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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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 *'모쿠슈라'(mokulsha)

1.
게일어로 '나의 소중한, 나의 혈육'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 프랭키가 한 대사로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 감독으로 열연한 그는 매번 선수들에게 훈련생 이상의 애정을 쏟고 선수가 잘못되었을 때 심한 자책으로 괴로워하는 캐릭터다.

그의 마지막 선수였던 매기에게 이 모쿠슈라라는 단어가 쓰여진 옷을 입힌다. 그 말뜻을 아는 관중들은 매번 열광하곤 했다. 시합에서 이길 때마다 마치 어린이이가 아빠를 향해 장난치듯 웃음짓는 매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그녀가 경기 도중 사고로 전신이 마비되어 입원한 상태에서 그녀의 명성을 듣고 뒤늦게 가족들이 들이닥친다. 그 가족들은 일확천금을 꿈꾸고 왔다가 그녀의 몰골과 엄청난 병원비에 실망...하며 돌아선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그녀의 곁에는 가족이 아닌 프랭키만이 남는다.

2.
오늘 장윤정의 가족들이 방송에 나와서 10억을 탕진한 게 아니라는 해명을 구구절절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갑자기 이 영화의 매기가 떠올랐다. 물론 장윤정은 다행히도 매기의 처지가 아니고 가족사의 디테일은 알지 못하는지라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 판단이 쉽지 않다.

난 그저... 돈이 사람을 망친다는 반응에 대해 돈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망친다는 말을 굳이 하고 싶을 뿐이다. 가난하게 살 때는 문제가 없다가 돈이 많아지면 가족관계에 금이 가고 오히려 불행해진다는 이야기들. 물론 돈이 그 비극적 방향성에 촉매가 될 지언정 그 비극적 서사의 시작은 이미 그 안에 고스란히 있었던 게 아닐까.

매기의 가족이 매기가 가난했을 때에도 행복했던가. 남의 가족사를 건드려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지금 장윤정의 가족은 그녀가 성공하기 전의 가족과 정말 달랐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덜 불행했던 관계가 어떤 이익이 개입할 때 더 불행한 관계로 치닫는다는 생각. 그와 더불어 '모쿠슈라'는 대부분 실질적 혈연, 지연과 무관한 경우가 많더라는, 혹은 오히려 가장 가까운 가족, 친척들이 가까이에서 서로를 괴롭히는 주범이 되기도 하더라는 현실.

3.
그래서 가족주의의 굴레는 자주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개별 인간사에 비극을 가져다준다. 객관적으로 보는 것을 타부시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딸을 겁탈하거나 어머니가 자녀를 돈벌이에 떠밀어도 친척간에 재산다툼으로 남남보다 더한 언사와 폭행을 행사해도... 우리 사회는 '우리가 남이가'라며 가정 내부에서 해결하는 것을 큰 미덕으로 여긴다.

그 영화가 개봉했을 때 20대 중반의 한 미국강사와 대화하다가 그 영화가 과대평가된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생각보다 재미가 없더란다. 매기를 바라보는 프랭키의 눈빛. 그 자체가 '모쿠슈라'의 현현으로 보였던 내게 그의 수박 겉핥기식 인상비평은... 그의 젊은 나이를 고려하더라도 좀 아쉬웠다.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모쿠슈라'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가족주의의 굴레에 빠진 이 사회에서 정작 해야할 중요한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아침. 조금 우울하지만 굿모닝...
2013/06/02 23:06 2013/06/02 2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