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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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답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 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매료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를 만들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중 어떤 한가지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뒷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 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 달안에 다 해치워야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위해 죽고 싶어하지는 않죠.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출처 :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대 졸업 축사' - 네이버 지식iN)
2008/01/28 19:25 2008/01/2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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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후배와 간혹 대화를 하다보면 자꾸 가르치려는 내 대화의 방식을 발견합니다. 뭔가를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자만심 때문이기도 하겠고, 그런 인격이 덜 된 마음이 아니더라도 되도록 많은 정보를 전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서 때때로 후배가 한 마디만 던져도 두세 마디를 앞서 이야기를 해놓고 후회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나이 이십대에 멋모르고 너무 많은 말들을 뱉어낸 적이 많았다면, 삼십대에는 비교적 객관적이고 도움이 될만한 말들만을 삼가해서 전하려고 노력하는 데에도 사실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후배와 대화하다가 잠시 입을 다물었습니다. 갑자기 후배의 나이를 떠올려보니 나이 서른. 만으로 스물아홉. 성인이 된 지 10년이고 나와의 나이 차이는 3년. 내가 이 친구의 인생에 뭐그리 자신할 것이 있다고 또다시 조금 아는 이야기들에 불쑥 불쑥 말을 막고 이리저리 입담을 풀어놓는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혼이 나간 채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저는 제 모습을 이제서야 살펴봅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한 번 말하고 두 번 들으라는 옛말이 좀처럼 체화되지 않습니다. 책 한 권을 읽어도 여전히 어린 아이들이 또래 아이들에게 장난감 자랑하듯 제 지식을 뽐내고 싶어합니다.

성년을 맞이하던 날. 나는 스스로에게 이제는 나보다 어린 이에게서도 배우고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내가 옳은 일은 주장하리라 다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장년의 나이에 삿대질하며 '너 몇 살이야?' 추태를 부리던 어른들을 보며, 나이 헛먹었다고 비난하기 일쑤였던 나에게서도 때로는 동일하게 후배들에게 잔소리를 펼치고 싶은 나쁜 마음을 발견합니다.
배움이 체화되면 분명 가르침의 의무를 져야함이 바른 이치이겠으나, 때로는 후배들에게서도, 배움이 모자란 이들에게서도, 경험이 부족하거나 불필요해보이는 잡담을 하는 이들 속에서도, 겸손의 미덕으로 귀담아 듣고 낮은 마음으로 그 생각의 근본을 받아들일 준비가 항시 되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십대에 품었던 그 마음을 곱씹으면서 말이지요.
2008/01/08 19:22 2008/01/0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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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형태의 인간을 완성한 후에야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인간은...
이리저리 금속으로 끼워넣은
불완전한 형태의 생명체에
생기부터 불어넣고 작동이 되는지를
테스트하면서 자신의 형상을 완성시켜간다.

신의 창조물은 너무 완벽한
자신을 창조자와 동일시하며
세상을 자신의 이기심에 맞추려 애쓰지만

가위손은 중간단계의 창조물이라
창조자에게 부여받은 생명력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에 심한 제한을 받는다.

생명체는,
조금만 부족해도 비참해지고,
너무 완벽하면 변질된다.

2007/12/30 18:45 2007/12/3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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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세월동안 착한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나쁜 사람은 착한 사람으로 생활한다.
나쁜 사람은 착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나쁜 방법으로 착한 사람이 되고,
착한 사람은 나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익숙한 나쁜 생활에서 몸부림친다.

착한 장(場)에서 살던 나쁜 사람은 각인된 패턴으로 자신의 악행을 감추지만,
악한 장(場)에서 살던 착한 사람은 몸부림쳐도
자신의 선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절망의 늪으로 빠져든다.

악한 장에서 살던 착한 사람은 우수에 찬 슬픈 웃음과 눈망울을 가졌다.
그가 원하는 단 한가지는 자신의 원래 모습을 찾는 것.
그 소박한 욕구마저 좌절되는 현실의 장.
악인의 위선은 패턴으로 각인되어도
선인의 누명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 현실 세계가 바로 "무간도"라고.

이렇듯 나는 불합리한 비가역적 장(場) 속에 무참하게 던져졌다.
내 선의를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이 싸늘한 주검으로 내 앞에 선 채.

2007/12/30 18:42 2007/12/3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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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만 더"
처음 이 제목을 보았을 때 나는 스크루지가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떠올렸다.
혹은 하루 밖에 살지 못하는 어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까.
어쨌거나 미치 엘봄의 책은 항상 기대 이상일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이 책은 죽음 문턱까지 갔던 한 사내의 이야기이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특히 어머니, 그리고 깨어진 가정의 이야기이다.
누구나 이 책의 주인공과 똑같은 경험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리고 미국 사회에서 있었던 배경들을 직접적으로 겪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 모두가 성장기에 겪었던 아픔과 잘못된 선택,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부모의 모습들.. 그로 인한 오래된
좌절의 여정 등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왜 그랬지? 난 왜 그랬을까?'라며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래, 나도 알고는 있었다.
살면서 그러지 말았어야 했던 일들이 있었고 항상 그럴 때마다
알면서도 실수처럼 바보같은 선택을 했던  내모습이 있었다.
그로 인해 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줬던 기억들이 많이 났다.

아니, 난 '돌이킬 수 없는'이라고 생각해 왔던 듯 하다.
하지만 미치 엘봄의 책들은 '돌이킬 수 있는' 마음의 자리를 마련한다.
그의 책에서 너무 늦은 일은 없다.
이제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면
이제 그들에게 다시 돌아갈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사랑을 주고 사랑받는 관계가 될 것을 이야기한다.
그의 영원한 선생 '모리'의 말처럼 "사랑은 언제나 모든 것을 이긴다."
2007/12/24 18:41 2007/12/2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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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ad Not Taken
by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피천득 옮김)

2007/12/22 19:21 2007/12/2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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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처음 미술관을 갔을 때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낯설음과 고요함. 그리고 큰 액자 속에 있는 그림들은
무언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고 나는 '그'에게 대답이라도 하려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계속 찾아갔다.
현란한 색깔과 선, 그리고 질감으로 이루어진 한 편의 그림은
그 첫 만남에서 그런 방식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림들은  관찰의 대상이었고, 소통을 원하는 관계의 대상이었다.

그간 <남자 vs 남자>, <사람 vs 사람> 등을 저술했고
한겨레와 같은 매체에도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는 그녀.
<젊은 날의 깨달음>을 통해 그녀의 인생의 단면을 훔쳐본 적이 있는
정혜신 선생님의 신간 <마음 미술관>이 나왔다.

전용성 화백의 그림에 자신의 글로 한 장 한 장 곱게 채워진
이 책은 깔끔하고 밝은 느낌과는 다르게 그 글과 그림으로 활자화된
한 장을 넘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마음 미술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나는 또한번 초등학교 시절
처음 접한 미술관으 느낌 그대로를 이 책에서 받았다.
그림을 한참을 '주시하다가' 정혜신 선생의 글을 읽고는
다시 그림을 한참을 '읽는다'. 그리고 멍한 채로 시야를 어둡게 하여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본다.

이 책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하나의 묵상집이다.
하지만 무겁지 않다.
책을 읽는 동안에 사뭇 진지해질 수 있는 순간에
정혜신 선생의 위트나 익숙한 상황, 영화, 시, 드라마들을 언급할 때면
나도 모르게 접혔던 미간이 웃고 있을 때도 있었다.
너무 급하게 읽지 않고 한 자 한 자, 한 그림 한 그림 넉넉한 마음으로
읽는다면 이 책은 읽는 이들의 내면에 하나의 보양식이 될 것이다.

2007/12/22 18:39 2007/12/22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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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방아쇠를 당길 생각이 아니었어.
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거든.

아니, 오히려 난 변하려고 노력했지.
그건 너도 잘 알거야.

네가 날 쓰레기 취급만 하지 않았어도,
쓰레기 더미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지만 않았어도,

난..

그냥 그렇게 주저 앉아버리려고 했지.
너의 그 한 마디만 아니었어도,
난 네 머리를 관통시킬 생각이 아니었어.

난 달라지고 싶었거든.
미치도록 벗어나고 싶었거든..

2007/12/15 18:46 2007/12/1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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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어떠셨을까.

때때로 마음에 분노가 일지 않았을까.
사람에 실망하고 외로움에 사무치는 시간들이
일절 없었을까.

인생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
죽음의 위협도 받으면서 내분과 외환 가운데에서
자신이 품었던 사람들의 비난 속에 십자가형을
받아야 했던 그에게서도 남다른 눈물과 마음의 상처로
뜬 눈으로 새운 밤들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아버지의 알려주신 뜻대로 자신의 삶을
방향지었던 그의 길을, 과연 나는 걸어갈 수 있을까.
2007/12/12 19:17 2007/12/1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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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좀더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옥집사님의 3부작은 심리학과 마케팅, 그리고 엔터테인먼트로 대변되는 것들에 기독교의 본질이 많이 훼손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쓰여진 것입니다. 여기에서 마케팅은 가치중립적인 방법이라는 느낌을 어느 정도는 받을 수 있으나 기독교 안으로 들어온 마케팅적 요소는 분명 그 자체만으로도 악하게 치부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전 저작에서 심리학은 기독교에 강한 영향력을 보이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심리학 자체가 학문의 범주에 속할 수 없을 정도로 사이비 과학에 가깝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특히 소비자중심주의로 대변되는 현대 교회의 흐름에 대한 강한 비판과 문제 의식을 가지고 시작된 본 연작들은 과거 청교도 신앙과 칼빈주의로 대변되는 신앙의 성향으로 교회를 회복해야 할 것이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이에대해 저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지적했고, 또한 반면 제 개인적으로는 이 두 책에 대한 긍정적 요소들에 대해 많이 동의하고 있다는 것도 이야기드린 바 있습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소비자중심주의, 인간적인 방법, 현대 사상과 같은 류의 문제들에 있어서 옥집사님이 기독교와 극단적 대립구도로 이 '묶음들'을 설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앞서 말한 것들을 통칭하여 '문화', 혹은 '세상'이라고 정의한다면 결국 이 문제는 기독교와 세상의 관계,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기본 전제의 문제로 환원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러한 '기독교와 세상의 문제'는 리차드 니버의 유명한 저서인 <그리스도와 문화>라는 책에서 한 다섯 가지의 범주로 그 입장을 구별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니버는 기독교와 문화, 기독교와 세상의 관계를 1. 대립 2. 역설 3. 조화 4. 종합 5. 변혁 모델로 그 범주를 나눈 후 변혁 모델로서의 기독교와 세상의 관계를 나머지 4개의 모델에 비해 가장 설득력 있는 모델로 소개하였습니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와 아브라함 카이퍼와 같은 신칼빈주의자들과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이들(이를테면 헤르만 도예빌트와 알버트 월터스가 여기에 속합니다)에게 이 모델은 기독교 안에서 아주 유효한 모델임을 입증하였고 또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이 모델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기독교는 문화를 적대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변혁시킬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적할 것은 다른 대립 모델이나 종합 모델과 같은 것들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문화와 기독교의 관계 설정에 있어 개혁 모델이 가장 효과적이며 타당해 보인다는 것이지요.

옥집사님의 글을 차근차근 읽어보면 지속적으로 언급했듯이 각론적인 내용들에 있어서는 적극적으로 100% 지지를 나타낼 만큼 속이 후련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특히 지난 번 저작에서 조엘 오스틴의 사례라거나 이번 책에서 새들백교회, 윌로우크릭 교회의 사례들을 분석한 것은 참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사례들을 비판하는 틀로 작용하는 보다 근본적인 잣대, 즉 세계관에 있어서 옥집사님은 심리학,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현대 사상, 그리고 인간 중심적인 마케팅적 요소, 이후에 쓰게 될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문화적 요소들을 기독교와 대립구도로 끌고 가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복음에 어떤 순수하지 못한 요소들이 섞이는 것 자체를 불편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복음은 그 당대의 문화와 소통했고 그 안에서 마치 밀가루에 섞인 누룩처럼 어떤 변혁적 요소로 작용해 왔음을 발견합니다.

예수님도 복음의 형이상학적 요소들을 전달하는데에만 그 사역을 제한한 것이 아니라 아픈 자를 고치시고 배고픈 자에게 빵을 주시며 그들의 필요에 민감히 반응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역이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한 단순한 '떡밥' 같은 것이 아니라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표적을 보이기 위함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도래하는 그 분의 나라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의 나라인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피조물들이 온전히 회복되어 그 피조물들을 온전한 방법으로 누리는 나라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옥집사님이 '물든'이란 표현을 쓴 것에 크게 동의했습니다. 복음과 세상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 그 복음과 세상의 위치가 뒤바뀐 것이 현대 기독교의 비참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적 요소가 교회에 들어오면서 복음의 본질을 마치 세상적인 것으로 채우는 것 자체에 대한 것이 '...에 물든"이란 표현으로 대변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마케팅이나 현대 사상, 심리학 자체는 기독교에 반하는 요소들이 있지만 또한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어느 정도 효과적인, 그리고 변혁의 필요성이 있는 요소임을 전제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마케팅적 요소자체를 뿌리 뽑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성경암송대회를 해서 상품을 주는 행위, 새벽기도회에서 성도들의 필요들이 적힌 기도제목을 받아서 그것들을 위해 기도하는 행위, 예배에 현대적인 기술이나 성도들이 보다 예배에 활력을 받을 수 있는 요소들을 적용하는 행위, 상담이나 심리학적 방법들을 가지고 성도들을 돕는 행위는 제 생각으로 그 자체가 악하다거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것에 복음의 핵심적인 요소들이 가려지며 그것들로 인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성경의 권위, 구원의 유일성, 성령의 사역이 불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치닫는 것입니다. 복음이 세상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복음을 물들이는 것이 현대 교회의 비극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이유로 옥집사님의 책에 큰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완전히 동의하기에 옥집사님의 책은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몇몇 요소들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각론들을 감싸고 있는 전제들에 있어 때로는 치밀해보이지 않으며 때로는 제 신앙과 배치되는 부분도 있음을 발견합니다. 혹은 제가 독해력 부족으로 혹은 책을 세심하게 읽지 않아 생기는 편견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옥집사님 같은 분들이 한국교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또한 제 생각에 대해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봐주시고 문제가 되는 부분들은 때로는 혹독하게 비평해주셔도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저나 옥집사님의 견해들은 보완 되며, 복음은 더 순수해지고 빛을 발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샬롬.
2007/11/27 18:36 2007/11/27 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