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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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설계를 하면서 부차적이지만 내가 견디기 힘든 일들 가운데 하나는 협력업체 실무자들에게 과도한 업무와 일정의 압박을 주는 것이다. 가령 bracket 샘플 제작하는데 10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면 3-4일만에 제작해서 가져오라고 요구한다든지 샘플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일들이 생긴다. 물론 이러한 긴급한 일정은 위에서부터 하달된 차량 제작 단축일정에 기인한 것이지만 결국 야근에 철야까지 하게되는 업체 입장에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관계로 나는 설계업무를 하면서 나름의 원칙을 세웠는데 첫째로는 일정을 업체가 제시하게 하고 그 일정을 최대한 지켜주자는 것이다. 일정이 모자란 부분은 OEM에 속한 타부서, 이를 테면 차량 제작하는 부서나 차량시험팀에 협의하여 일정을 최대한 벌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당장 가져오라고 호통치고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강압적으로 일하는 극단적인 직원들에 비해서는 다소 뒤쳐지지만(이런 압박으로 날밤 새며 하루 이틀만에 샘플 제작이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실무자는 고된 노동으로 인해 퇴사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 나의 선의를 헤아려 부품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업체 분들도 노력해주었다.

두번째 원칙은 비용은 반드시 챙겨주자는 것. 물론 협력 업체가 양산시에 투자비를 환급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관행적으로 초기 개발에 사용되는 샘플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설계자가 조금만 신경쓴다면 전혀 불가능한 거은 아니다. 초기 투자비 예산 확보하여 집행함에 있어서 담당자가 절차상의 복잡함만 잘 견뎌낸다면 비용 지불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업무에 있어 업체 샘플비 지급을 우선적으로 처리하여 내가 개발한 부품 대부분의 샘플비는 모두 지급되었다. 하지만 내가 청구한 비용이 모두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업체와 구매팀과의 내고를 거치기 때문에 실지급액은 그에 못 미친다. 그래도 최소한 청구를 누락시키는 일은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

입사 이후로 조금씩 OEM과 협력업체의 관계도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협력업체를 하청업체로 생각하고 상명하복을 요구하는 분들이 사내에는 여전히 존재한다. 물론 그들의 강요는 더욱 짧아진 차량개발 일정과 급박하게 돌아가는 조직의 생리에 적응하기 위해 불가피한 관행이기도 하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실상 개선이 잘 되지 않기에 나도 내 협력업체 파트너가 야근, 특근을 일삼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매번 불편하기만 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통에 지인들에게는 새해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해를 돌아보면서 내가 회사에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협력업체 직원들, 특별히 사원, 대리급 실무자들에게는 감사의 메일을 썼다. 그들의 도움으로 한 해를 잘 마감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동안은 작은 것이지만 그런 표현조차 잘 하지 못했다. 새해에는 더욱 주변에 도움을 주는 분들에게 자주 표현하려고 한다. 흘러간 시간에 후회하는 일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어간다. 바로 잡자.

2010/01/02 20:16 2010/01/02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