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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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의 돌을 맞아 돌잔치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돌잔치 비용을 아프리카 어린이 후원금으로 기부하기로 아내와 결정했다.

해서 생일 당일에는 조촐하게 가족만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고,
주말에 경우의 주선으로 아끼는 선후배 친구들이 모여서 성하의 첫 생일을 함께 축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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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와중에 참석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특히 논문 준비에 바쁠텐데 5시간 버스를 타고 왔다가 당일 밤에 내려간 양치기 소년
(이제는 아저씨라고 불러야 할 듯...^^)과 잠간이라도 와서 자리를 빛내준 후배 정은이에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10/01/13 23:40 2010/01/13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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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가정 예배를 드리고 한 해의 계획을 세우는 중.
예전에는 한 해를 정리하면서 체크 리스트 형식의 문항까지 만들어서
적어가며 정리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나쁘게 본다면 마음 속 치열함이 예전같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세세하게 정리해서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들을
분류하고, 새해에는 그것들을 다시 리스트로 정리하는 것이
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은 시들해졌다.

하지만 한 해를 돌아보고 그것을 평가하고 새해의 계획을 세우며
나의 내면과 삶의 방향성들을 점검하는 일들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망망대해에서 나침반도 없이 여기 저기 닥치는대로 노를 젓는 것처럼
인생에도 일희일비하며 매일처럼 입에 달콤한 음식과
몸에 자극이 되는 것에 집착해 살기에 너무나 적절한 요즘같은 세상에서.

무언가 나를 묶어두고 훈련하고 변화시켜가려는 원칙과 삶의 목적들을
되내어 보는 시간이 적어도 내게는 너무나 절실하다.

지난 한해 나는 어떻게 살았던가. 아니 지난 한해동안 나는 어떤 존재였던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나는 지인들에게 어떤 친구로 살았던가.
가족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한해를 돌아보고 새해 계획을 세우는 것은,
굳이 과거를 떠올리며 나의 많은 부족함들을 재차 확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원래 나는 여전히 부족한 존재이고 어떤 순간에는 악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것을 되내이며 스스로 자학을 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돌아보려는 것은 단지 내 삶의 방향이 내가 하는 말과 얼마나 어울리는지,
그리고 내가 걸어가는 내 삶의 걸음걸이가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지
설령 그 걸음이 한없이 더디더라도 제대로 걷고 있는지,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건지. 그것을 정기적으로나마 확인하려는 것이다.

돌아보면 솔직히 지난 한해동안 못 이룬 것들이 많다.
또한 더욱 삶에 자신이 없어진 나를 발견한다.
나이 서른에 나는 거칠 것이 없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점점 움츠려든다.
불혹의 나이까지 불과 5년.
한해 한해 더욱 많은 부분에서 흔들리고 자신 없어하는 나를 보며
5년뒤 내가 무슨 글을 쓰게 될지 벌써부터 식은 땀이 난다.

이렇듯 쩔쩔매는 마음으로 한 해를 연다...

2010년 1월 4일.
2010/01/04 22:57 2010/01/0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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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설계를 하면서 부차적이지만 내가 견디기 힘든 일들 가운데 하나는 협력업체 실무자들에게 과도한 업무와 일정의 압박을 주는 것이다. 가령 bracket 샘플 제작하는데 10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면 3-4일만에 제작해서 가져오라고 요구한다든지 샘플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일들이 생긴다. 물론 이러한 긴급한 일정은 위에서부터 하달된 차량 제작 단축일정에 기인한 것이지만 결국 야근에 철야까지 하게되는 업체 입장에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관계로 나는 설계업무를 하면서 나름의 원칙을 세웠는데 첫째로는 일정을 업체가 제시하게 하고 그 일정을 최대한 지켜주자는 것이다. 일정이 모자란 부분은 OEM에 속한 타부서, 이를 테면 차량 제작하는 부서나 차량시험팀에 협의하여 일정을 최대한 벌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당장 가져오라고 호통치고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강압적으로 일하는 극단적인 직원들에 비해서는 다소 뒤쳐지지만(이런 압박으로 날밤 새며 하루 이틀만에 샘플 제작이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실무자는 고된 노동으로 인해 퇴사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 나의 선의를 헤아려 부품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업체 분들도 노력해주었다.

두번째 원칙은 비용은 반드시 챙겨주자는 것. 물론 협력 업체가 양산시에 투자비를 환급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관행적으로 초기 개발에 사용되는 샘플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설계자가 조금만 신경쓴다면 전혀 불가능한 거은 아니다. 초기 투자비 예산 확보하여 집행함에 있어서 담당자가 절차상의 복잡함만 잘 견뎌낸다면 비용 지불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업무에 있어 업체 샘플비 지급을 우선적으로 처리하여 내가 개발한 부품 대부분의 샘플비는 모두 지급되었다. 하지만 내가 청구한 비용이 모두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업체와 구매팀과의 내고를 거치기 때문에 실지급액은 그에 못 미친다. 그래도 최소한 청구를 누락시키는 일은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

입사 이후로 조금씩 OEM과 협력업체의 관계도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협력업체를 하청업체로 생각하고 상명하복을 요구하는 분들이 사내에는 여전히 존재한다. 물론 그들의 강요는 더욱 짧아진 차량개발 일정과 급박하게 돌아가는 조직의 생리에 적응하기 위해 불가피한 관행이기도 하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실상 개선이 잘 되지 않기에 나도 내 협력업체 파트너가 야근, 특근을 일삼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매번 불편하기만 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통에 지인들에게는 새해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해를 돌아보면서 내가 회사에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협력업체 직원들, 특별히 사원, 대리급 실무자들에게는 감사의 메일을 썼다. 그들의 도움으로 한 해를 잘 마감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동안은 작은 것이지만 그런 표현조차 잘 하지 못했다. 새해에는 더욱 주변에 도움을 주는 분들에게 자주 표현하려고 한다. 흘러간 시간에 후회하는 일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어간다. 바로 잡자.

2010/01/02 20:16 2010/01/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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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지변의 사고로 딸을 잃은 엄마가
한 세미나에서 자신이 겪은 감정을 말하는 도중
눈물이 복받쳐 말을 잇지 못하면서 발표가 중단되었답니다.
그랬더니 사회자가 슬며시 곁에 다가와
물컵을 건네주면서 속삭이듯 말했다지요.
‘눈물도 말言이에요’

그 한마디로 깊은 날숨 같은 위로를 받았고
덕분에 감정을 잘 추스를 수 있었다는
그녀의 경험담을 전하는 일은 차라리 사족입니다.
자신을 그 엄마의 입장에 놓고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오는 문제이니까요.

부부 싸움 도중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너무 답답해서 울고 있는 아내에게
‘당신이 지금 울고 있는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해서 말해보라’는
논리적 남편의 전략적 주문은
아내 입장에선, 일종의 재앙입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눈물도 말(言)입니다’ 같은
지혜와 아량을 발휘할 사람이 곁에 있다면, 축복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지혜와 아량이 어른의 필수 조건인 것 같은 생각이
절실해지곤 합니다.
2009/12/03 22:55 2009/12/0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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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가 많이 좋아져서 병원가던 날.
이제 나았다는 의사선생님 소견서 받고 돌아와서
좋은 기분으로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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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면역이 약해져서 나다니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권고로.
앞으로 이불 속에서만 활개칠 것으로 보이는 성하군.^^

오늘도 아버지의 요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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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IXUS i)

2009/11/25 23:37 2009/11/25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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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포스팅을 유철닷컴에도 올렸더니 회원님들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자료 보관 차원에서 퍼왔다. 답글도 달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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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3 00:59:09 (121.138.192.89)
지강유철

저런저런....정말 맘고생이 말로 할 수 없었겠네. 잘 견뎌 준 성하가 고맙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낼 신종플루에서 온 가족이 해방되시길....

 
2009.11.24 00:43:22 (114.205.97.88)
김용주

오늘 병원다녀왔습니다.

완쾌되었다는 소견서 만원 주고 끊었습니다. (회사 제출용...)

 
2009.11.23 06:56:24 (115.143.254.54)
기김진호

놀라셨겠어요.  별 일 없을 거예요. 

학교도 신종플루로 전쟁을 치르고 있어요.


2009.11.24 00:44:21 (114.205.97.88)
김용주

아....

학교는 정말 걱정이 많을 거 같습니다.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모두...

저야 아이 데리고 안 나가면 그만이지만.

갈수록 애 키우는 게 걱정입니다.

 
2009.11.23 07:25:13 (115.95.119.116)
조기성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성하가 빨리 회복되고 건강하길...

저도 애들이 둘인데 남일같지 않아요.

환절기에 의례 기침하고 감기하는데

플루상황이니 조금만 증상이 있어도 화들짝 하곤합니다.

 
2009.11.24 00:45:24 (114.205.97.88)
김용주

주변에는 심각하진 않지만 신종플루로 심하게 고생한

유아들이 있더군요. 부모 맘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저도 이틀 동안 열이 안내리는데 정말 기도가 절로 나오더군요.

 
2009.11.23 08:36:27 (58.142.171.181)
김명재

걱정이 많이 되었겠습니다.

건강해졌다니 다행입니다.


어려운 시간을 잘 활용해 가족과 좋은 시간을 가지셨다니,

용주님의 넉넉함이 부럽습니다,


성하! 아이 이름이 참 이쁩니다,^^


2009.11.24 00:46:24 (114.205.97.88)
김용주

넉넉함은 애가 좋아지고 나서 생겼습니다.

애가 아프면 지옥이다가도 좀 괜찮아지면 금방 천국이되는게

부모 마음인가 봅니다.

 
2009.11.23 09:38:00 (125.178.50.17)
김세진

아직 가족 중에는 이런 일이 없다지만, 언제 어떻게 발생할 지 모르는 일이라 늘 조심하고 있습니다.

요즘 플루땜시 돌아다니는 일 자체가 쉽지 않던데...

그나마 천만 다행이네요.

 
2009.11.24 00:47:51 (114.205.97.88)
김용주

회사에서는 술잔 돌리기를 자제하는데

아직도 굳이 술잔을 돌리려는 상사들이 있어서...

늘 조심하려는데 방해 요소입니다. 에효...

 
2009.11.23 11:35:13 (115.145.33.167)
강구섭

맘 고생이 엄청 심하셨겠어요.

저도 10개월 된 아이 때문에 늘 신경이 가는데..

저희 아이는 주로 집에만 있어서 외부 접촉 우려는 많지 않고

지하철로 매일 출퇴근하는 제가 전달 가능한 우려 대상이라..

여하튼 상태가 괜찮다고 하시니 정말 기쁘네요.

걱정과 함께 덤으로 얻은 시간 잘 누리시는 것 같아 좋아보이네요.^^


2009.11.24 00:50:13 (114.205.97.88)
김용주

저희 가정도 아내가 아이를 거의 격리하다시피 하고 지냈다가

지난 주말에 돌잔치 한 번 갔다가 바로 걸렸습니다. 조심하세요.ㅜㅜ

 
2009.11.23 16:51:32 (116.43.35.12)
지현

어른이 걸려도 겁나는 것을,,,,

맘고생이 크셨네요..


아기가 너무 사랑스럽네요.

부디 어서 나아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랍니다^^

 
2009.11.24 00:52:08 (114.205.97.88)
김용주

오늘 병원에서 완치판정 받았습니다.^^

아이는 낫고 저는 이제 회사로 복귀해야겠죠.

정신없이 주말을 보냈네요.

 
2009.11.24 00:53:11 (110.12.42.26)
소리

온 가족이 많이 놀라고 힘드셨겠어요. 오늘, 플루가 무사히 지나간 것에 대해 감사 기도 드리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꼬마가 아주 귀엽습니다.(제 조카들만큼요~)

 
2009.11.24 00:55:28 (110.12.42.26)
소리

아, 벌써 완치 판정 받으셨군요! 정말 축하드려요~

(출처: 유철닷컴)

2009/11/24 23:36 2009/11/24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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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신종플루에 걸렸다. 별로 나다니질 않아서 걸릴 거라고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우리 가족 중에서 플루에 걸린다면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가장 허약체질인
 내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이는 전날 밤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해서 39도까지 올라가는 고온에 아내도 나도 당황했다.

아내와 나 둘다 신종플루만은 아니길 바랬는데 동네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서
신종플루 검진을 받아보라고 했고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신종플루 양성이라고 문자가 왔다.
아내는 부랴부랴 타미플루 처방을 받기 위해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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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처방받은 타미플루를 먹이고 나서 아이는 열은 떨어졌지만
밥을 잘 먹지 않고 다소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일 때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걱정에 또 걱정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열도 내리고 조금씩 아이가 생활이 안정되어가고 있다.

처음 아이가 신종플루 판정을 받았을 때는 마음이 힘들었다.
왜 우리 아이에게 이런 몸쓸 신종 질병이 찾아온 걸까, 심하게 아프지는 않을까
혹시 건강을 잃는 것은 아닐까, 밤새 체온을 재고 물수건으로 열을 식히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안정이 되고나니 신종 플루가 그닥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신종플루 판정 덕에 나는 회사에서 격리조치 당했다. 가족이 신종플루 판정을 받으면
가족이 나았다는 병원의 검진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무급 휴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지난 금요일부터 회사에 안 나가고 있다. 이로 인해 나는 하루 종일 아이와 아내와 함께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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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업무가 많아서 잠시 손 놓았던 요리도 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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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아이와 함께 밥도 먹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아이의 손을 붙잡고 이틀 밤 내내 기도를 했던 간절한 시간도 있었지만 아이가 조금씩 기력을
찾아가면서 함께 뒹굴기도 하고 멍때리며 둘이 누워서 키득거리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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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는 신종플루가 나에게는 뺏겼던 가족과 보내는 시간들을 돌려준 시간이 되었다.
내일 병원에 가봐야 하겠지만 아이는 건강을 많이 되찾은 것 같다.
그간 기도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ps.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플루로 고생하는 많은 가정들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 아이처럼 잘 견디지 못하고 힘들게 보내는 분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기도를 멈추지 않고
이제 그 가정들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아픈 건 부모에게 정말 큰 고통이다.

2009/11/23 23:35 2009/11/23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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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버지가 올라오셔서 모셔드리러 나갔다.

난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그의 뒷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뭉클했다.

구부정한 모습, 가방을 들고 힘없이 걷는 그의 뒷모습이
이제 정말 할아버지 같다.
2009/11/09 20:15 2009/11/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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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도 분리수거를 한다.
그 전에는 아파트 안에 쓰레기를 버리는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은 아파트 지하1층과 연결되어 모든 쓰레기들이
그 곳으로 굴러 떨어졌다.
아파트 지하 1층에는 쥐들이 살고 있었고 간혹 천장 너머로
쥐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언제부터인가 나도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지금도 분리수거를 정기적으로 하지만 할 때마다
나는 그 분리의 수위를 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다.
가령, 종이에 끼워져 있는 스태플러나 종이 박스에 붙어 있는 비닐은
그런 나의 갈등을 가중시킨다.

물론 모든 폐품은 잘 분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가끔 나는 그 수위 조절을 스스로 하고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늦은 밤에 분리수거를 하는 날에는 병을 모으는 자루에 플라스틱을
넣었다가 너무 깊이 들어가서 꺼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페이퍼 백에 붙어있는 쇠조각이나 나일론 줄을 제거하지 않는 날도 있다.

사실 나는 일회용 물건들의 사용에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 종이컵, 일회용 도시락통, 나무 젓가락, 비닐 봉지 등.
아내는 자주 나의 무절제한 일회용품 사용을 지적한다.
녹색평론을 보고 후원하면서 너무한다는 것이다.

가끔 발끈하긴 하지만 그 사실에 나는 동의한다. 나는 일회용품 사용에
개념이 없다. 분리수거를 하면서 죄의식의 상당부분을 털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분리수거마저도 완벽함이라는 수위 조절에 자주 실패한다.

나는 분리수거를 하면서 나란 사람이 소모하는 재화들을 곱씹게 된다.
나란 사람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사용되는 물건들이 실로 방대하다는 걸
나는 분리수거를 하면서 실감한다.
이러한 찌꺼기들을 매주 내뱉으면서도 경각심을 느끼지 못하는
나에 대해 조금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나는 어떤 면에서 상당히 이기적이다.
2009/11/08 20:14 2009/11/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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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동네 만두집 총각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웃으면서 멈춰서자 그는 반가이 나를 맞았다.
"뭘 드릴까요?" "김치 하나 고기 하나 주세요." "넵!"

사실 만두를 살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퇴근길에 간혹 늦게까지 장사를 하고 있는
그와 마주치면 난 거의 매번 만두를 샀다.
그를 위해 만두를 사준다는 표현이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그가 늦게까지 남은 만두를 팔고 있을 때는
나는 흔쾌히 계획에 없던 구매를 한다.

허나 그것은 어떤 자선의 행위는 아니다.
이 집 만두는 맛이 있다. 담백해서 저녁에 아내와 먹고 자도
아침에 속이 쓰리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 집은 동네에서 소문난 집이고 만두를 잘 하는 집이다.

얼마 전 집 앞에 대기업의 체인점 수퍼마켓이 들어왔다.
그 맞은 편에는 할머니 한 분이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다.
수퍼마켓이 개점하는 날, 그 앞에는 빨간 글씨로
'지역 장사를 죽이는 대기업은 물러가라'는 플래카드가 걸렸고
동네 사람 몇 명이 팔짱을 낀 채 그 곳을 지켜보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다수의 동네 사람들이
대기업의 수퍼마켓을 찾았다.
처음에는 동네 할머니의 구멍가게를 지나서 수퍼마켓을 가야하는
그 길을 지날 때 사람들은 머리를 숙이거나 걸음을 빨리 걷곤 했지만
곧 그런 사람들도 없어졌다.

일주일이 지나서 구멍가게는 문을 닫았다.
그 가게에는 먼지낀 과자들과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들이 많았고 불량식품 과자들이 항상 가게 앞에 진열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앉아 있던 평상에는 색소가 짙게 보이는 슬러쉬가 돌아가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입 주변이 보라색으로 변해서 돌아가니곤 했다.

할머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그 불량식품 가득한 구멍가게를
살리지는 못한 것이다.
그리고 매일 매일 새로 물건이 들어오고 늦은 저녁에는 할인까지
해주는 수퍼마켓을 동네 주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용하는 것이다.

나는 이웃들이 물건을 팔고 내가 그 물건을 사는 일이 드문 시대에 살고 있다.
기껏해야 만두집이나 야채, 과일 가게 정도가 그렇고
나머지 수퍼마켓이나 빵집, 커피전문점, 미용실까지 체인점이다.

이런 체인점들은 쿠폰과 할인, 적립과 동일한 서비스로
주민들을 유혹하지만 동네 가게 주인들은 먼지쌓인 낡은 가게에서
더욱 불친절한 모습으로 이웃을 대할 때가 많다. 처음부터 게임이 안 된다.

집에 와서 아내와 만두를 먹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2009/11/07 20:13 2009/11/07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