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교회 식사 시간에... 자세 지대로 나오는 성하 :-)
록보컬의 피가 흐르고 있는 건지...
(촬영: iPhone 3GS/ Youtube 발행)
'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왜 이런거지?” 아버지가 내뱉은 의문문의 문장에 대답할지 말아야 할지를 잠시 망설였던 저는 조용히 되물었습니다.“아빠, 뭐가요?” 아마도 그 날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었나 봅니다. 비록 그 상대가 날마다 공부는 뒷전에 내팽개치고 놀기에 바쁜 아들이었을망정 말입니다.“어…그게 말이야…” 아버지는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성호야 내가 한참을 생각해도 잘 모르겠구나.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사람들을 교회에 많이 보내주시는지 말이야. 오늘 주일 예배 숫자가 5천명이 넘었어. 오늘 예배 후 차를 타는 대신 집까지 천천히 걸어오면서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도 정말 알 수가 없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지. 나 같은 사람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까지 이렇게 쏟아주시는 그 뜻을 도통 알 수가 없어.” '아니, 사람이 많아지면 좋은거지…별 이상한 걸 가지고 다 고민이네….'아버지의 불평 아닌 불평에 대답할 가치를 못 느낀 저는 내려놓았던 사과를 다시 집으며 보고 있던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얼마든지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단 몇 십 초에 불과했던 그 날의 기억이 아직까지 이렇게 생생하게 제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그 날 제가 느꼈던 바로 그 ‘이상함’ 때문입니다. 좋아해야 할 일을 놓고 좋아하는 대신 고민하고 당황하는 아버지의 그 모습이 준 의아함 때문입니다. 비록 그 날 이후 아버지는 늘어나는 사람들이 주는 고민을 우리 가족들에게 드러내 얘기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무려 이십 년이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던 아버지의 그 당혹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라지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의 목회 전반에 대한 깊은 고민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 고민의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바로 아버지가 지향하고 붙잡은 자신의 교회론과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오는 교회의 현실이 서로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론
아마도 많은 분들은 아직도 3년 전 상암 운동장에서 열린 평양 부흥 100주년 기념 예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날 설교에서 절규에 가까운 회개의 메시지를 내뿜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혹자는 도대체 옥한흠 목사는 뭘 그렇게 잘못한게 많아서 함께 기뻐하고 감사해도 모자란 부흥 100주년에 저런 찬물 끼얹는 설교를 할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 날 하나님께서 100년 전 부어주신 그 부흥의 역사를 기억하며 감사와 찬양 대신 하나님 앞에 회개의 통곡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그만이 갖고 있던 바로 이 오랜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목사로서 교회는 커졌고 사람들은 많아졌을지 몰라도 자신이 믿고 붙잡고 가던 '교회론'에 걸맞는 결과를 교회 속에서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 말입니다.
그만큼 아버지에게 '교회론'은 사랑의교회를 목회하는 내내 생명과도 같이 붙잡고 있던 가치였습니다. 아버지는 '교회론'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저에게 있어서 교회론은 목회자와 교회가 사는 생명과도 같습니다. 교회론이 왜 생명과 같으냐고 물으면 목회가 살고 죽는 것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도들을 영적으로 죽이느냐 살리느냐를 판가름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무엇이냐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목회자는 진정한 목회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목회자의 생명을 결정하는 '바로 그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중요한 교회론이 그가 목회하는 교회의 현실과 부합되지 않을 때 그 사실은 아버지에게 말못할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점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현실이 충돌할 때 고민하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그토록 붙잡고 있던 그의 교회론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 제가 관심을 갖는 교회론은 어떤 영역이나 분야가 아니고, 교회의 본질과 연결된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즉, 교회의 주체가 누군인가 하는 것입니다. 교역자인가 아니면 평신도인가?저는 교회의 주체가 평신도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했고, 교회 주체인 평신도를 위해 목회자가 어떤 사역을 우선에 두어야 하는지, 성도들에게 주어진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스러운 신분과 소명이 무엇인지, 그것을 목회자로서 어떻게 극대화시켜줄 수 있는지 등 이런 것을 고민하는 것이 저의 교회론의 중심이 되어 버렸습니다.....전통 목회는 평신도가 동원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저는 평신도를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주체, 동역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결국 아버지가 붙잡은 교회론의 핵심은 교회의 주체가 누구인가의 문제였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주체에 대한 재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어떻게 볼 때 목회자를 위해 존재했다면 이제 교회는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아니었습니다. 이를 위해 평신도는 교회의 주체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그 말씀에 의지해 그리스도를 닮은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야만 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목사와 교사를 교회에 보내셨으며 이제 교회는 기존의 예배 공동체와 선교 공동체로서의 정체성 외에 훈련 공동체로서의 또 하나의 얼굴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평신도를 명실상부한 교회의 주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그들에 대한 훈련이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결국 아버지의 교회론이 꽃피기 위해 필연적으로 소그룹을 중심으로 한 제자훈련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자도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교회의 주체이자 주인이 평신도라는 사실과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는 것이 왜 서로 충돌할까요? 도리어 좋아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교회의 주체되는 평신도들이 늘어나니까 말입니다. 주체들이 늘어나면 교회도 더 강성해지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교회론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인 제자도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교회론을 실현하는 실천적 방안으로 제자도를 정리하며 그 내용의 핵심을 다음 두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1. 한 사람 철학
정말로 아버지는 한 사람을 붙잡고 사역을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래 전 성도교회 대학부를 맡았을 때에도 당시 대학부에 남아있던 단 한 명의 학생, 지금의 방선기 목사님을 붙잡고 대학부를 시작했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시작할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이 볼 때 무식하고 답답한 방식인 소그룹 훈련에 매달려 매일을 씨름했습니다. 밤마다 제자훈련에 치중하다보니 새벽에 일어날 수 없었던 아버지에게 많은 분들은 새벽기도를 인도하지 않는 이상한 목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커지며 더 이상 소그룹을 직접 인도할 수 없게된 이후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제자훈련 교재 집필에 진액을 쏟았습니다. 아버지에게 한 사람은 교회 전체였고 교회는 바로 한 사람이었습니다.
2. 섬기는 리더쉽
교회의 주체를 평신도로 이해하고 그들을 양육하는 사명을 하나님께 받았다는 그의 교회론을 근거할 때 아버지에게 목사가 평신도를 섬겨야 하는 존재임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혹자는 가르치는 사람이 어떻게 섬길 수 있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늘 같은 주인의 아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를 생각할 때 가르치는 자가 사실상은 섬기고 있다는 점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에게 그가 지향하는 예수님을 닮은 제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남을 섬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섬김의 모델은 누구보다도 자신을 비롯한 목회자들에게 가장 먼저 적용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렇기에 ‘목회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동시에 성도의 종이다’라는 신념 아래 그는 자주 '이끌면서 섬기고 섬기며 이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주체는 평신도이며 주체된 그들을 바로 섬기며 이끌기 위해 목회자는 한 사람 철학으로 무장되어야 한다고 확신한 아버지에게 너무도 커버린 교회는 한 사람 철학을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든 구조, 제대로 평신도를 섬기기 힘든 구조의 그 무엇으로 다가왔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 은퇴 후 저는 제 목회가 자체적으로 자기 모순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너무 키워버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 교회론에 부합한 교회는 너무 비대해져 버리면 그 정신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 교회가 교회론과 제자훈련이 엇박자를 이룬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것은, 양이 많아져 버리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제가 은퇴할 때 사랑의교회가 주일 출석 장년 교인수 2만 3천명, 전체 등록 교인수 5만 명, 벌써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지금 사랑의 교회는 어찌 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제자훈련의 선두주자로서 교회론으로 볼 때, 그 정신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또 교회론의 본질에서도 위선자적인 입장에 빠질 수 있어 고민이 됩니다."
아버지는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정말로 내가 내 자신이 주장하는 대로 한 영혼에 최선을 다해 집중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가 과연 이렇게 클 수 있었을까? 아니, 결론적으로 이렇게 커진 상태에서 이제 더 이상 한 사람 철학을 바탕으로 한 나의 교회론 자체가 아예 가능이나 한 얘기일까?"
은혜 또 은혜
아버지의 사랑의교회 목회 내내 이런 고민 속에서 그가 하나의 돌파구로 붙잡은 길은 그냥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목숨을 건 설교준비였습니다. 아버지에게 나날이 늘어나는 성도가 주는 내적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길, 그나마 많은 성도들을 제대로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설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2004년 아버지가 조기 은퇴했을 때 많은 언론들은 모범적인 사역 계승이자 살신성인하는 지도자의 모습이라며 아버지를 일제히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제가 아들로서 볼 때 아버지가 조기은퇴를 결심한 진짜 이유는 89년에 잃은 건강이 주는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매주 피말리는 설교준비가 영적 중압감을 더 이상 버텨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설교는 십자가이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양심을 놓고 셈해야 할 몫이기도 했습니다.
" 흔히들 나를 보고 매주마다 수만 명의 성도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느냐고 하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설교가 나에게 보람은 안겨주었을지 모르지만,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설교의 부담감 때문이었다. 설교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숨은 군중들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강대상에 서고 싶지 않을 때가 없지 않았다."
이런 아버지가 매주 다가오는 설교의 중압감 속에서 붙잡은 유일한 것은 다름아닌 더 큰 은혜에의 갈망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역 전체를 꿰뚫는 이론적 개념으로서의 토대가 그의 교회론이라고 한다면 목사 옥한흠이라는 한 인간의 신앙 전체를 관통하는 한 가지는 다름아닌 은혜에의 갈망입니다. 아버지는 그 중에서도 어린 시절 자신이 맛본 특별한 은혜에 대한 그리움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내가 은혜에 취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은혜는 식지 않고 지속되었다. 성경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진하게 가슴을 울리는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황홀하게 만드는지, 나는 이 기간에 넘치도록 맛보면서 살았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이 강렬한 은혜의 맛이 서서히 식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그 은혜의 경지를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때에 받은 은혜가 내 한평생의 신앙생활과 목회의 질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요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받은 은혜의 질이 목회의 질을 결정한다는 아버지의 믿음은 그의 목회 내내 더 큰 은혜에의 사모함으로 드러났습니다. 무엇보다 목회자로서 받는 은혜의 깊이가 성도들의 신앙의 깊이를 결정한다는 그의 생각은 그에게 결코 쉽지 않은 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은혜에 대한 갈망이 간절한만큼 설교는 아버지에게 더 큰 무게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매주 설교를 놓고 그가 치르는 영적 전투는 피를 말리는 치열함 그 자체였습니다.
아버지는 어쩌면 단 한 번도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제대로 전달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은퇴할 당시 어느 방송에서 고백했듯이 자신의 부족한 은혜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의 설교를 통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데 대하여 성도들에게 미안해 하고 하나님 앞에 송구해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그렇게 무력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은혜에 갈급한 아버지의 그 약함을 통해 성령께서 더 강하게 그의 설교를 통해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한국설교학회장이며 서울신대 설교학 교수인 정인교 목사는 아버지의 설교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 우선 주목할 것은 설교를 대하는 옥목사의 진지성이다. 옥 목사는 자신이 설교를 준비하는 작업을 ‘십자가’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란 벗어버리고 싶은 부담을 의미한다. 그가 설교를 이토록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전하는 설교 말씀이 과연 하나님의 바른 말씀인가'에 대한 근본 질문에서 오는 고통이다. 옥목사는 바로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설교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고민과 고통이 그의 설교를 균형 잡힌 모범으로 만드는 기초가 되었다. 그의 설교에 묻어나는 설교자의 고민 그리고 말씀과의 치열한 전투 흔적이라는 진지성은 옥목사 설교를 설교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이다….중략….. 마지막으로 옥 목사에게서 보여지는 설교자로서의 특징은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설교자로서의 기품이다. 이 기품이란 본질적으로 그의 신앙적 인격과 투명한 삶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에게서 배어나오는 진지함과 장중함은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신’으로 그를 각인시킨다. 이것은 최근 강단을 희극화시키고 가볍게 만드는 일부 ‘코미디형 설교자’와는 대별되는 모습이다. 그는 강단에서 결코 자신을 과장하지 않을 뿐더러 회중의 귀를 즐겁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회중을 몰아붙이고 성도의 치부를 드러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접근은 일부 과도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말씀 전달자로서의 설교자에 대한 자각과 온전한 삶과 균형 잡힌 인격을 모토로 하는 것이다."
고독
아버지는 목사로서도 또 인간으로서도 고독했습니다. 무엇보다 설교자라는 짐을 숙명적으로 지고 사는 사람으로서 은혜에 대한 갈급함은 그를 필연적으로 고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고독은 아버지 스스로가 초래한 결과였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알지 못해 그 큰 은혜를 사람에서 제대로 선포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사람들과 어울려 놀 여유를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무겁고 크며 거룩한 존재일수록 설교는 그에게 엄중하며 생명을 다루는 문제였습니다. 항상 자신은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말하던 아버지는 하나님과 단 둘이 대면하는 인간적 고독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채찍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지키기 위해 찾은 답이 어떤 의미로 아버지에게는 '고독'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종종 이런 목회자의 고독을 '날마다 죽는 목회자'라고 표현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이 고독의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오늘의 목회자들을 보며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교회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대안은 목회자가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교회가 커지만 목회자도 사람이니까 잘못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전부 외형을 가지고 평가합니다. 교회가 커지만 목회자가 대단한 인물로 부각되고, 그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하게 됩니다. 사방에서 끌어당깁니다. 적당히 거절하지 못하면 정신없이 자기 과시하는 데 애쓰게 됩니다. 양떼를 돌보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고 설교 준비를 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생명을 짜는 설교 준비가 아닌 설교를 위한 설교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은 없어지고 건물만 남는 교회가 됩니다. 교회가 병들지 않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설교준비에 죽어야 하고, 밖으로부터의 유혹, 권력으로부터의 유혹, 인기에의 유혹을 철저히 끊고 자기가 죽을 때, 교인들의 숫자가 많아져도 그것을 커버할 수 있는 만큼의 큰 품이 생기게 됩니다. 그 밑에서 공부하는 부교역자도 다 본받기 때문에 위험성이 크지 않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버지가 좀 더 사람들과 어울리고 인생의 다양한 재미들을 즐기며 살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에게 육체의 병이라는 가시를 통해 그가 더욱 더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을 향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고독과 병을 보며 저는 약함 가운데 능력이 되는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질병이 그의 설교를 듣는 누군가에게 치료의 원인이 되었고 그의 고독이 누군가에게 예수님과 동행하는 기쁨의 원천이 되었음을 잘 알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미안함
인공 호흡기를 낀 아버지는 어제 간신히 손에 들린 펜으로 이렇게 쓰셨습니다. "성도들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아마도 아버지의 진심은 이것이었을 듯 합니다. "성도들에게 미안하다..."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성도들에게 미안해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 깊이 더 넓게 보여주지 못하는 설교자로서의 미안함 뿐 아니라 자신의 교회론과는 달리 너무도 커 버린 교회 때문에 또한 성도들에게 미안해 했습니다. 아버지의 이 미안함은 지금도 여전히 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랑의교회 건축 과정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교회론에 걸맞게 좀 더 제대로 목회했다면 결코 더 큰 교회 건물을 지어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더 큰 교회 건물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가 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했습니다. 그랬기에 항상 불편한 환경 가운데서 예배 드리는 성도들을 보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사랑의교회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보내주시는 데에는 분명 그 분의 거룩한 뜻이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 확신 속에서 전체 성도가 다 교회 건축을 찬성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그가 생명을 걸고 함께 동역한 교회의 주인인 사랑의교회 성도들의 판단을 신뢰했습니다.
주일 오후 중환자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버지는 폐를 대신해 호흡하는 인공호흡기를 꽂고 24시간 꺼지지 않는 중환자실의 형광등을 바라보며 병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는 암투병을 기록한 그녀의 책에서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 순간씩만 살기로 했다.'라고 썼습니다. 지금 아버지에게 그 한 순간 조차도 얼마나 길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아버지는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자신이 무슨 고통을 제대로 알았다고 '고통에는 뜻이 있다'라는 책을 냈을까라고 하며 자조의 말을 내뱉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말은 안 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한번의 기회를 더 주신다면 이제는 고통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좀 더 잘 전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분명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하나님께 지난 몇 년 간의 그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결코 그렇게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70년이 넘는 평생동안 당신이 하나님으로 받은 축복과 은혜가 이토록 넘치는 데 지금 이 세상에서 좀 더 살고 싶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너무도 염치 없기 때문이라고요. 하지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좀 더 시키실 일이 남아있으면 분명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실 것이고 그게 아니면 가장 좋은 시간에 자신을 데려가실 것이라고요. 아버지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 하나님은 이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유독 아버지의 설교들 결론이 '하나님을 사랑하라'가 많은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 모든 문제의 답이며 또한 인생의 본질이니까요.
저는 지금 저 중환자실에 홀로 누워 있는 아버지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뭔가를 전하고 싶다면 그 메세지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작년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목회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회한을 피력했습니다.
" 사랑의교회는 양적으로 너무 비대해져 버렸습니다. 교회론대로 목회했다면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즉, 사랑의교회라는 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도록 좀 더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목회를 했어야 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하나님 앞에 죄송스럽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이제 사랑의교회라는 한 교회가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가 커가도록 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크게는 사랑의교회와 제자훈련의 철학을 함께 나누는 모든 교회들 그리고 작게는 저희 가족의 몫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아버지는 무엇보다도 교회 속에 파고든 세속주의를 향해 경계하며 지금 교회는 침체가 문제가 아니라 교회 본질이 파괴되는 문제 앞에 서 있다고 통탄했습니다.
" 교회가 처한 가장 심각한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속주의다. 세상적인 가치를 거의 다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 입장에서 수용을 하되, 성경적으로 적당히 포장해서 수용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 사람들이 다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한국 교회를 생각하며 세속주의가 이토록 교회 깊이 파고든 오늘날 유일한 치료약은 평신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제자로 자라나고 목회자는 한 명의 평신도를 위해 죽을 수 있는 한 사람 철학으로 거듭나는 것 밖에는 없다고 말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목회에 '엇박자'가 발생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그 '엇박자'를 통해 하나님만이 만드실 수 있는 기막힌 '화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교회를 통해 만들어내셨던 아름다운 화음을 통해 영광 받으셨듯이 하나님께서 이 순간에도 싸우고 있는 '암'이라는 고통을 통해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기를 소원합니다.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시는 모든 성도들에게 가족을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다시 한번 설교자 옥한흠을 강단에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옥성호
**기사출처: 이태형 국민일보 I미션라이프부 부장 thlee@kmib.co.kr
요즘 성하는 혼자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곤 한다.
엄마 아빠가 노래를 불러줘서 그런지
혼자 놀다가, 혹은 내가 안고 길을 걸을 때
아기 특유의 여린 목소리로 이름 모를 노래를 흥얼거린다.
아내는 그런 성하의 목소리가 좋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일전에 사준 작은 기타를 퉁기며 노래를 부를 때도 있다.
하지만 노래 부를 때 동영상을 찍으려고 하면
성하는 이내 노래를 그치고 쑥스럽다는 듯 다른 것을 한다.
가끔 성하가 나를 등지고 혼자 놀다가 노래를 부를 때면
나는 가끔 이유없이 눈물이 울컥하고 쏟아질 것만 같다.
성하는 고양이처럼 혼자 놀다가도 가끔씩 엄마 아빠에게
달려와서 몸을 부비고는 다시 자기 놀기에 몰두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도 혼자 노래를 부른다.
처음엔 정말 얼토당토 않은 자작곡이었지만
점점 아내나 내가 불러주던 노래나 TV에서 나오는 노래를
제법 비슷하게 흉내낸다. 자라는 소리가 들린다.
1.
난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원고료를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물론 이건 자존심일 수도 있겠지만-나는 단 한번도 내 글이 원고료를 받지 못할 수준의 글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글을 쓰는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내 글에 대한 애착이 크기 때문에 기고글을 쓸 때에 들이는 공과 시간이 내 일상의 어떤 일보다 크다. 문제는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이 기독매체 기고글이라는 점인데 대부분의 기독 매체는 자체 유지도 어려운 환경 탓에 대체로 원고료를 주지 못하는 곳이 많다.
2.
기독 매체 중 나는 딱 두 곳에서 돈을 받고 글을 썼다. 대학시절 A주간지에서 인터뷰를 한번 한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 청탁을 받고 글을 썼고 원고료를 받았다. 담당 기자는 원고료가 작아서 죄송하다고 친절히 전화까지 주었다. 나는 돈 때문에 쓴 글이 아니니 상관없다고 했다. 다른 한 곳은 B월간지. 내가 받은 원고료 중 가장 많은 액수이나 10만원이 넘지 않았다. 그 외 매체에서는, 내 기억으론 없다. 그리고 나는 글쓰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지도 않을 뿐더러 처음부터 원고료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글을 썼기 때문에 돈 문제가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3.
하지만 원고를 쓰면서 심정적으로 불편한 몇 가지의 일들이 있긴 했다. 사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글을 쓰고 돈을 안 받는 일'에도 절차와 도덕이라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기독 매체 외에 일반 매체에도 글을 몇 번 쓴 적이 있다. 대체로 독자 투고로 실렸다. C매체에 기고글을 보냈을 때 담당 기자는 내게 전화해서 글 잘봤고 다음 달에 싣기로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원고료의 원칙에 대해 설명해 주었는데 기고글에 대해선 내부 원칙대로 원고료가 나가고 독자투고글은 당사의 출판 도서 3권을 증정한다고 했다. 내 글은 독자투고글로 실리며 이에 대해 더 잘해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고 나는 책 3권을 기쁘게 받았다.
4.
D매체는 나와 인연이 깊은 매체다. 편집장도 여러번 바뀌었고 지금도 간간이 글을 기고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내 글을 실어준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도 크다. 그 잡지에 처음 연재글을 보냈을 때 당시 편집장은 내게 원고료를 줄 수 없음을 사전에 알려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그 매체는 직원 월급조차 못 받은지 한참된 형편이었다. 편집장님을 비롯한 그 곳 식구들과 친분이 깊어지면서 난 원고료 없이 그 매체에는 항상 글을 쓰겠다고 선언했고 담당 간사님은 기뻐하며 우리가 따로 줄 것은 없으니 평생 구독자를 시켜주겠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나는 몇 번의 연재글을 썼고 그 분이 있는 동안 나는 잡지를 받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담당자가 바뀐 후로 잡지는 오지 않았다. 물론 내 연재도 끝난 상황이고 매체 사정도 나빴기 때문에 다시 얘기하진 않았다. 이후로도 나는 원고료 없이 그 매체에 글을 썼다.
5.
E출판사는 꽤 유명한 곳이다. 흔히 교계에서 그 출판사 책은 눈감고 아무 책이나 골라도 양서라는 평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 그런 이유로 E출판사는 내부적으로도 자부심이 강한 편이다. 얼마 전 그 출판사에서 기고 요청이 있었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유명한 출판사 답게 내 원고는 몇 번 수정 요청을 받았고 마지막에는 분량 때문에 담당 편집 간사가 직접 수정을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에 글이 내 기대보다 더 좋게 나왔다. 그런데 사실 좀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청탁 시에 원고료에 대한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는데 대체로 다른 매체는 원고료를 주지 않을 때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E출판사는 원고료를 주지 않았다. 대신 내 글이 실린 도서 5권을 보내주었다. 난 이 출판사에 대한 애정이 커서, 그리고 관계를 나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사전에 기고글에 대한 원고료 문제를 내게 알려줬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6.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앞서 언급한 B월간지는 내게 교계에선 가장 많은 원고료를 줬다. 사실 그 월간지에 쓴 내 서평은 내 맘에 쏙 드는 글은 아니었다. 1주일 밖에 시간이 없었고 책을 읽고나서 서평을 쓸 시간은 3-4일 남짓이었으니 시간으로만 보더라도 좋은 글이 나왔을리 없다. 하지만 그 월간지는 내부규정에 의해 원고료를 지급한다고 알려줬고 나는 그 돈을 계좌로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도 작은 문제가 있었다. 원고를 보내고 잡지가 나온지 보름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어서 먼저 연락을 했다. 원고료 얘기를 했더니 조만간 입금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러고 열흘이 지나서도 입금이 되질 않았다. 다시 연락을 했다. 회계문제로 월말 정산 시에 일괄적으로 입금이 된다고 했다. 난 소심하고 꼼꼼한 성격 탓에 이 일로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 원고료에 전전하는 이미지를 심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원고료 얼마를 언제 지급하는지를 왜 먼저 알려주지 않고 물어볼 때마다 하나씩만 알려주는지 그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7.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실 교계에서 글을 쓰는데 돈 따위는 중요하지도 않고 나도 원고료가 필요 없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의 사레들은 나를 너무 답답하게 만들었다. D매체는 지금도 정기구독 말고 후원을 할까하는 마음을 먹을 정도로 애정을 갖고 있는 매체다. 하지만 애정을 갖은 만큼 내 기고글에 대한 화답 선물로 받은 평생독자라는 타이틀이 금새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남는다. 담당이 바뀌고 편집부가 물갈이를 해서라고 이해하지만 웬지 서운하다. E출판사와 B월간지도 마찬가지다. 이 두 매체는 나름 유명한 곳이다. 그런만큼 좀더 프로답게 원고 청탁 후의 원고료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했다. 원고에 대해 사례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한다면 무엇을 언제 어떻게 지급하겠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당연하고 기본적인 일이 아니던가. 사실 어떤 의미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모든 성도가 노동이 아닌 봉사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체로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다. 돈을 준다는 것도 어색하고 돈을 줄 때도 그 절차나 방법이 참 어색하다!
8.
나는 아직도 그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아니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라는 타이틀을 걸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나는 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사실 나는 회심한 이후 역설적으로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마음을 다쳤다. 물론 그것을 보상받을 훨씬 더 큰 지식과 인맥과 사랑을 얻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친 마음이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 연유로 소심해진 가슴으로 교계 안을 돌아다니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사람에게는 관대해졌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지인들이 죄를 짓지 않는 한 깐깐하게 지적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이 참 불편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원고료 문제다! 왜 나는 글을 쓰고도 원고료를 안 받는 문제로 이렇게 불편해야 할까. 그 누군가가 숨어서 내 글을 보고 앞으로는 일반 잡지사인 C매체처럼 명료하게 원고료에 대한 자기들의 원칙과 일정을 알려주면 좋겠다. 그게 내 넋두리의 요지다.
사족.
나는 요즘 F매체에 글을 많이 기고한다. F매체도 기독 잡지로 지속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매체다. 하지만 이 매체는 요즘 기고글에 대해 원칙을 정하고 적은 돈이지만 원고료를 주고 있다. 금액이 오천원에서 이만원 수준이니 그리 큰 돈은 아니다. 기고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있으나 마나 한 금액이지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매체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기도 하다. 나는 이 매체의 '원고료 철학'이 맘에 든다. 그간 무상으로 기고를 한 이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항상 있었고 금전적인 문제가 좀 나아지자마자 원고료에 대한 룰을 정한 것이다. 인터넷에서 그 매체 사이트에 접속하면 원고료 정책이 팝업창으로 뜬다. 나는 요즘 이 매체에 후원도 하고 원고도 쓴다.
성하야.
1년동안의 네 모든 처음을 기억해본다.
네가 처음 열이 나던 날. 괜찮은 거라 믿었지만 걱정이 많이 되었다.
네가 코가 막혀서 우리가 '뻥코'라고 부르던 약을 쓰던 날.
너의 백일 즈음에. 네 엄마가 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네 백일기념 케익과 함께.
너의 첫 뒤집기. 이후로도 몇 번을 보면서 신기해했다.
네가 처음 자두를 맛보던 날. 네 표정을 두고두고 네 엄마와 많이 웃었다.
네가 처음 머리카락을 자르던 날. 너는 굴욕의 울음을 보여줬지.
너의 첫 비행. 넌 어리버리하게 있다가 이내 찡찡이로 돌변했다.
너의 첫 돌. 우리는 간단한 잔치 음식으로 너를 축하했고 잔치비용은 아프리카 후원금으로 사용했다.
앞으로도 네가 처음 겪게 되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기쁜 일도 있겠고 슬픈 일도 있겠지.
하지만 너란 존재를 우리 부부에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매순간 감사하며 앞으로도 수많은
너의 '처음들'을 기다리려고 한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