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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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원고료를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물론 이건 자존심일 수도 있겠지만-나는 단 한번도 내 글이 원고료를 받지 못할 수준의 글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글을 쓰는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내 글에 대한 애착이 크기 때문에 기고글을 쓸 때에 들이는 공과 시간이 내 일상의 어떤 일보다 크다. 문제는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이 기독매체 기고글이라는 점인데 대부분의 기독 매체는 자체 유지도 어려운 환경 탓에 대체로 원고료를 주지 못하는 곳이 많다.

2.
기독 매체 중 나는 딱 두 곳에서 돈을 받고 글을 썼다. 대학시절 A주간지에서 인터뷰를 한번 한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 청탁을 받고 글을 썼고 원고료를 받았다. 담당 기자는 원고료가 작아서 죄송하다고 친절히 전화까지 주었다. 나는 돈 때문에 쓴 글이 아니니 상관없다고 했다. 다른 한 곳은 B월간지. 내가 받은 원고료 중 가장 많은 액수이나 10만원이 넘지 않았다. 그 외 매체에서는, 내 기억으론 없다. 그리고 나는 글쓰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지도 않을 뿐더러 처음부터 원고료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글을 썼기 때문에 돈 문제가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3.
하지만 원고를 쓰면서 심정적으로 불편한 몇 가지의 일들이 있긴 했다. 사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글을 쓰고 돈을 안 받는 일'에도 절차와 도덕이라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기독 매체 외에 일반 매체에도 글을 몇 번 쓴 적이 있다. 대체로 독자 투고로 실렸다. C매체에 기고글을 보냈을 때 담당 기자는 내게 전화해서 글 잘봤고 다음 달에 싣기로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원고료의 원칙에 대해 설명해 주었는데 기고글에 대해선 내부 원칙대로 원고료가 나가고 독자투고글은 당사의 출판 도서 3권을 증정한다고 했다. 내 글은 독자투고글로 실리며 이에 대해 더 잘해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고 나는 책 3권을 기쁘게 받았다.

4.
D매체는 나와 인연이 깊은 매체다. 편집장도 여러번 바뀌었고 지금도 간간이 글을 기고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내 글을 실어준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도 크다. 그 잡지에 처음 연재글을 보냈을 때 당시 편집장은 내게 원고료를 줄 수 없음을 사전에 알려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그 매체는 직원 월급조차 못 받은지 한참된 형편이었다. 편집장님을 비롯한 그 곳 식구들과 친분이 깊어지면서 난 원고료 없이 그 매체에는 항상 글을 쓰겠다고 선언했고 담당 간사님은 기뻐하며 우리가 따로 줄 것은 없으니 평생 구독자를 시켜주겠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나는 몇 번의 연재글을 썼고 그 분이 있는 동안 나는 잡지를 받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담당자가 바뀐 후로 잡지는 오지 않았다. 물론 내 연재도 끝난 상황이고 매체 사정도 나빴기 때문에 다시 얘기하진 않았다. 이후로도 나는 원고료 없이 그 매체에 글을 썼다.

5.
E출판사는 꽤 유명한 곳이다. 흔히 교계에서 그 출판사 책은 눈감고 아무 책이나 골라도 양서라는 평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 그런 이유로 E출판사는 내부적으로도 자부심이 강한 편이다. 얼마 전 그 출판사에서 기고 요청이 있었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유명한 출판사 답게 내 원고는 몇 번 수정 요청을 받았고 마지막에는 분량 때문에 담당 편집 간사가 직접 수정을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에 글이 내 기대보다 더 좋게 나왔다. 그런데 사실 좀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청탁 시에 원고료에 대한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는데 대체로 다른 매체는 원고료를 주지 않을 때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E출판사는 원고료를 주지 않았다. 대신 내 글이 실린 도서 5권을 보내주었다. 난 이 출판사에 대한 애정이 커서, 그리고 관계를 나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사전에 기고글에 대한 원고료 문제를 내게 알려줬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6.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앞서 언급한 B월간지는 내게 교계에선 가장 많은 원고료를 줬다. 사실 그 월간지에 쓴 내 서평은 내 맘에 쏙 드는 글은 아니었다. 1주일 밖에 시간이 없었고 책을 읽고나서 서평을 쓸 시간은 3-4일 남짓이었으니 시간으로만 보더라도 좋은 글이 나왔을리 없다. 하지만 그 월간지는 내부규정에 의해 원고료를 지급한다고 알려줬고 나는 그 돈을 계좌로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도 작은 문제가 있었다. 원고를 보내고 잡지가 나온지 보름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어서 먼저 연락을 했다. 원고료 얘기를 했더니 조만간 입금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러고 열흘이 지나서도 입금이 되질 않았다. 다시 연락을 했다. 회계문제로 월말 정산 시에 일괄적으로 입금이 된다고 했다. 난 소심하고 꼼꼼한 성격 탓에 이 일로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 원고료에 전전하는 이미지를 심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원고료 얼마를 언제 지급하는지를 왜 먼저 알려주지 않고 물어볼 때마다 하나씩만 알려주는지 그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7.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실 교계에서 글을 쓰는데 돈 따위는 중요하지도 않고 나도 원고료가 필요 없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의 사레들은 나를 너무 답답하게 만들었다. D매체는 지금도 정기구독 말고 후원을 할까하는 마음을 먹을 정도로 애정을 갖고 있는 매체다. 하지만 애정을 갖은 만큼 내 기고글에 대한 화답 선물로 받은 평생독자라는 타이틀이 금새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남는다. 담당이 바뀌고 편집부가 물갈이를 해서라고 이해하지만 웬지 서운하다. E출판사와 B월간지도 마찬가지다. 이 두 매체는 나름 유명한 곳이다. 그런만큼 좀더 프로답게 원고 청탁 후의 원고료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했다. 원고에 대해 사례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한다면 무엇을 언제 어떻게 지급하겠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당연하고 기본적인 일이 아니던가. 사실 어떤 의미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모든 성도가 노동이 아닌 봉사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체로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다. 돈을 준다는 것도 어색하고 돈을 줄 때도 그 절차나 방법이 참 어색하다!

8.
나는 아직도 그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아니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라는 타이틀을 걸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나는 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사실 나는 회심한 이후 역설적으로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마음을 다쳤다. 물론 그것을 보상받을 훨씬 더 큰 지식과 인맥과 사랑을 얻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친 마음이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 연유로 소심해진 가슴으로 교계 안을 돌아다니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사람에게는 관대해졌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지인들이 죄를 짓지 않는 한 깐깐하게 지적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이 참 불편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원고료 문제다! 왜 나는 글을 쓰고도 원고료를 안 받는 문제로 이렇게 불편해야 할까. 그 누군가가 숨어서 내 글을 보고 앞으로는 일반 잡지사인 C매체처럼 명료하게 원고료에 대한 자기들의 원칙과 일정을 알려주면 좋겠다. 그게 내 넋두리의 요지다.

사족.
나는 요즘 F매체에 글을 많이 기고한다. F매체도 기독 잡지로 지속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매체다. 하지만 이 매체는 요즘 기고글에 대해 원칙을 정하고 적은 돈이지만 원고료를 주고 있다. 금액이 오천원에서 이만원 수준이니 그리 큰 돈은 아니다. 기고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있으나 마나 한 금액이지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매체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기도 하다. 나는 이 매체의 '원고료 철학'이 맘에 든다. 그간 무상으로 기고를 한 이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항상 있었고 금전적인 문제가 좀 나아지자마자 원고료에 대한 룰을 정한 것이다. 인터넷에서 그 매체 사이트에 접속하면 원고료 정책이 팝업창으로 뜬다. 나는 요즘 이 매체에 후원도 하고 원고도 쓴다.

2010/08/16 20:21 2010/08/16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