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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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년차 즈음부터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갖기를 원했지만 생각만큼 잘 되질 않았다. 오랜 시간 아이를 갖지 못한 분들도 많겠지만 1년 정도가 지나고 나니 마음이 참 초조했었다. 하나님이 우리 부부에게 아이를 선물로 주시지 않으려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가 아내는 다시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고 우리의 출산 계획은 다시 조금 미루었다. 기대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작년 5월 즈음 아내가 무심코 해본 테스트에 임신이 되었다고 나왔다. 확신은 들었지만 상심이 클까봐 그 날은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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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처음 진료를 보는 날. 처음 찾아간 대부분의 여성은 이런 얘길 들었겠지만 아직은 확실치 않으니 1주 정도를 더 지켜보자고 한다. 초음파 사진 속 콩알 같은 점이 임신의 표지일지 아닐지 모른 채 간호사가 챙겨준 사진을 들고 불안한 마음으로 아내와 돌아왔다. 그 일 주일 동안이 얼마나 조바심이 나고 걱정이 되었던지 아내와 감질나게 주고 받던 대화들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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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뒤에 찾아간 병원에서 우리는 축하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 초음파 속의 '너'는 어느덧 밤톨만한 크기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너'의 엄마와 나는 너의 태명을 [밤톨이]라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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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 뒤에는 너의 튼튼한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네 엄마의 몸에는 아직 큰 변화가 없는데 너는 그 속에서 마치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이 믿겨지지 않아 집으로 돌아와서 네 엄마와 심장 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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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만삭이 되기 전까지는 초음파 사진 속에서 대부분 외계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때때로 네 엄마와 나는 너를 두고 많이 놀려대곤 했지만, 병원을 찾아가는 날에는 네가 건강하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는 미간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세상 모든 산모와 남편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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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 초음파 사진으로 네 모습을 보던 날 너의 X자를 그린 손으로 인해 네 엄마와 나, 그리고 네 고모가 될 가족들과 친할머니를 무척이나 즐겁게 해 주었다. 덕분에 네 엄마는 네 3D 모양을 확인하러 몇 번 더 병원에서 정밀 초음파 검사를 해야 했다. 잘 보이지도 않는 얼굴을 놓고 누구를 닮았는지 한참을 이야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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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네 엄마는 너로 인해 입덧도 하고 몸도 무거워져서 점점 펭귄처럼 걸었다. 연애 초에는 몸무게나 몸매를 두고 놀리면 부부싸움이 날 뻔도 했는데 너를 품은 후에 네 엄마는 몸에 대해 놀리는 것을 나름 즐겼던 것 같다. 나도 임신한 아내의 모습이 결혼 전보다 더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평생에 잊지못할 말을 네 엄마는 해주었단다. 임신한 10달 동안 네 엄마는 참 행복했다고. 네 엄마가 내게 해 준 잊지못할 말 3위 안에 들 것 같다.

너를 출산하던 날. 네 고모부가 만들어준 두루치기를 먹고 네 엄마는 양수가 터져서 급히 병원에 갔다. 진통이 없어서 하루를 더 보내고 그 다음날부터 10시간을 아파하다가 너를 낳았다. 세상 모든 남편이 다 속이 타들어가는 시간이었겠지만 나는 마지막 3시간째에 네 엄마가 산소호흡기를 꽂고 호흡을 고르게 하지 못할 때는 너의 존재에 대해 잠시 원망을 하기도 했다. 아주 잠시지만.

나는 출산 전후의 사람들을 많이 보긴 했지만 정말 출산하는 자리에 산모와 함께, 비단 네 엄마 뿐만 아니라 다른 산모들도 함께 대기실에서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 모든 엄마들이 새삼 위대해 보였다.(나쁘게 말해서 불쌍해보이기도 했다.) 특히 예전에는 당연히 받았어야 할 보살핌조차 받지 못한 내 어머니를 포함한 그 세대의 산모들에게도 더 그러했다. (그래서 네 할머니에게 다시 한 번 감사했단다. 마음만이 아니라 직접 말로 표현을 다시 했다.)

솔직히 네가 태어났을 때 그래서 탯줄은 달고 있는 네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네 모습보다 너를 보고 웃는 네 엄마의 모습 때문에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너를 보았다. 눈은 부어서 속에 사탕이라도 담고 있는 것 같았고 다른 아이들 처럼 우렁차게 잘 울지도 않아서 걱정도 되었지만 무사히 나와 주어서 너무 감사했다.

너를 낳고 회음부를 꿰매고 돌아온 아내와 처음 너를 맞았을 때, 너는 목욕을 못해서 그런지 너에게서 갈비집에서 회식하고 나온 사람의 냄새가 났다. 특히 머리에서. 그날 저녁 밤늦게 곤히 자고 있는 네 모습을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봤다. 신기하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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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었다. 성하(性河). 아직은 익숙치 않아서 자꾸 밤톨아 하며 너를 부르지만 곧 네 이름이 우리에게 친근해질거다. 네 엄마는 첫날 너한테 '동하야' 했다. (동하는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상국이형/종임 커플의 얼짱 아이 이름이다.)

성하야. 세상 모든 부모들이 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과정을 거치고 같은 말을 하겠지만 나도 너의 출생을 비슷한 언어와 비슷한 과정으로 표현해서 미안하다. 너를 보고 있으면 내 가슴은 요동치고 설레인다. 이 속사람의 '흔들림'을 무슨 말로 적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너무나 바라던 선물임을 감사 또 감사한다.

하지만 네 출생의 주역이지 이 모든 잔치의 축하받을 주인은 네 엄마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네가 너무 예쁘고 연약해서 나를 포함한 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하물며 당사자 본인조차-너에게 관심을 쏟고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수고했다고, 사랑한다고, 더 아껴주겠다고 말해도 모자랄 네 엄마를 너도 너의 출생일에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2009/01/08 23:09 2009/01/08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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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za and the New Year”
"가자 지구와 신년"
By Daniel Barenboim
다니엘 바렌보임

31 December 2008

I have just three wishes for the coming year. The first is for the Israeli government to realize once and for all that the Middle Eastern conflict cannot be solved by military means. The second is for Hamas to realize that its interests are not served by violence, and that Israel is here to stay; and the third is for the world to acknowledge the fact that this conflict is unlike any other in history. It is uniquely intricate and sensitive; it is a human conflict between two peoples who are both deeply convinced of their right to live on the same very small piece of land. This is why neither diplomacy nor military action can resolve this conflict.
저는 다가오는 새해에 단 세가지의 소망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이수라엘 정부가 단 한번만이라도 군사적 수단으로 중동의 갈등을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길 바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하마스 진영이 그들의 관심사가 폭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이스라엘은 그곳에 존속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길 바랍니다. 세번째는 온세계가 이 갈등은 역사적으로 다른 갈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길 바랍니다. 이 문제는 유례없이 복잡하고 민감합니다. 하나의 아주 작은 땅에 살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깊이 확신하는 두 민족의 인간적 갈등입니다. 그래서 외교적이나 군사적 행위가 이 갈등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The developments of the past few days are extremely worrisome to me for several reasons of both humane and political natures. While it is self-evident that Israel has the right to defend itself, that it cannot and should not tolerate continuing missile attacks on its citizens, the Israeli army’s relentless and brutal bombardment of Gaza has raised a few important questions in my mind.
저는 지난 며칠간 일어난 일들로 인해 인도적 정치적인 여러가지 이유들로 극심한 우려가 생깁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방어할 권리가 있고 자국민에 대한 연이은 미사일 공격을 참을 수도 참아서도 안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이스라엘 군의 가자지구에 대한 무자비하고 잔혹한 폭격은 제 맘속에 몇가지 중요한 질문들을 야기시킵니다.

    The first question is whether the Israeli government has the right to make all Palestinians culpable for the actions of Hamas. Is the entire population of Gaza to be held responsible for the sins of a terrorist organization? We, the Jewish people, should know and feel even more acutely than other populations that the murder of innocent civilians is inhumane and unacceptable. The Israeli military has very weakly argued that the Gaza strip is so overpopulated that it is impossible to avoid civilian deaths during their operations.
첫번째 질문은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의 활동에 대해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이 유죄라고 할 권리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가자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한 테러러스트 조직의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겁니까? 우리 유대인들은 선량한 시민들을 살인하는 것이 비인도적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다른 민족들보다 더 민감하게 알아야하고 느껴야 합니다. 이스라엘 군당국은 가자 지구가 인구 과밀이라 자신들의 군사행동으로 야기되는 민간인들의 사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변명을 합니다.

    The weakness of this argument leads me to my next set of questions: if civilian deaths are unavoidable, what is the purpose of the bombardment? What, if any, is the logic behind the violence, and what does Israel hope to achieve through it? If the aim of the operation is to destroy Hamas, then the most important question to ask is whether this is an attainable goal. If not, then the whole attack is not only cruel, barbaric, and reprehensible, it is also senseless.
이 변명은 저의 다음 질문으로 이끕니다. 만약 민간인 사상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폭격의 목적이 무엇인가요? 논리가 설령 있다고 한다면 폭력의 배후 논리는 무엇이고 이스라엘이 그것을 통해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가요? 작전의 목표가 하마스를 괴멸하는 것이라면, 물어볼 가장 중요한 질문은 그게 실현 가능한 목표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모든 공격은 잔인하고 야만적이고 비난받아야할 뿐 아니라 어리석은 것입니다.

    If on the other hand it really is possible to destroy Hamas through military operations, how does Israel envision the reaction in Gaza once this has been accomplished? One and a half million Gaza residents will not suddenly go down on their knees in reverence of the power of the Israeli army. We must not forget that before Hamas was elected by the Palestinians, it was encouraged by Israel as a tactic to weaken [Yasser] Arafat. Israel’s recent history leads me to believe that if Hamas is bombarded out of existence, another group will most certainly take its place, a group that would be more radical, more violent, and more full of hatred toward Israel than Hamas.
반면에 군사작전을 통해 하마스를 괴멸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이스라엘은 괴멸후의 가자에서의 반응은 어떠리라 보는겁니까? 150만명의 가자 주민들은 이스라엘 군대의 힘에 존경을 보내며 갑자기 무릅꿇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의해 선출되기 전에 아라파트를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하마스가 선출 되도록 하는 것이 [이스라엘에 의해] 권장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최근 역사를 볼 때 하마스가 폭격으로 괴멸된다면 또 다른 그룹이 그 자리를 차지 할 것이라는 것이 자명합니다. 그 그룹은 어쩌면 더 극단적이고 더 폭력적이며 하마스보다 훨씬 더 이스라엘을 증오할 지도 모릅니다.

    Israel cannot afford a military defeat for fear of disappearing from the map, yet history has proven that every military victory has always left Israel in a weaker political position than before because of the emergence of radical groups. I do not underestimate the difficulty of the decisions the Israeli government must make every day, nor do I underestimate the importance of Israel’s security. Nevertheless, I stand behind my conviction that the only truly viable plan for long-term security in Israel is to gain the acceptance of all of our neighbors. I wish for a return in the year 2009 of the famous intelligence always ascribed to the Jews. I wish for a return of King Solomon’s wisdom to the decision-makers in Israel that they might use it to understand that Palestinians and Israelis have equal human rights.
이스라엘은 지도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두려움때문에 군사적 패배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증명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군사적 승리를 거둘 때 마다 이전보다 정치적 입지가 더 약화되었는데 그 이유는 급진적인 그룹들의 출현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정부가 매일마다 해야 할 결정들의 어려움이나 이스라엘의 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과소평가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장기적 안보에 대해 진정으로 유일하게 가능한 계획은 인접 국가들로부터 용인을 얻어내는 것이라는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2009년에는 유태인들이 물려받은 한 유명한 지혜의 귀환을 희망합니다. 이스라엘의 위정자들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가 동등한 인권을 갖고 있음을 이해하는데 소용이 있을지도 모를 솔로몬왕의 지혜의 귀환을 소망합니다.

    Palestinian violence torments Israelis and does not serve the Palestinian cause; Israeli military retaliation is inhuman, immoral, and does not guarantee Israel’s security. As I have said before, the destinies of the two peoples are inextricably linked, obliging them to live side by side. They have to decide whether they want to make of this a blessing or a curse.
팔레스타인인들의 폭력은 이스라엘인들에게 극심한 성처를 주고 또한 자신들을 정당화 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군의 복수는 비인도적이고 비도덕적이며 자신들의 안보를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제가 전에도 말했던 것과 같이 이 두 민족의 운명들은 나란히 옆에서 살아가도록 협조해야만 하도록 풀리지 않게 얽혀있습니다. 그들이 이것을 축복일지 저주로 만들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Vienna — 31 December 2008


**출처: 유철닷컴 (포스팅 by 엄이재윤님)
2009/01/08 22:42 2009/01/0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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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정이란게 내 맘 같지 않은 경우도 있다.
뭐. 연애를 하다보면 그런 일을 자주 겪기도 하겠지만,

누군가에게 관심을 보이고 애정을 쏟고 싶어도
그런 것들을 튕겨내는 사람이 있다.
특별히 상대가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다.

내겐 이런 일이 새해 인사를 하다보면 간혹 겪게 되는데
그래도 내게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가 원치 않게 봉변을 당하게 되기도 한다.

오늘, 나는 그 사람의 번호를 모두 지웠다.
번호 뿐만 아니라 기억 속에서도 모조리 지워야 할 것 같다.
2009/01/05 20:09 2009/01/0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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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를 연구한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개미들 중 직접 노동에 종사하는 비율은 1/3정도이고,
나머지 2/3은 위기 관리를 위한 예비자원이라고 한다.

또, 하루 중 개미의 노동시간은
4시간 정도로 인간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배짱이는 원래부터 겨울 이전에 생을 마감하는 곤충으로,
수컷은 여름에 열심히 노래를 불러 암컷을 유혹하고
짝짓기에 성공해야 자손을 남길 수 있다고 한다.

(고병권,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2008/12/27 20:08 2008/12/2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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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TV를 보다가 <공부의 천재>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학업 성적이 부진한 학생들에게 합숙을 하면서 공부법과 용기를 북돋워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나름 학생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을 통해 듣게 되는 이야기와 가족들의 모습, 그리고 진행자들과 친밀해져가는 과정이 연예프로그램 치고는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모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방법을 익히고서 치른 모의고사의 점수 공개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더군요.

성적이 오른 학생들과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뒤로한 채 프로그램은 끝이 났습니다. 허나 나는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느꼈습니다. 분명 1시간 내내 몰입해서 보았지만 유용했던 영상들과 음성들이 뒤섞여 제 머리 속을 맴돌았고 이내 저는 그 안에서 어떤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제가 보았던 그 날의 프로그램에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나와서 공부법에 대한 강의를 했습니다. 그의 공부법은 간단명료했고 무엇보다 듣는 이들로 하여금 도전 의식을 심어줄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환경을 통해서 학업에 대한 열심을 내었던 그의 긍정적 에너지에 큰 박수마져 쳐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학생에게서는 그러한 공부의 '목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인생의 목적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어쩌면 <공부의 천재>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도구로서의 공부에 대한 기술, 방법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기 때문에 그 천재 학생의 가치관, 인생의 목표, 삶의 열정 같은 것이 배제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러한 저의 불편한 마음은 공부의 기술만을 보여주려했던 방송 프로그램에게만 돌아가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그래서 제가 그 학생으로 대변되는 가치관에 대한 비판이 그 학생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을 가정한다면 저는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습니다.
그 학생이 공부를 잘 하고 싶었던 유일한 목적은 오로지 "최고의 학생들과 겨루고 싶다"는 경쟁심 때문이었습니다. 나도 일류와 겨룰 수 있고 그 일류 집단에서 머리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자신을 채찍질했고 그 어렵던 방대한 분량의 공부도 넉넉히 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타인과의 경쟁, 겨루기로서의 학업 목표에 대해 당황스러움을 갖게 됩니다. 또한 마음이 크게 불편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된 공부가, 경쟁으로서의 목적 자체가, 진정한 학문의 대가가 되었을 때에는 자연히 더 근본적인 방향으로 전이될 확률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고지를 향한 걸음으로서의 학업은 우리 모두가 지양해야 할 대상은 아닌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공부를 잘하고 정보를 많이 익히고, 학문의 대가의 반열에 오르더라도 그의 인생은 허무할 수 있으며, 때로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일에, 타인을 파괴하고 이웃을 삶의 영역에서 배제시키는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배움이 인간성을 구원할 것이라던 계몽주의적 근대성은 커다란 2개의 전쟁으로 인해 그 명맥을 이을 수 없을 정도로 쇠퇴하였음을 기억합니다.

물론 공부법은 중요합니다. 운동을 할 때에도 정확한 이론에 근거한 자세, 방법, 훈련의 기간을 숙지하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진전이 없는 것처럼 학업에도 효율이 높은 방법과 TIP들이 있습니다. 또한 진정으로 원대하고 희생적인 인생의 목표를 세웠다 하더라도 개별 학문에 있어 정확한 정보의 이해와 뛰어난 실력이 없으면 그 목표에 합당한 삶을 사는 데에 장애요소가 될 것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적인 접근으로만 끝나는, 그리고 나아가 그 방법을 통해 이루려는 목적이 고지론인, 일류 그룹에서의 경쟁 그 자체라면 이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스티븐 코비는 그의 강연에서 히틀러와 간디의 유일한 차이는 그의 윤리관이자 가치관이라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이는 인간과 동물을, 나아가 존경과 비판의 대상을 구분짓는 가장 근본적인 잣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혹자는 순서가 뒤바뀌었을 뿐 일단 고지를 점령해야 더 큰 이야기, 즉 거대담론, 메타담론, 세계관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러한 생각 때문에 히틀러와 간디의 차이가 생겨났다고 믿습니다.

<공부의 천재>를 보면서 갑자기 "공부해서 남주자"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이 최고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일류이든 이류이든 상관없이, 가장 효율적이든 도리어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남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인생이 <공부의 천재>이자 <인생의 천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씁쓸한 마음이 털어지지 않는 저녁입니다. (끝)
2008/12/22 19:24 2008/12/22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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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철도노조 문제로 뉴스를 보면 시민을 볼모로 무리수를 둔다는 둥, 시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불편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왜 철도 노조원들은 파업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무감하다. 구조조정이 철도 노동자들에게 어떤 문제를 초래하고 그들은 어떤 이유로 구조조정을 반대하는지에 대한 팩트보다는 시민인 나의 불편함을 위주로 뉴스화하는 것이 나는 불편하다.

홍세화가 자신의 책에서 언급했듯이, 프랑스는 노동자 계급이 혁명의 주체였기 때문에 노동자의 위상이 높다. 또한 그들은 단위 사업장의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토론과 논쟁을 통해 그들의 요구와 행동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합당하다고 여기면 자신의 불편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지하철이나 철도 노조가 파업을 하면 그들을 위해 친히 자가용이나 자전거, 심지어 걸어서 출근하는 것을 기쁘게 동참한다.
 
우리 나라는 시민과 노동자 사이의 간극이 크다. 이는 시민들 자체가 부르주아 계급을 지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노동자의 단위 사업장 중심의 이기주의적 요소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시민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의 요구사항과 그 진행 과정에 너무 무심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발생한 불편함에 짜증만 내곤 한다. 보수적인 매체들은 이런 시민들을 담보로 쉽게 노조를 죽이는 기사를 남발한다. 마음이 답답하다.

2008/11/19 20:08 2008/11/1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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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의 그림에세이] 상사화相思花

기차 여행에서 마주 앉은 일행이 보는 풍경은 조금 다릅니다.

기차의 진행방향 쪽으로 앉은 사람은 다가오는 풍경을 보지만
반대편에 앉은 사람은 지나온 풍경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풍경에는 미묘한 온도차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얼굴을 자주 대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서로 다른 풍경을 보며
대화하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는 때가 있다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마주 보는 사이라는 게 오히려 짐이 됩니다.

친밀한 관계에 있는 어떤 이와 적당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면 더 오랫동안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할 수 있을지도요^^
2008/10/30 22:39 2008/10/30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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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 리얼 스토리ㅣ최민수는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허지웅 기자


세상은 얼마나 쉽게 이유를 만들고 합리를 씌워 결과를 만들어내는가. 누군가의 신념을 매도하고 개성을 희롱하고 사실을 왜곡하기에 얼마나 편리한 곳인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게, 누군가는 괴물이 된다.

최민수가 산에 들어 간지 4개월이 지났다. 산 속에서 홀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다. 가끔 급하게 필요한 물건을 매니저에게 부탁할 때를 제외하면 대개 그렇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최민수 사건은 어렴풋한 자취만 남기고 지워진지 오래다. 최민수가 훈계하는 노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칼을 휘두르고 차에 매달아 질주하다 세상의 질타를 당하고 산 속으로 숨어들어갔다지. 그렇게 막돼먹은 패륜의 기운만 묻어날 뿐이다. ‘최민수 70대 노인 폭행 의혹’ 사건이 아니라 ‘최민수 70대 노인 폭행’ 사건으로 남았다. 400억 원 규모 한-미-일 합작영화 <스트리트 오브 드림즈>의 출연은 무산됐다. 드라마 <한강> 출연료 미반납을 이유로 2번에 걸쳐 피소되면서 반갑지 않은 구설수에 다시 올랐다. 언론은 악재가 겹쳤다고 보도했다. 물론 사연이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민수의 연기 경력은 끝장난 것처럼 보였다. 아니, 정상적인 사회 활동이 더 이상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다. 세상은 누군가에 대해 한 번 내린 판단을 쉽게 뒤집지 않는다. 그것이 왜곡된 진실이라도 마찬가지다. 굳이 헤집어 진실을 따져볼 의지 따윈 드물다.

그러나, 저 떠들썩했던 ‘최민수 70대 노인 폭행 의혹’ 사건은 재판까지 가지도 못했다. 사건이 검찰로 송치된 이후 최민수는 두 번 서울 서부지방 검찰청에 출석했다. 처음은 단독 조사, 두 번째는 유씨 노인과의 대질 조사였다. 최민수는 변호사조차 대동하지 않았다. 경찰 조사 때부터 그랬다.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법이 공정한 판결에 따라 죄를 묻는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겠다며 굳이 변호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지난 6월 27일 서부지검은 최민수에 대한 폭행 및 협박 혐의에 대해 모두 ‘혐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무혐의였다. 기소되지 않았다. 항간에는 화해조로 거금의 합의금이 오고갔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거기 합의금 같은 건 없었다. 최민수는 죄가 없음이 밝혀지고 나서도 산에 머물렀다. 언론은 전만큼 시끄럽지 않았다. 정정보도는 당연히 없었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나

지 난 4월 21일 오후 1시경, 최민수는 운동을 마치고 하야트 호텔을 나섰다. 자기 소유의 지프 랭글러를 타고 이태원을 향했다. 늘 그곳을 경유해 집으로 가곤 했다. 그래서 이태원을 지나다보면 종종 오토바이나 지프차에 올라탄 최민수를 목격할 수 있었다.

이 태원 소방 사거리를 약간 미치지 못해 갑자기 도로가 막히기 시작했다. 신호 대기가 아니라 아예 차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은 최민수가 차에서 내렸다. 50미터 전방에 견인차가 길을 막고 있었다. 견인차는 D주차장 앞에 서있는 BMW 자가용을 견인해가려 했다. 이를 방해하고 있는 건 D주차장 직원들과 이 주차장을 사용하는 갈비집의 사장 유씨 노인이었다. 유씨 노인은 그 지역 유지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용산 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들과도 대부분 안면이 있을 정도라 경찰서를 찾았던 최민수측 일행들이 놀랐다는 후문이다.

이들의 다툼 탓에 체증이 발생한 것이다. 도로는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좀체 이런 걸 참지 못한다는 최민수가 상황에 합세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최민수는 견인차가 BMW를 견인해갈 수 있도록 도우려 했다. 결국 시비는 최민수와 유씨 노인의 몸싸움으로 옮겨 붙었다. 노인이 먼저 최민수의 멱살을 잡았고, 상호 몸싸움을 동반한 실랑이 중에 최민수가 입고 있던 셔츠 상단 단추가 모두 뜯겨 나갔다(이 뜯겨진 셔츠도 경찰에 증거로 제출되었으나 이에 대해 보도한 언론은 없었다). 최민수가 했다는 ‘폭행’은 이때의 몸싸움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폭력행사는 아니지만 멱살을 뿌리치기 위해 밀치는 것 역시 폭행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최민수가 주위 이목이 있으니 일단 주차장 사무실로 가서 이야기하자 제의했다. 사무실 안에서도 다툼이 계속 이어졌다. 이때에 대한 진술은 이해당사자에 따라 크게 엇갈린다. 최민수는 때리려는 것처럼 손을 들기는 했으나 폭력을 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유씨 노인은 최초 출동한 지구대 경찰들에게 최민수가 군화발로 처참히 짓밟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최민수는 바이커들이 종종 신는 큼직한 워커를 신고 있었다. 거기에 밟혔다면 건장한 청년이라도 무사하기 어렵다. 그러나 유씨 노인은 결과적으로 상반신에 동전만한 멍이 들었을 뿐이었다.

BMW의 견인이 완료되자 최민수가 자리를 떠나려 시도했다. 최민수가 사무실을 나서 자기 지프로 향하자 유씨 노인이 서둘러 신고를 했다. 사건은 이태원 지구대에 접수됐다. 최민수가 차를 출발해 50미터 가량 움직이다가 이태원 소방서 사거리에서 신호대기를 위해 멈춰 섰다. 그때 유씨 노인이 최민수의 출발을 막기 위해 지프 앞 보닛에 매달렸다. 마침 파란 불이 들어왔다. 당황한 최민수는 지프를 도로 갓길에 세우기 위해 차를 출발시켰다. 노인이 매달린 채로 지프가 수 미터 이동해 갓길에 멈춰 섰다. 수백 미터 질주 따윈 애초 없었다. 최민수가 노인을 지프 안으로 끌어들였다. 옆 좌석에 탄 노인과 최민수 사이에 다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사건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지점이 여기서 발생한다. 지프의 기어 뒤쪽에 움푹 팬 작은 공간이 있었다. 평소 오프로드를 즐기는 최민수는 거기에 작은 나이프를 상비해둔 상태였다. 나이프 주머니를 아예 본드로 차체에 부착해놓았다. 유씨 노인은 나중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진술을 번복하기 전까지 최민수가 칼을 끄집어내 휘둘렀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최민수는 끝까지 칼에 손도 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정적으로 최민수가 칼을 빼내 휘둘렀다는 목격자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 증언이었다. 당시 증언을 했다는 박모씨는 “칼을 꺼내 휘둘렀다고 말한 게 아니라 최민수씨가 칼을 꺼내 휘둘렀다고 외치는 노인의 말을 들었다고 증언한 것”이었다며 더 이상의 설명을 회피했다. 명백한 위증이다. 그러나 처벌할 수 없다. 현행 법상 재판 중이 아닌 수사 과정에서의 위증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이 때 지구대의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은 조사를 위해 지구대 사무실로 가야한다고 말했고, 최민수와 유씨 노인은 지프에 탄 채 그대로 지구대까지 이동했다. 지구대 사무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초반에는 고성을 지르며 서로의 입장을 변호했다. 그러나 곧 원만하게 화해했고 지구대 경찰 또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유씨 노인의 말에 사건을 종결지었다. 모든 게 거기서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 날 이후 무슨 일이 있었나

바 로 다음 날 최민수의 이름이 ‘배우 C'로 명기된 사건 기사가 인터넷에 등장했다. 일간스포츠의 보도였다. 최민수의 매니저도, 유씨 노인의 가족도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뒤늦게 사실을 안 매니저가 유씨 노인이 경영하는 갈비집을 찾았을 때는 이미 케이블 방송 취재진들이 도착해있는 상황이었다. 취재진들이 인터넷에 보도된 기사 내용대로 가족들에게 사건을 설명했고, 가족들은 무척 흥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3일에는 용산경찰서에 사건이 다시 신고 됐다. 유씨 노인이 한 것은 아니었다. 경찰은 당시 사건을 목격한 제보자의 신고였다고 설명했다. 유씨 노인이 먼저 경찰의 호출을 받았고, 유씨 노인이 최민수에게 “제보자가 경찰에 신고했다고 하니 조사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연락해와 같은 날 최민수 역시 용산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 다음 날인 24일, 최초로 최민수의 실명이 거론된 기사가 등장했다. 쿠키뉴스의 보도였다. 기자는 “경찰에 따르면”이라는 단서를 단 채로 “교통체증이 심하자 최씨는 차에 앉은 상태에서 주변을 향해 큰 소리로 마구 욕을 퍼부었다” “최씨는 차에서 내려 유씨를 폭행했다” “대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주먹으로 수차례 유씨를 때렸다” “최씨의 폭행에 놀란 유씨는 휴대전화로 ‘살려달라’며 인근 지구대에 신고를 했다” “최씨는 유씨는 매단 채로 200-300미터를 운전했다” “유씨가 떨어지지 않자 최씨는 오픈 지프차에 앉은 채로 소지하고 있던 등산용 칼을 꺼낸 뒤 본네트에 매달린 상태의 유씨를 향해 위협적으로 휘드르며 ‘죽인다’고 소리쳤다”고 상황을 서술했다. 경찰은 “경찰에 따르면”식의 인용이 가능할 정도로 제공한 정보가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 전달을 넘어선 수사나 감정의 개입이 눈에 띠는 기사다. 아니 기사라기보다 이건 차라리 소설에 가까웠다. 이후 타 언론사의 유사한 보도들이 일일이 사례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져 나왔다. 여론은 더할 수 없이 험악해졌다. 인터넷은 최민수를 향한 공격성 게시물로 넘쳐났다. 모두가 최민수를 증오했다.

최민수가 쿠키뉴스의 실명 보도 사실을 안 건 24일 최수종과 박수홍이 진행하는 <더 스타쇼>의 녹화 중간이었다. 이 날 촬영분은 전파를 타지 못하고 이후 폐기처분 됐다. 최민수는 공식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회견에 앞서 먼저 유씨 노인의 갈비집을 찾아가 무릎을 끓고 용서를 빌었다. 회견은 저녁 9시 30분 이뤄졌다. 그는 어쨌든 노인과 시비가 붙어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폭행혐의에 대해 다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고 전부가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다. 어제 진술을 다 끝냈다. 과장의 부분도 있다. 어차피 조사가 끝나면 다 밝혀질 것 같다”고 답했다. 더불어 "만약 그것(노인 폭행)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여러분들은 제발 나를 용서하지 말라. 진실은 밝혀지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이 유씨 노인측을 결정적으로 자극했다. 유씨 노인은 전치 2주의 진단이 나왔다며 고소할 뜻을 밝혔다. 28일 최민수가 노인이 입원해있는 병원을 문안차 방문했을 때 둘 사이에 화해가 이뤄지면서 비로소 유씨 노인의 마음이 풀렸다. 다음 날 유씨 노인은 폭행건과 관련해 최민수측과 합의키로 했다. 30일 경찰이 최민수와 유씨 노인을 다시 소환했다. 이날 조사에서 유씨 노인은 “당시 경황이 없어서 칼을 휘둘렀다고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 발짝 물러섰다. 또한 최민수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제출했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목격자 조사 등을 거듭한 결과 주먹질이나 발길질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최민수가 피해자를 매달고 수백 미터를 질주했다는 이야기 역시 크게 과장됐다"고 밝혔다. 이후 사건은 흉기 사용건에 한해 협박죄가 적용돼 5월 초 검찰로 송치됐다. 앞서 언급했듯이 검찰은 최민수가 흉기를 사용해 협박한 부분에 대해 6월 27일 최종적으로 무혐의를 선언했다. 서울 서부지검 황윤성 차장검사는 "폭행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최씨와 폭행당한 유모씨 사이에 합의가 이뤄진 사항이고, 흉기로 위협했다는 것도 실제로 칼을 뽑아 든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최민수는 괴물이 되었다

어 떤 한 사람을 향한 불특정 다수 언론의 왜곡보도가 이토록 집중적으로 자행됐던 사례가 있었던가. 이 정도면 폭격이라 할만하다. 기자회견 직후 최민수는 잠시나마 자살을 염두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번도 정정 보도를 요청하지 않았다. 더불어 구체적인 해명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어차피 해명이 아닌 변명으로 들릴 말이라면 하지 않는 게 좋고 어차피 시간이 다 해결해줄 것”이라며 스스로 거부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세상이 자신을 온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과연 죄가 없음이 판명됐다. 그러나 가끔은 비온 뒤에 굳지 않는 땅도 있는 법이다. 그는 이미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뒤였다.

유씨 노인 잘못이 아니다. 시시비비는 늘 발생하기 마련이다. 상황이 급박했기에 판단이 흐려졌을 수도 있다. 모두가 그렇듯, 사람은 때때로 기억을 조작한다. 문제는 언론에 있었다. 악랄했다. 사건 초반, 모든 게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였다. 상식을 거스를 정도로 기이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오보의 가능성 따위 얼마든지 감수하면서 기사를 내보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확한 사실을 알리고자 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무도 사실을 욕망하지 않았다. 정작 그들이 욕망했던 건 진실이 아니라 이슈였다. 정확한 사실전달보다 좀 더 빠르고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를 원했다. 뉴스 소비 행태가 인터넷 포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황색 저널리즘이 유난히 강화됐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특히 인터넷 언론이 보인 행태를 주목해보자. 눈에 띠는 제목일수록, 자극적인 이야기일수록, 특종처럼 보일수록 더 나은 자리에 기사가 배치될 수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더 많은 구독자는 더 많은 광고를 의미한다.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최민수 아니라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라도, 돈만 된다면 순식간에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 언론이다.

이 사안과 관련해 최민수측에 사과를 하거나 정정 보도를 한 매체는 하나도 없었다. 엉뚱하게도 윤승환이라는 이름의 네티즌이 ‘최민수씨 사건내막, 언론의 코미디’라는 글을 써 인터넷에 게시하면서 사실을 전달하려 애썼다. 최민수는 이 글을 보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사건 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비호감을 사고 있었다. 그의 과장된 남성성과 눈에 띠는 자의식, 일반인의 상식을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내는 듯한 문어체 발언들을, 사람들은 싫어했다. 이 정도 규모의 매도는 개인 최민수에 대한 선입견이 전제되지 않고선 좀체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 편으로 최민수는 보기 드물게 자기 목소리를 가진 배우였다. 자기 얼굴을 자기 소신을 자기 생각을 가진 배우였다. 더불어 그것을 거리낌 없이 표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이 시끄러운 시장판에서 배우 개인은, 엔터테이너 개인은 하나의 기업과도 같다. 뻐꾸기 마냥 빤한 말만 늘어놓는다. 느는 건 화장술뿐이다. 최민수의 말과 행동이 설사 호감을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해도 우리는 그를 조금 더 아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언론은 뜨거운 기사거리를 앞에 두고 조금 더 신중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나중에라도 사과하고 최민수 개인의 명예 복원을 위해 조금 더 신경 써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최민수는 괴물이 되었다. 허지웅 기자 (<프리미어> '리얼 스토리')
2008/09/29 22:39 2008/09/29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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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인용들
노래를 들으면
/송한얼


나는요
노래를 들으면
무슨 느낌이 나요.

슬픈 노래는요,
내가 죽는 느낌이구요.
신나는 노래는요,
싸우는 느낌이에요.

(마주이야기2, "튀겨질 뻔 했어요" 중에서)
2008/09/18 22:37 2008/09/18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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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인용들
"고통을 받는다는 것과
고통의 이미지가 찍힌 사진을 보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고통의 이미지가 찍힌 사진을 본다고 해서
양심이나 인정을 베풀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더 망가져 버릴 수도 있다." 

(Susan Sontag, "On Photography" 중에서)
2008/09/06 22:35 2008/09/06 2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