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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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후서 1:1-4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1. 점점더 우리는 정부가 하는 말들에 진정성이 없음을 느낀다. 때로 이제 막장으로 달려가는 느낌이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 보도되지 않고 있었던 일이 없거나 희미한 기억인 것처럼 오도된다.

2.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접하는 특유의 말투가 있다. 일단 교회 사람들은 서로를 형제, 자매로 칭한다. 마치 김대리, 이차장처럼 교회에서 불리는 이 용어는 피를 나눈 가족임을 의미하지만 정작 교회를 다니는 많은 이들은 서로의 사생활을 모를 뿐 아니라 금전적으로 엮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3. 또다른 특유의 말투 중에는 '헌신, 순종, 봉사, 순교, 피흘림, 값없는 은혜' 같은 말들이 있다. 기도할 때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이런 용어를 자주 쓴다. 이 말들은 표현대로 정확히 이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주 과장법 내지는 비유법에 속한다.

4. 바울의 표현은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의 현재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주례사 비평처럼 "허허, 성도님들 참 세상 속에서 환난이 찾아와도 은혜로 잘 이겨내시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와 문맥상 일치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집트의 시민처럼 죽어갔고 종교로 인해 가정이 찢어지고 국가의 위협 가운데 처했다.

5. 솔직히 비개신교도가 보기에 개신교도의 용어들은 가소롭다. 그 말과 그 현장성이 일대일 대응이 되지 않고 매번 거품이 가득한 맥주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마치 삼국지나 무협지의 한 장면 같은 대화를 구사할 때 개신교의 종교성은 개독교의 허접성으로 추락한다.

6. 비개신교도와 개신교도 사이에 어떤 물리적 불합리함과 어려움이 없고 도리어 개신교도의 사회적 지위가 한국사회의 평균을 웃도는 시대에 개신교의 언어는 더욱 사실묘사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7. 목사님의 설교는 장황했고 물질적이었어요, 집사님과는 사실 대화가 없어서 매주 소원하게 느껴집니다, 회사에서 예수의 도대로 살다가는 퇴사할 것 같아서 대체로 알면서도 그대로 못하고 삽니다, 순교의 위협 때문에 도시 선교지에 자리잡으려는 한계가 저에게 있네요... 등.

8. 우리가 자꾸 우리 자신을 '무협화'하면 우리는 정통을 이야기하는 사이비 교도가 될 수 밖에 없다.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사이비로 규정하지도 않으면서 고고한 단어들을 무리하게 우리 삶에 가져다 붙인다.

9. 나는 정말 죽음의 위협 앞에 놓인 초대교회의 용어와 기독교가 보편종교가 된 현대 교회의 용어는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단지 단어의 차이가 아니다. 그 용어간의 간격을 마치 우리가 매우고 살고 있는 듯한 망상마저 갖게 되기 때문이다.

10. 최근 몇년간 내가 줄기차게 교회용어들을 고집스럽게 사용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오늘의 묵상에 있다.
2013/08/23 23:21 2013/08/23 2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