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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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7)
- 언행 일치와 언행 해체 사이에서

/김용주


두 사람에 관한 기억
시간이 지나 교제는 끊어졌지만 가끔씩 기억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한 분은 <복음과상황>에서 일하시다가 지금은 청년목회자연합(Young2080)의 문서출판본부의 이은섭 팀장이다. 한창 복상 독자모임이 활발하던 시절, 그 분 집에서 모임을 했던 적이 있었다. 잡지와 교계에 대해 한참을 열심히 토론을 하다가 밤이 늦었다. 간단한 다과를 한 후라 정리를 급하게 하고 가려고 주섬주섬 음식을 정리하고 있었다. 비닐에 쓰레기를 버리고 있는데, 그는 내 비닐을 낚아채서는 다시 일일이 분리 수거에 들어갔다. 나는 시간이 너무 늦어 마음이 바쁘기도 했고, 사실 분리수거를 그렇게 철저하게 하며 살 지도 않았던 터라 그의 행동이 조금 낯설고 불편했다. 그는 과일 껍질과 나무 젓가락, 그리고 각종 일회용 접시에 하다못해 프린트물에 박힌 철심까지 다 분류하여 정리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날 그가 내게 해준 환경오염에 대한 다소 투박했던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에게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분리수거가 내게는 낯설게 다가온 사실이 많이 부끄러웠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 날 처음으로 나는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 생각과 실제 습관 사이의 괴리감이 얼마나 큰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더 있다. 독자 모임 때 만났던 ‘그람시’라는 아이디를 쓰는 형이었다. 그에 대한 몇몇 기억이 있지만, 무엇보다 그가 간식을 사 온 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좌파였고 신자유주의를 반대했던 그는 간식도 동네 노점상에서 파는 것들을 사왔다. 그 때 그 음식이 뻥튀기였는지 붕어빵이었는지, 혹은 튀김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가 겸연쩍게 웃으며 ‘동네 장사하는 분들의 주머니를 채워드려야 한다’는 말은 아직까지 기억이 난다. 퇴근 할 때 나는 당산역에서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데, 역의 오른쪽에는 맥도날드와 롯데리아가 있고 오른쪽에는 포장마차 노점상들이 즐비하다. 지금도 나는 가끔씩 허기진 날에는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돌아보다가 그를 떠올리며 노점상 쪽을 향하곤 한다.


언행일치? 언행해체!
모 방송 개그 프로그램 중에 ‘언행일치’라는 코너가 있었다. 아내와 즐겨보곤 했었는데 그 코너의 개그 코드는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넘어 몸과 말의 ‘해체’에 가까웠다. 가족으로 분장한 그들은 서로가 대화를 하는 중에도 대화와는 전혀 상관 없는 몸개그를 선보였고 그런 그들의 스타일이 참 기발하단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포스트모던’한 개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요즘의 우리가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우리는 우리가 어떤 독립적인 결정자가 아님을 인정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스스로를 여러 가지 단편적인 경험과 정보, 그리고 습속의 조합 내지는 혼합유기체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특별히 고민하고 살지 않은 많은 개인들은, 어찌 보면 ‘몸개그’에 가까운 이른바 ‘언행해체 현상’을 자주 경험하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일례로 이제는 그 논의가 시들해졌지만 ‘보보스’ 논쟁이 그랬다. 강준만에 따르면, 데이빗 브룩스가 그의 책에서 처음 언급한 보보스(Bobos)는 미국의 부르주아이자 좌파-엘리트 그룹으로 권력과 금력을 누리며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녀 ‘리무진 진보주의자’라고도 불린다. 좌파-엘리트인 그들 대부분인 명문대학을 나오고 유복한 생활을 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나 소수 세력의 대변자로 행세하여 ‘좌파처럼 생각하고 우파처럼 생활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자본주의 축복을 한껏 즐기면서 혁명 투사 체 게바라를 좋아하는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그들은, 그 존재 자체가 일종의 퓨전 현상이다. 나는 그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영향으로 인해 이들에 대한 평가가 유보되거나 혹은 매체가 나서서 구매의 주체인 그들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현상이 신기했다. 대외적인, 그리고 거시적인 자신의 주장이 소외된 사회 계층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소신과 상반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런 삶 자체가 어떤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 나라의 젊은 부자들은 그들의 ‘관(觀)’보다는 ‘스타일’을 흉내낸다는 것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들의 삶이 어떤 의미에선 퓨전이라기 보다는 ‘해체’에 가깝지 않은가.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마음이 씁쓸해진다. ‘언행일치’의 몸개그에 한껏 웃으며, ‘보보스’같은 좌파 엘리트들을 위선자라며 정죄까지는 안 해도 어느 정도 불편하게 여기는 나도 사실은 여전히 환경 문제에 둔감하고, 가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동네 슈퍼마켓과 납품업체들의 목을 조여대는 대형할인매장에서 별 고민 없이 물건을 구입한다. 그 뿐이랴. 버거킹 햄버거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외국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을 즐기며, 할리우드 영화와 미국 드라마에 열광하며 살아간다. 좌파 지식인들처럼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를 부정하며 살 자신은 없어도 김진석의 책 제목처럼 이른바 ‘기우뚱한 균형’ 상태로 세상을 바라보며 나름의 비판적인 잣대를 들이대보려 하지만, 내 미시적인 삶 가운데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파편적인 기호들과 습속들은 지속적으로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일상 속의 일정 부분은 통일된 자아를 소유하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일정 부분은 내 의도와 기대와는 달리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잔존한다.

꿈은 해결되지 않은 현실의 문제가 무의식 중에 나타나는 것이라고들 한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은 교제조차 없어진 과거의 사람들을 회상하고 자꾸 돌이키는 건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한 불편함과 부끄러움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내면 때문일 것이다. 때로 내뱉는 주변 사람들의 한 마디가 그 사람의 일관된 오랜 습관처럼 느껴질 때 나는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된다. 설령 그가 바른 삶을 살지 않을 때조차도 자신의 말과 원칙에 자신의 삶을 길들이는 사람들을 통해 나는 자주 나를 반추한다.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개중에는 부러울 만큼 많은 지식을 소유한 사람도 있고 멘토로 삼을 만큼 존경할만한 선생도 있다. 하지만, 가끔씩 회사에서 프린트물에 박힌 철심을 떼어낼 때마다, 퇴근길에 맥도날드와 호떡집 골목에서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힐 때마다 그 두 사람이 떠오르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끝)

*월간 <복음과상황> 08년 11월호 기고글.
2008/11/01 00:07 2008/11/0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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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의 그림에세이] 상사화相思花

기차 여행에서 마주 앉은 일행이 보는 풍경은 조금 다릅니다.

기차의 진행방향 쪽으로 앉은 사람은 다가오는 풍경을 보지만
반대편에 앉은 사람은 지나온 풍경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풍경에는 미묘한 온도차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얼굴을 자주 대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서로 다른 풍경을 보며
대화하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는 때가 있다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마주 보는 사이라는 게 오히려 짐이 됩니다.

친밀한 관계에 있는 어떤 이와 적당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면 더 오랫동안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할 수 있을지도요^^
2008/10/30 22:39 2008/10/30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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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카피레프트, 그리고 네티즌 (인물과사상/독자투고)

/ 김용주

 


온라인 컨텐츠와 저작권
컴퓨터, 특히 인터넷을 사용할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 대다수의 네티즌들이 그렇겠지만 주로 MP3 파일이나 영상 파일, 소프트웨어 등의 불법 다운로드 문제와 온라인 컨텐츠의 포스팅(게시)이다. 전자는 파일의 공유 문제로, 이는 물론 컴퓨터와 인터넷 안에서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파일의 공유나 다운로드에 집중되므로 인터넷 환경이 그 근본적인 원인이 될 법 하다. 후자는 흔히 글의 제목에 '펌'이라고 명시하고 무단으로 전재하는 각종 글들을 지칭하며, 이러한 행위들은 실상 저작권(copyright) 내지는 지적재산권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저작권 문제를 접한 건 90년대 중반 대학생 시절, 한 교수님을 통해서였다. 수업 도중에 그 분은 유학시절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악보를 복사하려 했는데, 그것을 지켜 보던 노부인이 그것은 범죄 행위라며 크게 비난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 시절 선교단체에 있던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엄청난 양의 악보들을 복사하여 사용하곤 했었는데, 그 얘길 듣고 보니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무개념’이었던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이렇듯 온라인 컨텐츠 문제의 시발점은 앞서 말했듯이 인터넷 환경 자체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 기반의 컨텐츠들은 언제든지 ‘COPY & PASTE’가 가능하고 변형 내지는 왜곡을 일삼기도 쉽다. (물론 그 반대로 개선이나 확장도 가능하다.) 온라인 컨텐츠의 사용을 기술적으로 제재할 수도 있겠지만, 항시 해킹을 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기술적으로 이를 막아내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나 영화, 음악 파일, 온라인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이를 위반 시에는 제재를 받게 되어 있다.

 

누군가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에 대한 부당한 사용은 온라인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지적재산권이나 그 한 예인 특허권, 저작권 등이 이에 속한다. 흔히 1952년 유네스코에 의해 주창된 이유로 '유네스코 조약'이라고 불리는 세계저작권협약은, 예술 및 지적인 작품을 포함한 저작물에 관하여 저자와 저작권을 가진 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시도로 성립되었고 우리 나라에서도 1987년 개정과 함께 적용되어 지속되어 오고 있다. 흔히 ⓒ 마크는 모두 이러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상징한다.

 


카피레프트, 오픈 소스 운동
이러한 저작권, 지적재산권의 반대편에는 컨텐츠의 공개(open) 혹은 무료(free)를 주장하는 카피레프트, 혹은 오픈소스 운동이 있다. 카피레프트(copyleft)는 지적재산권(copyright)에 반대해 지적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게 하려는 이들에 의해 시작된 운동이다. 1984년에 리처드 스톨먼(Richard Stallman)에 의해 시작된 이 운동은 소프트웨어의 상업화에 반대하고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사용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고, 그런 이유로 이 운동은 ‘오픈 소스(open source)’ 운동으로도 불린다.

 

'오픈 소스' 운동은 프로그램의 근본이 되는 소스 코드(source code)와 그 소프트웨어의 무상 공개를 목적으로 한다. 이 운동은 흔히 GNU-"GNU는 유닉스가 아니다"란 의미를 갖는 영어 문장 "GNU's Not UNIX"의 약자로, 원래의 문장 안에 자신이 이미 들어 있는 재귀 약자이다-라 불리는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고, 이후에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에 의해 UNIX 환경을 PC에서도 가능하게 만든 리눅스(Linux)라는 OS가 오픈 소스로 개발됨에 따라 본격화된다. (라이센스에 대한 보수적 위치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있다면 그 반대 극단에 리눅스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오픈 소스에서 ‘소스’의 정의는 '자유로운 재배포의 허가', '파생소프트웨어 배포의 허가', '개인이나 집단의 차별금지', '적용분야 제한의 금지' 등 10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오픈 소스, 혹은 카피레프트라 불리는 이 운동은 소프트웨어의 소스 코드 공개로부터 비롯되었지만 점차 모든 저작권의 공유 운동으로 확대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중반부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운동으로 인해 많은 네티즌들은 ‘모든 정보는 공유되어야 한다’는 모토와 함께 온라인 컨텐츠를 공유 가능한 방식으로 배포하였고, 그로 인해 이제 웹페이지는 게시판, 방명록의 수준을 넘어서 지식 검색이나 위키피디아와 같은 오픈 사전, 그리고 RSS기반의 블로깅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컨텐츠들을 생산, 공유, 배포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비영리 목적의 라이센스 운동도 시작되어 대다수의 블로그에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센스(CCL, Creative Commons License)를 사용하는 곳이 많아졌다. CCL은 CCI(Creative Commons International)의 일환으로 2005년 CC Korea가 제공하기 시작한 것으로 자신의 창작물에 대하여 일정한 조건하에 모든 이의 자유이용을 허락하는 내용을 명시한 라이센스(License)이다. 특히, 오픈 소스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설치형 블로그인 테터툴즈/텍스트큐브는 이러한 CCL을 기본 사양으로 탑재하여 배포하고 있다. CCL은 대개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인 경우 어디서나 전재 및 배포가 가능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이러한 커먼 라이센스를 선호하고 있다.

 


오픈 소스와 카피레프트의 암(暗)
하지만 이러한 오픈 소스 운동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대부분의 경우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프로그래머 내지는 컨텐츠 생산자의 비용 문제이다. 오픈 소스 운동의 중심에는 비영리 목적이라는 대의가 존재하며, 이를 위해서는 개발자에 대한 보상 문제가 무시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때로는 광고 수익이나 기타의 방법을 쓰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오픈 소스 운동 참여자들은 때때로 본업과는 별개로 이 운동에 동참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문제로 한때 오픈소스운동은 난항을 겪기도 했다. (개발자나 컨텐츠 제공자들이 무료로 제공되는 컨텐츠에 대한 일방적이고 불명확한 전달, 에러 발생 시의 A/S나 수정에 대한 책임 회피 등) 따라서, 여전히 카피레프트 운동이 목표로 하는 소프트웨어나 온라인컨텐츠의 자유로운 공유에 있어서는 이렇듯 방대한 지적 작업에 대한 보상 문제가 잘 정리되어야 함을 전제한다.

 

이러한 연유로 오픈 소스 운동과 저작권, 지적재산권 옹호론은 인터넷 공간 안에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이를 방관하거나 대충 무시하려는 경향이 짙다. 특히 많은 언론매체들이 온라인 컨텐츠를 자신의 웹페이지나 포탈사이트에는 무상으로 제공하지만, 개인 블로그의 스크랩과 같은 포스팅 행위에 대해서는 저작권 위반으로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네티즌들은 무시하려 하면서도 내심 찜찜한 마음으로 글이나 자료 등을 퍼오게 된다. 문제는 언론매체들이 네티즌 개인을 대상으로 저작권 소송을 제기할 경우 저작권법에 의해 최고 천만원에 5년형이 가능하며 이러한 소송 사례들이 실제로도 존재한다 사실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저작권법을 이용하여 온라인상에 유포된 공유 컨텐츠를 업로드 하는 개인에 대한 합의금을 노린 협박 사례도 늘고 있다.

 

내가 경험한 바로, 대다수의 기독매체와 진보매체가 온라인 컨텐츠를 전재하는 행위에 대해 저작권법 위반으로 경고를 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 매체의 기사와 자료들은 저작권법의 보호 아래 있기 때문에, 온라인 상에서 컨텐츠의 무료 접근성은 대부분 보장되지만 개인 웹페이지에 기사 전체를 포스팅할 경우에는 해당 컨텐츠에 대한 허가가 있어야 한다. 대체로 볼 때, 기독 매체나 진보 매체는 컨텐츠의 전재 문제에 있어 주로 '허용'을 선택하나 학회나 보수 매체에서는 간간이 '소송'을 선택함으로써 개개인의 포스팅 행위를 제재하는 듯 하다. 문제는 카피레프트를 지지하는 대다수의 네티즌들이 때론 저작권법을 어기는 문제에 있어서 무심하게 대응하다가 보수 매체들이 소송을 재기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온라인 콘텐츠 공유를 합법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안에서 합리적인 중간 지점을 모색해야
흔히 얘기하는 인터넷/네트워크/유비쿼터스 환경에서의 소프트웨어 및 MP3를 포함한 온라인컨텐츠들의 사용 문제는 내겐 아직 판단이 쉽지 않은 화두다. 판단하기 전에 먼저 인터넷 상에서는 그야말로 '대충' 흘러가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흐름에 대해, 특정 제공자는 허용하고 특정 제공자는 강하게 제한한다. 이에 따라 네티즌은 어떤 때에는 무임승차도 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제3자에 의해 협박을 당하거나 당사자에 의해 고소 당하기도 한다.

 

지적재산권을 그냥 쉽게 인정하기에 걸리는 부분도 없지 않다. 흔히 특허권은 지적재산권 보호라는 명목으로 발명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선진국의 기술을 개발도상국이 사용하거나 기술력 향상을 위해 이용하려는 시도 자체를 막는 결과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결국 이러한 권리는 가진 자, 가진 나라들의 기득권을 강화시키고 서민과 후진국은 접근 자체를 차단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소프트웨어의 경우, 확장성이나 공용 가능성을 배제시키고 자사의 프로그램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개발 컨셉트를 잡아 나갈 수도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나는 이런 논의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수의 네티즌들이 MP3나 영상 파일을 공유할 때 뒷거래를 하거나, 매체의 기사들을 대충 찜찜한 마음으로 퍼가기보다는 좀더 적극적으로 방향도 설정해가고 요구도 하고 책임도 질 수 있는 열린 장을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포스팅에 대한 비용을 보다 저렴하게 부과하여 네티즌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방식의 온라인 컨텐츠 비용이 산정될 수 있다면,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사용하듯 컨텐츠에 대해 좀더 양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갈수록 IT업계의 라이센스 관리 방식도 ‘소유’ 개념에서 ‘일시적 사용’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으므로, 이를 저작권에 적용해 보는 것도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한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기사를 전재할 때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므로, CCL방식을 따르는 곳에서는 컨텐츠의 저작권 비용에 차등을 두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 다수의 유명 소프트웨어들도 아카데미 버전의 저렴한 라이센스를 학생들 대상으로 보급하기도 하며, 특히 Adobe사에서는 자사 프로그램인 Acrobat에 대해 라이센스를 차등화시켜 공급하기도 하지 않던가. 온라인 컨텐츠도 이렇게 라이센스를 용도별로 등급화시켜 제공하면 어떨까. 이럴 경우 그간 네티즌의 걱정도 덜고, 이제껏 그저 지켜만 보던 매체들도 또 다른 수익 모델을 창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이는 간간이 떠오르는 개인적인 생각일 뿐, 저작권과 카피레프트 운동 사이의 문제를 인터넷의 양지로 끌어들여야 이 문제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법 하다. (끝)

2008/10/01 00:10 2008/10/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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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6)
- ‘나쁜 그리스도인’

/김용주


 
<나쁜 그리스도인>을 읽고
제 목부터가 눈에 확 띄는 책이었다. 그간 기독교 비판서적들은 참으로 많았다. 예수 출생의 비밀을 캐낸다거나, 역사 속의 기독교 죄악들을 담은 책들로부터 최근에는 안티 기독교 카페에서 출판한 책까지, 기독교를 비판하는 책들은 호기심에 사서 읽기는 했어도 큰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해왔다. 물론 이 말이, 내가 몸담고 있는 복음주의권을 향한 세상의 비판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였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읽게 된 <나쁜 그리스도인 Unchristian>은 내가 그간 헛다리를 짚은 듯이 느꼈던 복음주의권 비판이 제대로 이뤄진 책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곧 교계에서 계속해서 들을 듯 하니 장황하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몇 부분만 인용할까 한다.

“외부인들은 복음주의자들에 대해 가장 큰 반감을 보였다. ‘복음주의자’라는 표현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복음주의자’에 대해 유별날 정도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40쪽) “외부인들이 그리스도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에게 반감을 느끼는 가장 주요한 이유는 어떤 신학적 입장 때문이 아니다. 그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잘난 척’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를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외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41쪽) “이번 조사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봉사와 온정과 겸손과 용서와 인내와 친절과 화평과 기쁨과 선함과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61쪽)

아직 절반도 채 읽지 않은 이 책이 내겐, 송곳이 심장을 향해 깊이 박힌 듯 아프고 아프고 또 아프다. 이번에는 내가 할 변명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아내를 심하게 학대를 하면서도 성경공부를 인도하며 아내 사랑을 말하는 남편, 미혼모에게 남편 없음을 지적하며 매사에 충고를 하지만 그 충고대로 살지 못하는 교인들, 침례를 고집하다가 좋은 조건의 장로교회로 이직한 후 머리에 물을 뿌리는 것으로도 세례가 가능하다고 말을 바꾼 목사를 경험한 비기독교인들의 인터뷰 내용도 등장한다. 이는 비단 미국의 복음주의권이 이야기만이 아니다. 한국의 기독교라고 다른가.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의 복음주의권이라고 다른가. 그 안에 속해 있는 나의 신앙은 또 얼마나 구별되는가.


보수 기독교를 넘어
나 는 보수적인 교회에서 자랐다. 교회의 목사님은 항상 ‘국어대사전’만한 성경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셨고, 그냥 자기 곁을 지나가는 학생들에게는 “넌 담임목사님에게 인사하는 법도 모르냐? 너 누구네집 아들이니?”라고 호통을 치곤 했다. 당시에도 흔하지 않던 외제차를 몰고 다녔고 자녀들은 모두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신학생이 되어 돌아왔다. 교회 안에서는 소그룹 성경공부를 하는 교구가 있으면 말씀을 함부로 해석할 위험이 있다고 그룹의 리더를 교회에서 쫓아냈고, 매년 열리는 부흥회에서는 강사들이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사랑하셔서 건축의 마음을 주셨다”며 헌금을 강요하기도 했다. 지교회뿐만이 아니었다. 이 나라의 기독는 조찬기도회에서 축복기도를 드릴만큼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을 옹호했고 그 울타리 안에서 많은 유익을 누리며 급성장해왔다.

그런 배경 때문에 나는 내가 ‘복음주의자’로 거듭난 것을 너무나 다행스럽게 여겼다. 복음을 개인구원의 차원에서 하나님 나라와 그 분의 통치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기독교 세계관과, 로잔 언약으로 대변되는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이른바 ‘양날개론’은 그간 나의 신앙의 갈증들을 말끔히 해소해 줄만큼 시원했었다. 프란시스 쉐퍼로 시작된 기독교 사상가들의 지성은 나의 지적 갈급함과 신앙적 회의, 의심을 긍정하고 진리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만큼 복음주의는 내게, 과거 부정적 환경 속에 편견으로 다가왔던 기독교를 구원시켰다. 그 때부터 나는 신학과 정치, 그리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고, 특히 마음이 맞는 이들과 신학공부도 하고 발제도 하면서 사회와 교계에 쓴소리와 비판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한국의 복음주의자는 다른가
하 지만 나는 내 비판 의식에 조금씩 회의감이 들고 있다. 그 본질적인 원인을 솔직히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바로 보게 되었다. 그것은 앞서 책에서도 말한 복음주의자들의 ‘잘난 척’이다. 내가 자랑하는 복음주의는 어린 시절 내가 경험한 보수적인 기독교에서 벗어나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만들기는 했지만, 그 비판의식 자체에 안주하고 그것만을 즐기며 타인에게, 특히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신학과 사상의 난해함을 자랑이라도 하듯, 잘난 척을 일삼는 집단으로 전락했다. 내가 경험하는 복음주의권의 모습은 그렇다. 이전에는 구하기가 쉽지 않아 간신히 제본하여 읽던 책들도 이제는 번역의 질을 따질 정도로 완성도 있게 출판되는 축복을 누리지만, 또한 책이 출판되자마자 여기 저기서 회자되어 예리하고 창의적인 분석의 글들이 실시간으로 온라인 사이트 여기저기에 올라오지만, 사실상 그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아예 그 이야기 자체를 알아들을 수 있을만한 비그리스도인은 별로 없다. 나의 신앙에 관심을 가졌던 한 지인은 내가 이야기하는 복음주의나 기독교 세계관의 난해함에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나는 이제 스터디 모임을 하지 않는다. 기독교 서적도 잘 읽지 않는다. 난 요즘 어떤 기독교 사상가나 매체보다, 김용택 시인 같은 이의 책이 좋고 김장훈 같은 연예인의 기사가 좋다. ‘말’에 지나치게 경도된 복음주의자인 내가 부끄럽다. 기독 지성은 중요하지만 나부터가 비판의식과 사고에 함몰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향기’, ‘사랑’, ‘은혜’보다는 ‘날카로움’, ‘탁월함’, ‘잘남’, ‘해박함’에 경도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본다. 비그리스도인들이 보수 기독인들을 냉소적으로 대할 때, 같은 목소리로 그들을 비판하는 나를 그들은 어떻게 볼까. 보수 기독인과는 구별된 복음주의자로 칭찬할까. 의문이다. 그냥 행함보단 말이 많고 까칠하고 잘난 척하는 비슷한 류로 보지는 않을까. (끝)


*월간 <복음과상황> 10월호 기고글
2008/10/01 00:07 2008/10/0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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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 리얼 스토리ㅣ최민수는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허지웅 기자


세상은 얼마나 쉽게 이유를 만들고 합리를 씌워 결과를 만들어내는가. 누군가의 신념을 매도하고 개성을 희롱하고 사실을 왜곡하기에 얼마나 편리한 곳인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게, 누군가는 괴물이 된다.

최민수가 산에 들어 간지 4개월이 지났다. 산 속에서 홀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다. 가끔 급하게 필요한 물건을 매니저에게 부탁할 때를 제외하면 대개 그렇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최민수 사건은 어렴풋한 자취만 남기고 지워진지 오래다. 최민수가 훈계하는 노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칼을 휘두르고 차에 매달아 질주하다 세상의 질타를 당하고 산 속으로 숨어들어갔다지. 그렇게 막돼먹은 패륜의 기운만 묻어날 뿐이다. ‘최민수 70대 노인 폭행 의혹’ 사건이 아니라 ‘최민수 70대 노인 폭행’ 사건으로 남았다. 400억 원 규모 한-미-일 합작영화 <스트리트 오브 드림즈>의 출연은 무산됐다. 드라마 <한강> 출연료 미반납을 이유로 2번에 걸쳐 피소되면서 반갑지 않은 구설수에 다시 올랐다. 언론은 악재가 겹쳤다고 보도했다. 물론 사연이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민수의 연기 경력은 끝장난 것처럼 보였다. 아니, 정상적인 사회 활동이 더 이상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다. 세상은 누군가에 대해 한 번 내린 판단을 쉽게 뒤집지 않는다. 그것이 왜곡된 진실이라도 마찬가지다. 굳이 헤집어 진실을 따져볼 의지 따윈 드물다.

그러나, 저 떠들썩했던 ‘최민수 70대 노인 폭행 의혹’ 사건은 재판까지 가지도 못했다. 사건이 검찰로 송치된 이후 최민수는 두 번 서울 서부지방 검찰청에 출석했다. 처음은 단독 조사, 두 번째는 유씨 노인과의 대질 조사였다. 최민수는 변호사조차 대동하지 않았다. 경찰 조사 때부터 그랬다.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법이 공정한 판결에 따라 죄를 묻는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겠다며 굳이 변호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지난 6월 27일 서부지검은 최민수에 대한 폭행 및 협박 혐의에 대해 모두 ‘혐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무혐의였다. 기소되지 않았다. 항간에는 화해조로 거금의 합의금이 오고갔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거기 합의금 같은 건 없었다. 최민수는 죄가 없음이 밝혀지고 나서도 산에 머물렀다. 언론은 전만큼 시끄럽지 않았다. 정정보도는 당연히 없었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나

지 난 4월 21일 오후 1시경, 최민수는 운동을 마치고 하야트 호텔을 나섰다. 자기 소유의 지프 랭글러를 타고 이태원을 향했다. 늘 그곳을 경유해 집으로 가곤 했다. 그래서 이태원을 지나다보면 종종 오토바이나 지프차에 올라탄 최민수를 목격할 수 있었다.

이 태원 소방 사거리를 약간 미치지 못해 갑자기 도로가 막히기 시작했다. 신호 대기가 아니라 아예 차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은 최민수가 차에서 내렸다. 50미터 전방에 견인차가 길을 막고 있었다. 견인차는 D주차장 앞에 서있는 BMW 자가용을 견인해가려 했다. 이를 방해하고 있는 건 D주차장 직원들과 이 주차장을 사용하는 갈비집의 사장 유씨 노인이었다. 유씨 노인은 그 지역 유지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용산 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들과도 대부분 안면이 있을 정도라 경찰서를 찾았던 최민수측 일행들이 놀랐다는 후문이다.

이들의 다툼 탓에 체증이 발생한 것이다. 도로는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좀체 이런 걸 참지 못한다는 최민수가 상황에 합세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최민수는 견인차가 BMW를 견인해갈 수 있도록 도우려 했다. 결국 시비는 최민수와 유씨 노인의 몸싸움으로 옮겨 붙었다. 노인이 먼저 최민수의 멱살을 잡았고, 상호 몸싸움을 동반한 실랑이 중에 최민수가 입고 있던 셔츠 상단 단추가 모두 뜯겨 나갔다(이 뜯겨진 셔츠도 경찰에 증거로 제출되었으나 이에 대해 보도한 언론은 없었다). 최민수가 했다는 ‘폭행’은 이때의 몸싸움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폭력행사는 아니지만 멱살을 뿌리치기 위해 밀치는 것 역시 폭행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최민수가 주위 이목이 있으니 일단 주차장 사무실로 가서 이야기하자 제의했다. 사무실 안에서도 다툼이 계속 이어졌다. 이때에 대한 진술은 이해당사자에 따라 크게 엇갈린다. 최민수는 때리려는 것처럼 손을 들기는 했으나 폭력을 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유씨 노인은 최초 출동한 지구대 경찰들에게 최민수가 군화발로 처참히 짓밟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최민수는 바이커들이 종종 신는 큼직한 워커를 신고 있었다. 거기에 밟혔다면 건장한 청년이라도 무사하기 어렵다. 그러나 유씨 노인은 결과적으로 상반신에 동전만한 멍이 들었을 뿐이었다.

BMW의 견인이 완료되자 최민수가 자리를 떠나려 시도했다. 최민수가 사무실을 나서 자기 지프로 향하자 유씨 노인이 서둘러 신고를 했다. 사건은 이태원 지구대에 접수됐다. 최민수가 차를 출발해 50미터 가량 움직이다가 이태원 소방서 사거리에서 신호대기를 위해 멈춰 섰다. 그때 유씨 노인이 최민수의 출발을 막기 위해 지프 앞 보닛에 매달렸다. 마침 파란 불이 들어왔다. 당황한 최민수는 지프를 도로 갓길에 세우기 위해 차를 출발시켰다. 노인이 매달린 채로 지프가 수 미터 이동해 갓길에 멈춰 섰다. 수백 미터 질주 따윈 애초 없었다. 최민수가 노인을 지프 안으로 끌어들였다. 옆 좌석에 탄 노인과 최민수 사이에 다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사건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지점이 여기서 발생한다. 지프의 기어 뒤쪽에 움푹 팬 작은 공간이 있었다. 평소 오프로드를 즐기는 최민수는 거기에 작은 나이프를 상비해둔 상태였다. 나이프 주머니를 아예 본드로 차체에 부착해놓았다. 유씨 노인은 나중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진술을 번복하기 전까지 최민수가 칼을 끄집어내 휘둘렀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최민수는 끝까지 칼에 손도 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정적으로 최민수가 칼을 빼내 휘둘렀다는 목격자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 증언이었다. 당시 증언을 했다는 박모씨는 “칼을 꺼내 휘둘렀다고 말한 게 아니라 최민수씨가 칼을 꺼내 휘둘렀다고 외치는 노인의 말을 들었다고 증언한 것”이었다며 더 이상의 설명을 회피했다. 명백한 위증이다. 그러나 처벌할 수 없다. 현행 법상 재판 중이 아닌 수사 과정에서의 위증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이 때 지구대의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은 조사를 위해 지구대 사무실로 가야한다고 말했고, 최민수와 유씨 노인은 지프에 탄 채 그대로 지구대까지 이동했다. 지구대 사무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초반에는 고성을 지르며 서로의 입장을 변호했다. 그러나 곧 원만하게 화해했고 지구대 경찰 또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유씨 노인의 말에 사건을 종결지었다. 모든 게 거기서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 날 이후 무슨 일이 있었나

바 로 다음 날 최민수의 이름이 ‘배우 C'로 명기된 사건 기사가 인터넷에 등장했다. 일간스포츠의 보도였다. 최민수의 매니저도, 유씨 노인의 가족도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뒤늦게 사실을 안 매니저가 유씨 노인이 경영하는 갈비집을 찾았을 때는 이미 케이블 방송 취재진들이 도착해있는 상황이었다. 취재진들이 인터넷에 보도된 기사 내용대로 가족들에게 사건을 설명했고, 가족들은 무척 흥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3일에는 용산경찰서에 사건이 다시 신고 됐다. 유씨 노인이 한 것은 아니었다. 경찰은 당시 사건을 목격한 제보자의 신고였다고 설명했다. 유씨 노인이 먼저 경찰의 호출을 받았고, 유씨 노인이 최민수에게 “제보자가 경찰에 신고했다고 하니 조사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연락해와 같은 날 최민수 역시 용산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 다음 날인 24일, 최초로 최민수의 실명이 거론된 기사가 등장했다. 쿠키뉴스의 보도였다. 기자는 “경찰에 따르면”이라는 단서를 단 채로 “교통체증이 심하자 최씨는 차에 앉은 상태에서 주변을 향해 큰 소리로 마구 욕을 퍼부었다” “최씨는 차에서 내려 유씨를 폭행했다” “대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주먹으로 수차례 유씨를 때렸다” “최씨의 폭행에 놀란 유씨는 휴대전화로 ‘살려달라’며 인근 지구대에 신고를 했다” “최씨는 유씨는 매단 채로 200-300미터를 운전했다” “유씨가 떨어지지 않자 최씨는 오픈 지프차에 앉은 채로 소지하고 있던 등산용 칼을 꺼낸 뒤 본네트에 매달린 상태의 유씨를 향해 위협적으로 휘드르며 ‘죽인다’고 소리쳤다”고 상황을 서술했다. 경찰은 “경찰에 따르면”식의 인용이 가능할 정도로 제공한 정보가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 전달을 넘어선 수사나 감정의 개입이 눈에 띠는 기사다. 아니 기사라기보다 이건 차라리 소설에 가까웠다. 이후 타 언론사의 유사한 보도들이 일일이 사례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져 나왔다. 여론은 더할 수 없이 험악해졌다. 인터넷은 최민수를 향한 공격성 게시물로 넘쳐났다. 모두가 최민수를 증오했다.

최민수가 쿠키뉴스의 실명 보도 사실을 안 건 24일 최수종과 박수홍이 진행하는 <더 스타쇼>의 녹화 중간이었다. 이 날 촬영분은 전파를 타지 못하고 이후 폐기처분 됐다. 최민수는 공식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회견에 앞서 먼저 유씨 노인의 갈비집을 찾아가 무릎을 끓고 용서를 빌었다. 회견은 저녁 9시 30분 이뤄졌다. 그는 어쨌든 노인과 시비가 붙어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폭행혐의에 대해 다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고 전부가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다. 어제 진술을 다 끝냈다. 과장의 부분도 있다. 어차피 조사가 끝나면 다 밝혀질 것 같다”고 답했다. 더불어 "만약 그것(노인 폭행)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여러분들은 제발 나를 용서하지 말라. 진실은 밝혀지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이 유씨 노인측을 결정적으로 자극했다. 유씨 노인은 전치 2주의 진단이 나왔다며 고소할 뜻을 밝혔다. 28일 최민수가 노인이 입원해있는 병원을 문안차 방문했을 때 둘 사이에 화해가 이뤄지면서 비로소 유씨 노인의 마음이 풀렸다. 다음 날 유씨 노인은 폭행건과 관련해 최민수측과 합의키로 했다. 30일 경찰이 최민수와 유씨 노인을 다시 소환했다. 이날 조사에서 유씨 노인은 “당시 경황이 없어서 칼을 휘둘렀다고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 발짝 물러섰다. 또한 최민수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제출했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목격자 조사 등을 거듭한 결과 주먹질이나 발길질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최민수가 피해자를 매달고 수백 미터를 질주했다는 이야기 역시 크게 과장됐다"고 밝혔다. 이후 사건은 흉기 사용건에 한해 협박죄가 적용돼 5월 초 검찰로 송치됐다. 앞서 언급했듯이 검찰은 최민수가 흉기를 사용해 협박한 부분에 대해 6월 27일 최종적으로 무혐의를 선언했다. 서울 서부지검 황윤성 차장검사는 "폭행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최씨와 폭행당한 유모씨 사이에 합의가 이뤄진 사항이고, 흉기로 위협했다는 것도 실제로 칼을 뽑아 든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최민수는 괴물이 되었다

어 떤 한 사람을 향한 불특정 다수 언론의 왜곡보도가 이토록 집중적으로 자행됐던 사례가 있었던가. 이 정도면 폭격이라 할만하다. 기자회견 직후 최민수는 잠시나마 자살을 염두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번도 정정 보도를 요청하지 않았다. 더불어 구체적인 해명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어차피 해명이 아닌 변명으로 들릴 말이라면 하지 않는 게 좋고 어차피 시간이 다 해결해줄 것”이라며 스스로 거부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세상이 자신을 온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과연 죄가 없음이 판명됐다. 그러나 가끔은 비온 뒤에 굳지 않는 땅도 있는 법이다. 그는 이미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뒤였다.

유씨 노인 잘못이 아니다. 시시비비는 늘 발생하기 마련이다. 상황이 급박했기에 판단이 흐려졌을 수도 있다. 모두가 그렇듯, 사람은 때때로 기억을 조작한다. 문제는 언론에 있었다. 악랄했다. 사건 초반, 모든 게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였다. 상식을 거스를 정도로 기이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오보의 가능성 따위 얼마든지 감수하면서 기사를 내보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확한 사실을 알리고자 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무도 사실을 욕망하지 않았다. 정작 그들이 욕망했던 건 진실이 아니라 이슈였다. 정확한 사실전달보다 좀 더 빠르고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를 원했다. 뉴스 소비 행태가 인터넷 포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황색 저널리즘이 유난히 강화됐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특히 인터넷 언론이 보인 행태를 주목해보자. 눈에 띠는 제목일수록, 자극적인 이야기일수록, 특종처럼 보일수록 더 나은 자리에 기사가 배치될 수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더 많은 구독자는 더 많은 광고를 의미한다.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최민수 아니라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라도, 돈만 된다면 순식간에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 언론이다.

이 사안과 관련해 최민수측에 사과를 하거나 정정 보도를 한 매체는 하나도 없었다. 엉뚱하게도 윤승환이라는 이름의 네티즌이 ‘최민수씨 사건내막, 언론의 코미디’라는 글을 써 인터넷에 게시하면서 사실을 전달하려 애썼다. 최민수는 이 글을 보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사건 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비호감을 사고 있었다. 그의 과장된 남성성과 눈에 띠는 자의식, 일반인의 상식을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내는 듯한 문어체 발언들을, 사람들은 싫어했다. 이 정도 규모의 매도는 개인 최민수에 대한 선입견이 전제되지 않고선 좀체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 편으로 최민수는 보기 드물게 자기 목소리를 가진 배우였다. 자기 얼굴을 자기 소신을 자기 생각을 가진 배우였다. 더불어 그것을 거리낌 없이 표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이 시끄러운 시장판에서 배우 개인은, 엔터테이너 개인은 하나의 기업과도 같다. 뻐꾸기 마냥 빤한 말만 늘어놓는다. 느는 건 화장술뿐이다. 최민수의 말과 행동이 설사 호감을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해도 우리는 그를 조금 더 아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언론은 뜨거운 기사거리를 앞에 두고 조금 더 신중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나중에라도 사과하고 최민수 개인의 명예 복원을 위해 조금 더 신경 써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최민수는 괴물이 되었다. 허지웅 기자 (<프리미어> '리얼 스토리')
2008/09/29 22:39 2008/09/29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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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들으면
/송한얼


나는요
노래를 들으면
무슨 느낌이 나요.

슬픈 노래는요,
내가 죽는 느낌이구요.
신나는 노래는요,
싸우는 느낌이에요.

(마주이야기2, "튀겨질 뻔 했어요" 중에서)
2008/09/18 22:37 2008/09/18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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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받는다는 것과
고통의 이미지가 찍힌 사진을 보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고통의 이미지가 찍힌 사진을 본다고 해서
양심이나 인정을 베풀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더 망가져 버릴 수도 있다." 

(Susan Sontag, "On Photography" 중에서)
2008/09/06 22:35 2008/09/0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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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시를 쓰라고 하면 나는 대체로 반공적인 내용의 소재로 글을 쓰거나 흔히 말하는 '바른 소리'나 '착한 척'하는 시를 쓰거나 그것도 아니면 의성어, 의태어로 뒤범벅이 된 시를 쓰곤 했다. 사실 선생님들도 그런 시들을 좋아해서 주로 모범생 스타일의 동시들에 상을 주곤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시들은 대부분 아이들이 어른스럽게 흉내를 낸 모조적 시일 뿐,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정서를 전혀 대변하고 있지 못했다. 어린시절 일기장이나 시집들을 펼쳐보면 동심으로 대변되는 그 시절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지 못한 글들이 많아 못내 아쉽다.

서론이 길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쓴 동시들을, 마주이야기 교육연구소의 소장인 박문희 선생이 엮었고 어린이 문학, 글쓰기로 평생을 헌신한 이오덕 선생이 정리를 한 책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지은 시들에 그림도 더했다.

단적으로 말해 이 책은 훌륭하다. 내 어린 시절에 펼쳐보이지 못한 동심의 세계가 어른들의 잣대나 필터같은 것들에 걸러지지 않은 채로 잘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마음 속에 정리가 된다. 그렇지, 아이들은 아이들 답게 생각하고 표현하고 글쓰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동심을 회상하고 웃으며 자유롭게 과거를 돌아볼 수 있다.

아이들의 성글은 생각과 그림들을 어른의 잣대로 '순화'시키고 틀에 규정짓는 것은 동심에 대한 폭력이고 상상력에 대한 거세일 수 있다. 자신의 눈으로 아이들을 규정하고 과도하게 공부를 시키고 논술을 가르쳐서 훌륭한 어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오히려 꼭 읽어야 할 책이다.
2008/09/02 19:15 2008/09/0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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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정연주 사장 구속으로 방송계가 시끄럽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의 방송 언론 여정을 이 책에서부터 찾고 싶다. 모든 행보는 그 발자욱을 찾아 올라가 볼 필요가 있다. 그가 독재 정권 하에서 동아일보 사건으로 그리고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휘말리면서 겪었던 수배와 옥고. 그리고 한겨레 기자로 돌아와 워싱턴 특파원을 거쳐 돌아오기까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가 KBS 사장으로 취임하던 날, 나는 이를 두고 민주주의 세력이 승리를 거둔 상징적 사건이라 여겼다. 그리고 이제 그가 해직되고 구속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특별히 더 할말은 없다. 시간이 흐르면 진실은 더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단지, 한겨레 김종철 논설위원의 글로 내 생각을 대신한다.

"권력의 주구라는 오명을 무릅쓰고 시작한 일이었던 만큼 이들 기관이 한국방송과 정 사장의 뒤를 얼마나 철저하게 캤을지는 특별한 상상이 필요없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던 부정이나 비리 행위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일반적 통념인데 비춰보면 정 사장의 청렴이 오히려 돋보이는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이 정도 됐으면 손을 털고 포기하든가 아니면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 정권은 ‘좌절’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로 밀어붙였다. 감사원을 내세워 지난 5년간 1172억원의 누적 적자가 난 것은 곧 정연주의 ‘비위’라고 강변한 것이다.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사업상 적자가 경영상 잘못일 수는 있지만 “법에 어긋남, 또는 그런 일”(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비위’ 행위가 될 수 없음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지난 5년간 당기 순익은 오히려 189억원의 흑자였으며, 누적 적자도 방송 수신료가 오랫동안 2500원에 묶여 있었던 탓(한나라당은 지난 5년간 부단히 수신료 인상에 반대했다)이라는 한국방송의 반박을 접하면 경영상 문제 역시 정 사장에게 오로지 책임을 묻는 게 과연 맞는지 의문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정연주라는 사람을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서라도 본서는 다시금 읽어볼만한 책이 될 것 같다. 다행히 사장이 되어서 그런지 이 책은 절판이 되지 않았다. 이 시기에 한 번 추천해본다. 인간 정연주를 다시 생각해보자.
2008/08/17 19:14 2008/08/17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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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가끔 블로그에 음반이나 서평을 쓴답시고
평점을 매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에 사로잡힌다.
문제집이나 어학책, 뭐 그런 것들은 모르겠지만
논픽션의 에세이집이나 학문적인 지식들이 담긴 책들,
그리고 문학 작품이나 비평집.

이런 책들을 읽고 비전문가인 내가 이 책이 어떻다고
주절거리다가 점수까지 주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푸념에 빠진다.

재밌었다고, 당신도 보라고 하며
가볍게 적던 서평, 음반평, 영화평들도
따지고 보면 전문가의 결과물에 대한 비전문적 견해에
불과한 게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머리에서 김이 난다.
2008/08/05 20:06 2008/08/05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