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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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사장 구속으로 방송계가 시끄럽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의 방송 언론 여정을 이 책에서부터 찾고 싶다. 모든 행보는 그 발자욱을 찾아 올라가 볼 필요가 있다. 그가 독재 정권 하에서 동아일보 사건으로 그리고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휘말리면서 겪었던 수배와 옥고. 그리고 한겨레 기자로 돌아와 워싱턴 특파원을 거쳐 돌아오기까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가 KBS 사장으로 취임하던 날, 나는 이를 두고 민주주의 세력이 승리를 거둔 상징적 사건이라 여겼다. 그리고 이제 그가 해직되고 구속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특별히 더 할말은 없다. 시간이 흐르면 진실은 더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단지, 한겨레 김종철 논설위원의 글로 내 생각을 대신한다.

"권력의 주구라는 오명을 무릅쓰고 시작한 일이었던 만큼 이들 기관이 한국방송과 정 사장의 뒤를 얼마나 철저하게 캤을지는 특별한 상상이 필요없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던 부정이나 비리 행위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일반적 통념인데 비춰보면 정 사장의 청렴이 오히려 돋보이는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이 정도 됐으면 손을 털고 포기하든가 아니면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 정권은 ‘좌절’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로 밀어붙였다. 감사원을 내세워 지난 5년간 1172억원의 누적 적자가 난 것은 곧 정연주의 ‘비위’라고 강변한 것이다.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사업상 적자가 경영상 잘못일 수는 있지만 “법에 어긋남, 또는 그런 일”(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비위’ 행위가 될 수 없음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지난 5년간 당기 순익은 오히려 189억원의 흑자였으며, 누적 적자도 방송 수신료가 오랫동안 2500원에 묶여 있었던 탓(한나라당은 지난 5년간 부단히 수신료 인상에 반대했다)이라는 한국방송의 반박을 접하면 경영상 문제 역시 정 사장에게 오로지 책임을 묻는 게 과연 맞는지 의문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정연주라는 사람을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서라도 본서는 다시금 읽어볼만한 책이 될 것 같다. 다행히 사장이 되어서 그런지 이 책은 절판이 되지 않았다. 이 시기에 한 번 추천해본다. 인간 정연주를 다시 생각해보자.
2008/08/17 19:14 2008/08/17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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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블로그에 음반이나 서평을 쓴답시고
평점을 매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에 사로잡힌다.
문제집이나 어학책, 뭐 그런 것들은 모르겠지만
논픽션의 에세이집이나 학문적인 지식들이 담긴 책들,
그리고 문학 작품이나 비평집.

이런 책들을 읽고 비전문가인 내가 이 책이 어떻다고
주절거리다가 점수까지 주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푸념에 빠진다.

재밌었다고, 당신도 보라고 하며
가볍게 적던 서평, 음반평, 영화평들도
따지고 보면 전문가의 결과물에 대한 비전문적 견해에
불과한 게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머리에서 김이 난다.
2008/08/05 20:06 2008/08/0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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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하우어와스는 자살을 그 행위자에 대한 판단으로 귀결시키지 말고 공동체로서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보듬어 주는 데 실패했다는 증거로 보도록 합니다. 그는 이것을 '자살의 문법'(grammer of suiacide)이라고 명명합니다. 삶은 은총으로 주어진 선물인데, 그 선물을 서로 나누어 줌으로써 우리를 죽음으로 내모는 비극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살은 그 공동체의 실패를 보여준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우리가 상처받은 연약한 영혼들에 대한 일말의 연민도 없이 그들을 또다시 지옥간다는 말로 협박한다거나 장례마저 거부하는 것은 최소한 죽은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거니와 그리스도의 제자 공동체다운 행동이 아닙니다.

(김기현, "가룟 유다 딜레마" 중에서)

2008/07/20 20:06 2008/07/2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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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문제로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가수 싸이가 지난 12월 17일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재입대를 하면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라고 합니다. 싸이는 “공연 하면서도 못 뺀 살을 군대에서 빼고 돌아오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는군요. 싸이에게 지지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간 싸이가 구질구질하게 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느낌을 받은 사람은 꽤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엔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끝까지 잘못한 게 없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참 많지요. 그 점에서 보자면 싸이씨의 이 화끈한 멘트는 가슴에 팍 와 닿습니다. 싸이가 그간 역설해온 ‘챔피언'의 진정한 면모를 뒤늦게나마 보여준 게 이만저만 반가운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실수를 하지 않는 완벽함보다는 실수를 하더라도 그 실수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에 더 깊은 인상을 받는 것 같습니다.

싸이, 당신은 진정한 챔피언입니다. 살 빼는 건 당신의 자유입니다만, 당신의 한 팬으로서 당신의 살도 사랑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군요. 늦은 나이에 군대생활을 다시 한다는 게 매우 고통스러울 것입니다만, 당신은 그마저 기쁨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우리 모두의 챔피언이라는 걸 믿습니다.

(<지성인을 위한 교양 브런치>중에서, “그동안 구질구질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전문)
2008/07/20 19:10 2008/07/2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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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상관이 있는거야?
/한벼리

목하고 엉덩이하고는,
무슨 상관이 있는거야?
목이 아프면,
목에다 주사를 맞아야 되는 것 아니야.
목하고 엉덩이하고 상관이 없으면,
목이 아픈데,
왜 엉덩이에다 주사를 맞는 것이야.


참 이상해요
/강준형

우리 형아는요, 참 이상해요.
자기가 라면 끓여 놓고요.
할머니 보고요,
'잘 먹겠습니다.' 하거든요.


(박문희, 이오덕 "침 튀기지 마세요" 중에서)
2008/07/18 19:08 2008/07/18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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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말이 내가 특별히 허드렛일을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순반복적인 가사일들은 때로는 짜증이 날 정도로 지겹고 귀찮다.
그런 일을 누군가가 도맡아서 해야 한다면
그것 또한 비합리적인 일일 것이다.

가사노동이 허드렛일이고 단순반복적인 지루한 일이라는 점,
그리고 그 일을 가족의 일원이 분담하여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가정한다면 나는 설거지를 좋아한다.
곧 날씨가 더 더워지면 설거지를 조금만 미뤄도
주방에서는 악취가 가득해진다. 날파리도 접시 사이로 날아다닌다.
돼지고기라도 먹은 날이면 기름기 가득한 그릇들로 씻을 엄두가 안난다.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현상임을 난 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는 걸 볼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일단 설거지를 시작하여 그릇을 씻기 시작하면
접시 하나 하나가 손 끝에서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깨끗하게 씻겨진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이렇듯,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씻김'이 설거지의 묘미이다.
과거에 날파리가 꼬였든 곰팡이가 피었든, 접시가 붉게 물들었든 간에
설거지라는 반복적인 행위에 의해 그릇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을 하고
맛깔스런 음식을 담은 채 화려하게 식탁으로 컴백한다.

나는 설거지를 통해 삶을 배운다. 사람도 이와 같다.
'씻김'을 통해 누구나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러하다.

2008/05/28 20:03 2008/05/2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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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와 명예, 부귀영화를 가까이하지 않는 이도 청렴결백하지만,
가까이하면서도 물들지 않는 사람이 더욱 고결한 사람이다.
권모술수를 모르는 이도 뛰어나지만,
쓸 줄 알면서도 쓰지 않는 사람이 더욱 뛰어난 사람이다.

(홍자성, '채근담' 중에서)
2008/05/27 20:02 2008/05/2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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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우리는 자주 주변의 관심과 칭찬에 기대어 산다.

초등학교 시절,
"참 잘했어요"라고 쓰여진 도장이 공책에 찍히면
나도 모르게 내가 했던 숙제를 보고 또 보곤 했다.
대충 하려던 것도 그 전날 숙제에 찍힌 도장을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고 TV만화와 간식을 뒤로한 채
나름 열심히 몇 자 더 적던 기억이 가끔 난다.
생각해보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대학을 가고 글을 쓰고 직장을 다녀도
주위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가던 길을 가려 하지만
때로 누군가가 "참 잘했어요"라고 내 걸어온 길에
진한 잉크로 도장을 찍어주길 기다리는 건 여전하다.
숨기고 무덤덤한 척 하지만,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고, 지지해주고, 칭찬해주길 기대한다.

누군가의 관심과 인정, 그리고 사랑.
오늘도 나의 한 걸음은,
그들의 "참 잘했어요"로 인해 나아가는 것이다.

2008/05/27 20:01 2008/05/2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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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군대도 가기 전인 스물 하나의 나는
캠퍼스 노천 극장에 늦은 시간 캔맥주를 사들고
친구들과 앉아 미래에 대한 넋두리를 하곤 했다.

그래,
그 땐 나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십년 후의 내가 전혀 상상이 되지 않던 터라
안개 속 산 길을 걷듯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뭔가 새로운 것들이 내 앞에 펼쳐질 것 같은 두려움과
한 편으로는 은근히 설레는 기대감에 잠겨.

그렇게 달빛에 물든 캠퍼스 구석구석에 시선을 내려놓고
씁쓸한 맥주를 삼키듯 마시곤 했다.
희한하게 그 땐 맥주가, 지금처럼 잘 넘어가지질 않았다.

멍한 표정으로 잠시 떠올려보는 시간들.

2008/05/25 20:00 2008/05/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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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가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바뀐 후,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그건 마구 눌러대는 셔터일게다. 메모리카드 용량만 충분하다면 필름 값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같은 구도에서도 여러 번 '샷'을 날리기 일쑤다. 특히 인물 사진을 찍다보면 아마추어인 나로서는 초점이 안 맞거나 구도가 불완전하더라도 찍은 사진들을 지우는 것이 힘들다. 대상 인물이 내가 좋아하는 표정을 지었거나 그 장소에서 찍은 사진 중에 건질 사진이 하나 뿐인 경우, 나는 거의 대부분의 사진을 지우지 못하고 그걸 다 인화하거나 블로그에 올리기도 한다.

허나 내가 알기로 프로페셔널은 '완전'하지 않은 사진은 쉽게 버린다. 그래서 프로들에게는 찍는 것도 일이지만 고르는 것도 일이다. 트리밍을 하거나 후처리를 한다 해도 어정쩡한 사진을 남겨두는 일은 거의 없다. 영화 '취화선'에서 주인공이 제대로 되지 않은 그림이나 도자기는 일말의 고민 없이 찢어버리고 깨어부수는 것도 이와 같다. 그렇게 엄선한 사진은 '작품'이 되고, 이러한 작품들은 보는 이에게 강한 인상을 주게 마련이다.

나는 그게 쉽지 않다. 자꾸 못난 사진들에 정이 간다. 포토샵을 켜서는 이렇게 저렇게 '가공'을 해본다. 이 사진은 이래서 못 지우고 저 사진은 저래서 못 지운다. 특히 인물 사진이 그렇다. 그 사람의 특징이나 내가 아는 어떤 특유의 인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사진들 앞에서 삭제 버튼을 누르는 것 자체가 곤혹스럽다. 그래서 계속 '가공'을 하고는 다시 모든 사진을 뽑는다. 내가 보기에도 내 사진은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이 골고루 끼어 있고,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내 사진을 무난하다 혹은 그저 그렇다고 생각한다.

가끔 모든 일에 완전한 것들만 내보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결과만을 엄선해서 나란 사람을 꾸민다면, 그러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다부진 마음을 품어 본다. 그게 처세며 자기 관리이고, 또한 직장을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프로페셔널의 방식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인물 사진을 고르는 방식처럼 내 삶에서 프로처럼 살고 싶은 마음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 '잃어간다'는 말이 적절할 것 같다. 그런 '나태한' 방식이 내가 원하는 방향은 분명 아니니까. 하지만 어느 새 나이가 들어가고 시간 속에서 내 서툰 모습들이 익숙해져간다. 긴장이 풀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여유가 생긴 것 같기도 하다. 또는 나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고 있는 것도 같다. 좋고 나쁨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삶에서 아마추어가 되어간다. 오늘도 나는 찍은 사진들을 살려 보고 있다. (끝)

2008/05/25 19:57 2008/05/25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