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Posted
Filed under 컨텐츠/서평
두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옥 집사님이 본서에서 언급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과도한 단순화입니다. 본서에서 옥 집사님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를 반기독교적인 사상으로 다원주의적인 사고로 나아가게 만드는 주범으로 설명합니다. 또한 이제 절대 진리는 없고 모두가 상대적인 관점으로만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게 되어 어떤 문제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잣대를 잃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절대 진리, 즉 하나님이라는 절대적인 존재를 믿는 것이므로 기독교와 포스트모더니즘은 궁극적으로 양립할 수 없고 그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면 반기독교적이자 사탄적인 사상으로 둔갑합니다.

이렇게 단순하게 포스트모더니즘을 설명하면 그 입장이 근본주의적인 성향으로 치닫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기독교출판을 전제로 하였다 하더라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해의 폭이 상당히 좁게 느껴지며 이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연구와 설명이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야기하면서 관련된 사상가나 문헌이 거의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러한 생각을 굳히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기본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할 때 언급되는 대표적인 학자들 이를테면, 니체와 하이데거로 비롯되어 리오타르와 데리다, 푸코와 같은 이들의 관점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없으며 포스트모더니즘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 사상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 된 구조주의 이후의 후기구조주의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 그리고 리쾨르 같은 학자들의 간략한 이해가 동반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성중심주의, 형이상학의 극복과 같은 주제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전/후기 사상들도 어느 정도는 섭렵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런 많은 사상가들과 학문적 배경들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설명드리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를 쓸 때 이미 그 사상적 복잡함 속에 던져졌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순히 영화 몇 편과 근본주의적인 신앙 서적에서처럼 단순하게 접근하기에는 그 깊이와 넓이면에서 상당한 격차가 존재합니다. 또한 제 생각에 포스트모더니즘은 신앙인도 충분히 고려할 만한 긍정적 요소들이 존재하며 그러한 이해없이 무작정 상대주의적이며 다원주의적이고 사탄적인 사상으로 치부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모더니즘의 세 축은 과학주의, 경험주의, 그리고 합리주의로 대변됩니다. 이러한 소위 계몽주의적인 접근이 모든 학문을 객관적인 잣대, 절대 진리의 추구, 역사 진보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며 이 사상의 중심인 서구인들의 자신감에 그 사상적 배경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양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진보, 계몽, 이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의 상실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학문적 영역에서 사이비학문처럼 보이는 형이상학, 신학과 같은 것들을 학문의 구획에서 제거하려는 노력들이 오히려 수포로 돌아가고 학문, 특히 과학과 같은 객관적 진리 영역으로 치부되던 학문, 사상들에 있어서도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생각이 만연하게 됩니다. 또한 서구중심적이었던 서양인들은 자문화 우월주의적인 생각으로 제3세계에 제국주의적인 침략과 교화(?)를 일삼던 것에 대해 반성하고 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동양 문화와 사상을 흡수하게 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과 성찰, 완성 혹은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반기독교적인 요소는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가 서구중심적인 종교라는 이유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또한 절대 진리의 부정 역시 단순히 절대 신의 존재를 반대한다는 단순한 도식 보다는 그간에 이루어진 '구조'에 대한 성찰, 이성중심주의의 타파, 거대담론의 해체, 절대적 판단자로서의 이성의 한계 인식, '주체'의 죽음과 같은 배경 속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 이러한 접근은 모더니즘과 계몽주의의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타당하며 또한 기독교인들도 충분히 섭렵하고 이해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면에는 기독교가 지나치게 '모더니즘의 옷'을 걸치고 있다는 비판적 성찰에도 기인합니다.

물론 상대주의적인 관점, 서양 종교이자 절대 종교로서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 진리에 대한 다원주의적인 시각은 포스트모더니즘 사상 속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할 요소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항상 어떠한 문제나 사상, 사물의 존재나 발생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없이 현상만으로 단정짓고 그것을 자신의, 이를테면 우리에게는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로 난도질하는 접근에 대해 경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복음주의와 근본주의의 구별 자체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며 결국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다원주의와 기독교에 대해 설명한 후 근대 후기 사회에서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접근을 보여 줍니다. 제 생각에는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접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근본에는 세상과 세상의 사상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선행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에 지적하고 싶은 글에서도 언급하겠지만 옥 집사님의 글에서는 복음과 비교하자면 현대 사상과 문화, 그리고 현대적인 방식들이 얼마나 가치가 없는가에 대한 방향으로 글이 전개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가 당대 사상이나 문화, 세속적 방식과 대립적인 요소가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 전개 방향이 지나치게 근본주의적이고 개혁주의에 반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감이 듭니다. 이에 대해서는 마지막 글에서 설명을 좀더 하겠습니다.
2007/11/27 18:34 2007/11/27 1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