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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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남편의 육아 분담에 대해 희생 내지는 헌신이라는 말을 하지만. 나는 때로는 가부정적 성역할이 남성에게 육아의 짐을 덜었다기 보다 오히려 어떤 '결핍'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 편이다.

내가 요리한 음식은 아이의 입에 먹여줄 때의 느낌, 한 숟갈 입에 넣고 아이가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최고!"라고 소리를 지를 때 묘한 성취감.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면 아이들 속에서 놀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기뻐하며 놀던 장난감들을 다 내려놓고 달려와서 작은 팔로 목을 끌어안아줄 때.

토닥여 주며 재울 때 하던 옹아리들, 이제는 단어들, 문장들. 그 시시콜콜함에 가끔 빵터지는 웃음. 숨쉴 때 몸의 오르내림. 까딱이는 손가락, 꿈을 꾸는지 뭘 먹기도 하고 뭐라고 입모양을 만들다가 내 겨드랑이 속으로 얼굴을 파묻기도 할 때 그 작은 몸뚱이의 촉감.

수시로 변하는 얼굴표정과 발달 단계에서 보이는 특유의 말들. 아이가 바라보는 것을 바라보고 듣는 것을 듣고 세상을 인식하는 순서대로 세상을 인식하는 경험들 일체를 아버지는 박탈당하는 셈이다.

사랑은 금전적 후원이나 관조적인 행위로 결코 깊어지지 않는다. 아빠와 아이의 사랑 또한 그러하다.

2013년 1월 13일.
2013/01/13 01:19 2013/01/13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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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성매매특별법상 자발적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조항에 위헌 소지가 있어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즉각적으로 양분된 반응이 쏟아졌다. 성매매 관련해서 하고싶은 얘기가 없지 않았는데 이참에 관련된 생각들을 조금 해볼까 싶다.


성을 매매할 수 있는가
원론적인 쟁점은 성이 매매 가능한지 여부다. 집창촌에서 일하는 성매매 여성들은 “우리가 원해서 성을 팔겠다는데 국가가 왜 개입하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이 자발적으로 성을 매매하겠다는 것에 대해 법적 규제가 정당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반대도 만만치 않다. 성매매는 간통과 달리 돈이 개입한다는 점에서 순수한 자기결정권의 범위를 넘은 규제 대상이 될 수 있고 여성들이 성매매에 뛰어들지 않게 하는 교육·복지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고려대 하태훈 교수)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은 거래가 가능한 것 아닌가 어떤 억압적인 이유가 아닌 자발적 매매에 대해 국가가 내 자유를 침해할 권리가 있는가의 문제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것들이 매매가능한가. 일례로 개인의 장기매매는 어떨까. 내 콩팥 하나를 팔아서 수익을 얻는 행위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질 수 있을까. 물론 장기매매와 성매매는 몸의 일부를 물리적으로 떼어주느냐 몸으로 노동을 하느냐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모든 매매의 자유에 대해 재고할 지점이 있다는 점 정도를 고민할 부분이다.


세계적 성매매 현황: 집단, 산업화 VS 개인 대 개인
세계적으로 성매매의 입장은 어떨까.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 주, 스위스, 독일,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터키, 네덜란드, 헝가리, 미국 네바다주, 멕시코, 벨기에는 공창제(성매매를 직업으로 인정)를 시행하고 있고 잉글랜드, 아일랜드, 이스라엘, 캐나다, 폴란드, 핀란드, 스페인은 자치주의(국가가 성매매에 관여하지 않으나 인신매매, 호객행위는 규제함)이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 스웨덴,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수단, 예멘, 파키스탄 같은 국가들이 성매매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결국 성매매에 대한 국가의 입장은 어떤 지배적인 입장이 있지 않고 그 지역, 문화,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의 입장도 있다 . 한국처럼 성매매가 대규모 산업화한 나라에서 아무 전제 없이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않으면 성매매가 더 창궐할 가능성이 크고, 이를 사생활의 자유로 보는 것도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서울대 양현아 교수) 또한 한국의 성매매는 서구처럼 개인 간 일대일 거래 행위가 많지 않고 집단화·산업화한 양상이 지배적인 만큼 이런 식의 법적 판단(성매매의 합법화)가 성 산업만 키우는 꼴이 될 것으로 우려하기도 한다.(중앙대 이나영 교수) 충분히 공감할 만한 생각이다.


성노동자들의 인권 VS 여성 인권
또하나의 쟁점은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여성인권과 성노동자들의 인권의 대립이다. 본질적으로 성매매는 남성중심 사회구조에 기인한 비정상적 노동수단이다. 남자들의 퇴폐 밤문화 속에서 보다 하드코어적인 자극을 충족시켜줄 대상으로 자신의 반대성을 가진 인격을 상품으로 대접받겠다는 욕망이 내재해 있는 셈이다. 당연히 이러한 매매구조에 여성이 동의할리 만무하다. 한 진보 여성단체 관계자는 "자칫 성 판매를 노동으로 인정하고 용인하자는 식이 될까 조심스럽다"며 "성매매를 여성 인권이나 건강권 보호가 아닌 노동권 보호 측면에서 보는 것은 여성계에서 아직 논란이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반대의 입장은 성노동자들 스스로의 입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순간 한국사회에서 성노동에 연루된 상당수의 여성들은 법의 사각지대 안에 놓이게 된다. 성매매를 하고도 화대를 받지 못하거나 모텔에서 몸이 강제로 묶인 채 폭행당하고 성관계 장면을 카메라로 촬영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업주에게 성폭행을 당하고도 도리어 성매매 사실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해서 무마되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집창촌의 경우도 경찰이 실적이 필요할 때마다 닭장의 닭 잡아가듯 한마리씩 잡혀가는 신세가 되었다고 집창촌 여성들이 하소연한다고 한다. 일반 여성들은 원론적으로 옳지 않은 성매매구조 자체를 문제 삼지만 실제 사회 안에 성노동자들은 투명인간 취급을 하게 되고 성노동을 그만둬야만 정상여성으로 인정된다. 그전까지는 성노동자 여성들은 여성들 세계에서는 타자가 된다.

이에 대해서는 김두식 교수의 인터뷰에 응했던 김연희씨의 증언들을 곱씹어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밀사와 함께 성노동자 권리모임 ‘지지’(GG) 활동도 하고 계시죠? 지지는 어떤 단체죠?"/ “2004년 성노동자들의 시위를 보고 충격을 받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여성주의자들이 성노동자 운동과 연대하고자 성노동 세미나를 시작했어요. 그 연속선상에서 만들어진 게 성노동자 권리모임 지지예요. 운동이 침체되는 상황에서 밀사가 성노동 실험이라는 사고를 쳤고, 그 소식을 들은 지지 쪽에서 바로 밀사를 접촉했죠. 밀사가 지지 활동을 함께 하자고 저에게 제안했고요. 지지는 제가 집창촌에서 보던 여성운동 하는 사람들과 느낌이 많이 달랐어요.”

"어떻게 달랐죠?/ “그 전에 집창촌을 찾아오던 여성운동 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우리가 남성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다면서 ‘너희는 여기서 벗어나야 해’라고만 했어요. 먹고살기 위해서 하루하루 일하는 우리에게 ‘너희는 강간을 사고파는 거야’ 뭐 그런 이야기나 하니까, 듣는 입장에서 굉장히 불쾌했죠. 쌈리(평택의 성매매 집결지)에 있을 때는 업주들이랑 아가씨들이 아예 ‘여성단체 출입금지’라고 써 붙였을 정도예요. 그런데 지지 사람들은 ‘성매매가 현재 불법이기 때문에 폭력을 당해도 피해를 호소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설명해 줬어요. 일상에서는 듣지 못하지만 현실적으로 맞는 얘기들이었어요. 우리가 일하는 상황에 대해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기도 했고요.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활동을 함께 하게 됐죠.”


덧붙여서: 성의식. 성해방, 성매매
이렇듯 성매매는 다중 가치관이 개입된 사회문제이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한 가지만 더 짚고 싶은 부분은 '성의식'에 대한 부분이다. 여성인권은 과거대비 최근들어 급격히 신장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여성의 성평등 문제는 미니스커트와 같은 페션에서부터 최근 '잡년행진'(SLUT WALK)까지 페미니즘적인 시각이 확산되는 추세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성해방운동은 여성의 피임기구가 발전하면서 임신을 전제하지 않은 자유로운 성생활에 대한 욕구와 그 실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여성문제는 성해방, 프리섹스주의와 시기적으로도 오버랩될 뿐더러, 여성문제를 다룰 때 성적인 요소들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성문제에 있어 주장하는 목소리의 결이 일치할 때가 많다. 허나 국내에서 여성 불평등 문제는 여성단체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지만 성해방이나 동성애 문제로 들어가면 대다수가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곤 한다는 점이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한국사회에서 보통의 여성들이 실제 보수적인 성의식을 가지고 있고 특히 그중 기독교인은 혼전순결을 중요시하고 여성의 성적 욕구에 대한 억압, 무분별한 성관계와 같은 성해방 이슈에 부정적인 입장이지 않은가.

여기서 내가 불편한 지점은, 성매매 문제에 있어 이러한 성의식이 성매매의 윤리잣대에 부지불식간에 스며든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수의 여성이 사회구조적으로는 남성중심의 한국사회의 직장문화, 유흥문화, 성불평등 문제 등에 강하게 반발하지만 성노동자로서의 개별 여성에 대해서는 사회일반적인 보수성을 - 남자와 잦은 성관계를 가진 여성은 더럽다, 성매매 여성은 정상적인 여성이 아니다  류의 - 계승한다.

남성의 성매매 여성에 대한 시각이 이중적이라면 - 성매수의 수혜자면서 사회적으로는 성매매의 대상을 더럽다고 혐오하는 - 여성들도 성노동자에 대해서는 이중적이긴 마찬가지다. 쉽게 말해 성노동자들이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성노동을 강요받는 피해자로 인식하지만 실제 노동자들과 대면할 때는 그들의 선택을 비난하고 법적인 처벌에 찬성하는 것이다. 또한 정서적으로 성노동자에 대한 더럽다는 인식을 여성들 스스로도 하는 듯 하다.

따라서 진실로 내가 우려스러운 부분은 이런 것이다. 여성 성노동자들에 대한 일반 여성의 인식이 다분히 보수적인 사회인식에 편승한다는 것, 이는 결국 성을 사고파는 이른바 성을 상품으로 규정짓는 인식 이상의 윤리적 잣대를 성노동자라는 타자(대상)에 투영한다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상대적으로 남성 성노동자에 대해서는 '더럽다'거나 '걸레같은 년(놈)'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지 않는다.) 종교적 신념에 의해 혹은 보수적 가치에 의해 성노동자들을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유별나게 불결하고 더럽고 해서는 안되는 극단적 행위로 매도하는 데에는 그 잣대가 '매매행위' 자체에 있지 않고 '일대다의 섹스행위'에 대한 윤리의식이 함께 녹아들어 있다. 하다못해 장기 매매를 하는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구조에 분노함과 동시에 동정의 대상이 되지만 성매매를 하다가 죽거나 폭행당하는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보다 가벼히 여기거나 성노동을 하는 여성의 몸 자체를 '인간말종' 내지는 '걸레'로 인식하는 한계가 보인다. 사실 이것이 '여성' '성노동자'에게 쏟아지는 이중비난의 알맹이인 셈이다.

나는 거시적으로나 장기적으로 성매매가 근절되어야 한다는 큰 그림에 동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성노동자를 대하는 그런 시각, 그리고 그들이 받는 고통에 대해 관심있게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서 원론적인 이야기(성매매반대)만 되풀이하는 것들이, 자주 불편하다. 그리고 그런 불편함은 내가 보수적인 개신교인이고 프리섹스를 옹호하지는 않지만, 성노동자의 인권을 얘기할 때 성해방 담론을 반대하는 윤리적 잣대가 그 개개인에게 얹혀지는 현실에 기인한다. (끝)
2013/01/11 01:14 2013/01/11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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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페친분들의 포스팅을 받지 않고 있지만 가끔 다른 페친의 좋아요로 그 분들의 포스팅이 쓰리쿠션 찍고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늘도 교계에 스타급 목사님의 포스팅이 그렇게 내 담벼락에 떠서 할 수 없이 읽었다... 페친의 상당수가 목사님이라 자주 지적(질)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목사님들의 포스팅을 보면 그분들의 '욕망' 같은 게 읽힌다. 이른바 설교 욕구다. 중년을 넘어서면서 나름의 정체성, 자신감 같은 것도 생겨서인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부분에 있어 거침이 없다.

 

흥미로운 건 글의 도입에 자신에 대한 약점 내지는 험담을 툭 던지는 게 상례인데 중반 이후를 읽다보면 그 약점에 대한 고백은 장대한 피날레를 위한 하나의 예화, 혹은 에피타이저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난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훌륭한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었다...라는 내러티브가 사례들을 바꿔가며 반복된다. 점점 스케일이 커지는 것이 흡사 미국드라마의 시즌2, 3로의 진화를 보듯 흥미진진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그런 글들을 보면 조금 씁쓸하다.

 

어림잡아 개신교인 반, 비개신교인 반의 친구를 가진 내 입장에서 그런 글들이 반대쪽 분들에게 어떻게 읽힐까를 생각하면 좀 오글거릴 때가 있다. 기온차가 너무 크다는 말이다. 그래도 그 구획(교계내) 안에서는 좋아요 작렬이니... 그 프레임이 깨질리는 없겠으나, 내가 기대하는 포스팅은 좀 다른 것들이다. 페북의 특성상 좋아요를 유도하는 글들이 요구된다. 목사님들은 된장남처럼 자기가 입고 먹고 마시는 것들을 자랑하지는 못하니 주로 자신의 거룩한 생각, 행실, 선행사례들을 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유명 목사님들의 회개거리, 실수, 분노, 망가짐, 해결되지 않은 갈등의 고백들을 읽은 적이 별로 없다. 하다못해 자신이 풀 수 없는 문제를 놓고 '하등한' 일반 성도들에게 기도부탁하는 글도 본 적이 없다. 요즘은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주인공들이 극도의 갈등을 겪는 게 적나라하게 표현되는데(배트맨은 허리까지 부러지지 않던가) 우리네 유명 목사님들은 죄지을 틈도 없이 성공만 하시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초류향이나 레밍턴 스틸같은 실력자(?)이셨는지 전혀 일상사에 어려움이 없이 성도들에게 모범 사례들만 설파하신다.

 

아무래도 페북이, 목회자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부족해요', '실패했어요' 같은 버튼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2013년 1월 3일

2013/01/10 21:58 2013/01/10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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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미터 밖에서 보면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 있을 수가 없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인 거죠. 밖에서 페미니스트로서 발언을 하는 건과 현실에서 여성으로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의 사회적인 괴리가 큰 것 같아요. 반대로 생각은 정말 가부장적인데 인격적으로 여성을 대하는 사람도 있고요. 어떤 사람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됐으면 그걸 실제로 표현해야 자기 것이 되잖아요. 생각과 태도의 괴리가 없는 것, 가능한 그것을 통합할 수 있는 것이 인간적으로 건강한 변화가 아닐까 싶어요."

“남자들도 쉽지 않은 건 알아요. 아내를 배려해야 한다는 게 이중적인 부담으로 느껴지죠.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것과 아내가 자기 이름으로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차이가 있어요. 물론 남자들도 ‘나는 뭐 내 걸 챙기면 살았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남자는 그래도 사회활동을 하면서 갖게 되는 네트워크와 직함이 있잖아요. 여성들은 계속 가정에서 지내다 사회에 나갔을 때, 그 갭이 상당하거든요. 남성과 다른 코스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동일한 사회적 위치에 서기까지는 정말 힘들죠. 여건의 차이를 인정해주고 여성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 양혜원 님. 인터뷰 내용 중

2013/01/10 01:13 2013/01/10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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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잘 의식하지 않았는데 '매를 맞는다'는 표현 자체가 대단한 '가부장적 창의력'이란 생각이 든다. 매를 때리는 경우에는 대체로 훈계를 하는 자와 받는 자를 규정하고 그 둘 사이의 관계에서 훈계 행위로 말로 하느냐 물리적인 힘을 가하느냐로 구분된다. 따라서 방법을 떠나서 '훈계 행위에 대한 긍정'이 전제된다. 결국 '매맞는다'는 의미는 아내가 남편의 훈계를 받는 존재임을 처음부터 암시한다.
 
'구타당한 아내', '아내 폭력', '폭행' 같은 대상과 행위를 명시한 표현이 아닌 가정폭력이라는 보다 큰 범주화로 포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매맞는 아내라는 말은 참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좀더 구조적으로 접근한다면 여자가 출가하여 남편의 집안으로 들어가면 서열 최하위의 노동자가 되고 그 노동자는 그 개별 가정(부부)의 가사, 출산을 도맡아야 함은 물론 그 집안의 가부장적 질서에 잘 몸을 녹여야 한다.
 
명절 제사나 기일, 혹은 남편 집안의 대소사에 불참 내지는 무신경하거나 개별 가정에서 남편을 보필(아침 접대, 남아 출산,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가사노동 전담)에 부실하거나 귀가시간이 늦도록 회식에 참여하거나 여성이 사회적으로 안해야 할 일들(흡연, 음주과다, 종교생활 집중)을 행할 시에 남편과 남편의 집, 본가에서는 개별 여성을 제대로(가부장적 원리대로) 훈육할 의무와 책임을 갖는다.

 

핵심은 이것이다. 하나의 '거대한 조직'에 들어온 신입 노동자인 여성은 국가가 법치를 내세우듯 유교주의라는 법도에 따라 여성을 '매'로 다스릴 수 있다. 우리는 교양인이니, 대부분의 경우에는 대화로 여성을 훈육해야 하겠지만 버르장머리 없는 요즘 여성(아내, 며느리)들이 분위기 파악을 못할 때는 좀 강하게 우리 집안의 법도를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따라서 말단 가족원(여성)을 책임지고 있는 남편이 매를 들어라. 그리고는 사랑(성관계)으로 달래줘라. 이게 '매맞는 아내'란 말이 담고 있는 함의다.
 
내 생각이 과한가. 요즘 얘기같지 않은가. 불행히도 대답은 NO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013/01/10 01:12 2013/01/10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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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교회 사역자들이 한국교회의 세속화에 대해 비판한다. 대체로 나는 그 목소리에 공감하지만 때때로 목회자들이 세속/비세속을 정말 제대로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고 주식도 안 하고 룸싸롱도 안 가는 다수의 목회자들에게 있어 성/속 개념은 명확할 것이다. 물론 기업의 CEO급 목사들은 술도 먹고 주식도 하고 부동산도 사고 룸싸롱도 가고 바람도 피우시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그런 분들은 다수가 정죄하니 오늘은 대상에서 제외하고. (물론 드러나지 않은 몇몇 분들의 루머들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검증도 오늘은 제외) 대신, 자신이 처음부터 근처에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세속의 금을 그을 줄 아는 이들의 자기의에 대한 이야기다.

 

예수는 길을 가다가 우물가에서 이방 여인에게 수작을 건다. 알고 보니 여인은 남편이 다섯인 부정한 사람이었다. 예수는 긴 대화를 주고 받다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온다"는 복음과 그 메시야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요한복음 4장)

 

대체로 목회자들은 후반에 드러난 교훈에 꽂힐테지만 나같은 세속인은 초반에 예수님이 수작을 걸면서 주고받는 언어유희와, 그 대화를 지켜보는 제자들의 초조함(기이히 여김)에 꽂힌다. 땡볕에 물을 길으러 온 여인은 누가봐도 '문제의 여자'임을 알텐데 예수는 겁도 없이 그녀에게 무장해제의 자세로 대화를 시도한다.

 

예를 들면 한 목사가 길을 가다가 너무 목이 말라서 들어간 곳이 알고보니 영등포 집창촌 골목이었다고 치자. 아마 그는 깜짝 놀라 그곳을 뛰쳐나왔을 것이다. 혹은 물을 달라고 했다가 물을 가져온 여인의 옷차림, 행색이나 말투를 경험하고는 대화를 시도하지 않거나 반대로 그 길에서 벗어나라고 무섭게 훈계했을 수도 있다. 솔직히 나라면 훈계까지는 아니라도 그곳을 피했거나 어쩔 수 없이 물만 얻어먹으면서도 불결하다는 느낌을 은연중에 표했을 것 같다.

 

예수의 뛰어남, 고결함은 자신이 구원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에 대한 존재적인 사랑이다. 우리가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이슈를 접했을 때 자동적으로 하게되는 성속에 대한 판단 '이전'부터 자리잡은 그 영혼 자체에 대한 애정과 관심 같은 것 말이다. 그는 우리나라로 치면 친일파 앞잡이 같은 존재인 삭개오의 집에가서도 밥을 먹으며 희희낙낙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가.

 

물론 모범시민, 모범목회자들에게 알아서 악의 길로 달려들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모범적 성장 배경에서 배제시킨, 이른바 자기의에 기준한 판단으로 세속을 규정짓고 세속적인 삶에 불결함을 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세속주의를 비판하는 상당수의 종교인들, 특히 개신교 배경의 목회자들에게서 예수의 얼굴보다는 항상 아버지와 함께 살던 탕자의 형의 얼굴이 자주 오버랩된다.

 

보수진영의 목회자들이 동성애자, 불신자, 미혼모, 혼전 동거관계에 대해 강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보진영의 목회자들도 쉽게 보수파 정치인과 논객들, 기업, 언론인들의 삶을 불결하게 여긴다.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또 가진자의 악행의 규모면에서 분명 동의되는 지점이 있지만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 그 개별적인 인간 자체에 성속의 선을 너무 짙게 그어버리는 건 아닌가 우려감도 든다.

 

목회자 뿐 아니다. 만인이 제사장이라 믿는 개신교인 모두가 예수의 삶을 따른다면. 적어도 자신이 가지 않은 길을 가지고 '자기의'로 삼는 일을 그치고 자신이 걸은 길에 대해 겸손히 동참을 호소해야 하지 않을까. 세속주의에 대해 묵혀뒀던 나의 생각은 그렇다.

 

2013년 1월 7일

2013/01/07 22:02 2013/01/0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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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착한 아들, 착한 동생, 모범 학생이었다. 학교 친구들과도 항상 원만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서로 상처를 주고 받은 관계는 없었다. 몇몇 절친과 간혹 절교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며칠만 지나면 이내 다시 밥도 같이 먹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함께 놀기를 반복했다.

짝사랑. 풋사랑, 첫사랑..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그저 착실하고 매사에 타인을 불편하게 만든 적이 없는 나였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시작된 내 초반의 연애 경력은 사실 그다지 좋지 못했다. 감정의 숨김, 혹은 과잉, 상대를 조종하고자 하는 욕망, 익숙치 못한 `밀당` 등, 잠시동안의 로맨틱한 몇몇 기억을 빼면 힘들고 고통스럽고 창피해서 숨고 싶을 정도로 심경이 복잡하다. 지금도 가끔 과거를 돌이켜보면 몇몇 사건들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린다.

일년 넘게 상대를 괴롭히며 서로를 힘들게 만들었던 기억. 때로는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했다가, 불과 며칠 후엔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다고 맹세한 메시지를 보내고, 하루는 네가 어떻든 상관없다고 말했다가 또다른 하루는 나만 소중히 여겨달라고 고집을 피우던, 까만 밤을 하얗게 새워가며 상대를, 나자신을 괴롭히던 내 초창기 연애사는, 어떤 의미에서는 지워버리고 싶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렇게, 거친 감정의 주고받음을 통해 어느정도 내 안에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야수성`을 길들여갔고 어느 시기부터는 정상인이 되었다. 정상적인 연애를 하게 된 것이다. 정상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고 그리고 말과 행동의 어긋남이 줄어들게 되는 과정 속에서, 솔직히 나는 내가 남들보다 조금더 늦게 사랑에 대해 이해하고 곱씹게 되지 않았나 돌아본다. 한편으로는 그 규정짓기도 민망한 `사랑의 시작들`은 상대방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내게 참 쓰고도 깊은 약이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결혼을 하고도 어언 8년이 지난 지금. 마리 루티의 <사랑학 수업>을 읽으니 새삼 내가 점잖게 - 마치 과거의 `행패`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폼잡고 - 있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마리 루티가 언급한 안 좋은 남성의 케이스 중 어느 대목에서는 내 과거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또는 내가 이 수업을 들었다면 불필요한 감정의 속임, 혹은 과잉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좀더 빨리 정상적인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아쉬움도 든다.

하지만 그녀의 가르침을 `몸소 체험을 해야` 그것(연애)이 제대로 내 안에서 소화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어쨌거나 젊은 시절의 힘들었던 연애의 기억들이 결국 나를 이전보다 조금은 더 멀쩡한 인간이 되게 해준 게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든다. 무엇보다 그녀의 `사랑학 수업`은 문화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행하는 남성과 여성의 정형화된 연애의 룰 자체를 허문다는 점에서 배울 부분이 많다. 특히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로 열심히 연애 공부를 하는 싱글들에게 과감히 그 책을 이제 덮고 마리 루티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제안하고 싶다.

그녀는 책의 말미에서 사랑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10가지의 조언이라는 리스트를 아래와 같이 제시했지만 이 조언보다 더 깊이 있는 통찰들이 그녀가 드는 사례와 일화들에 즐비하다는 점을 나는 꼭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개인적으로 그녀의 사랑학 수업보다 나는 초반에 쓰여진 정혜윤씨의 추천사가 더 좋았다. 솔직히 추천사를 읽고 가슴이 뭉클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멋진 글로 이 책을 더욱 빛내준 그녀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사랑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10가지 조언>
1. 너무 애쓰지 마세요. 연애가 잘못되는 것은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2. 너무 조심스러워하지 마세요. 용기 내어 다가가지 않으면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3.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하지 마세요. 머리로 고민하기보다 마음의 울림을 믿으세요.
4. 자신의 강인함에 대해 미안해하지 마세요. 약해보여야 애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5. 자신의 약점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랑은 기댈 어깨를 얻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6. 나를 원하지 않는 상대를 쫓아다니지 마세요. 가슴만 아플 뿐입니다.
7. 문제가 없는 남자는 그만 찾으세요. 누구에게나 문제가 있고 나에게도 있으니까요.
8. 사랑하는 사람을 조종하지 마세요. 당신이 조종당한다면 싫듯이 상대도 마찬가지입니다.
9. 지나간 잘못을 일일이 후회하지 마세요. 사랑에서 올바른 선택만 할 수는 없습니다.
10. 상실은 완전한 상실로만 생각지 마세요. 잃어버린 경험이 당신을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듭니다.
2013/01/05 23:23 2013/01/05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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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육아일기

성하에게.

 

불과 6-7년전만해도 너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느덧 엄마 아빠가 '아들바보'가 되어 있구나. 삶이란 게 참 신기하지. 새해가 밝고 니가 아빠에게 "이제 나 다섯살이야. 아빠 나한테 까불지마"라고 말해서 엄마랑 한참 어이없게 웃었어.ㅎㅎ 빨리 크고싶어하는 네 동심 가득한 모습을 함께 해서 참 재미있고 기쁘다.

 

작년보다 더 말을 잘하는 너를 보면서 전전긍긍하는 아빠를 보며, 엄마는 아들의 '똘마니'가 되었다고 말하는데... 가끔 아빠는 네가 이제 다섯살 밖에 안 되었으니 아빠의 이 지극정성을 니가 기억도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좀 아쉽다. 기록으로라도 남겨서 묵혀두었다가 네가 철들면 생색을 낼까 싶다.

 

내 아버지는 나를 자신의 방법으로 사랑하셨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나의 곁에 없었기에 함께 웃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오래된 앨범이나 생일 카드들을 보면 지금도 그 글에는 시를 쓰는 내 아버지 특유의 감성이 묻어나지만, 솔직히 그건 아버지가 글솜씨를 뽐내기 위한 것이지 아들의 소소한 일상을 깊이 관여한 글이 아니란 생각에 조금은 씁쓸하기도 해.

 

너에겐 그런 글자랑하는 아빠가 아니고 좀더 가까이에서 살을 부비며 웃어주는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럴려고 한다. 한해도 건강하게 자라주어 고마워. 성하라는 아름다운 영혼을 허락한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 너의 똘마니 아빠가

 

 

2013년 1월 5일

2013/01/05 00:04 2013/01/0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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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컨텐츠/페미니즘
대체로 남자가 툭 던진 한마디에 여성이 갑자기 정색을 하거나 마음 상해하는 대목을 일상(남자)세계에서 희화화하는 경우가 많지만(회화화된 이야기 속에서 이때 여성은 데이트 중에 곧장 집으로 가버린다) 상황적으로 그 남자의 말은 우회적으로 의도된 (뼈있는) 말인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여자의 영민한 '촉'을 남자들은 '삐침' 정도로 비웃지만, 무의식 중에 나온 의도된 말실수를 깨달은 남자들은 직관적으로 사과하는 (척하는) 본능을 보인다. 그러고 뒤에서 드러난 사실만을 발화하며 여성들의 쪼잔함, 피곤함을 비웃는다. 마리 루티는 '사랑학 수업'에서 이런 이성 관계에서 오는 심리적 무의식 문제와 여성주의적 관점들을 적절히 사례로 풀어낸다. 공감할 만한 구석이 많다.

내친 김에 조금 더 달리자면.
"남자가 직장생활하면 그럴 수도 있지 여자가 피곤하게 왜이래?"라고 하는 대목의 배경에는 남자들의 술자리가 있다. 실제로 이렇게 말한다는 이야기를 나는 자주 들었다. 남자가 고단하게 일하면서 구조적인 문제로 생기는 술자리 한두번에 왜 그렇게 가혹하게 혹은 예민하게 구느냐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것도 자신이 그렇게 비싸다고 구박했던 아내가 산 백화점 옷값을 써댔으면서도.) 이때에도 비난의 대상은 즉시 근면한 남편에게 잔소리나 해대는 여성의 옹졸함으로 귀결된다.

좋다. 내가 남성편을 좀 들어주겠다. '원치 않게' 그런 자리에 갈 수도 있다. 한두번 어쩌다가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내 아내가 여성들 모임에서 원치 않게 한두번 3차, 4차에서 성관계를 갖거나 그렇지 않으면 룸싸롱 같은데 가서 유사 성행위를 하고 만취상태로 들어와서 "극심한 가사노동과 육아스트레스로 여자가 나가서 그럴 수도 있지. 지 아내하나 만족 못시켜주는 남자가 피곤하게 왜그래?"라고 말할 때 관대하고도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쿨한 남편이기를 바란다.

외간 남자가 말만 붙여도 부정하다고 여기는 '순수한' 남편들은 이 나라의 유흥문화(직장문화)가 미쳐돌아가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변명하거나 아내가 직장생활하는 남자 보필도 못하는 피곤한 타입이라는 등의 궤변론을 펼치지 말기를 부탁드리는 바...


 2013년 1월 4일

 

2013/01/04 01:10 2013/01/04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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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육아일기

지난 금요일 저녁부터 어제 조금 일찍퇴근해서까지 성하와 같이 지내다보니

 육아스트레스에 빠진 나... 어제는 아내에게 "아... 성하가 지겨워...ㅠㅠ"라고 했더니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가식적으로 지어보인다.ㅎㅎㅎㅎ

이후에 부부가 모여서 성하 험담 삼매경.ㅋㅋㅋㅋㅋ

 만화영화 노래부르면서 좀 컸다고 가오잡고 노래한다는 둥, 지가 왕자인 줄 안다,

내 자식이지만 때때로 재수없다는 둥 한참을 뒷다마를 까댔다.^^

오늘은 다시 모범 아빠로 변신해서 잘 해줘야지. 롤롤롤~

 

 

2013년 1월 3일

2013/01/03 00:03 2013/01/03 00:03