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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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지성과 삶의 일치를 향하여
/ 김용주


공부기계, 대학에 들어가다!
중 고등학교 때 나는 이른바 모범생 계열의 학생이었다.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누리게 되는 혜택이 솔직히 싫은 건 아니었지만 그럴수록 친구들 사이에서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내 사물함은 종종 반 친구들에 의해 심하게 찌그러져 교실 바닥을 나뒹굴었으니 말이다. 점수와 등수로 학생을 평가하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입시를 위해 친구들을 포기했고 불편하기만 한 학교생활이 어서 끝나기만을 바랐다.


기나긴 입시 교육을 마치고 1995년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우연히 전교 등수가 나보다 한참 뒤였던 반 친구를 만났는데, 그는 “너처럼 공부해도 나랑 똑같은 곳에 입학한 걸 보니 고등학교 때 너처럼 공부 안 하길 잘했다”며 비웃었다. 그의 빈정거림에 번번이 짜증이 났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그 친구와 같은 종착역에 내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이젠 모든 게 끝났으니 털어 버리자고 마음을 추슬렀다.


처음엔 대학이라는 낯선 환경이 신기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느슨해졌다. 여전히 주기율표를 외우고 물리학과 각종 역학들을 배워야 하는 수업은 지루하기만 했다. 나는 공부에 지친 새내기였고 공부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과 거의 매일 포켓볼을 치고 맥주를 마시다가 밤늦게야 집에 들어가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한 달 정도가 지나자 그 생활도 조금씩 지겨워졌다. 시간은 넘쳐나는데 딱히 할 일은 없고 친구들과 어울려도 공허한 마음만 커지는 게, 은퇴한 노인이 된 기분이었다. 내 인생의 종착역은 대학이었고 그 이후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기독교 세계관을 접하다
10 년도 넘은 과거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건, 대학을 처음 들어갔을 때의 혼란했던 상태를 독자들에게 전해 주고 싶어서다. 지금도 여전히 시행착오와 혼란, 그리고 무력감을 경험하지만 내 삶에서 그때만큼 혼란스러웠던 시기는 없었다. 대학 공부에 열심을 내거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여력이 없었던 내가 다시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기독교 세계관을 접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공 허함을 달래 줄 무언가를 찾고 있던 차에 교회 목사님이 한 캠퍼스 선교단체를 권해 주셨다. 그곳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처음 접했고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신앙적인 눈을 뜨게 되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대학을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서 머리에 금빛 고리를 달고, 성가대가 주일마다 걸치는 하얀 옷을 입고, 하루 종일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줄 알았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조차도 나에겐 다분히 형이상학적이고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망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신학과 철학 책들을 공부한 후 기독교를 버리고 교회를 떠나신 나의 아버지의 영향으로 지적 성실함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나는, 지성의 사용이 오히려 신앙을 견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됨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금 학문 연구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것과 더불어 역사와 교회사, 신학 서적들을 스펀지가 잉크를 빨아들이듯 닥치는 대로 읽어 댔다. 건성으로 읽던 성경은 깊이 연구할수록 매력적인 책으로 다가왔고, 성경의 ‘난제’에 부딪히면 결론이 날 때까지 두문불출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전공 이외의도 다양한 수업을 들었고 그때마다 조금씩 신앙과 학문의 통합을 고민했다. 수업이 시작되면 필독서와 참고서적은 물론 복음주의권 책들을 병행해서 읽었고 그것을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물론 A+를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종교적 시각을 드러내는 글은 처음부터 평가 절하되기 일쑤였다. 참고서적에 기독교 관련 책들이 포함되는 것 역시 학문적 신뢰도를 낮추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수업 분위기와는 별개로 신앙과 학문의 통합된 관점을 갖는 훈련들이 지금의 내 신앙을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철학과 사회학, 인문학 고전들과 전공 분야의 책들을 비롯하여 한국사회의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룬 책들까지 두루 읽었는데, 그때부터 대학생으로서 캠퍼스와 한국교회, 나아가 한국사회를 이해하고 사회참여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는 이후에 기독매체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기독학생연합회나 기독총학 진출모임, “복음과상황” 독자모임, 교회개혁실천연대 등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전히 캠퍼스에서 학업과 신앙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기독학생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대학교를 전도의 대상이자 영적 전쟁터로만 인식하여 학업보다는 기독공동체 활동에 많은 시간을 들였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기독공동체 내에서 인정받는 리더들이었다. 이들은 신앙과 학문을 대립구도로 설정한 후 학업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그것이 신자의 ‘고난’이자 포기해야 할 ‘이기적인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다른 리더들은 지금 함께 하나님을 애타게 부르짖고 있는데 시험 기간이라는 이유로 공부를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시험공부를 포기하더라도 기도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의 의무이자 기쁨이 아니겠는가? 시험 전날 공부를 포기하고 캠퍼스 예배와 아침 기도회에 참석했더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간증하는 학생들이 실제로 많이 있었다.


삶의 변화를 향해
나는 대학 졸업 때까지 성경은 열 권 정도, 책은 대략 천 권 정도를 읽었다. 부끄럽게도 그때는 자주 나의 독서량을 자랑하고 다녔는데, 지식의 양보다는 인격 성숙과 실천적 삶의 열매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절감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부족한 면이 많은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는 했지만 내게 기독교는 교양 있어 보이게 만드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백화점에서 심사숙고하여 고른 명품 청바지처럼 내가 선택한 종교가 나를 빛내 주길 내심 바랐다. 하나님을 알라딘의 요술 램프처럼 여기지는 않았지만 착하고 바르게 살면 보상을 해주시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독 지성이 내 안에 싹트면서 신앙은 나를 변화시켰다.


대학 시절, 타일공장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는데 생색내기를 좋아했던 나는 한 집회에서 낮아짐을 훈련하기 위해 공장에 간다고 간증했다. 사실 공장 일은 군복무를 대체하는 것이었고, 사장님이 아버지 친구 분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편한 곳이었다. 하지만 공장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예상치 못한 이질감이 있었다. 대화중에 그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가 나올 때면 최대한 아는 만큼 설명해 주려고 애썼는데, “그래, 너 잘났다”라고 호통 치는 직원들의 비난과 따돌림으로 인해 결국 3개월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이후에 나는 공장 이야기만 나오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그들을 비난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나는 어렸고 사회 경험도 없었으며 교만했다. 기독교 세계관을 접하고 성경을 깊이 묵상하면서 내가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 내가 얼마나 당돌하고 어설프고 어리석었는지 인정하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은 변화였다.


시간이 흘러 다시 군복무를 위해 행정직 공무원의 행정 보조로 일할 때였다. 여느 때처럼 한 공무원이 잔심부름을 시키려고 날 불렀다. 다른 일들로 정신이 없던 나는 죄송하지만 다른 급한 일이 있다고 말했는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서 내 얼굴을 향해 던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날아오는 신발을 한 손으로 잡아냈고, 신발을 가져가 무릎을 굽힌 채 태연히 그의 발 앞에 내려놓고는 조용히 사무실을 나왔다. 신기하게도 그날 나는 그의 모욕적인 행동에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들은 나를 예전보다 더 잘 대해 주었고 신발을 집어 던진 사람을 제외한 직원들과 더욱 친해졌다.
공장에서 악동이었던 내가 이제는 겸손한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날 이전에는 한 번도 나에게 악한 마음을 품은 사람을 조건 없이 용서해 본 적이 없었다. 겉으론 참았어도 마음으로 살인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날 ‘신발 사건’을 계기로 내 마음의 변화를 체감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직장과 소명
CCM 가수를 꿈꾸기도 하고 미디어 비평에 흠뻑 빠져 신문방송학과로 전과 계획을 세우기도 하던 나는, 지금 자동차 연구소에서 부품 설계 업무를 하고 있다. 지금도 종종 지인들은 내게 설계가 적성에 맞느냐고 묻는다. 전공이 싫었던 건 아닌데 졸업을 앞두고는 기독교 단체 주변을 기웃거렸었다.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그런 일이 더 신앙적이고 가치 있어 보였나 보다. 마지막까지 전공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채 졸업반이 된 후, 문득 4년 동안 공부한 전공을 살리지 않겠다고 결정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부모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녔으면서 4년간 써먹지도 않을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전공 살리기는 대학원 생활을 거쳐 자동차 연구소에서 설계를 하고 있는 지금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가능성 있어 보이는 일들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말로 논리를 세우는 일들을 곧잘 했던 것 같다. 창피하지만 때로는 실행해 보거나 경험해 보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도 마치 겪어 본 양 과장을 하기도 했다. 난 가끔 내가 공대생이 아니었다면 더욱 허풍이 세져 과장법에 능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내 본성이 그랬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소한 것들을 꼼꼼히 챙기고 책임감 있게 마무리 짓는 데는 서툰 사람이었다. 지금 나는 자동차를 구성하는 2만 개의 부품 가운데 한 시스템을 설계하면서 지성적 성실함에 대해 배워 가고 있다. 특히 말단 연구원 자리에 있으면서도 마치 CEO라도 된 것처럼, 큰 방향을 설정하고는 사소한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내 모습을 날마다 직시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직업이 소명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내 직업은 공학에 호감을 느껴 전공으로 선택한 데 대한 책임으로 시작한 것이었고 솔직히 아직도 확신은 없다.


전공과 신앙에 있어 좀더 거창한 통합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 같다. 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여전히 씨름하고 있는 두 가지 고민이 있는데, 첫째는 앞서 말한 신앙과 전공, 신앙과 업무의 통합 문제다. 효율성과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신앙과 업무를 아우르는 적용점을 찾기란 참 어렵다. 가끔은 전공 분야에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채 의욕만 앞세우는 기독교인들을 목격한다. 그들은 신앙적인 잣대로 자신들의 분야와 조직을 성급하게 비판하면서 변화시키려고 애쓴다. 하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이제야 조금 설계에 익숙해진 경력 5년차의 설계자이니 말이다.


둘째는 환경 문제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 문제다. 소형차의 가격을 낮추기 위한 부품의 원가 절감 방안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낸다거나 연비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 혹은 부품 업체에서 제조 공정상 폐기물이나 폐수들을 줄일 수 있는 재질과 공법 연구 등이 이에 속할 것이다. 만일 부품 설계자가 아닌 차종 프로젝트 기획자라면 단품을 넘어 좀더 거시적인 영역에서 이런 방향들을 추진해 갈 수 있을 듯하다.


윤리적 문제
기 독 지성을 이야기하면서 첨언하고 싶은 부분은 윤리적인 문제다. 석사 논문을 마칠 즈음 최종 발표를 앞두고 나는 논문에서 제안한 방법의 효율성 여부를 판단하는 압축률에 오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오류가 수정된 방법은 그간 발표된 논문보다 압축률이 현저히 떨어졌다. 발표가 한 주밖에 남지 않았는데 교수님께 사실대로 말하면 졸업을 못할 게 뻔했고, 만약 이 논문 주제로 개선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면 다음 학기 졸업도 기약할 수 없었다. 이미 직장은 최종 면접까지 합격한 터라 더 죽을 맛이었다. 간혹 논문에 수치를 조금씩 고치는 경우를 봐오던 터라 대충 임기응변으로 이 상황을 넘기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추후에 발견된다 해도 석사 논문에서 발견된 수치 오류를 누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할까 싶기도 했다.


그날 저녁, 문득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멍하게 한참을 있었다. 석사 2년을 공부하고도 중요한 시기에 결과를 속여 가면서까지 졸업하려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결국 교수님에게 사실대로 말씀드렸고 일주일간 압축률을 개선하지 못하면 논문 발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개선 방법을 고심한 지 사흘 째 되던 날 새벽에 손쉽게 개선이 되었다! 사흘 만에 개선할 수 있었던 것을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평생 죄 의식에 눌려 지냈을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윤리적인 문제도 있다. 직장에서 다른 팀과 적대 관계에 있거나 경쟁에 놓이는 경우, 그 팀의 직무 유기를 부각시키거나 우리 팀의 성과를 과대 포장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업무분장에 있어서도 나와 우리 팀의 책임을 축소하고 다른 팀을 최대한 이용해야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는 소리를 듣는다. 동료 간에는 어떠한가. 고과를 높게 받기 위해 연구 성과를 먼저 보고하려고 애쓰거나 아예 후배 사원의 기술이나 보고서를 가로채기도 한다. 이러한 윤리적인 문제는 개인에서부터 팀간의 알력 다툼을 넘어 노조문제나 협력 업체에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문제와 같은 회사의 구조적인 문제에까지 나아간다. 일보다 사람을 중시하고 성공보다 동료들과의 지속적인 관계에 힘쓰려 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직장에서는 인정받지 않으면 쉽게 도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문과 사회의 윤리적 문제들을 깊이 사유하고 작은 일부터 신앙적 양심에 걸맞은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시대의 대학생들에게
아 직도 신앙적으로 갈 길이 먼 내가 이 책을 읽을 대학생 독자들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건 어떤 결론을 내기보다는 함께 고민해 볼 것을 제안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디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몇 가지의 조언 아닌 조언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1. 관심 분야의 도서 목록을 만들라. 전공에 상관없이 호감이 가는 분야의 도서 목록을 만들라. 어떤 분야든 입문서와 개론서 그리고 참고서적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2. 두꺼운 책을 많이 읽어라. 군복무 중에 틈틈이 책을 읽던 내게 총무과장님이 했던 말이다. 나이가 들면 두꺼운 책을 볼 시간도, 그럴 능력도 떨어지게 되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으라고 권하셨다. 정말 맞는 말이다.


3. 책을 읽고 요약하고 자기 생각을 메모하라. 대학 이전까지 책 읽는 습관이 안 들어 있던 나는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남지 않아 고생을 했었다. 각 장별로 요약하고 그에 대한 자기 생각을 A4 한 장 정도로 정리해 두면 한 권의 책을 머릿속에 넣어둘 수 있다.


4. 실천적 지성을 훈련하라. 지적 탁월함을 좇다 보면 자신의 인격이나 실천성과는 무관하게 유희적인 차원에 머무르게 되는 수가 많다. 노엄 촘스키나 제레미 리프킨 같은 실천적 지식인을 본으로 삼으라. 또한 지식을 자랑하기에 앞서 주변에 가까운 이들부터 어려운 이들에게 작은 것부터 몸으로 섬기는 것에 더욱 열심을 내자.


5. 진로를 정하면 최소 2년은 매진하라. 나는 회사에 들어간 첫날부터 후회가 밀려왔다. 다른 일이 더 좋아 보였고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둬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했다. 그러나 1, 2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업무에 대해 명확히 알기 어렵다. 업무가 익숙해져서 다른 이들의 인정을 받는데도 후회가 된다면 그땐 즉시 다른 길을 모색하라.


6. 코람데오를 기억하라. 내가 결정한 모든 일들이 그분 앞에서 이루어짐을 직시하라. (끝)


**이 글은 <공부하는 그리스도인-도널드 오피츠/IVP> '부록3'에 실린 원고입니다.


김용주
대 학원에서 CAD 분야를 전공했고 학부시절 IVF, 한양대기독학생연합, 복상독자모임 활동을 했다. 지금은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선행차량의 부품 설계 업무를 하고 있으며 그동안 <복음과상황>에 '도발적인 캠퍼스보기', '기독교세계관 운동에 대한 소고' 등을 연재한 바 있다.

2010/01/01 23:48 2010/01/01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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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인용들
천재지변의 사고로 딸을 잃은 엄마가
한 세미나에서 자신이 겪은 감정을 말하는 도중
눈물이 복받쳐 말을 잇지 못하면서 발표가 중단되었답니다.
그랬더니 사회자가 슬며시 곁에 다가와
물컵을 건네주면서 속삭이듯 말했다지요.
‘눈물도 말言이에요’

그 한마디로 깊은 날숨 같은 위로를 받았고
덕분에 감정을 잘 추스를 수 있었다는
그녀의 경험담을 전하는 일은 차라리 사족입니다.
자신을 그 엄마의 입장에 놓고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오는 문제이니까요.

부부 싸움 도중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너무 답답해서 울고 있는 아내에게
‘당신이 지금 울고 있는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해서 말해보라’는
논리적 남편의 전략적 주문은
아내 입장에선, 일종의 재앙입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눈물도 말(言)입니다’ 같은
지혜와 아량을 발휘할 사람이 곁에 있다면, 축복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지혜와 아량이 어른의 필수 조건인 것 같은 생각이
절실해지곤 합니다.
2009/12/03 22:55 2009/12/0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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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육아일기

성하가 많이 좋아져서 병원가던 날.
이제 나았다는 의사선생님 소견서 받고 돌아와서
좋은 기분으로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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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면역이 약해져서 나다니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권고로.
앞으로 이불 속에서만 활개칠 것으로 보이는 성하군.^^

오늘도 아버지의 요리는 계속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IXUS i)

2009/11/25 23:37 2009/11/25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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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육아일기
어제 포스팅을 유철닷컴에도 올렸더니 회원님들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자료 보관 차원에서 퍼왔다. 답글도 달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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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3 00:59:09 (121.138.192.89)
지강유철

저런저런....정말 맘고생이 말로 할 수 없었겠네. 잘 견뎌 준 성하가 고맙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낼 신종플루에서 온 가족이 해방되시길....

 
2009.11.24 00:43:22 (114.205.97.88)
김용주

오늘 병원다녀왔습니다.

완쾌되었다는 소견서 만원 주고 끊었습니다. (회사 제출용...)

 
2009.11.23 06:56:24 (115.143.254.54)
기김진호

놀라셨겠어요.  별 일 없을 거예요. 

학교도 신종플루로 전쟁을 치르고 있어요.


2009.11.24 00:44:21 (114.205.97.88)
김용주

아....

학교는 정말 걱정이 많을 거 같습니다.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모두...

저야 아이 데리고 안 나가면 그만이지만.

갈수록 애 키우는 게 걱정입니다.

 
2009.11.23 07:25:13 (115.95.119.116)
조기성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성하가 빨리 회복되고 건강하길...

저도 애들이 둘인데 남일같지 않아요.

환절기에 의례 기침하고 감기하는데

플루상황이니 조금만 증상이 있어도 화들짝 하곤합니다.

 
2009.11.24 00:45:24 (114.205.97.88)
김용주

주변에는 심각하진 않지만 신종플루로 심하게 고생한

유아들이 있더군요. 부모 맘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저도 이틀 동안 열이 안내리는데 정말 기도가 절로 나오더군요.

 
2009.11.23 08:36:27 (58.142.171.181)
김명재

걱정이 많이 되었겠습니다.

건강해졌다니 다행입니다.


어려운 시간을 잘 활용해 가족과 좋은 시간을 가지셨다니,

용주님의 넉넉함이 부럽습니다,


성하! 아이 이름이 참 이쁩니다,^^


2009.11.24 00:46:24 (114.205.97.88)
김용주

넉넉함은 애가 좋아지고 나서 생겼습니다.

애가 아프면 지옥이다가도 좀 괜찮아지면 금방 천국이되는게

부모 마음인가 봅니다.

 
2009.11.23 09:38:00 (125.178.50.17)
김세진

아직 가족 중에는 이런 일이 없다지만, 언제 어떻게 발생할 지 모르는 일이라 늘 조심하고 있습니다.

요즘 플루땜시 돌아다니는 일 자체가 쉽지 않던데...

그나마 천만 다행이네요.

 
2009.11.24 00:47:51 (114.205.97.88)
김용주

회사에서는 술잔 돌리기를 자제하는데

아직도 굳이 술잔을 돌리려는 상사들이 있어서...

늘 조심하려는데 방해 요소입니다. 에효...

 
2009.11.23 11:35:13 (115.145.33.167)
강구섭

맘 고생이 엄청 심하셨겠어요.

저도 10개월 된 아이 때문에 늘 신경이 가는데..

저희 아이는 주로 집에만 있어서 외부 접촉 우려는 많지 않고

지하철로 매일 출퇴근하는 제가 전달 가능한 우려 대상이라..

여하튼 상태가 괜찮다고 하시니 정말 기쁘네요.

걱정과 함께 덤으로 얻은 시간 잘 누리시는 것 같아 좋아보이네요.^^


2009.11.24 00:50:13 (114.205.97.88)
김용주

저희 가정도 아내가 아이를 거의 격리하다시피 하고 지냈다가

지난 주말에 돌잔치 한 번 갔다가 바로 걸렸습니다. 조심하세요.ㅜㅜ

 
2009.11.23 16:51:32 (116.43.35.12)
지현

어른이 걸려도 겁나는 것을,,,,

맘고생이 크셨네요..


아기가 너무 사랑스럽네요.

부디 어서 나아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랍니다^^

 
2009.11.24 00:52:08 (114.205.97.88)
김용주

오늘 병원에서 완치판정 받았습니다.^^

아이는 낫고 저는 이제 회사로 복귀해야겠죠.

정신없이 주말을 보냈네요.

 
2009.11.24 00:53:11 (110.12.42.26)
소리

온 가족이 많이 놀라고 힘드셨겠어요. 오늘, 플루가 무사히 지나간 것에 대해 감사 기도 드리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꼬마가 아주 귀엽습니다.(제 조카들만큼요~)

 
2009.11.24 00:55:28 (110.12.42.26)
소리

아, 벌써 완치 판정 받으셨군요! 정말 축하드려요~

(출처: 유철닷컴)

2009/11/24 23:36 2009/11/24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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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육아일기

아이가 신종플루에 걸렸다. 별로 나다니질 않아서 걸릴 거라고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우리 가족 중에서 플루에 걸린다면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가장 허약체질인
 내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이는 전날 밤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해서 39도까지 올라가는 고온에 아내도 나도 당황했다.

아내와 나 둘다 신종플루만은 아니길 바랬는데 동네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서
신종플루 검진을 받아보라고 했고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신종플루 양성이라고 문자가 왔다.
아내는 부랴부랴 타미플루 처방을 받기 위해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병원에서 처방받은 타미플루를 먹이고 나서 아이는 열은 떨어졌지만
밥을 잘 먹지 않고 다소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일 때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걱정에 또 걱정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열도 내리고 조금씩 아이가 생활이 안정되어가고 있다.

처음 아이가 신종플루 판정을 받았을 때는 마음이 힘들었다.
왜 우리 아이에게 이런 몸쓸 신종 질병이 찾아온 걸까, 심하게 아프지는 않을까
혹시 건강을 잃는 것은 아닐까, 밤새 체온을 재고 물수건으로 열을 식히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안정이 되고나니 신종 플루가 그닥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신종플루 판정 덕에 나는 회사에서 격리조치 당했다. 가족이 신종플루 판정을 받으면
가족이 나았다는 병원의 검진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무급 휴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지난 금요일부터 회사에 안 나가고 있다. 이로 인해 나는 하루 종일 아이와 아내와 함께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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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업무가 많아서 잠시 손 놓았던 요리도 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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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아이와 함께 밥도 먹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아이의 손을 붙잡고 이틀 밤 내내 기도를 했던 간절한 시간도 있었지만 아이가 조금씩 기력을
찾아가면서 함께 뒹굴기도 하고 멍때리며 둘이 누워서 키득거리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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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는 신종플루가 나에게는 뺏겼던 가족과 보내는 시간들을 돌려준 시간이 되었다.
내일 병원에 가봐야 하겠지만 아이는 건강을 많이 되찾은 것 같다.
그간 기도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ps.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플루로 고생하는 많은 가정들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 아이처럼 잘 견디지 못하고 힘들게 보내는 분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기도를 멈추지 않고
이제 그 가정들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아픈 건 부모에게 정말 큰 고통이다.

2009/11/23 23:35 2009/11/23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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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
오늘 아버지가 올라오셔서 모셔드리러 나갔다.

난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그의 뒷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뭉클했다.

구부정한 모습, 가방을 들고 힘없이 걷는 그의 뒷모습이
이제 정말 할아버지 같다.
2009/11/09 20:15 2009/11/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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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도 분리수거를 한다.
그 전에는 아파트 안에 쓰레기를 버리는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은 아파트 지하1층과 연결되어 모든 쓰레기들이
그 곳으로 굴러 떨어졌다.
아파트 지하 1층에는 쥐들이 살고 있었고 간혹 천장 너머로
쥐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언제부터인가 나도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지금도 분리수거를 정기적으로 하지만 할 때마다
나는 그 분리의 수위를 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다.
가령, 종이에 끼워져 있는 스태플러나 종이 박스에 붙어 있는 비닐은
그런 나의 갈등을 가중시킨다.

물론 모든 폐품은 잘 분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가끔 나는 그 수위 조절을 스스로 하고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늦은 밤에 분리수거를 하는 날에는 병을 모으는 자루에 플라스틱을
넣었다가 너무 깊이 들어가서 꺼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페이퍼 백에 붙어있는 쇠조각이나 나일론 줄을 제거하지 않는 날도 있다.

사실 나는 일회용 물건들의 사용에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 종이컵, 일회용 도시락통, 나무 젓가락, 비닐 봉지 등.
아내는 자주 나의 무절제한 일회용품 사용을 지적한다.
녹색평론을 보고 후원하면서 너무한다는 것이다.

가끔 발끈하긴 하지만 그 사실에 나는 동의한다. 나는 일회용품 사용에
개념이 없다. 분리수거를 하면서 죄의식의 상당부분을 털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분리수거마저도 완벽함이라는 수위 조절에 자주 실패한다.

나는 분리수거를 하면서 나란 사람이 소모하는 재화들을 곱씹게 된다.
나란 사람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사용되는 물건들이 실로 방대하다는 걸
나는 분리수거를 하면서 실감한다.
이러한 찌꺼기들을 매주 내뱉으면서도 경각심을 느끼지 못하는
나에 대해 조금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나는 어떤 면에서 상당히 이기적이다.
2009/11/08 20:14 2009/11/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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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동네 만두집 총각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웃으면서 멈춰서자 그는 반가이 나를 맞았다.
"뭘 드릴까요?" "김치 하나 고기 하나 주세요." "넵!"

사실 만두를 살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퇴근길에 간혹 늦게까지 장사를 하고 있는
그와 마주치면 난 거의 매번 만두를 샀다.
그를 위해 만두를 사준다는 표현이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그가 늦게까지 남은 만두를 팔고 있을 때는
나는 흔쾌히 계획에 없던 구매를 한다.

허나 그것은 어떤 자선의 행위는 아니다.
이 집 만두는 맛이 있다. 담백해서 저녁에 아내와 먹고 자도
아침에 속이 쓰리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 집은 동네에서 소문난 집이고 만두를 잘 하는 집이다.

얼마 전 집 앞에 대기업의 체인점 수퍼마켓이 들어왔다.
그 맞은 편에는 할머니 한 분이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다.
수퍼마켓이 개점하는 날, 그 앞에는 빨간 글씨로
'지역 장사를 죽이는 대기업은 물러가라'는 플래카드가 걸렸고
동네 사람 몇 명이 팔짱을 낀 채 그 곳을 지켜보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다수의 동네 사람들이
대기업의 수퍼마켓을 찾았다.
처음에는 동네 할머니의 구멍가게를 지나서 수퍼마켓을 가야하는
그 길을 지날 때 사람들은 머리를 숙이거나 걸음을 빨리 걷곤 했지만
곧 그런 사람들도 없어졌다.

일주일이 지나서 구멍가게는 문을 닫았다.
그 가게에는 먼지낀 과자들과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들이 많았고 불량식품 과자들이 항상 가게 앞에 진열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앉아 있던 평상에는 색소가 짙게 보이는 슬러쉬가 돌아가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입 주변이 보라색으로 변해서 돌아가니곤 했다.

할머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그 불량식품 가득한 구멍가게를
살리지는 못한 것이다.
그리고 매일 매일 새로 물건이 들어오고 늦은 저녁에는 할인까지
해주는 수퍼마켓을 동네 주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용하는 것이다.

나는 이웃들이 물건을 팔고 내가 그 물건을 사는 일이 드문 시대에 살고 있다.
기껏해야 만두집이나 야채, 과일 가게 정도가 그렇고
나머지 수퍼마켓이나 빵집, 커피전문점, 미용실까지 체인점이다.

이런 체인점들은 쿠폰과 할인, 적립과 동일한 서비스로
주민들을 유혹하지만 동네 가게 주인들은 먼지쌓인 낡은 가게에서
더욱 불친절한 모습으로 이웃을 대할 때가 많다. 처음부터 게임이 안 된다.

집에 와서 아내와 만두를 먹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2009/11/07 20:13 2009/11/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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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마일>은 외설적인 요소를 많이 완화시킨 상태로 에미넴으 노래와 실생활을 묘사하지만, 기독교인이 여기에 표현된 많은 영상을 보고 어안이 막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어떤 기독교 단체는 감정을 상하게 하는 요소에만 초점을 맞추는 대단히 편협한 태도를 취하는 탓에 소외 계층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p152)

에미넴의 팬들은 화목하지 못한 가족관계, 경제 문제, 편부모 가정의 성장 환경, 여자친구와의 결별 등과 같이 영화가 묘사하는 에미넴의 난처한 상황에 자신들도 공감한다고 털어 놓는다. 기독교인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고통을 인정하고 살핌으로써 그들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어쩌면 에미넴은 그런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교회에 상기시켜 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p153)

"기독교인이 에미넴의 음악을 들어도 될까?"라고 질문하는 것도 중요하나, 그 질문에 집착하는 태도는 기독교인이 은둔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제한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이 말했다고 전해지듯이 에미넴은 사실상 "미국 미성년자들에게 소아마비 다음으로 가장 해로운 위협"일지도 모른다. 에미넴이 그 정도로 심상찮은 위협을 의미하긴 하지만, 정말 기독교인이라면 청취자들이 에미넴에 심취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만큼 매력적인 새로운 문화 아이콘을 창조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 (p156)

(사리스키, 절망과 속죄-에미넴에 대한 신학적 평가)

2009/11/02 20:13 2009/11/0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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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읽어주는 책이야기이자 묵상집

공지영. 내게는 익숙하고도 낯선 이름이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서사적인 이야기를 지나치게 영상물에 의존하다보니
나이가 들어서도 소설을 읽는 게 익숙치가 않아서다.
어쨌거나 인문학, 철학, 종교관련 책이 아니면 에세이집 외에 특별히 이런 소설 작가들의
글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 물론 이 책 제목은 전부터 질릴만큼 많이 들었었다.
내게 소설가들의 책은 익숙한 만큼 낯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훈의 소설도 그렇다.)

작년에 지승호씨가 공지영 작가를 상대로 인터뷰집을 냈다.
나는 그 책이 계기가 되어 작가 공지영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결국 이 책을 처음으로 그녀와 '만나게' 되었다.
(물론 더 일찍은 그녀의 책을 영화화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통해서였지만.)

위녕. 이 책에서 공지영이 편지의 대상으로 삼는 이 이름은 그녀의 소설집인
<행복한 나의 집>에 나오는 딸의 이름이라고 한다. 그녀는 딸인 '위녕'에게 여러 편의 글을 쓴다.
인생의 경험이랄수도 있겠고 딸에 대한 충고랄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은 무엇보다 공지영의 독후감에 가깝다. 매글마다 그녀가 설명해주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읽고 있는 나조차도 마음 속 깊숙히까지 풍성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녀는 독후감을 딸에게 쓰면서 딸이 겪고 있는 성장기의 문제들에 대해 솔직하고도 애정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깊고도 맑았다.

맑다는 표현이 순수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정화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 듯 하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그 내면의 소리들을 외면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그녀의 정서는 더욱 풍성해졌고 더 정화된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딸에게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통해
딸에게 인생의 경험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녕의 인생의 큰 지지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자녀를 항상 응원해주는 엄마를 둔 위녕은 얼마나 축복인지.)

시간이 부족한 삶을 사는 나는 보통 책을 속독한다.
정보를 급하게 구겨 넣었다가 필요할 때 다시 꺼내보는 습관이 나쁘게 굳어지고 있다.
나도 그게 나쁜 책읽기 습관이란 걸 알지만 고칠 엄두를 못낸다.
고친다면 난 책읽기를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르므로.
하지만 공지영의 책은 아껴서 읽고 있다. 아니 한 편의 글을 읽고 나서는 조용히 곱씹어보기 위해
일부로 책을 덮는 일이 잦다. 그 정서를 머리 끝부터 발가락 끝까지 음미하고 싶어서다.
묵상집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산문집에 감사를 표하며.
2009/10/13 20:51 2009/10/13 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