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Posted
Filed under 단문모음/인용들
천재지변의 사고로 딸을 잃은 엄마가
한 세미나에서 자신이 겪은 감정을 말하는 도중
눈물이 복받쳐 말을 잇지 못하면서 발표가 중단되었답니다.
그랬더니 사회자가 슬며시 곁에 다가와
물컵을 건네주면서 속삭이듯 말했다지요.
‘눈물도 말言이에요’

그 한마디로 깊은 날숨 같은 위로를 받았고
덕분에 감정을 잘 추스를 수 있었다는
그녀의 경험담을 전하는 일은 차라리 사족입니다.
자신을 그 엄마의 입장에 놓고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오는 문제이니까요.

부부 싸움 도중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너무 답답해서 울고 있는 아내에게
‘당신이 지금 울고 있는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해서 말해보라’는
논리적 남편의 전략적 주문은
아내 입장에선, 일종의 재앙입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눈물도 말(言)입니다’ 같은
지혜와 아량을 발휘할 사람이 곁에 있다면, 축복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지혜와 아량이 어른의 필수 조건인 것 같은 생각이
절실해지곤 합니다.
2009/12/03 22:55 2009/12/03 22:55
Posted
Filed under 단문모음/인용들
현재 스타급 연예인으로 활약 중인 이들의 경험담을 종합하면,
연예인 선발 오디션 현장에선 간절한 소망과 준비가 많았던
당사자는 떨어지고 무심결에 그들을 따라나선 친구나 동생이 발탁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지요.

제 생각에 머피의 법칙같은 이 희안한 현상의 핵심은,
인공적이고 의도적인 꾸밈보다 있는 그대로의 ‘무심함’이 더 강력하게
사람의 마음을 잡아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극도로 공을 들인 신부 화장이 그 사람의 가장 매력적인 모습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것처럼요.

40대 후반의 나이에도 띠동갑 정도 되는 연하남의 구애가 심심치 않은
한 여성 화가는 그 비결을 묻는 주위의 부러운 시선에 ‘무심함’ 때문일
것이라고 자체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정말로 그 연하남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적극적인 구애가 있다는 거지요.

때론,
열정조차도 없는 고요한 상태에서 자신의 심리적 속살이 무심하게
드러날 때 자기매력이나 자기 에너지가 가장 파워풀해 집니다.
아무 거칠 것 없이 활짝 기지개를 켜고 있는 봄의 산과 들이 어디에도
견줄 수 없을만큼 설레이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처럼요.

그렇게 본다면,
심리적 속살을 가로막는 지나친 몰입이나 욕망 혹은 집착이
문득 문득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일지도요.
2009/03/30 22:47 2009/03/30 22:47
Posted
Filed under 단문모음/인용들
정신분석에서는 내담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침묵을 하면
침묵 직전의 이야기에 그 사람의 핵심 메시지가 담겨있을
가능성이 많다고 판단합니다.

둘 이상이 모인 자리에서 침묵이 흐를 때 가장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은 침묵의 불안을 견디는 인내지수가 제일 낮은 사람입니다.
침묵을 견딜 수 있는 힘은 일종의 심리적 능력입니다.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침묵이 없는 이야기는 무의미한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적 휴지기(休止期)를 견디지 못하는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적절한 휴지기를 삶이 정체된 것으로 착각해
침묵의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처럼
불필요하게 신발끈을 조이다 보면 괜한 에너지 소모가
많을 수밖에요.

침묵 직전의 이야기에 핵심 메시지가 담겨 있듯이
심리적 휴지기 뒤에는 반드시 삶의 고갱이가 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2009/03/13 22:47 2009/03/13 22:47
Posted
Filed under 단문모음/인용들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상사화相思花

기차 여행에서 마주 앉은 일행이 보는 풍경은 조금 다릅니다.

기차의 진행방향 쪽으로 앉은 사람은 다가오는 풍경을 보지만
반대편에 앉은 사람은 지나온 풍경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풍경에는 미묘한 온도차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얼굴을 자주 대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서로 다른 풍경을 보며
대화하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는 때가 있다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마주 보는 사이라는 게 오히려 짐이 됩니다.

친밀한 관계에 있는 어떤 이와 적당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면 더 오랫동안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할 수 있을지도요^^
2008/10/30 22:39 2008/10/30 2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