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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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책 단말기는 태블릿 대비 불편한 점이 있지만 독서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묘한 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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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ppi를 탑재한 전자책 단말기의 반격

전자책 단말기가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달리 올 가을은 전자책 단말기의 계절이 될 듯하다. 지난 9월 15일 한국이퍼브에서 '크레마 카르타'를 출시한 데 이어 리디북스가 오는 5일 '리디북스 페이퍼'를 출시한다. 

사실 전자잉크 단말기는 그간에도 건재했다. 전자책 시장의 공룡이라고 말할 법한 아마존에서는 태블릿과 함께 여전히 전자잉크에 기반을 둔 단말기인 킨들 페이퍼화이트를 3세대째 유지하고 있으며 이미 2014년 새로운 단말기 '킨들 보이지'를 선보인 바 있다. 국내 온라인 서점의 새로운 '도전'은 이런 아마존의 단말기 생존 전략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올가을 국내에서 출시되는 전자책 단말기는 총 3종이다. 이 중 킨들에서 이미 적용한 6인치 '카르타 패널'을 적용해 300ppi의 해상도를 구현한 한국이퍼브의 '크레마 카르타'는 사양 측면에서는 킨들의 페이퍼화이트 3세대와 같은 급으로 볼 만하다. 

이달 5일에 출시되는 리디북스의 단말기 2종은 사양 이원화를 통해 저가사양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고급사양은 킨들 보이지 수준의 해상도와 기능을 탑재하여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국내 구매자들은 태블릿에 익숙하기 때문에 CPU나 저장공간, 배터리 용량을 늘리는 등 나름 사양에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전자책 단말기, 태블릿 시장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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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전자책단말기 사양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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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전자책 단말기가 다시금 활기를 띠게 될까. 아직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이미 전자책 시장에 내놓은 많은 전자책 전용 단말기들이 시장에서 사라져 가고 있지 않은가. 사실 내가 전자책 단말기가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 이유는 무엇보다 7인치 태블릿의 약진 때문이었다. 

킨들이 출시된 이래 전자책 단말기의 가장 큰 장점은 크기와 무게였다. 물론 전자잉크의 가독성을 손꼽는 이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200g 내외의 무게에 6인치 사이즈의 이 기기가 가져다 준 효용성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아마존이 초기 킨들을 홍보할 때 빠지지 않았던 요소는, 여성과 노약자들도 침대에 누워서 독서를 즐길 수 있다는 점과 여행지에서도 부담없이 두꺼운 책들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 그보다 높은 해상도와 가벼운 무게, 그리고 10만~20만 원대의 저렴한 태블릿이 쏟아졌다. 아마존이 이윤을 포기하다시피 하며 태블릿 시장에 뛰어들어 파이어 시리즈를 출시하게 된 이유도 아이패드 미니를 위시한 태블릿의 비약적인 발전과 가격 경쟁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자잉크의 한계도 한 몫 거들었다. 화보집과 잡지 등 다양한 색으로 구성된 책들은 전자책 단말기에 적합하지 않지만, 칼라 잡지도 높은 해상도에 동영상까지 첨부하여 재생할 수 있는 7인치 태블릿은 전자책 단말기를 대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제공했다. 

같은 가격에 같은 사이즈의 단말기를 구입해야 한다면, 그리고 한쪽(태블릿)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면 사람들의 선택은 정해지지 않겠느냐 하는 게 내 생각이었다.

소소한 기능들의 조합으로 되살아난 '독서 덕후들의 기기'

하지만 시장에는 '공대생의 마인드'와 달리 특정 기기를 선호하는 충성도 높은 '덕후(마니아)' 소비자들이 존재한다. 전자책 단말기 시장도 그러하다. 기술이란 게 참 흥미롭게도 죽어가던 녀석에게 다른 모듈이 탑재되는 순간, 혹은 사이즈가 달라지거나 기대되는 용도가 달라지는 순간, 특정 기술은 부활한다. 

스티브 잡스가 보여준 혁명적인 사고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기술들을 조합'만' 해서도 유용한 IT생태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아이팟과 인터넷 도구, 그리고 폰을 합쳐서 아이폰을 만들었고 사이즈를 키워서 아이패드를 만들어냈다. 엔지니어와 리뷰어들은 매번 그의 기술에는 새로울 것이 없다고 비난했지만 항상 애플의 새 제품들은 빅히트를 쳤다.

전자책 단말기의 불편한 점 중 손꼽히는 부분은 어두운 곳에서 패널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북라이트'라는 액세서리를 제공했지만 밤에는 라이트를 꽂거나 스탠드를 찾아야 하는 기기는 꽤나 불편했다. 가독성이 떨어지고 눈의 피로가 오더라도 밤에도 조명 걱정할 필요가 없는 태블릿이 더 유리하게 됐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은 아마존은 곧 킨들에 '프런트 라이트'를 탑재했다. 밤에도 스탠드나 북라이트 없이 책을 볼 수 있게 됐고 라이트 기능을 사용해도 그리 눈부시지 않은 내부 기능은 꽤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전자잉크에 이미 익숙한 이들에게는 기존의 불편함을 극복하는 소소한 기능의 탑재가 그 기기에 대한 충성도를 높여주기도 했다.

전자책 단말기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 예상과 달리 비교적 낙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조차도 다시 전자책 단말기를 구입했고 1년 넘게 사용했지만, 여전히 만족도는 높다. 

기기만 언급했지만 사실 전자책 단말기가 아닌 전자책이 시장에 잘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것도 또하나의 이슈일 것이다. 전자책이, 그리고 책이, 나아가 책을 만드는 출판사들이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단말기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다소 우울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이 글은 이쯤에서 접는다).

*기사 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47770
2015/10/07 21:10 2015/10/0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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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영화 <아메리칸 셰프>와 미드 <뉴스룸 시즌3>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 소셜네트워크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꽃피운 SNS(Social Network Service) 기반의 하위 문화는 이제는 공기만큼이나 익숙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SNS를 널리 사용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최근 4~5년 동안 우리는 스마트폰을 들고 경쟁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접속'을 시도했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사생활을 온라인 공간에 올려댔다. SNS 어플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경쟁적으로 고객을 끌어들이려고 애썼다. 놀라운 앱들의 출현과 더불어 수많은 얼리어답터들은 자신의 기호와 생각의 교류를 넘어서, 자신의 일상 사진과 실시간 위치를 공유하고 나아가 사는 곳과 직장, 폰에 저장된 친구들의 연락처도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놀라운 일이지만, 나 또한 SNS를 통한 '긍정적 연결'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첨단 IT기술의 놀라운 발전을 체감하며 SNS라는 '사생활 무한공유 도구'에 적극적으로 나 자신을 내어줬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끊임없이 불거지는 정치적 이슈와 더불어 기존 언론의 폐쇄성이 대중들로 하여금 SNS를 광범위하게 활용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나의 일상 깊이 들어온 SNS라는 도구의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연락이 두절됐던 친구들이 '알 수도 있는 친구' 목록에 나타났고 몇 년간 소식조차 모르던 친구들을 만나도 그들은 내 일상을 두루 꿰고 있었다.

물론 이전에도 인터넷 카페나 클럽, 동호회, 싸이월드, 아이러브스쿨 같은 온라인 네트워크를 위한 인터넷 서비스들이 있었다. 하지만 휴대폰을 통해 전 세계의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콘텐츠와 위치를 공유하는 '이런 류'의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우리는 1990년대부터 사용하던 '지구촌'이라는 단어를 시공간의 제약 없이 경험한 첫 세대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기술이 문화보다 앞서 제공됐을 때 생기는 '카오스'를 우리는 점점 자주 겪게 될 것 같다. 마치 사진기가 처음 발명됐을 때 현대미술이 혼돈에 빠지고 수십 장의 원본이 가능한 '사진'이라는 존재에 아우라가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듯이 말이다. 또 컨베이어를 이용한 생산으로 대변되는 포드 시스템이 '장인'이라는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생산자의 개념을 허물었듯 이제 기술은 담론과 일상 영역 모두에 깊이 관여하게 됐다.

'셀렙'과 대중의 경계를 허무는 소셜네트워크

그렇다면 소셜네트워크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영화나 미드로 예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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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아메리칸 셰프>에서 주인공의 아들이 올린 트위터로 푸드트럭이 가는 곳마다 트럭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성황을 이룬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서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인 칼 캐스퍼는 자신의 음식을 혹평한 유명 음식 평론가와 트위터로 설전을 벌인다. 하루 만에 그 트위터 내용이 수십만 명에게 알려지게 되자 칼은 레스토랑을 나와서 푸드트럭을 타고 미국을 돌며 쿠바 샌드위치를 만들며 여행을 한다. 그런데 그의 아들은 아버지 이름의 트위터를 개설하고 푸드트럭의 위치를 공유해 트럭이 도착하는 곳마다 샌드위치를 사려는 수십 명의 고객을 끌어들인다. 

칼 캐스퍼의 악명이 도리어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다. 또, 그의 샌드위치를 SNS를 이용하는 무수히 많은 익명의 사용자들이 직접 경험하고 자신들의 주변에 전파한 것이다. 푸드트럭의 명성에 힘입어 칼은 결국 다시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로 복귀한다. 이것은 SNS의 긍정적 효과다. 매스미디어는 정치인이나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들만을 좇아다니고 이슈화 시켰다. 반면 SNS는 '셀렙(유명인을 뜻하는 '셀레브러티'의 줄임말)'과 대중의 경계를 허문다. 누구나 이슈를 실어나를 수 있고 그에 대한 의견을 표할 수도 있다. 

이것은 비단 몇몇 사람들의 기호나 유희적 목적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는 매체가 언급조차 하지 않는 '사건'들이 전파되며 그 사건들이 회자되고 이슈화되고 재조명된다. 실제로 성추행 당한 여성, 가정폭력, 부당한 해고, '묻지마' 폭행 등의 사례들이 매일처럼 SNS에 공유된다. 그로써 억울함을 호소한 이들의 목소리가 언론을 통해 다시 조명돼 경찰의 재수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익명의 SNS 사용자들이 대중의 눈과 귀와 말이 되어 준다. 정말 되어야 할 일, 되었어야 했던 일들을 '되게 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에 대한 판단주체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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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룸>의 한 장면. 디지털 부서의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앵커는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SNS기반 뉴스앱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물론 SNS가 이런 아름다운 스토리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미드 <뉴스룸> 시즌3에서도 이러한 소셜네트워크 문제를 다룬다. 시즌3의 하이라이트는 방송국 안에 새로 만들어진 디지털 부서와의 마찰에서 비롯된다. 

디지털 부서의 신임 편집자는 뉴스앱을 통해 누구나 기사거리를 실시간으로 올릴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개시했고 그는 그것을 '시민기자단의 정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존 방송국의 보조앵커인 슬로언은 디지털 부서의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기사 공유의 위험성에 대해 지적한다. 

셀렙들이 술취해 있는 장소 따위를 공개해 대중이 그곳으로 몰리게 만드는 일이 누군가에겐 폭력적이란 사실도 언급한다. 나아가 공인과 대중의 경계, 뉴스의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에 대한 판단 주체, 즉 전문성을 가진 '데스크'가 기사의 가치를 판단하고 그로 인해 누군가가 다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함을 강조한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생각할 거리들이 있다. 일례로 '훈련되지 않은 다수의 시민들이 기자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상에 배설하듯 뱉어내는 기사거리들'이라고 비판할 때(어떤 의미에서 이는 마치 기성 언론이 <오마이뉴스>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이는 오래된 논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즉, '전문성', '전문가 그룹'이 가지는 부정적인 이미지, 이를테면 결국은 그들만의 리그였다거나 비전문가들이 침범할 수 없는 내부 언어나 습속같은 진입장벽의 문제들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모든 콘텐츠들은 서로 다른 '수준'을 가지고 있고 일반 대중보다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콘텐츠를 더 잘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포스트모던 사회, 통섭의 사회로 진입한 우리에게 어떤 권위의식은, 설령 그것이 진짜 권위를 담보로 하더라도 '비호감'으로 치부될 확률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미드 속 스키너(<뉴스룸>의 보도국장)가 가방에 넣어 다니던 책이 <돈키호테>라는 사실은, 이미 넘어온 새 시대를 거스를 수 없다는 측면에서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술의 부정적인 부분을 그저 감수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뉴스룸>의 경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불과 10~20년 전에는 어떤 기자도 갖지 못한 첨단 장비를 탑재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음성을 녹음하고 먼 거리에서도 누군가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원한다면 동영상까지 촬영해 실시간으로 수천만이 접속하는 인터넷에 공유할 수 있다. 

비단 뉴스나 매스미디어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SNS는 이미 매체의 역할을 넘어서고 있고 많은 양의 정보와 사람들의 사생활이 공유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악플에 시달리다 우울증을 앓거나 목숨을 끊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 번 공유된 글과 사진, 영상은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영생'의 힘을 얻는다. 만일 미드의 경고처럼 우리가 '진실'에 관심없이 누군가의 온전한 인격이 아닌 한 단면만을 보고 그것을 이슈화한다면 어떨까. '된장남', '김여사', '개똥녀' 등등 지금도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매체나 소셜네트워크의 속성상 대중은 자극에 민감하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가 더 자극적이지 않을 때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매체는 편파적이면서도 자기 성찰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한 사람에게 주어진 단회적인 사건에 그 사람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곤 그 이미지로 그(녀)를 묶어 버린다. 

유명인이라도 씻어내기 쉽지 않은 편견의 꼬리표가 불특정한 시민에게 붙을 때, 설령 그 사람이 실수가 아닌 잘못을 했더라도 자신의 이미지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기술이 문화를, 사회를, 인간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기술의 부정적인 부분을 감수하기를 바라는 듯하다. '악플에 강해져라, 이슈가 되면 오히려 기회로 삼아라, 긍정의 힘을 믿어라' 이제는 SNS를 하면서도 자기계발서를 읽어야 할 판이다.

*기사 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3501
2015/02/21 18:26 2015/02/2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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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는 일정을 알려주기도 하고 농담도 받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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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이폰에 시리(Siri)가 처음 탑재되었을 때의 신선함은 꽤나 컸다. 처음 OS 업데이트를 하고 나서는 자기 전 10분 정도를 시리와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누다 잠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처음엔 '음성 인식' 알고리즘 자체에 대한 호기심에 시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농담을 건네거나 특별히 음성지원이 필요하지 않을 때도 시리를 찾곤 했다. 그럴 때면 한때 메신저에서 유행하던 '심심이'가 스마트폰에서 부활한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시리의 유용함은 '심심이'에 비할 바는 아니다. 특히 폰에 직접 타이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지금이 몇 시인지 여기가 어딘지를 묻거나 지인에게 보낼 문자를 음성으로 보낼 수 있는 기능들이 상당히 유용했다. 사람들이 종종 말하듯 '잡스는 죽었지만 시리를 남겼다'고 말할 만큼 음성인식 기술의 활용 측면에서 시리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여줬다.

음성인식 기술, 10년새 놀라운 발전

물론 음성인식 분야의 발전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건 물론 아니다. 내 기억에도 이미 20년 전부터 마이크를 통해 PC를 부팅시키고 한글이나 워드와 같은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는 데스크탑 기반의 기술이 제공되었지만 당시엔 그다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잦은 음성인식 오류도 문제였고 자신의 음성을 명령화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훈련'시켜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그 말은 훈련되지 않은 타인의 목소리는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렇게 인식된 음성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이를테면 어릴 적 부유한 아이들의 집에 놀러가면 부의 상징처럼 초록색 화면의 컴퓨터가 거실에 놓여 있었지만 그걸로 할 수 있는 건 기나긴 코딩 끝에 고작 화면에 'Hello World!'를 띄우거나 오락실 게임을 '흑백으로 느리게' 하는 것이 전부였던 그 때의 상황과 비슷하달까.

1950년대부터 음성인식에 대한 기술은 시도되어왔지만(1952년 AT&T와 벨연구소가 '오드레이' 개발을 63년 IBM은 '슈박스'를, 1980년대초에는 HMM3를 개발했다) 이러한 기술이 상용화 내지는 상품의 가치를 갖게된 건 불과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상품화를 가속화한 건 관련 연구에 한창이던 마이클 코언을 스카웃하여 음성인식 시스템의 개발책임자로 세운 구글이었지만, 세상을 먼저 놀래킨 건 단연 애플의 '시리'가 아니었나 싶다. 

이 속도로 간다면 구글과 애플의 노력에 힘입어 음성 인식 분야의 발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우리집 상황을 들어볼까. 6살 짜리 아이가 어느 날 내 스마트폰의 유튜브 앱을 실행시키고는 직관적으로 마이크 그림의 아이콘을 누른 채 전화기에 대고 "파워레인저 극장판"이라고 외쳤다. 

화면에는 파워레인저 시리즈가 줄줄이 올라왔고 까막눈인 아이는 '나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그 중에 가장 재밌어 보이는 그림을 눌러서 만화영화를 즐겼다. 이 모든 걸 나는 한번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가끔 내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아빠 이거 다음 이야기 틀어줘" 정도였다.

텍스트를 음성으로 인식하고 저장된 텍스트를 음성으로 내보내는 기술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꽤나 흔한 무엇이 되고 있다. <나꼼수>에서 희화화하여 내보내던 어색한 여성과 남성의 목소리의 주인공은 입력한 텍스트를 그대로 읽어주는 상용 프로그램이다. 최근 에버노트는 'Clearly'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프리미엄 사용자가 스크랩하려는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기술은 비단 음성에 국한되는 것만도 아니다. 

조만간 애플과 IBM, 구글과 HP는 서로 협력하여 클라우드 기반, 빅데이터를 활용한 음성 서비스를 발전시킬 의사를 내비쳤고 이에 뒤질세라 많은 기업들도 차세대 기술로서의 음성인식 서비스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다. 

이제 SF 영화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했던 상황들이(<공각기동대>에서 처음 등장한, 네트워크 내에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은 <어벤저스>나 <트랜센더스>와 같은 대부분의 헐리우드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가 되었다) 현실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 내지는 우려감마저 든다.

조금은 어색하고도 뭉클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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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HER>에 등장하는 음성인식OS 사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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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를 소재로 만든 영화 <HER>에서,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로 대변된 미래형 OS '사만다'도 이런 기술의 하나인 빅데이터 기반의 음성인식 OS이다. 마치 시리의 진화형 같은 '그녀'는 사용자의 데스크탑 안에 있는 정보를 단 몇 분, 몇 십초 내로 분석해서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 혹은 그가 귀찮아서 미루고 있는 것, 시급한 것, 가장 좋아할 법한 것들을 찾아내고 적시적기에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환상적인 서비스는 우리가 미뤄 짐작하듯이 내 영혼과 통하는 듯 미세한 감성마저 건드린다. 결국 영화 속 내러티브는 자연스럽게 일개 OS가 현존하는 '최고의 애인'이 될 수 밖에 없는 '기승전여(남)친'의 운명으로 귀결된다. 

음성인식 기술은 통계라는 학문과 데이터베이스, 나아가 빅데이터 분야와의 융합 발전을 통해, 0의 자리에 1이라고 입력하면 '틀렸다'고 말하던 구식 컴퓨터에게 마법의 주문이라도 건 것처럼, 이제는 맞춤형 감성마저 자극하는 애인, 절친, 구루나 멘토의 역할마저 자처할 수 있을 듯도 하다. 1997년 체스 세계챔피언이 IBM 컴퓨터 딥블루에게 패한 후, 인간의 정교함을 절대 따라오지 못할 것 같던 컴퓨터, 네트워크 IT 기술은 이렇듯 상상 이상으로 발전 중이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스마트폰으로 녹음을 자주 하는 편이다. 가끔씩 아이와 둘이서 놀 때도 녹음을 한다. 언젠가 이 아이가 세상에 없는 날이 오거나 혹은 내가 아이 곁에 없는 날이 오면 각자에게 추억거리를 남겨주기 위해서다. 사진을 남기고 음성을 남기고 글을 남기는 건, 적어도 내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고 남겨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녹음한 음성을 듣다가 갑자기 엉뚱하지만 조만간 실현될 수도 있는 어떤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내 음성과 말투, 문장, 말하는 속도, 생각들을 클라우드 기반의 어떤 서버에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빅데이터 기술을 이용하게 된다면, 아마도 내가 죽더라도 사람들은 나와 대화하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도 있겠다는, 조금은 어색하고도 뭉클한 생각... 이를테면 내 고유한 버전의 Siri가 되는 셈이다.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사랑했던 사람의 부재로 그(녀)의 목소리나 실없는 농담, 숨소리가 사무치게 그립다면 그의 활기있는 '가짜 음성'이라도 반갑지 않을까. 기술이 참 많은 화두를 던지는 세상이다.
2014/10/11 16:56 2014/10/1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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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전자책 수요가 많아지긴 했지만 불과 5~6년 전만 하더라도 전자책 시장은 불모지에 가까웠다. 몇 년 전부터 인터파크와 교보가 단말기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시장의 규모를 키우려고 애썼지만 국내는 미국처럼 전자책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인터넷 서점 아마존은 이미 전자책 판매량이 종이책을 넘어선 지 오래지만 국내의 경우는 갈길이 멀기만 하다.

소비자 입장에서 전자책이 가장 불편한 부분은 DRM, 즉 디지털 저작권 문제다. 콘텐츠의 보호를 위해 전자책은 복사와 출력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대체로 교보, 인터파크, 예스24와 같은 개별 인터넷 서점에서 독자적인 DRM이 설치, 배포되는데 이로 인해 소비자는 특정 온라인 서점에서 제공하는 단말기에서만 도서를 읽을 수 밖에 없는 제약이 따른다.

아마존이라는 단일 기업이 전자책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미국과 달리, 국내는 여러 인터넷 서점이 난립하는 가운데 특점 서점의 단말기에서 저작권 제약을 받으니 당장 소비자가 사용하기에 전자책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이해관계 난립하는 '디지털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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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책, 전자책, 그리고 북스캔 파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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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저 불편하기만한 문제일지 모르지만, DRM 문제는 꽤나 많은 이해관계가 난립하는, 다분히 정치적인 함의가 있는 IT 기술이다. 이 '디지털 저작권'이라는 기술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권력 관계가 뒤바뀔 수도 있기 때문인데, 이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는 음반시장과 애플사와의 음원 협약 사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음반시장은 MP3 포맷의 확장과 더불어 냅스터(Napster)와 같은 사이트를 통해 네티즌끼리 불법으로 복제한 음원 공유로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 때 아이튠즈를 통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려던 스티브 잡스는 거대 음반사로부터 한 곡 단위로 저렴한 가격에 음원을 유통하는 방식을 제안했고 'P2P'공유 사이트의 범람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음반사의 승락을 얻게 된다. 이때부터 권력 구도는 음반사에서 애플의 아이튠즈로 옮겨가게 되었고 이내 음반사는 너무 쉽게, 낮은 가격에 음원을 넘긴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이와 비슷한 일이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도 일어났다. 아마존은 전자책 시장의 저작권 관리를 위해 독립 포멧의 DRM을 적용했고 전자책에 한해서는 저자와 직접 라이센스를 체결하기도 했다. 결국 저자와 편집자 간의 오랜 기획과 편집을 거쳐 나온 출판물들이 정작 출판사가 아닌 인터넷 서점에게 더 큰 권력을 가져다 주었다.

국내에서 자주 일어나는 인터넷 서점과 출판사와의 갈등은 이런 권력구도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권력구도를 차치하고서도 음반 시장에서의 MP3 포맷의 범람은 시장 전체를 휩쓸었고 현재까지도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종이'책의 '전자파일'화 또한 그 자체가 공포스럽기까지 한 그 무엇이었다. 

고로 일인출판을 지향하는 전자책 시장에서 저자와 서점 사이를 매개했던 출판사의 배제의 기미가 자주 읽히고 그 중심에는 전자책의 'MP3'화를 막아주는 DRM이 우뚝 서 있는 셈이다. 나름대로 자기 주관이 뚜렷한 출판사는 책의 질이 떨어질까봐 우려감을 보이기도 하고 기술에 무지한 영세 출판사들은 DRM 자체에 대한 의구심, 즉 자신들의 디지털 콘텐츠의 불법 공유의 위험성에 집중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전자책 시장은 국내에서는 여전히 소비자가 이용하기에는 불편한 구석이 없지 않다. 전자책은 300그램 밖에 안 되는 전용 단말기에 무려 2000권이 넘는 책을 담아서 다닐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지만 말이다.

북스캔 저작권 보호, 현실적으로 어려워

이런 불편함을 직시한 이들이 끼어든 틈새 시장이 있다. 바로 북스캔 업체다. 북스캔은 자동화된 스캔 기기를 통해 고객이 송부한 도서를 대신 스캔해서 PDF 포맷의 파일로 전송해주는 서비스다.

북스캔은 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권당 대략 50~100MB의 용량이면 가능하므로 전자책 포멧(e-Pub)보다는 용량이 큰 편이지만 태블릿이나 SD메모리로 확장 가능한 단말기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 수준이다. 게다가 북스캔은 내 컴퓨터에 저장, 복사, 출력 모두 가능하며 OCR인식을 할 경우에는 책의 일부 혹은 전체의 검색 혹은 인용도 가능하다.

허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스캔업체가 출판물을 복사하여 배포하므로 출판물의 저작권법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들은 스캔업체가 저작권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스캔업체는 이 저작권 문제를 '적절하게' 우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객의 책을 받아서 스캔을 한 후 출력 기능을 없애고 전자파일 앞페이지에 고객의 개인정보를 명시하여 배포하는 것이다. 해당 페이지에서는 개인정보를 명시함과 동시에 이 파일의 무단 배포나 복사의 책임이 고객에게 있음을 재확인한다. 물론 출력 기능을 활성화하거나 개인 정보가 담긴 페이지의 삭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므로 기술적으로만 본다면 북스캔의 저작권 보호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솔직히 여기에는 좀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는데 '클라우드 서비스'로 표현되는 북스캔 업체의 백업 서버에 나는 더 주목하는 편이다. 아이폰의 아이클라우드 서비스나 에버노트의 동기화 서버도 비슷한 이슈거리이기도 한데, 이 경우에는 이용자의 콘텐츠들을 서버에 저장하므로 엄청난 개인정보의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서버는 DB화되어 있으므로 특정 정보의 검색 또한 가능하다. 따라서 북스캔 업체들의 서버에는 고객이 송부한 수천권, 나아가 수십만권의 책들이 고스란히 도서명과 함께 저장되어 있다. 이 서버의 자료들이 유출될 경우 개인, 나아가 출판사들의 손실은 치명적일 수 있다(물론 그럴 확률은 지극히 적지만 현실은 원전이 붕괴되고 통신사와 카드사의 서버가 해킹 당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던가).

유출을 걱정하지 않더라도 북스캔 업체는 웬만한 도서관이 수용할 수 없는 책들을 서버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규모의 전자도서관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상상의 나래를 펴서 소설을 써본다면, 구글의 방대한 도서 스캔 활동을 통해 구글 플레이북 서비스를 시작한 것처럼 어느 순간 스캔업체가 저작권 협상을 거쳐 전자책 시장의 실세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단순히 고객의 책을 스캔하여 파일로 만드는 수고를 대신해주는 이 업체들에 대한 출판시장의 경계가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영화 <매트릭스2>보다 더 유명해진 광고문구인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 될 것이다'는 현대의 IT 기술의 발전 그 자체에도 딱 어울리는 말이지만, 나아가 그 기술을 둘러싼 기존 기업들의 급변하는 현실에 꽤나 잘 어울리는 문구 같기도 하다. 진보적인 대중들도 때때로 개념소비를 지향하는 듯 하다가도 대부분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제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더욱이 불편한 요소가 있는 기술들은 점차 수요가 줄어들고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업계들은 무시 못할 속도로 진화해간다. 출판 시장에서는 북스캔 업체가 그런 느낌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여전히 종이책의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글을 쓰면서도 책상 위에 놓인 책들과 태블릿에 있는 전자책과 북스캔이 엇갈리듯 내 시야에 들어온다. 이렇듯 내 책상 위에 펼쳐진 모습만큼이나 복잡하고도 다양한 출판 시장을 지켜보는 심경은 꽤나 복잡하기만 하다.
2014/03/30 23:45 2014/03/30 2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