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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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올린 글에 대한 댓글을 읽고
그 글을 타임라인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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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과 말이 나에게 호의를 보여준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그걸 직접 설명할 정도로, 우려를 표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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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마음을 뒤로하고도 내가 고집할만큼
글이나 말이 그리 중요한가, 관계성보다
그게 더 큰 의미가 있나 하는 회의감이랄까.
.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있다.
꽤 오래 잡글을 쓰다보니 특정대상이
원하는 글이 무엇인지 어느정도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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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입장의 동일함' 때문에 그 입장의 재확인을
위해 내 글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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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때때로 달라진 내 입장에 대해서는,
그 다름으로 인해 조만간 '나'라는
인터넷 공간 안의 하나의 '계정'에 대해
쉽게 규정짓거나 폐기 삭제할 준비가 된 
많은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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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을 향한 불특정 다수의 댓글 경험에서,
혹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어떤 온라인 지인들과
어느날 더이상 친구관계가 아님을 알게 된 순간.
마음 속 씁쓸함을 털어내기 쉽지 않다.
.
반대로 내가 별 생각없이 누군가에게 
쉽게 내뱉은 말들이 (나쁜 면에서) 큰 의미로
전달될 때 자책을 넘어선 깊은 좌절감 같은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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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쏟아낸 글과 말에 대한 심한 회의감.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는 동떨어진 어딘가로 나를
계속 이끌어가는 듯한 어두운 어떤 본질.
.
안식일 오후.
회사 사무실에서 밀린 업무를 털어내는 동안.
내 머리 속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고 있다.

2016. 2. 14.  페북글.
2016/02/16 21:23 2016/02/1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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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들은 주말내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다가 출근을 하고 일상이 시작되니 하루 업무에 적응하면서 마음이 가라앉았다. 선생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수없이 많지만. 그냥 미뤄뒀던 <담론>을 읽으면서 뼈속 깊이 자리잡은 그분의 자리를 돌아보려고 한다. 너무 무겁거나 너무 슬퍼하지 않으면서, 천천히 선생의 글들을 돌아보고 싶다.

2016. 1. 19.
2016/01/24 10:25 2016/01/2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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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좋은 영화에 설명을 덧붙이는 게 참 별로라는 생각이 들지만. 
솔직히 30년전에 본 영화의 시리즈가 부활했다는 사실 자체에 같은 세대의 키덜트들은 많이 감동했을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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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작할 때 스타워즈 로고라거나 시작 스토리를 화면에 띄우는 부분에서부터 이미 나는 울고 있었다.ㅠㅠ
많이 언급된 대로 스타워즈의 새 시리즈는 흑인과 여성의 '깨어난 포스'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에서 이미 전작의 시대정신을 넘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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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는 전작 내러티브의 반복과 향수를 되살리면서 여전히 4-50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측면이 더 강하다.
지금봐도 디자인이 훌륭한 밀레니엄 팔콘과 저항군 전투기, 그리고 늙었지만 여전히 젊은 시절의 아우라를 그대로 간직한 한 솔로, 레아 공주, 그리고 루크 스카이워커의 등장은 여전히 그들이 동시대에도 건재하다는 사실을 통해 4-50대의 관객도 위로를 받는 한편, 그들이 이제 젊은 제다이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또다른 아쉬움과 슬픈 정서의 자극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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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가 디즈니를 통해 다시 부활하게 된 건 무엇보다 시대를 넘어서는 일종의 집단무의식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스타워즈의 주된 내러티브는 성장기 소년이 겪는 '아버지와의 갈등'이다.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루크 스카이워커가 그랬고 이제는 한 솔로와 벤 솔로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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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성장하면서, 아버지 제거와 극복을 꿈꾸기도 하고 복종과 화해를 꿈꾸기도 한다. 이른바 '아버지의 이름'은 라깡의 정신분석에서도 중요한 테마이다.
또한 오비완과 아나킨, 벤과 루크의 사제 관계도 비슷한 갈등의 반복을 통해 내러티브의 긴장감을 높인다.
이 모든 갈등에는 종교성으로 대변되는 선과 악의 대립과 조화, 그리고 우주 에너지의 신화화 요소인 '포스'가 그들을 추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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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특별히, 뭐랄까...
광선검에 매혹되었던 초등학교 꼬마가 불혹이 되어 같은 시리즈를 접하게 되는 기분은, 겪어봐야만 알 것 같다. 물론, 앞으로의 세대들은 더욱 이런 경험을 자주 하게 되겠지만...
개인적으로도 참 기억에 남을 시리즈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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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한 솔로와 추바카의 등장씬도 어찌나 추억이 돋던지, 참 뭉클하게 하더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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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3 22:01 2016/01/03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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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권을 꼽아 보았습니다.
예전엔 평을 길게 썼는데, 
다... 의미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걍 땡기면 읽으시길.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며. (제이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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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 - 비비안 마이어
: 그녀의 사진, 그 무게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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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무의식의 방 - 김서영
: 15년에 김서영 교수를 알게된 건 큰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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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중섭 편지 - 이중섭
: 이중섭의 편지 사이사이에 그의 부성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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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진격의 대학교 - 오찬호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이후 진격의 저자, 오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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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 다니엘 튜더
: 익숙하지만 미세하게 낯선 이방인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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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프로이트 패러다임- 맹정현
: 프로이트의 내러티브적 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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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전복과 반전의 순간 - 강헌
: 무려 강헌 선생이 책을 쓰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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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기적 섹스 - 은하선 
: '그놈'의 섹스만 이야기하는 세상에서 주옥같은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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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담론- 신영복
: '신영복 선생의 마지막 책'이 아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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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메시지 완역본 - 유진 피터슨
: 올해 손꼽는 신앙서적. 올해 성경 '대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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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어쩌다 한국은 - 박성호
: 물뚝심송님의, 간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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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페이스북 심리학 - 수재나 플로레스
: 이건 페친을 위한 보너스. 중독증세가 있으면 가볍게 일독을.
2015/12/31 22:52 2015/12/3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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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읽기의 특이점은.
생각보다 엄청난 양의 책을 샀으나
끝까지 읽은 책은 생각보다 아주 적더라는 점.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책을 많이 안 읽었으리라는 예상은 했지만
한번 잡은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은 건 내 평소의 
독서 습관에 비추어 보면 꽤 낯선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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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책에 대한 기대, 맹신, 집착 그런 게 없어졌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
단적으로 책에는 좋은 말들이 가득하고, 저자들은
정말 기똥찬 아이디어가 넘치고 지식의 깊이가 헤아릴 수 없으나
... 정작 레알 월드에서는 그닥 '쓸모'가 없더라는 편견이
해를 더해갈수록 나를 누르고 있다.
물론 그 '쓸모'라는 표현이 책읽기가 어떤 효용성이나 실용성을 
함의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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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뭐야, 결국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변죽을 울리고 500페이지나 넘게 주절거린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서문에 혹하여 책을 읽다가 초반을 축지(독)법으로
넘기고 중반에 잠시 홀렸다가는 후반으로 가면서 흐지부지 책을
덮게 되는 경우가, 올해는 꽤나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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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게을러진건지도 모르겠지만.
언제부터 독서의 매력이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게 된건지.
정직하게 말하자면 책읽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드는 
낯선 경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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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올해의 책 10권 정도를 고르려고 구매한 책과 읽은 책을 
정리하다보니 추천할 10권을 고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2-30권 내외의 책들을 놓고 혼자 선별하느라 
애를 먹으며, 그또한 즐거워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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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예전에 비해 글쓰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이랄까
환상, 아우라 같은 게 사라진 것 같다.
TED, 팟캐스트, 세바시, SNS, 허핑턴 찌라시 등, 수많은 독립 매체들을 통해
수많은 컨텐츠가 쏟아지면서 글쟁이 고유의 정보력, 분석력, '덕후'력이
더 이상 '수퍼히어로'들만 가진 능력으로 보이지 않게 됐다.
(솔직히 집에서 쓱싹쓱싹, 갑자기 뙇! 가구를 만들어내는 아내가 더 경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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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요즘은 그런 글이 더 눈에 들어온다.
대단치 않더라도 개인이 직접 경험한 독특한 이야기, 가감없는 실패담,
글보다는 사람 자체에 더 호감이 가는 글,
그것도 아니면 희귀한 자료들을 오랜시간 추적하여 잘 정리한 글들이 좋다.
무엇보다 글뒤로 숨지 않고 정직하게 가감없이 자기를 드러낸 저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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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내년에는 책에 대한 애정이 더 떨어질 것 같다.
하지만 책은 여전히 가까이 두고, 많이 사고 적절하게 읽을 것이다.
여전히 난 자신의 짧은 삶의 궤적과 경험이 전부인 양,
간접 경험과 삶의 다양성을 견지할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해버리는 부류를
다분히 경계한다.
하지만 그녀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첫사랑의 기억이
점점 무의미해지는 것처럼 책에 대한 나의 맹신, 추종도 
그렇게 옅어지고 흐려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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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을 고르다가 문득 이런저런 잡생각을 끄적여본다..
2015/12/30 22:06 2015/12/30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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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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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에 봤다지만 영화속 설정처럼 정말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꼭 봐야할 영화에 항상 오르고 최근에는 재개봉도 했다기에 다시 본 이 영화에 대한 내 기억은 망각, 그 자체였다. 막연하게나마 기억이 나는 내 인상비평은 '이별에 관한 기억이라는 메타포를 신선하게 풀어냈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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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다시 곱씹으며 새삼 깨달은 건 영화에 대한 인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나란 사람의 변화였달까. 11년 전의 나는 잘 정돈된 내면체계(?)를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사람을 겪을 때도 어떤 거대한 DB에 주요 태그들로 하부구조를 생성하고 거기에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는 느낌. 내 뇌가 그/그녀(에 대한 정보)를 소유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해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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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에 갈급했기에 수많은 책을 읽었던 것처럼 인간관계의 갈급함도, 동일한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고 사실상 그 시기엔 인간관계도 그렇게 해결이 되었다. 더 많은 정보를 얻고 더 깊이 분석할수록 세상을, 사람을, 여자를, 그 안에서 생기는 복잡한 감정을 다 알게될 거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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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화두는 '고통스러운 기억의 제거'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은 자주 가장 사랑하는,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기인하기도 한다. 기억을 제거하고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윤리적으로도 옳고 내 남은 삶을 버티기에 합리적이고도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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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커스틴 던스트)의 입을 통해 영화의 제목이자 알렉산더 포프 시의 한구절이 낭송된다.

"How happy is the blameless vestal's lot!
The world forgetting, by the world forgot.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Each pray'r accepted, and each wish resig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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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고통에 해매던 주인공들은 기억의 제거를 통해 '영원한 햇살'을 얻으려 하지만, 정작 제거할 기억들을 되내이면서 그 기억들을 붙잡기 위해 망각에 저항하는 처지가 된다. 더 나아가 이 기억 하나만은 보존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마저 생긴다. 그리고 제거해야 했던 기억의 되내임은 어느덧 서로의 종국을 알면서도 새롭게 관계를 시작할 용기마저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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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에는 스토리조차 기억나지 않던 이 영화가 문득 내게도 강하게 다가왔다. 더 정교하게 정리되어야 할 기억들. 잘 정리된 하부 구조를 만들고 그 기억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려는 내 노력과는 무관하게 내 머리와 가슴, 손끝과 눈빛, 정서 하나하나에 뿌리를 내린 이 기억이란 신기루가, 사실 삶의 '영원한 햇살'이라는 사실을. 더디게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2015/12/13 19:24 2015/12/13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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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위터와 아이폰의 조합은 온라인 생태계를 바꿔놓았다. 트위터에 연결되어 있으면 거의 실시간으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국회에서, 시위 현장에서,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행동들에서부터 셀렙들이 출몰하는 장소까지... 회사에 앉아 있는 내게 트위터는 고급 정보를 전달했고 나는 현장에 없어도 그 정보를 공유하고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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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타임 '아고라'로서의 존재감도 드러냈다. 아침에 터진 이슈에 대해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수많은 유명한 논객들과 파워 블로거, 기자, 트위터리안들이 자신의 생각들을 표현하고 트위터 안에서 수십번 수백번 리트윗을 거쳐 그 논지를 쉽게 공유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이로 인해 생긴 부정적인 영향도 컸다. 오보에 대한 의견들이 한동안 잦아들지 않아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기기도 했고 원치 않게 사생활이 공개되어 고통받는 이도 생겼다. 그럼에도 당시 트위터는 순기능이 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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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가 인터넷에서 논쟁을 즐기던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처음으로 논쟁의 묘미를 느꼈던 <인물과사상>은 3개월에 한번 발간되는 강준만의 일인저널룩. 당연히 논쟁의 속도는 더뎠다. 당시 진중권과 홍세화, 유시민 등 걸출한 논객들이 논쟁에 참여했지만 우린 다음 반론을 읽기 위해 3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이후엔 월간 인물과사상을 통해 월간 논쟁으로 속도가 빨라지긴 했지만 한달 간을 기다려 읽었던 반론글을, 무슨 논술 공부하듯 읽고 또 읽고 원글을 찾아 읽고 다시 반론글을 읽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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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게시판 논쟁은 그 속도가 훨씬 빨랐다. 게시판에는 붙박이 대표 논객들이 존재했고, 그들이 게시판의 공기를 주도했다. 갑자기 치고 올라온 뉴페이스는 자신의 지식을 어느 정도 입증해야 했기에, 약간의 허세삘 글들 몇 편을 쏟아내는 수고를 해야 했다.(일종의 레벨 테스트? ㅋ) 어쨌거나 게시판에서 일어나는 논쟁에는 일정한 룰이 있었다. 이슈가 발생하고 그곳의 주류 논객이 글을 쓰면 그것의 조회수가 급증한다. 하루이틀이 지나면 드디어 누군가의 반론이 올라온다.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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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에는 비슷한 형식이 있었는데, 일단 반론자는 처음 쓴 글의 텍스트를 분석해야 했다. 상대의 텍스트를 해석하여 짚어주고 그 오류를 풀어가는 형식. 이때 뒤집히는 상대의 텍스트가, 딱지 뒤집히듯 휘청거리면 독해의 쾌감이 상당했다. 그렇다고 당시에도 논쟁이 신사적이었던 건 아니다. 마지막에 사족처럼 덧붙이는 말에 상대를 비꼬거나 인신공격성 멘트를 우아하게 덧붙여서 한껏 반론을 도발하며 끝맺었다. 스웩. 상대가 고수라 재반론에 들어가면 게시판 유저들은 하루이틀 뒤에 그 즐거운 독해를 다시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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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언제부턴가 난 논쟁을 멈추었다. 모르겠다. 표면적으로는 페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가 논쟁에 적합한 플랫폼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굳이 SNS에서가 아니라 블로그에서 할 수도 있고 게시판이나 다른 매체를 활용할 수도 있을텐데 표면적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무엇보다 내가 논쟁의 '속도'를 못 따라가겠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인 것 같다. 텍스트를 음미할 시간이 없다. 아침에 불거진 이슈는 당일에 일면식없는 수많은 논객들의 물량 공세에 이미 과식 상태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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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논쟁은 '분노의 표출'인 경우도 많았지만 대체로 텍스트 독해의 즐거움, 소화한 텍스트에 대한 해체의 더 큰 즐거움, 뒤집기의 쾌감이거나 때론 정-반-합에 이르는 묘미. 이 모든 것이 타인의 사고와 글쓰기에 대한 기대, 어떤 의미에서의 리스펙? 뭐 그런 게 있었던 것 같다. 왜냐면 인터넷은 공각기동대의 대사처럼 방대한 공간이라기 보단 또다른 (말 통하는) 한 무리의 게시판 공동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안에서의 인신공격은 라임을 맞추거나 힙합의 훅 같은 느낌적인 느낌도 있었다.

논쟁의 속도. 속도를 논하는 사람은 이미 지나간 사람이다. LP판을 회상하는 사람들은, 정서적인 공감은 받지만 음악계의 대세와는 무관한 흔적같은 존재일 뿐이다. 난 속도감있는 지금의 논쟁이 싫다. 물론 이미 5-6년전부터 몇몇 공간에서 상대를 대놓고 하수나 쓰레기처럼 대하는 정서가 싫었다. 그리고 다시 강산의 절반이 변하고는 혼잣말이나 하고 싶은 소.박.한. 중년사람이 되었다. 요즘은 어떤 이슈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이 더 깊어져서 어느덧 과잉 담론은 흘러가게 두고 싶을 정도로. 내 마음이 그렇다.
2015/11/09 21:32 2015/11/09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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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1.
아래 글을 쓴지 일년 만에 다시 고백할 게 하나 있다.
솔직히 몇년 전까지 나는 '여성 글쟁이'의 글을 즐기지 않았다.
그리고 대체로 그다지 잘 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뭐랄까 약간의 배려차원? 여성이 저평가되고 있다는 인식, 
여성을 도와야 한다는 또다른 차원의 , 여성폄하 혹은 맨스플레인이랄까.
의무감에 의한 봉사나 후원, 뭐 그런 마음이 전혀 없진 않았다.
.
2.
페미니즘 담론에 깊이 빠져들게된 최근 2-3년간
나는 독해의 방식, 담화자의 스탠스, 담론의 가치, 
뭐 이런 거창하게 말할 수 있는 '읽기 습속'이 급속도로 변했다.
예전에 즐겨읽던 책들이 지루해졌고 
책제목을 외우고 본문마저 인용하던 많은 책들이 시시해졌다.
반면, '희생과 봉사'의 심정으로 읽던 여성 저자들의 책들은
남성 저자 특유의 지식 도매상이 유통하는 
'상품들'보다 더 본질적이었고 
가벼운 주제에서조차 인간을 깊이 파고드는, 
하지만 분석적이거나 파괴적이지 않은 스타일의 그 무엇을 전달했다.
.
3.
'여성 글쟁이'에 대한 내 입장 변화도 컸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게 만든 계기가 있었는데,
연초에 있었던 강헌 선생의 "음악사 속의 여성" 강의 덕분이었다.
사실 나는 강헌 선생의 스타일에서 약간의 마초성을 읽곤 했는데,
그의 강의에서 잠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마저 들었다.
역사 속에서 남성(성)이 해온 많은 것들의 허망함, 초라함, 어이없음.
뭐 그런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을 스쳐갔다.
.
4. 
이 이야기의 끝이 기승전-여성, 여성짱, 
뭐 이런 글을 쓰려는 건 아니다.
그저 여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편견을 경험하지 않은 
남성의 입장에서 통용되는 지식, 
통용되는 글쓰기 스타일, 통용되는 사회적 가치,
이런 것들에 대한 편견을 털어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그런 편견을 걷어냈을 때 얼마나 많은 다양성을 보게되는지
뭐, 그런 류의 이야기를 '새삼' 하고 싶었다.
.
5.
오늘 <여배우들, 2009>을 봤다.
그 영화가 무언가를 계몽하진 않았지만,
그리고 그 영화의 내러티브에 어떤 암시도 없었지만.
그 영화를 보다가 문득 이런 글을 풀어내고 싶어졌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http://myjay.byus.net/tc/614
2015/10/10 21:25 2015/10/1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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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책 단말기는 태블릿 대비 불편한 점이 있지만 독서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묘한 기기다.
ⓒ 김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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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ppi를 탑재한 전자책 단말기의 반격

전자책 단말기가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달리 올 가을은 전자책 단말기의 계절이 될 듯하다. 지난 9월 15일 한국이퍼브에서 '크레마 카르타'를 출시한 데 이어 리디북스가 오는 5일 '리디북스 페이퍼'를 출시한다. 

사실 전자잉크 단말기는 그간에도 건재했다. 전자책 시장의 공룡이라고 말할 법한 아마존에서는 태블릿과 함께 여전히 전자잉크에 기반을 둔 단말기인 킨들 페이퍼화이트를 3세대째 유지하고 있으며 이미 2014년 새로운 단말기 '킨들 보이지'를 선보인 바 있다. 국내 온라인 서점의 새로운 '도전'은 이런 아마존의 단말기 생존 전략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올가을 국내에서 출시되는 전자책 단말기는 총 3종이다. 이 중 킨들에서 이미 적용한 6인치 '카르타 패널'을 적용해 300ppi의 해상도를 구현한 한국이퍼브의 '크레마 카르타'는 사양 측면에서는 킨들의 페이퍼화이트 3세대와 같은 급으로 볼 만하다. 

이달 5일에 출시되는 리디북스의 단말기 2종은 사양 이원화를 통해 저가사양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고급사양은 킨들 보이지 수준의 해상도와 기능을 탑재하여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국내 구매자들은 태블릿에 익숙하기 때문에 CPU나 저장공간, 배터리 용량을 늘리는 등 나름 사양에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전자책 단말기, 태블릿 시장 극복할 수 있을까

기사 관련 사진
▲  국내 전자책단말기 사양 비교
ⓒ 김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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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전자책 단말기가 다시금 활기를 띠게 될까. 아직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이미 전자책 시장에 내놓은 많은 전자책 전용 단말기들이 시장에서 사라져 가고 있지 않은가. 사실 내가 전자책 단말기가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 이유는 무엇보다 7인치 태블릿의 약진 때문이었다. 

킨들이 출시된 이래 전자책 단말기의 가장 큰 장점은 크기와 무게였다. 물론 전자잉크의 가독성을 손꼽는 이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200g 내외의 무게에 6인치 사이즈의 이 기기가 가져다 준 효용성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아마존이 초기 킨들을 홍보할 때 빠지지 않았던 요소는, 여성과 노약자들도 침대에 누워서 독서를 즐길 수 있다는 점과 여행지에서도 부담없이 두꺼운 책들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 그보다 높은 해상도와 가벼운 무게, 그리고 10만~20만 원대의 저렴한 태블릿이 쏟아졌다. 아마존이 이윤을 포기하다시피 하며 태블릿 시장에 뛰어들어 파이어 시리즈를 출시하게 된 이유도 아이패드 미니를 위시한 태블릿의 비약적인 발전과 가격 경쟁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자잉크의 한계도 한 몫 거들었다. 화보집과 잡지 등 다양한 색으로 구성된 책들은 전자책 단말기에 적합하지 않지만, 칼라 잡지도 높은 해상도에 동영상까지 첨부하여 재생할 수 있는 7인치 태블릿은 전자책 단말기를 대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제공했다. 

같은 가격에 같은 사이즈의 단말기를 구입해야 한다면, 그리고 한쪽(태블릿)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면 사람들의 선택은 정해지지 않겠느냐 하는 게 내 생각이었다.

소소한 기능들의 조합으로 되살아난 '독서 덕후들의 기기'

하지만 시장에는 '공대생의 마인드'와 달리 특정 기기를 선호하는 충성도 높은 '덕후(마니아)' 소비자들이 존재한다. 전자책 단말기 시장도 그러하다. 기술이란 게 참 흥미롭게도 죽어가던 녀석에게 다른 모듈이 탑재되는 순간, 혹은 사이즈가 달라지거나 기대되는 용도가 달라지는 순간, 특정 기술은 부활한다. 

스티브 잡스가 보여준 혁명적인 사고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기술들을 조합'만' 해서도 유용한 IT생태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아이팟과 인터넷 도구, 그리고 폰을 합쳐서 아이폰을 만들었고 사이즈를 키워서 아이패드를 만들어냈다. 엔지니어와 리뷰어들은 매번 그의 기술에는 새로울 것이 없다고 비난했지만 항상 애플의 새 제품들은 빅히트를 쳤다.

전자책 단말기의 불편한 점 중 손꼽히는 부분은 어두운 곳에서 패널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북라이트'라는 액세서리를 제공했지만 밤에는 라이트를 꽂거나 스탠드를 찾아야 하는 기기는 꽤나 불편했다. 가독성이 떨어지고 눈의 피로가 오더라도 밤에도 조명 걱정할 필요가 없는 태블릿이 더 유리하게 됐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은 아마존은 곧 킨들에 '프런트 라이트'를 탑재했다. 밤에도 스탠드나 북라이트 없이 책을 볼 수 있게 됐고 라이트 기능을 사용해도 그리 눈부시지 않은 내부 기능은 꽤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전자잉크에 이미 익숙한 이들에게는 기존의 불편함을 극복하는 소소한 기능의 탑재가 그 기기에 대한 충성도를 높여주기도 했다.

전자책 단말기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 예상과 달리 비교적 낙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조차도 다시 전자책 단말기를 구입했고 1년 넘게 사용했지만, 여전히 만족도는 높다. 

기기만 언급했지만 사실 전자책 단말기가 아닌 전자책이 시장에 잘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것도 또하나의 이슈일 것이다. 전자책이, 그리고 책이, 나아가 책을 만드는 출판사들이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단말기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다소 우울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이 글은 이쯤에서 접는다).

*기사 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47770
2015/10/07 21:10 2015/10/07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