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들 사이의 경계선 허물기"
"우리의 스승인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의 영전에 이 책을 바칩니다."
위의 문구로 시작되는 박노자 교수의 이 책은 여지없이 성역을 무너뜨리는 작업을 이루어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것이 동양의 모습이 아닌 서양이 바라보는 동양의 왜곡된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영전에 바쳐진 이 책은 러시아,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이스라엘에 걸친 하얀 제국의 가면을 들춰낸다.
이슬람을 테러 자행국가로 지명한 저 유명한 영화 <다이하드> 씨리즈를 보며 자라난 내게, 죽어가는 이라크의 서민들을 뒤로한 채 걸프전에서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우수성과 전략을 기반으로 한 첨단 테크놀로지에 환호했던 CNN 뉴스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던 시대에 가치관의 혼란을 겪던 내게, 살인마에게 주어진 노벨상을 받는 것을 어릴 적 꿈으로 삼던 내게 이 책은 더 이상 서구의 눈으로 동양을, 우리를, 나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편견을 한 꺼풀 더 벗겨내어 주는 역할을 해 주었다.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서구 중심주의는 우리가 헐리우드 영화만큼이나 유럽 영화에 열광하는 것에서 드러나며, 종로 어학원 근처에서 만나는 백인에게는 달려들어 길을 가르쳐 주는 친절함을 보이는 반면, 안산 근처에서 지친 몸으로 퇴근하는 제3세계 노동자들 앞에서는 뒷걸음질 치며 아이들 조차 가까이가지 못하게 하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코엑스 몰의 화려함과 지하철 매 구간에서 울려퍼지는 영어 방송은 마치 미국의 식민지를 방불케 하는 비참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세계화라는 이름의 회벽으로 뒤덮는다.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들썩이며 말이다.
"옥시덴탈리즘의 비참"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박노자 교수는 이 책을 쓰면서 "독자들이 '선진국'만 역사의 무대로 인식하는 태도를 벗어나 일제와 다를 바 없는 미제의 침략을 당하는 이라크나 침공위 워험이 직면한 시리아, 식민 통치에 허덕이는 티베트, 박정희나 전두환과 유사한 점이 있는 노선을 지향하는 푸틴 정권 하에서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를 체득하고 있는 러시아 등, 그 모든 변방들에 대한 동병상련의 동지 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 원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이미 성공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박노자 교수의 몫이 그것이라면 이후 하얀 가면을 벗는 일은 우리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