 윤리적 행동 지침으로 책이 흘러가는 것이지요.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최소한 어느 정도 도우라는 식의.
 

동언 : 한국교회에 있어서는 교회성도 중에 돈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있더라도 담임목사님이 모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런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할 것 같은데..
 

용 주 : 그럴 수도 있죠. 아무튼 그래서 전 가난을 좀 구분 지었으면 좋겠어요. 청빈과 구별되는 가난은 구조적이고 현실적인 사회적 재난이라고 생각해요.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오는 상황적 재난이라는 거죠. 은사가 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김목사님의 자기 고백에서 드러나는데요. 저는 그것이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김목사님은 당신의 입으로 자신은 무난하게 목회했고, 새 교회를 개척하면서도 재정적 문제가 별로 없었지만 떳떳하고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사일 뿐이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저는 그것은 김 목사님이 선택하신 일이라고 봐요. 김목사님이 만약에 수도권에 교회가 넘쳐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골로 가서 목회를 하셨다면 그런 부가 주어지지 않았겠죠. 자신의 여건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부는 은사가 될 수 없다는 거죠. 은사는 주권적인 것이어야 하니까요.
 

상 국 : 전 두 책의 오해의 소지를 좀 줄였으면 하는 생각이거든요. 두 분의 공통점은 극단적 금욕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잖아요. 김교수님의 책도 그렇고 극단적 금욕주의는 기독교적이지 않다고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제 생각에 두 분의 차이는 김목사님은 부자들과 함께 목회를 하시는 분이고, 김교수님은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분이라는 것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두 분 모두 부가 쌓여서 필요 이상으로 향락하고 사치하는 부는 틀렸다라고 말하고 있구요. 오히려 필요한 만큼만 갖고 나머지는 나누어줘야 한다는 관점이라는 거죠.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통하는 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초반 동기 문제는 명확하게 차이가 있는데 실제 방법론상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 보이고. 김목사님은 내 부는 정당하다라고 안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예화나 세부항목들을 보면 사치, 향락하는 부자를 길러낼 것 같진 않잖아요. 동기에 대해서는 이만큼 떼었으면 만족한다, 라는 것이 문제가 될 순 있다고 봐요. 하지만, 부자가 돼서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두 분이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동언 : 제가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그런데, 김영봉 교수님은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인이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가요?
 

용 주 : 저는 기독인이 부자가 되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앞서서 부자에 대한 개념도 구분을 지어야 오해의 소지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부자를 소득이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 소유가 많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로 나눌 수 있다고 봐요. 그런 경우에 고지론적인 의미에서의 부자는 가능해요. 기 독인으로서 기업의 사장이나 회장이 될 수 있겠지요.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것 자체로 정죄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몰론, 과정을 봐야하겠지요. 그리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부의 축적과정이 깨끗하다는 게 문제의 소지가 많긴 해도 원론적으로 소득은 많을 수 있다고 가정하자는 거지요. 반면 소유가 많은 기독인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에요. 김목사님 책에서 소유지향적 인간과 존재지향적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부자가 존재지향적일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소득이 높은 사람이 존재지향적일 순 있겠지만 소유가 많은 사람은 이미 소유지향적인 사람이라고 봐야한다는 거죠. 저는 원론적으로는 기독인이 소유가 많다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김영봉 교수님의 책과 김동호 목사님의 책을 서로 비교를 좀 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데요. 두 분의 텍스트 자체는 분명 다른 부분이 존재하지만 컨텍스트에서는 만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텍스트 자체로 본다면 김목사님은 지침서 정도의 가벼운 책인 반면, 김교수님은 좀 구체적인 학술서의 분위기가 나요. 저는 김목사님이 저축의 문제나, 원로목사제도에 반대하는 부분, 노후에 대해 목회자들의 예와 그에 대한 주장에는 대체로 동의해요. 책에도 나오지만 한경직 목사님이 깨끗한 빈손이 되실 수 있었던 건 교회가 그만한 대우를 해 주었기 때문이잖아요. 목회자들에게 노후에 교회에서 생활을 책임져 주는, 그런 것들을 바라지 말라는 이야기나 한국 교회의 전반적 행태인 기복신앙을 의식하여 부가 복이 아니라고 말한 부분은 좋게 생각한다는 거죠. 반면에 동의할 수 없는 내용도 있어요. 이를테면, 78쪽에 쓰여있는 ‘성경은 헌금과 구제가 기독인으로서의 최소요구’라는 부분이 그렇구요. 80쪽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수입의 1/10은 십일조로, 1/10은 구제로 내고 나면 나머지 돈에 대해서는 깨끗한 자기 소유이니까 자유하라는 부분 말이지요. 책에서 김목사님은 사모님과 자신이 가난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절제가 몸에 베여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이러한 말은 아주 위험한 생각이에요.
 

동 언 : 한 80만원이 소득인 사람에게 8만원은 헌금하고 8만원은 구제하고 나머지 64만원으로 살아라, 이렇게 적용해도 되는건가요? 1억 가진 사람에게 1천만원 헌금하고, 1천만원 구제하고 나머진 내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요.
 

상 국 : 실례를 김목사님에게 갖다 대면 그렇게 말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깨끗한 부자가 오해의 소지를 많이 가지고 있어요. 부자 아닌 사람이 오히려 감동적인 예화로 많이 나오는데, 부자 얘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 부분도 그렇고. 관심은 부자들에게 있다는 생각인데. 부자들은 정말 돈 쓰지 않잖아요, 사치하는데에만 쓰지 말고 적어도 이만큼은 이웃을 위해 써라, 고 말씀하신 것 같아요.
 

동언 : 저는 오히려 그 부분이 아쉽거든요. 김 목사님은 부자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인지..인식의 한계 아닌가 싶은데요.
 

상 국 : 계산법으로 보면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가 더 좋은 제안을 하는 것 같아요. 필요한 만큼을 쓰고 나머지는 나누는 데 써야 한다고 말하거든요. 가난한 사람에게는 어차피 생계비가 정해져 있으니 그 나머지는 이웃과 나눠야 한다는 계산법이 부자나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동언 : 두 책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계산을 하는지 궁금한데요. 그런 차이가 나는 건..
 

용 주 : <깨끗한 부자>에서 김목사님은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자기 소득의 1/7은 하나님의 것이고 나머지는 내 것으로 자유한 마음으로 써도 된다는 부분은 다분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구요. 그에 대해 김교수님은 자신의 책에서 청부론자들이 말한 1/7의 나머지 부분도 소유가 하나님임을 기억하고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되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에서 김교수님은 자신이 부양하고 있는 식구들의 한 달 생활비를 계산해서 결과적으로 자기 소득보다 마이너스인 사람은 오히려 채워줘야 한다고 제안하는데 이것이 더 성경적이라고 생각해요. 가령 동언형제 말처럼 수입이 50만원인데 할머니와 자녀들을 데리고 있는 사람이 십일조로 5만원, 구제헌금으로 5만원을 내고 나머지 40만원으로 식구를 부양해야 하는가, 혹은 두 부부가 사는데 월급이 1000만원인 사람이 200만원을 헌금하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자유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기잖아요. 김교수님은 청부론의 이런 문제들을 걸러내신 것 같아요. 김목사님의 예화들을 볼 때 김목사님이 부자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쓰신 것 같진 않지만 규장 책들에서 보이는 명료한 지침들은 오히려 더 많은 의혹과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 그리고 좀 벗어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깨끗한 부자>를 보면서 느낀 점은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중상층 이상이라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이었어요. 한국 기독교의 주류는 최소 중산층 이상이고 그런 이유로 부자의 윤리 지침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김교수님은 청부론에 대한 비판적이고 보완적인 입지에서 책을 쓰셨기 때문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시간적인 차이도 감안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구요.

동언 : 김동호 목사님을 보면서는 현실적으로 가진 자의 종교가 된 마당에 어떤 최선의 방법이 있겠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한데, 그렇다 하더라도 성경이 지향하는 바를 이상적으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원색적으로 선지자처럼 선포해야 되지 않은가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저는.
 

태 종 : 김목사님의 문제의식은, 대부분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재물관리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고려하여 본다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거 아닌가요? 사실 교회 입장에서는 십일조 헌금조차 내기 힘들어하는 게 현실이니까..
 

상국 : 그렇죠. 부자가 오히려 십일조 안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동 언 : 그런데 그렇게 사는 사람이 과연 ‘깨끗한 부자’를 보고 회심을 할까요? 기본적인 내용을 가지고 책으로 쓰고도 꽤 팔린 것 같은데요. 저는 이 책이 김목사님에 대한 감탄사로 귀결되는 한국 교회의 상황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상 국 : 저도 좀 그런 부분이 있었는데요. <깨끗한 부자>에서 불편했던 점은, 불공평한 사회를 인정하고 오히려 그것을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었어요. 사회구조의 문제를 개인적 자선 등으로 덮어 놓겠다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 말이죠.
 

용주 : 김동호 목사님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교회상은 이상적인 미국사회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상 국 : 그런 느낌이 강하죠. 가난의 문제를 자선으로 해결 할 수는 없잖아요. 이런 식의 해결책은 점점 더 부의 불균형이 심해져서 사회적인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획일적인 공산주의를 싫어한다면 미리미리 부의 재분배에 힘쓰고 가난한 사람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반면에,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를 보면서는 초반부에 우린 다 가난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균형을 잡아가시는 것 같더라구요. 돈 벌기 위해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서, 회사를 운영한다 라는… 기본적인 사람들의 부에 대한 관심, 부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부를 가지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이웃에게 쓰고 어떻게 환원할 것인가라는 관심을 가지고 부를 운용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거든요. 김영봉 교수님의 접근이 사회를 좀 더 아름답게 만들고, 기독교인으로서 실천해야 하는 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용 주 : 청부론 관련해서 CBS 토론회가 있었는데 어떻게 보셨나요? 관련된 이야기도 같이 해보지요. 제가 본 느낌을 말하자면, “깨끗한 부자”라는 말도 구분을 좀 지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깨끗함’을 이야기할 때 저는 개인 윤리와 기업 윤리로 나누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토론회에서 김목사님과 김남호 사장님이 이야기하는 부자는 기업윤리에 관한 이야기로 보였거든요. 저는 인격적 완성과 이웃사랑을 목표로 삼고 있는 개인과 이윤을 내는 것이 목표인 기업은 분명 구분 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얼마는 사회에 환원하고, 얼마는 신앙공동체에 환언한다는 식의 논리는 기업윤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제는 이것을 개인윤리로 생각하면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생기더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깨끗함, 공정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리가 있다고 봐요. 김교수님이 자신의 책에서 언급했듯이 현대 사회에서 내가 공정한 경쟁에서 노력하여 얻은 소유에 대해 전적으로 공정하고 깨끗한 과정을 거쳤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거죠.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은 사람은 하루 8시간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도 하루 20시간을 공부해도 대학에 떨어지는 머리 나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머리 좋은 사람에게 그 경쟁은 공정했고 그가 번 돈에 얼마를 환원하면 깨끗한 삶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는 거죠. 나아가서 백인사회에서 성장한 사람과 흑인사회에서 성장한 사람, 선진국에서 자란 사람과 아프리카 오지에서 자란 사람, 부유한 가정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과 가난해서 교육은 고사하고 병원도 못 가서 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공정한 경쟁으로 부를 획득할 수는 없는 것이고, 단순히 그가 번 돈의 과정이 공정하다는 것으로 그 돈이 순수하게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동 언 : 저는 성서의 기본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과연 이웃실천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서 당연히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8/10이 내 것이야 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고 주어진 것이라는 고백이 되어지는 신앙이 되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교회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럼 사회주의 하자는 거냐는 공격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용 주 : 저는 그런 식의 대응에 아주 짜증나요. 부의 재분배를 얘기하면 무조건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로 몰아세우는 논리 말이죠. 부의 재분배나 기회 균등을 얘기하면 “빨갱이”로 몰아 세우는 그런 방식에는 환멸감이 들어요. 토론하지 말자는 얘기잖아요.
 

동언 : 근데 사실 기독교가 좀 사회주의적이지 않나..
 

상국 : 그렇죠, 그런 색채가 있다고 봐요.
 

동언 : 적어도 자본주의에서 가질 수 있는 소유욕에 대해서는 부자청년의 비유에서처럼 근심하며 돌아서는 청년에 대해 김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가 궁금하군요.
 

용 주 : 그 내용이 두 책 모두에 나오는데요. 김교수님은 김동호 목사님이 언급한 욥의 경우는 성경을 통틀어 부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몇 안 되는 사례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오히려 대부분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부자가 바늘귀를 통과할 수 없고 제자가 되려면 자신의 것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라는 요구가 성경 전반적인 메시지라고 말하고 있어요. 반면 김동호 목사님의 경우에는 청빈론자들이 인용하는 부자 청년의 비유가 돈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논지를 펴시더군요. 그 청년의 중심이 물질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라고 한 것일 뿐 다른 이에게는 재산 말고 명예나 자녀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동 언 : 저는 자본주의 사회인 현대가 오히려 그런 맥락에서 소위 중산층, 기독 중산층이 욕망에 가장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금전적 소유욕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 부자 청년은 단순히 2000년 전의 특정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 전반적으로 적용할 만한 문제라는 생각이구요. 많은 기독인들이 말로는 절제하면서 산다지만 결국은 부자청년의 근심을 늘 안고 사는 것이 아닐까요?

용 주 : 토론회에서는 김동호 목사님이 논리적으로 잘 말씀하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준비를 충실히 하셨다는 느낌이 든 반면, 고세훈 교수님은, 토론 자체로만 본다면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토론 과정에서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말씀도 많이 하였고 그로 인해 뜬구름 잡는 식의 거시적인 이야기로 흘러가다가 김동호 목사님에게 인신공격적인 표현을 하실 때는 마음이 정말 안 좋았습니다. 김목사님 입장에서 보더라도 <깨끗한 부자>에서 쓰였던 바르지 못한 표현들이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들은 절충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그런 작업이 토론회에서 잘 되지 않은 것 같아요.
 

동언 : 김동호 목사님 책의 원래 제목은 <신앙과 부>였다는 말도 있던데요.
 

상국 : 규장에서 제목을 바꾸는 경우가 있어요. 아주 선정적으로. (모두 웃음)
 

용 주 : 저는 고 교수님이 부가 동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개인의 영적 생활에 영향을 준다는 논지에는 동의해요. 하지만, 김목사님이 세부적인 원칙들이나, 기준을 정해서 그것을 지켜가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을 가리켜서 율법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에요. 저는 실제로 김목사님이 동안 교회에서 그런 정관을 지속적인 토론과 연구를 거쳐서 만들어 가는 것에 큰 호응을 하고 있거든요. 그거 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고 교수님 생각처럼 절대적인 잣대로 낮아짐을 이야기한다면, 동적인 영성에 대한 주의환기가 된다 할지라도 기준 자체가 없다면 개선 여부를 판단할 잣대가 없고 그것은 오히려 상황을 고착화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고 봐요.
 

상 국 : 대부분의 교회는 일단 기복신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고세훈 교수님 쪽이 김동호 목사님 쪽의 좀 깨끗해 보자는 주장을, 너희도 똑같다라는 주장으로 몰아 붙인 상황이 됐어요. 지금 상황에서라면 같이 가는 게 현명하다고 보이는데. 기복신앙을 꺾은 다음에 우리가 이것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 보자고 나오는 편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구요. 그렇자 않더라도 넌 틀리고 나는 옳다는 측면이 아니라 당신이 말하는 부분은 이런 단점이 있다는 등의 개선점을 찾아가며 같이 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았나,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교회현실을 반영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자인 김영봉 교수나 비판적 서평을 썼던 김종희 대표가 나왔다면 좀더 좋은 토론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용 주 : 동의해요. 저는 사실 토론을 보면서는 김동호 목사님이 <깨끗한 부자>보다는 <깨끗한 교회>란 책을 전병욱 목사님이 교회 성공신화적인 얘기를 하듯 쓰셨으면 아주 훌륭한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모두 웃음) 물론 그랬으면 규장에서 책이 나오진 않았겠지만.
 

동언 : 자기 교회얘기는 좀 그렇지 않을까요? 단순하진 않을 것 같은데.
 

용 주 :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토론회에서 김남호 사장님과 김동호 목사님은 우리가 가난해진 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시던데 그거 잘못 짚었다고 생각해요. 특히, 김남호 사장님은 대뜸 “그러면 얼마를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라거나 “부자가 가난해진다고 가난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그 분은 가난해짐, 청빈한 것을 마치 기업의 회장이 사직을 하고 청소부를 해야 하는가, 뭐 그렇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여기에서 부의 개념에 오해가 생긴 거 같아요. 사장이 소득이 많을 수는 있지만, 소유가 많은 게 문제인 거죠. 이 분은 기업 윤리와 개인 윤리를 동일시 하는데 개인은 적법한 경쟁을 통한 이윤추구가 목적이 아니라는 걸 잊은 거죠.
 

상 국 : 사실 저는 토론회를 보면서 내심 “바늘귀”가 의심스러웠어요. 부자들 거 다 뺏어서 혁명하자는 얘긴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책을 보니까 아니더라구요. 책 내용은 단순히 가난하자는 얘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해요.
동언 : 덕분에 규장 책만 더 많이 팔렸을 것 같은데요. 뭐라고 썼길래 하는 마음으로..
 

용주 : 저는 규장 책은 그렇지 않아도 잘 팔린다고 볼 때 일반 성도들이 <깨끗한 부자>에 뭐라고 써있길래 하며 책을 비판적으로 보게 되는 현상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동언 : 토론하면서 드는 생각은 김목사님이 한국 교회에 대해 그렇게 느끼고 쓰신 거라면 교회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 교회의 윤리가..
 

상국 : 김목사님의 윤리보다 떨어진다고 봐야 해요. 전반적인 한국 교회의 현실이..
 

용 주 : 이제 대충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은데요. 종합적으로 얘길 하자면, 김목사님의 책에는 오해의 소지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CBS 토론회에 기대를 많이 했던 거거든요. 토론회 초반에 김동호 목사님이 용어의 정의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건 맞는 말이에요. 용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쓰면서 논리적인 비약이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토론 자체가 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고세훈 교수님이 인신공격적인 발언을 한 것 같고. 저는 여기에서는 좀 걱정이 되거든요. 실제로 김동호 목사님이 계신 숭의 교회는 한국교회로 봐서는 정말 파격적인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요. 그러한 과정에서 김동호 목사님은 내외로 힘들어 하신다고 들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토론회에서는 서로 절충하고 협력하는 계기가 되어도 모자랄 판국에 어느 정도 실질적인 개혁의 모양새를 만들어 가는 김목사님을 마치 기복신앙이나 삼박자 구원론과 도매급으로 넘기면서 적으로 만드는 태도는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일로 상처를 받으신 것 같구요. 특별히 고 교수님의 경우 개혁연대 계신 분인데, 그렇잖아도 개혁연대가 강경한 느낌을 준다는 교계 보수적 기독인들의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좀더 사려 깊게 행동하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동 언 : ‘깨끗한 부자’에 대한 비판적 글이나 토론이 나오는 것은 긍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용주 형제 말처럼 김 목사님의 책에 대한 비판적 읽기를 통해 얻는 것이 더 많을 수 있을 것 같구요. 오히려 안타까운 것은, 김목사님이 하시는 개혁의 작업들이 있는데 그것을 충실히 감당하기도 벅찬 상황에 비판에 일일이 대응하려고 토론에 나와서 오히려 손해 본 것은 아닌지 하는 안쓰러움도 생기네요.**


 

** 복상 서울 독자모임은 앞으로 잡지의 모니터링과 병행하여 관심 분야와 이슈가 되는 분야에 관련된 토론을 모임에 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복상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복음과상황> 서울 독자토론모임: 청부론 vs 청빈론 토론

정리: 임정은 자매/ 사진: 권경우 형제

 
2003/01/01 08:17 2003/01/01 08:17
Posted
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단상(Short Notes)
2002. 10. 26. ~ 11. 28.


달리기

어릴 적에 가끔 반복적인 꿈을 꾸곤 했다.

난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진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초등학교 내내 난 달리기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고 살았다.

가끔 그게 심해지면 달리기를 하는 꿈을 꾸곤 했다.
꿈 속에서는 모두 4명의 아이들이 서있는데, 선생님이 깃발을 올리면
일제히 달리기를 시작했다.

난...
깃발이 올라가면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힘껏 발돋움을 하고 달려나가는데
항상 난 다른 3명과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처음 그 꿈을 꾸었을 때는,
너무 당혹스러워서 믿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꿈을 꾸면서는,
'아냐... 내가 맞아, 내가 맞게 달리는 거야...'
하며 달리다가 중도에 포기해 버리곤 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그 꿈을 꾸었을 때는
난 발돋움을 다른 방향으로 했다가
다른 3명이 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나는 방향을 바꾸어 그들을 쫓아서 달렸다.

따라 잡을 순 없었지만,
난 어리석게 자신에게 '내가 맞아...내가 맞아'라며
달리는 대신, 방향을 바꾸어 그들에게 돌아서서
그 애들과 경쟁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그 꿈 이후로 이젠,
달리기 하는 꿈을 꾸지 않는다.


postscript) 두려움, 부끄러움이 스스로의 높은 울타리를 만들곤 한다.

그 안에서 관념적인 자기 확신을 아무리 반복해도 소용없다. 현실은 직시해야만 하는 대상이다.

 

 

 

소원..

빛은 어둠을 밝히지 못하고,
사랑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나니,
내 평생 사는 동안에도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임을 알았으나,


이후로 다시는..
내게 사랑이 없기를 원합니다.

이후로 다시는..
이러한 감정과, 이러한 생각과, 이러한 결단과,
이러한 절망 가운데에서 희망을 보려는 어리석음이
내 안에서 영원히 소멸되길 원합니다.
내 평생에,

영원히...
영원히...


postscript) 원래 사는 게 다 그렇지...

 

 

 

낙엽...혹은, 박제된 죽음의 찬양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무성하던 잎들에 공급하던 양분을 그치고,
그렇게 단절된 줄기 사이로 말라져 간 잎사귀들은,
끝내.. 붉게 혹은 노랗게 찬란한 색으로 빛을 바래며 생을 마감한다.

 

인간은,
생존의 몸부림 속에 사라져가는 생명의 절규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잎들을 가져가서
기나긴 겨울 내내 박제된 죽음을 찬양한다.

 

세상의 또다른 존재가
말라 비틀어진 우리 자신을 가져다가 박제하여
기나긴 시간동안 그 바랜 색과 모양을 감상하며 찬양한다 생각해 본다.
그것은 심한 악취미일 따름이다.


postscript) 요즘 단풍을 보며 드는 생각...

 

 

 

잘난 티, 잘난 척..

잘난 척 하는 것은,
자기가 습득하지 않은 능력을
마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욕구이다.

잘난 티를 내는 것은,
자기의 노력과 수고로 인해 습득된 능력을
필요 이상으로 타인에게 나타내려는 욕구이다.

전자는 기만적이고,
후자는 유아적이다.


postscript) 난 때때로 알면서도 마치 몰랐던 것처럼,

전자와 후자 사이에서 불안한 외줄타기를 할 때가 있다..

 

 

 

More than walk..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이란 책의 후반에
그 분의 그림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나는 걷고 싶다..."

사실 난 당혹스러웠다. 만일 내가 40년의 감옥 생활에 처해 있었다면
...난 걷는 것 이상의 것들을 소망했을 것이다.

난 뛰고 싶다. 난 날고 싶다.
난 자유롭고 싶다. 난... 난...

감옥을 상상하며 수많은 말들이 입가에 머무르지만
난 그 분의 한 마디에 내 모든 상상의 나래를 접는다.

"나는 걷고 싶다..."

자유의 박탈, 그리고 그 속에서 그의 간절한 바램은 마음껏 걷는 것.
그것은 그 분의 현실이자 진정한 그 분의 이상이었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으로 내가 내 마음을 추스리고
힘을 얻는 게 얼마나 속되고 어리석은 행동인지를 알지만
나는 그 분의 한 마디를 떠올리며 내 처지를 반성한다.

아직 나에겐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내가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을 뛰어갈 수 있지 않은가.
나에게 주어진 조건들이 더 노력할 수 있는 여건이지 않은가.

나에겐 걷는 것을 소망하는 것 이상의 축복이 있지 않은가.
그것에 대한 감사로 내 일그러진 삶을 다시 돌아봐야 하지 않은가.

철저한 절망이 내게 임하기 전까지 난 나다움과 나의 생명을
삶 속에서 표현해야 하지 않겠는가.


postscript) 존재 자체가 우주의 흩날리는 먼지가 되어 사라질 때까지..

난 삶 속에서 당신의 형상을 드러내겠습니다.

 

 

 

엿...

시험에 붙으라고
엿을 준다.

정말 엿 같은 세상이다.


postscript) 엿은 잘 녹지 않다가 높은 온도에서 녹아 다른 물질에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떼어 내려고 붙잡고 힘을 쓰면 깨져 버리기도 한다.

지나친 고착화 현상.. 그런 점에서 엿과 세상은 닮았다.

 

 

 

so what?

때론 신앙인들은
자신의 성숙을 목적으로
종교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신앙 생활을 영위하면서
자신의 인격이 다듬어지고
삶 속에서 평안을 회복하고
종국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난 묻는다.
'그래서 어쨌다고?'

인격의 성숙은,
구별되는 본질의 필수 조건이자
그 본질이 다듬어지는 과정이자
본질을 얻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따름이다.

그 본질은 사랑이며,
신앙은 우리가 수도사로 남길 원치 않는다.
고행은 하나의 과정일 따름이다.


postscript) 달라이라마가 열반보다 윤회가 낫다고 말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다시.. 병원으로.

오늘..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병실에서 유리병을 집어 던진 후
3개월 동안 병원을 떠나 있었다.

의사는 내가 전보다 더 나빠졌다고 했다.
피 검사와 주사를 처방해줬다.
처음부터 다시 진찰을 하려는 듯 했다.
답답함이 싫어서 자유로운 생활이 그리워서
병원을 떠나왔는데.. 막연한 회상.

난 굳은 몸으로 의사 앞에 앉아서
처방을 기다리고 있다.

환자복을 받았다.
획일화된 무늬, 하얀바탕에 같은 냄새가 나는 옷.
어떤 규범이 존재하진 않지만
간호사의 말과 그의 눈빛 그리고 제스츄어를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새
환자들은 같은 말투, 같은 걸음, 같은 생각으로 굳어져 버리고 만다.

오늘..
난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postscript) 졸립다.. 눈을 좀 붙여야겠다.

 

 

 

인간이라는 기계..

A: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B: 아니 지난 번에 산 H8088모델 있잖아, 그게 말썽이야..

A:그래? 광고에선 그게 신의 창조물이라고까지 하잖아.
B: 그래 나도 그 광고보고 샀지, "최악의 환경에서도 최고의 성능을 보여줍니다!"

A: 안 그런가 보군!
B: 처음엔 기계답지 않게 표정에 생기가 넘치고, 항상 일을 할 때마다 최적화된 방법들을 고안하는 내부 method들이 성능이 좋아 솔직히 나도 놀랐지. 근데 웬 걸..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기계가 멈춰버리더라고.

A: 예비 동력전달 장치가 있을 거 아냐?
B: 그렇지. 근데 이 녀석의 합리화 알고리즘이란 게 문제인 거 같아. best practice를 발휘하지 못할 때마다
내부적으로 호출하는 method인 거 같은데, 작업할 당시의 자기 주변 환경의 log file을 만들어서 저장하는데, 나중에 열어보면..

A: 흠.. 그러니까 최고 성능을 보이지 못했던 이유를 기록으로 남기는 거군.
B: 맞아. 근데 H모델이 아니라 M1000으로 같은 환경에서 작업을 시켰더니 아주 잘 하더라고. bug인 듯 한데 주 기억장치에서 log file을 생성할 때마다 자기의 best practice를 낮춰서 저장하더라고. 기계는 그 성능이 자기 것이라고 믿는 거지.

A: 하하. 이런... 마치 생명체처럼 외부에서 상처를 받을 때마다 두려움으로 자신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이겠군.
B: 말도 마. 이 기계는 웃기지도 않아.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주변의 환경과 기계 내부적인 정서가 더 중요하다고 내게 연설까지 해.

A: 하하하. 차라리 A/S 받거나 교환을 하지 그래?
B: 그러려고 작정했었지. 그랬더니 이 기계가 자기는 가치있는 존재니 인격적으로 대해 달라고 하더군.
그리고 자기는 나를 사랑으로 대했는데, 내가 자기를 성능과 효용으로 평가했다고 몰아 세우더군. 어찌나 당혹스럽던지..

A: 하긴 말이 되네. 그래선 안되는 일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B: 근데 이 기계가 내 뒷통수를 치더군. 오늘 아침에 history관련 자료들을 백업시키다보니 나 모르게 매매를 위한 웹 사이트에 자신의 가격과 위치, trade 조건들을 올려 놓았더군. 사랑이 어쩌니 해서 잔뜩 미안한 마음 갖게 해놓고는, 참 나원.
하도 기가 차서, 요즘 프로그래밍 공부한 실력으로 이 기계의 사랑이라는 method를 찾아 보았더니, 프로세스가 이렇더군. 필요한 존재가 자기를 거부하려 할 때, temp folder에서 생성되었다가 환경이 바뀌면 간단히 Recycle Bin(garbage can)으로 가게 짜여져 있더군. 하여간 누가 만들었는지 참 정교하게 만들어 놨지 뭐야.
망할 놈의 기계같으니.

A: 그러게 Human 제품보다는 Machine 제품이 낫다니까.

 

postscript) 저주받은 정교함.. 그게 인간이다.

 

 

 

난..

난,
말을 해야 할 때 침묵했고
침묵해야 할 때 말하였다.

난,
다가가야 할 때 머물러 있었고,
머물러 있어야 할 때 다가갔다.

난,
죽었을 때 살아있다고 생각했으며,
살아있을 때 죽었다고 생각했다.

난,
내 삶을 비난하고
내 어리석음을 욕하고
내 부주의함에 침 뱉으며
내 영혼에 깊은 상처를 선물했다.

이제 난,
내 삶을 다시 조율한다.
나로 인해 헝클어지지 않을..


postscript) 시간은 돌릴 수 없다.

받아들이려고 노력할 때마다 무한 루프를 돌다가 다운되는 컴퓨터 같은 나.

 

 

 

요리와 삶

<요리>
어릴 땐 요리하는 걸 좋아했다.

주말엔 어머니와 누나를 앞에 두고
내가 만들 요리의 메뉴를 작성해서
두 사람이 주문하기를 기다리곤 했다.

메뉴는 뭐 이런 식이었다.

1. 매운 떡볶이
2. 간장 떡볶이
3. 치즈 떡볶이

주로 내가 하는 음식은 볶음밥과 떡볶이, 돈까스, 샌드위치, 샐러드..
이런 종류였다.

요리는 간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간을 맞추기 위해 쓰이는 재료에 맞는 양념이 필요한 법이다.

아마추어인 나는 이것 저것 넣는다.
소금도 넣어보고 간장도 넣어보고.
때론 버터와 치즈.. 퓨전이란 이름 아래 적당히 간을 맞추려고
이것 넣었다가 그 맛이 강해지면 다시 다른 것들을 넣고.

결국 나온 음식은 간은 맞으나, 맛을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되고 만다.

<삶>
나름대로는 삶을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간 내가 어떻게 달려왔는지
돌아보면 어지럽기만 한 나의 삶..
때론 이렇게 했다가, 때론 저렇게도 해 봤다가
힘들면 돌아서고 안맞으면 나와 구분짓고
상처받으면 무너지기도 하고, 무너진 삶들을 다시 주워 담고
남은 조각으로 더 강해 보이려고 색칠을 하기도 하고..

되고싶던 내 모습과 변해버린 내 모습.
그 간격을 느끼면 느낄수록 안타까워하며
더 나은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럴 수록 난 현재의 모습도, 되고 싶던 이상적 모습도 아닌
내가 원치 않던 또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정-반-합으로 더 나은 결론이 도출될 것 같던 나는
그렇게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결국엔 열성인자로 둘러싸인 뮤턴트가 되고 만다.


postscript) 함박 웃음 지으며 그들에게 보여줬던 메뉴판.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나온 이름모를 음식. 나의 삶과 닮았다.

 

 

 

울고 싶은 날..

때로 울고 싶은 날이 있다.
날씨가 화창한 것도 그렇다고 비가 오는 날도 아닌,
적당하게 흐린 그런 날에
마음이 우울하면 어디엔가 내 감정의 찌꺼기들을
쏟아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기곤 한다.

집에서는 큰 소리로 울지 못하기 때문에
방문을 꼭 닫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한없이 울곤 했다.

울고 싶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집에 들어와 방문을 닫고
베개 속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쏟으려는 순간..

"삼촌, 뭐해?"

(난.. 살면서 이런 때가 가장 당혹스럽다.)

"으응? 음.. 그냥.. 베개랑 놀아."

"이야, 베개랑 놀면 재밌겠다. 선아두!"

"..."


postscript) 나이가 들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가령, 애들 앞에서 냉수 마시기 같은 것..

 

 

 

시월에 눈내리는 마을..

하늘엔 예쁜 풍선들이 즐비하고..
세트장은 마법이 걸린 듯 눈을 흐려놓고
저마다의 사연들을 마음 속에 담은 채..

'10월에 눈이 오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저마다의 얼굴엔 동화 속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그렇게 간절한 기설제(祈雪祭)는 시작되었다.

사랑을 기다린다는 조규찬은 나와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번 기설제의 컨셉은 그랬다. 사랑을 기다리는 조규찬,
사랑을 잃어버린 이소라, 사랑을 하고있는 이문세..)

첫곡은 "권태기에 즈음하여"..
두 번째로 부른 노랜 "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깨물었다"..
자기를 배신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노래 중간엔 그런 가사가 나왔다.
"지금부터 너를 개라고 불러주겠어.."

흥이 가시고 말았다. 매해마다 사람들은 동화같은 바램을
가지고 제사를 지냈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괴팍한 그의 곡들에 의아함을 느낀다.
사실, 현실은 냉정한데 말이다. 사람들은 현실보다 솜사탕을 좋아한다.
현실은 아프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자위책이 필요하다.


postscript) 시월에 눈내리는 마을과 한국 교회는 닮은 점이 있다.

2002/12/28 19:08 2002/12/28 19:08
Posted
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단상(Short Notes)
2002. 12. 2. ~ 12. 17.


일몰과 황혼..그리고 묵상

일몰(日沒)의 시간이 찾아들고
어느 덧 황혼(黃昏)이 깃들다.

나른한 마음으로 눈부신 색감(色感)을,
차분하게 선 채로 그 온기를 느낀다.

이쯤에서 나의 생이 마감되길
그래서 기나긴 잠을 자고
그 깊은 잠을 통하여
지난 시간들을 망각하고
되찾은 평안으로 새로운 생이 시작되길.

오후의 황혼을 묵상하며
나는 오늘도 간절히 기도한다.

 

postscript) 아침이 되면 난 또다시 '다른' 모습으로 아무일 없었던 듯..

그렇게 전의(戰意)를 불태우다.

 

 

 

storehouse of my heart..

며칠 째 계속되는 정리.
후일에 다시 열었을 때 알아보기 쉽도록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난 이런 이런 사람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어딜 먼저 보겠지.
그럼 이건 여기에 두는게 낫겠지?'
'아니야 이건 이 자리에 있는 게 더 나아..'

한참을 여기저기 자리를 정리해둔다.
걸레질을 마치고 다 닦은 걸레를 들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잠시 그 안을 멍하니 살펴본다.
차창에 비치는 햇살을 맞으며.

'휴.. 이제 다 끝났다.'

자물쇠를 문고리에 채운다.
"철컥!"

이제 내 마음의 기나긴 수면이 시작된다.

 

 

 

heartache

여러 개의 가닥으로 이루어진 실다발을 만든다.
심장에는 블랙 홀과 같은 큰 구멍이 있고

그 주위의 신경에다 이 실다발을 연결한다.
그 중의 몇 다발은 뇌의 신경에도 연결한다.

그리고 나서,
심장 속으로 빨려들고 있는 홀 안쪽에서
그 실다발을 잡아당긴다.

그때 느껴지는 통증.
그 깊은 곳으로부터 전해지는 아픔.

...
그것이 "heartache"이다.


postscript) 가끔 알 수 없는 통증이 오면 설명이 필요하다.

 

 

 

거짓말..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왜 나는..
반복되는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왜 나는..
매 순간 그 분의 십자가를 애써 외면하는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왜 나는..
예수의 하향적인 삶 속에 나를 던지지 못하는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왜 나는..
마땅히 있어야 할 매일의 회개가 없는가.

나는 하나니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왜 나는..
복음을 멸시하는가.

왜 나는..
하나님을 거스르며
매 순간 세상의 법도에 순종하며
매 순간 나의 평안과 안락을 위하며
하늘의 부르심과 땅의 탄원을 외면하며
곧은 모가지를 꼿꼿이 세우면서도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칭함을 즐기는가.

오늘도 내 입에서 울려퍼지는 거짓이여,
매 순간 마음이 아닌 신경에서 반사적으로
아무런 고민없이도 부르짖을 수 있는 말이여.

'아멘..'


postscript) 갈수록 커져가는 경건의 껍데기들.. 역겨운 삶이다.

 

 

 

크리스마스 묵상 1

해가 지면 어두워지는 자연의 섭리를 깨고
자연에서 인공을 축출하여
네온사인으로 거리를 뒤덮고

Santa라는 인물의 빨간 이미지를 상품화하며
온정(溫情)의 탈을 쓰고
도시인들에게 맘몬적 능력을 과시한다.

크리스마스의 "크리스"라는 발음 뒤편으로
크라이스트(그리스도)는 주격을 상실하고
사람들은 그런 방법으로 외로움을 잊으려는 듯
거리는 온통 축제 분위기다.

광기..

죄인들의 광기가 춤추는 그 날에,
번제로 드리기 위해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는가.

그 의미를 알고도 모든 것을 잊고
12월의 맘몬신에게 춤추는 사람들 때문에
버릴 수 없는 것을 버려야 했던 고통을 묵상해 보았는가.


postscript) 이해할 수 없는.. 용납할 수 없는 사랑과 구원..

 

 

 

얼음땡 1

어릴 때 남자애들 끼리는 야구, 축구를 했다.
여자애들이랑 가끔 놀게 되면 했던 게임이 "얼음땡"이다.

술래가 있고 나머지 애들은 술래에게 잡히면 안된다.
잡히기 일보직전에 "얼음!"이라고 말하면 움직이면 안된다.
이때는 술래가 잡아도 죽지 않으나 다른 친구가 와서 "땡!"이라고
말하며 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다. 이것이 얼음땡..


요즘 갑자기 얼음땡 생각이 났다.

내 감정을 추스리기 힘들 때
혹은 굳게 닫아놓은 마음의 문에 틈이 생길 때
애써 높게 쳐올리던 울타리가
한 순간에 허물어짐을 느낄 때

술래가 기어이 내 앞에 왔을 때의 조바심.
당혹스러움, 견디기 힘든 느낌이 오버랩 되면서
내 머리 속에 절실히 떠오르는 단어는 "얼음!"이었다.

내가 원치 않는 것들이
일순간에 모조리
차갑고 단단하게 굳어버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차갑게 굳어버리기에는
여전히 내 심장 속에서 펌프질 하며 솟는
감정의 열기는 강하기만 하다.

얼음..
얼음..
제발 얼음..
이젠 제발 얼음..

 

postscript) 눈물을 흘려도 뺨의 느낌은 뜨겁다. 빌어먹을..

 

 

 

얼음땡 2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그 날은 어쩌다 보니 함께 얼음땡을 하게 되었다.

술래는 뛰고 아이들은 도망을 다녔다.
술래가 그 아이를 쫓게 되자 그 아이는 도망치다가
이윽고 "얼음!"이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도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땡!"을 해주지 않았다.

어처구니 없는 얼음땡의 룰에 의해
그 아이는 우스운 포즈로 굳어진 상태에 있어야 했다.

이후로 그 아이는 얼음땡을 하지 않았다.

 

postscript) 거부 당하기 전에 거부하는 것.

상처받기 전에 상처 주는 것. 그건 약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유일한 선택이다.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다. 자기 보호본능은 사람의 유전자 깊은 곳에 각인되어

있어서 쉽사리 변화하지 않는다. 나도, 그리고 당신도..

 

 

 

팀 버튼의 "가위손" 1

창백한 얼굴에
날카로운 가위가 손가락인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 주다가
그녀의 몸에 상처를 낸다.
긴장하면 원치 않게 손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야만
그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비극적인 운명을
그는 묵묵히 받아들인다.

눈이 내리지 않는 마을에서
얼음을 가위질하여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영화의 화면은 온통 차갑고 어둡고 날카롭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간절함을 불러 일으키는

슬픈 사랑 이야기...

 

postscript) 소중한 사람에게 다가서려 할 때마다, 날카롭게 갈린 손으로 찔러 상처를 줄 뿐이다.

 

 

 

계몽주의의 몰락

이성과 합리성. 계몽주의.
그 순진하기 짝이 없는 토대는 인간의 사악함이
교화시킨다고 해서 제거되지 않는다는 쓰디쓴 교훈을
가져다 주었다.

나의 선택은 나의 무지에 기인한 것이라고.
원래 나는 이기적인 게 아니라 어리석은 거라고.
벌거벗겨 놓으면 조소의 대상이 될
나의 내면을 나는 "멍청이 얼굴"의 가면과 옷으로
해결하려 했었다.

나의 삶의 여정. 나의 선택.
사실 몰랐던 게 아니다. 다 알고 있었다.
그건 나의 합리적 선택이자 내 본질적인 욕망의 이기(利己)였다.

무지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정교한 스토리. 프로세스. 히스토리...
받아 들여야 한다. 나의 내면의 더러움들을.


postscript) 누군가 그랬다. 10원에서 1원을 빼면 그게 구원이라고.

나도 구원이 필요하다. 이제 은행에서는 9원을 줄 수 없다.

 

 

 

팀 버튼의 "가위손" 2

신은...
완벽한 형태의 인간을 완성한 후에야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인간은...
이리저리 금속으로 끼워넣은
불완전한 형태의 생명체에
생기부터 불어넣고 작동이 되는지를
테스트하면서 자신의 형상을 완성시켜간다.

신의 창조물은 너무 완벽한
자신을 창조자와 동일시하며
세상을 자신의 이기심에 맞추려 애쓰지만

가위손은 중간단계의 창조물이라
창조자에게 부여받은 생명력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에 심한 제한을 받는다.

생명체는,
조금만 부족해도 비참해지고,
너무 완벽하면 변질된다.

 

postscript) 난, 팀 버튼이 좋다!

 

 

 

from E.

여기 숨어 있었군.
오래 버틴 것 같은데.
그래도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더군.

넌,
요즘 딴 사람 행세를 하고 있더군.
마치 수도사처럼..

근처에서 최근 몇 년간의
네 얘길 전해들었지.
너의 온유함과 고고함에 관하여.
힘들지 않았니.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오랫동안 다른 사람 행세를 하기가.
꽤 근질근질 했을텐데..

다시 뒤집어 주지.
예전의 너처럼
말하고 춤추고 행동하도록..

sincerely,
from Extrovert.

 

postscript) 난, MBTI가 싫다.

 

 

 

"죄송합니다.."

주일에는 보령에 다녀왔다. 교회개혁연대에서 담임직 목회세습
반대 침묵시위가 있다고 토요일 저녁에 연락이 왔다.

교회 문제로 시위에 나서게 되면 그 날은 하루종일 우울했다.
답은 간단치 않기 때문에. 답을 알아도 상처만 남는다.

광림교회에서 느꼈던 느낌은 없었다. 교역자의 세련된 액션도
없었고, 카메라를 피해 구타를 하고는 빠지는 깔끔한 전략도
없었다. 깍둑머리를 한 사내들이 뒤에서 부산히 눈동자를 굴리며
목사의 지시를 받던 그 현기증 나던 시위 때와는 달리, 이 곳은
300명 규모의 중소 교회로 14년간의 임기를 마친 목사가 은퇴와
함께 자신의 아들을 담임 목사로 임명하게 됐고, 반발한 몇몇
장로들과 성도들을 교회 밖으로 내친 것이었다.

목사를 교회의 머리로 생각하던 순진한 성도들의 신앙은 광신
으로 돌변했고, 세습반대를 주장하던 성도들은 교회에서 쫓겨나
은퇴예배를 드리지 못한 채 밖에 서서 세습반대 시위를 했다.
박득훈 목사님의 인도로 함께 교회를 위해 기도를 했고, 하나님이
바른 길을 인도하시도록 중보했다. 상처받은 성도들이 교회와
목사를 원망치 않도록 위로의 기도도 했다. 그리고 목사나 다른
교인 개개인을 미워하지 않도록 중보했다.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고, 홍보물을 나눠주다가 구석으로 끌려가
교회 사람들에게 멱살을 잡혔다. 그분들 하시는 말씀이,

"너 얼마받고 이 일을 하는 거야? 도대체 얼마를 받았어?"

"..."

교회에서 내침을 당한 교인들은 눈물로 기도했다. 난 그들만큼
절실하지 않다. 직장으로 진정서가 날아오는 것도 아니고, 집으로
협박전화가 걸려오지도 않는다. 길거리를 걸을 때 안전을 걱정할
일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 기도는 간절하지 않았다.


시위를 마치고 쫓겨난 교인들과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시위 내내
눈을 붉히시던 여자 집사님 한 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른 분
들은 모두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분은 달랐다. 울먹이시면서도 작지만 분명한 소리가 날
전율케 했다.

"죄송합니다.."


'이 분이 진짜다.' 순간 든 생각이었다. 이 분이 정말 이 교회의
몸된 성도라는 생각. 사랑없는 나머지는 울리는 꽹가리에 불과했다.
나 또한 교회 속의 꽹가리였다.

그렇다. 내 마음이 혼란스럽고 힘이 든 것은, 추운 날씨에 4시간
동안 피켓 시위를 했던 몸 때문도, 몸싸움으로 잡혔던 멱살 때문도
아니었다. 나를 증오의 눈으로 쳐다봤던 사람들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가족이기 때문이다. 보령의 한 구석에서 일어나는 이 고통도 결국은
교회라는 내 가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생각과 행동

생각없는 행동은
무능력하고

행동없는 생각은
무기력하다.

 

postscript) 많이 듣던 얘기, 압축해봤다..

2002/12/17 19:09 2002/12/17 19:09
Posted
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단상(Short Notes)

2002. 9. 30. ~ 10. 23.


Minority Mania

초등학교 때 다수결에 대해 처음 듣고는 참 좋은 방법이란 생각을 했었다.
나이가 들어 사춘기가 지나고는 아웃사이더가 참 멋있어 보였다.
대학을 다니던 무렵에는 소수(minority)의 항변에 불편한 마음이 조금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Minority Report>를 보았다. 3명의 예지자 중에 1명이
다른 미래를 보면 자동적으로 그 이미지는 삭제된다.

<Minority Support>..소수자의 항변을 돕기 위한 장치라고...그것이 내가
메울 자리라고 생각했다.

<Minority Mania>..
Mania는 골수 팬이어야 한다. 무슨 운동이든 대중화, 민중의 참여가 중요하다
는 생각이 변치 않음에도 난 Minority Mania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결국, 골수 팬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에 빠져들고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들여야 한다. 그러한 물리적, 정신적 노력이 특정한 분야의 깊이를 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Minority Mania는 결코 Majority로 묽어질 수 없다.
이미 백그라운드에 깔린 깊게 축적된 공감대를 주춧돌로 삼아 계속 올라가는 첨탑과
같기 때문이다.

난...
Minority Mania로 Minority Support를 하며 Minority의 Major화를 위해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아웃사이더를 인사이드로 끌어들이며 다수결을 참고하련다....
 


postscript) 난...조규찬이 좋다.



죽음

추석 연휴 이후에 내 주변에서 3명의 사람이 죽었다.
다 아버지뻘 되는 분들이었다.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힘든 세상 이제 떠난다고 평안히 잠드소서...라고 해야 하는가.

아님 물리적으로 기독교라는 안경을 쓰고서,
먼저 그 사람이 불신자이냐 신자이냐를 물어보고...
불신자이면 안타까워하고
신자이면 하늘로 올라간 것을 기뻐해야 하는가.

죽음은,
일그러진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렇기에 죽음은 "단절"이다.
이제껏 주변에 맺어져 있던 모든 관계와의 단절.
남은 자는 그리움에 사무칠 뿐이다.

 


postscript) 아픔은 아픔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을 속일 필요 없다.

 


나다움...그 독특함에 관해.

가을...
어느 정도 서늘한 날씨에 청명한 하늘...
그리고 적절한 습도가 내 주위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는 요즘..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런 기분이 날 들뜨게 만든다.
한 여름의 더위 속에 흐릿흐릿하던,
세상 속에 파묻힐 것 같은 현기증에서 벗어나...

이제는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가
내 머리 결을 스쳐가는 서늘한 바람 만큼이나 뚜렷함을 경험한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다움...나의 독특함...
나만이 구사할 수 있는 표현들과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들,
나만이 생각할 수 있는 그 독특한 사유방식들이 나를 설레게 만든다.

그리고 그 독특함으로 세상에 발길을 옮겨본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손가락의 지문 모양을 그 분의 예술적 감각으로 스케치해 가셨던 것처럼,
이제 그 지문의 하나하나를 소유한
나를 포함한 그 독특한 인격적 창조물들은

적절한 때가 오면,
태고부터 계획된 그 고유한 향기를 발산한다..


postscript) 이젠 더 이상 몸값을 올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너무 오래 입고 다녔다.

 



비욘드 퍼디션(beyond perdition)

그렇지...
모두들 퍼디션에 모여 있었다.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모두 이곳 너머로 보내놓고...
이젠 모두들 음악에 몸을 기댄 채, 안식의 술잔을 들이키고 있다.
난 카페에 들어설 때부터 심장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번 한 번만...'

나는 피리부는 소년처럼...
함박 웃음 지으며 그들에게 춤을 권한다.

가끔은 내 심장의 박동과 발의 스탭이 엇갈려
정신이 어지럽기도 하지만 난 그들과 미친 듯이 춤을 춘다.

사람들은...
흥겨운 음악과 춤에 정신을 빼앗기며 즐거워한다.


나는 피리부는 소년처럼...
사람들과 함께...


나는 피리부는 소년처럼...
사람들과 함께...
 

제발...나는 피리부는 소년처럼...
춤추는 사람들과 함께, 비욘드 퍼디션!


postscript)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야 한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다. 괜히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 것.


 


깨진 유리병..


아무리 아름다운 유리병도.
아무리 방 한 가운데에 두고 닦고 또 닦고.
그 안에 하루하루 담아둔 물건들이 가치가 있다 해도.

깨진 유리병은
그냥 유리 조각일 뿐이다.

다시 주워 담아도.
조각들을 아무리 조심스레 가져다 붙여도.

붙여진 유리조각들을 두고 유리병이라고 하지 않는다.
깨진 유리병은 그냥 유리 조각들일 뿐이다...


postscript) 헤어지면서 그 사람에게 했던 말...


 


바다

처음 바다에 갔었다. 가족과 함께.

바다에 대한 내 첫 느낌은 두려움과 설레임이었다.

두려운 건,
바다 바람과
가끔 내 키를 한참 넘어 보이는 파도였고,

설레임은,
바다의 한없이 푸르른 색감,
모래의 까칠까칠함,
그리고, 물 속에서 뛰놀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 때문이었다.

처음 바다에 들어갔을 때의 차가움.
파란색이었는데 손으로 담으면 투명해지는..
소금맛이 나는 물..

지금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키의 내가
마음껏 흥분에 도취되어 있을 때,
아버지보다 더 큰 키의 파도가 내 앞을 덮는 것을 알았다.

어느 순간엔가 난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신세가 되었다.
파도가 날 덮었다가 고스란히 뱉어낸 것이었다.

난 물침대 위에 누운 사람처럼..
바다로 떠내려 가고 있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난 말할 수 없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게.. 한참을 지나서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보이지 않게 되었고,

난 그제서야 소리쳤다..

'엄마...'

'아빠...'

난 소리쳤지만 들리지 않았다. 난 간절했지만 소리가 나질 않았다.

다시 돌아가려면 난 바다 속으로 빠져야 하는데,
내 발이 땅에 닿을 수 있을지, 혹시 영원히 발이 닿지 않아
바다 깊숙히 빠져들어 죽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난 소리칠 수도 없지만
몸을 움직여 균형을 잃고서 바다 깊숙한 곳으로 빠져들어가
영원히 숨쉴 수 없게 되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난 두려웠다.
벗어날 수 없다....


그 때 누군가가 떠있던 날 물 속으로 빠뜨렸다.
순간 난 놀랐지만, 견고하고 강한 팔이 날 붙잡고는 천천히
끌어올려 주었다. 난 지금도 그 감각을 잊을 수 없다.

그건 아버지의 팔이었다..


postscript) 바다는 세상, 나는 당신, 아버지는 나...



death of modernist..

<이성과 합리성..>

이제껏 나의 삶은,
설명되어질 수 있고, 통계적인 수치가 말해주는 것에
기반을 두어왔다.


<느낌과 감정..>

난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쓴 사람처럼
나에겐 모든 게 항상 희미하게만 보였고,
내가 본 그 형상을 새로 정의하고 규격화 하면서
그렇게 정리된 합리적인 감정의 틀에
갇힌 나는 또다시 가뭄에 갈라진 땅처럼.
갈증과 현기증을 느끼고 있었다.


<Neo in the "Matrix"..>

neo는 매트릭스 안에서 뭔가 희미한 감정을 발견한다.
곧 그는 매트릭스를 벗어나고 그는 매트릭스를 이해하게 되며..
결국에 그는 그것을 "느끼게" 된다.


<"line of despare"..>

쉐퍼는 키에르케고르가 합리성에서 비약했다고 비판했다.
그것이 <이성에서의 도피>에서 말한 "절망의 선".
합리성의 한계라고 말하는 게 옳았다.


<이성과 감정..>

이제껏 나는 "느낀다"는 표현을 써 본 일이 없다.
그렇게 분명하게 내 영혼에 메시지를 던졌던 일이 내겐 없었기 때문에.
난 항상 exact solution을 가진 게 아니라,
repeated fitting과 통계적 근사치만을 가진 모더니스트였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분명하게 "느낀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에게 둘러싼 모든 것들이 너무도 분명하게 다가온다.


<death of modernist..>

이제 더 이상 내 삶은
내가 인지하고 생각하고, 이해하여 구축한 시뮬레이션이 아니다.
난 여기가 어디인지 알 것 같다.
이젠 real life..

 

postscript)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바다2: Allegory

낚시를 갔다가 바다에 빠졌다.
방파제 위에서 미끄러졌는데 생각보다 바다가 깊었다.
난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이젠 몸무게가 제법 나가는 나이였다.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적어도 바닥은 내 키의 5배는 되는 것 같았다.
물 속으로 비치는 수많은 방파제 블럭들이 날 질리게 만들었다.

눈 앞이 아득해졌다...

순간..
난 내가 어린 나이지만,
나에겐 살아야하는 이유들이 너무나 명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기도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잠시였지만, 하나님은 내 가진 것을 쓰시리라 생각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어 심호흡을 크게 하고,
한 번 물 밑으로 내려갔다가
온 힘을 다해 바다물을 박차고 솟구쳤다.

떠오르는 몸을 방파제 벽에 붙이고
손을 쉴 새없이 움직이며
위로...위로 기어 올랐다.


Home, Sweet Home...

사랑하는 가족에게로 난 달려갔다..
 


postscript) 그래, 이제 마지막 날개 짓인 걸..

 

 


Rainbow-the sign of the covenant

무지개..

그것은 하나님께서 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멸하시거나 벌하시지 않겠다는 언약의 표징이다!

 

자신이 없을 때마다 무지개를 보며

난..

동일한 상처로

고통 받지 않을 수 있음을 확증한다..


 

 


병아리

노란 병아리,

조그마한 발로,

조심 조심 뛰어가다,

담 벼락의 끝에 다다르자 소리치다.

飛躍(비약)..

飛躍(비약)..


postscript) 병아리는 다 자란 후에도 날 수 없다. 그게 병아리의 운명이다..

2002/10/30 19:06 2002/10/30 19:06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도발적인 캠퍼스보기
[복음과상황] 도발적인 캠퍼스보기 (6): 캠퍼스 부흥은 영적 허구(SF)인가?

/김용주 


<캠퍼스 부흥에 대한 단상> 

대학교 2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교단체 간사님의 권유로 마틴 로이드존스(M. Lloyd-Jones)의 부흥 (생명의말씀사)을 처음 읽고, 몇 주 동안 부흥이라는 주제를 놓고 오랜 시간 들뜬 상태로 기도했던 기억이 있다. 그 책과 성령의 주권적 사역 (CLC)에서 로이드존스는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초월적인 사역인 부흥은, “진정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시기에 소망 없는 장소에서 하나님이 일으키신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 이후로도 오랜 동안 ‘부흥’이라는 주제는 내 머리 속을 맴돌았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한국의 교회와 선교단체는 부흥이라는 모토로 수많은 집회와 CCM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 시기부터 지금까지 캠퍼스 리더들과 사역자들 사이에 가장 흔한 복음주의적인 고백들은 이런 류이다.

“나는 실패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실패하지 않는다.”
“내가 쓰러진 그 시점이 하나님이 진정 주권적으로 일하시는 때이다.”
“내가 하는 모든 노력들은 무의미하다. 하나님이 채우실 때에만이 진정한 그 분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처음 부흥에 관한 신학적인 서적들을 읽으며 2차 대각성운동 시기 동안의 찰스 피니(Charles Finney)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를 접했을 때, 나 또한 위와 같은 고백들이 충분히 되돌아볼 만한 가치가 있음을 깊게 묵상한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국의 캠퍼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부흥이라는 주제와 그 방향성을 좀더 냉정하게 살펴본다면 캠퍼스에서 받아들여지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과 부흥의 원대한 열망은 그 의미가 어느 정도는 퇴색되는 경향이 있다.
 

<날개잃은 천사(?)>

실제로 많은 선교단체의 학생들은 처음 대학에 들어가서 선교단체를 통해서 수련회와 집회들을 가지면서 캠퍼스에 대한 원대한 꿈들을 품게 된다. 이들은 아직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열정이 가득하며 많은 가능성들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이다. 처음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캠퍼스에 존재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돌아보기도 하고, 기독학생의 연합문제와 학내의 문제들에 대해,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는 있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생각들을 가지고 때로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궁금해 하기도 하며 캠퍼스 안에서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변화시켜 가기를 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시기는 잠시이며, 곧 이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의 견고함에 놀라며, 점차 그 거대한 구조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함과 동시에 선교단체 활동과 전공공부 간의 시간활용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선교단체의 기존 사역자들은 대다수가 학내와 사회에 대한 참여적인 문제나 기독학생 연합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자신이 속해 있는 선교단체의 사역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모임에 헌신된 리더를 양육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선교단체 안에서 학생들이 복음주의적 마인드를 가진 전문인의 비전을 품는다거나, 혹은 연합과 사회참여적인 생각, 그리고 기독교적 지성을 개발하려는 시도들은 종종 부정적으로 치부되며, 결국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암묵적으로 ‘큐티와 기도생활 같은 개인경건훈련에 철저한가’,‘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모하고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가 뭔가 해내려는 불순한 동기가 있진 않은가’ 혹은 ‘한 사람을 전인격적으로 품을 수 없는데 무슨 사회참여냐’는 식의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기존의 캠퍼스에 편입된 이질적이며 가능성 있는 학생들은, 실제적 한계와 공동체 안의 부정적 분위기로 인해 총체적 복음의 한쪽 날개인 ‘사회참여’라는 이슈를 포기하게 되며, 심하게 말하면 복음주의 유산의 절반으로부터 ‘회심’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종종 그런 간증을 한다.

“이제까지 내가 뭔가를 하려고 노력했는데 하나님은 나를 꺾으셨습니다. 한 사람도 품지 못하고 멤버들을 전적으로 사랑하지도 못하는 내가 이제껏 뜬구름을 잡듯이 사회니 통일이니 하는 류의 이야기들만 하고 다녔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능력들을 부어주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분의 일하심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나는 캠퍼스 4년간 이런 간증을 하는 학생들을 무수하게 보아왔다. 물론 개인적인 상황과 그에 대한 차이로 인해 때로는 나에게 크게 감동적인 간증이 될 때도 있었지만, 그런 간증 이후에 이러한 ‘회심자들’의 삶을 돌아보면 난 많은 부분에 있어 큰 아쉬움이 생긴다.


<더 중요한 것>

한국의 복음주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독교적 유산은 말씀 선포이다.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이제까지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부흥을 기다리는 많은 ‘회심자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일하심, 그리고 성령으로 부어주심을 가장 강하게 ‘느끼는’ 때는, 각종 집회 때나 설교시간에 성경강해를 들을 때이다.

이들은 더 탁월한 강해, 더 탁월한 세미나에 목말라하며, 그런 집회에서 듣는 설교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느낌’으로 마음속에 달궈진 에너지를 이후에 있는 찬양 시간에 쏟아낸다. 결코 어느 락 가수의 콘서트 못지 않게 뜨거운 찬양시간을 통하여 이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며, 그렇게 한 한두 시간을 찬양을 하고 나서는 소그룹을 통해 예배시간에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했으며, 얼마나 뜨겁게 느꼈는지에 대한 나눔(sharing)을 하고 기도제목을 나누는 일련의 ‘끈끈한’ 교제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통성으로 기도한다.

이런 스타일의 모임이 일주일에 한두 번, 그리고 방학에 몇 번의 수련회를 통해 이뤄진다. 그리고 이런 예배 형태의 모임들을 유지하기 위한 또 다른 모임이 필요하다. 일단 모임날짜가 정해지면 그 모임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또 다시 예배의 형태로 준비모임을 가지며, 또한 강의를 듣고 도전 받은 내용으로 찬양하고, 또 모임을 이끄는 사람들 사이에 소그룹이 편성되며 또다시 그들 사이에 나눔을 갖는다. 그러한 가운데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들의 모든 에너지를 이 사역에 다 쏟아낸다.

이런 일련의 반복적인 예배 형태의 모임들을 부정적으로만 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각심을 가지고 직면해야 할 문제가 있지 않은가, 더 중요한 것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많은 부분들이 있지는 않은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박제(剝製)가 된 부흥>

99년에 언급했던 소위 ‘헨리 나우웬식 영성’은 캠퍼스에서도 그 여파가 여전하다. 나도 헨리 나우웬의 책을 좋아한다.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영성은 항상 나에게 잔잔한 감동과 경외감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 또한 버릴 수 없는데, 그것은 법정 스님의 책을 접할 때에도 비슷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내가 법정 스님이나 신영복 교수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얻는 효용 때문이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나란 존재는 감옥에서 힘겹게 몇십 년간을 복역한 적도 없고, 모든 소유를 버리고 산에서 기름 한 방울 없이 살아본 적도 없다. 더욱이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도 않았으며, 그 삶을 통해서 내가 대신 경험한 지식으로 내면을 좀더 풍성하게(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풍성해 보이게) 만들고, 저자들과 동일한 깨달음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만 있었을 뿐이다. 내가 꿈꾸던 부흥이 영적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당시 우연한 기회로 하게 된, 몇 개월간의 공장 막노동 생활을 통해서였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철저하게 불의했고, 내가 철저하게 겸손하지도 거룩하지도 선하지도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단순히 종교 문화 속에 있을 때에만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 단 몇 개월 만에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 전까지 내가 헌신된 그리스도의 사역이라고 칭하며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았다고 굳게 확신했던 일들은, 소그룹 멤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찬양인도를 ‘극적’으로 하며 기도회를 인도하는, 소위 아주 ‘영적인’ 일들이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그때까지 나는 모임 장소에서 걸레질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내 삶을 되돌아보관대, 내 삶은 ‘실제로는’ 전혀 영적이지 않았다. 나의 영성은 전혀 내 생활과 관련이 없음을 깨달은 셈이다. 선교단체에서 ‘보여지는’ 일들을 제외하면 나는 세속적 인간의 전형이었다. 게다가 나는 그때까지 전혀 내 신앙과 삶 사이의 괴리감을 깨닫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선교단체의 제자도 가운데 내가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함에 있어 철저하게 싸워야 할 상황이 전혀 강조되지 않아 왔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세상을 부정하고 엑소더스를 꿈꾸지만, 그 안에서 현실에 깊게 뿌리를 내린 채로, 치열하게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며 끊임없는 영성의 훈련들을 해나가는 것은 강조되지 않은 채 일확천금을 노리고 복권을 구입하듯이, 하나님이 어느 순간에 꾸준한 하루하루 생활의 성실함 없이도 자신을 완전하게 바꿔주실 것을 기대한다.

헨리 나우웬의 <제네시의 일기>나 <아담>과 같은 책을 통해, 그리고 내가 그간 겪은 일들을 통해, 나는 ‘영성’이라는 것이, 말씀을 읽고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는 것이 아무리 지속적이라고 해도, 그것이 현실과 우리의 기저가 되는 일상에 뿌리를 박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한 영성의 관념을 정리시켜주는 책들을 통해 느끼는 심정적 자위책(自慰策)으로서가 아닌,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푸대자루를 나르고 본드칠을 하며, 접시를 닦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 - 불신자이건 학교를 다니지 않았건 장애인이건 상관없이 - 과 지속적인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에 그들의 삶 속에 깊게 관여하고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을 온전하게 섬기는 삶을 살아보지 않는 한, 우리가 이야기하는 부흥과 영성은 영적 허구에 불과하며, 그것은 지적인 허영이자, 관념 속에 맴도는 섬김의 신기루에 불과하다.

가정의 변화를 원하지만, 가족들에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캠퍼스 복음화를 외치지만 과에서는 섬김보다는 아웃사이더의 삶에, 혹은 다른 학우들과 똑같이 경쟁하고 부정행위를 하며, 수업에도 충실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낮아짐의 설교는 몇 번씩 듣고 섬김을 주제로 한 수련회는 줄곳 다녀오지만, 정작 사회에서 가난과 고통으로 외면 당한 사람들의 사정과 현실은 모른 채로, 하향적 삶은 우리의 관념 속에서 맴돌다가는 이내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이러한 가운데 캠퍼스의 문제, 우리 나라의 문제, 세계적인 문제들은 더더욱 우리의 관심에서 사라져간다. 우리에게 부흥은 철저히 ‘박제’된 개념인 셈이다.

<실천의 장은 없는가>

“1970-80 년대 남미국가들은 좌파혁명에 시달리고 있었다. 각 국가들은 부정과 부패로 파산하기 시작했고,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혁명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캠퍼스 젊은이들마저도 무력혁명에 가담하거나 대부분 운동권 세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다. 무력혁명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도 총기를 소유하고 때로는 강의실까지 들어와 자신들의 혁명에 동참할 것을 강요하는 상황이니 교수들도 그들이 두려워 방관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다.

당시 대학 안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하고 있던 복음주의 학생들은 이러한 상황에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먼저 교수님을 찾아가 정식으로 학생들에게 진정한 해방을 가져다주는 복음을 전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그들은 강의실로 들어가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됐다. 학생들은 말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그룹을 만들어 빈민가로 찾아갔다. 당시 남미에서 혁명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정부의 부패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외면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학교 안에 알려지기 시작하자, 당시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 과격 무력운동권에 질려있던 학생들이 이 모임에 관심을 보였고, 곧 성경공부 모임은 크게 부흥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이 무력혁명권 학생들을 자극했다. 성경공부 모임 리더들은 테러의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복음을 전했다. 결국 한 리더의 약혼자인 자매가 테러로 죽임을 당하게 됐다.

이런 희생을 치른 결과 남미의 기독학생모임은 대학 안에서 점차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복음이 그들이 처한 가난과 부패라는 상황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남미의 학생운동은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고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대륙으로 바뀌었다.”
(한철호,“국경 없는 캠퍼스의 증인들”, IVF 격월간지 대학가 1999년 7월호에서)


이것은 당시 남미 기독학생운동의 간사였던 사무엘 에스코바(Samuel Escobar)의 이야기이다.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 의 저자인 로날드 사이더(Ronald Sider)는 <물 한모금, 생명의 떡> (이상 IVP)이란 그의 또다른 책에서 복음전도와 사회사역을 결합한 총체적인 선교현장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다. 나의 느낌이었을까. 사이더는 복음주의권에서도 그러한 사역이 ‘절실’하며, 또한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회심이후에 Prison Fellowship을 이끌고 있는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은 <이것이 교회다> (홍성사)에서 부흥을 통해 임한 하나님의 교회가 사회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는지에 대한 2년여간의 귀한 자료들에 감동을 더하는 대각성 운동의 신학적 살을 붙였다.

기독교 세계관이 한국에 보급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우리의 현장에서는 왜 부르짖는 부흥만큼의 열매가 없는 것인가. 물론 부끄럽게도 나 스스로가 문서사역을 통해서 변화가 된 많은 학생들이 집단적 행동을 해나갈 때에야 현장으로 뛰어들고 싶어하는 유사(pseudo) 복음주의자며 나와 같은 부류의 기독인이 많기 때문인 면도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 각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이 각성하고 실천의 장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일과 더불어, 진정 함께 해나가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이유도 규명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학복협에서 세미나가 있었고, 그곳에서 같은 분과 포럼이었던 이은창 간사(새벽이슬)가 이 문제에 대해 지적했던 부분은, 우리가 지적 허영에만 빠져있지 실제로 현장에 뛰어들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동의한다. 나 또한 그런 문제에 봉착해 있음을 안다. 하지만, 대부분 캠퍼스 선교단체의 경우, 그러한 현장 실천에 장애가 되는 것은 개인적인 죄성에 기인한 문제보다는 제자도에서 그것을 강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회심의 열매를 허구적인 영성에 기반을 두는 것이 문제이며, 그것은 현장에서 몸부림치는 것이 진정한 회심의 열매라는 사실을 뼈속 깊숙이 각인시켜 주는 교육이 선교단체의 제자도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애초부터 회심이 ‘헌신의 기쁨’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헌신의 대가’를 가늠해 보고, 자신의 삶의 작은 부분에서 몸부림쳐 본 이후에야 그것이 성화의 과정으로서의 기쁨임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기름부음 받은 이후에 작은 무리의 양떼들을 이스라엘 백성들만큼 소중하게 섬기면서 그 현장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다윗과,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든지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 가운데에서 성실함과 온유함으로 영성의 깊이를 더해갔던 요셉의 삶을 돌아보라. 갑자기 하나님께서 들어서 영웅처럼 세우시는 것에 감동 받는, 우리들이 보기에 형편없고 무료해 보이기만 했던 그분들의 길고도 낮은 위치의 ‘현장’은 반드시 강조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러한 실천의 장이 필요하다. (끝)


2002년 1월.
2002/01/01 23:05 2002/01/01 23:05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도발적인 캠퍼스보기
약간은 도발적인 캠퍼스 보기 5 : 강보선 님의 글에 답함

/김용주


<강보선 님의 글에 답함>

안 녕하세요? 강보선 님. 님의 글은 잘 읽었습니다. 사실 복음과상황 홈페이지(www.goscon.co.kr)의 게시판에서 님의 글을 먼저 읽었습니다만, 당시에는 제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글을 쓸 여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님의 글에는 꼭 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오프라인에 실린 글을 대하게 되어 참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 게다가 저와 같은 선교단체에서 지내는 것이 저로 하여금 좀더 편한 마음이 들게 만들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래도 지적할 부분은 지적하겠지만.글을 쓸 때는 좀더 일반적인 내용을 담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만, 실제로는 제가 속한 선교단체와 캠퍼스의 상황이 많이 드러나는 것 또한 부인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님과의 논의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며, 글을 쓰면서 좀더 일반화 시켜서 좀더 많은 사역자들, 학생들과 나눌 수 있는 내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앞으로 쓰는 글은 편의상 반론의 형식을 취하겠습니다
 

<왜 문제의 핵심은 지나치는가?>

지 난 번 내가 썼던 ‘비유’라는 글의 간략한 요점은, 기독 공동체가 복음의 진리됨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실패하여 많은 학생들이 보화를 보화로 인식하지 못한 채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다른 도구에 노출된다는 것이었다. 그 도구는 다름아닌 세상적 공동체에서 행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기율방식’이며 이러한 감시와 처벌에 따라 기독 공동체가 구성원들을 통제하게 될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에 대한 ‘조심스러운’ 진단이었다. 지난 번 글이 비유적인 내용으로 채워져서 반론을 통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 어쩌면 내겐 참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이를 통해 잘못된 생각들은 바로잡고 오해들은 일소할 수 있었으면 한다.강보선 님은 내가 쓴 글이 “리더들이 후배들에게 복음의 귀한 가치를 가르쳐주지 못하고 당위와 군기로 후배들을 붙잡고 있다는 비판”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런데 모든 문제의 근원을 리더들과 공동체에 돌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고려하지 않은 내용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1. 회의하는 개인에 대한 책임
2. 선교단체의 존재 목적

사실 이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강보선 님은 ‘리더들이 복음의 귀한 가치를 가르쳐주지 못’하여 생기는 문제에는 쉽게 그냥 비켜갔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강보선 님의 글에서는 너무 부족하다. 강보선 님이 나의 이전 글을 언급한 것으로 볼 때, 내가 이제까지 <약간은 도발적인 캠퍼스 보기>에서 진단한 문제의 핵심은 ‘선교단체의 신앙 교육’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한 강보선 님의 의견을 어느 정도는 언급하는 것이 좋았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고등학교 때인가, 보충수업 시간이었다. 보충 수업 때 들어오는 수학 선생님은 두 분이셨는데, 한 분은 정말 성실하게 수업을 준비하는 분이셨고 다른 분은 그렇지 못했다. 게다가 준비가 부족하셨던 분은 학생들에게 체벌을 심하게 주시는 분이었다. 한 번은 학생들이 일제히 책상을 든 채로 준비가 철저하신 수학 선생님의 수업에 들어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일이 일어나게 된 문제의 핵심은 수업의 내용이었다. 물론 학생들이 버릇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변적인 문제였다. 결국 이 사건은 학생들의 버릇없음에 대한 체벌로 해결된 것이 아니라, 담당 선생님이 수업 준비에 열심을 보임으로 긍정적인 해결을 보았다. 내 지적은 이런 종류의 것이다.


<회의하는 개인, 기다리는 공동체>

강 보선 님은 기독 학생들이 공동체에 들어오는 이유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 중에 아주 소수만이 주님의 나라를 위해 공동체에 들어온다고 보면 아마 정확’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기에 이들이 공동체를 바라보는 시각은 상당히 다르며, 대부분은 공동체가 나에게 어떤 이익이 될 것인지에 많은 관심’이 있음을 경계했다. 그러다가 ‘공동체가 자신이 원하는 공동체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불만이 많이 생기’며 그렇게 떠나가는 후배들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그들이 혹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기도하며 인내함으로 섬기겠다는 결단이 무엇보다 필요하며, 강보선 님의 선교단체의 경우 2년간을 손실을 감수하면서 기다려 준다고 말하였다.나아가 강보선 님은 진리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그들의 회의감이 ‘그들 자신이 보다 적극적으로 회의를 풀려고 노력해야 하며, 답을 제시해 주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스스로 그 확신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점을 말하면서 결과적으로 ‘밭에 감추인 보화는 결국 자기 자신이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물론 나는 강보선 님과 같은 선교단체에 있기 때문에 2년간 막연히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님의 글 자체를 인용하자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지금 글을 쓰는 본인 조차도 공동체에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었다. 내가 기독 공동체의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강보선 님이 회의적으로 이야기했던, 그저 그런 이유에서였다. (성경을 배우기 위해서, 배워서 교회에서 활용하려고, 외로워서…) 나는 그들의 필요 또한 절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성경에서 조차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제자들을 본다. 나는 성경에서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오랜 시간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으면서도 오히려 영광 중에 그 분의 좌우에 앉기를 원했던 야고보와 요한을 본다. 3년을 공동체 생활을 했음에도 누가 더 높은 지에 대해 논쟁하는 제자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같은 본문에서, 그들을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섬김을 본다. 나는 진리를 확증한 순간, 공동체의 후배들의 개인주의적이고 가시적인 필요로부터 마음 중심에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제자들에게는 어떤 권위의 행사가 아니라 발을 닦아주는 낮아짐과 섬김의 본이 그들을 변화시켰음을 안다. 그리고 그와 동일한 낮아짐의 본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내 모습에 심하게 좌절하며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기도 한다. 그들의 회의감은 그들의 등에 올려 놓을 성격의 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도, 제자도, 선교의 균형이 필요>

“공 동체는 서로 서로에게 편안하고 아늑한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선교를 하기 위해 모인 것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하기에 선교를 위해서는 모두의 입장을 고려해줄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명의 지체가 공동체에 들어왔다고 가정해봅시다. 10명은 주님의 나라에 관심이 있고, 나머지 10명은 관심이 없다면 제 생각에는 관심 있는 10명에게 더 많은 섬김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관심 없는 10명에게 무관심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도록 사랑과 인내로 도와주어야 하지만, 섬김의 우선 순위는 관심 있는 10명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 청년부와 선교단체의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교단체는 선교를 위해 모인 특수한 단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과상황 11월호, 강보선 ‘선교단체는 교회와 다르다’)

만일 강보선님이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선교단체는 제자도가 결여된 곳일 가능성이 크다. 강보선 님과 내가 속한 선교단체는 중점 전략으로 EDM, 즉 전도(Evangelism)와 제자도(Discipleship), 선교(Mission)의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 목표들은 어느 하나가 다른 것에 종속되기보다는 이 세 가지가 균형 있게 공동체 안에서 담아져야만 한다. 강보선 님은 선교단체의 존재 목적을 선교적 측면에서만 파악하고 있고, 그럼으로 인해 본인이 언급한 제자도의 문제를 부차적이고 도외시 될 수 있는 부분으로 전락시켰다. 또한 나는 ‘교회 청년부’가 선교의 사명에서 제외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게다가 무엇보다 ‘섬김의 우선순위가 관심있는 10명’에게 더 많은 섬김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심한 거부감이 생긴다. 이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볼 때, 기독 공동체를 세워가는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효율적인 수단과 방법을 논의하는 것은 오히려 기독 공동체에도 경제 논리가 동원된 형태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면서: 사족>

강보선 님은 글을 마치면서 ‘님의 말처럼 조직의 효율화를 위해 등급을 매기고, 관리하고 통제한다는 것은 큰 잘못이지만 공동체의 목적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후배들에게 합당한 성경적인 권위’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공동체의 목적으로 이루기 위한 ‘성경적 권위’는 무엇인가? 이것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일 수 있다. 아마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보선 님이 지적한 성경적 권위가 ‘세상적 기율방식’과 구별되는 것임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공동체의 방향성에 끝까지 동의를 하지 못하는 이들은 공동체를 떠나는 것이 서로에게 덕이 된다고 봅니다. 캠퍼스의 공동체는 4년을 주기로 변화하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회의로, 불만으로 가득 찬 지체를 받아줄 수가 없습니다.” (복음과상황 11월호, 강보선 ‘선교단체는 교회와 다르다’)

강 보선 님은 ‘김용주님의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저와 저의 공동체인 것 같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리의 어떤 약점을 꼬집을지 두려운 마음으로 글을 읽게’ 된다고 했다. 분명 강보선 님의 공동체가 내가 속한 공동체고, 나아가서 한국의 기독 공동체의 문제임에 분명하다. 강보선 님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공동체의 문제는 쓰리고 아프다. 좀더 나은 구조를 세우고, 보다 많은 학생들이 진리로 자유케 되기를 원한다. 모든 사람이 복음을 확증하되 그 안에서 다양성을 누리며 은사들을 발휘하는 공동체로 발전하며, 그 안의 개인들이 충만한 기쁨을 누리기를 정말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의 수고로 하나님의 나라가 한 걸음 더 가까워 오기를 소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발 ‘떠나는 것이 서로에게 덕이 된다’고 이야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2004년 10월.
2001/12/01 23:04 2001/12/01 23:04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도발적인 캠퍼스보기
[복상] 약간은 도발적인 캠퍼스 보기4: 비유

/김용주


<밭에 감추인 보화>

한 사람이 밭에서 일하다가 멀리서 보화처럼 보이는 물건의 일부분을 발견했다.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꽤 가치가 나갈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사람이 밭을 사려고 계산을 해 보니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아야만 살 수 있었다. 부담을 느낀 그는 주변 인맥들을 불러다가 밭에 보화가 있으니 우리가 돈을 합하여 그 밭을 사자고 이야기했다. 주변 인맥들이 확신을 못하고 증거를 보이라고 재촉하자 그가 밭으로 가서 보화의 반짝이는 일부분을 먼 발치에 서서 가리키며 이렇게 소리쳤다.

"어때, 내 말이 맞지? 저거 보화 맞지? 이제 저 밭만 사면 우린 부자라구!"



요 즘 후배들을 만나면서 하는 비유 중에 많이 쓰는 것이다. 좀 엉성하긴 해도 이 사이비(似而非) 비유에 등장하는 남자와 같은 기독학생들은 꽤 많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처음 선교단체에 들어와서 약간의 훈련을 받고 기독교인의 정체성에 대한 개략적인 청사진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미심쩍긴 하지만 자신이 본 것을 보화라고 생각하기로 '결단'한다. 행여라도 보화인지 아닌지를 살펴보는 것은 교만한 행동이며 믿음이 부족한 이유라는 이야기를 듣기 때문에 쉽사리 보화에 가까이 가서 만져본다든지 제대로 확인해 본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제자로의 부르심'은 전적인 헌신에 있다는 사실인데, 비유에서처럼 전 재산을 팔아야만 하기 때문에 주변 동역자들과 고통을 분담하여 그 부담을 좀더 줄이고자 하는 노력들을 하게 된다. 이제는 보화인지 아닌 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화라고 믿고 함께 재산을 처분할 동지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된다. 언젠가 한 친구가 기독 공동체를 떠나면서 기독교는 '다단계'(피라미드식 판매구조)같다는 말을 했다. 이 친구는 전에 다단계 판매조직에 연루된 적이 있었는데 그의 말인즉슨, 그 안에서는 그 말이 진짜 같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을 계속 엮어가면 뭔가 될 것 같았는데, 그 안에서 힘들게 빠져 나온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완전한 사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나가면서 공동체가 '다단계'같다고 얘길 했으니 나로선 여간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토착화는 한국적 민주주의(?)>

' 다단계'는 나와보니 사기였지만 기독교는 거기에서 나왔어도 여전히 진리임을 확증해야 하는데, 기독 공동체에 있다가 나와보니 이것도 '사기'란 생각이 들었다면 이건 보다 심각한 문제이다. 이른바 '보화 확인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바꿔 말해서 우리의 신앙교육이 어느 정도 당위적이고, 수동적이며 반지성적이라는 진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때로는 주변에서도 지적 탁월함은 '교만하다'의 우회적인 표현으로 쓸 때가 많고, 토론과 비판 문화에 대한 반응은 '깐깐함'과 '인격의 부족함'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지식이 있는 기독학생들이 보다 낮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비판을 하는 가운데에서 어느 정도 과격한 스타일을 보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지적인 성실함은 신앙훈련에 있어서 중요하며, 그런 부족한 부분에 있어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후배에게라도 배우고자 하는 성실함이 동일하게 필요하다. 지난 호에도 언급되었던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라는 책은 그리 새로운 내용의 책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기독학생들에게 그런 책은 두려움으로 다가오며, 섣불리 그 책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회의는 곧 불신앙으로 번질 것을 두려워하여 경계하는 것이다.

이렇게 피라미드식 판매구조와 다를 바 없는 신앙을 이제는 계속해서 유지 시키려면 무엇보다 강한 유대와 운동성을 위한 동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쉽게 권력화와 통제로 번질 위험이 있다.

어 릴 때, 초등학교 시험에 '유신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양의 민주주의를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새롭게 고안한 ( ) 민주주의이다'라는 문제가 나온 적이 있었다. 이 문제의 답은 "한국적"이었으며, 엄청난 암기교육 탓에 그 당시 거의 모든 아이들이 그 문제의 답을 맞추었다. 유신정권이 독재정권인 줄 알게 된 건 그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국 사회는 박정희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이른바 헝그리 정신이란 말들이나 "독재자가 때려야 우리 민족은 발전한다"는 논리가 그런 류다.

우리 나라의 기독교도 토착화라는 주제로 많은 고민을 했겠지만, 이른 바 '박정희 신드롬'같은 것을 토착화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대형교회의 목사님들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재정을 임의로 사용하지만 많은 평신도들은 '목사님이 우릴 위해 얼마나 수고하시는데 그 정도는…'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는 일차적으로 영적 지도자의 문제지만, 함께 조금이나마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은 스스로가 '왕 같은 제사장'임을 망각한 대부분의 평신도들도 자신들과는 완전히 차별적인 영적 지도자가 나타나서 강권적으로 끌어주는 것을 열망하고 그것에 익숙해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책임을 평신도에 돌리는 게 아니라 현실을 어느 정도는 직시하자는 얘기다. 내가 속한 캠퍼스에도 이런 문제들이 고스란히 기독 학생들에게 남아 있다. 리더들은 회의감을 가진 멤버들을 정죄하기 쉽고, 또한 그 회의감을 없애기 위해 멤버의 삶을 통제하려고 한다. 멤버들 스스로가 생각하고 성숙할 수 있는 훈련을 통해 자발성을 살리는 방향보다는, 당위적이고 회의감 자제를 정죄하는 권위적이고 강권적인 방법으로 신앙 훈련을 해 나간다.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

한창 포스트모더니즘에 관심이 있을 때, 풋내기 독자인 나의 눈에 호감을 가져왔던 내용은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에서 말한 "감금 사회"였다. 이 책을 쓴 미쉘 푸코(Michel Foucault)는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사회 질서유지의 그 근본뿌리를 "교도소"에서 발견했다. 그에 따르면, 현대 사회 기구들이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교도소의 운영방식을 알아보면 당장 드러나는데, 왜냐하면 그것들-현대 사회의 많은 조직들, 이를테면 병원, 학교, 공장-의 억압적인 형태는 감옥에서 행해지고 있는 기율방식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범법자들을 외부 세계와 차단해, 감금시켜 놓고, 엄격한 감시와 규율로 교정하는 방법을 학교, 병원, 공장과 같은 다른 사회에서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아주 흥미로웠던 부분은 학교의 생활기록부와 병원의 환자기록부, 그리고 회사의 인사관리카드의 뿌리를 감옥에서 죄수들의 명부에서 찾았던 것, 그리고 이 모두는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고 그에 따라 객관적인 수치로 규정 지어버리는 것이었다.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사실 나는 요즘 그 내용이 자주 떠오르곤 한다. 자크 엘룰도 <뒤틀려진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인의 내적 증거인 '회심'이 단순한 외적 표지인 '세례'로 대체되면서 중세 기독교의 타락상을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이런 것들이 한국 교회에도 팽배해 있음을 돌아보게 되는 일도 있다.

또한 캠퍼스의 선교단체들에서도 그런 경우를 찾아보게 되는 수가 있다. 리더들은 멤버들을 규정지으려하고 그 결과. 각각의 멤버들에게 등급을 매긴다. 이 멤버들에 대한 신상과 생활 기록은 리더들이 작성하고 이 기록과 리더들의 한 주간 동안의 생활과 시간표는 복사하여 이들을 관리하는 그 위의 리더들에게 제출된다. 기독학생들은 모임에 빠진 일수와 경건의 시간(QT)과 같은 기본적인 개인영성훈련 과제(?)를 지키지 못한 날들을 계산하여 그 기준에 다다르지 못했을 때, 섬김의 위치가 제한되며, 심한 경우 제명되기도 한다.

솔 직히 내가 쓰긴 했지만, 내 생각에도 이렇게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좀 오버인 것 같다!(웃음) 사실 학생들의 경우, 그들의 신앙의 성숙도에는 제각기 차이가 있기 마련이며, 그에 맞게 학생들을 돌보고 신앙훈련을 돕고자 이런저런 정보들을 듣고 기록하고 함께 기도해주는 일들은 그 자체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조심스럽게나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수가 많아지고 조직의 효율성을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서로를 규격화하고, 등급을 매기고, 후배들을 제 임의대로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감금의 공동체'로 거듭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떠나는 개인주의자, 남은 충성된 종>

요 사이 선교단체의 기독학생들의 수가 줄고 있다. 기연운동도 그렇고, 주변에서 보는 선교단체의 기독학생들도 그런 추세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뜨내기 기독학생들 수가 늘어났다고 하는 게 맞겠다. 선배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요즘 애들이 개인주의적이다, 자기만 안다, 이기적인 세대다 라고 비난한다. 그들은 '예전에는 선배들이 수련회를 가자고 하면, 군소리 없이 따라가야 했고 공동체를 섬기면 자기 몸도 돌보지 않고 죽도록 충성을 다했다'는 식의 푸념을 늘어 놓는다. 나도 그런 선배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나도 조만간 후배들에게 물어봐야 되겠다) 그리고, '한국적 민주주의'자처럼 신앙에 있어서도 군기를 잡으려고 한다.



이 런 선배들 앞에서, 보화가 보화인지 모르는 후배 개인주의자들은 두려움에 전전하다 결국 '감금의 공동체'를 떠나서는 자기가 있었던 공동체가 '다단계'라고 얘기한다. 남은 '충성된 종'은 별다른 회의감없이 지칠 때까지 죽도록 공동체에 충성한다. 이들의 대부분은 '근본주의자'이다. 나는 이 두 부류 모두 비난할 마음이 없다. 어쩌면 지금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이들 모두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며, 또한 내 신앙의 여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전자에게는 냉소적인 태도가 후자에게는 끊임없는 마음의 상처가 남는다. 베드로 사도는 그의 서신에서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1:8)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해야 할 이들에게 보화가 보화인 것을 확인시켜줘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자발적인 사랑의 수고를 할 수 있도록 '감시'가 아닌 '섬김'과, '처벌'이 아닌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룬다고 하셨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요일4:12) 이제 캠퍼스의 영적 허구(Spiritual Fiction)는 영적 실재(Spiritual Reality)의 '보화'로 거듭나야 하지 않겠는가! **


2001년 12월.
 
2001/12/01 23:03 2001/12/01 23:03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도발적인 캠퍼스보기
약간은 도발적인 캠퍼스 보기 3: How should we ‘then’ live?

/김용주


<한국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친 한 후배와 <목회와 신학>이란 잡지를 보면서 느꼈던 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 잡지가 마치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한국판과 같다는 생각이었다. 한국 교회의 거의 대표격인 신학잡지의 절반 이상이 외국-주로 미국-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그 터전 속에서 일구어진 상황으로 즐비한 모습이었던 것이 많이 아쉬웠다. 물론 우리 둘 다 신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비록 전문적인 입장에서의 관찰은 아니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양희송 편집위원도 지난 호의 브리스톨 통신을 다음과 같이 맺지 않았던가.

이 글이 한국 복음주의자들에게 건강한 신학적 자극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 복음주의는 이런 국제적 복음주의 신학의 미래를 논하는 자리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혹은 기대 받고 있을까?…(중략)…그러나, 아쉬운 것은 여전히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로부터의 목소리들을 그 논의에서 실제로 찾아볼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복음과 상황 7월호, 77면)

몇 년 전 즈음에 마크 놀 교수(Mark A. Noll)가 쓴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The Scandal of the Evangelical Mind>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스스로 복음주의자라는 사실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터였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책은 나의 생각을 많이 교정 시켜 준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 책에서 마크 놀 교수는, 복음주의의 역사를 돌아보며 진단하고 그것에 대한 평가와 제안들을 내어 놓았다. 우리에게도 이런 작업이 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글의 성격상 범위를 좀더 좁혀서 이제는 캠퍼스로 돌아가 보자. 작년 여름에 선교단체에서 조장으로 수련회를 갔었다. (올해는 졸업논문과 시험으로 가지 못했다!) 그곳에서 조장들은 같은 숙소에 묵었고, 쉬는 시간마다 서로의 조원이 어떤지,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지 등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수련회에서도 뒤쪽에 북테이블이 설치되었는데, 사실 해를 거듭할수록 책은 적게 팔리는 실정이었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신앙서적으로 넘어갔고, 나는 이내 많은 조장들이 지성을 요구하는 책들을 기피하는 것을 알았다.


‘그 책은 너무 어렵게 쓴 거 같아.’

‘지식 쌓기에 골몰하다 보면 정작 하나님의 초자연적 일하심을 경험할 수 없다니까.’

‘내용을 읽어도 느낌이 안 와.’

조 장들이 읽기 힘들어 하는 책은 유감스럽게도 저학년 필독서였고 솔직히 난 좀 허탈했다. 많은 조장들이 정말 많이 수고하고 기도하고, 조원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에 크게 감동한 한 주간이었지만, 그들에게 듣게 되는 신학의 부재에서 비롯된 많은 판단과 생각들은 솔직히 대화하는 내내 좀 불안했다. 성경적이거나 기독교 세계관적이라기 보다는, 몇 년 동안 겪어 온 기독교 ‘문화’ 속에서 터득한 어떤 코드(code)가 그들의 삶의 지침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많은 리더들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 신학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나는 우리가 복음주의 지성의 미래이고, 따라서 우리의 지성은 ‘한국 복음주의의 스캔들’이란 생각을 했다!
 

<대안 없는 비판(?)>

이제까지 캠퍼스 안에서의 SF(영적 허구)에 대한 나름의 비판적인 이야기들을 풀어 보았다. 실제로 글을 쓰면서는 여러 반응들을 접한다. 거의 대부분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선교단체 학생들의 것들이다. 캠퍼스 사역자들의 생각들도 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아직 별 의견이나 조언을 들을 수 없었다. 각종 수련회와 많은 사역으로 인해 여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래 학생들 가운데에서는 여러 반응들을 듣게 되는데, 가장 감사한 것은 충실한 반론을 들을 때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 보면 미처 생각치 못했던 많은 것들을 서로가 얻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또 다른 감사의 경우는, 본인의 비판적 시각에 공감하고 고민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대안들을 생각해 보자고 연락하는 이들이다. 물론 가끔은 당혹스러운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기존 선교단체에 안티(anti-)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 때문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주류로 들어갔으면 한다. 그리고 힘들겠지만, 그곳에서 가장 낮은 본을 보이며 섬김의 삶을 살아 가길 기대한다.
 

솔직 히 나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것을 지적할 때, 반드시 대안까지 고려되어야만 비판을 할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것을 분석하기 시작했다면 그 이후부터는 쉐퍼의 유명한 책 제목처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강일 편집위원이 1998년 8, 9월호 <복음과상황>에 실었던 “기독 신세대의 신앙교육”이라는 글에서 언급했던 내용이 어느 정도의 텍스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기사의 전문은 복상 홈페이지의 자료실에서 검색할 수 있다.)
 

신앙 훈련의 내용

1. 복음주의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2. 한국의 역사와 사회현실을 가르쳐야 한다.

3. 통합적이고 일상적인 복음주의의 영성을 훈련시켜야 한다.

4. 개인주의적 특성을 교정 시킬 수 있는 공동체적 실천의 장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5. 말씀을 연구해서 성경 전체를 조망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


효과적인 기독 청년들의 교육 조건

1. 예수님의 생애를 중심으로 한 복음설교가 지속되어야 한다.

2. 일관성 있는 교과과정이 확정되어 학생들 스스로가 배울 내용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3. 학생들의 인격적, 신앙적 스승으로서 멘터(mentor)가 구비되어야 한다.

4. 대학 내에 가족과 같은 기독공동체가 튼튼히 서 있어야 한다.


<몇 가지의 경험적 대안>

많이 부족하겠지만 개인적으로 교회 청년부와 선교단체에 있으면서 경험했던 몇 가지의 대안들을 나누고 평가를 하는 것으로 글을 정리해야겠다.


1. 이원론의 탈피, 총체적 복음을 신앙훈련 처음부터 조명해준다.

선 교단체나 교회에서 사회참여가 복음전도와 함께 총체적 복음의 한 쪽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에 기인하기도 했고, 내가 속한 선교단체(IVF)의 상처이기도 했다. 또한, ‘이원론적 신앙관의 탈피’에 관한 문제도 그러했는데, 이것은 교회에서 더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청년들이 교회에서 봉사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생기는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두 가지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교회에서 임원들과 함께 임원모임 때 스터디를 해보았으나 솔직히 별 효과가 없었다. 이미 굳어진 신앙 성격과 그것에 대한 익숙함 때문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신앙 형성에 아직 별 다른 기초가 없이, 고등부를 갓 마치고 청년부에 들어온 학생들을 몇 그룹으로 모아서 반 학기 정도 따로 성경공부를 해 보았을 때 더 나은 결과를 얻었다. 성경공부 교재는 복음의 핵심에 관한 것을 4주 과정으로, 그리고 송인규 목사님이 복상에 연재했던 평신도 신학강의를 선별(?)해서 4주정도,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간단한 책 나눔과 토론으로 4주정도, 그리고 귀납적 성경연구(inductive Bible study)를 임원들이 강의하고 함께 그룹별로 공부하고 나누는 것으로 4주정도하고 특강으로 ‘로잔 언약’이나 창조진화논쟁 같은 것으로, 모두 3~4개월 정도를 하고 나서 기존의 청년부 소그룹을 다시 편성해 보았다.(물론, 공부만 한 건 아니고 삼겹살을 구워먹기도 하고 MT도 갔다!) 그 결과, 다행스럽게도 조금은 이질적인(?) 그룹이 형성되었다. 아마 이들이 임원이 되면 공동체는 좀더 변화될 것으로 생각된다.


2. 복음주의 역사를 조명함으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대 부분의 학생들은 로잔언약(Lausanne Covenants)과 그랜드 래피즈(Grand Rapids)에서의 신학 협의회를 통해 복음주의권에서 사회참여라는 이슈가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마닐라 선언(Manila Manifesto)을 통해 은사주의자들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입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많은 학생들이 그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있지만, 그리고 그러한 역사 속에서 자신의 신앙이 어느 정도는 결정되고 있음에도, 정작 스스로는 그것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 채로 생활한다. 시대를 좀더 거슬러 올라가서 살펴보면, 알미니안과 칼빈주의의 차이점과 그로 인해 생기는 신앙의 서로 다른 입장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화란의 개혁주의나 독일의 경건주의, 웨슬리와 메쏘디스트를 알지 못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살아서 지금도 일하시는 그 분의 인도하심을, 실상 별반 인식하지 못한 채로 생활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많은 기독학생들이 불트만(R. Bultmann)을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물론 많은 기독학생들이 불트만을 싫어할 것이다. 하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들 사고의 밑바닥에는 오히려 신앙의 역사성을 무시했던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서일까… 요사이 과거에 비해 복음주의 역사에 대한 체계적인 가르침이 약해졌고 그에 따른 복음주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데 부족함을 경험하고 있다. 한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하게도 어느 때보다 자료집과 좋은 책들은 많이 번역되고 있지만, 정작 사역의 현장에서 강조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그런 것들을 외면하게 된다.


되 도록 많은 리더들이 스스로 체득한 복음주의 역사를 자신의 소그룹 멤버들에게 전수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것이 어렵다면 스터디 모임을 단기간 동안만이라도 가지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내가 속한 선교단체의 경우, 스터디 모임을 통해서 종교개혁과 대각성 운동, 그리고 복음주의 신학의 흐름과 그에 따른 시대별 세계관 파악, 로잔 언약과 마닐라선언의 특징,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그들의 사역에 대한 간략한 공부를 하였다.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과 함께 스터디를 할 수 있었고 대부분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다.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좀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3. 복음주의적 전문인을 양성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선 교단체에 있으면 고시 준비를 한다든지 혹은 공과대에 속해있는 학생들이 있게 마련이다. 사실 이들은 정죄의 대상이 되기 쉽다. 하지만, 공동체에 전적으로 시간과 정열을 쏟을 수 없는 이들의 상황을 공동체가 받아들여주지 못한다면, 그리고 오히려 그들을 정죄하고 공동체에서 상처받은 채로 떠나게 되는 것을 방관한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온전한 복음주의적 전문인을 키울 수 없는 곳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공동체를 떠나지 않도록 하면서, 그들의 상황과 형편에 맞는 구조를 세우고 그 안에서 그들이 전문인으로 양육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선교단체의 많은 리더들이 고학년으로 갈수록 전임사역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공동체 사역의 목적이 일정부분은 왜곡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들이 많은 시간을 공동체에 쏟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할 수 없는 것은 반복적인 모임에 계속적으로 시간을 보냄으로 생기는 정체 현상인 듯 하다. 이는 앞서 지적했기 때문에 각설(却說)하고 대안을 생각해 볼 때, 동질의 모임들이 어느 정도 축소되어야 할 것이다. 비슷한 형태의 모임들이 줄어들고 차별적이고 대안적인 모임들이 활기를 띨 때 학생들의 자발성과 역동성, 그리고 전문성 등을 고취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2001년 8월.
2001/08/01 23:01 2001/08/01 23:01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도발적인 캠퍼스보기
[복음과상황] 도발적인 캠퍼스 보기 (2): 닮음꼴

/김용주


"기독교 복음이 사회를 새롭게 하는 데는 우리 마르크스 철학보다 더 강한 무기임을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당신들에 대하여 승리할 것이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말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우리는 현실주의자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동원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획득하는지도 안다.

어떻게 사람들이 기독교 복음의 최상의 가치를 믿을 수 있겠는가! 당신이 그것대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그것을 전파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그것을 위해 시간도 돈도 희생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 리는 공산주의의 메시지를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것을, 심지어 우리의 생명까지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 당신들은 가족과 함께 휴일을 야외에서 즐긴다. 하지만 우리는 휴일뿐만 아니라 주말의 시간까지도 당을 위해 바친다. 우리는 큰 즐거움으로 기름때를 만지지만 당신들은 손에 흙 묻히는 것조차 괴로워하고 있다..."

(한 공산주의자의 공개도전장)


지 난 달에 GT를 읽다가 위와 같은 '공개도전장'을 받았다.(GT 3-4월호, 99면 인용) 처음엔 그냥 쉽게 읽고 넘겼는데 한 달 내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찜찜하고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마 내심 이 도전에 응할 수 없는 나와 내 공동체의 형편들을 생각하면서 시작된 마음의 짐 때문이었으리라.

지난 4월에 실린 필자의 글은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라'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꽤나 냉담한 반응을 접했다. TNT논쟁 때 보여졌던 긍정적, 혹은 부정적 의견을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그리고 개인적인 메일로 받았던 것을 돌아볼 때, 이번에는 지극히 조용한 한 달을 보냈다. 간신히 접한 글이라고는, 복상 게시판의 논객인 Gramsci님이 5월호에 쓴 독자의 글로 주된 내용은 희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제발 절망하라'는 Gramsci님 특유의 글은 내게 '절망을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쓰디 쓴 교훈을 주었다. 이 묵은 실타래들을 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나또한 절망 가운데에 있음을 자각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 문제들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의 기독인들의 현실을 돌아본다. Gramsci님보다 더 못한 삶을 살고 있는 부끄러움을 안고.


<닮음꼴 하나: 대집회 장소와 콘서트 홀>

복 상에서 전혀 반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 연중기획으로 시작된 <SF가 판치는 교회>는 지난 달에도 교회 중심의 시각을 회복하려는 글들이 많이 선보였고, 그 중에는 내가 속한 캠퍼스에 적용될수 있는 류의 도전적인 글도 있었다.

' 하지만 저들은 왜 저곳에서 멈추지? 왜 삶의 현장으로 달려가지 아니하는 것이지? 또 저 탁월한 영성(?)의 찬양 인도자는 저곳에서 항상 영적 전쟁을 선포하고 그곳을 위해 중보기도는 하지만, 왜 자신의 직장과 현장에서 불의에 항거하고 또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에게로 나아가라고 말하지는 않는 거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많은 교제를 나누었을 자신의 사랑하는(?) 동역자들이 행하는 교회 세습, 헌금 유용 등 - 예컨데 서울의 거대한 교회 지도자들의 악한 죄악을 두고는 기도하지 않는 거지? 왜 음란을 위해 기도하면서 스포츠투데이 같은 신문의 폐간을 위해 기도하지는 않는 거지?'...(중략)...돌아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합법적인 대우 자동차 정리 해고 집회를 경찰이 무력으로 진압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중략)...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 찬양 인도자는 연약한 민중들의 피 흘리는 그곳에서 "기독청년이여 깨어나라! 하나님의 백성이여 깨어나라!"라고 말하지 않는지,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복상 5월호, 김채완 "가까운 곳에 있는 영적 허구", 98-99면)

김채 완님의 이와같은 언급은 나로 하여금,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찬양 집회에 갔을 때의 느낌을 상기하게 만든다.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려면 잠시 하나의 프로그램과 비교해야 하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찬양집회의 세상적(?) 모델이 있다면 그것은 <열린 음악회>가 될 것 같다. 가사는 대형 화면으로 전달되어 손쉽게 따라부를 수 있다. 애창가요와 최신가요, 그리고 가요와 클래식의 분배를 적절하게 함으로써 세대간의 벽을 허물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음악이란 매개물로 하나라는 정서를 승화시킨다. 이들은 마치 진정으로 옆사람과 하나가 되었다고 느끼며, 통일을 노래하면 통일을 이룬 것 같고, 사랑을 노래하면 사랑이 서로의 마음 속에 풍성한 것 같지만. 공연이 끝나고 세트장을 정리하게 되면 항상 출구는 서로 나가려는 사람들의 이기심에 눈살을 찌푸리며, 그렇게 돌아가는 발걸음 가운데엔 어느새 한 바탕 잔치를 하고난 허전함이 찾아온다. 다음날 시작되는 일상은 변함이 없으며 그들은 허구적인 공연 뒤의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다시 다음 공연장소와 날짜를 다이어리에 기록해 둔다.

난 며칠 전 또다시 꽤나 유명한 찬양예배 광고지를 받았다. 이번엔 찬양예배 가운데 삶을 고취시키려나...절망 속에 또 기대하는 마음으로 집회 날짜를 다이어리에 적어둔다.


<닮음꼴 둘: 성령체험의 코드화와 주술적 행위>

고 등학교 시절, 고등부 임원회에 속해있던 시절에 우리는 그 시절에 <두란노 경배와 찬양>의 찬양 스타일을 흉내(?)내곤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찬양예배 시간에 찬양 인도자의 멘트(?)를 똑같이 따라하는 임원들이 있었다. 그리 오래지 않아 어린 시절과 비슷한 일이 한국 교회에서도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씁슬해 한 적이 있다. 찬양과 치유사역이 맞물리는 빈야드교회의 찬양을 교회와 선교단체가 흡수하면서 겪었던 일이 그것인데, 대부분의 사역자들이 빈야드교회의 신학은 받아들이지 못한 채, 예배의 스타일만을 차용하여 적용시켰던 일이 있었다. 교회 안에서 어느 정도의 부작용을 감수해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러한 모조적인 행태는 내가 속한 캠퍼스에 들어오면서도 꽤나 괴상한 모습으로 변질되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영적 체험의 코드(code)화이다. (특별히 명명(命名)할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던 차에 <바이블 코드>라는 책을 '구경'하면서 생각했던 그 '코드'를 떠올려 보았다) 특히, 이것은 찬양 인도자나 중보기도 인도자가 이야기하는 가운데에 가장 자주 보여지며, 때때로 함께 기도하는 기독학생들 사이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들은 특정한 기독교적인 단어들을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을 불러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생각이 그들을 지배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영적 체험의 코드화는 마치 신접하는 행위나 주술적인 행동들과 비슷하게 보일 때가 있다. '성령의 임재',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같은 말들로 시작하여 모두가 눈을 감고 그런 단어들을 되내이면 신이 내려오는 것과 같이 생각하고 느낀다. 흥미롭게도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각 개인에게 찾아오는 인격적인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우리의 개인적, 혹은 공동체적 죄에 대한 회개와 각성이 아니라, 현상적인 치유와 능력, 이적과 기사들의 현현을 기대하는 수가 많다. 그런 현상이 없거나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순서가 되바뀐 게 심각한 문제다. 간혹 사역자들 중에서도 로이드죤스의 <성령세례>는 좋아하면서, <성령의 주권적 사역>에서 경계하는 것들을 공공연히 프로그램화하는 이들을 본다. 특정한 코드를 되내이며 램프를 문지르면 능력이 임한다? 경계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닮음꼴 셋: 선교단체와 JMS>

99년에 TNT논쟁을 하는 가운데 기숙영님의 글에 대한 반론을 쓰면서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한 적이 있다.

개 인주의적인 20대의 특징은 자신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공동체, 또한 핵가족화된 가정에서는 누릴 수 없었던 친밀한 공동체를 원한다.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잘해주며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맡길 수 있는 편안한 공동체가 존재한다면 그들은 이성적 사고를 접어두고서라도 그 단체를 선택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자신에게 잘해주는 이단 단체에서 친밀함을 누리는 것이 바람직한가? 오히려 그들의 잘못된 집단적 행동에 대해 '바른 교리'라는 진리의 지성적 영역에서 일깨워주어야 할 부분이 있지는 않는가 하는 말이다.

한국 교회는 두 가지 측면에서 잘못했다. 첫째는 친밀한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실패하여 많은 기독청년들을 이단 단체에게 넘겨준 것. 둘째는 그들에게 세계관의 중요성을 부각시키지 않고, 지성의 영역에서 복음을 이해하는 훈련을 제대로 시키지 않은 것. 여기에서 두 번째 문제에 대해 지금의 30대가 20대에게 도전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여기에 대한 선교단체의 사역방향이 이단단체와 똑같이 맹목적으로 잘해주는 공동체의 형성에만 치중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그것은 기독교와 이단의 구분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처사임에 분명하다. 그들의 개인주의적 성향 이면에 존재하는 왜곡된 집단성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지 않는가. (복음과상황 1999년 9월호, 73면)

난 요즘 선교단체를 대하면서 "선교단체의 사역방향이 이단단체와 똑같이 맹목적으로 잘해주는 공동체의 형성에만 치중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그것은 기독교와 이단의 구분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처사임에 분명하다"라고 했던 이야기를 곱씹어 보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내 주변에는 기독교와 이단을 구분할 수 없는 많은 기독학생들을 본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구분을 못한다기 보다는 서로를 진리의 영역이 아닌 패거리의 영역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기독학생들을 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들은 성경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며, 코드화 된 기독교적 표현들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무지한 편이다. 그러나 '빈번한' 공동체 생활이나 수련회에서 너무나 친밀한 나눔을 통한 집단적 결속력과 유대가 강해지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미 자신의 학과에서는 부실한 참여로 아웃사이더가 된지 오래며, 자신이 속한 선교단체를 나오면 학교 내에서 관계를 맺고있는 인맥의 거의 전부를 버려야만 한다. 그러한 결단을 할 수 없는 많은 기독 학생들이 공동체에서 복음을 경험하지 못한 채로 의무감에 신앙을 지켜간다. 어느 정도 중세의 카톨릭적이며, 좀더 심하게 말하면 JMS와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다!

(계속...)


2001년 6월.
2001/06/01 23:00 2001/06/01 23:00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세상보기
[복음과상황] 안과 밖 (2001. 5.)
/ 김용주


밖에는 세찬 바람이 불고
장대비가 온 땅을 삼킬 듯이 퍼붓고 있습니다.
이중 창문 닫아걸고 현관문 걸어 잠그면 아득한 바깥
비 소리에 젖어 드는 원두커피 향이 감미로운 아늑한 실내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가스펠을 즐기며
지금 이 순간 바깥에 있지 않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느 불안한 축대들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
어느 집 허름한 지붕을 뚫고 떨어져 내리는 빗물 소리,
이리 저리 휩쓸리는 풀잎들, 벌레들의 비명 소리는
그저 이중창 바깥의 소리일 뿐입니다.

불어난 빗물이 어느 동네 낮은 집들을 삼키는 모습,
비에 젖은 신문지를 이불 삼아 잠을 청하는 노숙자들의 모습
늦은 밤 고단한 몸 흠뻑 젖어 퇴근하는 이웃들의 모습은
다만 현관 철문 바깥의 풍경일 뿐입니다.

지금 밖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고슬고슬한 이불을 깔며 잠자리를 준비합니다.
단지, 내일 아침 출근길을 염려하며 잠을 청합니다.

(기진호, "안과 밖")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버스에 기댄 채 집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을까...열린 창문 사이로 새차게 불어오는 바람과 시끄러운 소음이 피곤함에 못이겨 자고있던 저를 깨웠습니다. 아마 앞에 계신 분이 환기를 시키려고 문을 여신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두 뼘이 채 안되는 공간이 열리면서 차 안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습니다.

고요한 정적을 깨고 창밖에서는 다른 차선에서 달리는 자동차 소리, 경적소리, 행사를 하고 있는 장소의 스피커폰 소리들로 요란해졌고 무엇보다 안락하게 느껴졌던 제 자리는 도저히 앉아서 견디기 힘든 속도의 바람이 정면으로 들어오는, 그야말로 버스의 속도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문득 내 삶의 형편과 버스 안의 내 자리가 닮은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일들과 가치들, 그리고 삶으로 담아내야 하는 내 주변을 간과한 채로 평안을 누리고 있는 나의 일상에 대한 반성을 해봅니다. 하루를 살면서도 내가 선호하는 책으로 눈을 가리고 내 입맛에 맞는 음악으로 귀를 막고 내가 원하는 장소들로만 걸음을 옮기는, 보고싶은 것만 보고 느끼고 싶은대로 느끼려는 어리석은 편협함이 어느덧 삶의 한 가운데 깊게 뿌리내려 있음을 봅니다.

너무나 시끄러운 요즘입니다. 두 뼘 남짓한 창문을 열면 안락하지 않은 상황(context)이 즐비합니다. "비 소리에 젖어 드는 원두커피 향이 감미로운 아늑한 실내"에서 "은은한 가스펠"에 평안을 느끼기에는 너무도 치열하고 절박한 "밖"(外)이 있습니다.

새차게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또한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소리와 바깥 소음들을 들으면서 그동안 없다고 생각했던 주변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무시하고 살았던 상황들을 기억해 봅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중창 바깥"으로 나아가서 "이 순간 바깥에 '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라는 고백이 있기를 기도해봅니다.**
2001/05/01 01:00 2001/05/01 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