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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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 오빠 비와이에 대한 교회 진보 아재들의 우려가 많다.
가사에 비춰진 기독교적인 요소들이 걱정스러운 듯
도리어 교회오빠 비와이가 추구하는 힙합의 세속화를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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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면 공감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런 생각 자체가 좀 낡았다는 느낌...
그가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감에 있어서 기독교적 요소를
차용했을 때 그 메시지를 형식에서 구별하려는 욕망이 
여전히 교회 아재들에게는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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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CCM은 세속 음악에 기독교적 메시지를 얹어서 전달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구현해왔다. 
그런 경험으로 음악을 이해하는 교회 아재들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음을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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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이의 랩 퍼포먼스에서 메시지를 세속화시키면
퍼포먼스 자체의 아우라가 사라진다. 
이른바, 미디어가 메시지인 셈이다.
낡은 틀로 새 포도주를 담으려 하지 말라. 
우리가 가진 생각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시대는 가고 있다.


#2.
비와이. 기독교세계관 랩을 개척한건가.^^
그냥 몇가지 생각이 들어서 끄적이자면.
비와이 나이에 나는 어떤 생각을 했나 돌아보면
그의 가사에서 오는 기독교적 오글거림은 받아들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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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나는 비와이를 지저스웨거로 부르면서
문화선교의 첨병으로서의 기대감을 비추는 교계 분위기에는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단순히 '기독교적인 컨텐츠'가 대중문화의 한 영역으로 
무리없이 자리잡는 부분에 있어서는 CCM을 넘어선 또다른
분위기가 감지되어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는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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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이 힙합씬에서 기독교적 메시지를 통해
힙합씬 자체에 자기들이 말하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겠다,
끼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방식은 단적으로 말해 
기독교 담론을 문화영역의 메타담론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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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으로 본다면 메타담론으로서의 기독교 컨텐츠는
결국 비기독교 컨텐츠를 대립, 정복, 변혁의 대상으로 본다.
그럴 경우, 
각각의 로컬담론으로서의 컨텐츠는 신의 반대영역으로 설정되고
결국 신의 창조물 자체에 대한 반대, 정죄가 이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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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끝은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은 비와이 만을 지지하는 자로
제한되고 그 하나님은 힙합씬과 대적하는 신으로 전락한다.
아마도 이 논리적 흐름이 지저스웨거 지지자들의 결말이 될 것이다.
2016/07/16 11:38 2016/07/1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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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여성 저자들의 책과 글들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여러차례 말했듯 나는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된 후에도 한참동안을 여성 저자들의 글에 별로 호감을 갖질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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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가장 큰 변화는 남성들 특유의 '가오잡는' 문어체가 인터넷에서 사라지고 나아가 출판계에서도 구어체, 말글이 점차 대세를 이루면서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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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논문에서나 볼 법한 문어체 글쓰기 스타일이 불과 10-20년 전까지 출판시장 전반을 차지했었다. 글 꽤나 쓰던 사람들은 누구나 입에 익숙하지 않은 문장을 한자까지 병행하여 쓰면서 자신의 가오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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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해서 가오를 살렸다기 보다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렇게 글쓰기를 배웠고 그 흐름대로 룰을 따랐을 뿐이다. 지금은 흔한 강준만식 글쓰기도 당시에는 쉽게 읽히는 잡글이라며 기성 논객들은 그를 폄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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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게시판이 글로 범람하고 인터넷 소설이 등장하고 온라인 속 컨텐츠 포화 상태를 경험하면서, 어쩌다보니 오프라인에서조차 부지불식간에 구어체 문장들이 익숙하게 나타나기 시작했고 글쟁이의 판세는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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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내가 여성 저자들에게 관심을 갖지 못했던 건, 그 시절 문어체 문장의 룰이 가부장제의 수컷냄새를 내지않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종종 어설프게 사용되거나 혹은 그들이 원하는 담론의 형태로 쓰여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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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내에서도 훈계하는 식자층 교회 오빠들의 현란한 글쓰기와 그것을 소비하며 감탄하는 자매층이 있었고, 자매들의 글쓰기는 '가오의 룰'을 갖추지 못한 관계로 폄하되거나 담론과 논쟁의 영역에서 배제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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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갑자기 2016년의 내 독서편력을 돌아보니 이전에 그렇게 좋아해서 '엄지척'하던 교회 오빠들의 글은 어느새 허세와 자화자찬, 고답적인 스탠스에서 오는 형식적인 측면의 불편함 같은 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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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갑자기 우후죽순처럼 솟아난 '언니들'의 글은 자신의 경험이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시작되어서는 어느덧 무협지스러운 과장없이도 전지구적 거대담론에 이르는, 그러면서도 독해의 불편함 없는 구어체 문장의 매력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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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최근 남성 저자들의 글에서는 이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정형화된 형식'이 자주 나를 불편하게 만들곤 하는데 몇 가지를 예를 들자면,
- 대가들의 이름과 책을 나열하거나 다른 저자의 글을 인용하면서 자기의 급을 과시하려는 시도
- 본론을 말하기 전에 무협지의 한 장면처럼 서론을 과하게 부풀리는 허세  (일례로 삼국지에서 관우가 나타나기 전에 키는 몇 자에, 그가 쓰는 창이 일반인 키의 세 배인데 수염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식의...)
- 자신이 사용하는 용어가 일반적인 그 용어와는 다르다는 기나긴 설명.
- 이 얘기가 중요하다는 점을 각인시키기 위해 이 사람도 이 얘기를 하고 저 사람도 하더라는 설명으로 책의 절반을 소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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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은 책 한권을 털어내면, '이 얘기를 하나 전달하려고 이렇게 많은 말을 했나'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요즘은 점점 TED 15분짜리 아이디어를 400쪽에 담으려는 분들이 눈에 많이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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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한 이야기인 거 같나. 서점에 가서 여성이 쓴 책과 남성이 쓴 책을 대충 읽어보시라. 예전엔 난해하게 써서 잘 드러나지 않았다면 지금은 구어체로 여전히 수컷의 가오를 잡는 이들이 많아서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을거다. 아마 몇몇 책들은 읽다보면 축지법이 필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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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룰이 바뀌었다. 고로, 여성 저자들의 약진을 앞으로도 기대하는 바다.
2016/06/12 15:19 2016/06/1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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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MMPI,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고 
최근에 강헌 선생 덕분에 명리학을 '독학'(?)하면서 느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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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마치 서양의학과 한의학처럼 겉마음과 속마음으로 나눈다면 
MBTI와 MMPI는 겉마음을 다루는 외과적인 접근을 취하고
에니어그램과 명리학은 속마음을 다루는 내과적 접근을 취하는 것 같다.
일례로,
MBTI나 MMPI가 자신이 외적으로 반응하는 마음을 정리, 분류하여 
개별 인간의 성향을 규정한다면,
에니어그램과 명리학은 좀더 근본적인 영역의 마음의 동기를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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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루는 이 도구들은 모두 특정 이론을 근거하여
임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통용되어 왔는데
MBTI는 융의 심리적 유형론(1921)에서 정리된 개념에 토대를 두었고,
에니어그램은 고대 중동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지혜'에 근거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상 20세기에 들어서부터 점차 활성화되었다.
에니어그램은 머리, 가슴, 장형으로부터 9가지의 유형을 분류한다.
개인적으로는 에니어그램을 인간의 원초적 죄성(욕망)에 의한 분류체계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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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주팔자로 알려진 '명리'는 중국의 당나라 이후에 체계화된
동양의 음양오행을 가지고 인간을 분류하고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오행은 세상의 질료인 나무, 불, 물, 쇠, 흙의 기운으로 분류되며
열개의 천간과 열두개의 지지를 조합하여 사람의 마음과 길흉화복을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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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의 흥미로운 지점은 오랜 임상에 의해 정립된 통계적 구조이다.
사실상 동서양을 막론하고 심리를 다루는 도구는 어떤 가설과 이론에 근거한다.
프로이트는 자아, 초자아, 이드라는 개념의 토대위에서,
칼 융은 융 나름의 심리 유형을 가지고, 
에니어그램은 머리, 가슴, 내장을 형상화하여 
오랜 임상의 축적을 통해 이론을 체계화한 것처럼,
명리 또한 그 오랜 시간의 임상의 무게를 통해 음양오행이라는 동양적 전제로
인간의 내적인 영역을 풀어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 모든 각각의 개념들은 
보이지 않는 것(마음)을 형상화한 나름의 접근 방법인 셈이다. 

그런 연유로 입문자 입장에서 보기에도
명리는 내 기대보다 훨씬 정교했다.
(사주에 대한 안 좋은 경험이 많고 한자울렁증이 있어서 
사실 처음에는 명리 자체에 부정적이었지만.-_-)
널리 알려진 MBTI, MMPI 등은 20세기 이후에 나온 것들로 
사실 임상적으로는 상당히 더딘 축에 속한다고 평가한다면,
명리학은 이런 서양의 도구들보다 임상적으로도 훨씬 강건하며
아직 그다지 깊이 들어가지 않은 상황에서조차 
나를 이해하는데 더 강력하게 도움을 주는 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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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건 우리가 익히 아는 '신살'에 혹하거나 
혹은 결혼 시기를 짐작하거나 복권을 사거나 
부적이나 작명을 통해 오행의 부족함을 채운다거나 
흉한 기운을 내보낸다는 접근과는 별개의 이야기이다. 
그저 인간의 심리, 마음을 이해하는 여러 도구 중에 하나로
곰곰이 살펴보면 나에 대한 생각보다 많은 통찰들을 얻게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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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40일 가량 겉핥기를 해본 소감은 여기서 접고,
'만인의 위한 명리학'을 시도한, 강헌 선생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2016/06/11 00:29 2016/06/11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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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을 하고 몇 년이 지나서였던 것 같다. 댓글로 의견을 주고 받다가 논쟁이 벌어졌다. 좀 심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서로 이쯤에서 그만두자고 한발씩 물러서고 대화를 마쳤다. 앙금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는 바로 직후에 자기 담벼락에 나를 공격했던 논조의 글을 올렸다. 그 이후 나는 그분과는 소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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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텍스트비판을 즐겼다. 진보 기독교권에서 처음 쓴 글도 반론글이고 게시판에서 논쟁도 자주했다. 타인의 글을 인용하여 재배치(해체)한 후, 그 글의 모순을 되돌려주는 작업은 흥미진진했다. 복학후부터 대학원 졸업시기까지. 나는 많은 책들, 타인의 필력 높은 글들을 읽고 지식과 논리를 쌓고, 타인과 논쟁하는 과정 자체를 즐겼다. 잃은 사람도 많았지만 관계가 깊어지는 경험도 했고 무엇보다 소소하게나마 내 글의 인지도가 높아지는 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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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빈틈이 없는 글, 타인의 엉성한 텍스트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글을 쓰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과정이 불필요했다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내 글과 내가 부유하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대기업에 취업을 하고는 내가 비판하는 칼날이 어디를 향한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결혼을 하고나서는 여성문제에 있어서 더 탄탄하게 말할 수 있는 논지를 내뱉는데 주저함이 생겼다. 발화자와 발화내용의 부조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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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글과 말, 논리, 논지, 객관성, 탁월함. 이런 것들에 대한 회의감도 생겼다. 논리가 엉성한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그가 나보다 훨씬 나은 삶의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자주 겪었다. 내 글의 높은 경지를 추구하기보다는 내 글과 내 삶의 적절한 조화가 더 중요해졌다. 거품빼기랄까. 나는 더 어리버리하게 말하고 글을 허술하게 쓰는 것을 의도하는 경우가 생겼다. 의도적으로 방어적으로 논지를 숨기기보다는 내 인간적인 편견을 드러내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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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모든 과정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아내가 옆에서 자주 내 모습을 지적질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내 글과 내 삶의 간격을 줄이려고 애쓰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누구나 자기를 변호하고 포장하고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을 보여준다. 나도 여전히 그렇다. 굳이 내 입으로 빈틈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건, 솔직히 마음이 내키는 일이거나 즐거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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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페북을 활용하는 의도는 다르겠지만. 나는 페북을 일종의 놀이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좋아요'를 대놓고 누르기를 유도하고, '싫어요'는 없는 플랫폼 자체가 긍정적인 피드백을 의도한 반면 부정의 피드백은 더 큰 반감을 유발한다고 느꼈다. 이런 구조에서는 자신의 글을 좋아해서 공유하기를 바라지, 누군가의 담벼락에 칼질의 대상으로 언급되기를 원하지는 않게 된다. 물론 그렇게 페북을 사용하는 이들도 많지만 '나는'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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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을 하면서 글을 잘 쓰는 이들을 자주 목격했고 나는 컨텐츠가 좋은 이들과 페친을 맺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타인의 글을 비판하기 위해 공유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고 나는 결국 그런 사람들과는 온라인 관계를 지속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왜냐하면 언젠가 내 글도 그들의 논리에 맞게 칼질이 되어 그들의 담벼락에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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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나는 누군가 내 글을 공유하더라도 그와 나 사이에 공유된 페친에게만 그 글이 보이도록 설정해두었다. 페북은 내 페친이 내 글을 공유하면 그 친구의 친구들에게도 내 글을 읽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몇몇 글들은 설정 자체를 그렇게 묶어뒀다. 그와 별개로, 의도한 건 아니지만 감사하게도 내 페친들도 내 글을 자신의 비판 논지를 펴기 위해 인용하지는 않았고 공유할 때에도 내게 의사를 물었다. 페북의 시스템은 그럴 필요없이 페북을 사용하도록 기능이 구성되어 있으므로 굳이 내게 그럴 필요는 없지만 난 그런 페친들에게 안정감 이상의 어떤 연대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건 마치 비행기나 버스에서 좌석을 뒤로 충분히 젖힐 수 있지만 뒷사람을 고려해서 자제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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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페친들에게만 공유하는 글들의 다수는 페북이라는 '내 놀이터' 공간에서 친구들과 공유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내가 글의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내가 체화하고 행동할 수 있는 수준의 글만을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한다. 물론 여전히 논리적으로 완벽한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그건 매체 기고글이나 논문, 보고서에서 보여주고 싶을 뿐.(기고글로 욕먹는 것에 불만은 없다.ㅜㅜ) 페북을 공적 언로로 생각하거나 때때로 선교의 도구로 활용하는 목사님들도 계시지만 이곳에서 나는, 그저 편견도 있고 빈틈도 많은 김용주라는 한 인간을 이해받고 싶은 정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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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페친 중 한분이 나의 편견을 지적하며 내 글을 자기 담벼락에 공유했다. 사실 그분의 페북 스타일을 볼 때 언젠가 내 글도 저 담벼락에 비난의 대상으로 걸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오늘이 됐다. 결국 나는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 분은 미리 글을 쓸 때 제한하고 싶은 부분을 말을 하는 게 좋지 않냐고 말하고 불편하다면 글을 지우겠다고 했다. 반나절 정도 오늘 일을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페북에 쓰는 내 글은 반복적인 것 같지만, 다시 남겨본다. 페북에서의 김용주 사용설명서 정도라고 받아들이시면 된다.


2016. 6. 5. 페이스북에서.
2016/06/06 20:11 2016/06/0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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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시빌워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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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원작<시빌워> 시리즈에 환호했던 우리는, 영화화된 <왓치맨>에 환호할 수 있었지만 이번 <캡틴아메리카: 시빌워>는 다소 불편할 법한 각색이 즐비했다. 이에 대해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즉각적으로 원작에 대한 애정을 강하게 드러낸 비판글을 썼으나 댓글들을 보니 마블 원작의 '세계관'에 그다지 관심 없는 지금 세대들에게는 평론으로 포장된 꼰대질, 평론가의 자격지심, '그냥 잘난 척'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의 평론을 그렇게 대하기엔 부족함이 있어서 그의 논의 중심으로 시빌워의 감상기를 풀어보련다. 그의 글은 아래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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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허지웅의 평대로 영화의 스케일에 대해서는 이제 마블 시리즈에서 굳이 폄하할 부분을 찾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게다가 얼마전 수퍼맨과 배트맨이 모여서도 이렇게 비주얼로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해서 그런지, 더더욱 그 흥망의 대조는 크게 느껴진다. 문제는 내러티브, 스토리라인인데, 원작에 열광한 나로서도 허지웅의 비판에 공감하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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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그의 말대로 세계관의 스케일이 줄어들었다. 스티브는 어벤저스 멤버들로 국한되지 않은 무수한 초인들의 신분과 자유를 보장하려는 '캡틴'으로서의 숭고함은 사라지고 새 친구 '토니'보다 옛 친구 '버키'를 편애하는 인간으로 전락했다. 시빌워(내전)는 구색만 갖춘 채 대충 싸우는 어벤저스의 내분이 되었고, 정작 진지했던 전쟁은 부모를 잃은 토니와 친구를 보호하려는 스티브의 사적 복수극으로 달려간다. 게다가 토니가 '소코비아 협정'에 동의하려는 동기는 아이언 수트를 안 입어야 페퍼포츠와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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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워의 원작은 10년전에 만들어졌다. 이른바 '초인등록법'에 대한 찬반에 의해 갈라진 무수한 초인들의 입장 차이를 가지고 마블코믹스는 자기들이 수십년 전부터 보유해온 초인들을 어른들의 눈높이에 맞춘 정치사회적 내러티브로 발전시키는데 성공했다. DC가 프랭크 밀러의 <다크나이트 리턴즈>와 <저스티스 리그>를 통해 재도약의 시발점을 만들었다면, 마블은 <어벤저스>와 <시빌워>의 내러티브를 통해서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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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를 관통하는 코믹스의 세계관은 '진영' 논리였다. 초인들을 한 곳에 모은 후 진영을 나누고 그 각각의 입장에 대한 내러티브를 구축해가는 과정에서 베이비붐 세대를 겪은 중년층들은 열광했다. 그들이 경험한 냉전시대에 대한 추억, 그 이후에 이뤄지는 세상의 진영논리를 기반으로, 어릴적 하나씩은 가지고 놀던 초인 영웅들이 화려하게 '재'등장하자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정도로 몰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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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각설하고 결론부터 말한다면 나는 지금 세대, 그리고 마블이 나아갈 세대의 영화는 원작의 세계관과는 구별될 것이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캡틴 아메리카> 1편에서 3편을 관통하는 세계관은 제국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비판적 메타포로 대변된다. 9/11 테러 직후 미국의 착한 시민들은 왜 세계가 우리나라를 미워하는지 의아해했고, 이 재난에 대해 오히려 냉대받는 이유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런 미국적 스탠스는 영화 속 '어벤저스'로 대변되는, 특히 애국심 돋는 '캡틴 아메리카'로 상정된 인물에 의해 극도로 고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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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경구 수준이 되어버린 '큰 힘에는 큰 의무가 따른다(스파이더맨)'는 말은 이제 '큰 힘을 가진 자의 의무감을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둘 수 없다', '큰 힘에는 견제될 통제 영역이 필요하다'는 말로 대체되었다. 마블 영화 속 초인들은 완벽하지도 않고, 완벽할 수도 없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할 수 없고, 정보는 (더 높은 권한을 가진자에 의해) 공유되지 않는다. 나아가 거대담론(제국)은 미시담론(소수부족)을 무시하고 개별, 개개인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 그 안에서도 몇십만 명을 살리기 위해 수십 명의 희생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혹은 그럴 수 없다는 입장 차이가 발생한다. 그 와중에도 많은 미시사적 개별 복수극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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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더 큰 힘은 또다른 도전을 낳는다'는 비전의 대사는 일면 타당하다. '개별적, 미시적 복수극을 감내해야 하는가', '큰 힘은 견제와 통제 아래 둬야 하는가' 사이에서 고민하고 분리의 조짐을 보이던 초인들 자신들이 급기야 복수극에 휘말린다. 초반과 중반, 후반에 반복되는 교통사고는 생체실험이라는 거대담론에서 내 부모의 죽음이라는 개별 미시사로, 돋보기의 한 점처럼 편광된다. 그 모인 한 점의 섬광이 종이를 태우듯, 두 초인은 자신의 미시사적 이해에 근거한 혈투로 치닻는다. 원작의 격돌이 매크로 스케일의 무게감으로 다가왔다면, 영화 속 격돌은 마이크로 스케일의 마음 속 사무침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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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이것이 세계관의 스케일이 작아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내가 허지웅의 비평에 공감할 수 없었던 대목은 이 지점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자주 이야기하듯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만약 이 영화의 주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 마블이 기획한 세계관의 '영화적 변주'라면 나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이 세계관이 왜 세계가 '우리-초인-제국-미국'을 싫어하는가에 대한 자성과 고민을 담고 있다면 나는 매크로 스케일로 '진영 논리'를 불태운 원작에서 비껴나간 영화적 내러티브에 환호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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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세계 평화는 진영의 승리, 패배와 같은 조직 논리가 아니라 미시사의 복수극의 고리를 끊는 '블랙 펜서'의 선택으로부터 변화한다는 것이 이 세계관의 결론이라면 나는 더더욱 영화판에 공감한다. 레미제라블과 같은 고전에서부터 반복되어 온 문제, 인류의 구원은 복수가 아닌 용서에 기인한다는 주제의식에 공감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블의 변형된 세계관은 '시시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러러 보던 거대담론, 그것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현실 세계 자체가 시시한 복수극의 현현일 따름이다. 결국 우리 중 누군가가 '발톱'을 접어야 세상의 복수가 멈출 것이라고 <시빌워>는 말하고 있다. 그나저나, 이렇게도 잘 나가는 '제국'의 영화를 굳이 내가 또 지지할 필요가 있나 싶기는 하다. (끝)
2016/05/05 23:56 2016/05/05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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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나는 내 주변 페친들과 정치성향이 일치한다. 하지만 분명 다른 지점이 있었지만 선거가 끝나기 전까지는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다. 긴 호흡으로 풀어내야 하는 논지일텐데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는 다분히 오해와 감정의 낭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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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흥미롭게 읽은 책은 김욱 교수의 <아주 낯선 상식>과 강준만 교수의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이다. 국민의당에 대한 다수의 생각이 부정적이므로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이야기를 풀어내기 쉽지 않으리라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책을 인용하기 위해 장문의 내용을 타이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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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국민의당에 대해 비판을 하려면 최소한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의 분열을 꽤하면서도 개혁적인 스탠스를 유지했던 유시민 전장관의 레토릭에 대해서도 동일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에 대한 내 개인적인 호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호남'에 대해, '호남의 세속화'에 대해 비판할 수 없는, 나아가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음을 털어놓을 수 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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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야기해도 누군가에겐 어차피 공감받지 못할 내용이라 판단하기에 서민 교수의 서평으로 내 생각을 대신한다. 아울러 김욱 교수의 책의 몇몇 부분을 길게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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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낯선 상식>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챙겨간 건 경향신문에서 이 책에 대한 고종석 선생의 글을 봤기 때문이었다. 거의 ‘올해의 책’이라며 추천을 하셨던데, 정말 그럴 만했다. 유익한 책에 대한 내 기준 중 하나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바꿔주는 책인데, 이 책은 호남정치에 대한 내 알량한 생각을 바꿔 놓았다! 
“(친노로 대변되는) 영남의 개혁세력이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적극적 청산의지도 없이 자신들이 앞장서야만 대권을 잡을 수 있”(187쪽)다며 호남에게 계속 표를 달라고 우기는 것이 현 상황이고, 그게 노무현 대통령의 분당 이후 벌써 십수년째 계속되고 있다면, 호남이 더 이상 ‘개혁성’을 기치로 한 투표를 하는 대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소위 ‘세속적 투표’를 하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이 주장이 이해가 안된다면 그건 내가 설명을 잘 못한 탓이다).
호남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난 호남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었고,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그들의 몰표에 대해서도 탐탁지 않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호남을 빼고는 한국정치를 논할 수 없다는 저자 김욱의 논리에 난 완전히 설득당했다. 이 책 덕분에 난 호남에서 문재인의 지지율이 왜 떨어졌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으며, 지난 재보선 때 새누리 이정현을 뽑은 그들의 선택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 고종석 선생이 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는지도 수긍이 갔고 말이다. 
- 서민 교수(마태우스 서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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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문제는 호남 정치인을 호남과 분리시키는 ‘분리 이데올로기’가 노무현 이데올로기로 변주되어 새정치민주연합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이데올로기란, ‘허구적 지역주의’ 현실 속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대통령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남에서 득표력이 있는 영남후보를 내세워 호남몰표로 뒷받침해야 하고, 그렇게 당선된 영남 대통령은 ‘민주성지 ’ 호남의 정신적 양해 속에서 세속적인 영남을 물질적으로 유혹해 지역주의를 구조적으로 타파해야 한다는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에 입각한 위선적 정치공학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에 지배받는 사람이 바로 친노다. 예컨대 이런 노무현 이데올로기를 지고지선으로 알고 있는 이화여대 교수 조기숙은 “DJ시대로 돌아가자는 건 호남이 영원히 소수가 되는 지역주의 정당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라고 공공연히 호남을 겁박한다. 이런식의 겁박에 주녹든 호남은 기약없이 파괴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동일화’를 전략으로 삼는 새누리당의 영남패권주의 이데올로기와 ‘지역타파’를 내세운 노무현 이데올로기는 쌍생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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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역시 일당독재 상황이지만 박근혜는 대구 달성에서만 4선을 한 뒤 비례대표를 지내고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김영삼은 거제에서 첫 당선된 뒤 부산에서만 7선, 비례대표 1선을 하고 대통령 에 당선됐다. 현재 다음 대선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김무성 또한 부산에서만 무려 5 선을 했다. 반면 김대중의 경우눈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 에서 첫 당선되고 목포에서 2선된 이후에는 비례대표만으로 3선을 하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정동영의 경우는 전주에서 2선을 했는데 대통령 낙선 후 다시 고향출마를 한다는 이유로 이데올로기적 총공세를 당하기도 했다. 다선의원 고향 제거는 새누리당에서도 종종 있는일 이지만 호남의 그것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새누리당의 그것은 수뇌부의 영남패권주의를 위한 지역관리의 차원이지만 호남에서의 그것은 오히려 ‘분리 제거'라는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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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는 대한민국의 욕망이었다. 물론 광주의 욕망도 그 안에 있었다. 하지만 광주학살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전두환과 그 일당에 무감각해진 채. 그들이 만든 정당을 지지하며 이제 대 한민국이 민주화됐다고 믿는 사람들과 광주는 화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원 없이 실현해가고 있을 때, 광주는 한마음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거두고 그들과 수십 년간을 정치적으로 척지며 살 수밖에 없었다. 광주는 그것이 아직 오지 않은 진짜 민주주의를 실현히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광주는 고립되었고, 욕망은 거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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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에게 몰표를 던져 대통령까지 만들었을 때도 자신들은 단순한 지역적 욕망이 아닌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한다는 명분을 찾았다. 그래서 그 유명한 노무현의 발언 "호남 사람들이 니를 위해서 찍었나요. 이회창이 보기 싫어 이회창 안 찍으려고 니를 찍은 거지"라는 말은 그만큼 큰 상처가 됐다. 호남은 가장 현실적이어야 할 투표행위에서까지 거리낌 없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대신 어떤 의무감 속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히는 것이다... "‘전략적 선택’이라는 용어를 해체시키지 않고서는 광주는 순정한 ‘몰빵’을 하고도 두려움과 슬픔에 온몸이 우는 서러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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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흔들리고 있다. 욕망을 거세당한 채 ‘신성 광주’를 믿고 살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잃어버린 욕망을 찾아 ‘세속 광주’를 회복해야 하는는가? 예수나 부처가 아닌 인간들이 살아가는 도시인 광주는, 호남은 유사 이래 존재했던 다른 모든 세속 도시들처럼 욕망을 표출하며 살아갈 권리가 없는 것인가? 그렇게 똑같이 살면 다른 지역민들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니지만 호남만은 죄를 짓는 것인가?
기억 속의 ‘신성 광주’에 대한 그런 찬양이야말로 ‘세속 광주’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의 호남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란 점도 자명하다. 물론 그 압박감을 이용하려는 정치세력에겐 ‘신성 광주’야말로 더 없이 훌륭한 세속적 욕망의 온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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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건 타의건 5 '18은 굉주가 욕망을 거세당한 근원이다. 나는 욕망을 거세당한 광주가 그 욕망을 다시 찾기를 바란다 “허기를 느끼며 음직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에 더 이상 치욕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광주가 욕망만으로 살기를 원하는 건 아니지만 욕망 없이 살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호남은 할만큼 했다. 죽은 사람들만큼은 아니라도 산사람들로서는 할 만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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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과정 속에서 발현된 것만을 따져도 그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김대중과 김영삼의 연대-분열은 가장 유명하다. 3당합당 이후에도 계속된 김대중과 (3당합당을 거부한 1990년, 새정치국민회의를 거부한 1995년) 꼬마민주당의 연대 ·분열, 노무현의 집권 이후 벌어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연대 분열, 그리고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노와 친노의 연대·분열, 이 현상은 결코 우연한 내분이 아니다. 이는 수십 년간의 뿌리 깊은 족보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사의 숙명적 연대·분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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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남 친노세력은 영남권 지지를 토대로 극우 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새누리당을 거부한 정치인들이다. 반면 호남세력은 극우까지는 아니어도 성향상 상당히 보수적인 정치인들부터 개혁적인 정치인들까지를 모두 망라한다. 따라서 그 이미지가 영남 친노세력보다는 다소 보수적인 느낌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단지 이런 느낌을 가지고 친노/비노의 분열을 무슨 진보/보수의 분열처럼 포장하는건 의도를 가진 대중적 이미지 조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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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하면 진다’는 겁박이 통하려면 최소한 ‘분열히지 않으면 이긴다’는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승리를 통해 분열하지 않은 세속적 대가를 얻을 수 있아야만 한다. 위선 떨지 않고 밀한다면 호남이라는 지역단위로 투표했으므로 호남도(영남이 수십 년을 악착같이 그랬던 것처럼) 지역(출신) 단위의 대가를 얻을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분열하면 진다’는 주장은 문자 그대로 한낱 부질없고 비겁하고 위선적인 겁박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면, 즉 ’분열하면 진다’는 주장이 ‘호남은 세속적 이익과 무관하게 지역단위 전체가 새누리당이라는 절대악에 맞서야 할 의무로만 새정치민주연합에 투표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그 주장은 호남의 욕망을 거세하는 부도덕한 정치적 선전구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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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기간 때, 영남사람 노무현이 보기에 “호남-충청-강원지역 이 연대해서 영남지역을 포위하면 이길 수 있다는 지역 분열구도"(충청의 이인제 후보에 대한 호남의 권노갑 지원)는 “민주당의 자기정체성을 부정하는” 악이었다. 그리고 2007년엔 호남 정치인이 출마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기지 못”한다고 강변한다. 그의 정동영에 대한 태도를 보면 심지어는 호남정치인이 출마해 동서대결 자체가 되는 것조차 싫어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대한민국 정치는 딩연히 (친)영남후보가 나설 수밖에 없는 한나라당과 역시 영남후보가 나서야만 하는 열린우리당의 양대산맥이 되어야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노무현식 선진적 지역주의 해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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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은 김대중에게 어느 한때 잠시 몰표를 던진 것이 아니다. 호남은 그가 출마한 1987년 대선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는 1997년 대선까지 3번의 대선과 3번의 총선에서 상상을 초월히는 몰표를 던졌다. 이 몰표에 대한민국은 기가 질렸다. 1980년 광주학살 이후 1997년 대선 승리 때까지 영남패권주의 대한민국에서 호남을 대변하는 김대중이 받은 정계은퇴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호남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히는가. 영남의 비새누리당세력, 개혁·진보세력, 여타 잡다한 모든 정치세력들이 호남을 대변하려는 정치적 욕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통합추진회의 노무현이 ‘양비론(3김청산론)'을 앞세워 김대중을 제거하는 전략을 포기하고 ‘김대중당’에 참여하는 굴복을 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한마디로 김대중을 제거하려는 세력에 대해 호님은 ‘우리는 김대중이 죽을 때까지 김대중을 몰표로 지지할 테니까 당신들이 우리와 함께 하든지 말든지 선택하라’고 요구한 셈이었다. 유사 이래 최초의 반영남 패권주의 정권교체는 그렇게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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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때마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행사지만, 정동영의 사례는 자못 상징적이다. 정동영은 1996년(15대)과 2000년(16대)에 전주 덕진구에서 재선된다. 그는 2004년(17대) 총선 때는 전주 지역구에 출마하지 못하고 비례대표 후보가 되지만 이른바 ‘노인펌훼’ 발언으로 사퇴한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은 민주당 출범 뒤인 2008년에 전주가 아닌 서울 동작을에 출마할 수밖에 없었고, 낙선한다. 2009년 4월 재보궐선거 때는 전주에 출마하려 하지만 불출마 압박을 받는다. 그는 탈당해 전주 덕진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지만 2010년 2월에서야 겨우 복당을 허락받는다. 그는 2012년(19대)에 역시 호남지역구에서 축출돼 강남을에 출마했지만 낙선한다. 한마디로 그는 세계 정치사에 유래를 찾기 힘든 ‘호남출신 중진의원은 호남지역에 출마하면 안 된다’는 반민주적 이데올로기의 흔하디 흔한 희생양 중 한명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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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민주당과의 법통을 끊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함으로써 영남에 분명한 매시지를 보냈다. 열린우리당은 호남당이 아니니 지지해달라는 것이었다. 신기남은 "호남 소외론이 더 확산되고, 구주류가 신주류를 더 공격해야 한다. 호남쪽이 흔들흔들해야 영남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다'"고까지 노골적으로 발언했다. 그는 나중에 이 벌언에 대해 호남표 줄어들까봐 전전긍긍히는 분들도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런 분들에게 한 말이었다"고 명확히 설명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선대본부장을 맡은 그는 심지어 “민주당이 호남에서 지분을 가지길 개인적으로 바란다”면서 “그것이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에 맞다”고 주장하는 등 선거역사상 남의 당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는 초유의 선거본부장 역할까지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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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열린우리당 이데올로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열린우리당을 통한 지역문제 해결은 난관에 부딫힌 셈이었다. 열린우리당의 실패가 감지되자 열린우리당 정치인들은 현실적 대안을 내놓기 시작한다. 민주당과의 합당이었다. 부질없는 시도를 끝내고 합당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분열 을 막고 득표력을 키울 것이라는 극히 이해타산적 인 생각이었다. 그런데 2006년 5월 지방선거 당시 문재인은 민주당과의 합당을 절대 반대하는 노무현의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한 바 있다... 노무현의 그 의지는 완전히 방향을 잃고 표류하다 흔적도 없이 좌초했다. 한데 아이러니한 것은 현재 문재인 등 친노세력은 어쨌든 그런 노무현의 신념을 이어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이어받기는커녕 호남에서 정당간 경쟁을 시도하려는 말만 나와도 그들은 기를 쓰고 분열이라고 외치거나 호남당을 만들 생각이냐며 매도한다... 난 이제 호남이 반드시 복수정당제를 쟁취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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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단언컨대 김대중(지지자)과 노무현(지지자)의 이념은 근원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즉 명 백히 ‘김대중 정신'과 '노무현 정신’은 같지 않다고 본다. 우선 김대중은 ‘ 영남패권주의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반영남패권주의 지역연대인 DJP 연대를 통해 집권했다. 반면 노무현은 ‘영남패권주의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실제론 실망스러웠지만) 영남의 표를 확장시켜 당선되기를 원했다. 당선 후 김대중은 자신의 약한 지역적 지지기반을 보완하기 위해 민주당을 기반으로 영남에 많은 정치적 지분을 할애했다. 반면 노무현은 자신을 공천해 준 민주당의 법통을 끊고 열린우리당을 창딩해 영남의 지지를 받으려 했다. 김대중은 야당인 한나라당과 타협적이었을 망정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주는 차원의 대연정 같은 제안을 하지 않았다. 반면 노무현은 한나라당의 역사적 정당성을 공인하고 정권을 내주는 차원의 대연정을 제안하며 한나라당과의 ‘양대산맥’을 지향했다. ‘햇볕정책’ 때문에 김대중은 노무현에 반대하는 집회를 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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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욱 <아주 낯선 상식> 중에서
2016/04/16 14:43 2016/04/1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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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D 전공을 하면서 컴퓨터그래픽스 분야에서
처음 들은 이름은 존 라세터였다.
그는 당시 아이의 모션을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내용의 발표를 했고 그것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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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스토리가 개봉했을 때 그의 이름을 다시 접했다.
장편 애니메이션은 흥행했고,
픽사로 대변되는 특유의 애니메이션 스타일은
이전에 그가 하던 작업의 발전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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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흥미로웠던 건,
그가 뛰어난 애니메이션 프로그래밍의 대가이면서도
컴퓨터그래픽스를 활용한 장편 애니메이션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스토리라인"을 꼽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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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
픽사의 흔한 흥행사이지만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한 후
존 라세터는 디즈니-픽사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주토피아 또한 그가 제작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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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5 20:41 2016/04/0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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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성모성지
2016/03/27 20:43 2016/03/27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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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꼭 보고 싶었는데 조조시간이 안 맞아서 명동까지 올라와서 봤다.

덕분에 명동칼국수도 오랜만에 먹고.
예상대로 영화를 보다가 또 울었다. (왠지 울거 같았다...)
별로 슬픈 장면은 아니었는데 뭔가 내 마음을 건드리는 대목이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주변에서 평들이 하도 많아서 공통적인 부분은 뻬고 이야기한다면,
나이가 들면서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크게 다가오는 걸 느꼈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의 결단, 용기, 실천 같은 인물 중심의 행보에 관심이 갔다면 요즘은 '조직', '시스템'이 더 눈에 들어왔다.

보스톤의 가톨릭 교회 안에서, 성직자들의 아동성추행 사건을 다루는 방식.
거대 조직 내에 만연한 잘못을 해결하는 암묵적 시스템.
신임 편집장이 언급하기 전까지는 기성 시스템이 발견해내지 못한 이 사건.
기성 조직의 관성이 배제된 지시사항. 하지만 관성대로 진행된 업무방식이 만들어낸 엄청난 분량의 심층 취재.

조직은, 공동체는 어떻게 관성을 갖게 되는가, 관성을 깨게 되는가.
제대로 된 관성이 어떻게 훌륭한 결과를 가져오는가, 제대로 되지 않은 관성은 어떻게 파행으로 치닫게 되는가.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주말 내내 영화 때문에 맴도는 생각들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최근, 무슬림 관련 역사책을 파다가 십자군에 의해 멸망하는 비잔티움 제국 이야기에도 꽂혔다. 왜 이 사건이 나를 뭉클하게 만드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무튼. 최근 마음 속이 유리 같다. 세게 치면 부서질 것 같은. 요즘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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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0 20:26 2016/03/2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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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의 다름을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매번 겪어도 좀처럼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우울감이 찾아오는데 감정의 깊은 늪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글을 쓸까 말까 고민했다. 글이란 게 덧없다는 생각...
요즘 더더욱 많이 하기에. 조금 망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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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뉴스앤조이에
이재철 목사 "세월호 유족들 우상시하면 안 돼"라는 기사가 떴다. 
읽었다.
내용은 목회자 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에서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의 강의 및 질의응답 내용을 정리한 것이었다.
질의 응답 중에 세월호 관련 내용이 있었고 그 워딩은 '적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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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김종희 전대표가 해당 강의의 동영상을 올렸다.
60분 질의응답 중 3분이 할애되었고 그 영상에서 이목사는
슬픔에 대해서는 덧붙일 말이 없다고 전제한 뒤 문제의 워딩을 말했다.
물론 그 외에도 회자된 20대 이야기도 기사로 읽었다.
이에 대한 내 지인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고 모두 내가 느끼기엔
분노가 담겨 있었다. 나는 반응들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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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철 목사와는 사적인 관계는 없다.
그저 20년 가까이 글과 책으로, 그의 주변에서 들은 풍문으로 
정리한 내 입장은, 소위 말해 존경하는 목사 중의 한 사람이다.
그리고, 
양화진을 둘러싼 갈등 관계의 이야기를 듣고 2주간 자료를 모아
이 목사를 옹호하는 기사를 뉴스앤조이에 쓴 적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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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100주년기념교회의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
이 목사의 평소의 생활습관, 타인을 대하는 모습, 
얼마전 암에 걸렸을 때의 행동, 자녀가 결혼했을 때의 이야기
그런 변변찮은 이야기들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보다 더 뜨거운 이 '3분의 워딩'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페북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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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지인인 뉴조의 편집장은 페북에
언론의 역할이 깔놈은 까고 칭찬할 놈은 칭찬하는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 글에도 당연히 호불호가 갈렸고, 
나는 특유의 어정쩡한 태도로 그 스탠스가 나와는 맞지 않으나 
언제나 '그'는 지지할 거라고 댓글을 남겼다.
입장이 다르더라도 친분이 흔들리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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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이 다르다'...
나는 매사에 깔놈을 까고 칭찬할 놈을 칭찬하는 언론이... '싫다'.
한때 나는 진중권을 싫어했는데,
그가 한겨레를 깔 때와 조선일보를 깔 때의 수준이 같아서였다.
알파고가 연일 핫이슈다. 인공지능, 지능형OO라고 말하는
기계, 프로그램도 이제 산수나 논리만으로 다음 단계의 출력을 내지 않는다.
'기계적으로'라는 말이 냉정함, 정없음, 어쿠스틱의 배제를 의미했다면
나는 최근 점점더 '기계적'인 인간들을 대면하는 기회가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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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란으로 올라온 댓글 중 반복적으로 접한 글 중,
'이 목사도 이제 맛이 갔다', '은퇴나 하시라'는 류의 글을 읽었다.
물론 페북이나 인터넷 기사의 댓글은 비슷한 성향을 갖는다.
실언을 하면 그 사람은 금새 쓰레기가 되고 퇴출 대상이 된다. 
물론 간간이 좋은 기사엔 멋지다, 짱짱맨 등, 과한 찬사도 보인다
이것이 대체로 항상 분노가 쌓여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터넷 정서다.
솔직히, 백보 양보해서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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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페북에서 교회 테두리 안의 지인들이, 
얼굴을 맞대기도 했고 함께 깔깔거리며 농담을 주고받고, 
맛집 음식을 함께 먹거나 사진을 나누며 병맛돋는 글과 말들을 하던 
지인들, 그리고 눈팅으로 알던 그들의 친구들이.
마치 모두 레알 친구인 것 같던 이들이 이재철 목사에 대해
해대는 말과 글들의 수위가... 솔직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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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모든 매체의 후원을 끊었다.
생각의 차이겠지만 나는 학생들, 아이들 후원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기독교 관련 후원은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하지만 두 매체, 뉴스타파와 뉴스앤조이는 여전히 후원한다. 
물론 금액은 적다. 그냥 상징적인 의미다. 
'뉴스앤조이는 후원할만한 매체다'라는 상징적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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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뉴스앤조이를 후원할 매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 판단의 9할 이상은 그동안,
깔놈을 사정없이 까지 않고, 빨아줄 놈을 무턱대고 빨아주지 않은
김종희 대표의 데스크 판단력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선택은 공평하거나 합리적이지 않았지만,
매번 자신의 진정성있는 해명이 있었고, 분노가운데에도 정이 느껴졌다.
정통 기독 비판 매체지만 뉴스앤조이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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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나는 안철수가 정치에 입문한 후
4년을 지켜보기로 했고, 꽤많은 실망 속에 그를 욕하지는 않았다.
그가 정치판에 첫 발을 들여놓게 만든 게 국민들이므로 국민이 책임져야 한다...
나라도 그렇게 살자, 뭐 이런 나이브한 생각. (솔직히 아직도 한다.)
뉴스앤조이의 새 술과 새 부대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기독 매체를 나는 언젠가 버릴 것이다.
매체를 만드는 사람은 사랑하더라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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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도 밝혔듯 이 글은 고민 끝에 쓴 글이다. 
그리고 이 글은 김종희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쓴 글이다.
2016/03/12 20:35 2016/03/12 2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