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책읽기의 특이점은.
생각보다 엄청난 양의 책을 샀으나
끝까지 읽은 책은 생각보다 아주 적더라는 점.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책을 많이 안 읽었으리라는 예상은 했지만
한번 잡은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은 건 내 평소의
독서 습관에 비추어 보면 꽤 낯선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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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책에 대한 기대, 맹신, 집착 그런 게 없어졌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
단적으로 책에는 좋은 말들이 가득하고, 저자들은
정말 기똥찬 아이디어가 넘치고 지식의 깊이가 헤아릴 수 없으나
... 정작 레알 월드에서는 그닥 '쓸모'가 없더라는 편견이
해를 더해갈수록 나를 누르고 있다.
물론 그 '쓸모'라는 표현이 책읽기가 어떤 효용성이나 실용성을
함의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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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뭐야, 결국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변죽을 울리고 500페이지나 넘게 주절거린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서문에 혹하여 책을 읽다가 초반을 축지(독)법으로
넘기고 중반에 잠시 홀렸다가는 후반으로 가면서 흐지부지 책을
덮게 되는 경우가, 올해는 꽤나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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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게을러진건지도 모르겠지만.
언제부터 독서의 매력이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게 된건지.
정직하게 말하자면 책읽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드는
낯선 경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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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올해의 책 10권 정도를 고르려고 구매한 책과 읽은 책을
정리하다보니 추천할 10권을 고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2-30권 내외의 책들을 놓고 혼자 선별하느라
애를 먹으며, 그또한 즐거워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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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예전에 비해 글쓰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이랄까
환상, 아우라 같은 게 사라진 것 같다.
TED, 팟캐스트, 세바시, SNS, 허핑턴 찌라시 등, 수많은 독립 매체들을 통해
수많은 컨텐츠가 쏟아지면서 글쟁이 고유의 정보력, 분석력, '덕후'력이
더 이상 '수퍼히어로'들만 가진 능력으로 보이지 않게 됐다.
(솔직히 집에서 쓱싹쓱싹, 갑자기 뙇! 가구를 만들어내는 아내가 더 경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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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요즘은 그런 글이 더 눈에 들어온다.
대단치 않더라도 개인이 직접 경험한 독특한 이야기, 가감없는 실패담,
글보다는 사람 자체에 더 호감이 가는 글,
그것도 아니면 희귀한 자료들을 오랜시간 추적하여 잘 정리한 글들이 좋다.
무엇보다 글뒤로 숨지 않고 정직하게 가감없이 자기를 드러낸 저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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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내년에는 책에 대한 애정이 더 떨어질 것 같다.
하지만 책은 여전히 가까이 두고, 많이 사고 적절하게 읽을 것이다.
여전히 난 자신의 짧은 삶의 궤적과 경험이 전부인 양,
간접 경험과 삶의 다양성을 견지할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해버리는 부류를
다분히 경계한다.
하지만 그녀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첫사랑의 기억이
점점 무의미해지는 것처럼 책에 대한 나의 맹신, 추종도
그렇게 옅어지고 흐려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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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을 고르다가 문득 이런저런 잡생각을 끄적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